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폰다, 집단의 정의보다 소수의 가치를 대변하는 진보적 인물로 등장
⊙ 폰다, 극중 인물의 성격과 연기를 두고 감독과 충돌할 정도
⊙ 래드, 총잡이 인생에 염증을 느껴 홀로 낯선 곳을 떠도는 사나이
⊙ 래드, B 영화 전문 배우로 출발. <백주의 탈출(1942)>에 출연해 순식간에 유명해져
安正孝
⊙ 71세.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 《코리아헤럴드》 기자, 《코리아타임즈》 기자·문화체육부장,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 주요 작품으로 소설 《전쟁과 도시》(후에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은마는 오지 않는다》(후에 《銀馬》) 《악부전》 《솔섬》 등이 있다.
번역서로 《백년동안의 고독》을 비롯해 150여 권이 있다.
⊙ 폰다, 극중 인물의 성격과 연기를 두고 감독과 충돌할 정도
⊙ 래드, 총잡이 인생에 염증을 느껴 홀로 낯선 곳을 떠도는 사나이
⊙ 래드, B 영화 전문 배우로 출발. <백주의 탈출(1942)>에 출연해 순식간에 유명해져
安正孝
⊙ 71세.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 《코리아헤럴드》 기자, 《코리아타임즈》 기자·문화체육부장,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 주요 작품으로 소설 《전쟁과 도시》(후에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은마는 오지 않는다》(후에 《銀馬》) 《악부전》 《솔섬》 등이 있다.
번역서로 《백년동안의 고독》을 비롯해 150여 권이 있다.
비평적 관점에서 ‘작가’라고 하면, 작품을 만드는 전 과정에서 뚜렷한 개성과 독특한 예술적 통제력을 발휘해, 개인적인 시각과 주체성을 견지하며 영화를 만들기 때문에, 그의 모든 작품은 기교와 형식과 주제에서 일관되는 어떤 성격과 특징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우리는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가 무엇인지를 얼른 설명하기는 힘들어도, 감으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잘 안다.
사람들은 트뤼포와 장-뤽 고다르뿐 아니라, 장이머우(張藝謨)와 구로사와 아키라, 데이비드 린과 빌리 와일더, 페데리코 펠리니와 팀 버튼, 그리고 임권택이나 신상옥 같은 감독이라면 ‘작가’라고 부르기를 서슴지 않는다. 도시형 피로감을 표현하는 솜씨가 뛰어난 시드니 루멧 그리고 루멧과 비슷한 연출 분위기로 파시스트 형사 더티 해리를 탄생시킨 돈 시겔(Don 또는 Donald Siegel, 1912~91) 역시 그런 호칭을 듣기에 부족함이 없겠다.
진정한 ‘작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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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사 매디건>에서는 리처드 위드막과 헨리 폰다가 맡은 역할이 따로 있다. |
<형사 매디건>에서는 일선에서 활약하는 형사 위드막이 경찰 조직 하부구조의 애환을 대변하는 하나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범죄는 시간제로 벌어지는 규칙적인 직업이나 행사가 아니어서, 언제 자신이 폭력을 쓰거나 타인에게 당해야 할지 알 길이 없고, 그래서 위드막은 육체적으로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속절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술과 용돈이 필요해서 엉터리 정보를 제공하는 “15년 지기 건달 친구” 때문에 힘겨운 시간을 맥이 빠지게 낭비한다.
그렇다고 해서 고된 직장 생활에 대한 보상을 그가 가정에서 받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집 안에 갇혀 지내는 삶에 지쳐 답답해진 아내 잉거 스티븐스는 목숨을 항상 내걸고 다니는 직업을 버리고 “남들처럼 쉽게 돈 벌고 출세해 편하게 살자”면서 끊임없이 짜증을 부린다. 그리고 관객은 그녀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기 때문에 더욱 답답해진다.
집에 가더라도 휴식을 취할 가망이 없어서 위드막은 결혼 전에 애인이었던 여가수 셰리 노드를 찾아간다. 그녀의 집에서 지친 몸을 쉬려고 위드막이 잠시 눈을 붙이려고 하자 노드는 “날 사랑해 줘도 괜찮다”면서 옛정을 살려보려고 유혹하지만, 그는 “아내를 사랑한다”면서 옷을 입은 채로 그냥 잠든다. 그러다가 결국 범인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위드막이 경솔한 무모함에 빠져 개죽음을 당하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당해야 하는지 막 화가 날 지경이다.
‘경찰 영화’의 범주와 讀解 방법
이렇듯 현장에서 형사 위드막이 겪는 상황의 슬픔이 워낙 절실하고 압도적이어서, 상부구조의 애환을 대변하는 경찰청장 헨리 폰다의 축이 기울어 존재가치가 그만큼 삭감되기는 했지만, <형사 매디건>을 가만히 살펴보면 폰다를 통해 전달되는 피로감 또한 만만치 않다. 영화 <형사 매디건>은 평범한 활극이 아니라 경찰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조직을 상부와 하부의 시각을 병치시키며 입체적으로 해부하는 심리극에 가깝기 때문이다.
경찰관이 등장하는 영화라면 우리는 우선 폭력을 미화하거나 혐오하는 언어에만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멍청영화나, 과속으로 역주행까지 하며 신나게 쫓고 쫓기는 ‘개와 고양이(cat-and-mouse)’ 추격전, 그리고 두뇌싸움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추리물 따위를 먼저 생각한다. 이러한 일선 경찰관들의 생생한 얘기는 많은 경우 수사관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노출된다. 예를 들면 <푸른 제복의 기사(The Blue Knight)>처럼 슬픈 경찰 소설을 많이 써서 영화나 텔레비전 극으로 영상화돼 널리 알려진 조셉 웜보(Joseph Aloysius Wambaugh, Jr., 1937~)는 1960년부터 14년 동안 LAPD에서 현역 경험을 쌓았던 작가였다.
<형사 매디건>의 원작 소설 《경찰청장(Commissioner, 1962)》의 저자 리처드 도허티(Richard Dougherty)는 사실 확인을 생명으로 삼는 언론인(《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뉴욕지국장) 출신일 뿐 아니라 1950년대 뉴욕 경찰청장의 대민(對民)관계를 담당한 보좌역을 지냈기 때문에, 관념적인 교육이 아니라 극사실주의적 체험에서 우러난 현장 감각이 뛰어났고, 행정가로서의 정치적인 시각까지 두루 갖추었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 <형사 매디건>을 보면서 두 개의 축을 이룬 지친 영웅들의 고달픈 인생 얘기에 폭넓게 그리고 깊이 공감한다.
영화에서 위드막은, 어느 정육점 주인이 추수감사절을 맞아 경찰 간부들에게 돌린 칠면조 고기를 다들 잘 받아먹었지만, 꼬장꼬장한 폰다 청장 혼자 뇌물이라고 생각해서 ‘연말 선물’을 되돌려보낸 사건을 몇 차례 언급한다. 그런가 하면 폰다는, 술집이나 식당에서 베푸는 작은 ‘호의’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먹는 위드막 형사가 “나보다 잘 먹고 잘산다”며 못마땅해 한다.
영화에서 기둥줄거리에 별로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듯싶은 이런 심리적인 충돌이 왜 여러 차례 거듭해서 언급되었을까? 물론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영화를 읽는 독해(reading) 방법은 여러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줄거리를 따라가면서 영화가 하는 얘기를 그냥 듣기만 하는 차원, 원시적인 언어와 직설적인 표현을 써가며 ‘작가’가 겉으로는 잘 드러내지 않는 의미심장한 얘기를 작품의 행간에서 읽어내는 공감의 차원, 그리고 문학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작가의 시각과 사상을 따르거나 비판하는 차원까지도 넘어서, 작가가 발언하지 않은 상징적인 언급을 독립된 시각으로 해석해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는 기쁨의 차원 — 이렇게 다양한 차원이 존재하기 때문에 관객은 취향과 수준에 따라 같은 영화를 나란히 앉아 보면서 서로 전혀 다른 작품을 감상하는 현상이 생겨난다.
존 포드와 헨리 폰다의 충돌
영화의 제목으로 내세운 ‘형사 매디건’의 행적에서 가끔 눈을 돌려 경찰청장 헨리 폰다의 일상을 조심스럽게 추적해 보면, 관객은 돈 시겔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지닌 기대치에 걸맞은 독해가 가능해지고, 그러면 정치적인 역학의 차원에서 범죄사회를 관찰하는 하향성 시각을 발견하게 된다.
폰다 청장은 법에 저항하고 불평하는 세력이나 집단 그리고 지역 유지들을 끊임없이 설득하거나 무마하느라 곳곳에서 짜증스러운 인내심의 시험을 받는다. 경박한 입으로 경찰을 비판하는 시민들의 소리를 경계하며 그는 스스로 부정을 저지르지 않을 뿐 아니라 동료들까지 끊임없이 감시해야 한다. 명품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며느리 때문에 아들이 빚에 쪼들리다가 단속 대상인 업자에게서 돈을 받아먹어 난처한 입장이 된 제임스 휘트모어 서장을 놓고 원칙과 우정 사이에서 고달픈 갈등을 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형사 매디건>에는 원작자 도허티와 작가 시겔 감독뿐 아니라 배우로서 헨리 폰다가 해석하는 정치적 시각 또한 존재한다. 사람들은 연기자의 위상을 흔히 작가가 써놓은 내용을 감독이 시키는 대로 재현하는 꼭두각시 정도로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그런 수준의 배우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입지와 예술세계를 확립한 큰 배우들은 다르다.
예를 들면 헨리 폰다가 <형사 매디건>에 출연한다는 행동과 선택 자체가 하나의 분명한 발언이 된다. 커크 더글러스가 <삶의 열망(Lust for Life, 1977)>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역을 맡았을 때, 존 웨인은 “왜 그런 미친놈 역할을 하려고 그러느냐”는 농담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말끔한 신사로서의 정체성을 열심히 가꾸었던 캐리 그랜트는 <아름다운 질투>에서 주인공(그레고리 펙)이 로렌 바콜과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같이 놀고도 아침에는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고주망태가 되는 첫 장면이 자신의 위상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해서 출연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렇게 무슨 역할을 맡고, 어떤 발언을 하고 싶은지에 관해 선택권을 발휘하는 배우들 가운데, 감독이 그의 작품에 적절하리라고 판단해 논리적으로 선택한 연기자는 이미 만인의 인정을 받은 각별한 관점과 확고한 시각을 지닌 존재인 셈이다. 하지만 때로는 감독이 배우에게서 보는 인간상과 배우 스스로 생각하는 인물상에는 차이가 나기도 한다. 존 포드와 헨리 폰다가 충돌했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수정주의자들로부터 시각이 편향적이라고 집중공격을 받았던 존 포드는, 실제로 발생했던 역사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마지막 서부극 <샤이엔>을 발표하면서 “아메리카 원주민을 위한 애가(an elegy for the Native Americans)”라고 정의했었다. 그동안 그가 여러 영화에서 인디언을 흉악한 야만인으로만 그려냈던 ‘잘못된 해석’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물론 <샤이엔>은 서부극이 수정주의로 가는 뚜렷한 이정표 노릇을 스스로 떠맡았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존 포드의 한계는 다시 노출됐다.
영화에서는 사실성을 조금이나마 더 살리려고 많은 부분에서 샤이엔 전사들은 인디언 언어로 엄숙하고 장엄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런데 여기서 샤이엔 인디언들이 주고받은 대화는 샤이엔 민족의 말이 아니라 나바호 민족의 말이었으며, 그것도 온갖 음담패설을 어디에선가 잘못 채집해 뜻도 전혀 모르면서 남용했기 때문에, 나바호 후손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지금까지 박장대소를 즐긴다고 한다. 언젠가 할리우드 키드는 텔레비전 연속물 〈MASH〉를 AFKN-TV에서 보다가, 피란을 가는 한국 아줌마가 어린 아들을 “김씨! 김씨!” 부르는 장면을 보고 한참 웃었던 적이 있었는데, 만일 <샤이엔>에서 늙은 인디언 추장이 백성들을 모아놓고 변강쇠 언어로 일장훈시를 늘어놓았다면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기 바란다.
多數보다 少數의 가치에 주목한 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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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날의 링컨>은 전기 영화라기보다는 애국적 국수주의가 팽배한 해병대 전쟁영화를 연상시킨다. |
존 포드는 <젊은 날의 링컨>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간섭이 심하기로 유명한 제작자 대릴 F. 재넉과 편집 통제권을 놓고 심하게 대립해, 혹시 마음에 안 드는 장면을 재넉이 영화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아예 미리 없애버리는 작업까지 병행했다고 한다. 이렇게 작가의식이 투철했던 포드는 <미스터 로버츠(Mister Roberts, 1955)>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제임스 캐그니뿐 아니라 폰다와도 마찰이 무척 심했다고 한다.
조슈아 로건이 무대극으로 공연한 <미스터 로버츠>에서 이미 같은 역을 오랫동안 맡아왔던 폰다는 작품과 주인공의 인물구성에 대해 감독과 불화가 끊이지 않다가, 결국 포드가 폰다의 턱을 후려갈기는 불상사가 발생한 다음 연출자가 머빈 리로이로 바뀌었고, 포드와 폰다는 영원히 갈라섰다. 다 큰 어른들이 영화를 찍다 말고 도대체 왜 주먹을 날리고 찢어지기까지 하는가 싶기도 하지만, 배우와 감독의 주도권 싸움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기에 여기 소개한다. 존 웨인도 <리오 브라보>를 촬영할 때 하워드 혹스가 일단 연출 지시를 한 다음, 자신의 모습이 돋보이도록 다른 배우들에게 따로 몰래 “이렇게 이렇게 하라”는 부탁을 자주 했다고 한다.
스스로 애국적 반공주의자임을 적극적으로 천명했던 개리 쿠퍼나 존 웨인과는 달리, 은막에 투영된 헨리 폰다는 집단의 정의와 다수의 권리보다 소수의 가치를 대변하는 진보적(liberal) 인물로서, 비평가 필립 켐프는 그를 “조용하고 고뇌에 찬 존엄성을 대변”하며, “성급히 화를 내지 않고 폭력보다는 설득으로 대결”하고, “우울한 숙명론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마지못해서 그러나 집요하게 저항하는 개인의 역에 잘 어울리는” 연기자라고 평했다.
폰다는 <미스터 로버츠>에서 희극적인 폭군 함장 제임스 캐그니와 맞서 수병들의 편을 들어 야자수를 바다에 집어던지고, <옥스보우의 비극>에서는 무고한 세 사람을 교수형에 처하려는 집단을 맹렬히 비판한다.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존 스타인벡의 소설을 존 포드가 영화로 만든 <분노의 포도>에서는 약자들이 시달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겠다(I will be there)”고 약속하며 길을 떠난다.
“약자가 시달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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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주의적인 미국인의 표상으로서 헨리 폰다를 가장 잘 부각시킨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 |
집단의 총체적 신념이 뚜렷한 소신을 피력하는 개인의 도전을 받고 서서히 선회하는 점진적인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12인의 성난 사람들>이 어떤 공포극이나 억지 추리극보다 훨씬 핍진(逼眞)해, 평화롭게 침잠하는 감동의 뒷맛을 느끼게 만드는 작품임을 관객은 절실하게 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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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선의 선택>은 우리나라의 불결한 정치판을 돌이켜보게 만드는 절실한 작품이다. |
“민중의 대변자(man of the people)”임을 자칭하는 진보적 풀뿌리 민주주의자(liberal populist) 클리프 로버트슨의 진영에서는, 국민이 어떻고 서민이 어떻고 농어민이 어떻고 반액등록금이 어떻고 입으로만 온갖 사탕발림에 바쁜 우리나라 정치 모리배들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봐도 사실 ‘민중’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듯싶다. 그들은 폰다가 숨겨온 신경쇠약의 병력을 폭로해 “한방에 보내버리겠다”는 똥칠하기 전략에 매진한다.
이런 대목에서는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에서 진동하는 온갖 악취를 맡게 된다. ‘자질’ 검증을 한다면서 BBK 의혹, 병역 기피, 논문 베끼기,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학력 위조 따위의 유치한 판박이 폭로전과 저속한 언어를 구사하는 비방전에 열심인 대한민국의 정치꾼들의 작태에 구역질이 나는 사람들이라면, ‘자질’이나 ‘실력’이나 ‘인품’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상대방의 인격을 깎아내릴 ‘저질’과 ‘무능’과 ‘야만성’ 발굴에 바쁠 따름인 로버트슨의 선거대책본부의 작태를 보고, “아, 미국도 별 수 없구나”며 크게 위안을 받지 않을까 싶다.
이런 ‘인신공격’을 영어로는 “인간성 암살(character assassination)”이라고 한다. 참 멋진 표현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은 ‘인간성 暗殺’
어쨌든 헨리 폰다는 경쟁자인 클리프 로버트슨의 원초적인 행태를 보고는 저런 정치꾼에게 대권을 넘겨주면 나라가 망한다는 확신이 점점 굳어지지만, 그래도 적군의 똥칠 전략이 위력을 발휘해 조금씩 자신의 인간적 가치가 하락하고, 대선 행보에서 열세로 밀려나는 현실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선량한 경쟁만으로는 승산이 없음을 깨닫게 된 폰다 경선주자의 참모진에서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불리한 처지를 만회할 궁여지책을 찾기 시작한다.
폰다의 보좌관 케빈 매카티는 정치업자에게 흠집을 낼 만한 정보를 비싼 값으로 팔아먹으려는 제보자 셸리 허만으로부터 적장 로버트슨 주자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알래스카에서 군복무를 하던 시기에 동성애를 나눴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알아낸다. 매카티는 똥물 끼얹기 반격을 개시하자고 신이 나서 설친다. 폰다는 그런 치사한 짓은 못 하겠다고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러나 폰다를 밀어주던 전임 대통령 리 트레이시는 더 이상 이상주의적인 망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어서 행동을 취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한다.
실용주의적 정치 노선을 추구하는 트레이시가 “싸움의 종류와 전략의 질을 가리지 않으면서 폭로전에 나설 각오나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서 어떤 적과 전쟁을 벌여야 할지 모르는 아메리카합중국의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면서 강력하게 밀어대자, 그의 확고한 요구를 반쯤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폰다는 결국 절충안을 낸다.
핵전쟁이 벌어질 경우에 대피하는 방공호처럼 생긴 지하 창고에서 폰다는 로버트슨을 만나 담판을 벌인다. 동성애 사실을 폭로하지 않을 테니까 얌전히 경선에서 물러나라는 폰다의 협박에 로버트슨은 “폭로는 아무나 하나”라면서 코웃음을 친다. 정치는 폰다처럼 고지식하고 고상한 위인들이 하는 장난이 아니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최선의 선택>이 조명한 정치꾼들이란 끼리끼리 모여 작당을 하고는, (칼릴 지브란의 말마따나) 농사를 짓거나 공장에 나가 생산적인 일 따위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선동과 기만술로 다수의 환심을 사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잡아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장사치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혐오감을 느낀 헨리 폰다는 “충성심만 없을 뿐 개와 똑같은 행동을 일삼는 정치꾼들”의 야만성에 신물이 나서, 타락하기를 끝까지 거부하며 경선을 포기한다. 하지만 그는 순순히 그냥 물러나지 않고, 로버트슨이 아닌 다른 주자를 전폭적으로 지지해, 판도를 뒤집어엎는다.
대통령 헨리 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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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효가 그린 헨리 폰다 캐리커처. |
항로를 벗어난 민간 항공기를 소련의 핵공격용 폭격기라고 인식한 전략통제체제의 오류로 인해 20메가톤의 핵폭탄을 적재한 ‘보복기(報復機, Vindicator)’ 6대로 구성된 1개 편대가 모스크바를 공격하라는 잘못된 명령을 받고 임무 수행을 시작한다. 일단 핵전쟁이 발발하면 적의 요충지를 초토화해 완전무결한 보복을 가함으로써 적의 선제공격을 억제하려고 구축한, 통제가 불능한 자멸의 각본을 스스로 작동시킨 결과다.
폭격 비행대가 핵전쟁 대상지역의 전초선을 넘어 적지로 진입하자 재앙을 막으려는 폰다 대통령은 아군에게 격추 명령을 내리지만, 완벽한 방어 체제를 갖춘 보복기들은 유도탄 공격을 피해 무사히 목표물로 향한다. 그들은 대통령이 직접 육성으로 귀환 명령을 내리더라도 믿지 않고 최초의 명령을 수행하도록 훈련을 받았으므로, 다급해진 폰다 대통령은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사고가 발생했음을 알리고, 소련 영공으로 들어선 폭격기들을 격추시켜 달라고 협조를 요청하기에 이른다.
적국에 대한 의심과 경계 그리고 집요한 경쟁의식 속에서 최고 수준의 군사 기밀까지 알려주면서 핵전쟁을 막으려는 양국의 절대적인 협조가 진행되기는 하지만, 막강한 최정예 편대는 4대만 격추되고 나머지 두 대는 모스크바까지 접근한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나머지 비행기를 자력으로 격추시키지 못하면, 무마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으로 대륙간탄도유도탄을 불가피하게 발사하겠다고 경고한다.
폰다 대통령은 결국 마지막 협상안을 내놓는다. 모스크바가 공격을 받으면, 같은 시각에 아무런 경고를 하지 않은 채로 뉴욕에 20메가톤짜리 핵폭탄 두 개를 미 공군이 투하하겠다는 합의가 이루어진다. 폭탄이 맨해튼으로 떨어지는 순간, 센트럴 파크에서는 연인들이 풀밭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고, 길거리에서는 접촉사고를 일으킨 택시 기사 두 사람이 언쟁을 벌이고, 학교에서 아이들이 줄지어 걸어가고, 집 앞 층계에 늘어앉은 남자들 앞에서 흑인 아가씨가 대낮에 춤 솜씨를 자랑하고, 책방에서 중년 남자가 기웃거리고, 노부부가 버스를 기다리고, 타임스 광장에서 남자가 개를 데리고 산책하며, 비둘기 떼가 땅바닥을 쪼고, 동물원 물개가 머리를 흔든다.
상대방에게 공격하고 방어할 똑같은 기회를 줘야 한다는 서부인의 기사도가 그렇게 실천되는 순간에, 뉴욕을 방문 중이던 헨리 폰다 대통령의 부인은 워싱턴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한 채로 어디선가 죽는다.
권력의 생리를 아는 쌍권총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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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락>에서 치안관 헨리 폰다가 악당들을 제압할 때, 어딘가 숨어서 총질을 하려는 자들은 앤서니 퀸(뒤쪽)이 알아서 청소한다. |
1880년대 유타주의 작은 광산촌 워락은 무법천지다. 목동 출신의 불량배 톰 드레이크 일당은 면도를 하다가 실수로 뺨을 벤 이발사를 길바닥에서 쏴 죽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보안관을 괴롭히다가 조롱거리로 만들어 마을에서 추방하는 등, 날이 갈수록 하는 짓이 점점 더 포악해진다. 위기의식을 느낀 광산주와 주민들은 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황금 손잡이 쌍권총으로 유명한 헨리 폰다를 비싼 돈을 주면서 치안관으로 초빙한다. 그리고 폰다와 함께 도착한 절름발이 총잡이 앤서니 퀸(폐결핵 환자이며 도박사인 닥 할리데이의 변형임)은 당장 마을을 접수해 술집부터 차려놓고 영업을 시작한다.
이런 소식을 듣고는 난동을 부리려고 마을로 들이닥친 드레이크 일당을 폰다는 총 한 방 쏘지 않고 담담하고 노련하게 단숨에 제압해 쫓아낸다. 그리고 어느 누구이건 질서를 깨트리고 잘못을 저지르면, 주민들이 나중에 악당들을 스스로 처치하겠다며 폭도로 돌변하는 경우에도, 폰다가 가차없이 혼을 낸다. 그래서 주민들이 다시 교회에 모여 찬송가를 부르며 기쁘게 환호하는 세상이 되자, 구세주 대접을 받던 폰다는 마을에서 공동의 적이 된다. 폰다는 처음 마을에 도착해 주민 대표들과 상견례를 하는 자리에서 돌로레스 마이클스에게 이런 정치적인 예언을 했었다.
“평화가 자리를 잡고 법이 필요가 없어지면, 사람들은 나에게 집중된 권력을 두려워하게 되고, 그래서 결국 나를 쫓아내려고 할 겁니다.”
이 말을 정치적으로 독해하자면,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차례 경험했듯, 나쁜 정권을 몰아내라고 야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통치 집단을 기껏 교체해 봤자, 어떤 정권이나 마찬가지로 부패해 똑같은 독선(獨善)만 되풀이하고, 그래서 결국 국민은 믿지 못할 권력이 너무 커지면 불안해져서 필연적으로 반발하고 저항하게 된다는 뜻이다.
<워락>에서는 나중에 사이비 치안관 폰다가 가슴에 별을 단 리처드 위드막과 최후의 결투를 벌이는데, 한 마을에 이렇게 두 명의 ‘법’이 존재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주민들은 폰다를 ‘치안관(marshal)’이라고 호칭하지만, 이것은 그냥 듣기 좋으라고 붙여준 사칭일 따름이다. 폰다에게는 법을 집행할 아무런 합법적인 근거나 권위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당 드레이크는 휘하의 불량배 두 명이 목숨을 잃자 폰다를 살인자로 처단하겠다며 ‘단속반(regulators)’의 이름으로 현상 포스터를 길거리에 내걸기도 한다.
‘치안관’은 본디 연방정부에서 임명하며,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선출한 ‘보안관(sheriff)’보다 관할지역(jurisdiction)이 광범위하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치안관과 보안관을 구별해서 번역하고는 했는데, 치안관은 대부분의 경우 항아리처럼 생긴 방패 배지를 달고, 보안관은 별 모양의 배지를 찼기 때문에 육안으로 식별하기가 쉽다. 유명한 와이어트 어프는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국가에서 임명하지 않은 ‘촉탁 치안관’ 노릇을 해서 돈을 많이 벌어 술집과 도박장 그리고 심지어는 성매매 업소를 차려놓기까지 했었다.
반면에 <워락>의 위드막은 살인 혐의자들을 이첩받으러 왔던 인근 지역의 보안관이 비정상적인 마을의 사법권을 바로잡기 위해 임명한 대리인(deputy)이다. 우리 말로는 ‘도우미’에 해당되는 보안관 ‘대리’는 범죄자들을 제압하기 위해 보안관이 필요한 인원만큼 즉석에서 임시로 임명하며, 그들이 집단을 이루어 범인을 잡으러 마을 밖으로 이동하면 ‘추적대(posse)’라고 한다. 현장에서 수비나 공격 행위에 임하려고 조직되는 민간 병력은 자경단(vigilante) 또는 의용군(militia)이 된다.
방랑자 앨런 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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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런 래드 캐리커처. |
<셰인>의 경우는 ‘150킬로미터 떨어진 도시까지 사흘이나 가야 보안관이 있는’ 외딴 지역을 영화의 무대로 삼았다. 개척기 서부는 워낙 넓은 땅에 인구가 적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모든 가구가 저마다 총으로 생명을 스스로 지켜야 했다. 그래서 앨런 래드는 진 아더에게 총은 삽이나 망치 같은 ‘연장’이어서, “좋거나 나쁘다고 말할 수가 없고, 쓰는 사람에 달렸다”는 설명을 한다. 스스로 방어할 만큼 총을 능숙하게 다룰 줄 모르는 농부들은 자경단을 만들어 무장하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돈을 갹출해 보안관이나 총잡이(gunman, gunfighter, gunslinger)를 용병으로 고용해야 했는데, 이렇게 고용한 총잡이는 ‘사람’이 아니라 ‘총(hired gun)’이라고 불렀다.
<워락>의 헨리 폰다와는 달리 <셰인>의 앨런 래드는 총잡이 인생에 염증을 느껴 홀로 낯선 곳을 떠도는 사나이로서, ‘총’이 아니라 ‘머슴’으로 농부 반 헤플린이 고용한 방랑자다. 그러니까 그는 아더 왕이 가장 아꼈던 방랑 기사 랜슬롯과 같은 존재다. 잭 팰런스와 결투를 벌이려고 종결부에서 기사처럼 말을 타고 마을로 나가는 래드의 모습을 영화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자세히 보여주는 이유가 그것이다.
누가 ‘악당’ 목장주와 대결하러 마을로 나가느냐를 놓고 싸움판을 벌여 헤플린을 래드가 때려눕힌 다음에, 방랑자와 은근한 사랑에 빠진 진 아더가 묻는다. “나 때문에 이러시는 거예요?” 물론이다. 기사는 ‘위기에 빠진 여인(damsel in distress)’을 보면 당장 목숨을 걸고 싸움에 나선다. 그래서 아더와 래드가 나누는 마지막 악수는 참으로 의미가 심장하다.
“제대로 된 작품을 만나야 출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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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로니카 레이크와 출연한 <백주의 탈출>은 앨런 래드의 출세작이었다. |
존 웨인처럼 B 영화 전문 배우로 출발한 앨런 래드는 처음 출연한 26편의 영화에서 화면에 모습을 보인 시간이 전부 합쳐봤자 26분이 채 안 되었다고 한다. 바바라 스탠윅의 <황금아(黃金兒, Golden Boy, 1939)>에 출연해 순식간에 유명해진 윌리엄 홀든은 “아무리 용모와 능력을 갖춘 배우라고 해도 제대로 된 ‘작품’을 잘 만나야 출세를 한다”며 배역의 우발성에 관한 명언을 남겼는데, 래드에게는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 《살인청부업자(A Gun for Sale)》를 영화로 만든 <백주의 탈출(This Gun for Hire, 1942)>이 바로 그런 절호의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청부살인을 맡았다가 함정에 빠진 주인공이 복수에 나서는 내용을 담은 <백주의 탈출>의 도입부에서 래드는 권총을 점검하고,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귀여운 계집아이에게 공을 던져주고, 그리고는 태연하게 두 사람을 죽인다. 리처드 위드막의 냉혹한 인상과는 거리가 먼 금발의 미남 청년 래드가 무표정하게 자행하는 이 살인 장면은 순식간에 충격의 고전이 됐다.
대단히 관능적이면서도 차가운 모습을 보인 베로니카 레이크와 래드의 환상적인 조화가 관객을 사로잡아 <백주의 탈출>이 대성공을 거두자, 파라마운트 영화사는 그들 한 쌍의 갑작스러운 인기에 편승해 같은 해에 대실 해밋(Dashiell Hammett)의 추리소설을 영화로 만든 <유리 열쇠(The Glass Key, 1942)>를 비롯해, 여섯 편의 레이크-래드 작품을 쏟아냈다.
이 작품들 가운데 <비정도시(非情都市, The Blue Dahlia, 1946)>에서, 부정한 아내를 죽였다고 의심을 받는 래드가 결백을 증명하도록 열심히 도와주던 레이크의 신비하고 요염한 모습에 홀딱 반했던 어린 할리우드 키드는, 여러 해가 지나 대학생이 된 다음, 그녀가 술 중독으로 폐인이 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레이크는 재산을 탕진하고 뉴욕의 싸구려 호텔 술집에서 심부름을 하는 신세(barmaid)로 전락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앨런 래드 전성기의 활극으로는 <대폭진(大暴塵, Whispering Smith, 1948)>, <낙인(Branded, 1951)>, <대혈산(大血山, Red Mountain, 1952)>, <사막부대(Desert Legion, 1953)>, <사스카치완의 낭화(狼火, Saskatchewan, 1954)>, <영하의 지옥(Hell Below Zero, 1954)>, 제목을 완전히 오역한 <악인의 토지(The Badlanders, 1958)> 등이 꼽히겠지만, 대부분 영화는 오디 머피의 경우나 마찬가지로 볼 때는 재미있어도 곧 잊히는 통속적 오락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통속물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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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소리>에서는 인디언 처녀 마리사 파반의 애절한 사랑이 깊은 인상을 주었다. |
피어 안젤리와 쌍둥이답게 청순하고 가련했던 파반의 애처로운 모습이 참으로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찰스 브론슨은 그가 죽인 백인 기병대 대위의 군복을 걸치고 “잭 대위(Captain Jack)”라고 자칭하며 끊임없이 백인들을 괴롭혀 험상궂은 악역배우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나중에 브론슨은 평화협상에 나온 백인 장군을 죽이고 그의 군복을 벗겨 입고는 외친다.
“Me General Jack now(나 지금부터 잭 장군이다)!”
앨런 래드의 마지막 작품은 수십 권의 베스트셀러를 낸 해롤드 로빈스(Harold Robbins, 1916~97)가 하워드 휴스의 생애를 주제로 삼아서 쓴 소설을 에드워드 드미트릭이 영화로 만든 <위대한 욕망(The Carpetbaggers, 1964)>이다.
래드가 맡았던 역은 무법자 출신의 영화배우 네바다 스미드. 그렇다. 스티브 매퀸의 서부극 <네바다 스미드(Nevada Smith)>는 같은 로빈스 소설에서 래드의 무법자 시절 얘기만 뽑아다가 따로 만든 영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