대한민국 사람 중 해외에 가장 많이 알려진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극동방송 사장 金章煥(김장환) 목사가 趙鏞基(조용기·64) 목사의 해외 지명도를 알 수 있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1999년 하반기에 극동방송 지사 설립 관계로 캄보디아에 갔어요. 그랬더니 그곳 사람들이 나에게 趙鏞基 목사를 아느냐고 물어요. 그래서 「다음주 목요일에 우리 교회에서 설교한다, 우리는 친형제처럼 지낸다」고 했더니 모두들 깜짝 놀라더군요. 그곳 TV에 조용기 목사님 설교가 나오기 때문에 사람들이 趙목사님을 다 알고 있어요. 불교국가에서 일요일마다 설교를 하는 분이 바로 趙鏞基 목사입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李賢淸(이현청) 사무총장은 케이블 TV를 통해 趙鏞基 목사의 설교를 듣는 미국인이 많다며 미국 교회에 가면 목사들이 반드시 『용기 조를 아느냐』는 질문을 한다고 전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선교국장 김용준 목사는 멕시코의 멕시코시티에서 1시간40분 가량 떨어진 2500고지 마을에 갔을 때 『한국에서 왔느냐, 趙鏞基 목사를 아느냐』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전한다.
『趙鏞基 목사님이 모든 대륙에서 수많은 대형 집회를 개최했기 때문에 잘 알려져 있죠. 집회 기간에 대통령을 면담하고 현지 신문에 대서 특필되고 TV 주요 뉴스로 다뤄지기 때문에 한번 다녀가면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됩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한국보다 외국에 더 잘 알려져 있으며 趙鏞基 목사는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이 이번 취재에 응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이는 70만명이라는 경이적인 교인 숫자, 1964년부터 시작된 해외聖會(성회), 해외 방송망, 수십 권의 서적 출간 등으로 「데이빗 용기 조」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趙鏞基 목사는 1992년에 세계 150개국 3500만명의 신자를 보유한 세계하나님의 성회연합회 총회장에 당선되어 현재 연임중이다.
『趙목사 설교 들으면 정신이 든다』
여의도는 평일보다 일요일이 훨씬 붐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예배 인원과 여의도공원과 한강 시민공원으로 놀러오는 사람들 때문이다. 趙鏞基 목사가 설교를 하는 2,3,4부 예배 때 특히 붐비는데 예배에 들어가기 위해 교회 앞에서 줄을 서 있거나 교회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곧이어 마구 달려들어가는 사람들, 줄지어 서 있는 버스, 교회 뜰에서 모금을 하거나 공연을 하는 사람들은 처음 방문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예배는 보통 1시간 30분으로 다른 교회보다 좀 길다. 그런데 자리가 없어 의자가 아닌 돗자리에 앉거나 아예 서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많다.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다른 교회도 많은데 왜 복잡한 이곳까지 와서 예배를 드리는지 물어 보았을 때 대답이 다양했다.
『趙목사님 설교는 잠이 안 온다. 한번을 드려도 예배를 드렸다는 기억이 남는다. 걱정거리가 있어서 교회에 왔을 때 설교 가운데 해답을 얻는 경우가 많다. 내가 낸 헌금이 큰일에 사용되는 것이 기쁘다. 내가 갖고 온 폐지와 옷으로 불우한 사람을 돕는 것이 좋다. 세계 최대 교회의 일원으로 세계적인 일에 동참하는 것이 즐겁다. 교회 오면 신나는 일이 많다. 예배 시간에 趙목사님 해외성회 비디오를 통해 놀라운 기적을 많이 목격해 믿음이 크게 자란다. 매일 신유 기도를 받으니 병이 안 생길 것 같다』 등의 얘기였다.
그런가 하면 『아무도 잡지 않아 편하게 교회 다닐 수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답은 『예수 믿어도 세상 살기 괴로울 때 많다. 축 처져서 교회 왔다가 趙목사님 설교를 들으면 누가 찬물을 얼굴에 뿜는 것처럼 정신이 든다』는 것이었다.
다른 교회 교인들에게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좋게 얘기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교회 가보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나도 예수 믿지만 소리지르며 기도하는 것을 보면 광신자 같다. 사람들이 대체로 시끄럽고 수준이 높아 보이지 않더라. 異端(이단)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너무 열성분자들 같아서 싫다. 예배 30분 전부터 기다렸다가 뛰어서 앞자리에 갈 자신이 없다. 질서가 없는 것 같다. 담임 목사를 생전 가도 직접 만날 수 없을 테니 나는 그 교회 안 간다. 趙鏞基 목사가 은퇴하면 아마 그 교회는 힘들 거다』
대충 이런 얘기를 하면서도 이구동성으로 趙鏞基 목사가 설교를 잘한다는 것과 매일 밤 철야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렸다. 그래서 가슴이 답답해 기도를 하고 싶을 때면 여의도를 찾는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외국인 관광코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在籍聖徒(재적성도)는 70만명이다. 재적성도라는 것은 교회에 정식으로 등록한 사람을 말한다. 매주 나오는 사람도 있지만 한 달, 혹은 몇 달에 한 번씩 나오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대형교회는 대체로 재적성도의 3분의 1이 출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관계자는 매주 25만명 정도가 출석한다고 밝혔다. 일요일과 수요일 여의도와 서울시내 17개 지성전, 45개 기도처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사람들은 위성으로 동시에 畵像(화상)예배를 드리고 있다.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기도처가 서울 시내 150군데에 있으며 그 가운데 50평이 넘는 45군데에 위성중계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25만명 가운데 여의도로 직접 오는 사람은 15만명 가량이며 일요일 일곱 번의 예배 가운데 趙鏞基 목사가 설교하는 2, 3, 4부에 10만명 가량이 몰린다.
매주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외국인이 평균 600여 명에 이르는데 그들은 대개 관광객들과 駐韓(주한)미군들이다. 예배시간에 플래시를 터뜨리거나 비디오 카메라를 작동하는 외국인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예배가 없는 평일에도 교회를 방문하는 외국인과 국내인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의도는 대성전과 13개 부속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대성전은 2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 4만명이 나오고 들어가는 모습을 외국인들은 매우 흥미로워 한다. 대성전 안에서 지켜본 결과 교인들이 다 빠져나가는 시간은 약 10분 정도 걸렸으며 여섯 군데 출입구에서 30분 전부터 기다리던 교인들이 마구 달려와 대성전 2층 8000석과 3층 5000석을 메우는 데는 단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남선교회 안내 집사들이 『할렐루야! 뛰지 맙시다』라고 반복해서 외쳤지만 신도들은 전속력으로 달려와 재빨리 자리를 차지했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이 60대 이상 할머니들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들이 그 시간 예배에서 유일하게 화면이 아닌 趙鏞基 목사의 실제 얼굴을 보며 예배드리는 사람들이다.
기둥 때문에 스크린을 통해 예배를 드리는 대성전 뒷좌석도 예배시간 10분 전에 꽉 들어찼다. 예배가 시작된 뒤에도 계속해서 들어온 사람들은 30군데에 펴놓은 돗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다. 12월31일 送舊迎新(송구영신) 예배 때는 보통 3시간 전에 대성전이 꽉 차서 문을 안에서 걸어 버린다고 한다.
국내 여행을 오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여의도순복음교회를 관광하고 파주에 있는 오산리 최자실 금식기도원까지 다녀간다. 그래서 외국인 사이에서는 『돈 쓰고 한국 와서 굶고 간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일부 여행사들이 외국인 여행자 필수 관광코스로 선택하기도 한 곳이다.
시끄러운 교회, 즐거운 교회
지난 6월25일 예배가 끝난 뒤 여의도순복음교회 4개의 건물 사이사이 작은 광장은 그야말로 축제라도 벌인 듯 소란스러우면서도 활기가 넘쳤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구호단체인 「선한 사람들」이 옥수수빵과 북한産 수공예품을 판매하면서 교인들에게 옥수수죽을 무료로 나눠주었다.
그 옆에서 북한선교회는 『1000원이면 북한주민 한 명의 3일간 식량을 구할 수 있다』며 핸드마이크로 모금을 하고 있었고, 중국북방선교회 역시 핸드마이크로 『라디오와 성경책을 300만 조선족에게 보내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인도지나선교회, 교정복지선교회, 학원선교회, 교회개척선교회가 곳곳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모금을 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이삭교구와 교회학교 유치부에서 회원모집을 위한 작은 공연을 벌이고 있었다. 또 청년회원들은 해외 단기 선교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샌드위치와 티셔츠 등을 팔고 있었으며 오산리 기도원에서 열리는 여름성회에 참가하라며 聖會 포스터가 새겨진 휴지를 나눠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워낙 복잡한지라 迷兒(미아)가 생길 위험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성전 1층에 미아보호소와 분실물센터가 있었다. 담당자에게 물어 보았더니 평균적으로 매주일 10여 명의 미아가 발생해 부모를 찾아준다고 했다. 분실물 센터에는 성경책 수십 권과 수첩, 지갑 등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열성 信者 10만명
여의도순복음교회는 6월 말 현재 목사와 전도사 677명, 해외선교사 629명, 장로 1335명, 권사 8708명, 안수집사 3698명, 서리집사 8만6445명과 일반 평신도로 구성되어 있다. 70만 성도 가운데 열성 信者(신자)는 과연 얼마나 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교회 관계자는 적어도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10만명은 열성 신자가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세계적으로 모델이 되고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구역조직을 이끌고 있는 지역장과 구역장은 모두 3만명이며 그 가운데 남성들만 참석하는 남성구역의 책임자는 6000명이다. 또한 趙鏞基 목사의 국내외 성회를 지원하는 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원은 5만여 명에 이른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58년 단 5명으로 시작해 그해 150명으로 늘어난 이래 비약적 발전을 거듭해 1979년에 10만명, 1981년에 20만명, 1984년에 40만명, 1985년에 50만명, 1990년에 60만명, 1992년에 70만명을 돌파했다. 1992년도 이래로 숫자가 늘지 않는 것에 대해 趙鏞基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수용할 장소가 없어요. 장소만 있으면 聖徒가 더 늘어날 수도 있을 겁니다. 또 1990년부터 지금까지 12개 支聖殿(지성전)을 독립시켰어요. 지금까지 여의도순복음교회가 팽창에 관심이 있었다면 앞으로는 많은 교회를 개척하는 가지 치기에 신경을 쓸 작정입니다. 목사를 훈련시켜 개척 자금을 대준 다음 우리 교회가 속해 있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이하 기하성) 교단으로 소속시킬 예정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99년까지 국내에 86개의 교회를 세웠는데 올 상반기에만 11개를 창립했다. 올해 말까지 30개의 교회를 세우고 2001년에 100개, 2002년부터 매년 200개씩 최대 5000교회까지 세우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趙鏞基 목사는 『목사가 되어 일평생 한 개 이상의 교회를 개척하고 천국에 가는 것이 목사로서 최대의 명예요 보람』이라고 말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교육을 받고 개척을 나가는 목사들은 1억원을 지원받고 3년 내에 좋은 실적을 올리면 추가 지원을 받는다.
교인 가운데 호남 출신이 70%
70만명이라는 것도 이제 무의미한 숫자가 되고 있다. 趙鏞基 목사의 설교는 支聖殿 외에도 기하성 소속 150군데 지방 교회와 일본의 다섯 군데 교회에 동시 위성으로 중계된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중계권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150개 교회는 한국통신에 위성수신료만 지불하면 된다. 매주 趙鏞基 목사 설교 테이프가 3000개씩 팔려 나가고 있으며 趙鏞基 목사의 2부 예배 실황은 인터넷(www.fgtv.com)으로 全세계에 생중계되고 있다. 또 趙鏞基 목사의 설교 전문이 수록되어 있는 전도지 「행복으로의 초대」를 매주 50만 부씩 발행한다. 趙鏞基 목사의 설교는 미국 16개 TV 채널, 볼리비아 케냐 등 9개국의 10개 TV채널, 국내 기독교TV와 CTV, 국내 8개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되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어떤 사람들이 다니고 있을까. 趙鏞基 목사는 설교 가운데 『나는 경상도 사람인데 우리 교회는 전라도 사람이 70%다. 우리 교회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정치권에서는 왜 영호남이 화합을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호남 사람이 많은 이유를 趙鏞基 목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1960년도부터 한 20년 동안 전라남북도로 부흥회를 많이 다녔어요. 이상하게 경상남북도에 가서는 환영을 못 받았어요. 개발年代에 전라도 사람들이 서울로 많이 올라왔는데 그때 나를 기억하고 우리 교회로 왔던 게 원인이 된 거 같아요. 우리 교회는 서민층이 많아요. 한창 근대화를 할 때 가난한 사람들이 의지할 데 없어서 교회로 많이 왔지요』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성도가 많은 데 비해 드러나는 재벌도 없고 정치인이나 고위공무원이 많은 편도 아니다. 5만명의 실업인선교연합회 회원들도 대개 중소기업을 운영하거나 자영업자들이다. 대다수가 서민이지만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제2성전에 출석하는 3만여 명의 聖徒들은 상류층에 高학력이다. 제2성전 담임목사로 시무하다가 여의도로 옮긴 이태근 부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인근에 소망교회, 사랑의 교회, 광림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들과 비슷한 숫자의 聖徒가 출석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워낙 많은 성도가 출석하다 보니 비율로 따졌을 때 상류층이 적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제2성전을 비롯한 각 성전의 하이클래스 聖徒 숫자를 합치면 강남의 대형교회들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살아선 자서전 안 쓴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은 국내외 대학에서 논문 주제로 자주 채택되고 있다. 국회도서관에 논문이 한 편이라도 있는 목사는 몇 명 안되었는데 趙鏞基 목사를 연구한 논문은 7편이나 있었다.
趙鏞基 목사의 저서 「교회성장학」과 「구역조직」은 해외 대부분의 신학교에서 교재로 채택하고 있다. 趙鏞基 목사의 저서 수십 권이 15개 국어로 번역되어 세계 각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趙목사가 1970년대에 영어로 쓴 「4차원의 세계」는 5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이다. 국내에는 3년 전에서야 번역되었는데 10만 부 이상 팔렸다. 지금까지 해외에서 판매된 趙목사의 책은 모두 700만 권으로 추정된다. 인세 수입이 엄청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趙鏞基 목사는 뜻밖의 답변을 했다.
『바보같이 인세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복음 전한다고 하길래 출판하라고 도장을 찍어 주었지요. 나중에 잘 아는 국제변호사가 인세를 받느냐고 묻길래 그런 거 안 받는다고 하니까 안타까워하면서 여기저기 알아보더군요. 그쪽에서 인세를 못 받도록 서류를 완벽하게 해놓아서 받을 수 없게 되었지요. 미국 플로리다州에 있는 출판사는 건물도 짓고 부자 됐어요』
「4차원의 세계」를 제외한 다른 책에 대해서는 몇 년 전부터 인세를 받기 시작했는데 현재 매년 5만 달러 정도가 인세로 들어오고 있다. 미국 출판사에서 자서전을 출간하자며 200만 달러를 미리 주겠다고 제의했지만 趙鏞基 목사는 거절했다.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해 쓰려면 자연히 미화하게 되어 거짓말이 됩니다. 내 얘기는 내가 죽고 난 다음 아들들과 제자들에게 내 약점을 다 들추어내서 다른 사람이 써야지요. 또 우리 교회 교인들이 많기 때문에 자칫 자서전을 잘못 쓰면 내가 우상화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살아 생전에 자서전을 쓰지 않을 작정입니다』
불과 한 달 전에 미국 여류 작가가 趙鏞基 목사의 일대기를 쓰겠다며 6개월 동안 밀착취재를 하고 돌아갔다. 1974년부터 해외 신학생들이 여의도순복음교회 성장비결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 來韓해 趙鏞基 목사를 따라다닌 일이 많았다.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자세한 취재를 해야 하니까 굉장히 사람을 피곤하게 해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아예 응하지 않기로 했어요』
세계가 관심을 기울이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 비결에 대해 趙鏞基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추어 목회했습니다. 희망을 주는 메시지와 定罪(정죄)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절망을 안고 가슴앓이를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희망의 복음을 주어야 합니다. 또 기도해서 성령 체험을 하고 하나님을 가슴속에서 만나라고 강조합니다. 그와 함께 평신도 훈련을 잘 해서 구역을 조직하고 그들을 통해 전도를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언제나 꿈이 큽니다. 호랑이를 그리려고 해야 고양이라도 그립니다. 主의 종은 큰 꿈을 가져야 하며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趙鏞基 목사는 과연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 몇 명이 모이는 교회를 꿈꿨을까?
『처음에는 300명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점점 교인이 늘어나 교인 숫자에 비례해 행정조직도 만들어 나갔지요. 우리 교회보다 더 큰 교회가 없기 때문에 모델로 삼을 데가 없었어요. 죽도록 일하다 보니 오늘날까지 왔지요』
가장 강력한 영적 지도자
美 풀러 신학교 피터 와그너 박사는 『한국의 趙鏞基 목사는 20세기 후반 들어 가장 강력하게 세계 교회에 영향을 끼치는 靈的(영적) 지도자 중의 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교회성장연구소장 명성훈 목사는 趙鏞基 목사의 리더십을 교회성장형 리더십이라고 규정하면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얻은 능력, 목표를 향한 꿈과 비전, 깨어짐과 자기 항복, 탁월한 의사소통, 적절한 위임,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리더십, 강력하면서도 섬김이 있는 리더십』이라고 부연했다.
국제신학연구원장 이영훈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 원인을 『강한 긍정적 메시지, 강력한 신유 사역, 기도원 운동, 성령세례와 방언, 구역모임, 대중매체 이용』이라고 분석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발전에 오순절운동, 성령운동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데 이는 理性 중심의 思辨的(사변적) 경향으로 기운 현대 신학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성령의 체험, 성경 중심의 말씀교육, 실천, 선교를 강조하는 운동』이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성경학교 교재에 「성령」을 「하나님이시며 인격자이신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능력으로 도우신다」라고 풀이해 놓았다.
미국 리젠트 신학대학원장 빈슨 사이난 박사는 1998년에 발표한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세계 교회에 끼친 영향」이라는 세미나 발제문 결론을 이렇게 내렸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교회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공정한 것이다. 趙鏞基 목사의 세계적인 사역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이야기는 전세계에 전파되고 있다. 수백만의 기독교인들에게 이 교회는 이 세대 안에 세계를 복음화할 수 있다는 희망의 횃불로 서 있다. 기독교 성장의 중심과 영향력은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동되고 있으며 한국이 주도할 것이다. 이것은 주로 趙鏞基 목사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강력한 영향에 의해 나타날 것이다』
趙鏞基와 朴正熙의 「하면 된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교회 성장 비결을 크게 둘로 나눈다면 趙鏞基 목사의 설교능력과 70만명을 이끌어 가는 경영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은 1996년에 기독교 110년 역사 가운데 한국교회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설교가 10명을 선정하여 설교 연구를 시작했는데 첫해에 趙鏞基 목사의 설교를 분석했다.
선정 이유를 『1960, 70년대 소외된 민중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이들에게 희망을 제시하는 「민중치유 설교」와 성령의 내재적 은사를 강조하는 「은사주의 설교」의 모델이 됐다. 질타보다는 치유와 희망을 강조한 그의 설교는 명쾌하며 알기 쉽다는 점에서 많은 설교가들의 연구 대상이 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오순절 운동과 趙鏞基 목사의 신학」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분석한 서울신학대 박명수 교수는 『오순절운동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있는 중생, 성령세례, 신유, 재림 가운데 순복음교회는 축복의 복음을 첨가했다. 趙鏞基 목사는 한국 교회가 일반적으로 강조하는 중생과 재림을 제외한 「성령 충만, 신유, 축복」을 강조했으며 거기에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형통하고 육체적으로 건강한 것」을 강조했다고 분석했다. 박교수가 요약한 것이 여의도 순복음교회 교리인 「오중 복음과 삼중 축복」이다. 박교수는 趙鏞基 목사의 설교가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을 이렇게 밝혔다.
『한국인의 축복의 개념은 영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물질적이고 현세적이다. 한국인들이 종교를 찾는 일반적인 원인이 주로 이런 물질적인 것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趙鏞基 목사의 물질적인 성공에 대한 강조는 朴正熙 대통령이 등장해서 경제적인 번영을 강조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즉 趙鏞基 목사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메시지와 朴正熙 대통령의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는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趙鏞基 목사의 메시지는 朴正熙 대통령의 구호와 같이 번영을 향해서 나아가는 한국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여의도 순복음교회 金振永(김진영) 장로는 趙鏞基 목사 설교의 강점을 이렇게 설파했다.
『趙목사님은 예수님의 행적을 설교할 때 짧은 시간에 평이한 언어로 청중들에게 2000년 전 바로 그 현장에 있었다는 실감을 느끼게 합니다. 또 설교 주제가 선명합니다. 1971년 대위 시절부터 서대문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때 너무 聖徒들이 많아서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멍석을 펴놓고 앉아서 설교를 듣는 일이 많았어요. 설교를 필기할 상황이 안되어 기억했다가 집에 와서 설교를 기록했는데 설교 요점을 그대로 다 기록할 수 있었지요.
요즘 젊은 목사님들이 잡다한 세상 지식을 동원해서 설교를 하는데 趙목사님은 성경만 인용하면서 명확한 메시지를 인상깊게 전합니다. 내가 지금까지도 불가사이하게 생각하는 게 한 가지 있어요. 趙목사님의 설교를 수없이 들었는데 지금까지 예화가 한번도 중복된 적이 없어요. 대개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예화로 드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되더군요. 趙목사님을 만나서 어떻게 그렇게 청산유수같이 말이 나오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러자 「오래 해서 숙달되어 그렇지요」하고 겸손하게 대답하더군요.
그런데 어느 날 趙목사님이 쓴 「나는 이렇게 설교한다」라는 책을 보고 비결을 알았어요. 모든 설교를 준비할 때 30분에서 3시간 동안 기도를 하고, 말씀을 전하기 어려운 지역에 가서는 설교를 준비한 뒤 다시 30분에서 3시간 기도를 한다고 기록되어 있더군요. 그것이 곧 학력과 직업, 지위, 피부색깔이 다른 사람을 모두 감동시키는 이유라는 걸 알았지요』
한나라당 16대 의원 朴明煥(박명환) 장로는 40대 중반에 몸이 아픈 어머니를 따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발을 들여놓았다.
『첫날 교회에 왔을 때 趙목사님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를 하라고 하자 모두들 소리 높여 기도하더군요. 그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고 교회에 계속 나오게 되었지요. 우리 교회는 모일 때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데 그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전에 趙목사님께 「천당 가는 기도나 하지 당신이 뭔데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느냐」는 항의 전화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趙목사님이 「당신이 대통령이 되어도 나는 기도하겠다」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매주 2부 예배 때 맨 앞에서 예배드리고 장로회에 참석하지요. 설교를 들을 때마다 힘이 나고 좀 힘든 일이 있으면 목사님께 기도를 받지요』
선거 때 여의도순복음교인들의 도움을 받았느냐고 묻자 『교인의 60% 이상이 전라도 사람』이라며 웃었다.
蛇足 없는 설교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다른 교회에 다니면서 설교만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대한교육협의회 李賢淸 사무총장(소망교회 출석)은 직장이 여의도여서 종종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일부러 찾아가서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기독교 TV를 통해서도 趙목사님 설교를 듣지요. 趙목사님 설교는 대단히 심플하다는 데 강점이 있어요. 蛇足(사족)이 없이 성경 중심적으로 말씀하시지요. 명확하게 제목을 달아 설교하시기 때문에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 매번 엑기스를 뽑아서 전달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시장 가는 주부의 마음으로 설교 준비』
40년 동안 속사포처럼 빠른 어조로 설교를 해온 조목사에게 설교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됐지만 대답은 정반대였다.
『설교 준비가 가장 힘듭니다. 우리 어머님이 매일 「오늘 저녁 뭐해 먹지? 시장에 가도 살 게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성도들에게 영적인 음식을 대접해야 하는데 걱정이 태산이지요. 성령의 도우심을 바라며 항상 기도를 합니다. 크고 작은 절망을 갖고 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환희를 주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장 가는 주부의 마음으로 준비를 합니다. 음식은 만들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맛이 있어야 합니다. 설교가 재미있어야 하고 들을 때 피곤하지 않아야 합니다. 내용과 재미가 잘 합쳐져야 하지요. 구역 조직은 교회 성장의 한 방편이고 정말 중요한 건 설교입니다. 아무리 외진 곳에 있어도 음식이 맛있으면 다 찾아갑니다』
趙鏞基 목사에게 내용과 재미가 합쳐진 설교 비법을 공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젊었을 때 거울 앞에서 제스처도 연습하고 녹음을 해서 음성의 크기도 조절하고 싫은 말투를 바꾸기도 했죠. 내용을 피곤치 않게 듣게 하기 위해서는 아주 쉬운 말을 써야 합니다. 나는 경상도 사람이기 때문에 억양이 문제였죠. 처음 온 사람들은 말을 못 알아들어 애를 많이 먹지요. 지금도 완전하진 않지만 표준어로 바꾸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어요. 국어 사랑하는 사람들이 大교회 목사가 어떻게 사투리를 쓰느냐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죠. 제일 어려운 것은 예화를 수집하는 일입니다. 예화는 조미료예요. 사람 만날 때나 신문이나 잡지를 읽을 때 특이한 게 있으면 메모해 두었다가 적절하게 사용합니다』
이태근 부목사는 美시카고 순복음교회에서 17년간 시무하면서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신학박사이다.
『저는 한세대학교에서 스피치 연구를 강의합니다. 趙목사님 설교를 들으면 스피치 법칙에 꼭 맞게 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음률 묘사 강조 같은 것이 배운 사람보다 더 정확합니다. 천부적으로 타고났다고 봐야겠죠. 그리고 영어 어휘구사력이 굉장히 뛰어납니다. 미국에서 영어로 설교할 때 「뜨겁다」를 「화로를 엎어놓은 것 같다」고 표현한다든가 「눈물이 많이 났다」를 「국수가락 뽑듯 눈물을 흘렸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詩人이며 국민일보 종교부장을 지낸 김상길 청년국장은 색다른 분석을 했다.
『趙목사님이 세 가지 슬픔을 겪었기 때문에 설교를 잘한다고 봐요. 민족의 슬픔과 개인적 고난과 역경, 민중의 아픔을 골고루 알기 때문이죠. 趙목사님은 마음이 상당히 여리고 동정심이 많아요. 설교자에게 감수성이 풍부한 것은 장점으로 작용하죠. 현대는 쌍방향의 시대인 만큼 聖徒들과 함께 울고 웃는 것은 상당히 큰 장점이죠』
취재에 응한 목사들이 공통적으로 부럽다고 말했던 것은 趙鏞基 목사의 설교가 100명 앞에서든 100만명 앞에서든 위력을 발휘한다는 점이었다. 또 아무리 적은 숫자여도 최선을 다해 설교한다고 한다. 선교국장 김용준 목사는 趙목사는 설교를 하기 전에 극도로 말을 아끼고 긴장한다고 전한다.
『설교를 하기 전에는 어떤 일도 하지 않습니다. 해외집회를 가셨을 때 비행기를 오래 타고 와서 체력이 떨어진 것 같아 혈관주사를 맞으라고 권했지만 행여 주사가 잘못되어 설교를 못할 수도 있다며 맞지 않으시더군요』
이태근 목사가 시카고에 있을 때의 얘기이다.
『공항에서 나와 제 차에 타자마자 기도를 하시더군요. 교회에 도착할 때까지 기도를 하시고 사사로운 얘기를 하지 않으세요. 설교 끝난 뒤 밥을 먹을 때 비로소 어떻게 지냈는지 자녀들은 잘 있는지 물어 보시더군요』
24시간 일하는 체제
趙鏞基 목사는 집무실 옆 공간을 집으로 꾸며 아예 24시간 일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지난 6월 일정을 알아보았다. 6월 한 달 동안 2週는 아프리카 잠비아, 가봉,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성회를 인도했고 2週만 국내에 있었다. 그동안 집무실에서 안수기도 받는 성도를 포함해서 50명을 만났고 회의를 세 건 주재했다. 기도처와 他 교회를 찾아 여섯 번 설교했고 두 件의 주례를 했다. 6월4일 여의도 한강 둔치에서 통일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했고 「月刊朝鮮」과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두 번 설교했다.
趙鏞基 목사의 국내 담당 비서 정헵시바 전도사는 趙목사가 거의 쉬지 않고 일한다고 일러주었다. 일이 많은데다 기도를 많이 하기 때문에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교회內 각 분과위원회의 결재 서류도 많다. 또 趙목사에게 안수기도를 받고 싶어하는 평신도들을 위해 매주 수요일마다 20명씩 만난다.
『각 교구장님들이 사인을 해서 환자들을 보내지요. 병이 위중한 환자들 순서대로 옵니다. 가끔 성도님들이 병원이나 공장을 오픈할 때 시간이 나면 참석하시지요. 또 어려운 일이 생겼거나 중한 병에 걸렸을 때 尋訪(심방)을 요청하면 찾아가시죠. 가능한 한 외부 일을 줄이고 설교와 기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십니다. 한 달의 半은 늘 외국에 나가시기 때문에 시간이 빠듯합니다. 그래서 새벽 일찍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일하시죠』
趙목사 집무실로 도움을 요청하는 곳은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단체, 일반 기관 등 다양하다. 매일 수십 통의 편지가 오는데 趙목사가 읽고 체크하여 내려보내면 장로회 구제위원회나 각 선교회, NGO 등에서 심사하여 가능한 것은 도움을 준다. 趙鏞基 목사가 국내 행사에 참석할 때면 남선교회 보호실 회원들과 장로 안전위원회 회원 10여 명이 늘 수행한다. 이들은 보수도 받지 않고 趙목사가 가는 곳은 어디든 따라나선다. 정헵시바 전도사는 옆에서 지켜본 趙목사를 이렇게 평했다.
『성실하고 시간 관리에 철저하며 정직하고 아주 청결하세요. 그리고 달력 뒷장을 메모지로 쓰실 정도로 절약 정신이 강해요. 집무실 전등도 다 켜지 않아요. 비서들과도 자주 접촉할 시간이 없어 書面(서면)으로 주로 지시하시죠. 무엇보다도 바쁜 목사님 뒤에는 김성혜 사모님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여의도 교회를 지을 때 사례금을 드리지 못하자 사모님이 피아노 교습을 해서 생활했던 건 유명한 일화죠』
목사와 장로가 협력과 견제
국제신학연구원 이영훈 목사는 趙鏞基 목사를 탁월한 경영자라고 평했다.
『趙鏞基 목사님은 적재적소에 전문인을 배치하고 善意(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죠. 또 장로와 교역자가 협력하면서 견제하는 관계를 만들었어요. 장로들이 국회 기능을 하고 있다면 교역자들이 행정기능을 담당하고 있죠.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수많은 소그룹이 모여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성장해왔죠』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교회행정은 대형교회의 모델이 되고 있다. 모든 감시기능은 49개의 분과로 세분화되어 있는데 장로회가 각 위원회를 맡고 있다. 17개 대교구는 여러 명의 小교구장 아래 지역장과 구역장이 있는데 大교구에도 역시 장로가 배치되어 있다. 교회학교, 청년회, 교회 부속기관 등을 목사와 장로가 함께 담당해 한쪽이 獨走(독주)할 수 없는 체제로 만들었다. 장로회 김복우 회장은 대화와 타협으로 42년간 한번도 분열이 없었으며, 그 사실에 모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크게 봤을 때 목사와 장로가 견제를 하고 400명의 직원이 지원을 하는 형태이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교회 각각의 조직이 마치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얽혀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男선교회만 해도 마치 하나의 회사처럼 조직이 방대하다. 예배 질서 유지에서부터 외부 교통정리까지 모든 봉사를 맡는 男선교회 회원들은 똑같은 제복을 입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2300명의 회원들은 보통 새벽 5시에 와서 저녁 5시까지 봉사하는데 여러 교회에서 봉사 시스템을 배우러 올 정도로 조직적이다. 오후 5시 이후에는 250명의 전도실 회원이 서울 시내 병원과 터미널에 나가 전도를 한다. 男선교회장 丁奎泰(정규태) 장로는 이렇게 전한다.
『연합집회가 있을 때 우리 회원들이 파견을 많이 나갔죠. 신입회원들이 들어오면 교육을 시키고 일정기간 동안 연수를 받게 됩니다. 철저한 준비를 한 뒤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나가는 거죠』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단일교회로서 유일하게 1992년도에 여의도광장을 신도들로 가득 메운 기록을 갖고 있다. 매년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를 실시하는데 스탠드를 어려움 없이 메운다. 국내외 교회는 구역조직뿐만 아니라 이런 행정조직에도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男선교회의 흰색 상의, 女선교회의 파란 치마, 구역장의 빨간 가방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3대 트레이드 마크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취재하는 동안 거대하면서도 빈틈없는 조직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감동적인 것은 장애인 대교구였다. 장애인 대교구는 지체교구, 청각교구, 시각교구로 구성되어 있는데 600여 명의 지체장애인과 260명의 청각장애인, 60명의 시각장애인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예배를 드린다. 趙鏞基 목사에게 70만 성도를 이끌고 가는 데 특별한 비결이 있는지 물어 보았다.
『일을 나 혼자 하지 않고 전부 전문인에게 맡겼습니다. 1964년에 교회에서 설교하다가 쓰러진 일이 있는데 그때 일을 나누어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복음 전하는 일만 하지 간섭을 하지 않습니다』
취재에 응한 사람들은 趙鏞基 목사는 일을 맡긴 사람에게 재량권을 주며 건의 사항에 대해 귀를 기울이는 型이라고 말했다.
해외파송 선교사 629명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 비결은 全세계적으로 사례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趙鏞基 목사는 해외성회를 가면 낮시간에는 주로 교회지도자들을 상대로 교회성장세미나를 실시하는데 이 세미나에 천주교 신부들까지도 참여하고 있다. 때로는 회교도들도 참석한다. 뿐만 아니라 개최국 인근의 국가에서도 참가할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76년에 국제교회성장연구원(이하 CGI)을 개설했는데 매년 가을 서울 본교회에서 CGI 대회를 한다. CGI는 세계 21개국 67명의 목회자들이 理事를 맡고 있다. 미국 수정교회 로버트 슐러 목사, 풀러 신학교 피터 와그너 박사도 이사이며 한국인으로는 수원중앙침례교회 金章煥 목사가 유일한 이사이다.
趙鏞基 목사가 1964년부터 지금까지 53개국에서 250차례의 세미나와 집회를 열었는데 연인원 750여만명이 참석했다.
직접 여의도순복음교회 예배를 참관해 배우고 싶다는 요청이 많아 한국에서 매년 10월 교회 성장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 17차 대회가 열렸는데 6박7일의 일정에 50여개국에서 1000여 명이 참가했다. 참가비는 100달러이며 강의와 함께 여의도순복음교회 각종 예배 참관, 구역예배 참관, 부속시설 참관, 오산리 기도원 금식 체험 등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모든 강의는 영어로 진행되는데 영어권이 아닌 나라 목회자는 통역을 데리고 와서 강의를 들을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서울대회에도 매년 10여 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등록한다. CGI 이민숙 부장은 교회 성장세미나에 참가한 뒤 교회가 성장되었다는 편지가 많이 온다고 일러주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현재 51개국에 629명의 선교사를 派送(파송)했으며 509개의 교회를 세웠다. 선교사 가운데 500여 명은 한국 교민들을 위한 선교를 하고 100여 명은 원주민을 위한 선교를 하고 있다. 또 해외에 일곱 군데 신학교를 세워 원주민 목사를 배출하고 있다. 한국에서 派送한 선교사는 대략 6000명으로 추산되는데 그 가운데 10%를 이 교회에서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새마을운동과 한국 근대화 소개
趙鏞基 목사 해외성회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방송국인 영산인터넷방송국(이하 FGTV)에서 촬영해 주일 예배 시간에 약 10분에 걸쳐 방영한다. 趙鏞基 목사의 해외聖會에 16년 동안 동행한 FGTV 홍성경 차장은 이렇게 말한다.
『趙목사님 해외성회에 따라다닌 덕분에 일평생 가볼 수 없는 곳을 많이 갔지요. 인도네시아의 이리안자야, 인도 마드라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피지, 코스타리카, 아랍에미리트, 과테말라, 사할린, 미얀마 등 셀 수 없어요. 인도 마드라스 집회는 바닷가에서 했는데 연인원 100만명이 넘게 모여 양쪽으로 눈을 돌려봤을 때 인파의 끝이 보이지 않았어요.
브라질에서는 무려 150만명이 모였지요. 이번 아프리카 가봉에 갔을 때 공항에 환영객이 3000명이나 나와 깔려 죽을 뻔했어요. 제3세계 집회 때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소경이 눈을 뜨는 기적이 일어나고 한 번에 몇천 명씩 일어나 예수를 믿겠다고 약속 합니다. 회교권 국가에서 집회를 할 때는 공항에서부터 군인들의 경호를 받습니다. 대통령 초청으로 갈 때가 많아 목사님은 국빈 대우를 받죠』
지난 6월에 趙목사를 초청한 잠비아 칠루바 대통령은 민주화 운동으로 13년간 옥살이를 했는데 감옥에서 趙鏞基 목사가 쓴 「4차원의 세계」라는 책을 읽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1994년 스웨덴 성회 때 찾아와 趙鏞基 목사를 만난 뒤 집회를 요청해 지난 6월 집회가 이루어졌다. 잠비아의 경우 IMF 때 우리 공관이 철수하는 바람에 국교 관계가 끊어졌는데 그후 외무부에서 다시 관계를 개선하려고 했으나 잠비아측에서 거절해 이루어지지 않았다.
칠루바 대통령은 이번 집회에 참석한 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 朴海淑(박해숙) 회장을 명예대사로 임명했다. 趙鏞基 목사는 제3세계에서 자신을 초청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제3세계는 대개 백인들의 지배를 받아 그들에게 반감이 크죠. 한국은 자기들처럼 똑같이 못살았고 식민 지배를 받은 적이 있어서 호감을 갖는 것 같습니다. 특히 1950년대에 GNP 60달러였던 우리나라가 1만 달러의 경제국으로 성장한 것에 대단히 관심이 많습니다』
홍성경 차장은 趙鏞基 목사가 설교를 할 때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예를 들어 설명하는 일이 많다고 일러준다.
『趙鏞基 목사님은 한국의 근대화는 한국인의 근면성과 기독교 정신이 결합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새마을운동을 자주 설명합니다. 「우리는 새벽마다 새벽종이 울렸네라는 노래를 부르며 볏집으로 만든 지붕을 슬래브로 바꾸고 길을 넓혔다며 당신들도 할 수 있으니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열심히 하면 반드시 잘살 수 있다」는 얘기를 들려줍니다. 그와 함께 朴正熙 대통령의 근대화 과정을 설명하기도 하죠』
세계 부흥강사 「빅3」
홍성경 차장은 해외성회 때 趙鏞基 목사의 설교는 매우 단순해 이해가 쉬우며 역동적이고 감동적이라고 평했다.
『趙목사님 교회 성장세미나에 참석해 몇십 명에 불과한 교회가 몇천명으로 성장한 예가 많습니다. 독일의 미션 미치온베르크 교회는 5000명으로 성장했는데 그 교회 뮬러 목사님은 趙鏞基 목사님을 신앙의 아버지로 모시고 있습니다. 趙목사님이 그 교회에 가서 두 번 집회를 하셨는데 구역장 가방, 헌금 주머니, 봉사자들의 옷, 넥타이까지 비슷하게 만들어서 마치 여의도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趙鏞基 목사의 해외성회에는 평균 15명의 장로들이 동행하는데 이들은 대체로 自費(자비)를 들여 수행한다. 잠비아, 가봉,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2주간 성회를 할 때 1인당 항공료와 숙박비가 1000만원 정도 소요되었다고 한다. 제3세계 지역으로 갈 때는 연예인선교회원들과 의료선교회원들도 동행하는데 한국문화를 알리기 위해 부채춤, 북춤 등의 공연을 하고 때때로 중창단들이 함께 동행해 성가를 부르기도 한다. 물론 이들도 모두 自費를 들여 따라 간다. 이번 아프리카 성회에도 의료선교회 소속 안과·치과·내과 의사 12명이 동행해 1200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지난 3월 미얀마 성회에도 의료선교회 회원들이 동행했다. 박해숙 장로의 얘기이다.
『목사님 따라 가면 호텔하고 집회 장소만 왔다갔다 하는 바람에 그 나라가 어떻게 생겼는지 관광지가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목사님은 해외성회 때 일체 관광을 안하고 오로지 숙소에서 기도하고 말씀 준비만 합니다. 체력단련을 위해 호텔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거나 잠깐 산책하시는 게 전부입니다. 이번에 저녁을 안 드시고 예배를 인도한 날이 있었는데 집회가 끝나고 호텔에 돌아와서 배가 고프시다며 라면을 끓여 달라고 하셨어요. 물을 너무 많이 넣는 바람에 늦게 가져갔더니 잠드셨더군요. 지난번 아프리카 집회 때는 먹을 게 마땅하지 않아서 토스트에 고추장을 발라서 드셨어요』
아프리카는 숙식이 문제가 될 때가 많은데 이번에는 극성 순복음 교인들이 음식 재료를 갖고 따라가 趙목사에게 하루 한끼는 한국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선교국장 김용준 목사는 세계 부흥강사 「빅3」 가운데 趙鏞基 목사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다고 말한다.
자로 재지 않고 바로 실천한다
『세계 3대 부흥강사라면 흔히들 독일의 본케 목사, 미국의 베니힌 목사, 한국의 趙鏞基 목사를 꼽습니다. 두 목사님은 주로 미국과 유럽에서 집회를 하지만 趙鏞基 목사님은 全세계 안 가시는 곳이 없습니다. 趙鏞基 목사님의 특징은 全세계 어디를 가나 결신의 시간을 갖고 신유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선진국 후진국 가릴 것 없이 절대절망에서 절대희망을 찾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죠』
FGTV 박성수 차장은 예배 시간에 방영되는 해외성회 실황을 교인들이 매우 좋아한다고 말한다.
『趙鏞基 목사님 해외성회에 수십만 명이 모였고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해도 눈으로 보지 않아 성도들이 실감을 못했죠. 1985년부터 방송팀이 함께 나가 생생한 화면을 성도들에게 전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 방영하던 날 교인들이 감격적인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3세계에서 수천 명이 결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교회 교인들이 선교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되었죠. 趙목사님이 외국인들 앞에서 영어와 일어로 유창하게 설교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고 목사님을 더 존경하게 되었죠. 특히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와 일본에 가서 목사님이 외국어로 유창하게 설교를 했을 때 그 사람들이 감동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성도들이 자부심을 많이 느낍니다』
70만 성도를 하나로 결집하는 데는 「순복음스크린」과 「순복음가족신문」이 한몫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우리나라 방송국은 1980년부터 컬러방송을 시작했는데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74년에 부속성전으로 예배를 중계하면서부터 컬러로 방송을 실시해 화제가 됐었다.
趙鏞基 목사는 원래 방송에 뜻이 많아 라디오 방송국과 텔레비전 방송국 설립을 시도했으나 결국 2년 전 영산인터넷방송국 설립에 그쳐야 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방송 시설이 우수하다는 것은 방송가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趙鏞基 목사는 60대 중반인 지금도 여전히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고 말투가 빨랐다. 또 설교 중간중간에 성경을 안 보고 줄줄 외웠다. 젊었을 때는 성경 한 장을 다 외울 정도로 기억력이 좋았다고 한다. 趙鏞基 목사의 성격이 어떤지 궁금했다. 교회성장연구원장 명성훈 박사는 趙鏞基 목사를 이렇게 평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강력한 확신, 무섭게 자기 관리와 개발을 하는 점, 한국교회에서 보기 드물게 제자를 키운 점, 일찌감치 글로벌 목회를 시작한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습니다. 성격은 소탈하고 단순하며 소박한 편입니다』
국제신학연구원장 이영훈 목사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자로 재지 않고 바로 실천합니다. 만약 이리저리 재고 생각이 많은 분이었다면 서대문에서 허허벌판 여의도로 교회를 옮기지 못했을 겁니다. 또한 국민일보를 설립하지도 않았겠지요. 성격이 단순하면서 담대하며 배짱이 있습니다. 한세대학교에 240억을 투자해 정상으로 올려놓은 것도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답변에 응한 사람들은 솔직하다는 것과 약속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점, 집회 시작 30분 전에 집회 장소에 도착해서 준비하는 점, 기도를 많이 하는 점, 엄청나게 노력한다는 점과 영어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누구나 거론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선교국장 김용준 목사는 『해외성회 가면 현지 교단에서 보디가드를 배치해 주는데 집회가 끝날 때 모두 안수기도 해주고 우리 교회 마크가 새겨진 시계를 나눠줍니다. 큰 일을 하면서도 작은 일을 안 놓치죠. 옷을 서너 벌 갖고 가서 갈아입고는 돌아올 때 현지 선교사들에게 다 나눠주고 딱 한 벌만 입고 돌아오십니다』라고 말했다.
청년국장 김상길 목사는 제자들에게도 늘 노력을 강조한다고 일러주었다.
『지금도 자동차를 타면 영어를 공부하십니다. 목사님 영어 발음을 보면 아주 한국식 발음이 있는가 하면 완전 미국식 발음이 있어요. 그건 독학으로 공부한데다 지금까지도 공부를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들은 누구나 한 달에 책 두 권을 읽고 이메일로 독후감을 써서 趙목사님께 제출해야 해요. 얼마 전에는 일본 영화 「철도원」을 보고 감상문을 써서 내라는 숙제를 내셨어요』
趙鏞基 목사의 단점으로 마음이 여린 점을 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눈물로 호소하면 그냥 용서해 주고 사람을 쉽게 믿어 속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신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목회를 시작해 순진한 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 10년 이상 출입한 국민일보 金武貞(김무정) 기자는 趙鏞基 목사를 『새로운 것을 찾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한 군데 安住(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분이죠.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제대로 홍보가 안되었을 뿐 기독교 단체에서도 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엘림복지타운 같은 대규모 복지시설을 마련한 것과 NGO를 통해 북한을 지원하는 일, 오래 전부터 해외 각국의 구호활동한 것 등 한 일이 많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오늘에 이르기까지에는 기성교단의 배척과 이단 시비 등 시련이 많았다. 1983년 장로교 통합측에서 교리적 문제로 趙鏞基 목사를 사이비로 규정해 1994년 해제할 때까지 10년 이상 논쟁에 휘말려야 했다. 소속 교단인 기하성에서도 이단 시비를 걸어 한때 탈퇴했다가 시비가 일단락된 뒤 다시 들어갔다.
10년간 이단 시비
국민일보 종교부 金武貞 기자는 趙鏞基 목사가 이단 시비를 비롯한 여러 가지 고충을 겪은 것은 교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지 않았던 것도 한 가지 원인이라고 말한다.
『趙鏞基 목사님은 친목이나 교제 같은 데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아요. 교계연합 사업에 참여는 하지만 사람들을 사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스타일이죠. 성격이 단순하고 情이 많지만 맺고 끊는 게 정확해 친화력이 없는 편입니다. 다른 기존 보수 교단의 반발과 질시가 있었는데다 그런 성격 때문에 불이익을 보았죠. 급성장하는 동안 신학이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해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신앙은 있으나 신학은 없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이단 시비에서 벗어나고 확고한 신학적 기반을 갖게 된 것은 1979년에 국제신학연구원(이하 국신원)을 설립하여 부단히 신학연구를 해온 덕분이다. 국신원은 21명의 연구원과 20명의 스태프로 구성되어 있다.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원이 5명이며 현재 5명이 해외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국신원 외에도 해외유학파 목사들이 있는데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지원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거나 유학중인 사람은 20여 명에 이른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80년부터 유망한 사람들을 유학 보내 5년간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지원해 주고 있다. 해외 유학파 1호가 교회성장연구원 원장인 명성훈 목사.
그는 미국 풀러 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현재 교회성장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고 있다. 트리니티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국제신학연구원 원장 이영훈 목사와 함께 신학이론가로 외부에 알려져 있다. 이들은 모두 초등학교 때부터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다녔다. 프랑스 소르본느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국신원 부원장 김삼환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국신원에서 관련 책자도 펴내고 변증작업을 꾸준히 해 결국 사이비 시비가 철회되었습니다. 국신원에서는 趙鏞基 목사님의 설교를 분석하여 신학적 체계를 세워 나가고 있는데 지금은 어느 누구도 시비를 걸지 못합니다』
국신원은 정기적으로 국제신학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 9회를 맞았는데 보통 세미나를 한번 하려면 2000만원 가량의 경비가 소요되기 때문에 일반 교회나 신학교에서 엄두를 내지 못한다.
『국내에서 초청하기 힘든 분들을 많이 초청했지요. 세계적인 종교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하버드大 하비 콕스 박사, 리젠트 대학의 로드만 윌리암스 박사, 독일 튀빙겐 대학 명예교수 위르겐 몰트만 박사 등 저명한 분들을 초청했습니다. 세미나를 할 때 1000여 명의 신학자와 신학생들이 경청했습니다. 또 국내 신학교에서 우리가 초청한 인사를 손쉽게 초청해 연설을 듣기도 하지요. 趙鏞基 목사님은 신학연구에 관심이 많은 분입니다. 연구와 제자 기르는 데 투자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하비 콕스 박사는 세미나에 참석한 뒤 「영성. 음악. 여성」이라는 책에서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성령운동과 한국의 신앙운동을 전적으로 巫俗(무속)에 비교해 해석한 것에 대해 『자료가 없어 잘 몰랐다. 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몰트만 박사는 5월17일 여의도순복음교회 수요예배에서 『나는 희망의 신학자이고 趙鏞基 목사는 희망의 설교가로 우리는 서로 상통한다』고 말했다.
국신원에서는 교역자와 평신도 교육도 담당하고 있으며 趙鏞基 목사 설교집 출간도 하고 있다. 1980년에 평신도를 위한 성경학교와 성경대학을 개설했는데 지금까지 졸업한 사람이 5만2140명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매주 100여 명의 새신자가 등록을 하는데 그 가운데 50여 명은 8週 코스의 새신자 훈련을 받는다. 김삼환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성령운동뿐만 아니라 성경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무엇 하나 자랑할 게 없습니다』
趙鏞基 목사는 예배시간에 반드시 病者(병자)를 위한 기도를 하고, 기도를 한 다음 어떤 병이 나았다고 선포한다. 趙鏞基 목사는 신유기도를 하고 치유를 예언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많지만 결과가 증명하기 때문에 승복을 하죠. 해외성회 때는 즉석에서 나은 사람들이 앞에 나와 간증을 합니다. 처음 온 사람들은 서로 짜고 한다며 의심을 하죠. 나는 아파봤기 때문에 병을 앓는 사람들의 심정을 압니다. 앓는 사람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쳐 주어야겠다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치료에 대한 성경연구와 기도를 많이 합니다. 1964년경 내 몸이 더욱 쇠약해져 기도를 많이 할 때였어요. 예배시간에 교인들을 위해 신유기도를 하는데 마음속에서 누가 말하는 것처럼 암이 나았다, 관절염이 나았다는 확신이 들더군요. 나중에 확인을 해보니 정확히 일치했어요. 그때부터 담대히 치유를 예언했지요』
요즘은 건강이 어떤지 궁금했다.
『지금이 내 일생에서 가장 건강합니다. 10대에 폐병을 앓았는데다 6·25 때 잘 못 먹어서 근본적으로 체질이 약했어요. 30~40대 때는 심장이 약했고 치질로 피를 많이 흘렸어요. 군대에서 장에 염증이 생겨 그것 때문에 계속 어지러웠죠. 강단에서 설교할 때나 주례할 때 안 넘어지려고 탁자를 잡고 설교했어요. 40대가 지나면서 점차 좋아졌어요』
趙鏞基 목사는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
『강점은 없는 것 같아요. 내가 무엇을 성취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식으로 받은 교육은 고등학교 2학년이 전부입니다. 영어도 독학했기 때문에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성령의 능력으로 나를 이끌어 주신 거죠. 나의 약점은 교육적 배경이 약하다는 겁니다. 무엇 하나 자랑할 게 없습니다』
趙鏞基 목사는 여러 인터뷰에서 폐병 때문에 고등학교를 다 졸업하지 못해 겪은 고충을 밝힌 바 있다. 친구의 졸업장에 사진을 붙여 의대 시험을 쳤다가 2등으로 붙는 바람에 오히려 중퇴한 것이 탄로나 곤욕을 치렀고, 순복음신학교에 입학해 4년 내내 고등학교 졸업장 갖고 오라는 얘기에 가슴 조렸다. 신학교 수료 후 미국 유학을 가려 했지만 정식 졸업장이 없어 좌절되었던 일 등 학벌과 관련한 고충이 유난히 많았다.
趙鏞基 목사는 설교중에 『나는 정규 교육을 고등학교 2년까지밖에 못 받았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대학 교수들의 모임인 로고스선교회에서 설교할 때 『내가 교수들 앞에서 설교할 줄 몰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趙鏞基 목사는 어떤 때 스트레스를 받을까.
『나는 스트레스란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국민일보 경영하면서 빚이 쌓여갈 때 걱정은 많이 했지만 스트레스는 별로 못 느꼈어요. 기도하면 해소되기 때문이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하는 일마다 최초이며 최대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예전에 기존 교단의 교인들을 흡수해 성장한 교회라는 질타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다른 교단의 교인을 데려가기보다 새 신자를 전도하라는 질책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여의도순복음교회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순복음교회는 못자리 교회이며 여의도에서 배출한 교인들이 서울 시내 곳곳에 퍼져 열성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예전에 원망하던 목사들이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청년국장 김상길 목사는 『만약 성도 뺏기지 않기 운동을 했다면 지금쯤 150만명은 됐을 것』이라며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훈련받고 나가는 열린 교회』라고 말했다.
이번 취재에 응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초창기에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령운동에 대해 여러 가지 시비가 많았으나 1990년대 들어 한국 교회의 대부분이 성령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 여의도순복음교회가 畵像 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해 비판의 소리가 많았지만 요즘 대부분의 교회가 교회內 부속성전을 설치하거나 지성전을 개설해 화상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도 강조했다. 이러한 사실을 예로 들면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교회는 하는 일마다 최초이고 최대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을 『趙鏞基 목사를 중심으로 일치단결한 평신도들이 일군 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평신도의 底力을 증명하는 것은 바로 폐지수집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84년에 폐지를 수집하여 심장병 어린이를 돕자는 운동을 시작한 이래로 16년 동안 한 주일도 빠짐없이 폐지함은 꽉꽉 찼다. 6월말 현재 폐지를 판돈 35억8689만원으로 2617명의 심장병 어린이에게 수술비를 대주었다. 1992년부터 우유팩, 헌옷, 동전 모으기도 함께 실시하고 있는데 1999년 12월 현재 우유팩 63만㎏을 팔아 6971만원을 마련, 불우이웃을 도왔다. 헌옷은 앙골라, 파푸아뉴기니 등 내전을 겪거나 가난한 나라에 전달됐다. 동전 모으기를 통해 모은 22억원 역시 불우한 국내외 사람들을 위해 쓰이고 있다. 또 한 달에 1000씩 하는 미자립교회 돕기 헌금으로 수많은 농촌교회를 돕고 있다. 취재에 응한 사람들이 趙鏞基 목사에게 배운 생활 철학이라며 일러준 구호가 인상적이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유명 신도
◇정·관계
16대 의원 새천년민주당- 김명섭, 유용태, 장성민, 박종우, 김운용
한나라당-서청원, 박명환, 박주천
전직 의원-김수한(전 국회의장) 정영훈(민주당) 류선호(민주당) 이건개(자민련) 장석화(자민련)
전직관료 이규호(문교부 장관) 배선일(국방부 장관) 김진영(육참총장)
◇법조계
양인평(전 부산지방 고검장), 유지담(대법원 대법관), 전용태(전 대구지검 검사장), 이영복, 김학만, 김종성(변호사), 김홍준, 최영식, 김두식(국제변호사)
◇학계
손동수(한세대 총장) 김성혜(한세대 부총장) 강석규(호서대 명예총장),
◇언론계
차일석(대한매일신문 사장), 김우광(SBS 전무이사), 오계수(전 한국경제신문 편집담당국장대우), 최기봉(한국방송광고공사 영업이사), 박범익(EBS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