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드막, 서부의 勸善懲惡 황금기에 등장한 진짜 사나이
⊙ 위드막, 확실한 악당이자 살인범·냉혹한 철도현장감독·무법자 출신 보안관으로 扮해
⊙ 머피의 별명은 쌍권총을 든 ‘실버 키드’… 앳된 얼굴에 166cm의 키, 50kg의 작은 몸집
⊙ 머피, 2차 세계대전 참전한 무공훈장 22개의 영웅… 출연작 44편 중 30여 편이 서부극
安正孝
⊙ 71세.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 《코리아헤럴드》 기자, 《코리아타임즈》 기자·문화체육부장,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 주요 작품으로 소설 《전쟁과 도시》(후에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은마는 오지 않는다》(후에 《銀馬》) 《악부전》 《솔섬》 등이 있다.
번역서로 《백년동안의 고독》을 비롯해 150여 권이 있다.
⊙ 위드막, 확실한 악당이자 살인범·냉혹한 철도현장감독·무법자 출신 보안관으로 扮해
⊙ 머피의 별명은 쌍권총을 든 ‘실버 키드’… 앳된 얼굴에 166cm의 키, 50kg의 작은 몸집
⊙ 머피, 2차 세계대전 참전한 무공훈장 22개의 영웅… 출연작 44편 중 30여 편이 서부극
安正孝
⊙ 71세.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 《코리아헤럴드》 기자, 《코리아타임즈》 기자·문화체육부장,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 주요 작품으로 소설 《전쟁과 도시》(후에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은마는 오지 않는다》(후에 《銀馬》) 《악부전》 《솔섬》 등이 있다.
번역서로 《백년동안의 고독》을 비롯해 150여 권이 있다.
뿐만 아니라 웨인은 주인공이 비겁하게 등 뒤에서 총질을 하는 장면을 삭제해 달라는 요구 또한 관철시켰다. “나는 평생 수많은 영화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기는 했어도 뒤에서는 쏜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최후의 총잡이> 도입부에서는 이런 화자의 해설이 나온다.
“나는 모욕을 당하면 참지 않는다. 나는 남에게 불시의 공격을 당하지도 않겠지만, 그런 공격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상대방에게 먼저 총을 뽑도록 기회를 주고, 비겁한 살인을 하지 않는다 — 이것은 서부인의 신조(the Code of the West·‘서부의 율법’이라고도 함)에서 가장 중요하게 꼽는 사항이다. 그래서 <야망의 종말>에서는 패트리샤 닐의 아버지 도널드 크리습 소령이 결투를 신청했다가 개리 쿠퍼의 거절로 모욕을 당하자, 무기를 휴대하지 않은 그를 홧김에 사살하고는, 곧 자신의 비겁함에 더욱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가다 말고 달리는 마차에서 권총 자살을 한다.
<커다란 얘기>에서도 서부인의 신조는 대단히 큰 역할을 한다. 닉 스톨 소년은 아버지가 입에 달고 다니는 ‘서부인의 신조’를 처음에는 역겨워하지만, 나중에 뻥치기 전설의 주인공인 피코스 빌(패트릭 스웨이지)과 폴 번얀, 존 헨리를 만나서는 신이 나서 그들과 함께 외친다.
“나는 국가에 헌신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숙녀와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로 침을 뱉지 않는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늘 그러듯이 당장 땅바닥에다 더럽게 침을 찍 뱉는다. 침에 관한 마지막 부분은 물론 관객을 웃기기 위한 가짜 서부인의 신조다.
서부도(西部道)는 “약자를 구하고 정정당당하게 싸운다”는 기사도(騎士道·chivalry)의 행동강령을 귀감으로 삼았다. 기사도는 유럽에서 영국의 신사도(紳士道)로 발전해 ‘정정당당한 운동정신(sportsmanship)’으로 이어졌으며, 신대륙으로 건너가서는 서부의 신조를 낳았다. 따라서 역사가 짧은 미국의 사극(史劇)이라고 해야 할 서부극에서는 검 대신 총으로 무기가 바뀌었을 뿐, 대결의 원칙은 기사도의 정신적인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西部道와 서부의 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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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도 정신을 극적으로 보여준 서부극 <악의 화원>에서 리처드 위드막이 개리 쿠퍼에게 카드를 뽑으라고 하는 장면. |
병역 기피가 ‘고귀한 신분의 한 가지 징표’가 돼버린 한국과는 달리, 톨스토이 소설에서 잘 나타나듯, 제정(帝政) 러시아와 유럽에서는 계급이 대위 정도인 백작이 흔했을 정도로 귀족 계급은 국방의 의무에 충실했다. 그리고 기사도의 복제품이 신대륙의 북부 상공업지대보다 남부에서 훨씬 잘 발달했던 까닭은 값싼 흑인 노예를 부리며 거대한 농장을 경영해 신흥 귀족이 된 남부인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남남북녀(南男北女)’를 유별했듯이 그래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어보면 쉽게 짐작이 가겠지만, 스칼렛 오하라 같은 아름답고 도도한 ‘남부 아가씨(Southern belle)’나 ‘남부의 신사’들은 ‘대륙식(Continental)’ 저택을 지어놓고 군인 귀족처럼 살며 유럽에 대한 동경심을 어느 정도 해소했다.
기사도 전통은 우리의 일상생활 여러 구석에 건재해, 예를 들면 사람들이 만나서 우선 악수를 나누는 전통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상대방에게 무기를 주먹 속에 감추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려는 목적으로 취하던 행동에서 시작됐다. 군대의 거수경례 또한 투구의 면갑(面甲)을 들어올려 상대방에게 자신의 정체를 당당하게 밝히는 행위에서 유래한다.
서부극에서 기사도 정신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는 도입부의 술집 장면 이외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광폭화면(Cinemascope) 가득히 하늘이 시원스럽게 배경으로 드리운 <악의 화원(Garden of Evil, 1954)>에서였던 듯싶다. <역마차>에서 멋쟁이 기사 노릇을 자청한 존 캐러딘은 전문 도박사였지만, <악의 화원>에서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멋진 리처드 위드막(Richard Widmark, 1914~2008)은 늘 카드를 몸에 지니고 다니는 사기 도박사다.
캘리포니아로 가서 황금을 찾아 대박을 터뜨리려는 망상에 사로잡힌 개리 쿠퍼와 캐머론 밋첼, 위드막을 태운 배가 고장이 나서 수리하려고 한적한 멕시코 어촌에 정박한다. 세 사람은 여기서 만난 수잔 헤이워드로부터 금광에 매몰된 남편 휴 말로우를 구출해 주면 한 사람 앞에 2000달러씩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멕시코인 한 명과 함께 위험한 모험에 나선다. 말로우를 구출한 일행은 귀환 길에 인디언의 추격을 받아 멕시코인과 밋첼이 목숨을 잃고, 헤이워드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남편은 스스로 종적을 감춘다. 세 사람만 남아서 계속 도망치던 쿠퍼, 위드막, 헤이워드는 악령들이 산다고 믿어서 인디언들이 ‘악의 화원’이라는 이름을 붙인 계곡으로 들어가서는, 좁은 길목에 이르자 반격을 시도한다.
이때 위드막은 함께 여기서 싸워봤자 모두 죽을 일이 빤하니까, 두 남자 가운데 한 사람만 남아 인디언들을 막아내고 그 사이에 다른 남자가 헤이워드를 데리고 도망치도록 하자면서, 끝수가 높은 카드를 뽑아 이기는 사람이 뒤에 남기로 하자고 개리 쿠퍼에게 제안한다. 카드 뽑기에서는 사기 도박사 위드막이 당연히 이긴다. 하지만 위드막이 뒤에 남아 인디언과 싸우는 동안 안전지대에 이른 쿠퍼는 “친구가 아무래도 카드를 속인 것 같다”며 헤이워드를 남겨두고 위드막에게로 돌아간다. 위드막은 살신성인(殺身成仁)을 실천하고, 쿠퍼는 끝내 친구를 버리지 않으려 한다는 우정의 교환이 이루어진다는 계산이다.
21세기의 현대적인 감각으로는 이해가 잘 안 되겠지만,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이런 순진한 죽음의 선택이 권선징악의 황금기에는 “아, 진정한 사나이란 저렇게 행동하는구나”라는 19세기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키곤 했었다.
진정한 사내들의 세기적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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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만인’ 인디언에게 우호적인 쪽으로 시각이 기울어진 최초의 서부극 가운데 하나였던 <최후의 포장마차>. |
얼마 후에 이주민들은 인디언의 습격을 받아 거의 몰살을 당하는데, 이 또한 백인이 인디언을 학살한 사건에 대한 복수의 차원으로 설정됐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한 대밖에 남지 않은 포장마차를 기병대가 나팔을 불며 달려와서 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인디언의 기습에 몰살을 당할 위기에 처한 기병대를 오랫동안 인디언과 함께 살아 현장 경험이 풍부한 위드막이 구출한다.
<서부개척사>에서 위드막은 동부에서 태평양 연안까지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하는 철도를 건설하는 유니언 퍼시픽(Union Pacific)의 냉혹한 현장감독이다. 인디언의 땅을 차지하고는 그것을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며 지키겠다고 전쟁을 벌이는 백인들의 논리를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수많은 인구를 대량으로 이동시키는 철마(鐵馬·iron horse)의 교통망은 문명과 파괴를 동시에 확산시키는 주범으로, 기병대 장교 조지 페퍼드와 사냥꾼 헨리 폰다는 위드막과 충돌한 다음 보다 원시적인 사회로 떠남으로써 영화 자체는 인디언 편을 든다.
존 포드의 마지막 서부극 <샤이엔(Cheyenne Autumn, 1964)>에서 리처드 위드막은 <서부개척사>에서와는 반대로 샤이엔 인디언의 복지를 위해 에드워드 G. 로빈슨 내무장관을 워싱턴으로 찾아가기까지 하면서 끝까지 노력하는 착한 기병 대위로 나온다. 이 영화는 대단히 장엄한 분위기로 시작한다. 1878년 뜨거운 여름 어느 날, 백발이 성성한 늙은 추장 빅터 조리와 그의 두 아들 리카르도 몬탈반과 길벗 롤랜드, 그리고 젊은 전사 살 미네오가 이끄는 인디언 부족 전체가, 어린애와 노인, 부녀자까지 모두, 무거운 발걸음으로 기병대 본부로 모여든다. 워싱턴에서 상원의원들이 방문한다니까 환영한다는 기념행사에 동원된 그들이다. 하지만 인디언들은 오늘 상원의원들에게 꼭 해야 할 말이 많다.
1년 전 백인들과 평화조약을 맺고 인디언들이 이곳 오클라호마 보호지역까지 끌려 내려와 강제 이주를 한 다음, 약속한 물자나 의약품 따위는 전혀 공급하지 않고 온갖 달콤한 약속을 모조리 깨뜨린 백인들 때문에 열악한 환경에서 1000명 가운데 200여 명만 살아남았다. 그래서 그들은 백인들더러 약속을 이행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하루종일 땡볕에 서서 기다려도 정치가들은 오지 않는다. ‘길이 험하고 먼지가 나서’ 오다 말고 워싱턴으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들은 부동산업자들과 철도업자들의 농간에 놀아나며 영토 확장을 위해 인디언들을 아예 싹 쓸어 없애고 싶어 하는 집단일 따름이었다.
분노한 샤이엔 전사들은 보호구역으로 돌아가 짐을 챙기고 숨겨두었던 무기를 꺼내 무장하고는 고향 와이오밍의 옐로우스톤까지 걸어서 돌아가는 대장정에 나선다. 기병대의 추격을 받으며 그들이 가야 할 길은 무려 3000km, 요즈음 자동차로 계속 달려도 사흘이나 걸리는 거리다. 여름에 출발한 그들은 눈이 내리는 겨울에 소수의 인디언만 살아서 겨우 목적지에 도착하지만, 그들이 주식으로 삼아야 할 들소는 백인 사냥꾼들이 가죽을 얻기 위해 모두 잡아 죽여 들판에는 하얀 뼈만 사막처럼 뒤덮여서 인디언들을 기다린다.
두 남자가 雙頭를 이루는 스터지스 영화
위드막은 <워락(Warlock)>에서 ‘무법자’ 출신의 ‘보안관’ 역을 맡아서 애매한 정체성을 드러내지만, <고스트 타운의 결투(The Law and Jake Wade, 1958)>에서는 확실한 악당으로 나온다. 은행을 털고 도피생활을 하다가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은 그는 형무소로 이송되기를 기다리는데, 강도 시절 공범이었던 로버트 테일러가 나타나 그를 탈옥시킨다. 테일러는 범행 당시 어린 소년을 실수로 죽이고는 죄의식에 개과천선해 지금은 어두운 과거를 숨긴 채로 다른 어느 외딴 마을에서 ‘무법자 출신의 보안관’ 노릇을 하는 몸이다.
테일러는 생명을 구해 주었으니까 위드막과의 관계를 깨끗하게 정리해도 되리라고 계산했지만, 위드막은 은행에서 강탈한 다음 테일러가 어디엔가 숨겨놓은 2만 달러를 포기하지 못한다. 그래서 위드막은 부하들을 불러 모아 테일러를 마을까지 미행한 다음, 치안관의 약혼녀를 납치해 볼모로 잡고는, 돈을 파묻어 놓았다는 폐광촌 유령마을까지 두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간다. 그리고는 인디언까지 등장하면서 전형적인 서부의 결투 구도가 펼쳐진다.
“서부극의 주인공은 말을 많이 하면 안 된다”는 확고한 철학을 지키며 영화를 만들었던 존 스터지스(John Sturges, 1910~92) 감독은 <고스트 타운> 1년 전에 〈O.K. 목장의 결투(Gunfight at the O.K. Corral)〉를 발표했고, 1년 후에는 <건힐의 결투(Last Train From Gun Hill)>를 만들어 우리나라에서는 ‘결투 3부작’이라는 말이 생겨났지만, 원제를 보면 물론 ‘결투(duel)’와 비슷한 단어 ‘총질(gunfight)’은 그 가운데 한 영화에서만 발견된다.
그렇기는 해도 ‘결투 3부작’에는 뚜렷한 스터지스적 특징이 나타난다. 남녀 한 쌍이 주인공인 다른 분야의 영화들과는 달리, <악의 화원>이나 <황야의 결투> 같은 서부극에서는 여성의 입지가 위축되고 대신 두 남자가 쌍두(雙頭)를 이루는데, 스터지스 3부작에서는 버트 랭카스터와 커크 더글러스, 로버트 테일러와 리처드 위드막, 그리고 커크 더글러스와 앤서니 퀸이 맞서서 버티는 형식을 취한다. 그리고 스터지스 영화에서는 흔히 제1 남배우보다 제2 남배우가 훨씬 더 많은 호감을 관객에게 주게끔 설정돼, <고스트 타운>에서도 로버트 테일러 치안관보다 악당 리처드 위드막이 훨씬 매력적인 인물로 부각된다. 문학에서 오랫동안 확고한 자리를 지켜온 ‘멋진 악당(lovable villain)’ 개념이 접목된 결과다.
뿐만 아니라 <고스트 타운>에서는 ‘나쁜 놈’ 위드막이 누르스름한 밝은 빛깔의 옷차림인 반면에, 좋은 사람 테일러는 모자부터 신발까지 온통 검정 일색이다. “백인은 항상 옳고 인디언은 항상 나쁘다”는 전제와 더불어, “악인은 검고 선인은 희다”는 차별화 공식에 따른 옷차림은 이때까지만 해도 서부극에서는 확고한 공식이었다. 예를 들어, 또 다른 쌍두 영화 <베라 크루즈>에서는 착한 개리 쿠퍼가 누르스름한 밝은 빛깔의 옷차림인 반면에 능글맞은 악당 버트 랭카스터는 모자에서부터 신발까지 온통 검은색이어서, 새하얀 이가 유난히 눈에 잘 띌 지경이다. 의상의 흑백논리 또한 수정주의를 향해 20세기 중반에 이렇게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리처드 위드막의 허무한 복수극 <여섯 번째 사나이(Backlash, 1956)>를 할리우드 키드가 각별히 좋아했던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①아론 로젠버그 제작에 ②존 스터지스가 감독하고 ③보든 체이스(Borden Chase)가 각본을 맡은 ‘3위1체’ 서부극이라면 그야말로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무작정 가서 봐야 할 정도로 신나는 영화인데, <여섯 번째 사나이>는 바로 그들 세 사람이 함께 만든 영화였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여섯 남자가 금광을 찾아 헤매다가 노다지를 발견한다. “여섯 번째 사나이”는 욕심이 생겨 아파치를 동원해 다섯 친구를 모두 죽이고 황금을 독차지하고는 종적을 감춘다. 위드막은 얼굴조차 모르는 아버지가 이때 살해되었으리라 믿고는 여섯 번째 남자를 찾아 애리조나 방방곡곡을 헤매고 돌아다닌다. 같은 광산에서 행방불명이 된 남편을 찾아나선 도나 리드를 만나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여섯 번째 사나이 존 매킨타이어는 착복한 자금으로 거대한 목장을 마련해 총잡이들을 거느리고 떵떵거리며 살아간다. 그런데 두 사람이 죽여 없애야 할 살인범 매킨타이어가 위드막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악랄한 복수의 달인이자 ‘희대의 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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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키스>에서 격투를 벌이는 리처드 위드막과 빅터 머튜어. |
<악의 화원>에서 남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멋진 사나이였던 리처드 위드막은 알고 보면 사실은 ‘악의 화신’으로서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깡마른 얼굴에 대단히 넓은 이마, 광대뼈는 해골처럼 우뚝하고, 빛이 바랜 비단처럼 길게 목덜미까지 늘어진 금발, 눈썹이 별로 안 보이는 찌그러진 눈과 혐오감으로 뒤틀린 아랫입술이 특히 냉혹해 보이는 위드막은 이른바 “낭만적인 얼굴(꽃미남)”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래서 얼굴을 보여 주지 않아도 되는 라디오에서만 오랫동안 활동했다. 그러다가 서른을 훨씬 넘기고 나서 그가 영화에 첫 얼굴을 내민 역은 희대의 악당이었다.
벤 헥트가 각색한 <죽음의 키스(Kiss of Death, 1947)>에서 전과자 빅터 머튜어는 보석상을 털다가 잡혀 20년 형을 살게 된다. 형무소에서 3년을 보내는 동안 아내는 바람이 나고 아이들은 버림받아 고아원 신세가 되자, 보석으로 풀려나 풍비박산한 집안을 추슬르기 위해 머튜어는 브라이언 돈레비 검사에게 협조해 흉악무도한 살인자 위드막을 검거하도록 도와 준다. 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위드막은 불기소 처분을 받고, 보석으로 풀려난 머튜어에게 그는 잔혹한 보복극을 벌인다.
이제는 범죄영화의 대표적 고전이 돼버린 <죽음의 키스>에서도 악랄한 복수의 달인 위드막은 그를 밀고했던 공범자에게 끔찍한 복수를 자행했던 적이 있었다. 집으로 찾아갔다가 공범자가 피신해서 뜻을 이루지 못해 화가 난 위드막은 공범자 대신 그의 어머니 밀드렛 던녹을 바퀴의자에 앉히고는 전깃줄로 꽁꽁 묶어 층계로 굴러 떨어트려 죽이는데, 그때 그가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어 보면 정말로 소름이 끼친다. 그런 흉악하고 역겨운 웃음소리를 우리는 <아마데우스>의 톰 휼스에게서 먼 훗날 다시 듣게 된다.
<죽음의 키스>에서 보여준 미치광이 범죄자의 연기로 위드막은 아카데미 조연남우상 후보에 올랐으며, 처음에는 “지나치게 이지적인 인상이어서 악역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려고 했던 헨리 해더웨이 감독은 <인생의 종착역(O. Henry's Full House, 1952)>에서 위드막을 다시 불러 비슷한 역을 맡겼다.
신경질적이고 잔혹한 역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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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사 매디건>의 리처드 위드막과 해리 가디노. |
한때 암흑가에서 가까운 동지였던 데일 로버트슨 형사가 그를 체포하려고 찾아가자, 신경질적이고 잔혹한 위드막은 “나를 잡아가려면 옛날에 (집행유예 때 도박 빚 때문에 발행한 부도수표를 막느라고) 꾸어간 천 달러부터 갚아라”고 오히려 약을 올리며 덤벼든다. 월급이 50달러밖에 되지 않는 로버트슨은 은행 예금을 모두 찾고, 보험을 깨고, 융자까지 받아 300달러를 만들어 가지고 가서 내주며 “자수하라”고 권하지만, 위드막은 “목돈을 푼돈으로 갚으려는” 그에게 면박을 줄 뿐만 아니라, 마침 같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나팔소리> 신문사 사회부장을 향해 자신이 오래전에 저질렀지만 미궁에 빠진 사건의 범인을 잡지 못하는 경찰과 언론을 코웃음 치며 놀려댄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모욕을 당한 사회부장은 문제의 범인에 관한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1천 달러의 현상금을 제공하겠다는 기사를 신문에 낸다. 위드막이 범인임을 알고 있었던 로버트슨 형사는 신문사로 찾아가 보상금을 선금으로 받아들고, 범죄사업 한 건을 끝내고 유유히 도시를 떠나려는 위드막을 출발 직전의 기차로 쫓아가 빚을 갚고는 체포한다. 그렇게 까불던 위드막이 붙잡혀가는 꼴에 쌤통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슬프기 짝이 없는 경찰영화 <형사 매디건(Madigan, 1968)>의 주인공인 고참 형사 리처드 위드막은, <인생의 종착역>에 등장하는 냉혈한 리처드 위드막과 비슷한 흉악범을 검거하려고, 금요일 아침 일찍 동료 해리 가디노와 함께 용의자의 집으로 들이닥쳤다가 순간적인 실수로 두 사람 다 권총을 빼앗기고 범인을 놓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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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효가 그린 리처드 위드막 캐리커처. |
지치고 피곤한 위드막은 자신의 실수로 야기된 상황만큼은 스스로 해결하고 싶다면서 다른 경찰관들보다 앞서서 건물로 진입하겠다고 나선다. 주말 내내 긴장한 채 흉악범을 찾아다니느라 극도로 흥분한 상태인 그를 보고 폰다는 “자네처럼 노련한 수사관은 구하기 힘드니까”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쳐 냉정한 판단력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충고한다.
흉악범이 창녀와 함께 숨어 있는 방 앞에 이른 위드막과 동료 형사는 “경험이 많은 내가 먼저” 그리고 “아랫사람인 내가 먼저” 방으로 쳐들어가겠다고 우기다가, 위드막이 먼저 순식간에 문을 박차고 뛰어들어서는 흉악범의 총탄에 쓰러진다. 그리고 <인생의 종착역>에 등장하는 냉혈한 리처드 위드막을 연상시키는 흉악범은 신이 나서 소리친다.
“저놈 내가 죽였지? 저놈 내가 죽였지?”
<텍사스에서 온 사나이>, 서부극 역사상 최대 규모의 추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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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디 머피 캐리커처. |
덴버에서 철도 측량사로 근무하던 머피는 아버지와 동생이 소도둑들에게 살해됐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마을 보안관과 변호사가 진범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범인이 누구인지 끈질기게 파고드는 머피가 부담스러워진 보안관과 변호사는 디아블로의 명사수 댄 듀리에가 살인범이라고 거짓말을 해서 머피로 하여금 엉뚱한 사람을 잡으러 나서게 만든다. 그러면 필시 듀리에한테 함부로 덤비다가 총탄을 맞고 죽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하지만 머피는 듀리에를 보기 좋게 체포해 압송하고, 재판에 회부된 악당은 변호사의 도움으로 다시 풀려난다. 그러는 사이 머피는 감옥에 들어가서조차 여유가 만만하던 능글맞은 멋쟁이 악당에게 호감을 느끼고, 듀리에 역시 순진한 머피에게 결국 진범이 누구인지를 알려준다. 보안관의 하수인 일당과 머피가 대결하게 되자 듀리에는 (악당들이 도움을 청하며) “당신은 누구 편이냐?”고 묻는 잭 일람에게 “난 아무 편도 아니고 내 편(I'm on my own side)”이라고 선언하고는 머피를 슬금슬금 쫓아다니며 구경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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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리 더 키드를 착하고 외로운 인물로 그린 <텍사스에서 온 사나이>. |
머피에게는 따로 대표작이 없기는 하더라도 할리우드 키드는 <텍사스에서 온 사나이(The Kid From Texas, 1950)>에서 그가 보여준 고독한 모습을 아주 인상 깊게 기억한다. 머피는 전설의 주인공인 빌리 더 키드 역을 맡았는데, 텍사스에서 저지른 살인 때문에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뉴멕시코의 목장주의 따뜻한 도움을 받아 개과천선의 길을 간다. 하지만 그를 ‘인간으로서 대우해 준 유일한 친구’인 목장주가 악당들에게 살해되자 그는 다시 총을 차고 보안관 조수가 돼 추적대를 이끌고 나가서 합법적인 복수를 감행한다.
목장의 주인이 바뀐 다음 머피는 그냥 눌러앉기로 하지만, 나이가 많은 목장주의 젊은 아내와 머피가 서로 호감을 보이자 질투심에 이성을 잃은 목장주가 보안관과 짜고 그를 살인범으로 몰아 1만 달러를 현상금으로 내건다. 과거를 잊고 얌전히 살아가려던 ‘착한 젊은이’가 기득권층(권력층)의 박해를 받는다는 감상적인 설정이다. 어쨌든 상금을 노리는 수많은 인간 사냥꾼들이 나타나서 ‘서부극 역사상 최대 규모의 추격’이 벌어지고, 나쁜 목장주까지 엉겁결에 추격대의 총탄에 맞아 죽은 다음, 젊은 아내가 동부로 돌아간다. 오랜 도피생활에 지친 머피는 어느 날 밤 그녀의 집에 찾아가 창밖에 서서 피아노를 치는 그녀의 모습을 몰래 지켜보다가 보안관 팻 개럿의 총탄에 숨을 거둔다.
실버 키드, 쌍권총 머피
이 영화에서는 루 월레스(Lewis Wallace, 1827~1905) 장군이 빌리 더 키드를 산에서 만나 투항을 권하는 장면이 나온다. 월레스는 변호사 출신으로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이요 정치가였으며, 뉴멕시코 주지사를 역임했다. 나중에 그는 소설 《벤허》를 발표해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 소설가가 됐다.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나이(Kansas Raiders, 1950)>에서 그는 남북전쟁 이후 약탈을 일삼았던 악랄한 전설의 주인공 윌리엄 콴트릴(William Clarke Quantrill, 1837~65)이 이끄는 유격대를 도와 은행을 터는 제시 제임스 역을 맡았고, <시마론 키드(The Cimarron Kid, 1952)>에서는 역시 서부의 전설적인 무법자 돌튼(Dalton) 형제와 함께 떼강도 생활을 한다.
그런가 하면 <실버 크리크의 결투(The Duel at Silver Creek, 1952)>에서는 사금을 노리고 광부들을 마구 죽이는 악당을 퇴치하는 쌍권총 머피의 별명이 ‘실버 키드(the Silver Kid)’다. 이렇듯 그에게 ‘아이(kid)’라는 애칭이 자주 따라다녔던 까닭은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머피의 앳된 얼굴과 작은 키(166cm) 그리고 왜소한 몸집(50kg)의 매력 때문이었다.
이런 신체적인 조건은 쌍두 영화에서 머피의 존재가치를 자칫 위축시키고는 했는데, 아론 로젠버그가 제작한 <밤길(Night Passage, 1957)>이 바로 그런 대표적인 경우였다. 댄 듀리에 열차강도단 소속으로 악명을 날리는 유티카 키드(Utica Kid, 머피)와 철도 송금을 책임져야 하는 제임스 스튜어트는 운명적으로 대결을 벌여야 하는 형제간으로 설정됐는데, 정말이지 아무리 봐도 그들 형제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다. 그래서 앤서니 만 감독은 머피의 발탁에 반대해 연출을 하지 않겠다며 작품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
존 휴스턴의 <용서받지 못할 자(The Unforgiven, 1960)>에서는 그런 불균형이 시각적으로 훨씬 더 심하게 나타난다. 황량한 땅에서 개척자 가족을 지켜내는 듬직한 버트 랭카스터, 흉악한 방랑자에게 굴복하지 않고 비밀을 지키려는 노부인 릴리언 기시, 그리고 인디언 처녀로 분해 숙명에 꿋꿋하게 맞서는 강인한 말라깽이 오드리 헵번에 비하면, 술병을 들고 방황하는 머피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오디 머피는 명랑 서부극의 대가 조지 마샬 감독과 함께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대사진(大砂塵, Destry, 1954)>은 악당들이 지배하는 마을에 초빙 신임 보안관으로 부임한 어리고 귀여운 주인공이 무기를 휴대하지 않은 채로 법과 질서를 되찾는다는 희극적 내용이고, 돈 시겔 감독의 <붉은 연발총(The Guns of Fort Petticoat, 1957)>에서는 인디언을 학살하라는 명령을 거역하고 탈영한 기병 중위 머피가 오합지중 여자들을 훈련시켜 코만치 인디언을 물리친다.
병든 세상을 치료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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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마르 베리만의 <제7의 봉인>과 비유됐던 <공포의 살인자>. |
그는 어디엔가 홀연히 나타나서, 며칠 동안 죽일 상대와 주변 환경을 꼼꼼히 점검한 다음 행동으로 돌입하는데, 상대방이 먼저 총을 뽑도록 유도해 항상 정당방위 살인을 해서 법망에 걸려들지를 않는다. 그래서 보안관조차 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마땅한 대책이 없다. 그리고 그는 죽일 상대가 누구인지를 마지막 순간까지 밝히지를 않는다. 과거에 무슨 잘못을 저질렀거나 죄를 짓고 이곳으로 숨어들었거나 동부 머나먼 곳에 적이 하나라도 있는 사람들은 모조리 자신을 죽이려고 머피가 나타났으리라고 생각하고는 제 발이 저려 지레 겁을 먹는다.
과묵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며 앳된 살인자가 거리로 나설 때마다 뒤숭숭한 온 동네가 전율에 빠지고, 마을 사람들이 몰려가 집단적으로 위협하거나 돈으로 매수하려고 하지만, 소용이 없다. 은행장은 언제 어디서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지만 두려움을 견디다 못해 아예 권총으로 자살한다.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의사 찰스 드레이크만 지은 죄가 없어서 머피와 가까워지고, 그에게 머피는 “병든 세상을 치료(cure)하기 위해 죽어 마땅한 자들을 제거한다”며 사신(死神)의 신조와 철학을 밝힌다. 마을 사람들의 성화에 밀려 총을 뽑았던 보안관의 손을 쏜 다음에 “왜 죽이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보안관을 죽여봤자 돈이 안 생긴다”고 대답한다.
오디 머피는 전체 출연작 44편 가운데 30여 편이 서부극이었을 정도로 그 분야의 ‘전문’ 배우였다. 아무리 봐도 서로 비슷비슷한 그의 작품들은 어느 영화가 어느 영화인지 제목조차 헷갈릴 정도여서, 기억에 남을 만한 명작은 따로 없지만, 한가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하나같이 재미있는 ‘수준급 오락물’을 양산했다. 이것은 제작자들이 그에게서 아무런 예술성을 요구하지 않았고 관객 또한 당연히 기대하지 않았던 필연적인 결과였다.
오디 머피는 워낙 특이한 배경과 경력을 안고 영화배우가 됐다. 그는 텍사스 시골 마을에서 아일랜드계 가난하고 무식한 소작농의 열두 아이 가운데 여섯째로 태어났다. 어릴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나서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학업을 중단해야 했고, 가족을 먹여 살리려는 절실한 필요에 따라 다람쥐와 토끼 사냥을 열심히 했던 덕택에 그는 일찌감치 명사수가 됐다.
주유소와 라디오 수리점 등에서 푼돈벌이를 하다가 17세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그는 동생 셋을 고아원으로 보내고, 진주만 기습 공격 이후 해병대나 공수부대에 입대하려고 했지만, 나이와 키, 체중 때문에 그것도 쉽지 않았다. 나중 그는 육군 사병으로 유럽 전선에 파병돼 27개월 동안 여러 전투에 참가하며 제2차 세계대전 참전병 가운데 가장 많은 22개의 훈장을 받아 민족적 영웅이 됐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월급을 누이에게 송금해 모은 돈으로 고아원에 보냈던 세 동생을 찾아오는 불우한 성장기를 보냈다.
전쟁후유증에 시달린 진짜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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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디 머피의 생애를 작품화한 훈장처럼 여겨지는 <붉은 무공훈장>. |
머피의 작품연보에서 서부극이 아닌 작품을 골라보자면, 우선 그레이엄 그린의 반전(反戰)소설이 원작인 <조용한 미국인(The Quiet American, 1958)>이 손꼽힌다. 인도차이나에서 《더 타임스》와 《르 피가로》 소속의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영국 소설가 그린은 프랑스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민족해방전선의 활동을 다룬 이 정치추리물(1955)에서 미국이 베트남 사태에 개입하리라는 예언을 했다가 죽을 때(1991)까지 미국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았으며, 매카티 선풍 직후에 제작된 오디 머피 영화는 그의 뚜렷한 정치적인 시각을 단순한 범죄물로 전락시켜 작가로 하여금 대단한 배반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스티븐 크레인(Stephen Townly Crane, 1871~1900)의 고전소설을 존 휴스턴이 영화로 만든 <붉은 무공훈장(The Red Badge of Courage, 1951)>은 오디 머피의 생애를 작품화한 훈장처럼 여겨진다. “공포에 대한 심리적인 연구”라고 크레인이 정의했던 이 작품의 주인공은 낭만적인 영웅심에 젖어 전쟁터로 가지만, 첫 전투에서 공포심을 이기지 못해 도주한다. 그리고는 수치심을 극복하면서 그는 진정한 군인이 된다. 이것은 머피 자신이 전쟁터에서 이등병으로 시작해 중위로 승승장구 진급하면서 온몸으로 겪어낸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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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의 전선>에서 훈장을 받는 오디 머피. |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들판의 2층짜리 농가 한 채를 놓고 피아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데, 이때 신경이 예민해진 오디 머피에 대해 고참 전우가 신병들에게 해 주는 말이 퍽 인상적이다. 머피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어느 누구와도 정을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다.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얼마나 많은 적병을 죽여야 했으며, 또 얼마나 많은 전우가 그의 주변에서 죽었던가.
오디 머피의 인생은 영화 <지옥의 전선>에서처럼 그렇게 신나고 재미있는 경험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억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머피는 <지옥의 전선>에 출연하기를 꺼렸으며,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나이>에서 그와 함께 공연한 토니 커티스에게 주연을 맡기라고 추천했을 정도였다. 그는 베트남전 이전에는 일시적이고 단순한 심리적인 충격(shell shock)이라고만 사람들이 생각했던 전쟁후유증에 무척 심하게 시달렸다. 그는 권총을 베개 밑에 두지 않으면 악몽에 시달려 잠을 이루지 못했고, 심지어는 첫 아내 완다 헨드릭스에게 총을 들이대기까지 해서 결국 결혼생활이 파탄을 맞았다.
1971년에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전쟁영웅 오디 머피는 최고의 예우를 받으며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