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살아있다] 태양의 계절

한국 대표작가들의 신작 단편 릴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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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어딘가에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방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지금까지의 이름을 버리고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이해할 수 없었던, 그래서 지금까지도 아버지의 그 방에 대해 어머니에게 함구하고 있었던 아버지의 그 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없던 방. 그 방에 눕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글 : 하성란
⊙ 1967년 서울 출생.
⊙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졸업.
⊙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풀’로 등단.
⊙ 저서: 작품집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 <루빈의 술잔> <옆집여자> <웨하스>,
    장편소설 <내 영화의 주인공> <삿뽀로 여인숙> <식사의 즐거움> 등.
⊙ 상훈: 동인문학상, 21세기 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수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현대문학상.
재개발 인가가 떨어지고 수개월이나 텅 비어 있던 소도시의 한 아파트에서 웬 노인의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단신을, 그는 몇 번 갔던 지하 노래방의 카운터 앞에 선 채 들었다. 작은 액자만 한 소형 텔레비전은 카운터 앞 벽 모서리의 선반 위에 달랑 얹혀 있었다. 남자치고도 키가 좀 큰 편인 그도 눈을 치켜떠야 하는 높이였다.
 
  그는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에 술이라도 깰 겸 노래방의 음료수 냉장고에서 꺼낸 캔을 두어 모금에 나눠마시던 참이었다. 별생각 없이 꺼내든 음료수는 어린 시절 그가 즐겨 마시던 오렌지 알갱이가 톡톡 터지던 주스였고, 그는 새삼스럽다는 듯 캔을 들여다보면서 기억 속의 음료수 이름이 거기 적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
 
  노래방은 좀 깊다 싶은 지하 1층에 있었고 화장실은 계단을 올라가 밖으로 나가는 출입문 앞에서 다시 꺾어 한 계단 올라가는 1층과 2층의 층계참에 있었다. 취중에 노래방과 화장실을 오가는 일도 아주 성가셔 웬만하면 잘 오지 않으려는 곳이었다.
 
  장마권에 접어들면서 사흘에 한 번꼴로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빗물에 한 번 잠기기라도 한 것처럼 눅눅한 노래방은 눈을 쏘는 강한 암모니아 냄새가 배어 있었다. 지방 캠퍼스이고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긴 했지만 학생 수가 많았다.
 
  한때 논과 밭이었던 곳에 원룸들이 속속 들어서고 음식점과 호프집, 노래방 같은 유흥가가 짧게 형성되었다. 학교에서 가깝다는 것을 빼면 이 근방에서도 시설이 제일 열악한 곳이었다.
 
  좀 더 나은 노래방을 찾자면 찾지 못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굳이 다른 델 놔두고 왜 학생들이 이 노래방으로 우르르 몰려온 건지 그는 진작부터 좀 못마땅하던 차였다. 도무지 생각이라고는 안 하고 사는 게 요즘 젊은이들이었다. 단지 조금 더 걷는 게 귀찮았겠지.
 
  학생들은 굳이 이차를 끝내고 집으로 가려 일어서는 그를 교수님 없이는 안된다며 부득부득 이곳까지 끌고 와놓고는 예의상 한 곡 권했을 뿐 줄곧 자기들끼리 마이크를 잡고 놓지 않았다.
 
  이미 서울행 막차는 놓친 뒤였고 첫차 시간까지 몇 시간 이렇게 때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 못이기는 척 앉아 있었지만 그는 그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아니 지난 한 학기 동안 그들과 마음이 맞았던 때라고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둡고 냄새 나는 비좁은 룸 안에서 조카뻘 되는 학생들이 불러대는 랩 일색의 노래를 듣는 일은 고역이었다. 가사조차 알아듣기 힘들었거니와 아무런 의미 없이 반복되는 후렴구와 음정의 단순함이 거슬렸다. 그런데도 문제는 그 노래들을 다 이해하고 좋아하는 것처럼 박수를 쳐줘야 한다는 거였다. 나이가 들었어도 감각마저 떨어진다는 티를 내서는 안되었다.
 
  학생들은 별안간 생각난 듯 이구동성으로 “교수님! 교수님!”을 외쳤고 그는 마지못해 일어서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을 불렀다. 간주가 흘러나오자 전 곡에서 춘 춤으로 흥이 남아 있던 아이들이 조금 흔들다가 하나, 둘 자리에 앉았고 잠시 뒤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자막에 뜬 가사를 따라 그는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이것들아. 잘 들어라. 너희도 이제 서른 되고 마흔 된다. 시간만큼은 공평하다 이거다. 일절이 채 끝나기도 전에 힐끗 둘러보니 학생들은 자신에게는 별 관심을 쏟지 않은 채 노래 선곡집을 열심히 들추고 있거나 귀에 대고 무슨 말인가를 속닥거리며 웃어대고 있었다.
 
  그냥 터미널에 앉아 첫차를 기다리는 것이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 눈치를 보던 그가 외투를 집어들고 한 팔을 꿰었을 때 한 여학생이 “교수님! 도망치시면 안돼요!”라며 그의 가방을 움켜잡는 시늉을 했다. 그는 그게 그렇게 기분 나쁘지만은 않아 입던 외투마저 벗어두고 잠깐 실례!라고 말하며 룸을 빠져나왔다.
 
  소형 텔레비전은 저 혼자 켜진 채 웅웅거리고 있었다. 성인 두 명이 겨우 나란히 걸어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폭이나 될까. 비좁은 복도를 사이에 둔 채 번호표가 달린 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종강을 빨리 한 학과들이 더러 있었고 기숙사에서 짐을 챙겨 귀향해 버린 학생들 때문에 그 시간 룸에 든 손님이라야 겨우 두서너 팀이 고작인 듯했다.
 
  카운터에 홀로 서본 사람만이 안다. 그곳에 흐르는 묘한 고독을. 카운터라는 곳은 묘한 공간이었다. 룸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음들이 그곳에서 한데 집합했다. 이곳에 선 채로도 룸들의 동정을 다 파악할 수 있었다. 단지 룸으로부터 몇 미터 떨어져 있을 뿐인데 그곳은 차원을 달리한 공간처럼 룸과는 전혀 다른 고독이 밀려오는 곳이었다. 노래방에서 노래방이 아닌 유일한 공간이 있다면 바로 카운터였다.
 
  각기 다른 박자와 가사, 목소리들이 웃음소리와 섞여 고스란히 카운터에서 울리는 통에 텔레비전의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텔레비전은 단지 창 하나 없는 지하에서 작은 창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캔 음료를 마시느라 목을 뒤로 젖히지 않았더라면 텔레비전 화면을 올려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당연히 그 단신은 금방 흘러 지나가고 말았을 것이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그 뉴스 내용을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노인이라는 단어와 뜻밖의 죽음이라는 설정 때문이었다.
 
  몇 번 와서 안면을 튼 주인 내외는 보이지 않고 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깡마른 여자애가 노래방용 새우깡을 집어먹으면서 건성으로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그 소음 속에서도 말소리가 들리는지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는 입안에 찌꺼기처럼 들러붙은 오렌지 알갱이를 혀로 훑어대면서 게슴츠레 감기는 눈에 힘을 주고 뉴스를 보았다.
 
  사망자가 입고 있던 옷으로 추측하건대 노인이 사망한 지 최소 반년은 지난 듯 보인다고 했다. 재개발 인가가 떨어지고도 채 이사를 나가지 않은 주민 중 한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겨울 추위를 피하려 잠시 빈 아파트로 숨어들었던 노숙자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재개발 용역 인부가 시신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쇠망치를 휘두르던 인부는 기겁했을 것이다. 신분을 증명할 만한 것은 찾지 못했고 단지 입고 있던 외투 주머니 속에서 소설책 한 권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곁에서 발견된 것이 신문이 아니라 소설책인 것만 다르다 뿐 일본의 파자마 사내 사건과 흡사했다. 재개발을 하려 건물을 헐기 시작했을 때 파자마 차림으로 침대에 누워 있던 백골을 발견했다는 그 이야기. 그 사내 옆에 있던 신문은 자그마치 20년 전의 신문이었다. 그 사내가 죽어 백골이 진토될 때까지 아무도 그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이 없었고 찾아오는 이 하나 없었다.
 
  그에게는 이혼한 전처가 있었다. 그로부터 돌연 연락이 끊겼는데도 전처는 그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조차 확인해 보려 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는 혼자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고 20년이나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 사이 노후된 건물은 다른 주민들의 합의에 따라 재개발에 착수했을 것이다. 그 사내는 그 뒤로 도쿄의 파자마 사내로 불리었다.
 
  아파트라는 공간과 재개발이라는 상황, 고립과 무관심이라는 현실의 상징성 등등, 이 사건은 일본의 그 사례와 비슷했다. 가정이 해체되고 독거노인들 수가 부쩍 늘어나면서 이젠 이런 유의 기사들을 더 많이 접하게 될 것이다.
 
  그 노인이 마지막까지 읽고 있던 소설책 한 권은 대체 누구의 어떤 소설이었을까. 분명한 건 자신의 책은 아닐 거라는 거였다. 그의 책은 초판도 팔리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소설책을 읽는 노인이라니 좀 뜻밖이었다. 뉴스에서는 그 책의 제목까지는 밝히지 않고 있었다. 그 책이 어떤 책이었을까 궁금증이 드는 건 단순히 직업적인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바로 이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기 초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호랑이를 타고 나간 귀부인’ 이야기보다 훨씬 나았다. 이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 아닐까.
 
  그러다 문득 바로 그 모습이 훗날 자신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가족을 떠나, 강의를 나가는 또 다른 대학 근처의 작은 원룸에 몇 년째 살고 있었다. 별 변화가 없다면 아마도 그 노인의 나이가 될 때까지 혼자 살고 있겠지.
 
  가끔 안부를 물으러 전화를 하는 어머니마저 돌아가셨을 테니 전화를 걸어올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더라도 마지막 순간에 그 노인처럼 호주머니 속에 소설책 따위를 넣어두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사이 뉴스는 벌써 다른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오렌지 알갱이를 빼내느라 이 사이에 혀를 대고, 소리를 냈고 그 소리가 신경에 거슬렸는지 그가 그곳에 선 지 처음으로 여자애가 고개를 돌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십대 소녀의 눈빛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무심한 눈동자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여자애는 껌을 씹듯 말했다.
 
  “화장실은 위요.”
 
  여자애는 그가 학생들 틈에 묻혀 노래방 안으로 들어서던 것도 화장실에 두어 번 들락거린 것도 본 적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요즘 들어 그런 일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점점 투명인간이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자신의 눈에도 자신의 두 발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 아닐까. 두 발이 보이지 않으면 자꾸 넘어질 텐데 말이다.
 
  “이거이거 피라도 흘려야 알아보려나?”
 
  그는 기분이 언짢았다. 소설에선 투명인간이 흘린 핏자국을 보고 사람들이 그를 쫓는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손에 들린 캔을 여자애에게 불쑥 내밀었고 “삼십 분”이라고 대꾸했다. 여자애는 심드렁하게 되받았다.
 
  “한 시간에 만사천원, 삼십 분에 팔천원요.”
 
  그가 바지 뒷주머니에서 엉덩이 선을 따라 둥글게 둘린 반지갑을 꺼내 드는데 여자애가 다시 물었다.
 
  “그래도 삼십 분 드려요?”
 
  여자애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원거리 작동 기계 버튼을 조작하면서 삼십 분 값에 음료수 값을 더한 구천원을 불렀다. 그러고는 “왼쪽 끝 8번 룸요”라고 말했다.
 
  여자애는 직접 안내해 주지도 않고 카운터에서 목만 길게 뺀 채 뒤에서 그를 조종만 했다.
 
  “아저씨, 쭉 들어가요.”
 
  8번 룸을 찾아 들어가면서 슬쩍 그는 그가 빠져나왔던 대형 룸 안의 동정을 살폈다. 문 가운데 난 작은 유리창 안으로 사이키델릭 불빛과 넉 대의 모니터 불빛으로 간신히 사물들은 분간이 갔다.
 
  학생들의 모습은 얼룩덜룩한 실루엣처럼 지저분했다. 학생들은 요즘 유행하는 가수들의 노래를 합창하면서 똑같이 춤을 추고 있었다. 한 학기의 마지막 시간, 합평회가 끝난 뒤에 갖는 뒤풀이 자리였다. 한사코 집에 간다는 걸 붙든다고 반가워한 것이 잘못이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가방과 외투가 룸에 있었다.
 
  그 룸은 마치 일인실이기라도 하듯 특히나 비좁았다. 이인용 천 소파와 작은 탁자가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습기에 노래 선곡집의 비닐 커버들이 끈끈했고 서로 붙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맥주를 흘렸는지 리놀륨 바닥도 끈적거렸다. 그는 선곡집의 ‘가’ 편부터 천천히 넘겼다.
 
  누군가의 노래가 끝나면 아직 끝나지 않은 방의 노래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방의 노래들이 우연히 같은 시간에 멈추는 일도 있었다. 아주 짧은 침묵이 찾아왔다. 그것이 바로 노래방의 공허라고 생각하던 그는 혼자 피식 웃었다.
 
  참 뻔질나게도 노래방에 들락거렸다.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하지 않으면서 언제부턴가 노래방이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다 그는 탁자 위에 놓인 자신이 마셨던 캔 음료수의 이름이 자신이 알던 그 이름이 아니라 그와 아주 흡사하지만 조금 다른, 이를 테면 ‘짜가’라는 것을 알아챘다. ‘쌕쌕’처럼 보였지만 ‘싹싹’이었다. 이것도 노래방의 또 다른 문화였다. 비알코올 맥주에 붙인 진짜 맥주와 흡사한 이름들, 새우깡까지도 유사 제품이 많았다.
 
  그는 한참 선곡집을 들여다본 뒤에 리모컨의 숫자판을 꼭꼭 누르고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미니 사이즈의 사이키델릭이 돌고 곧이어 전주곡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는 노래를 따라 부르지는 않았다. 재개발 아파트 안에서 발견되었다던 얼굴을 알지 못할 노인이 떠올랐다. 노인의 외투에 들어 있었다던 소설책 생각도 했다.
 
  아버지의 외투 주머니에도 늘 문고판 소설책이 들어 있곤 했다. 고속버스 안에서의 무료함을 달래준다고 했다. 아버지는 소설책의 여백에 글도 끼적거렸다. ‘나는 멜랑꼴리하다’ 아버지.
 
  그는 실로 오랜만에 아버지를 생각했다. 너무도 쓰지 않았던 그 단어의 기표와 기의가 하나가 될 때까지 그는 소리 내어 몇 번이나 아버지를 되뇌어 보았다.
 
  그가 유독 그 뉴스에 관심을 보인 것은 소설가적 관심 때문만이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그는 노인이라는 단어에 유독 민감하게 굴었다. 이제는 노인이 되었을 아버지 때문이었다. 길을 가다가도 그는 아버지 또래의 노인을 만나게 되면 오래 지켜보았다.
 
  아버지를 보지 않은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햇수를 따져보았다. 거의 20년이 다 되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집을 나섰을 때 그때 아버지는 노인이 아니었다. 20년. 도쿄 파자마 사내의 주검이 방치된 시간과 비슷했다.
 
  저 혼자 돌아가는 사이키델릭이 탁자 위에 얹혀진 그의 손등 위로 색 조각 그림자들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는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가 벌써 돌아가셨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 입학과 군 생활, 졸업과 결혼 등 중요한 시기에 아버지는 없었다.
 
  아버지도 파자마 사내처럼 쓸쓸히 죽어갔을까. 아버지는 쓸쓸했을까. 아버지는 쓸쓸했어도 아버지란 단어는 쓸쓸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어디선가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은 채 누워 있을지도 몰랐다. 20년 동안 아무에게도 안부를 묻지 않았던 도쿄의 파자마 사내처럼.
 
  그는 북받치는 감정에 몸을 부르르 떨었고 끈끈한 탁자 위에 머리를 묻었다. 일순 노래방 전체가 고요해졌다. 불과 3, 4초의 그 짧은 공허 속에서 그는 물었다.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있을 것인가.
 
 
  옛집은 소위 집장사로 불리던 사람들이 지어 한 번에 분양한 집이었다. 그 골목엔 대문 문고리까지 엇비슷한 단층 양옥이 두 줄 나란히 서 있었다. 그 골목의 아버지들의 나이 또한 엇비슷했다.
 
  아침이면 아버지들은 일제히 대문을 나와 네모난 도시락을 겨드랑이에 끼고 출근했다. 대부분 걸어 삼사십 분 거리에 있던 야금회사나 제분회사의 공원들이었다. 그리고 저녁 어스름 무렵이면 양은 빈 도시락 속의 젓가락이 부딪치는 소리를 울리며 아버지들은 귀가했다.
 
  철이 들 때까지도 그는 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골목의 다른 아버지들과는 다른 직종이라는 것만 알았다. 옷장 속엔 계절별로 양복이 몇 벌이나 걸려 있었다. 양복에 맞춰 넥타이도 여러 개였다. 골목의 다른 아버지들만 아니었다면 그는 아버지가 되면 다들 양복을 입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 골목에서 유일하게 대학씩이나 나온 남자였다. 구김 없는 양복 차림에 늘 서류 가방을 들었다. 그 가방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그와 여동생은 몰랐다. 출장이 잦은 걸로 보아 어쩌면 세일즈맨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도 스무 살을 훨씬 넘기고서였다.
 
  아버지는 단정했다. 집에 있을 때조차도 다른 집의 아버지들처럼 옷을 벗은 채 위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편안한 속옷 차림으로 마루를 돌아다니지도 않았다. 늘 셔츠를 입었고 겨울이면 그 위에 조끼를 덧입었다. 앞머리가 내려오지 않도록 포마드를 발라 뒤로 넘겼다. 좁은 마루엔 빌로드 천을 씌운 소파가 있었다.
 
  아버지는 커피를 즐겨 마셨고 소파에 앉아 책이나 잡지를 읽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잡지의 표지 인물로 미국의 정치학자인 헨리 키신저가 실리기도 했다. 고속버스 안에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생긴 책 읽는 습관은 집에서도 드러났다.
 
  아버지는 마치 고속버스 안인 것처럼 집에서도 늘 책을 붙들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아버지가 그는 여행자처럼 낯설었다. 아버지가 출장에서 돌아온 날이면 어머니는 아이들이 소란을 떨지 않도록 조심시켰다.
 
  “아버지 주무신다. 조용!”
 
  두발 자율화가 이루어지고 난 그 이듬해 교복 자율화가 이루어졌다. 검은색 교복에 검은색 신발, 검은색 가방으로 채워져 매일 장례식 분위기를 풍겼던 학교 앞 풍경은 하루아침에 울긋불긋한 유원지로 변했다.
 
  급작스러운 자율은 약간의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미처 등교 복장을 마련하지 못해 교복 차림으로 학교에 온 아이들도 있었고 평상복 차림에 검정 신발, 검정 가방을 메고 온 아이들도 있었다. 교복만 입고 학교에 다니다 막상 사복을 입고 학교에 오게 되면서 부모들의 걱정도 덩달아 늘어났다. 그 골목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교복 자율화를 기회로 삼은 의류업계에서는 발 빠르게 브랜드 의류를 론칭했고 브랜드 신발들도 시류에 맞춰 판촉을 강화했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다니던 때에는 가난한 집 아이건 부유한 집 아이건 차림새가 크게 다를 것 없었지만 교복을 벗어 버리자 집안의 경제력 차이가 그대로 드러났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패션 감각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차라리 교복을 입던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 역시 그런 아이들 중의 하나였다. 아이들이 모두 그의 신발만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새학기 들어 시장에서 산 운동화는 그의 가장 큰 콤플렉스로 자리 잡았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절대 사소하지 않게 여겨지는 시절이 바로 사춘기다.
 
  운동화 문제로 혼자서 고민하기를 한 달째, 오늘은 기필코 집에 가서 떼를 써보리라 다짐했다. 가로로 세 줄이 들어간 흰색 가죽 테니스화를 반드시 사고 말리라. 결전의 의지와 함께 대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이때만 해도 그는 알지 못했다. 그날 이후 집안은 급격한 쇠락을 거듭해 앞으로 브랜드 운동화 따위는 꿈도 꾸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을. 결국 그가 시장표 신발로 학창 시절을 마감하게 되리라는 것을.
 
  바뀐 집안의 공기를 그는 대번에 알아챘다. 평상시의 고요와는 달랐다. 지금 이 시간이면 어머니는 한창 저녁 준비를 하느라 분주할 시간이었다. 부엌에는 손질하다 만 음식 재료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끓어 넘친 찌개 때문에 곤로의 불이 꺼지면서 양은냄비 밑바닥이 온통 그을음투성이였다.
 
  그는 한참 뒤에야 앞집에 사는 또래의 여자애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출장길에서 돌아오던 아버지가 골목 입구에서 검은 승용차로 납치되어 어디론가로 사라졌다고 했다. 그가 정말이냐고 묻기도 전에 대문으로 어머니가 들어섰다. 그 장면을 목격한 이웃 주민의 전갈에 어머니는 앞치마를 두른 채 파출소까지 달려갔다 오는 참이었다.
 
  아버지의 행방을 파출소에서 알 리가 없었다. 파출소 순경의 정보력으로는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어머니는 그 장면을 목격한 아주머니를 다그쳤다.
 
  “우리 집 이가 맞아? 분명해?”
 
  아주머니는 오금을 박듯 야무지게 대답했다.
 
  “이 동네에서 그렇게 양복을 빼 입는 사람이 이 집 아저씨 말고 누가 있어?”
 
  아버지의 행방에 대한 수소문은 밤늦도록 이어졌다. 어머니가 접촉할 수 있는 한도 내의 최고위직 공무원은 동네 동장이었다. 그마저도 통장을 앞세우고서야 가능했다. 그날이 그날 같은 골목이었다. 느닷없는 사건이 못내 궁금한 골목 사람들이 동장네 대문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고 몇몇은 아예 대문 안으로 들어와 마당 안에 자리를 잡았다. 평소 뻐기는 듯한 표정을 하고 다니던 동장은 난감한 얼굴을 했다. 그의 정보력은 파출소 순경보다 나을 게 없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샌 어머니는 아홉 시가 되기 무섭게 아버지의 회사에 전화를 넣었다. 전화통화가 길어졌다. 한참 동안 수화기를 들고 있던 어머니의 팔이 부르르 떨렸다. 어머니는 무너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버지가 십수 년 동안 다니고 있다고 믿었던 회사에서 돌아온 답은 직원 중에 그런 이름의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회사, 한꺼번에 두 가지를 잃은 어머니는 넋이 빠진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경찰서에 찾아가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친척 중에는 어디 하나 연을 댈 만한 사람도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사이 동네에는 갖가지 소문이 나돌았다. 여러 가지 설이 난무했다. 사채를 쓰다 갚지 못해 해결사들에게 끌려갔다는 설, 딴살림을 차렸다가 그쪽 여자의 식구들에게 들켜 혼이 나고 있을 거라는 설, 자작극이라는 설 등 이웃사촌이라고 했던 동네 사람들은 어느새 누구보다도 더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다 은밀히 나돌게 된 소문이 바로 간첩설이었다.
 
  여기서도 사람들의 주장은 일치하지 않았다. 간첩 행위가 발각되어 안기부에 끌려간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간첩 활동에 회의를 느낀 아버지가 자수할 것을 두려워한 북측에서 아버지를 납치해 제거한 것이라는 설도 있었다. 양측은 팽팽히 맞섰고 이 사건으로 이웃 간에 주먹다짐까지 하는 일도 벌어졌다.
 
  어느 날 동생이 돌아와 어머니에게 대뜸 물었다.
 
  “엄마, 우리 아빠가 간첩이야?”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니고 있다던 직장이 거짓이라는 것을 안 뒤부터 어머니는 아버지가 고정 간첩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했다.
 
  동네 아저씨들은 모여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던 아버지가 아저씨들과 어울릴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의 입에서 새록새록 새로운 모습의 아버지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고 보니 그게 바로 간첩의 공작 활동이었던가 보다고 한 아저씨가 말을 꺼냈다. 새벽 두세 시쯤 잠이 안 와 잠깐 마당에 나와 섰는데 건너편 장독대 위에 시꺼먼 그림자가 보이더라고 했다.
 
  “거기 누, 누구슈?”
 
  혹시나 도둑인가 싶어 오금을 못 쓰겠더라고. 잠시 뒤에 우물쭈물 목소리가 건너왔다고 했다.
 
  “나야, 이 사람아.”
 
  그 시간 잠도 자지 않은 채 왜 아버지가 장독대에 올라가 있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했다.
 
  한 아저씨는 한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십이륙 사건까지 회고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놀라 골목으로 나왔는데 먼저 골목에 나와 뒷짐을 지고 서 있던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이제 세상도 좀 바뀌겠구먼.”
 
  이제 세상도 바뀌겠구먼?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바로 북의 공작이 아니고 뭐겠느냐고 했다. 자칫 자신도 포섭당했을 수도 있었겠다면서 한 아저씨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간첩이라는 말이 공포를 안겨주던 때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에 대한 진실이 밝혀진 뒤에도 동네 사람들은 두고두고 이 일을 이야기하곤 했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은 진실이 아니었다. 그 뒤로 간첩단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람들의 입에 아버지 이름이 먼저 거론되곤 했다. 한번 붙여진 간첩이라는 딱지는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의 시선과 의심이 아버지를 떠나게 한 건 아니었다.
 
  간첩이라니. 그 시절에 자라난 어린아이치고 간첩 신고를 하고 포상금을 받는 꿈을 꾸지 않은 아이가 몇이나 될까. 포상금이 자그마치 삼천만원이었다. 집 한 채를 사고도 남을 만한 어마어마하게 큰돈이었다.
 
  삐라를 주워 학교에 가져다주고 학용품을 받은 아이, 파출소에 가져다 줘서 표창을 받은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농담처럼 바로 앞집에 간첩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흙이 묻은 신발을 신고 버스를 타는 사람이 있나 유심히 바라보기도 했다.
 
  거리에 붙은 간첩 신고 포스터를 볼 때마다 어린 그도 가끔 간첩을 잡는 상상을 하곤 했다. 후환이 두렵지는 않았다. 포스터엔 신고자의 신원에 대해 철저히 비밀에 부치겠다는 말도 씌어 있었다. 안타까워했던 건 바로바로 앞집에 사는 간첩을 알아보지 못한 동네 사람들이었다.
 
  간첩은 단파 라디오를 가지고 다닌다는데 아버지가 평생 몸에 걸친 기계 뭉치라곤 낡은 손목시계가 전부였다. 그나마 전자식이 아니라 태엽을 감아줘야 하는 아날로그 시계였다. 집에 있는 가전제품이라고 해보았자 흑백 텔레비전 한 대에 금성사에서 나온 커다란 카세트 테이프 겸용 라디오가 전부였다. 이 라디오로 간첩 활동을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나마 라디오는 항상 거실에 놓여 있었다. 간첩들이 사용한다던 조그마한 라디오와 다르기는 했다.
 
  그해 봄이 끝날 무렵 골목 안으로 아버지가 들어섰다. 마치 출장 갔다 오는 것처럼 양복 차림에 여전히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이상했다. 동네 아저씨들은 거의 다 직장에 나가 있었고 아주머니 몇이 아버지를 보고 수군거렸다. 아버지의 모습은 초췌했다.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넥타이는 매지 않고 있었다.
 
 
  결국 해프닝으로 끝난 그해 봄의 그 사건은 가족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생각보다 길어진 조사가 끝나고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정말 아버지는 돌아온 것일까.
 
  그날 이후로 아버지는 한 번도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마루의 소파에 앉아 책을 읽지도 않았다. 양복을 입고 서류 가방을 들고 외출하지도 않았다. 우리를 앉히고 이야기를 들려주지도 않았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버지는 함구했다. 아버지는 그 뒤로 삼 년 뒤 여느 날처럼 양복을 입고 서류 가방을 들고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때까지 죄인처럼 지냈다. 그때 다친 것은 조사 과정에서 다친 아버지의 무릎이 아니라 자존심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는 훨씬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그 일에 연루되면서 어머니와 그는 아버지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을 하나, 둘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그의 가족이 알고 있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십수 년 동안 그가 알고 있던 아버지에 관한 모든 것이 다 거짓이었다.
 
  이름 하나만은 진짜였다. 종종 아버지가 떠벌리곤 했던 학창 시절도 물론 거짓이었다. 밝혀진 바대로라면 아버지는 한 번도 그 대학 근처에 얼씬한 적도 없었다. 정기적으로 다녀오던 출장도 다 거짓이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그렇게 철저히 속아 넘어갔다는 것에 대해 울분을 터뜨렸다. 아버지의 멱살을 잡고 욕을 퍼부었지만 아버지는 아무 변명도 늘어놓지 않았다.
 
  그 겨울 판잣집으로 올라가는 언덕에서 처음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만났다. 아버지는 그때도 책을 한 묶음이나 들고 있었다. 그 동네엔 지방에서 올라온 고학생들이 많았고 어머니는 당연히 아버지도 대학생일 거라고 믿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거짓말은 어머니로부터 시작된 것일 수도 있었다. 지금에서야 그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대학생이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아버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대답 없음을 긍정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어떻게 십수 년간이나 가족을 까맣게 속일 수 있는지,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품었던 의심을 풀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직까지도 아버지가 남파 간첩일 거라고 믿고 있었다. 낱낱이 드러난 사실에 의하면 남파 간첩이나 고정 간첩이라는 오명보다도 나을 것이 없기도 했다. 아버지는 한낱 사기꾼에 불과했다.
 
  집으로 돌아와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아버지가 그에게 쪽지 한 장을 내민 건 그해 가을이 다 지날 무렵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 아버지와 오랜만에 단 둘이 마주 앉았다. 아버지가 낯설었다. 아버지가 건넨 쪽지에는 ‘신정동 132-4번지’라고 씌어 있었다.
 
  신정동은 그가 살고 있는 동네의 이름이었지만 번지수는 엉뚱했다. 그곳은 동네 이름만 똑같달 뿐 전혀 다른 도시에 있는 동네 이름이었다. 남쪽으로 버스로 다섯 시간이나 떨어진 곳이었다.
 
  그는 수업이 없는 일요일, 쪽지와 계약서 하나를 들고 무작정 남쪽 도시로 내려갔다. 그 번지수의 집은 양옥 주택의 반지하를 개조해 만든 가게방이었다. 아버지가 느닷없이 사라지면서 그동안 줄곧 문이 닫혀 있던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건네준 열쇠로 문을 열었다. 이미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역력했다. 비닐 장판 위에는 커다란 구둣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부엌에는 곤로 하나와 양은 냄비, 수저 한 벌이 달랑 들어 있는 작은 찬장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방에는 책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책이 벽 쪽에 쌓여 있었다. 흐릿한 발자국이 선명한 것도 바로 방이 휑하니 비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벽 중간에 난 문을 열자 스펀지를 넣은 요와 이불, 베개가 반듯하게 개켜져 있었다. 책들은 아버지가 고속버스를 타면서 읽고 왔을 문고판들 일색이었다.
 
  그는 이곳까지 오는 동안 두려웠었다. 이 번지수에 있을 무언가 때문이었다. 혹시 이 번지수에 아버지의 다른 가족이 살고 있다면. 혹시나 그런 엄청난 사실이 아니더라도 이곳에 무전기라도 하나 있으면 어쩌나 생각이 복잡했다.
 
  하지만 세간도 없이 벽에 양복을 걸었을 못 몇 개와 플라스틱 옷걸이 하나뿐인 방을 보자 더욱 복잡해졌다. 아버지는 대체 왜 이곳에 왔었을까. 이곳에서 무엇을 했을까. 세간이 없는 방에서 그의 발자국 소리가 울렸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방문이 벌컥 열리고 아주머니 한 분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가 들어온 가게 쪽의 출구가 아니라 안집 마당과 연결된 부엌 쪽의 문이었다. 아주머니의 입에서 나온 아버지의 이름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낯선 이름이었고 아버지가 건네준 계약서상의 이름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김영준이라는 이름으로 거처했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아이가.”
 
  그 동네에서도 아버지가 간첩이란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모양이었다. 낯선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다고 했다.
 
  “우리는 김씨가 가족 없이 혼자 사는 홀애빈 줄 알았지.”
 
  아주머니는 이렇게 장성한 아들이 있는 줄 몰랐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버지를 간첩이라고 신고한 사람은 이곳에서 아버지와 형, 아우 하던 사내였다. 아버지는 서울에서와는 달리 이곳에 오면 주위의 남자들과 곧잘 어울렸다고 했다. 어느 날 술김에 “위에 처자식이 있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아버지가 있던 곳보다 서울이 위라면 한참 위였다. 그 당시 사람들은 반공 교육을 철저히 받았고 사행심에 젖어 있었다. 사내는 목돈이 한 번에 들어오는 상상을 했다 그때부터 사내는 아버지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골목으로 난 작은 창으로 사내는 방을 들여다보았다. 불 꺼진 빈 방일 때가 많았다. 아버지는 한 달에 한두 번 와서 고작 사나흘 머물렀다. 낮에는 양복 차림으로 서류 가방을 든 채 이곳저곳을 쏘다니다가 저녁이면 돌아와 가게의 문을 열었다.
 
  가게를 할 마음은 없어 보였다. 아버지는 깊은 밤까지 불을 켜놓고 베개로 가슴을 고인 채 책을 읽었다. 아버지는 어두운 골목 창가 옆에서 몸을 숨긴 한 사내가 작은 창으로 호시탐탐 아버지를 엿보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아버지가 쓰는 단어들 몇 개가 귀에 선 단어였다. 분명히 북한말이라고 사내는 믿었다. 언젠가 “이 더러운 세상, 언젠가 뒤집어져야 해”라고 아버지가 무심코 내뱉은 말이 사내의 생각에 무게를 실었다.
 
  신고가 접수되었고 아버지는 남쪽 도시가 아닌 서울에서 검거되었다.
 
  어떤 것이 아버지의 진짜 모습이었을까. 그는 아버지가 남긴 문고판들을 묶어 버렸다. 단 한 권 아버지가 즐겨 읽던 소설 ‘태양의 계절’은 버리지 않았다. 그곳 어딘가에 아버지의 낙서가 있었다. 휘리릭 책장을 넘기다 보니 조금 글씨가 번진 그 낙서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멜랑꼴리하다.”
 
  한 페이지는 일본어, 한 페이지는 한글로 된 일본어 교습용 책이었다.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그는 그 책을 읽었다. 1955년 일본에서 발표된 이시하라 신타로라는 작가의 소설이었다. 나중에야 그는 ‘태양의 계절’을 다시 한 번 정독했다. 그 작품이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다는 것도 물론 나중에 알게 되었다.
 
  권투부의 다쓰야와 에이코의 사랑. 에이코는 사랑하는 사람을 사고로 잃은 뒤에 자포자기로 이 남자 저 남자를 사귄다. 육체적 쾌락과 상처, 임신과 낙태 그리고 죽음. 그 후에 찾아오는 진정한 사랑. 열아홉 살이었던 그가 종잡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때나 그 소설을 다시 읽은 삼십대 초반이나 그 소설은 아이 둘에 아내가 있는 남자가 사로잡힐 만한 내용의 소설은 아니었다. 남쪽 도시에서도 서울에서도 아버지는 아버지의 진짜 모습으로 살지 않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단 하나 아버지의 진정이라면 아버지의 한 줄 낙서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멜랑꼴리하다”라는 단 한 줄.
 
  그날 아침이 생생하다.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양복을 갖춰 입고 한 손에는 서류 가방을 든 채 대문을 나섰다. 우리는 짧은 골목에서 꺾어져 아버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아버지를 배웅했다. 예전처럼 손을 흔들지는 않았다.
 
  예전과 달라진 것은 또 있었다. 알게 모르게 아버지가 그날 일로 살짝 다리를 절고 있다는 거였다.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어머니도 그도 알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와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문제는 아버지가 집을 나가던 그 무렵 골목의 다른 아저씨 한 명도 사라진 거였다. 아주머니는 우리 집에 와서 아버지의 행방을 물었고 자신의 남편 행방을 대라며 대성통곡했다. 아버지는 간첩이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요령부득이었다.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에 어머니는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했다.
 
  “그래도 진짜 간첩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니?”
 
  아버지가 조사를 받으러 간 동안 우리는 우리에게 닥쳐올 미래 때문에 불안해했다. 그들의 말처럼 아버지가 간첩단의 일원이라면…. 어머니는 감쪽같이 속아 남파 간첩과 결혼해서 낳은 두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끔찍하기만 했다. 철저히 모든 것에 속았다는 사실에 앞서 어린 자식들의 앞날에 붙여질 꼬리표가 걱정이었다. 골목 사람들의 입방아대로라면 아버지는 북쪽에 또 다른 가족이 있을지도 몰랐다.
 
  어머니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 과연 누구였나, 생각했다. 어머니는 다 거짓이어도 단 한마디만은 사실이라고 믿고 싶었을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했던 말,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
 
  그렇게 모진 일을 겪고도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한편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빨갱이 자식만은 면하게 해주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잊을 만하면 터지곤 하던 그 시절 간첩단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간첩이란 무시무시한 존재가 우리의 이웃에 늘 가까이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돌이켜보면 간첩이라 불리었던 사람들은 우리가 포스터에 그리던 것처럼 도깨비 얼굴을 한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은 영화에서 보던 간첩들처럼 요인을 암살하고 테러를 일삼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간첩이란 타이틀만 빼면 그들은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존재였다. 아침에 일어나 직장으로 출근하고 점심을 먹고 영화도 보며 소소한 작은 일상에 기뻐하고 슬퍼하는 소시민에 불과했다. 간첩단 사건이 발표될 때마다 당장 이 나라가 무너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대던 언론 보도도 기억난다. 그럴 때마다 그는 바싹 긴장했고 골목 안의 사람들의 시선이 그의 집에 모였다.
 
  그의 가족은 아버지가 골목을 빠져나가던 그날로부터 5년 뒤에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 골목의 주택들은 모두 재개발에 들어갔고 얼마 뒤에는 아파트가 세워질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날 사라졌던 아저씨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식도.
 
  아버지가 남쪽 도시에서 썼던 김영준이라는 이름. 아버지의 어릴 적 친구라는 것밖에는 아직도 알아낸 것이 없었다. 아버지가 사라진 뒤부터 그는 지금까지 종종거렸다. 학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졸업을 하고 난 뒤에도 동생의 학비를 대야 했다. 마흔이 다 된 지금까지도 그는 여전히 이 대학 저 대학으로 강의를 다니느라 종종대고 있었다.
 
  수많은 도시의 터미널에 내리고 그곳을 떠나면서 가끔 의문이 생겼다. 이렇게 비좁은 땅에 살면서 단 한 번도 아버지와 부딪히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아버지를 보았다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정말 간첩이 아니었을까. 아버지의 서류 가방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어머니는 딱 한 번 먼발치에서 아버지가 살짝 열어둔 그 가방 속을 보았다고 했다. 영어로 쓰인 서류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고 했는데 어머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생각하자면 아버지는 세일즈맨이었을 가능성이 제일 크다. 그 당시엔 그런 007가방에 손목시계나 수입 약을 가득 넣어 다니면서 파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가끔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양복 차림의 아버지가 서류 가방을 들고 출장을 떠난다. 장미 나무 한 그루가 심긴 마당에서 강아지와 놀던 어린 그와 여동생이 허겁지겁 아버지를 배웅한다.
 
  “아빠, 빠이빠이!”
 
 
  노래방 룸에서 자고 있던 그를 발견한 건 학생들이었다. 밤을 샌 학생들의 얼굴은 알전구 알처럼 핏기가 없었다. 학생들과 그는 국도 가장자리를 일렬로 서서 걸었다. 중간에 반은 떨어져 학교 기숙사로 들어갔다. 그 반의 반은 하숙집으로 가고 나머지 몇 명이 터미널까지 그를 배웅하러 따라왔다. 노래방에서 도망치면 안된다고 했던 여학생이 자연스럽게 그의 팔짱을 꼈다.
 
  “교수님, 아까 아니 어제 합평회 때요, 교수님께서 제 소설에 아픔이 없다고 하셨잖아요. 차라리 동화를 써라, 그러셨잖아요. 전요, 그 아픔이라는 게 뭔지 잘 모르겠는 거예요. 정말요.”
 
  옆에 서 있던 남학생 하나가 못마땅한 듯 여학생에게 눈을 흘겼다.
 
  “교수님, 얜요, 소설에 미쳤어요.”
 
  아까 아니 어제 합평회 시간에 좀 직접적인 평을 했다고 훌쩍이던 여학생이었다. 여학생이 울 줄 몰랐기 때문에 그는 난감해져서 얼굴이 다 붉어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여학생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그의 팔에 매달렸다.
 
  “교수님은 종이 땡 치면 금방 서울로 올라가시곤 했잖아요. 전 교수님하고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거든요. 신춘문예에 대해 궁금한 것도 많군요.”
 
  그는 하절기용 양복 외투를 걸치고 그때까지 그의 가방을 들고 있던 남학생에게서 가방을 건네 받았다. 제법 무거운 가방을 이곳까지 들어다 준 남학생이 고마웠다. 문득 지금은 헤어진 아내가 떠올랐다.
 
  아내와 그, 둘 다 지방 대학 이곳저곳으로 출강을 하던 때였다. 강사들 사이에 자신들을 낮춰 부르던 이른바 ‘보따리 장수’였다. 어느 날 아내가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책이 잔뜩 든 가방이 너무 무거웠어. 저번엔 어깨뼈가 탈골되었지. 그런데 당신 알았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당신은 당신 손톱 틈에 낀 가시만 아팠겠지.”
 
  아내를 알고 그런 아내의 표정을 그는 그날 처음 보았다. 이 세상의 모멸이란 모멸은 모두 담은, 증오란 증오는 모두 담은,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섞어찌개 냄비 같은 표정의 아내가 그에게 낮은 음성으로 내뱉었다.
 
  “당신은, 당신은 개새끼야.”
 
  한사코 첫차가 올 때까지 있겠다는 학생들을 되돌려 보냈다. 여학생과 나란히 앉아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긴 싫었다. 학생들을 배웅하고 뒤돌아서다 문득 그는 한 20미터쯤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대형 거울 속에 맺힌 형상 하나를 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큰 키와 구부정한 어깨 그리고 양복에 서류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아버지였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도 이렇게 지방의 한 터미널에서 첫차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터미널 휴게소에 앉아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아침 뉴스를 보았다. 어젯밤 노래방에서 들었던 그 노인의 소식이 이어졌다. 노인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것도 여전했다. 기억하는 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기사가 반복되었는데 마지막 부분 노인의 외투 주머니에서 소설책 한 권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만 쏙 빠져 있었다.
 
  그는 어젯밤 만취했었다. 요즘 들어 술 몇 잔에도 금방 취했다. 그렇다면 내가 잘못 들었던 걸까. 그럴 리가 없는데. 어쩌면 보도 성격이 강한 뉴스에 부적합한 내용이라 뒤늦게 삭제되었을 수도 있다. 뭐랄까, 소설책이라는 단어 하나로 금방 그도 연민이 생기지 않았던가. 마취 주사를 맞은 것처럼 졸음이 쏟아졌다.
 
  그는 플라스틱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나도 어딘가에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방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지금까지의 이름을 버리고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쌕쌕이 아니라 싹싹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그래서 지금까지도 아버지의 그 방에 대해 어머니에게 함구하고 있었던 아버지의 그 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없던 방. 그 방에 눕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리고 20년 30년이 지나도 아무도 그를 찾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아무에게도 발각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다면 절대로 그 어떤 소설책도 주머니 속에 넣어두지 않을 것이다.⊙
 
  그림 : 李友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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