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놀즈, 방량 연예인과 무용단 아가씨가 보여주는 깜찍한 매력
⊙ 레이놀즈, 남편(에디 피셔)을 女優 엘리저베드 테일러에게 빼앗겨
⊙ 피니, 영국 황실연극학교에서 연기수업… 데뷔 후 몇 년 동안 연극무대에 정진
⊙ 피니, 암울한 인생을 살아가는 비참한 주인공을 예술적으로 표현
安正孝
⊙ 71세.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 《코리아헤럴드》 기자, 《코리아타임즈》 기자·문화체육부장,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 주요 작품으로 소설 《전쟁과 도시》(후에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은마는 오지 않는다》(후에 《銀馬》) 《악부전》 《솔섬》 등이 있다.
번역서로 《백년동안의 고독》을 비롯해 150여 권이 있다.
⊙ 레이놀즈, 남편(에디 피셔)을 女優 엘리저베드 테일러에게 빼앗겨
⊙ 피니, 영국 황실연극학교에서 연기수업… 데뷔 후 몇 년 동안 연극무대에 정진
⊙ 피니, 암울한 인생을 살아가는 비참한 주인공을 예술적으로 표현
安正孝
⊙ 71세.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 《코리아헤럴드》 기자, 《코리아타임즈》 기자·문화체육부장,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 주요 작품으로 소설 《전쟁과 도시》(후에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은마는 오지 않는다》(후에 《銀馬》) 《악부전》 《솔섬》 등이 있다.
번역서로 《백년동안의 고독》을 비롯해 150여 권이 있다.
4세대에 걸쳐 뉴욕에서 시작해 아메리카를 개척하며 태평양 해안 캘리포니아까지 진출하는 한 집안의 역사가 담긴 <서부개척사>를 연출한 감독은 서정적인 서부극의 명장 존 포드(John Ford), 권선징악 서부극을 전문으로 했던 헨리 해더웨이(Henry Hathaway), 알프렛 힛치콕의 후기 영화처럼 은근한 장난기가 담긴 독특한 서부극을 즐겨 만들었던 조지 마샬(George Marshall), 그리고 각종 활극을 왕성하게 발표했던 리처드 도프(Richard Thorpe) 네 사람이었다. 나아가 (1년 전에) 세상을 떠난 개리 쿠퍼를 제외하고 수많은 유명한 서부극 배우들이, 존 웨인과 헨리 폰다와 리처드 위드막에서부터 일라이 월락, 미키 쇼네시, 러스 탬블린, 해리 딘 스탠튼, 레이몬드 매씨, 리 J. 콥, 아그네스 무어헤드에 이르기까지 총출동해 그야말로 낯익은 얼굴만 구경해도 ‘본전을 뽑고도 남는’ 영화다.
뿐만 아니라 시네라마 대형 화면을 가득 채우는 웅장한 대자연의 풍광, 격류를 타고 내려가는 뗏목, 포장마차 행렬의 도하작전, 일확천금을 노리는 황금광들의 행렬, 인디언의 습격과 들판의 전투(남북전쟁), 대륙을 횡단하는 초특급 역마 우편(Pony Express), 들소 떼의 폭주, 열차강도와의 박진하는 총격전처럼 정통 서부극의 다양한 정형을 골고루 갖춘 <개척사>는 수십 편의 야사(野史) 모음집을 아이맥스로 보는 듯한 흥분을 자아낸다.
영화 속의 데비 레이놀즈는 독실한 종교인 개척자 칼 몰든의 딸로서, 힘겨운 서부 생활이 싫어 동부로 돌아갈 기회를 노리다가 마침내 세인트루이스로 도망쳐 타고난 노래 솜씨로 술집의 무희가 된다. 얼마 후에 그녀는 껄렁껄렁한 도박사 그레고리 펙과 결혼하고는 아버지가 유산으로 물려준 금광을 경영하려고 포장마차 행렬에 끼여 다시 서부로 간다.
컬라미티 제인처럼 때로는 남자들에게 채찍까지 휘둘러 가며 강한 생활력과 사나운 성깔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녀는 광산이 망하고 남편 펙이 종적을 감춘 다음 다시 천막극장과 유람선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홀몸 신세가 되지만, 결국 펙과 재회해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한다. 그러고는 남편이 죽은 다음 재산을 정리하고는 언니 캐롤 베이커와 제임스 스튜어트 사이에서 태어난 조카 조지 페퍼드가 보안관으로 일하는 애리조나로 가서 노후를 보낸다.
서부영화와 ‘여성 품귀 현상’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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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개척사>에서 인디언들에게 쫓기는 포장마차 행렬. |
서부극을 보면 <개척사>의 레이놀즈처럼 술집 가수나 창녀 같은 이른바 ‘직업여성’이 퍽 많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서부 변경지대로 갈수록 여자다운 여자를 구경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었다. 여자가 그렇게 귀했던 까닭은 불결한 생활환경과 질병 그리고 고된 노동 때문에 웬만한 여성은 일찍 죽어버리기 때문이었다. 오하이오에 정착한 캐롤 베이커의 집 근처에 마련한 가족 묘지가 몇 차례 영화에 나오는데, 서부에서는 남편 무덤 주변에 여러 아내의 묘지가 줄지어 늘어선 경우가 많았다. 연약한 여성들이 단명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족한 여자를 동부에서 구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한때 ‘우편 주문 신부(mail-order bride)’라는 제도까지 생겨났었다. J. C. 페니나 시어스-로벅에서 상품을 소개하는 목록책자(catalog)를 만들어 전국 소매점들에 배포했듯이, 우편 판매 상품처럼 여자들이 스스로 사진과 신상명세를 안내서에 게재하면, 서부의 남자들이 그것을 보고 신부를 ‘구입’했는데, 아직 파나마 운하가 없던 당시에는 주문받은 신부들을 동부의 항구도시에서 아프리카 노예처럼 불결한 짐칸에 잔뜩 실은 배가 남아메리카를 돌아 몇 달씩 걸려 캘리포니아로 가고는 했다. 이런 과정에서 수많은 여자들이 목숨을 잃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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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진 켈리와 노래하는 데비 레이놀즈. |
미국에서 여성을 소중히 여기는 풍습이 기사도 정신으로부터 비롯된다고는 하지만, 이런 여성 품귀 현상 또한 ‘여자 먼저(lady first)’로 보호한다는 관습에 분명히 일조를 했으리라고 믿어진다.
아메리카 조상들에게 바치는 찬가(homage)라고 할 만한 대작 영화 <서부개척사>에서 방랑 연예인 역을 맡아 서부 여성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었던 데비 레이놀즈는 본디 서부극 분야와는 거리가 먼 연기자여서, 그녀의 대표작이라면 현란한 춤과 노래의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 1952)>를 꼽아야 옳겠다.
보드빌과 벌레스크(burlesque)로부터 시작해 무성영화를 거쳐 ‘말하는 영화(talking picture)’와 함께 뮤지컬이 등장할 때까지의 할리우드 역사를 차곡차곡 소상히 담은 일종의 풍자극인 <사랑은>의 톡톡한 구경거리는 단연 인기배우 진 켈리와 작곡가 도널드 오코너, 그리고 어린애처럼 귀여운 무용단 아가씨 레이놀즈가 경쾌한 몸놀림을 곁들여 엮어 내는 노래이지만, 특히 진 켈리의 춤 두 가지를 눈여겨보기 바란다.
레이놀즈의 몸놀림과 진 켈리의 춤
그 하나는 촬영장 안에서 레이놀즈와 켈리가 추는 환상적인 춤으로, <파리의 아메리카인>에서 레슬리 캐론과 켈리가 함께 추는 마지막 춤을 방불케 한다. 두 번째 춤(‘Broadway Melody Ballet’)은 비밀 술집에서 펼쳐지는데, 조폭의 정부인 시드 샤리스가 등장하는 방법이 매우 상징적이다. 카메라는 우선 그녀의 발끝을 보여주고, 미끈한 다리를 타고 이동하여 서서히 하반신에 이른 다음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여준다.
샤리스의 각선미는 할리우드 역사상 최고의 명품으로 알려졌으며, 그녀의 다리를 1952년 영화사에서 500만 달러짜리 보험에 들어 2001년 기네스북에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다리(Most Valuable Legs)’로 등재되기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는 관객으로 하여금 제대로 감상하도록 그 다리를 무척 꼼꼼히 보여준다.
레이놀즈가 깜찍한 매력으로 우리나라에서 관객의 시선을 끌었던 또 다른 작품은 <신부는 방년 17세(Susan Slept Here, 1954)>였다. 엄마한테 버림받고 길을 헤매던 아가씨 레이놀즈를 부랑죄(vagrancy)로 체포한 경찰관은 차마 성탄 전야에 그녀를 유치장에 가둬 둘 수가 없어서 친구인 시나리오 작가 딕 파웰에게 성탄절 휴가 동안 맡겨 둔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다음 명예가 부담스러워서 함부로 글을 쓰지 못하던 파웰은 딸처럼 어리고 순진무구한 레이놀즈를 하루 만에 사랑하게 되어 결국 라스베이거스로 데리고 가서 결혼식을 올린다. 오스카상이 무엇인지 몰라 레이놀즈가 그것으로 호두를 까먹던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조지 마샬 감독의 <그것은 키스로 시작했다(It Started With a Kiss, 1959)>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 글렌 포드와 그의 아내 레이놀즈가 복권에 당첨된 자동차 때문에 에스파냐에서 곤경을 치르는 희극이다. 같은 해 역시 마샬 감독이 만든 <가제보(The Gazebo)>는 18살 연예인 시절에 찍은 레이놀즈의 나체 사진을 미끼로 돈을 뜯어내려는 협박범을 남편 글렌 포드가 살해하면서 벌어지는 복잡한 상황을 다루는 블랙 코미디다.
<춤추는 함대(Hit the Deck, 1955)>는 데비 레이놀즈가 제인 파웰, 토니 마틴, 월터 피전, 앤 밀러, 러스 탬블린, 빅 데이몬과 함께 한바탕 춤추고 노래하는 뮤지컬이고, <노래하는 도미니크 수녀(The Singing Nun, 1966)>는 벨기에 도미니코 수녀회 소속이었던 제닌 데커스(Jeanine Deckers, 본명 Jeanne-Paule Marie Deckers, 1933~85)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데비 레이놀즈 영화였다. <도미니크>의 주제곡은 우리나라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할리우드 키드가 손꼽아 기다렸던 이 영화는 끝내 수입이 되지 않아 볼 기회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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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굴의 몰리 브라운>에서 경쾌하게 춤추는 데비 레이놀즈. |
본명이 마거릿 토빈(Margaret Tobin, 1867~1932)인 몰리 브라운은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할 인생설계를 일찌감치 세우고 콜로라도 탄광촌에서 술집 가수로 일하다가 은광을 소유한 남자를 남편으로 맞는다. 레이놀즈는 은광을 판 돈 30만 달러를 난로 속에 감춰 두었다가 실수로 홀랑 태워 알거지가 된다. 하지만 남편이 다시 노다지를 찾아내며 벼락부자가 되어 그들 부부는 덴버로 이주하고, 그곳에서 알게 된 졸부 남편의 몰상식하고 험악한 친구들이 싫어서 그녀는 혼자 유럽으로 건너가 상류사회 사람들과 어울린다.
그녀는 프랑스의 귀족을 사귀어 한때 그와 결혼할 생각까지 하지만, 그래도 헌 남편을 잊지 못해 덴버로 돌아가려고 타이타닉 호를 탄다. 타이타닉이 침몰한 다음 그녀는 거의 마지막으로 구조돼 겨우 목숨을 건진다. 훗날 남들을 위해 사회사업을 많이 한 몰리의 별명이 ‘불굴의’ 또는 ‘물에 빠져도 가라앉지 않는’을 뜻하는 Unsinkable이 된 까닭은 빙산에 부딪혀 가라앉은 타이타닉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기 때문이었다.
데비 레이놀즈와 그녀의 남편이었던 가수 에디 피셔는 영화제작자 마이클 토드와 엘리저베드 테일러 부부하고 친한 사이였다. 피셔는 테일러와 <버터필드 8>에서 공연한 적이 있었고, 그래서 토드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다음 피셔는 테일러를 위로하려고 찾아갔다. 그랬더니 테일러는 피셔를 레이놀즈에게서 빼앗아 홀랑 결혼해 버렸다. 시집도 그만큼 여러 번 갔으면 충분했을 텐데, 데비 레이놀즈처럼 착하고 어린 여자의 남편까지 가로채다니 엘리저베드 테일러가 참 괘씸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부 개척자들의 ‘뻥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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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비 레이놀즈. |
강을 따라 오가는 사람들을 죽이고 돈을 빼앗는 가족형 ‘해적’의 두목 월터 브레난과 그의 아들 리 밴 클리프를 만나서 격투를 벌이기에 앞서 칼 몰든은 “백만장자가 되지 않으려고 평생 노력했는데, 이제 겨우 그 뜻을 이루었다”는 말을 한다. “우리들은 평생 가난뱅이로 고생스럽게 살아왔으니 네놈들이 강도질을 하려 해도 가져갈 값진 물건이 하나도 없다”는 얘기를 반어법으로 뒤집어서 전하는 과장된 표현이다.
한때 제임스 스튜어트와 함께 사냥을 다녔던 헨리 폰다는 몇십 년 후 스튜어트의 아들 조지 페퍼드를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비버를 어찌나 많이 잡았던지 꼬리에 꼬리를 묶어서 산을 내려오다가 보니까 그 길이가 1마일은 되더라”고 허풍을 떤다. 그러자 페퍼드가 웃으며 말한다.
“아버지는 사냥 얘기를 하면 보통 여섯 배 불려서 하던데, 아저씨도 만만치 않네요.”
이렇게 서부에서는 개척자들이 심한 과장법에 황당한 비유와 뒤집기 화법을 뒤섞어 가며 헐렁헐렁한 대화를 주고받는 문화가 퍽 발달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군대생활을 했거나, 특히 베트남 전쟁을 다녀온 사람들이 술만 한 잔 들어갔다 하면 (속된 말로) ‘공갈’을 치고는 하는데, 일반인들이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내용을 소재로 한 이런 과장법을 영어로 ‘커다란 얘기(tall tale)’라고 한다. 여기서는 편의상 그것을 그냥 ‘뻥치기’라고 하겠다.
뻥치기는 초기 미국 문학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으며, 마크 트웨인과 브렛 하트(Francis Bret Harte, 1836~1902)가 이 분야에서 특히 손꼽히는 대가였다. 20세기 중반까지 뻥치기는 많은 서부영화에서 폭소를 자아내는 양념 노릇을 했다. 그리고 아예 <커다란 얘기(Tall Tale: The Unbelievable Adventures of Pecos Bill, 1995)>라는 제목을 버젓하게 내건 영화까지 나타났다. 그 영화의 부제는 ‘피코스 빌의 불가사의한 모험’이다.
환상적 ‘성장영화(initiation movie)’에 속하는 <‘뻥치기’(커다란 얘기)>의 주인공은 산골 농촌의 답답한 삶을 싫어하는 12살 소년 닉 스톨이다. 때는 1905년이고, 영화의 무대는 인구 97명인 ‘천국의 계곡(Paradise Valley)’인데, 이곳에서는 들판 가득 만발한 꽃들이 갑자기 나비가 되어 하늘을 뒤덮고 날아다니고는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고장으로 철도를 끌어들이고 광산을 파헤치려는 탐욕스러운 스콧 글렌 일당이 재개발 사업을 한답시고 설치기 시작한다.
도회지로 나가서 살고 싶어하던 스톨 소년은 서부의 온갖 뻥치기 전설에 파묻혀 살아가는 ‘촌놈’ 아버지가 시대조류에 저항하며 자연환경을 지키려고 글렌 일당과 싸우는 모습을 보고는 참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개발업자들의 습격을 받고 총에 맞은 아버지가 “잘 감춰 두라”며 그에게 맡긴 땅문서를 가지고 도망치던 소년은 피코스 빌(패트릭 스웨이지)을 만나 뜻밖의 도움을 받는다. 아버지의 뻥치기 전설에 자주 등장하던 피코스 빌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질풍처럼 나타나서 혼자 악당 50명을 한꺼번에 처치하는 실력이지만, 일요일에는 절대로 살인을 하지 않는 서부 최고의 총잡이다.
환상적인 도피, 뻥치기의 여러 유형
<커다란 얘기>에는 역시 미국 뻥치기 전설의 유명한 주인공으로서 파란 소를 타고 다니며 양날 도끼를 휘두르는 거인 벌목꾼 폴 번얀(Paul Bunyan), 그리고 철도와 땅굴 공사 현장에서 기계보다 더 빨리 쇠못을 박아대는 존 헨리(John Henry)도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말 발길에 차여 달까지 날아간 사람’과 ‘눈물이 톱밥처럼 말라붙을 정도로 더위가 심했던 1888년 여름’의 얘기가 나오는가 하면, 텍사스의 영광을 모욕한 술꾼과 패트릭 스웨이지가 난장판 싸움을 벌이자 그들을 체포하려고 쌍권총을 휘두르며 술집에 나타나는 여성 보안관은 컬라미티 제인이다. 개척시대 미국에 대한 야사와 온갖 잡학적인 배경을 많이 알아두면 서부극을 볼 때 이렇게 옛 친구를 만나듯 반갑고 즐거운 순간들을 덤으로 얻는다.
뻥치기 허풍이라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해도 언젠가 어디에서 멋지게 잡았거나 아깝게 놓쳐 버린 ‘이따만한 고기’에 관한 낚시꾼들의 무용담을 그냥 두고 넘어갈 수가 없겠는데, 팀 버튼의 <큰 고기(Big Fish, 2003)>는 바로 그런 낚시꾼 허풍을 환상적인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은 걸작이다.
뻥치기는 흔히 사나이의 기개를 지나치게 과시하려는 욕구의 결과로 빚어진 거짓말로서, 사실이 아닌 줄 알면서 “그냥 웃자고 한 소리”라며 쌍방이 이해하고 넘어가기가 보통이다. 하지만 대니얼 월레스(Daniel Wallace)의 《신화적인 차원의 소설 — 큰 고기(Big Fish: A Novel of Mythic Proportions)》가 원작인 영화에서는, 결혼반지로 어마어마한 대어를 낚았다는 허풍을 입에 달고 다니는 미국 남부의 떠돌이 판매원 에드워드 블룸과 아들 사이를 가로막은 현실 감각의 괴리가 신화적인 규모로 커진다.
UPI 통신사 소속의 기자로서 진실만을 추구하는 아들은 피로연에서까지 하객들 앞에서 ‘이따만한 고기’ 자랑만 늘어놓아 결혼식 분위기를 망쳐 놓았던 아버지가 미워서 3년째 말도 안 하고 살아간다. 블룸은 그가 잡았다고 큰소리를 치는 ‘결혼반지 대어’ 주제뿐 아니라, 남부의 괴담(Southern gothic) 또한 무제한의 상상력을 발휘하며 잔뜩 활용한다. 총알처럼 뿅 튀어나와 태어난 아들, 이웃들이 맞게 될 죽음의 순간을 유리 눈알로 보여주는 동네 마녀 헬레나 본햄 카터, 폴 번얀보다 덩치가 훨씬 더 큰 거인, 주민들이 신발을 모두 빨랫줄에 걸어 놓고 행복하게 맨발로 살아가는 앨라배마 숲속의 유령마을(Spectre), 12년 걸려서 겨우 달랑 세 줄밖에 작품을 쓰지 못한 시인 출신의 은행 강도, 달밤에 나체로 목욕하는 여자 물고기, 프랑스어로 유창하게 떠들어대는 아프리카 콩고 숲속의 앵무새들, 밤이면 늑대로 변하는 곡마단장 대니 드비토, 운명적인 사랑의 순간에 멈추는 시간, 들판에 가득한 수선화로 고백하는 지극한 애정, 한국전쟁에 파병되어 (아마도 작가의 실수였겠지만, 적군 병사들이 중국어로 말하는) 북한의 인민군 부대로 잠입했다가 만난 샴쌍둥이 여가수, 식수로 쓰려고 북극에서 텍사스로 끌고 내려온 빙산 속에서 발견된 코끼리, 비가 억수로 쏟아져 물이 불어나는 바람에 나무 꼭대기로 올라간 자동차—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크게 자라는 신화를 주인공은 ‘체험담’이라면서 성탄절 나무의 장식처럼 그의 주변에 늘어놓는다.
고전연극 무대를 전전하던 앨벗 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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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효가 그린 데비 레이놀즈 캐리커처. |
영화가 끝나갈 무렵이 되면 우리는 주인공이 밋밋하고 고된 인생을 화려한 거짓말로 위장해서나마 삶의 보람을 느끼고 위안을 받으려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내 제시카 랭 또한 이런 남편의 현실도피를 사랑으로 이해하고 감싸 준다. 하지만 평생 이어지던 한없는 거짓말에 지겨워진 아들은 나쁜 얘기라도 괜찮으니까 제발 진실을 말해 달라고 임종을 눈앞에 둔 아버지를 설득하지만, 소용이 없다.
<큰 고기>에서 노년기의 에드워드 블룸 역(젊은 시절은 이완 맥그리거)을 맡았던 영국 영화배우 앨벗 피니(Albert Finney, 1936~)는 황실연극예술학교에서 셰익스피어 같은 고전 작가들의 희곡을 위주로 훈련을 받았던 정통 연기파다. 그리고 젊은 시절에 그는 <큰 고기>에서와 같은 환상적인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원시적으로 직시하는 저항의 형태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를 발표하여 젊은 노동자들의 반항과 야망을 사회적 사실주의로 그려내고는 ‘성난 젊은이’ 운동의 기수가 된 극작가 존 오스본(John Osborne), 그리고 해방영화(Free Cinema) 운동에 참여했던 영화감독 토니 리처드슨(Tony Richardson)과 함께 영화예술을 의식화 계몽의 매체로 삼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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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벗 피니 캐리커처. |
본격적인 영화 활동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는지 피니는 그 후 몇 년 동안 연극 무대에 정진하다가, 헨리 필딩의 소설을 존 오스본이 각색하고 토니 리처드슨이 영화로 만든 <톰 존스의 화려한 모험(Tom Jones, 1963)>에서 다시 두각을 나타냈다. 피니에게 주어진 역은 귀족 집에 입양된 사생아로서, 아무리 가르쳐도 인품이 좋아질 줄 모르는 전형적인 18세기형 퇴폐적인 ‘성난 젊은이’다. 바람둥이 피니는 각계각층의 온갖 잡된 여자들과 놀아나다가 교수형을 당할 궁지에까지 몰리지만, 결국 이웃에 살던 수잔나 요크와 행복하게 결혼해 오래오래 잘 살았다던가 뭐라던가.
<톰 존스>는, 이런 표현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풍속영화’라고 하면 잘 어울리겠다. 별로 고상해 보이지 않는 런던 귀족층과 천박하고 난잡한 시골 상류층 사람들과 지저분하고 구질구질한 서민들이 왁자지껄 시끄럽게 뒤섞여 살아가는 시대상을 걸쭉하게 희극적으로 서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톰 존스>의 진짜 묘미는 무성영화 식으로 처리한 자막과, 채플린 식으로 졸아드는 화면 구도와, “여기서 주인공이 죽으면 말도 안 되겠죠?”라는 식의 웃기는 해설과, 다급해지면 엉뚱한 등장인물이 관객에게 직접 상황을 설명하는 따위의 돌발적인 장치들이다. 이런 전달 기법이 크게 돋보여 <톰 존스>는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을 받고 흥행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앨벗 피니가 몸에 익혔을 고전적 연기의 재능은 어디론가 낭비된 느낌을 준다.
때를 기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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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인 ‘성난 젊은이’ 영화 <토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의 앨벗 피니(왼쪽). |
오드리 헵번이 말한다. “별로 행복한 표정이 아니네요.”
앨벗 피니가 화답한다. “어째 행복하겠어? 방금 결혼했는데.”
성공한 영국인 건축가 피니와 아내 헵번은 부족한 것이 전혀 없으면서도 역시 무엇인가 부족하다. 그렇기에 권태롭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면서, 위기와 시련을 수반하는 짜증스러운 풍요를 겪고, 물어봐도 소용없는 질문을 해 가면서 티격태격 살아가는 부부다. 그리고 결국 피니는 ‘정말로 경멸하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여자’와의 삶을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헨리 폰다와 머나 로이가 주연한 <여름 바닷가의 회상>의 상황을 희극적으로 해석하는 화법이다.
앨벗 피니는 <언제나 둘이서>에서 역시 그가 쌓아 두었던 고전 연극의 재능을 써먹지 못한다. 일부 평론가와 관객들로부터 “제2의 로렌스 올리비에”라는 소리를 들었던 그는 비록 뉴욕과 런던 무대에서 고전 희곡에 꾸준히 출연했지만, 영화에서는 좀처럼 진지하고 큼직한 기회가 주어지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피니 같은 연기자에게 가장 큰 애환은 아마도 자신에게 맞는 역을 스스로 만들어 내지 못하고 누군가 대신 좋은 역을 마련해 놓고 선택해 주기를 하염없이 피동적으로 기다려야 한다는 연기자의 불안하고도 불행한 처지가 아닐까 싶다.
그러다가 모처럼 찾아온 기회가 <화산 아래서(Under the Volcano, 1984)>였다. 프랑스의 《르 몽드》가 20세기 100대 명작 소설 가운데 하나로 선정한 맬컴 로우리(Malcolm Lowry, 1909~57)의 자전적인 소설이 원작인 <화산>은 극심한 음주벽에 시달린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제대로 전달하기가 어려운 괴이한 고딕소설 같은 내용을 다룬다.
히틀러가 증오로 세상을 불안하게 오염시키던 무렵, 멕시코의 화산 도시에서 영국 영사로 근무하다가 정치적인 주변상황 때문에 사퇴한 앨벗 피니는 술주정이 워낙 심해서 주변 사람들이 모두 기피하는 폐인이 되었다. 술기운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수전증에 시달릴 뿐 아니라 제대로 생각조차 못하지만, 완충제 노릇을 하는 술을 마시면 세상과 인생이 명료하게 보일 정도다. 아무하고도 소통이 안 되는 피니가 그보다 훨씬 더 횡설수설하는 술집 여주인 케이티 후라도와 주고받는 이 빠진 대화는 너무나 비참해서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술이 모자라면 로션이라도 마셔야 할 정도로 극심한 중독자인 피니는 대낮에 뜨겁고 적막한 길거리 한복판에 정신을 잃고 엎어져 자다가 자동차에 치일 뻔하는가 하면, 화장실에서 바퀴벌레를 보고 졸도할 지경으로 늘 정신이 혼미하다. 그러나 최근에 이혼한 아내 재클린 비셋을 혐오하고 경멸할 때만큼은 끔찍할 정도로 냉정한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피니는 그의 이복동생과 짤막한 불륜을 저지른 비셋을 결코 용납하고 싶지가 않다.
죽은 자들을 위로하는 축제가 벌어지는 ‘망자의 날(the Day of the Dead)’인 1938년 11월 1일 하루 동안 벌어지는 사건을 기록영화처럼 수록한 <화산>은 어제 저녁에 입은 정장 차림에 양말을 신지 않은 채로 피니가 술에 취해 헛소리를 늘어놓는 장면에서 시작해, 지저분하고 음침한 외딴 갈보집에서 주인공이 원주민들에게 무참히 죽음을 당하면서 끝난다. 화해와 재결합을 위해 찾아왔던 아내 비셋도 마찬가지로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다.
영화보다 뛰어났던 피니의 명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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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쾌한 그림으로 장식한 <톰 존스>의 포스터. |
“지옥이 나에게는 제대로 어울리는 주거환경(natural habitat)”이라면서, 술에 찌들어 주변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암울한 인생을 살아가는 비참한 주인공을 그려내는 앨벗 피니의 연기는 가히 경이적이다. 술집으로 찾아온 아내를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하다가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 확인하는 과정의 연기는 평론가들도 경탄한 바가 있으며, 이런 명연기로 피니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까지 했다. 참된 예술적 연기에 관심이 많은 영화학도라면 필히 연구할 만한 대상이 되겠다.
그러나 절망하는 인간은 훌륭한 문학적 주제가 되기는 하지만, 술이나 마약이나 동성애로 망가진 인간상은 그냥 불결할 따름이기 마련이어서, <화산>의 명연기는 피니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주지는 못했고, 영화 또한 명작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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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 아래서>에서 열연한 앨벗 피니(왼쪽). |
런던에서 태어나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하여 주로 방송에서 활동하던 핀치가 우리나라에 알려지기는 리처드 토드 주연의 <로빈 후드(The Story of Robin Hood, 1951)>에서 노팅엄의 주지사, 엘리저베드 테일러와 데이나 앤드루스가 주연한 <거상(巨象)의 길(Elephant Walk, 1954)>에서 영국 식민지 실론의 오만한 농장주, <전함 슈페호의 최후(Battle of the River Plate 또는 Pursuit of the Graf Spee, 1956)>에서 독일 해군 함장, 그리고 <파계(The Nun's Story, 1959)>에서 오드리 헵번으로 하여금 속세로 돌아오게 영향을 끼친 의사 역을 통해서였지만,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주로 영국에서 활동하며 상업영화와는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떠들썩한 인기를 별로 누리지 못했던 피터 핀치는 결국 할리우드 영화 <네트웍>에서 일생일대 혼신의 명연기를 보이고는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피니와 피터 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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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핀치. |
궁지에 몰린 핀치는 이튿날 방송에서 객기를 부려, 앞길이 꽉 막혀 버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세상이 더럽고, 치사하고, 한심스러워서 살기가 싫어져, 두 주일 후 같은 시간에 생방송을 하다가 자살을 감행하겠다”고 선언한다. 홀든은 방송 사고를 낸 핀치를 당장 해고하려 하지만, 날벼락 선언에 핀치의 뉴스 시청률이 갑자기 뛰어오르자 편성부장 페이 더나웨이가 핀치를 앞세워 이색적이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자며 홀든에게 접근한다.
프랭크 캐프라의 <군중>에서 바바라 스탠윅이 개리 쿠퍼를 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존 도우로 둔갑시켜 신문의 판매부수를 올렸듯이, 핀치를 내세워 ‘민중의 분노를 솔직하게 표현하는(articulate popular rage) 분풀이 시간’은 예상대로 크게 성공한다. 정신병원에 보내서 한시라도 빨리 치료를 받게 해 줘야 마땅한 정신분열증 환자를 상품화하자는 방송국의 전략에 따라 꼭두각시가 된 핀치는 “우리 시대의 위선을 고발한다”는 기치를 휘두르며, 막가는 ‘갈보집 방송(whorehouse network)’의 무책임한 논리와, ‘인간이니까 분노한다’는 독선적인 외침과, ‘창문을 열고 이제는 참지 못하겠노라고 소리치라’는 표어로 단순하고 욕구불만에 가득 찬 군중을 자극하고 선동하는 나꼼수 선풍을 일으킨다.
세상이 돌아가는 복잡한 공식과 이치를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편향적인 사회비평의 탈을 쓰고, 핀치는 변칙적인 정의를 구가하며 ‘세상을 향해서’ 미친 듯 떠들다가는 생방송 졸도로 마무리를 짓고는 한다. 그래서 사이비 철학자이며 민중의 교주로 전국적인 호응을 받던 핀치는 CCA 회장 네드 베이티에게 불려가 ‘기업 집합(college of corporations)’에 대한 정신교육을 받고는 태도가 갑자기 돌변하여 합병에 반대하도록 여론을 유도하기 시작한다.
모든 조직과 논리의 통제를 벗어난 핀치는 결국 방송사의 적이 되고, CCA 경영진에서는 광신적인 종교집단(Ecumenical Liberation Army)에 방송 대본까지 만들어 보내면서 핀치를 함께 살해하자는 음모를 꾸민다. 시청률을 계속 현금으로 환산하던 중역회의는 이왕이면 황금시간대 생방송 도중에 핀치를 요란하게 사살하자는 합의에 이른다.
예언적이고 통렬한 풍자극 <네트웍>은 시드니 루멧(Sidney Lumet, 1924~2011) 특유의 연출 성향이 듬뿍 담긴 작품이다. 나른한 긴장감 속에서, 어떤 답답하고 일관된 도시적 주제가 담긴 상황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서는, 느릿느릿하면서도 빈틈없이 정곡을 정확하게 찌르는 루멧의 화법은 여기에서도 결코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예언적이고 통렬한 영화 <네트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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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트웍>에서 피터 핀치(신문에 실린 사진)를 상품화하는 악녀 페이 더나웨이. |
차예프스키는 1950~60년대 영국과 미국의 연극, 미술, 소설, 영화 분야에서 한때를 풍미했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그러니까 노동자 계층의 ‘성난 젊은이’들이 등장하는 ‘설거지통 사실주의(kitchen sink realism)’에서 영국의 존 오스본과 쌍벽을 이룬 미국의 극작가였다. 아카데미 각본상을 공동수상이 아니라 단독으로 세 차례나 받은 사람은 할리우드 역사상 지금까지 차예프스키와 우디 앨런 두 사람밖에 없다. (피터 핀치와 패디 차예프스키와 더불어) <네트웍>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세 번째 인물은 ‘악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여성 ‘악마’ 역을 발악적으로 밀어붙인 페이 더나웨이였다.
영화의 종반부에서 CCA 간부들이, 마치 무슨 예산안을 처리하듯이, 시청률을 최대한 올리는 방법으로 인기 방송인을 살해하려는 계획을 짜며 앞으로 그들이 저지를 행동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정당화하는 장면을 보면 너무나 무서워서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우리나라 방송국에서 아침마다 연출자들의 책상에 갖다 놓는 ‘어젯밤의 시청률’ 통계가 ‘인기’로 먹고 사는 방송인들에게 얼마나 피를 말리는 공포의 대상인지를 알면 쉽게 이해가 가겠지만, 그렇다, <네트웍>은 우리의 버젓한 현실에서 건져 낸 공포영화다.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 낸 괴물이나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범이 피투성이 난도질을 해야만 공포영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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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벗 피니. |
피터 핀치 시간의 시청률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하자 침대에 앉아 미친 여자처럼 발광하는 더나웨이를 보고 비자발적인 공모자 노릇을 해 오던 윌리엄 홀든이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인간적 현실로부터 단절되었어. 살인, 죽음, 전쟁, 부패, 고통, 사랑, 그리고 모든 인간사가 당신에게는 병에 담아서 팔아먹는 맥주와 같아. 당신에게는 단순한 인간적 존엄성조차 없으니까. 당신은 미쳐 버린 외계인이야. 당신의 손길이 닿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당신과 함께 죽어 버리지.”
“사랑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나중에 솔직히 고백하는 냉혈녀 더나웨이는 성생활 역시 독특하다. 그녀는 필요에 따라 닥치는 대로 행위의 상대를 사냥하고 ‘정복’한 다음, 옛 스승인 윌리엄 홀든을 포함하여 모든 남자를, 시간표와 목적에 따라 헌신짝처럼 버린다. 여자가 아니라 남자처럼, 그녀는 순간적으로 ‘발기’하고, 얼른 절정에 올라 행위를 끝내고는, 잠깐이나마 뒷맛을 음미하는 대신 당장 옷을 주워 입고는 서류를 앞에 펼쳐 놓고 다음 사무를 시작한다. 심지어는 성행위를 하다 말고 남자더러 잠깐 기다리라고 중단시키고는 발가벗은 몸으로 침대에서 방송 자료를 검토하기도 한다.
요즈음 우리 주변에서는 <네트웍>의 더나웨이와 비슷한 여자들이 자꾸 늘어가는 듯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