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육영수 여사 탄생 100주년

희귀 사진으로 보는 육영수 여사

“나의 능력, 성의, 성실을 내놓았습니다”

  •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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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4월 28일 경기도 광주군 새마을지구에서 꽃다발을 받고 활짝 웃는 육영수 여사.
“어디까지나 나는 가난한 나라의, 남의 나라의 원조 없이는 살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대통령 부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명심할 것입니다. 이제 나는 나의 능력, 나의 성의, 그리고 나의 성실을 모든 사람 앞에 마음껏 이용하여 달라고 내놓았습니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제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듬해인 1964년에 부인 육영수(陸英修·1925~1974년) 여사가 쓴 글이다. 육 여사는 “이 자리가 얼마나 막중한, 두렵고 힘에 겨운 자리인데, 이 자리에 앉아 다른 잡념을 가질 수가 있을까요?”라는 말도 종종 했다.
 
충북 옥천에 있는 육영수 여사의 생가. ‘삼정승집’이라고 불리던 이 저택에서 육 여사는 옥천 부호 육종관과 이경령 사이에서 1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배화여고 시절의 육영수 여사. 후일 영부인 시절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영부인이 되면서 했던 다짐처럼 육영수 여사는 13년간, 지지리도 가난한 나라에서도 특히 소외된 빈자(貧者)들, 상이군인들, 한센병 환자들, 어린이들을 어루만졌고, ‘청와대 안의 야당’으로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남들은 하기 어려운 직언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을 겨냥했던 흉탄에 목련꽃이 지듯 이 세상을 떠났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는 포폄(褒貶)이 있었지만, 육 여사에 대해서는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나쁘게 말하는 이들이 없었다. 이런저런 구설에 오르고 심지어 영어(囹圄)의 몸이 된 이후의 불행한 영부인들과 대비된다.
 
  금년은 ‘영원한 국모(國母)’로 기억되는 육영수 여사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과 육영재단은 육 여사 탄생일인 11월 29일을 앞두고 포토에세이집 《당신은 우리들의 축복이었습니다》를 펴냈다. 이 책을 엮은 손정미 작가는 “박정희 대통령은 ‘육영수’라는, 국정을 음(陰)으로 보필하는 동반자가 있었기에 ‘한국 발전 프로젝트’라는 위업을 이뤄 냈다고 본다”면서 “100주년 포토에세이를 통해 박 대통령과 육 여사가 엄혹한 현실 속에서 빚어낸 영롱한 궤적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70년대 청와대 내부 배치도라든가, 육 여사가 남산에 세운 어린이회관은 1965년 미국 방문 때 관람했던 뉴욕 세계박람회장과 NASA 항공우주기지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 등 처음 공개되는 사진과 사실도 적지 않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과 육영재단, 손정미 작가의 동의를 얻어 육영수 여사와 관련된 희귀 사진들을 공개한다.⊙
 
1950년 12월 12일 대구 계산성당에서 열린 결혼식에서 주례인 허억 대구시장은 “신랑 육영수 군과 신부 박정희 양”이라고 해서 폭소를 자아냈다.
 
박정희–육영수 결혼식 청첩장.
 
육영수 여사가 공들여 만든 자수 작품. 박 대통령은 이 작품을 벽에 걸어 놓고 아꼈다.
 
신혼 초 강릉 경포대로 놀러 갔을 때의 모습.
 
둘째 딸 근영을 낳은 직후의 가족 사진.
 

 
육영수 여사는 고위 공직자 부인들과 ‘양지회’를 만들어 봉사활동에 앞장섰다. 양지회원들과 함께 국군 장병들에게 전달할 위문대(袋)를 만드는 모습.
 
1965년 12월 10일 강원도 홍천–춘천 지구의 파월(派越) 장병 집을 방문해 노모를 위로하는 육영수 여사.
 
육영수 여사가 1973년 7월 11일 서울적십자병원 봉사실에서 부녀봉사대원들과 함께 재해민 구호를 위한 옷을 만들고 있다.
 
1972년 5월 5일 어린이잔치가 열린 남산 어린이회관을 찾은 육영수 여사.
 
1967년 4월 4일 서울 용산역에서 휴가 나온 병사들에게 라면을 끓여 주는 육영수 여사. 육 여사는 병사들을 아들처럼 아꼈다.
 
1969년 3월 25일 서울대 기숙사인 정영사(正英舍)를 방문한 육영수 여사. 기숙사 이름은 건립에 도움을 준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
 
육영수 여사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를 청와대로 초청해 생일 파티를 열어 주었다.
 
1966년 11월 19일 청와대 주방에서 음식을 요리하고 있는 육영수 여사. 청와대 식사 메뉴는 단출했다.
 
1971년 1월 25일 경기도 광주대단지(現 성남시)를 돌아보는 육영수 여사.
 
1966년 9월 9일 육영수 여사는 서울 봉천동 양지사업소를 방문, 서민들의 어려운 살림을 돌아보았다.
 
육영수 여사는 1968년 6월 14일 김수환 대주교(당시)를 청와대로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1964년 12월 10일 서독 함보른 탄광에서 파독 광부·간호사들과 만난 육영수 여사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1964년 12월 8일 독일(당시 서독) 방문 당시 본의 베토벤할레에서 열린 환영 음악회가 끝난 후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주 독일 외교 사절들을 접견하는 육영수 여사.
 
1968년 9월 호주–뉴질랜드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그려 준 그림을 들어 보이며 즐거워하는 육 여사. 대통령 손가락 사이로 담배가 보인다.
 
1969년 7월 13일 일선 부대를 방문한 육영수 여사가 소총을 들어 보고 있다.
 
1974년 7월 26일 대통령 휴가지인 경남 진해 저도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육영수 여사에게 보여 주고 있다.
 
수영복 차림의 육영수 여사. 왼쪽 여성은 김성은 국방장관의 부인. 아들 박지만의 모습으로 보아 1960년대 중반의 사진으로 추정된다. 출처=《나의 잔이 넘치나이다》(김성은 지음)
 
이에리사–정현숙의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제패 직후인 1973년 4월 27일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탁구를 치는 육영수 여사. 육 여사는 탁구를 좋아했고, 가끔 박 대통령과 함께 즐겼다.
 
1968년 10월 어느 날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사진을 찍어 주고 있는 육 여사. 치파오 비슷한 양장 원피스 차림이 인상적이다.
 
1974년 8월 19일 육영수 여사의 유해를 실은 영구차를 배웅하는 박정희 대통령. 박 대통령은 영구차가 경복궁 담장을 돌 때까지 청와대 문앞에서 자리를 뜨지 않았다.
 
육영수 여사 탄생 100주년 포토에세이 《당신은 우리들의 축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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