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8월 말의 어느날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의 카페 「이종환의 쉘부르」. 어둑한 불빛을 타고 10년 만에 무대에 오른 가수 洪珉(홍민·53세)씨의 굵직한 목소리가 중년 관객들의 가슴을 파고 든다. 살이 조금 오른 듯한 그의 얼굴이 시간의 흐름을 말해주지만 매력적인 低音(저음)의 목소리에서는 세월의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자신의 통기타 반주에 맞춰 왕년의 레퍼토리를 열창하는 그의 얼굴에 빠지다 보면 1970년대를 풍미했던 포크 가수들의 모습이 시간을 逆流(역류)해 오버랩된다.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빈 자리를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추억 속으로 하염없이 빠져들어간다.
근처의 또다른 카페 「록시」에서는 매일 오후 11시 통기타 세대의 우상인 宋昌植(송창식·51세)씨가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만면에 웃음을 띤 그가 전성기와 다름없는 음량으로 첫 곡 「한번쯤」을 부르자 팬들의 신청곡 주문이 이어졌다. 「상아의 노래」, 「토함산」, 「왜불러」….
마지막으로 그가 「고래사냥」을 부르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를 치며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그의 노랫소리가 후렴부인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에 이르자 몇몇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흔들었다. 앉아있는 사람들도 손을 앞뒤로 흔들며 큰 목소리로 따라불렀고 노래가 끝난 후엔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1970년대 가수만이 아니다. 배 모양의 건물에 해골 네온사인을 내건 카페 「해적」에 가면 잘생긴 외모와 촉촉한 목소리로 1990년대 초반 여성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曺正鉉(조정현·34세)씨를 만날 수 있다. 「블루오페라」에서는 스탠더드 재즈 보컬의 분위기를 지닌 가수 柳烈(유열·39세)씨가 재즈 피아니스트의 반주에 맞춰 고전적인 재즈곡 「아이 레프트 마이 하트 인 샌프란시스코(I left my heart in sanfrancisco)」를 열창한다.
어슴푸레한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관객과 가수가 호흡의 交感(교감)을 나눌 수 있는 추억의 場(장), 이곳이 바로 미사리의 라이브 카페촌이다.
우리가 흔히 미사리라고 부르는 이곳의 정확한 행정구역상의 명칭은 경기도 하남시 미사동과 망월동, 덕풍동, 신장동, 창우동이다. 이곳에 라이브 카페들이 들어선 것은 불과 2∼3년 전. 예전에는 조정경기장 쪽에 있는 미사동에 음식점과 일반 카페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다가 망월동에서 창우동에 이르는 팔당대교쪽 도로변에 하나 둘 음식점과 라이브 카페가 들어서면서 이제는 10여km 구간의 도로를 따라 50여 곳의 라이브 카페가 盛業中(성업중)이다.
왜 미사리인가
「라이브 카페」라고 하면 통기타와 무명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이 머리 속에 먼저 떠오르지만 미사리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젊음과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언더가수에서 이름만 들어도 향수에 젖어드는 그 옛날 名가수, 그리고 지금도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인기 가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수들이 무대에 오른다. 음악도 장르별로 다양해 청바지와 생맥주, 통기타로 대표되는 1970년대 포크음악부터 1990년대의 강렬한 록 사운드까지 마음껏 즐길 수가 있다. 송창식, 양희은, 홍민, 채은옥 등 197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와 유열, 전인권, 민해경 등 1980년대를 대표했던 가수, 그리고 박상민, 수와진, 이상우, 조정현 등 1990년대 가수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미사리를 라이브의 거리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라이브 카페촌은 경기도 양평이나 가평, 양수리, 퇴촌 등지에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시기적으로만 본다면 미사리가 제일 늦은 셈이다. 그런데도 이곳이 대표적인 라이브 카페촌으로 자리잡은 이유가 무엇일까.
『가까우면서도 교외 기분을 낼 수 있다는 것이 제일 큰 이유입니다. 미사리는 서울 시내 웬만한 곳에서는 30분 정도면 올 수 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늦은 밤이라도 훌쩍 다녀갈 수 있지요. 제가 카페를 내기 전에 1년 동안 시장조사를 했는데 사람들이 IMF 이후에는 멀리 가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했어요. 적당히 속력을 내면서 드라이브도 즐기고, 강바람도 쐬고, 또 커피 한 잔 앞에 놓고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도 들을 수 있으니 미사리는 부담없이 즐기기에 아주 제격인 셈이죠』
미사리 라이브 카페 연합회의 회장이자 「루브르」라는 카페를 직접 운영하고 있는 개그맨 金鶴來(김학래·45세)씨는 이를 「삐삐 사정권」이라는 재미있는 단어로 표현한다. 서울에서 호출을 했을 때 광역이 아닌 일반 삐삐(호출기)로도 그 호출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건전한 분위기도 미사리를 전국적인 名所(명소)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현재 미사리 관내에는 여관이나 모텔이 없다. 앞으로도 숙박시설은 「절대 許可不可(허가불가)」라는 것이 하남시의 방침이다. 이런 숙박시설이 하나 둘 생기다 보면 소위 「불륜」 관계의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건전한 문화공간으로 가꾸어 나갈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 하남시의 생각이다.
카페를 운영하는 업주들도 당장 수입은 좀 적더라도 술집이나 단란주점처럼 만들지는 말자는 데 뜻을 모았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한 축을 형성한 40∼50대 중년층이 일상에 지치고 힘들 때 찾아와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안식처로 만들자는 것이 하남시와 업주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미사리의 좥애국가」는 「사랑을 위하여」
지금은 중년층이 많이 찾아오지만 1996년 미사리 최초의 라이브 카페인 「록시」가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데이트하러 나온 20대의 연인들이 많았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하다가 어둠이 찾아오면 감미로운 통기타 연주의 노래를 들으며 密語(밀어)를 속삭이던 20대가 줄어들고 중년층이 많아진 이유에 대해 金鶴來씨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IMF가 터진 후로 젊은 친구들이 찾아오는 빈도가 좀 뜸해졌어요. 사실 공연료가 포함되다 보니 이곳의 커피값이 6천원에서 9천원 정도로 조금 비싼 편입니다. 이것이 부담이 됐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요 손님이었던 젊은 친구들이 안 오니까 손님이 많이 줄었지요. 그런데 이때쯤 「이종환의 쉘부르」가 문을 열었어요. TV에서 보기 힘든 1970년대 포크 가수들이 많이 나오니까 30대 이상의 주부들이 하나 둘씩 찾아오기 시작했지요. 그러니까 다른 카페에서도 이들이 좋아할 만한 가수들을 출연시키기 시작했고 이 가수들을 보기 위해 더 많은 중년 관객들이 찾아오는 과정을 거쳐서 결국 이들이 주요 관객으로 자리잡은 겁니다. 젊은 친구들과 자리를 바꾼 거지요』
중년층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긴 하지만 미사리 카페촌은 시간대에 따라 손님층이 확연히 달라진다. 낮에는 예상대로 30∼50대의 주부들이 대부분이다. 오후 7시부터는 퇴근한 직장인과 연인들, 그리고 가족 단위의 손님이 많이 찾아온다. 자정이 넘어가면 연령층이 많이 낮아져 20대 초반과 중반의 손님이 많은데 대개 이들은 밤을 꼬박 새면서 라이브를 즐긴다. 그래서 새벽 1∼2시에 나오는 가수들은 조성모나 박상민 등 신세대 가수들의 노래를 많이 부른다.
카페들이 문 닫는 시간은 대략 새벽 5∼6시. 대부분의 카페가 휴일 없이 매일 18시간 이상을 영업하고 있다. 이 중에서 라이브가 공연되는 시간은 대략 오후 2시부터 새벽 3시까지.
밤새도록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곳에서 가장 많이 불려지는 노래는 어떤 곡일까? 중년층이 많다 보니 이곳의 인기곡은 순전히 그들의 취향에 따라 결정된다. 미사리 최고의 히트곡은 金鍾煥(김종환)씨가 부른 「사랑을 위하여」. 이 노래는 미사리에서 「애국가」로 통한다. DJ 李鍾煥(이종환)씨가 「미사리에서 이 노래를 부르지 않는 가수는 가수도 아니다」고 잘라 말할 정도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신청을 해오기 때문에 다른 가수의 노래 부르는 것을 꺼려하는 인기 가수들도 이 노래만큼은 예외로 친다.
金鍾煥씨의 다른 노래 「존재의 이유」도 인기가 높다. 「벤허」의 李京勳(이경훈·43세) 사장이 뽑은 「미사리 인기 가요 베스트 5」는 임지훈의 「사랑의 썰물」, 유익종의 「모두가 사랑이에요」, 고한우의 「암연」, 박강성의 「장난감 병정」, 김종환의「사랑을 위하여」.
최고 인기 가수는 宋昌植
그렇다면 1백명이 훨씬 넘는 미사리 카페촌의 가수들 중에서 최고의 인기 가수는 누구일까? 바로 宋昌植씨다. 매일 밤 11시에 시작되는 그의 공연을 보기 위해 「록시」에는 밤 9시쯤부터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지나가다가 그냥 한 번 들러보는 뜨내기 손님보다 그의 공연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는 것도 그의 높은 인기를 짐작케 한다.
자영업을 하는 文敏基(문민기·43세)씨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宋昌植씨의 열렬한 팬인 그는 「록시」에 宋昌植씨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난 6월 이후로 매일 밤마다 이곳을 찾아온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주일에 5∼6일은 그의 노래를 들으러 오는데 평일에는 아내와, 주말에는 아이들까지 온 가족이 함께 온다.
『집이 용산구 효창동인데 안 막힐 때는 30분, 막힐 때는 1시간 정도 걸립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러 오니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듭니다. 일이 있어서 못 오는 날엔 왠지 허전하고 잠이 안 올 정도예요. 宋昌植씨는 중학교 때부터 그 독특한 창법 때문에 좋아했지요. 宋昌植씨의 노래를 들으면 복잡했던 마음도 시원해지고 쌓였던 스트레스도 풀려요.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고 할까요? 중학생인 아들 녀석도 宋昌植씨 노래를 좋아합니다. 음악에는 감정과 정서가 담겨 있으니까 랩이나 댄스만 좋아하던 아이들도 몇 번 들어보면 좋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최고 인기 가수가 宋昌植씨라면 최고로 인기 있는, 소위 말해 제일 「잘 나가는」 카페는 「이종환의 쉘부르」다. 미사리에 통기타 붐을 일으키며 주관객층의 연령을 10년 이상 높여놓은 이곳은 DJ 李鍾煥씨가 과거 명동과 종로의 명소였던 「쉘부르」의 기억을 잊지 못해 만들었다. 「통기타 하나 들고 의식 있는 노래를 부르던 1970년대」에 대한 그리움이 1989년에 없어졌던 「쉘부르」의 전통을 다시 잇게 했다.
양희은이 노래 부를 땐…
이곳의 통기타 라이브는 오후 1시부터 새벽 5시까지 이어진다. 그 첫주자는 「대한민국 아줌마 공식 지정가수」 楊姬銀(양희은·47세)씨. 그녀 자신이 「1954년생에서 1958년생까지의 주부 팬이 가장 많다」고 밝힌 것처럼 그녀의 무대를 찾는 관객의 대부분은 40대 전후의 주부들이다. 李鍾煥씨의 말에 의하면 그녀의 공연시간은 주방장이 낮잠 자는 시간이라고 한다. 커피 한 잔도 주문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만큼 그녀의 노래에 집중한다는 이야기다.
『대학교 때 열렬한 팬이었어요. 요즘엔 콘서트도 몇 번 한 것 같은데 번거롭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하니까 가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마침 미사리에 나온다길래 대학 친구들하고 같이 왔어요. 오랜만에 楊姬銀씨 노래를 라이브로 들으니까 너무 좋네요. 학교 다닐 때 생각도 나구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왔다는 40대 주부는 아련한 기억을 더듬는 듯 눈을 감고 「세노야」를 조용히 따라 불렀다.
楊姬銀씨의 노래가 끝나면 30분 가량 쉬었다가 洪珉씨의 무대가 이어진다. 채은옥, 임지훈, 유익종, 김승덕, 남궁옥분, 강은철, 강승모 등 소위 「이종환 사단」이라고 불리는 통기타 가수 10여명이 연달아 무대에 오른다. 「유명가수 아무개가 나온다」는 플래카드를 보고 들어갔다가 「일주일에 두세 번」이라는 말에 실망하기 쉬운 다른 카페들과 달리 「이종환의 쉘부르」에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똑같은 가수가 나온다.
이름 있는 가수들이 많이 나오는 카페로는 작년 5월에 문을 연 「카지노」도 꼽을 수 있다. 오후 2시부터 새벽 5시까지 라이브 공연을 하는데 시각장애인으로 1970년대에 활발한 활동을 했던 이용복씨를 시작으로 이용, 진미령, 전유성, 이동기, 구창모, 위일청 등이 무대에 선다.
개그맨 全裕成(전유성·51세)씨의 출연이 특이한데 출연하게 된 과정이 재미있다. 「카지노」측에서 진미령씨를 섭외할 때 진씨측에서 제시하는 개런티가 조금 높은 것 같길래 깎자고 했더니 옆에 앉아있던 남편 全裕成씨가 예의 그 어눌한 말투로 이러더란다.
『치사하게 뭘 깎고 그래. 내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나와줄 테니까 깎지 말고 나를 같이 써. 나는 공기밥이야, 공기밥. 왜 사람들이 식사하다가 배가 좀 덜 찼다 싶을 때 공기밥 하나 더 먹는 것처럼 가수들 노래 듣다가 뭔가 아쉽다 싶을 때 내가 나가서 개그하면 그것도 재미있잖아』
그래서 「카지노」 앞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에는 가수들의 이름과 함께 그의 이름도 크게 쓰여져 있다. 미사리에 있는 대부분의 카페에서는 플래카드에 「『상처』의 임병수, 『논개』의 이동기」 같은 식으로, 출연 가수와 대표곡을 크게 써서 걸어놓는다. 가수가 아닌 全裕成씨 앞에는 뭐라고 쓰여 있을까. 개그맨? 아니다. 그의 이름 앞에는 「공기밥 추가」라고 써 있다.
언더그라운드 가수들 맹활약
이렇듯 망월동 쪽의 라이브 카페가 이름있는 가수들의 출연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반해 미사동은 아직까지도 언더가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조정경기장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망월동과 미사동은 거리상으로는 가깝지만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不夜城(불야성)을 이루는 망월동 부근이 시끌벅적하다면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카페들이 하나 둘씩 자리잡고 있는 미사동은 조용한 편이다. 망월동 쪽에 있는 카페들처럼 길가에 쭉 늘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조정경기장 쪽으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미사동은 지나가다 한번 들러보는 뜨내기 손님보다는 일부러 찾아오는 단골들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미사동에서도 한참 안으로 들어가야 겨우 찾을 수 있는 「피노」라는 카페다. 25년간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활동하며 이윤수의 히트곡 「먼지가 되어」를 작곡하기도 한 李大憲(이대헌·45세)씨가 사장인 이곳은 마치 강 위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독특한 카페다. 창가에 앉아 있으면 미루나무 사이로 흐르는 강이 보이고 올림픽 대로를 빠르게 지나가는 차들이 마치 다른 세상의 것처럼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가 이곳에 있다.
李大憲 사장이 명동 쉘부르 출신이다 보니 李鍾煥씨를 비롯해 남궁옥분, 신형원, 전영, 최성수씨 같은 선후배 가수들이 자주 찾아온다. 쉘부르 시절 이야기도 하고 술도 한두 잔 마시다 보면 분위기에 취해 노래를 부르려는 가수들도 있지만 李大憲씨가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다. 언더그라운드 가수들만 무대에 서는 것이 「피노」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실력 있는 언더가수들이 그랜드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보면 無名(무명)과 有名(유명)의 차이가 노래 실력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실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유명가수보다 언더가수가 더 좋을 수도 있다. 언더가수에게는 자신이 듣고 싶은 노래를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명가수들은 자신의 노래 외에는 잘 부르려고 하질 않는다. 유명가수라는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다른 가수의 노래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명가수들은 자신의 노래와 팝송 몇 개로 고정 레퍼토리를 만들어서 그중에서 몇 곡씩을 번갈아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언더가수들은 흘러간 가요에서 최신 유행곡까지, 올드팝에서 최신 팝송까지, 또 트로트,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을 늘 연습하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신청곡은 거뜬하게 소화해낸다. 그래서 유명가수보다 언더가수를 선호하는 관객도 생각 외로 많다.
李大憲씨처럼 오랫동안 언더그라운드 가수 생활을 하다가 자신이 직접 카페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카지노」의 姜仁哲(강인철)씨, 「록시」의 禹濟植(우제식)씨가 바로 그런 경우다. 특히 姜仁哲씨 같은 경우에는 옆에 있는 카페 「해적」에서 2년 동안 노래를 부른 경력이 있어 흥미롭다. 「사장과 무명가수」의 관계에서 동등한 사장의 입장으로 관계가 바뀐 것이다.
그런가 하면 「블루오페라」의 李明淑(이명숙) 사장은 서양화가다. 그림 그리느라 미사리에 자주 나오다 보니 情이 들어 아예 작업실을 겸한 카페를 냈다. 「벤허」와 「해적」의 사장은 카페와는 거리가 먼 샐러리맨 출신. 「벤허」의 李京勳 사장은 제일은행 본점 고객관리부에서 16년 동안 근무하다가 자신의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지난 8월 카페를 열었다.
연예인이 사장인 곳도 꽤 있다. 미사리에는 이치현의 싼타나, 전인권 Club, 이종환의 쉘부르, 김학래 임미숙의 루브르 등 연예인의 이름을 내건 곳이 여러 곳 있는데 간판급 출연 가수의 이름을 빌린 경우도 있지만 이들이 직접 운영하거나 持分(지분)을 가지고 있는 곳도 많다.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
「이종환의 쉘부르」는 李鍾煥씨가 후배와 공동으로 투자했다. 「쉘부르」라는 이름을 내건 카페가 너무 많은 탓에 굳이 「이종환의 쉘부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이 이름은 현재 특허청에 정식으로 등록이 되어 있는 상태. 미사리 외에도 분당과 일산에 「이종환의 쉘부르」가 있는데 이 두 곳은 李鍾煥씨가 1백% 투자했다.
「이치현의 싼타나」의 李治賢씨, 「전인권 Club」의 전인권씨 등은 약간의 持分(지분)을 가지고 있는 정도. 한편 「이광조의 벤허」는 가수의 양해를 얻어 간판에 이름을 넣은 경우다. 이광조씨가 일 년 넘게 이곳에서만 노래하다 보니 「벤허」 하면 「이광조」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 아예 이름을 고쳤다. 가수와 사장의 입장을 넘어서서 인간적으로 친해진 덕분에 이광조씨도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흔쾌히 승낙을 했단다.
「김학래 임미숙의 루브르」는 이들 부부가 1백% 투자했을 뿐만 아니라 운영에도 적극적인 대표적인 경우다. 金鶴來씨가 하루도 빠짐없이 카페에 나와 손님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음식도 나르면서 세심한 곳까지 신경을 쓰는데 특히 낭만적이면서도 격조 있는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일까. 이곳은 길가에 있는 카페 치고 단골이 많다. 金鶴來씨가 첫손에 꼽는 단골 손님은 70대 신식 할머니. 처음엔 『나같이 늙은 사람 때문에 분위기 망치는 거 아니냐』며 쑥스러워하더니 요즘엔 직접 노래를 신청하기도 한다. 『대학 시절에 즐겨 듣던 올드팝을 이렇게 라이브로 들으니 가슴이 다 설렌다』며 소녀처럼 웃는 할머니를 보면서 金씨는 「나도 저렇게 멋있게 늙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단다.
「루브르」에 못지않은 전망과 음식맛을 자랑하는 곳은 카페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이다. 다른 카페들이 라이브 카페임을 내세우는데에 반해 이곳은 정통 이탈리안 패밀리 레스토랑임을 강조한다. 물론 이곳에도 진시몬, 녹색지대같이 이름 있는 가수가 나오지만 라이브보다는 식사를 중요시한다. 20년 경력의 호텔 출신 주방장이 만들어내는 스파게티, 그라탕 등의 음식과 홍차전문점을 운영했던 주인이 만드는 다즐링, 얼그레이 등 다양한 종류의 차가 이곳을 다른 카페와 차별화시키고 있다. 어린이만을 위한 메뉴가 따로 있을 정도로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에는 가족 단위의 손님이 즐겨 찾아온다.
별장에라도 온 듯한 느낌…
사실 미사리 카페촌에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가족들이 찾아온다. 주말에는 가족 단위의 손님이 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다른 곳에 가면 아이가 분위기 깰까 봐, 또 아이가 뛰어다닌다고 눈치 받을까 봐 주저하던 젊은 부부들도 이곳에는 편한 마음으로 부담없이 찾아온다. 아이들은 카페 안을 뛰어다니기도 하고 또 카페 밖의 흙마당을 뛰어다니기도 하면서 자기들 나름대로 미사리를 즐긴다. 노부모를 모시고 오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가족 단위로 오는 동창 모임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사리에는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와요. 특별히 단골로 가는 카페는 없고 그때그때 보고 싶은 가수를 따라 미리 스케줄을 확인하고 오지요.
사실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비슷비슷하게 생긴 10대 아이들이 가수라고 나와서 랩이다 테크노다 알 수 없는 말만 지껄이잖아요. 그런 애들 쳐다보고 있으면 내가 뒤진 것 같은 생각도 들고 내가 잘못 사는 걸까 하는 생각에 우울해지기도 해요. 그런데 이곳에 와서 내가 좋아하던 옛날 가요나 팝송을 듣다 보면 기분 전환도 되고 우울했던 마음도 잊어버리게 돼요. 그 노래에 同化(동화)된다고나 할까요? 그렇게 세 시간 정도 노래 듣고 또 박수치면서 같이 따라 부르고 나면 마음도 편안해지고 즐거워져요』
딸 예림이와 남편, 그리고 친구 부부와 함께 온 鄭明眞(정명진·29세)씨는 「나는 손님 너는 가수」라는 구분 없이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것이 미사리의 매력이라고 덧붙인다.
대학동창 모임에 왔다는 朴承浩(박승호·37세)씨 역시 「同化」라는 표현을 썼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30∼40대는 이미 영역을 빼앗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업성만을 추구하는 매스컴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한 거지요. 그래서 음악을 듣고 싶을 땐 늘 CD를 듣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라이브로 음악을 들으니까 CD로 들을 때보다 좀더 그 음악에 빠져들게 되고 그 음악과 同化되는 저 자신을 느끼게 됩니다. 어느 특정가수에게 집착하기보다는 그냥 그 음악에 나도 모르게 젖어드는 것 같아요. 그 음악을 즐겨 듣던 시절의 추억도 떠오르고…. 어쨌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이런 편안한 느낌은 관객뿐 아니라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도 마찬가지다. 「블루오페라」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무대에 서는 가수 柳烈씨는 『약간은 벗어난 느낌으로, 마치 별장에라도 온 듯한 편한 기분으로 자유롭게 노래한다』고 이야기한다.
『소극장보다도 더 편안한, 더 친근한 분위기예요.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할까요? 관객과 가수 사이에 인간적인 유대감이 흐르고 무엇보다도 情(정)이 느껴져요. 젊은 친구들처럼 직접적인 표현은 못하지만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애정을 느낄 수 있으니까 저 역시도 관객들에게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사람들이 이런 곳, 그러니까 이지 리스닝(Easy-Listening) 계열의 노래를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곳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노래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곳도 물론 많지 않지만 젊은 사람들만 가는 카페에 잘못 갔다가 괜히 눈총 받을까 봐 마음 놓고 카페도 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삼포 가는 길」의 가수 姜殷哲(강은철)씨도 같은 생각이다.
『매스컴에서 외면당하던 중년층 관객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스트레스 풀 곳이 드디어 생긴 겁니다. 저는 주로 사이먼과 가펑클이나 CCR의 노래들을 부르는데 어떤 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춤을 추거나 소리를 지르기도 해요. 술에 취해서가 아니라 분위기에 취해서, 그저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 다른 손님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허물없이 이해를 해줘요. 공감하는 거지요. 저는 이런 분위기가 너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 노래를 들어주고 좋아해주니까 몹시 행복합니다. 옛날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가수와 관객이라는 입장을 떠나서 同時代를 살아가는, 그리고 같이 나이 들어가는 중년의 입장에서 노래도 하고 이야기도 나눕니다. 정겨운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말이지요. 10년 정도 무대를 떠나 있었는데 다시 무대에 서니 개인적으로도 참 즐겁습니다』(洪珉)
그런가 하면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의 曺正鉉씨는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솔직히 겁부터 났다고 고백한다.
『가수 활동을 중단한 7년 동안 무대에 서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와서 노래를 불러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으니까 겁이 덜컥 나더군요. 과연 옛날처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지요. 물론 나를 아직도 가수로 인정해주는구나 하는 뿌듯함도 있었습니다. 미사리 무대에 선 지 세 달 정도 지난 지금은 노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행복합니다. 예전에는 인기가 좋아서 그 인기를 따라다녔지만 지금은 노래 부르는 자체가 즐겁습니다』
안정된 수입원이 생겼다는 것도 가수들에게는 큰 의미이다. 처음 출연제의를 받았을 때 「생활의 문제였기 때문에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 없이 승낙했다」고 李治賢씨는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방송이 10대 위주로 치우치면서 방송은 물론 새 음반조차 낼 수가 없었습니다. 워낙 댄스가수들이 판을 치다 보니 음반을 내봤자 팔리지가 않으니까요. 그래서 3년 정도 공백기를 가졌지요. 그러다가 미사리 무대에 서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는데 무조건 승낙했습니다. 나는 포크가수도 아니고 이렇게 작은 무대에는 서본 적도 없었지만 생활이 달려 있었으니까요』
성격 논쟁
미사리에는 현재 많은 숫자의 가수들이 무대에 서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조금이라도 인기가 있었다 싶은 가수는 다 미사리에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1970년대 통기타 가수에서 윤시내, 민해경, 이용, 신형원, 구창모 등의 1980년대 가수, 그리고 이상우, 이범학, 전원석, 여행스케치 등의 젊은 가수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궁금했던 가수들은 모두 이곳에서 만날 수가 있다.
지나간 가수뿐만이 아니다. 요즘도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노사연과 유열, 박상민 등도 미사리 무대에 선다. 여기에 태진아, 김정수, 임주리, 오은주 등의 트로트 가수까지 가세했다. 가수인지 개그맨인지 아니면 DJ인지 그 정체가 불분명(?)한 김흥국씨조차도 이곳에서 노래를 부른다. 그것도 「라이브」로.
이러다 보니 처음 라이브 카페가 생길 무렵의 통기타 분위기가 많이 퇴색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 미사리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1970년대의 통기타 분위기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람들은 『미사리는 순수했던 통기타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유와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복고풍으로 가야 한다. 지금처럼 가다가는 단란주점처럼 되고 만다』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40대라고 다 통기타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트로트 좋아하는 사람은 트로트 듣고 발라드 좋아하는 사람은 발라드 듣는 것 아닌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볼 때 미사리는 복합적인 문화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가 않다.
중년세대들의 안식처
이렇게 상반된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미사리가 지나치게 상업화되어 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로 우려를 표시한다. 사실 미사리의 카페들이 경쟁적으로 인기 가수를 무대에 세우다 보니 가수들의 개런티가 많이 올라가 있는 상태다. 올 초보다 두 배 이상 올랐다는 말도 있다. 10대 가수들에게 무대를 빼앗긴 중견 가수들에게 삶의 터전을 되찾아주었다는 긍정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지나치게 장삿속으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이 미사리 내에서도 커져가고 있는 상태이다.
가수들에게 높은 개런티를 지불하다 보면 커피값과 식사값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린벨트 지역인 미사리는 80평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가 없다. 1층 30평, 2층 30평, 화장실과 창고 등의 부대시설 20평 이렇게 80평이 최대로 지을 수 있는 면적이다. 당연히 손님수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데 개런티 지출이 많아지다 보면 업주들로서는 가격을 올리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이러니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몇 시간씩 앉아 있는 손님이 예쁘게 보일 리가 없다. 「손님을 끌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인기 가수를 쓴다」는 것이 업주들의 하소연이지만 비싼 커피값을 내야 하는 손님들의 부담도 만만치가 않다.
하지만 이런 부담에도 불구하고 미사리를 찾는 중년층의 발걸음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텔레비전을 10대들에게 빼앗기고 그들처럼 컴퓨터에 몰입할 수도 없는 사람들에게 미사리의 라이브 무대는 몇 안되는 삶의 위안일지도 모른다. 일상에 지친 중년세대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안식처, 미사리. 이곳에는 오늘도 지친 삶을 달래주는 노랫소리가 한강을 타고 흐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