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할리우드 키드 안정효의 ‘별들이 빛나는 이야기’ ⑫ 조운 크로포드와 존 웨인

“용감무쌍한 왈가닥 여인” vs. “영웅이 홀대받는 시대의 영웅”

  • 글 : 안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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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로포드, 김혜수의 얼굴에 가수 하춘화의 부리부리한 눈을 합성한 듯싶은 인상
⊙ 크로포드, 兩性的 극단성 갖춘 할리우드 역사상 10번째 위대한 여배우
⊙ 존 웨인, 개평영화 출신으로 평생 90편 가량의 서부극 만들어
⊙ 존 웨인, 애리조나 북부 나바호 보호구역 일대의 ‘비석 계곡’을 각별히 좋아해

安正孝
⊙ 71세.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 《코리아헤럴드》 기자, 《코리아타임즈》 기자·문화체육부장,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 주요 작품으로 소설 《전쟁과 도시》(후에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은마는 오지 않는다》(후에 《銀馬》) 《악부전》 《솔섬》 등이 있다.
    번역서로 《백년동안의 고독》을 비롯해 150여 권이 있다.
서부극뿐 아니라 검술영화나 조폭영화 따위의 활극에서는 (대립 구도를 조성해 긴장감을 촉진시키는) 받아치기 화법이 뻥치기 과장법 못지않게 널리 활용된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어쩌니 저쩌니 해 가며 여성을 비하하는 통념이 팽배했던 시절의 관객에게는 두 여자가 권총을 들고 대결을 벌이는 마지막 장면이 참으로 희한했기 때문에 크게 화제가 된 이색 서부극 <고원의 결투(또는 ‘자니 기타’, Johnny Guitar, 1954)>에서 그런 사례를 찾아보기로 하자.
 
  산골 벽지의 작은 마을에 기타를 짊어지고 홀연히 나타난 수상한 사나이 스털링 헤이든이 불량배들에게 자기 이름을 ‘자니 기타’라고 밝히자, “그런 이름이 어디 있느냐”고 동네 깡패 스콧 브레이디가 따진다. 그러자 헤이든이 “Anybody care to change it?”이라고 묻는다. “내 이름이 기분 나쁘면 어디 누가 한번 바꿔 보라”고 도전장을 내놓는 말이다.
 
  그러고는 헤이든이 “당신 이름이 뭐냐”고 묻자 브레이디는 “Dancing Kid(춤추는 아이)”라는 별명을 댄다. 이번에는 헤이든이 “무슨 이름이 그러냐?”며 되묻고, 브레이디가 “Care to change it?(못마땅하면 자네가 한번 바꿔 보지 그래)”라고 받아친다.
 
  잠시 후에 도박장 여주인 조운 크로포드에게 헤이든이 말을 걸자 브레이디가 “모르는 여자한테 수작 걸지 말라”고 경계한다. 크로포드는 한때 브레이디의 애인이었다. 그러자 5년 전에 크로포드의 애인이었던 헤이든이 그녀에게 묻는다. “You a strange woman?(당신이 낯선 여자던가?)” 그리고 크로포드가 알쏭달쏭한 말을 한다. “Only to strangers.(낯선 사람들에게야 그렇겠지)”
 
  또 잠시 후에 헤이든이 시비를 건다. “Can you dance?([별명이 ‘춤추는 아이’라던데] 춤을 출 줄은 알아?)” 그리고 브레이디가 받아친다. “Can you play?([이름이 ‘기타’라는] 당신은 기타를 칠 줄이나 알아?)”
 
  그런가 하면 헤어져 지낸 5년간 몇 남자와 연애를 했느냐고 헤이든이 “How many men have you forgotten?(잊은 남자는 몇 명인가)”이라고 묻자 크로포드가 이렇게 받아친다. “As many women as you've remembered.(당신이 잊지 못하는 여자의 숫자와 같아)”
 
  이런 수사학적인 묘미 말고도 <고원의 결투>는 크로포드의 성 역할을 공부하기에 좋은 교재가 되기도 한다. 남자처럼 생각하고 남자처럼 행동하며 남자처럼 권총을 차고 워드 본드 보안관을 도박장에서 몰아내는 여걸 크로포드는 철도가 들어오면 황량한 광산촌을 새로운 도시로 개발할 원대한 야망을 품은 인물이다. 남편 조을 매크레이가 도시를 건설하도록 그늘에서 돕는 <위대한 여인의 그림자>의 바바라 스탠윅보다는 크게 한 수 위다.
 
  <네트웍>의 페이 더나웨이나 마찬가지로 조운 크로포드(Joan Crawford, 본명 Lucille Fay LeSueur, 1905~77)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의 성적인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일으키게 만드는 역을 <고원의 결투>에서 맡았다. 하지만 어느 평론가(Richard Lippe)가 “분열된 성향(split in gender orientation)”이라고 지적한 크로포드의 양성적 극단성(兩性的 極端性, androgynous polarity)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두드러지게 노출돼서, 마를레네 디트리히와 그레타 가르보와 캐더린 햅번과 더불어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적인 면모를 함께 갖춘 여배우로 일찌감치 분류됐다.
 
  예를 들어 W. 서머셋 모음(William Somerset Maugham)의 유명한 단편소설을 극작가 맥스웰 앤더슨이 각색한 <비(Rain, 1932)>를 보면, 수많은 남자를 무작위로 접대하는 작부 역을 맡은 크로포드에게서 우리는 이른바 성적인 매력(sex appeal)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김혜수의 얼굴에 가수 하춘화의 부리부리한 눈을 합성한 듯싶은 그녀의 인상은 사납고 무서워 보이기는 할지언정, 성욕을 느끼게 자극하는 관능적인 면모가 전혀 없다. 20년 후에 같은 원작으로 만든 다섯 번째 영화 <비에 젖은 욕정(Miss Sadie Thompson)>에서 같은 역을 맡은 리타 헤이워드의 육감적인 연기와 비교해 보면, 그 확연한 차이가 쉽게 읽힌다.
 
 
  性的 정체성 혼란을 일으키는 연기로 각광받아
 
이색 서부극 <고원의 결투>에서 혓바닥 싸움을 벌이는 스털링 헤이든(오른쪽)과 스콧 브레이디와 조운 크로포드.
  <고원의 결투>에서 여자인 숙적 머세데스 매켐브릿지를 권총으로 쏴 죽인 크로포드는 <비>에서 위선적이고 광신적인 선교사 월터 휴스턴과 ‘빗속의 결투’를 벌여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선원들 사이에서 발생한 콜레라 때문에 샌프란시스코를 떠난 여객선이 남해의 파고에서 며칠 동안 발이 묶이고, 다섯 명의 승객이 구멍가게를 겸한 민박집에 드는데, 선교사 부부와 의사 부부가 위층, 그리고 크로포드는 아래층에 방을 잡는다.
 
  가방에 술병을 챙겨 가지고 다니며 병나발을 부는 크로포드가 현지에 주둔한 해병들과 어느새 어울려 축음기를 시끄럽게 틀어놓고는 놀아대기 시작하고, 악의 무리를 구하겠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선교사 부부는 그들의 방으로 쳐들어가서 “안식일도 안 지키며 춤을 추느냐”고 죄인들을 몰아세우고 행패를 부리다가 해병들한테 보기 좋게 쫓겨난다.
 
  적개심에 불타는 선교사 휴스턴은 이리저리 뒷조사까지 벌여 크로포드가 샌프란시스코 경찰에 쫓기는 신세임을 알아내고는 총독을 찾아가 그녀를 본토로 송환시키도록 공작을 꾸민다. “개인적인 문제”라면서 총독이 선뜻 응하지 않으니까, 선교사는 ‘워싱턴의 영향력’까지 동원해 집요하게 공략을 계속한다. 그러는 한편 그는 크로포드를 악착같이 따라다니며 그녀의 머릿속에서 마귀를 쫓아내겠다고 열심히 기도를 드린다.
 
  저녁을 먹으려는데 무작정 방으로 들이닥쳐 설교를 늘어놓는 선교사에게 “나 배 고파요”라며 크로포드가 식사를 계속하려고 하면, “그건 영혼이 굶주렸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일방적인 논리를 펼치면서 괴롭힌다. 휴스턴은 그녀가 이곳을 떠나 오스트레일리아로 도망가게 해 달라고 부탁해도 “죄인이라면 받아야 할 벌은 꼭 받아야 한다”면서 독선적인 정의감이 요지부동이다. 그러고는 크로포드가 축출되기 전날 밤, 한밤중에 몰래 방으로 찾아가 그녀를 강간하고, 곧 양심의 가책을 느껴 목을 매 자살한다.
 
  이튿날 아침 크로포드는 배를 타지 않고 방에서 다시 축음기를 틀어놓고는 해병들을 맞는다. “성경은 헛소리”라면서 니체를 열심히 암송하는 가게 주인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자 크로포드가 대답한다.
 
  “남자들은 다 똑같아요. 돼지들이라고요.”
 
  추리소설가 제임스 M. 케인 원작에 윌리엄 포크너가 각색에 참여한 <밀드레드 피어스(Mildred Pierce, 1945)>에서 조운 크로포드는 두 남편으로 구성된 남성 집단과 경제력의 대결을 벌이고 승리하지만, 그녀의 주적은 평생 멍에가 되는 딸 앤 블라이트다. 부동산 경기의 침체 때문에 백수가 된 브루스 베넷은 두 딸에게만 신경을 쓰고 자신을 멸시하는 듯싶은 아내 크로포드에게 자격지심을 느껴 그녀와 결별하고 다른 여자와 동거를 시작한다. 엄마의 과보호에 익숙해진 블라이트는 부모가 갈라서건 말건 별로 신경조차 쓰지 않고, 돈 한 푼 없는 엄마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사치스러운 명품 인생을 살 길만 찾아 헤맨다.
 
 
  “남자들은 돼지들이라고요.”
 
  혼자 힘으로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처지로 몰린 크로포드는 이브 아덴의 식당에 종업원으로 취직해 열심히 일하며 경험을 쌓고는, 직접 경영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대단히 능률적이고 냉철한 그녀는 자신이 하는 행동의 목적과 결과를 정확히 계산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녀를 사랑하는 부동산업자 잭 카슨을 이용해 몰락 말기에 접어든 날라리 상속자 재커리 스콧의 집을 동업 형식으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빌려 식당으로 개조한 다음, 업소를 다섯 군데로 확장할 만큼 크게 성공한다. 그러고는 나중에 집 주인 스콧과 재혼한다.
 
  하지만 엉망진창으로 성장한 딸 블라이트는 아무리 부자가 됐다고 해도 늘 몸에서 음식 냄새가 나는 엄마를 변함없이 경멸한다. 워낙 낭비벽이 심한 블라이트는 여종업원들에게 돈을 꾸고 갚지 않기가 다반사다. 혼자 독립해 아무에게도 간섭을 받지 않고 화려한 삶을 살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려고 부잣집 아들을 유혹해 결혼하자마자 이혼을 하고는, 임신했다고 속여 엄청난 돈을 뜯어내는 사기까지 치게 된다. 화가 난 엄마가 수표를 빼앗아 찢어버리자 스무 살도 안 된 딸이 엄마의 뺨을 때린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엄마 탓”이라며 가출해 싸구려 술집의 가수가 된다.
 
  거기다가 두 번째 남편은 계속 식당에서 돈을 빼돌려 경마장 등에서 낭비하고 항상 채권자들에게 쫓겨 다닌다. 크로포드가 사업에 정신이 팔려 바깥에서 나도는 사이에 남편 스콧은 의붓딸인 블라이트와 불륜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날라리 방탕자의 본성을 뒤늦게 알아챈 블라이트가 아버지 스콧을 권총으로 마구 쏴서 죽여 버린다. 데비 레이놀즈처럼 아담하고 귀여우며 노래까지 잘 부르는 앤 블라이트가 이런 악역을 해내다니 놀라울 지경이다.
 
  미국영화연구소(AFI)가 할리우드 역사상 10번째 위대한 여배우로 선정한 조운 크로포드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리고 <밀드레드 피어스>에서 그녀가 그려낸 여인의 인생은 웬만한 시각으로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경제공황으로 시달렸던 당시 가정주부들의 답답한 눈에는 이혼을 당하고 나서도 좌절하지 않고 모든 역경을 이겨내며 꿋꿋하게 성공하는 모습만이 무척 대견하게 보였던 모양이어서, 크로포드는 남성 관객이 아니라 동성인 여자들에게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크로포드가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모습이 어쩌면 그토록 어색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자신을 ‘왈가닥 新여성(flapper)’이라 선전
 
<비>에서 수많은 남자를 무작위로 접대하는 작부 역을 맡은 조운 크로포드.
  1930년대 할리우드에서는 막스 브라더스처럼 희극만을 전문적으로 하지는 않더라도, 말랑말랑한 연애를 다루는 희극영화(romantic comedy)에 주력한 연기자가 여럿이었다. 캐리 그랜트, 클로뎃 콜베어, 로레타 영, 캐롤 롬바드, 클락 게이블, 진 아더, 윌리엄 파웰, 메어리 픽포드, 캐더린 헵번, 제임스 스튜어트 같은 경우가 그러했다. 조운 크로포드 역시 그런 방향으로 눈독을 들이며 자신을 ‘왈가닥 신여성(flapper)’이라 선전하고 희극적 면모를 부각시키는 노력을 많이 했었지만, 어쩐 일인지 그녀는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는 강인한 여인’ 쪽으로만 점점 더 인상이 굳어졌다.
 
  그녀의 적성에는 누가 뭐라고 해도 ‘용감무쌍한 남성적인 투사’가 잘 맞았다. 그래서인지 로버트 올드리치 감독의 <낙엽(Autumn Leaves, 1956)>에서 그녀가 연하의 클리프 로버트슨과 너무 자주 뽀뽀를 하는 바람에 일부 관객이 크게 놀랐다는 얘기까지 전해 내려온다. <낙엽>은 아내와 아버지가 불륜을 저지르는 장면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은 고독한 젊은이 로버트슨과 연상의 여인 크로포드가 사랑해 결혼까지 하지만, 남자는 과거의 악몽에 시달리다가 정신병원으로 가고 아내는 그를 일편단심 열심히 돌본다는 심리극이다. 어딘가 권혜경이 부른 노래 ‘산장의 여인’을 많이 연상시켰던 작품이다.
 
기구한 여인의 삶을 그린 조운 크로포드의 <밀드레드 피어스>.
  <밀드레드 피어스> 다음 해에 선보인 <죽음의 유모레스크(Humoresque)>에서도 애정이 없는 결혼생활을 하던 유부녀 크로포드는 남자들을 성적인 노리개로 취급하며 사냥한다. 그녀는 연하의 유망한 음악가 존 가필드를 처음에는 깔보다가 나중에는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사랑하게 되지만, 진실한 관계가 그들 사이에서는 이루어지기 불가능함을 깨닫고는 그가 연주하는 음악을 라디오로 들으며 바다로 걸어 들어가 빠져 죽는다.
 
  <죽음의 유모레스크>에서처럼 별로 마음에 없는 남자(레이몬드 매씨)와 결혼해서 살던 크로포드는 이웃집 청년 반 헤플린에게 흑심을 품지만, 헤플린은 그녀의 의붓딸에게 마음이 빼앗겨 크로포드의 가당치 않은 유혹을 보기 좋게 물리친다. 분개한 그녀는 헤플린을 죽이고 정신병원으로 끌려간다.
 
  퓰리처상을 받은 조지 켈리(George Kelly)의 희곡 <크레이그의 아내(Craig's Wife, 1925)>를 세 번째 영화로 만든 <헤리엣 크레이그(Harriet Craig, 1950)>에서는 조운 크로포드가 주변의 모든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까칠한 완전주의자로서, 남들의 사랑을 훼방 놓고, 남편의 일을 방해하고,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괴롭히면서, 오직 완전한 집 가꾸기에만 열중한다. 결국 남편이 집을 나간 다음 그녀는 완벽한 집에 완전히 혼자만 남는다.
 
 
  말년엔 은둔생활
 
안정효가 그린 조운 크로포드 캐리커처.
  <공포의 반전(Sudden Fear, 1952)>에서는 성공한 브로드웨이 극작가 조운 크로포드가 충동적으로 배우 잭 팰런스와 결혼한다. 그녀가 재산을 어느 재단에 기부하려는 유언장을 작성하려고 하자 팰런스는 숨겨 놓은 애인 글로리아 그레이엄과 함께 크로포드를 살해하고 재산을 가로챌 계획을 세운다. 그들의 음모를 눈치 챈 크로포드는 앉아서 그냥 당하는 대신, 오히려 팰런스를 살해하고 그 죄를 그레이엄에게 덮어씌우려는 역공을 시도한다. 팰런스는 그녀의 역공 계획을 눈치 채고 먼저 손을 쓰려고 하지만, 실수로 그레이엄을 죽이고 자신도 목숨을 잃는다. 참으로 복잡한 엎치락뒤치락이다.
 
  인물구성의 방향이 지나치게 제한된 (남성적) 방향으로만 쏠리던 크로포드의 ‘자수성가(from rags to riches)’ 영화들은 공황기가 마감되면서 약발이 빠져 계속 흥행에 실패하기에 이르고, 그녀에게는 ‘망조 사약(亡兆死藥·box office poison)’이라는 별명이 생겨났다.
 
  사생활에서도 조운 크로포드의 억센 인생은 화합과 사랑보다 대결과 반목이 훨씬 지배적인 힘을 발휘했다. 그녀는 다섯 아이를 입양해서 키웠는데, 두 아이는 관계가 순탄하지 않아 결국 다시 내치고 말았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내쫓긴 딸 크리스티나는 크로포드가 타계한 다음 해 《존경하는 어머니(Mommie Dearest)》라는 책을 펴냈다. 자신이 어떤 학대를 받았는지 낱낱이 폭로해 대단히 시끄러운 베스트셀러가 된 크리스티나의 《어머니》는 1981년에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페이 더나웨이가 ‘악독한’ 크로포드 역을 맡았다.
 
  1955년에 조운 크로포드는 펩시콜라 회장 알프렛 스틸을 네 번째 남편으로 맞았으며, 스틸이 1959년에 사망한 다음 그녀가 이사회를 거쳐 회장 자리를 물려받기는 했지만, 1973년에는 강제 퇴역을 당했다. 1970년에 영화에서 은퇴한 다음 마음에 들지 않는 그녀의 사진들이 언론 매체에 실리기 시작하자 크로포드는 1974년부터 그레타 가르보처럼 바깥세상과의 접촉을 끊고 은둔생활로 들어갔다.
 
  그런가 하면 로버트 올드리치의 노년 공포극 <제인의 말로(What Ever Happened to Baby Jane?, 1962)>를 촬영하면서 조운 크로포드와 베티 데이비스 두 여자가 벌였던 치열한 결투는 이제 유명한 전설이 됐다.
 
 
  ‘B 영화’ 출신의 존 웨인
 
존 웨인 캐리커처.
  <고원의 결투>에서 조운 크로포드와 머세데스 매켐브릿지가 벌이는 총질은 현대식 영화읽기에 지나치게 익숙해진 관객에게라면 (성차별을 제거한) 당연하고 민주적인 표현 방식으로 받아들이는데 아무런 무리가 없을지 모르겠지만, 결코 과거의 현실은 아니었다. <허망한 경주(Bite the Bullet)>에서 험악한 장거리 경마에 참가하는 용맹한 캔디스 버겐이나 <빠른 자와 죽은 자(The Quick and the Dead)>의 미녀 총잡이 샤론 스톤도 마찬가지다. 만일 그런 여성이 정말로 서부에 존재했다면 당시의 부정확한 언론과 뻥치기 소문을 타고 훌쩍 자라서 컬라미티 제인보다 훨씬 유명한 전설이 되었으리라. 그들은 하나같이 작가의 상상력(poetic license)이 탄생시킨 산물이며, ‘커다란 얘기’의 한 가지 형태일 따름이다.
 
  이른바 ‘정통’ 서부극은 초능력의 여성이 아니라 비범하지만 인간적인 사나이들의 얘기가 주류를 이루었고, 개리 쿠퍼와 더불어 존 웨인(John Wayne, 본명 Marion Morrison, 첫 예명 Duke Morrison, 1907~79)이 그런 역을 전문으로 맡았던 배우였다.
 
  애국적이고 듬직한 남성상을 과시하며 생전에 17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해 당대 미국 배우들 가운데 역사상 최고의 수입을 올렸던 존 웨인은 이른바 ‘B 영화(B movies)’ 출신이었다. 여기에서 B 영화라 함은 우리나라에서 널리 알려진 개념처럼 질적으로 열등한 ‘B급 영화’가 아니다. 초기의 극영화는 보통 한 시간 정도의 길이였으며, 그래서 공급자들과 극장에서는 손님을 끌기 위해 ‘본 영화(本映畵·main feature)’인 A 영화와 더불어, 덤으로 보여주는 B 영화(동시상영물), 그리고 뉴스와 만화까지 한 덩어리로 묶어서 상영하고는 했다. 하지만 B 영화라고 해서 일부러 ‘B급’으로 질을 낮춰 제작하지는 않았고, 개평 영화를 전문으로 생산하고 공급하는 시장 체제가 엄연히 따로 존재했었다.
 
  B 영화를 제작하던 속칭 ‘가난뱅이 동네(Poverty Row)’ 소규모 영화사들은 무성영화 말기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활동했던 모노그램, 티파니, 매스콧, 그리고 좀 규모가 컸던 리퍼블릭 등의 ‘떴다방’ 업체들이었다. 복면의 사나이 론 레인저 같은 고정된 주인공을 내세우고 일정한 공식에 따라 권선징악 기승전결이 엮어지며 흔히 연속물의 형태를 갖춘 대부분의 서부영화가 그들의 손에 의해서 제작됐다. 뿐만 아니라 폭스, 콜럼비아, 워너 같은 큰 영화사에서는 만화영화와 더불어 B 영화를 전담하는 부서를 따로 두기도 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질이 좀 떨어지는 제품들을 그들이 생산하기는 했지만, ‘B 영화’를 ‘B급 영화’라고 하면 그것은 ‘B보이’를 ‘B급 보이’라 하고 ‘B-29’ 폭격기를 ‘B급-29’ 폭격기라고 하는 것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겠다. 상대적으로 상영시간이 짧은 저예산 고급 독립영화의 경우처럼, 두 번째 보여주는 영화라고 해서 첫 번째 영화보다 꼭 저질이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활동사진이 등장한 초기에는 영화를 예술로 간주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특히 서부극은 더욱 천대를 받아서 제대로 큰 예산을 들여 만든 작품이 드물었다. 따라서 평생 90편가량의 서부극을 만들었을 만큼 그쪽 분야에서만 주로 활동했던 존 웨인이 8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경력에도 불구하고, 존 포드는 그를 <역마차(Stagecoach, 1939)>의 링고 키드 역으로 발탁하기에 앞서서 여러 해 동안 그를 지켜보면서 ‘연기를 제대로 익혀 쓸 만한 배우가 되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고 한다.
 
 
  ‘바보들의 배’, <역마차>
 
‘바보들의 배’ 형식을 서부극에 접목시킨 <역마차>는 제한된 공간에 갖가지 사연을 간직한 다양한 인물을 배치시킨다.
  <역마차>는 여러 면에서 영화학의 훌륭한 교과서 노릇을 한다. 우선 이 영화는 ‘바보들의 배’ 형식을 서부극에 접목시킨 ‘모범작문’으로, 애리조나의 한 지점(Tonto)에서 뉴멕시코의 다른 지점(Lordsburg)으로 이동하는 한 대의 역마차라는 제한된 공간에 갖가지 사연을 간직한 다양한 인물을 우선 배치시킨다.
 
  셜록 홈스를 연상시키는 멋쟁이 도박사 존 캐러딘, 언변으로는 셰익스피어를 뺨칠 정도인 몰락한 주정뱅이 의사 토마스 밋첼, 밋첼에게는 구세주만큼이나 반가운 소심한 떠돌이 위스키 판매상 도널드 미크, 은행 돈 5만 달러를 훔쳐 도망치는 주제에 국가와 세상과 사회에 대한 불평불만을 끊임없이 늘어놓는 은행장, 탈옥수 링고를 ‘보호’하려고 체포하러 출동하는 보안관, 술에 취한 듯 똑같은 얘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마부, 만삭의 몸으로 기병대 장교인 남편을 만나려고 길을 나선 쌀쌀맞은 여인, 고지식한 동네 여편네들의 압력 때문에 추방을 당하는 창녀 클레어 트레버 ….
 
  이런 ‘바보’들을 차곡차곡 실어 담은 ‘배’는 등장인물들이 서로 어떤 상호작용을 일으키려는지 설레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며, 기병대 소수 병력의 호위를 받으면서, 보호구역을 탈출한 제로니모 추장과 아파치 인디언들이 출몰하는 위험한 황야로 나간다. 그리고 아버지와 동생을 죽인 악당 4형제 가운데 하나를 죽이고 체포돼 17살에 투옥됐다가, 나머지 세 명에게 복수를 하려고 탈옥한 존 웨인이 도중에 나타나서, 권총이 아니라 윈체스터를 멋지게 휘둘러 보이고는 그들과 합류해, 대미를 장식할 대결 상황까지 마련한다.
 
  <역마차>에서는 또한 중세 유럽의 기사도가 서부극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확인하기가 어렵지 않다. 도대체 노름꾼을 미화하는 영화가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남부의 신사’인 도박사 존 캐러딘은 ‘임신한 장교 부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위험한 여행에 동참한다. 그는 주정뱅이 의사가 차내에서 여송연 연기를 뿜어대자 “여성이 함께한 자리에서는 예절을 갖추라”고 면박을 주는가 하면, 위스키 판매원은 “숙녀들 앞에서 말조심합시다”라며 맞장구를 치고, 보안관은 첫 번째 역참에서 기병대가 본대로 돌아간 다음 인디언과 전투를 벌일 각오로 계속 길을 가야 하느냐 아니면 돌아가야 하느냐를 결정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위험한 일에 여성을 끌어들일 수 없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그리고 후반부에서 인디언과의 총격전이 벌어지고 죽음이 눈앞에 닥치자, 산 채로 ‘야만인’들에게 잡혀가지 않도록 도박사는 마지막 남은 한 발의 총탄으로 장교 부인을 ‘안락사’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어린 나이에 부모가 인디언들에게 학살을 당하고 나서 먹고살기 위해 창녀가 된) 클레어 트레버에게는 완전히 다른 비민주적인 신분차별을 자행함으로써 집단 내부에서의 대립이라는 이중구조를 설정한다.
 
  은행장은 첫 번째 역참에서 식사를 하려다가 천박한 계집 트레버를 피해 창가의 식탁으로 자리를 옮기고, 도박사는 장교 부인이 역마차 안에서 창녀와 나란히 앉기를 꺼리자 “여기 앉으시죠”라며 가운데로 끼어들어 완충지대를 마련하는 아량을 보이고, 먼지바람 속에서 전속력으로 역마차가 질주하는 동안 갈증에 시달리는 ‘숙녀’가 수통을 받아 그냥 입을 대고 물을 마시려 하자 도박사가 은으로 만들어진 뚜껑까지 달린 휴대용 잔을 호주머니에서 꺼내 제공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창녀 트레버를 좀처럼 거들떠보려고 하지 않는다.
 
 
  <진홍의 날개>, 영웅이 홀대받는 또다른 ‘바보 배’
 
재난영화의 원조로 꼽히는 <진홍의 날개>의 미국 포스터.
  노골적인 집단따돌림 행위에 눈꼴이 시어진 탈옥수 존 웨인은 참다못해 “다른 숙녀 분에게는 물을 안 주느냐?”고 따져 수통을 넘겨받고는, “잔이 없어 미안하다”면서 트레버에게 넘겨준다. 약자끼리 동병상련해 정치적인 통합이 이루어지고, 사랑이 잉태되는 순간이다.
 
  두 번째 역참에서 휴식을 취할 때는 대단히 흔하면서도 극적인 분위기를 마련하는 역전의 상황이 벌어진다. ‘숙녀’가 졸도해 갑자기 몸을 풀게 되자, 다른 사람들이 빈둥거리기만 하는 사이에 맹활약을 벌이는 인물은 가장 미천한 창녀 트레버와 도박사에게서 쓰레기 취급을 받았던 주정뱅이 의사 밋첼이다. 퍽 상투적이기는 하지만 이런 명예회복(rehabilitation 또는 redemption) 장치는 줄거리를 전개시키는 훌륭한 점강(漸降·anticlimax) 효과를 낸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창녀의 명예가 충분히 회복되지 않고, 그래서 임산부를 포함해 아무도 진심으로 고마워하지 않는 냉랭한 분위기를 피해 트레버는 혼자 마당으로 나가 휘영청 밝은 달에게서 쓸쓸한 위안을 받는다. 영웅이 홀대를 받는 이런 상황은 트레버와 존 웨인이 다시 함께 공연한 <진홍의 날개(The High and the Mighty, 1954)>에서도 재생된다.
 
  (위기를 맞은 다음에 다양한 등장인물이 저마다 다른 반응을 드러내는) 재난영화의 원조로 꼽히는 <진홍의 날개>에서는 호놀룰루를 떠나 본토로 날아가는 여객기가 ‘바보들의 배’ 노릇을 한다. 태평양 상공에서 한쪽 엔진이 멈춰 서자, 우유부단한 로버트 스택 기장이 바다로 불시착하려고 한다. 나이가 많아서 스택에게 ‘늙은 펠리칸’이라고 구박을 받았던 부기장 존 웨인은 여객기를 구하기 위해 비겁한 기장 대신 조종간을 잡는다.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비행기를 끌고 웨인은 천신만고 끝에 연료가 거의 바닥이 난 상태에서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무사히 착륙시킨다. 그리고 겨우 목숨을 건져 비행기에서 내리는 손님들과 조바심하며 그들을 기다리던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얼싸안고 환호성에 휩싸이지만, 아무도 기다려 줄 사람이 없었던 웨인은, 악당을 처치하고 홀연히 떠나가는 서부의 사나이처럼, 홀로 쓸쓸하게 비행장을 빠져나간다.
 
  다시 잠깐 <역마차>로 돌아가자면, 이 영화에서 가장 박진감 넘치는 명장면은 사막지대를 가로질러 질주하며 벌이는 아파치 인디언과의 총격전 도중에 등장한다. 이때 역마차를 끌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 위로 뛰어올랐다가 총을 맞고 땅바닥으로 떨어져 역마차 밑으로 굴러 들어가는 ‘인디언’은 야키마 카누트(Yakima Canutt, 1895~1986)다. 할리우드 최고의 대역배우(stuntman)였던 카누트는 서부극의 온갖 묘기와 힘든 연기를 존 웨인에게 가르친 스승이었고, 윌리엄 와일러의 <벤허>에서 찰톤 헤스톤과 스티븐 보이드가 마차를 달리는 장면을 연출해 내기도 했다.
 
  이어서 기병대가 깃발을 휘날리고 나팔을 불며 나타나 인디언들을 통쾌하게 물리친다. 서부극에서 자주 나타나는 이런 장면에서 할리우드 키드 시대의 관객들은 신이 나서 극장이 떠나가도록 박수를 치면서 “서부가 달린다!”고 함성을 지르고는 했었다. 참 옛날 일이다.
 
  <역마차>에서는 또한 호위하던 기병대가 부대로 돌아간 다음 여행을 계속하느냐 마느냐 투표를 할 때, 도박사가 카드로 슬쩍 자신의 운명을 점치는 장면이 나온다. 존 캐러딘이 몰래 확인한 카드는 ♠A — 죽음의 괘였다. 그래서인지 영화에 등장하는 역마차 승객들 가운데 캐러딘 한 사람만 인디언에게 죽는다. 그리고 마지막 3대1 결투 장면에 앞서서 악당이 포커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쥐었던 패는 ♣A ♠A ♣8 ♠8 ♠2 — 와일드 빌 히콕이 죽기 직전에 잡았던 ‘죽은 자의 패’다. 포커의 ‘족보’를 알아두면 이렇게 서부극의 이해와 번역에서 크게 도움이 된다.
 
 
  구로사와 검객영화에 영향 끼친 ‘교과서’적 서부극
 
<역마차>에서 사막지대를 가로질러 질주하며 벌어지는 아파치 인디언과의 총격전 장면을 담느라고 촬영기가 역마차를 타고 함께 달린다.(화살표)
  <역마차>의 마지막 장면에서, 복수를 끝낸 존 웨인은 감옥으로 순순히 돌아가려고 보안관을 찾아가 만나서는, 그가 출옥해 결혼할 날이 올 때까지 클레어 트레버가 창녀 생활을 하지 않도록 잘 돌봐 달라고 부탁한다. 웨인의 아버지와 한때 같은 목장에서 카우보이로 일했던 보안관은 웨인과 트레버를 마차에 타라고 하고는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도망치라고 쫓아버린다. 분명히 불법이기는 하지만 기사도 정신에 뿌리를 둔 ‘사나이들의 의리’를 부각시키는 이런 장면은 <아파치 요새(Fort Apache, 1948)>의 마지막을 장식하기도 한다.
 
  일본의 명장 구로사와 아키라가 만든 <요짐보>는 이탈리아 서부극 <황야의 무법자>의 원본이 되었고, <7인의 사무라이(七人の侍)>는 할리우드로 건너가 <황야의 7인>이 되었는데, 구로사와는 이들 영화가 사실은 정통 서부극의 정형을 설정한 존 포드의 영화들을 흉내 낸 작품이라고 언젠가 고백했다. 검객과 총잡이의 교배가 오락가락하면서 자유롭게 이루어진 셈이다.
 
  구로사와의 검객영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교과서’적인 서부극은 존 포드-존 웨인의 기병대 3부작으로서, 그 첫 번째가 <아파치 요새>다. 스펜서 트레이시가 ‘인디언 불고기’라는 표현을 썼던 <북서로 가는 길>에서처럼 ‘무작정 잡아 죽여야 하는 야만인’이라고 몰아붙이지를 않고 인디언들의 편을 드는 시각과 정서를 처음으로 담았던 서부극 작품들 가운데 하나인 <아파치 요새>는 유명한 서부의 전설 하나를 전복시킨다.
 
  인디언 지역의 외딴 요새로 부임해 온 사령관 헨리 폰다 중령은 웨스트 포인트 출신으로, 남북전쟁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우기는 했지만 인디언과의 전쟁에는 전혀 경험이 없는 숙맥이다. 거기다가 독선적이고 교만하기까지 한 그는 딸 셜리 템플이 신통치 않은 집안 출신인 젊은 장교 존 에이가와 사귀지 못하게 막는가 하면, 인디언을 깔보면서 제대로 인간 대접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융통성이 없는 신임 사령관은, 아파치 인디언이 봉기하자, 하루라도 빨리 공훈을 세우고 싶은 욕심에 신중한 존 웨인 대위의 반대를 무시하고 정면 공격을 감행했다가 수치스러운 궤멸을 당한다.
 
  이 영화의 기둥줄거리는 “리틀 빅혼에서 벌어진 인디언과의 마지막 결전에서 용감하게 끝까지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고 알려진 제7기병대의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George Armstrong Custer, 1839~76) 장군의 전설을 그대로 빼다 박은 내용이다. ‘장렬한 전사’로부터 100년이 훨씬 지난 다음 1983년에야 고고학자들은 인디언보다 훨씬 불리한 화력으로 커스터의 기병대가, 전투 준비를 철저히 하고 기다리던 인디언의 기습을 받고, 아무런 저항을 못하고 처참하게 몰살을 당했다는 진실을 밝혀 냈다. 1991년 미 의회는 백인이 영광스러운 승리가 아니라 패배만을 맛보았던 ‘커스터 장군의 전투 기념 유적지’를 ‘국립 리틀 빅혼 전투 기념관’으로 명칭을 바꾸고 인디언 추모 기념비를 세웠으며, 그곳 소장도 인디언 후손으로 바꾸었다. 서부개척사에 한 세기 동안 찬연히 빛났던 커스터의 리틀 빅혼 전설 역시 언론과 통속소설이 합세해 만들어 낸 뻥치기 문학의 산물이었다는 뜻이다.
 
  <아파치 요새>에서는 이런 진실을 눈치챈 어느 기자가 존 웨인에게 폰다 중령이 정말로 “언론에서 떠들어대듯이 그렇게 영웅적인 죽음을 맞았느냐”고 캐묻는다. 그러자 웨인 대위는 “이왕 죽은 사람을 헐뜯어 무엇하겠느냐”는 마음에서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 모든 공훈을 폰다에게 돌림으로써 ‘호국정신으로 장렬하게 전사한 영웅’의 전설을 보호한다.
 
 
  존 웨인의 명작들
 
<아파치 요새>는 커스터와 제7기병대 전설을 뒤엎는다.
  기병대 3부작의 두 번째 영화 <황색 리본(She Wore a Yellow Ribbon, 1949)>은 커스터 장군이 리틀 빅혼에서 참패했다는 소문을 듣고 샤이엔과 아라파호 인디언이 용기를 얻어 보호구역을 뛰쳐나와 전쟁을 벌일 기세를 보인다. 그러자 퇴역을 앞둔 존 웨인 대위가 전전긍긍하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위험한 지역들을 점검하며 마지막 정찰 임무를 수행한다. 관광 효과가 작품성보다 훨씬 컸던 범작(凡作)이라고 하겠다.
 
  어떤 평론가는 사람들이 서부극을 좋아하는 이유가 상영시간의 70%에서 하늘이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답답한 도시의 밀폐된 실내에서 옹졸한 사랑 따위를 놓고 눈을 흘기고 짜증을 부리면서 티격태격 엮어 나가는 영화보다 시원스러운 풍광을 배경에 깔고 사나이들이 영웅심을 펼치는 통쾌무비한 영화가 관객의 속을 후련하게 해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존 포드는 북아메리카 대륙의 풍경 가운데 애리조나 북부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 일대의 ‘비석 계곡(Monument Valley)’을 각별히 좋아해 그곳에서 지나치게 많은 영화를 촬영했고, 그래서 포드 영화를 보면 유사한 구도의 화면이 자주 나타난다. 예를 들면 <역마차>에서 ‘바보들의 배’가 톤토를 출발하는 장면과 <황야의 결투>에서 와이엇 어프(헨리 폰다)가 클레멘타인과 훗날을 기약한 다음 말을 타고 달려 멀어져 가는 마지막 장면은 아무리 봐도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각도로 촬영하지 않았나 싶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액수인 160만 달러를 들여 3부작 가운데 유일하게 색채로 제작한 <황색 리본> 역시 비석 계곡에서 촬영했는데, 기병대가 줄지어 들판을 횡단하는 어느 장면을 보면 하늘이 흐려 있다. 이때 촬영감독(Winton C. Hoch)은 이왕이면 청명한 날씨에 예쁜 풍경을 화면에 담고 싶어서 작업에 강력히 반대했지만, 감독이 억지로 진행을 강요했다면서 나중에 존 포드를 고소했다. 소송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억지 촬영에 마지못해 응했던 촬영감독은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무작정 예쁜 것만 좋아하는 취향과 참된 예술적 감각의 충돌에 대한 우화라고 하겠다.
 
  세 번째 기병대 영화 <리오 그란데(Rio Grande, 1950)>에서는, 수학 과목을 낙제해 웨스트 포인트로부터 퇴교를 당한 클로드 자만 주니어가 병사로 입대해, 우연히 아버지 존 웨인이 사령관으로 근무하는 전략촌으로 전입하면서, 15년 만에 만난 부자의 신경전이 벌어진다. 그리고 아들을 고생스러운 군대에서 ‘썩지 않게’ 빼 달라고 부탁하러 찾아온 웨인의 (이혼한) 아내 모린 오하라에게 구박을 당하는 빅터 맥클라글렌 병사의 수난사가 희극적인 양념(comic relief)을 부지런히 제공하며 산만한 줄거리가 이어진다.
 
마지막 영화 <최후의 총잡이> 미국 포스터는 존 웨인의 영정처럼 보인다.
  이 영화에서는 ‘낭만적인 병영생활’이라는 곁 주제를 살리느라고 노래가 퍽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포드 감독이 여러 영화에서 즐겨 심어 놓았던 서정적인 사탕발림 장치들 가운데 하나다. <황야의 결투>에서는 구슬픈 민요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이 주제곡에 삽입되었을 뿐 아니라, 노래 제목을 영화 제목으로 사용했는가 하면, 여주인공의 이름을 아예 ‘클레멘타인’이라고 설정했다.
 
  수많은 존 웨인 서부극 가운데 할리우드 키드가 인상이 깊었다고 기억하는 다른 작품으로는, 웨인이 스스로 자신의 대표작 10편 가운데 하나로 꼽았던 서정적이고도 서사시적인 <수색자(The Searchers, 1956)>, 유명한 서부소설가 루이 라무어(Louis L'Amour)의 작품을 입체영화로 제작했으며 고독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던 <혼도(Hondo, 1953)>, 그리고 하워드 혹스 감독의 호쾌한 <리오 브라보(Rio Brave, 1959)> 정도가 되겠다.
 
  완치되었던 암이 재발해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에 존 웨인이 마지막으로 만든 작품 역시 서부영화 <최후의 총잡이(The Shootist, 1976)>였다.
 
  때는 1901년 1월, 찬란한 서부의 영광이 과거 속으로 사라지고 자동차와, 궤도차와, 전화와, ‘드라이클리닝을 발명한’ 20세기로 들어선 지 며칠밖에 안 되는 어느 날, 웨인이 병든 몸을 이끌고 콜로라도를 떠나 네바다의 겨울 벌판을 횡단해 홀로 카슨 시티에 도착한다. 그가 곧장 찾아간 옛 친구인 의사 제임스 스튜어트는 웨인의 병세가 워낙 심해서 앞으로 두 달밖에 못 산다는 진단을 내린다. 그래서 웨인은 미망인 로렌 바콜의 하숙집에 거처를 정하고는 존엄성을 잃지 않으면서 죽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처음에 그는 바콜에게 자신의 신분을 이미 40년 전에 죽은 연방 보안관 와일드 빌 히콕이라고 속이지만, 실제로 그는 히콕 못지않게 유명한 총잡이다. 그래서 웨인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퍼져 나가자 그와 결투를 해서 죽였다는 명성을 얻으려는 자들과, 그에게 복수를 다짐해 온 자들과, 특종을 잡으려는 신문기자가 속속 모여들어 그를 귀찮게 한다.
 
  웨인은 비석까지 미리 만들어 놓은 다음, 생일날을 골라, 오전에 빈 술집으로 리처드 분과 휴 오브라이언과 밀 맥키니를 불러 모으고는, 3대1로 결투를 벌여 ‘밀린 관계’를 청산하고, 와일드 빌 히콕처럼 엉뚱한 인물에게 등 뒤에서 총을 맞고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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