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슬의 ‘건강의 지평선’ ⑭ 탈모 치료 건강보험 적용 논란

안검하수 시술(노무현 시술)은 건보 적용되는데, 눈매교정 시술은 안 되는 이유는?

  • 글 : 박한슬 의료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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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달콤한 약속, 그 비용은 필수 의료의 후퇴로 치러질 것
⊙ 탈모 치료 건보 적용, 사회보험의 기본 원리와 건보 재정 긴축과 모순
⊙ 역류성 식도염, 발기부전, 탈모 등, 치료법이 개발되면서 비로소 질병으로 정의돼
⊙ 탈모 치료 건보 적용은 건보 재정 건전성 이유로 약가 인하 추진하는 것과 모순

박한슬
1991년생. 차의과학대 약학과 졸업, 연세대 통계·데이터사이언스 석사 / 《중앙일보》 《주간조선》 칼럼니스트, 서울시 청년정책자문단 / 저서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숫자 한국》 외 다수
탈모인들을 겨냥한 정치인들의 선심성 공약 ‘모(毛)퓰리즘’을 풍자한 만평. 사진=조선DB
부친께서는 몇 년 전에 모발 이식을 받으셨다. 자녀들이 혼인 적령기에 접어들자, 혼주석에 섰을 때의 모습을 염려케 되신 탓이다. 물려받은 유전자(遺傳子) 때문인지, 나 역시 30대에 접어들고부턴 조금씩 증상이 보여 꾸준히 탈모(脫毛)약을 먹으며 관리를 했다. 새신랑 머리가 비어 보이고 싶진 않아서다. 이처럼 탈모는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단순히 머리숱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자존감은 물론 사회적 인식과도 직결된 꽤 중요한 문제긴 하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런 분위기를 기민하게 읽고, 탈모 치료의 건강보험 적용을 주문한 것인데 의료계와 야당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을 파탄 낼 부적절한 모(毛)퓰리즘 정책이란 거다.
 
  우리나라는 박정희 대통령이 의료보험 제도를 도입한 이래, 의학적인 치료의 필수성을 의료보험 적용의 기준으로 삼아왔다.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등 생명을 위협하거나 심각한 기능 장애를 초래하는 질병의 치료가 우선이지 탈모나 성형수술, 미용시술과 같은 부가적 의료 영역은 건강보험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이런 원칙을 뒤집고 탈모 치료에 대해서까지 건강보험 적용을 진행한다면, 개개인의 주관적 고통이나 미용 욕구까지 공적(公的) 보험이 감당해야 하는 부적절한 상황이 초래된다. 한정된 재정 내에서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미용 목적의 치료까지 건강보험에서 보장한다면, 정작 시급한 중증 질환자들에게 돌아갈 혜택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탈모 치료 건강보험 적용이 단순히 건강보험 적용 질환 목록에 ‘탈모’라는 항목 하나를 추가하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합의해 온 ‘치료해야만 하는 질병’의 정의를 지나치게 넓히는 일이 된다는 점이다. 비만, 성형, 노화(老化) 방지 등 탈모와 유사한 주변부 의료 수요들 역시 순차적으로 건강보험 적용을 요구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염려를 기우(杞憂)라 여길지도 모르나, 의료의 역사에서 질병 개념이 확장되어 온 궤적을 복기(復棋)하면 이는 필연에 가깝다. 기술 발전과 사회 변화가 질병 정의 확대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역류성 식도염의 경우
 
  의학의 역사를 겉으로만 살피면, 인류가 드러난 질병과 싸워 정복해 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의료의 발전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흔히 예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경제학에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라는 ‘세이의 법칙(say’s law)’이 있는데, 이걸 가장 잘 보여주는 분야가 의료다. 질병이 있어 치료법이 개발된 것이 아니라,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이 등장했기에 그것이 비로소 질병으로 명명(命名)된 사례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가장 친숙하면서 가까운 사례가 역류성 식도염(GERD)이다. 식후에 목이 타는 듯한 통증이나, 아침 공복(空腹)에 느껴지는 윗배 쪽의 찌릿찌릿함, 밤에 자려고 침대에 누웠을 때 신물이 올라오며 속이 따끔따끔한 특유의 증상을 많이들 겪어보셨을 테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증상은 독립된 질병이라기보다는 과식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 불편함, 혹은 노화에 따른 소화 기능 저하 정도로 치부되었다. 당시의 의료 기술로는 위산(胃酸)을 중화(中和)시키는 제산제(制酸劑)를 처방하거나, 증상이 극심한 경우 외과적 수술을 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역류성 식도염은 ‘관리해야 할 만성질환’이 아니라 ‘달래야 할 일시적 증상’이었다.
 
  이러다 1970년대 중반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영국의 제약사 스미스 클라인 & 프렌치(현 GSK)에서 위산의 높은 산도(酸度)를 일시적으로 중화하는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직접적인 위산의 분비를 억제하는 약물인 시메티딘(Cimetidine)을 개발해서다. 타가메트(Tagamet)라는 상품명으로 약이 팔리기 시작하면서 위산 역류로 인한 증상들은 효과적으로 통제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왔다.
 
  명확한 치료 수단이 생기자, 의료계는 이 증상을 겪는 환자군을 명확히 규정하고 진단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일시적 증상으로 여겨지던 속 쓰림은 비로소 만성질환으로 재정의됐다.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게, 제약회사가 수익을 위해 없던 병을 만들어냈다는 식의 음모론과는 결이 다르다. 오히려 치료제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 상태를 반드시 교정해야 할 병리적(病理的·pathological) 상태로 격상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한다는 얘기에 가깝다.
 
 
  발기부전과 탈모
 
  이러한 기술 발전에 의한 질병의 명명 현상은 비단 역류성 식도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1990년대 후반 등장한 발기부전(勃起不全) 치료제 비아그라 역시 노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여겨지던 성(性)기능 저하를 ‘발기부전’이라는 치료 가능한 질환으로 재범주화했다. 나이를 먹으며 성적 기력이 쇠하는 자연스러운 신체적 변화가 치료해야 마땅한 병리적 상태로 간주되기 시작한 것이다.
 
  탈모 역시 마찬가지다. 인류 역사 내내 존재해 왔으나, 피나스테리드(Finasteride)와 같은 경구용(經口用) 탈모 치료 약물과 모발 이식술이라는 확실한 교정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질병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과거에는 ‘머리가 벗어진 사람’이라는 신체적 특징에 불과했던 것이, 이제는 의학적 개입을 통해 복구해야만 하는 일종의 병리적 결핍 상태로 재규정된 셈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가 ‘질병’이라고 부르는 영역은 무한히 확장될 수밖에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연스러운 노화의 증상이라 여기던 상태는 곧 증상으로 분류되고, 마침내 치료법이 개발되면 질병으로 정의될 테다. 물론 이렇게 불편함을 교정할 기술이 늘어나는 건 긍정적인 일이다. 질병으로 정립됨으로써 수많은 환자가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가 관리하는 사회보험의 영역에서조차 기술 발전에 의해 정의되는 모든 ‘교정 가능한 불편함’을 질병으로 수용하기 시작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ADHD 환자의 급증
 
  치료 기술이 없던 질병을 발굴해 내는 것이 ‘공급 측면’에서의 의료화 과정이라면, 사회적 환경의 변화가 멀쩡하던 인간의 특성을 질병으로 규정하는 것은 ‘수요 측면’에서의 병리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늘고 있는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 장애(ADHD) 진단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ADHD 환자는 최근 5년 사이 5배 가까이 폭증했다. 아이는 줄어드는 추세인데,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빈발하는 ADHD 환자는 부쩍 느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국인의 뇌 구조가 불과 몇 년 사이에 집단적으로 변이(變異)를 일으킨 결과일까? 그럴 개연성은 극도로 낮다. 변한 것은 인간의 유전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正常性)의 기준이라고 보는 게 맞다.
 
  여기서 잠시 미국의 심리학자 톰 하트만(Thom Hartmann)이 제시한 ‘사냥꾼 대(對) 농부 가설(假說)’을 살펴보자. 하트만에 따르면, ADHD는 본질적으로 질환이라기보단 질병으로서 재정의된 인간 고유의 특성에 가깝다. 인류 역사의 99%를 차지하는 수렵채집(狩獵採集) 사회에서, 주의가 산만하다는 것은 숲속의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해 포식자를 피하거나 사냥감을 발견하는 탁월한 생존 능력이라 볼 수 있다. 충동성 또한 기회가 왔을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결단력으로 기능할 테다. 즉 지금 우리가 ADHD라고 부르는 특질들은 과거엔 생존에 유리한 ‘사냥꾼의 형질(形質)’이었던 셈이다. 숲을 주의 산만하게 두리번거리며 걸은 조상들은 버섯이나 열매 하나라도 더 딸 기회를 얻었을 테니, 그네의 유전자가 현생(現生) 인류에 더 강하게 남겨졌을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사회 변화와 특정 질병 대상자의 증가
 
  하지만 인류가 농경사회를 거쳐 고도로 조직화된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상황은 반전(反轉)되었다. 현대사회는 매일 정해진 시각에 출근해, 좁은 책상 앞에 앉아, 지루하고 반복적인 과업을 장시간 수행하는 근면성을 요구한다. 전형적인 ‘농부’의 삶이다. 씨를 뿌리고 수확할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려야 하는 농부의 사회에서, 사냥꾼의 기질은 더 이상 유용한 생존 기술이 아니라 사회생활에 곤란을 야기하는 일종의 장애(障礙)가 된다. 다시 말해, ADHD 환자가 늘어났다는 얘기는, 젊은 층의 뇌가 유독 기이한 변화를 일으켰다기보단 우리 사회가 허용하는 ‘정상적 집중력’의 범위가 극도로 협소해졌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변화가 그렇지 않나?
 
  우리나라와 같은 초경쟁 사회는 일말의 비효율도 용납하지 않는다. 점차 입시 경쟁이 치열해지며 학교는 학생들을 규격화된 입시 기계로 만들고, 내신부터 수능까지 오점을 남기지 않는 엄청난 수준의 집중을 요구하게 됐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문서 수발이나 대면 결재(決裁) 같은 일을 하는데도 상당한 업무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현재의 기업 환경은 가만히 한자리에 앉아 모든 걸 이메일과 사내(社內) 메신저로 단시간에 처리할 수 있다. 근로자에게도 기계적 수준의 집중력이 필요하게 된 거다. 이러니 이런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사회에서 ADHD 환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회 변화가 특정 질병의 대상자를 계속 늘리는 것이다.
 
  물론 ADHD가 실재하지 않는 허구의 질병이라거나, 당사자들이 겪는 고통이 가짜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전두엽(前頭葉)의 도파민 회로 기능 저하는 분명한 의학적 실체(實體)이며, 이로 인해 일상생활이 붕괴되는 이들에게 약물 치료는 구명줄과도 같다.
 
 
  탈모와 전립선 비대증의 차이
 
이재명 대통령은 성남시장 시절이던 2017년 대선 경선 출마 당시 공공의료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사진=뉴시스

  이렇지만 사회적 요구 수준이 높아질수록 과거에는 개성이나 성향의 범주에 머물던 특성들이 점차 ‘병리적 증상’으로 재배치되어 간다는 점을 묵과해선 안 된다. 이런 맥락에서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려는 탈모 치료 건강보험 논쟁에 대해 살펴보자. 탈모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준다는 건 앞으로 늘어날 새로운 질병까지도 모두 공적 자금으로 해결해 주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개인의 주관적 불편함의 비용을 사회에 전가하는 포퓰리즘인 것은 물론 탈모가 비정상적 상태란 인식을 국가가 나서서 강화하는 부적절한 개입인 셈이다.
 
  건강보험이라는 제도는 본질적으로 사회보험(social insurance)이다. 보험의 사전적(辭典的) 정의는 우연한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경제적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다수가 금전을 갹출하여 위험을 분산하는 제도다. 여기서 핵심은 위험의 예측 불가능성(unpredictability)과 그 결과가 초래하는 재앙적 본질에 있다. 암이나 뇌출혈, 교통사고와 같은 중증 외상(外傷)은 언제 누구에게 닥칠지 모르며, 발생했을 때 개인의 경제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니 공적 부조(扶助)가 개입해야 한다는 논리가 서고, 이를 국가가 제도화해 사회보험이 운영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재 논의되는 탈모 치료 급여화는 건강보험뿐만이 아니라 사회보험의 근간을 이루는 토대를 무너뜨리는 조치라고밖에 할 수 없다. 탈모가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회적 재난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고 독립적인 개체로 기능하기 위한 최소한의 물리적 조건을 침해하는 질병에 대해서만 보험 적용을 해주자는 것이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대원칙이다. 그러니 비슷한 수준의 경미한 질병처럼 보이더라도 전립선 비대증은 소변 배출이라는 인간의 근본적 생리기능을 저해하기에 건강보험 적용이 되는 것이며, 탈모증은 그러지 아니하기 때문에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
 
  재임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받아 소위 ‘노무현 수술’로도 불렸던 안검하수(眼瞼下垂) 시술은 미용적 목적도 없진 않으나, 인체의 중요한 기관인 눈의 기능을 저해하는 눈꺼풀 처짐을 교정하는 것이기에 건강보험 적용이 된다. 앞트임이나 뒤트임 같은 눈매교정 시술은 눈의 본질적 기능을 저해하는 걸 해결하고자 하는 게 아니니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 꽤 확고한 원칙이다.
 
 
  탈모 치료 급여화는 끝이 아니라 시작
 
문재인 정권은 2021년 8월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를 내건 ‘문재인 케어’를 추진했다. 사진=뉴시스

  그런데 원칙에도 맞지 않는 탈모를 건강보험에 넣어주면, 이런 원칙이 훼손되는 것에 더해 막대한 재정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 잠재적 탈모 인구는 약 1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적극적인 치료 의사를 가진 20%인 200만 명이 매달 병원을 찾는다고 가정해 보자. 탈모 치료는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탈모 진행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매일 약을 복용해야 하며, 이는 평생 지속되어야 하는 과정이다. 진찰료(초·재진)와 약제비, 조제료를 포함해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해야 할 금액을 1인당 월(月) 5만원으로만 산정해도, 연간 소요 재정은 1조2000억원에 달한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의 연간 유방암 진료비가 1조7000억원에 달하는 걸 고려하면, 생명에 중대한 위협을 가하는 주요 암 한 가지의 연간 진료비를 탈모 치료에 써야 한다는 얘기다.
 
  더 큰 재앙은 탈모 치료 급여화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에 있다. 탈모 치료가 급여화된다면, 형평성 논리를 앞세운 다른 질환들의 건강보험 진입 요구를 막을 명분이 사라진다. 예컨대 탈모의 주된 타깃은 비교적 젊은 남성들인데, 젊은 여성들이 똑같이 건보료를 내는데도 아무런 혜택을 보지 못한다 주장하면 다음 타자는 필연적으로 ‘미용시술’이 될 공산이 크다. 여드름, 안면 홍조, 혹은 단순 노화로 인한 피부 처짐도 대인(對人)기피와 사회적 활동 저해를 근거로 건강보험 진입을 노릴 것이다. 2024년 기준 국내 피부 미용 시장 규모는 연간 3조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 자체로도 탈모 치료 비용보다 2배 이상은 든다. 게다가 통상 보험 적용이 되면 환자 수가 몇 배로 늘어나는 걸 고려하면, 시장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탈모약 급여화의 대가
 
  건강보험 재정은 무한하지 않다. 한정된 재원하의 특정 분야에 대한 지출 증가는 필연적으로 다른 분야의 지출 감소를 의미한다. 탈모와 미용 영역으로 흘러 들어간 수조원은 어디서 충당될까. 건강보험료 인상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생명과 직결된 ‘필수 의료’ 분야의 삭감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현재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제약업계를 상대로 강력한 약가(藥價) 인하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제네릭 의약품의 약가 산정 비율을 대폭 낮추고, 실거래가제를 도입해 약값을 깎겠다는 방침이다. 이로 인해 국내 제약업계는 연간 최대 3조6000억원의 매출 감소와 R&D 투자 위축을 우려하며 생존권을 호소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탈모 치료 급여화는 이러한 재정 긴축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모순적인 행보다. 한쪽에서는 필수 의약품의 약가를 깎아 재정을 아끼려 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탈모약이라는 비필수 영역에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으려 하기 때문이다.
 

  탈모 치료에 쓰일 1조2000억원이면 중증 외상 센터 수십 개를 운영하고, 일부 희귀질환자 전체를 무상(無償) 치료하고도 남을 천문학적 금액이다. 탈모약 급여화의 대가(代價)는 결국 필수 의료 수가(酬價)의 동결, 고가(高價) 항암제 급여 지연, 그리고 국내 제약 산업의 경쟁력 약화라는 ‘보이지 않는 비용’으로 치러지게 될 것이다.
 
  게다가 본인 부담이 낮아지면 불필요한 의료 이용이 증가하는 도덕적 해이(解弛)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굳이 약을 먹지 않아도 될 경미한 탈모 환자들까지 병원으로 몰려들 것이다. “어차피 보험 처리가 되니 일단 처방받고 보자”는 심리가 만연해져 귀한 건강보험 재정이 녹아내리는 것이다.
 
 
  ‘미끄러운 비탈길’
 
문재인 케어에 대해 의사단체들은 ‘생색내기 의료 정책’ ‘의료 파탄’이라고 반발했다. 사진=조선DB

  논리학에서 말하는 ‘미끄러운 비탈길’ 오류는 정책학의 영역에선 오류가 아니라 실재하는 경로 의존성이다. 한번 비탈길에 발을 디디면 중력(重力)에 의해 끝까지 미끄러져 내려갈 수밖에 없듯, 탈모라는 빗장이 풀리는 순간 우리는 사소한 불편함까지도 모두 건강보험에 넣을 수밖에 없다. 탈모는 되는데 발기부전은 왜 안 되는가? 노화로 인한 주름 리프팅은? 삶의 질과 심리적 위축을 근거로 들이대면, 이 모든 미용·성형 시술에 대한 비급여화의 논리적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필수 의료로 향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고가 항암제의 보험 적용을 기다리다 숨을 거두는 암 환자들이 수두룩하고, 적자를 이유로 폐쇄되는 필수 진료과와 인력 부족으로 갈려나가는 필수 의료진의 인건비가 모자라 한국 의료를 늪으로 빠트리고 있다. 게다가 초고령 사회 진입으로 인한 의료비 폭증은 이미 시작되었고, 생산가능 인구 감소로 보험료 수입 기반은 줄어들고 있다. 마른 수건을 짜내듯 지출을 통제하고 필수 의료 중심으로 체질을 개선해도 모자랄 판에, 표(票)를 얻기 위해 건보 재정이라는 공유지(共有地)를 헐어 쓰겠다는 발상은 국가 지도자의 자질을 의심케 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탈모 치료 급여화 논쟁이 단순히 하나의 정책 선택을 둘러싼 찬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공적 자원을 어떤 원칙 아래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라는 점이다. 건강보험은 개인의 삶의 질을 최대한 고르게 끌어올리기 위한 만능 복지 수단이 아니라, 우연성과 파국성을 지닌 위험으로부터 사회 구성원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이 경계가 흐려질수록 건강보험은 사회적 연대(連帶)의 제도가 아니라, 각자의 불편을 경쟁적으로 청구하는 재정 배분 장치로 전락하게 된다. 탈모 치료를 급여화하는 순간, 국가는 의학적 필요와 사회적 욕망을 구분해 왔던 마지막 선을 스스로 지우는 셈이 된다.
 
 
  나도 탈모 환자지만…
 
  정치는 언제나 달콤한 약속으로 유혹하지만, 의료 정책의 결과는 느리게, 그러나 확실하게 누적된다. 오늘은 탈모지만 내일은 또 다른 ‘불편함’이 차례를 기다릴 것이고, 그 비용은 결국 침묵 속에서 필수 의료의 후퇴로 치러질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불편을 모두 국가가 해결해 주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무엇을 공적으로 책임지고 무엇을 개인의 선택과 부담으로 남겨둘 것인지에 대한 냉정한 합의다. 탈모 치료 급여화 논쟁은 그 합의를 재확인하라는 경고음에 가깝다.
 
  이를 외면한다면, 언젠가 우리는 정말 치료가 필요한 순간에, 정작 기댈 보험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나도 탈모 환자지만, 이런 정책은 도입되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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