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그만, 아메리카로 건너간 북부유럽 출신 여배우 중 가장 성공해
⊙ “사람들은 입장권을 사면 내 인생까지 마음대로 해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에요”(버그만)
⊙ 닐, 25살이나 연상이었던 유부남 게리 쿠퍼의 情婦가 되어 임신까지
⊙ 닐, 재클린 케네디와 고두심과 에마 톰슨의 얼굴을 합성한 듯한 특이한 인상
安正孝
⊙ 71세.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 《코리아헤럴드》 기자, 《코리아타임즈》 기자·문화체육부장,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 주요 작품으로 소설 《전쟁과 도시》(후에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은마는 오지 않는다》(후에 《銀馬》) 《악부전》 《솔섬》 등이 있다.
번역서로 《백년동안의 고독》을 비롯해 150여 권이 있다.
⊙ “사람들은 입장권을 사면 내 인생까지 마음대로 해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에요”(버그만)
⊙ 닐, 25살이나 연상이었던 유부남 게리 쿠퍼의 情婦가 되어 임신까지
⊙ 닐, 재클린 케네디와 고두심과 에마 톰슨의 얼굴을 합성한 듯한 특이한 인상
安正孝
⊙ 71세.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 《코리아헤럴드》 기자, 《코리아타임즈》 기자·문화체육부장,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 주요 작품으로 소설 《전쟁과 도시》(후에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은마는 오지 않는다》(후에 《銀馬》) 《악부전》 《솔섬》 등이 있다.
번역서로 《백년동안의 고독》을 비롯해 150여 권이 있다.
이렇게 할리우드가 유럽으로부터 수입해 들여간 수많은 유럽 배우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소수 집단을 셋 정도로 구태여 가려본다면, 우선 제2차 세계대전의 화를 피해 고향 독일과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떠난 (배우 장 가뱅과 감독 프릿츠 랑을 필두로 한) 사람들을 꼽아야 하겠다. 극심한 가뭄과 감자마름병으로 인해 몰아닥친 기근을 피해 이민자들 틈에 섞여 엘리스 아일랜드에 도착한 아일랜드 사람들이 아마도 두 번째 주요 집단을 이루었겠다. 그리고 고급 영화예술의 상징이 된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나라 스웨덴에서 진출한 정예 인력 또한 주목을 받았다.
아메리카로 건너간 북부 유럽산 연기자들로는 막스 폰 시도우, 앤-마그렛, 비비 앤더슨, 울라 야콥슨, 리브 울만 등 여럿이지만, 그 가운데 가장 성공한 여배우라면 아마도 그레타 가르보와 잉그릿 버그만(Ingrid Bergman, 1915~1982)이겠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버그만 얘기를 좀 자세히 하겠다.
할리우드 키드가 교복을 입은 채로 영화구경을 갔다가 적발되어 두 차례나 정학을 받았던 학창시절에, 영화계에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세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첫째는 그야말로 혜성처럼 나타났다 순식간에 사라진 제임스 딘의 죽음이었다. 둘째는 레이니에 대공과 결혼해 모나코의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의 신데렐라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롯셀리니(Roberto Rossellini) 감독과 잉그릿 버그만의 간통사건이었다.
두 사람 다 결혼하고 자식까지 둔 몸이었지만 버그만은 <무방비도시(Roma, citt aperta 영어 제목 Open City)>를 만든 롯셀리니를 벌써부터 흠모하던 터여서, 그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운명적인 편지를 보냈다. 롯셀리니는 버그만을 이탈리아로 데려다가, 대부분의 장면을 대본조차 없이 즉흥적으로 연기하여 찍으면서, 화산섬을 무대로 한 신사실주의 작품 <신의 땅 스트롬볼리(Stromboli, terra di dio, 1950)>를 만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곧장 연애를 시작해 임신까지 이르렀다.
롯셀리니와 버그만의 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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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과 배우로 만났으나 나중에 불륜에 빠진 롯셀리니와 버그만. |
잉그릿 버그만의 이런 대담한 모험은 그녀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별리(別離, Intermezzo: A Love Story, 1939, 스웨덴 판은 1936)>에서 마치 예고편처럼 생생하게 펼쳐진다.
‘오빠부대’까지 따라다닐 정도로 인기가 대단한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 레슬리 하워드가 미국 순회공연을 마치고 스톡홀름으로 돌아가 딸의 피아노 선생 버그만을 만나고, 어느 날 손님들을 저택으로 초대해 개최한 가정음악회에서 그녀가 그리그(Edvard Grieg)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그는 황홀한 음악적 공감을 느낀다. 아내가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버그만에게 그가 이때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감정을 하워드 자신은 ‘불순한 사랑’의 전주곡임을 아직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영화가 반시간 정도 흘러간 다음, 버그만에게 피아노 반주를 해 달라며 유럽 순회연주를 같이 하자고 하워드가 제안했을 때는 이미 두 사람은 지극히 고상한 불륜에 빠지게 될 운명적 예감을 함께 느낀다. 하지만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음악적 몰입과 도취 속에서 서서히 이루어지던 위험한 불장난을 이겨낼 자제력이 이미 그들에게는 남아 있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선율을 타고 전개되는 사랑 여행은 그러나 곧 하워드의 아내가 바람난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하워드는 하워드대로 사랑스러운 남매에 대한 그리움과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면서 위기를 맞는다. 그러고는 남자의 가정과 미래를 위해 버그만은 적절한 양의 갈등을 거친 다음 가장 상식적인 선택을 해서, 아름다운 편지 한 장을 남기고는 종적을 감춘다.
스웨덴에서 성공한 작품 <간주곡(‘별리’의 원제)>을 미국에서 다시 만들겠다는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의 전략에 따라 할리우드로 건너갔을 때, 버그만은 영어를 제대로 할 줄 몰랐다고 하지만, 영화 <별리>를 보면 그녀의 영어는 완벽하다. 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연주하는 버그만의 손놀림 또한 완벽하다. 비록 녹음은 전문 음악인의 연주를 담았지만, 버그만은 실제로 그리그의 협주곡을 완전히 익혀서 연주했다고 한다. 그래서 셀즈닉은 그녀를 “양심적이고 성실한 여배우”라고 기회만 나면 극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버그만은 예쁜 예명으로 이름을 바꾸고, 얼굴과 치아도 손을 보자는 셀즈닉의 요구만큼은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다. 배우는 연기로 승부를 해야지, 다른 속임수는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스웨덴에서 <간주곡>과 더불어 그녀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영화 <여인의 얼굴(A Woman’s Face, 1938)>이 성형수술로 아름다움과 젊음을 되찾은 여자에 관한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버그만은 자신의 본디 얼굴을 지키겠다고 끝까지 버티었다.
성형을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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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열연한 게리 쿠퍼와 버그만. |
“사람들은 입장권을 사면 내 인생까지 마음대로 해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에요.”
버그만은 인고하고 순종하는 중세의 여인이 아니라, 당당하고도 강인한 20세기의 적극적인 인간으로 자신을 부각시켰다.
북구적인 미모에 지성과 재능을 겸비하여 미국영화협회(AFI)가 네 번째로 위대한 20세기의 여배우라고 선정한 잉그릿 버그만은 <카사블랑카>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걸작을 롯셀리니를 만나기 이전인 제1차 할리우드 시절에 선보였다. 지금은 그런 식으로 순위를 매기는 짓을 벌써부터 그만두기는 했지만, 할리우드 키드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세상에서 두 번째로 좋은 영화라고 생각했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1943)>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첫 색채 영화인 <종은 울리나>에서 버그만은 맑고 푸른 눈으로 눈부시게 미소를 짓고, 강간과 삭발을 당한 다음 이제 겨우 3개월밖에 자라지 못한 짧은 금발이 참으로 소년처럼 싱싱한 모습이다. 하지만 선이 굵은 그녀의 얼굴을 보면, 여자답게 갸름하지를 않고 (오드리 헵번이 꺼렸던) ‘네모꼴’인 데다가, 앞니 두 개가 토끼처럼 크고, 아랫입술이 지나치게 두툼하며 콧망울도 큼직하다. 셀즈닉이 예쁜 인기배우로 그녀를 키워 주겠다며 어느 부분들을 손질하고 싶어했을지 쉽게 짐작이 간다. 그레타 가르보와 마를레네 디트리히, 진 할로우와 클라라 보우, 그리고 캐롤 롬바드와 클로데트 콜베르의 사진과 함께 버그만의 사진을 나란히 늘어놓으면, 그 이유가 한눈에 훨씬 더 분명해진다.
에스파냐 내란 중에 공화파를 돕는 해외 연합 공작대 소속인 미국 대학 강사 출신의 특수요원 게리 쿠퍼는 <종은 울리나>에서, 마드리드와 세고비아 사이에 위치한 계곡을 횡단하는 전략요충지인 다리를 폭파하려고, 현지에서 활동하는 유격대와 합류하러 이른 봄 산으로 들어가서 잉그릿 버그만을 만나 3박4일의 사랑을 나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눈앞에 둔 남녀는 여기저기 잔설이 남은 바위투성이 산에서 소나무와 푸른 하늘과 흰 구름과 절박한 운명에 둘러싸여 사뭇 야성적인 열정에 마음을 불태우지만, 가만히 보면 버그만이 쿠퍼보다 훨씬 더 공격적으로 감정을 구사한다.
(DVD에 실린 제작 당시의) 예고편에서 밝혔듯이 쿠퍼와 버그만은 원작자가 직접 주연으로 선정했는데, 워낙 친한 사이여서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쿱스(Coops)’라는 별명까지 붙여준 쿠퍼는 서부영화에서 주로 활동했던 배우로서, “Yep(=yes, 그래)”과 “Nope(=no, 아냐)”이라는 두 마디 단음절 말밖에 할 줄 모르는 과묵한 영웅으로 관객들의 머리에 각인되었다. 그래서인지 ‘연애’를 하기가 거북하여 자꾸 조금쯤은 거리를 두려는 그에게 오히려 버그만이 적극적으로 달라붙는다. 열정적인 에스파냐의 플라맹코 아가씨답게 말이다.
버그만이 게리 쿠퍼보다 더 치열한 감정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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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기억상실증)이 가미된 영화 <망각의 여로>에 출연한 버그만. |
“로베르토! 로베르토!”
하지만 작품의 줄거리는 헤밍웨이가 엮었기 때문에, 물론 버그만은 이 영화에서 남녀의 성 역할을 바꿔 보려는 욕심은 분명히 없었으리라고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잔 다르크(Joan of Arc, 1948)>에서도 버그만은 프랑스 소녀다운 가냘픈 면을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용감무쌍한 바이킹 전사의 후예에 가까운 모습이며, 종교재판에서 19살 오를레앙의 처녀는 “누가 너에게 남자의 옷을 입으라고 했는가?”라는 지탄을 받는다. 그리고 롯셀리니와의 간통 사건이 널리 알려지면서 이 영화가 흥행에 참패하자 버그만은 이런 말을 남겼다.
“<잔 다르크>를 보고 사람들은 나를 성녀라고 생각했나 봐요. 아니에요. 난 그냥 한 명의 여자, 남들과 똑같은 인간일 뿐이라고요.”
<카사블랑카>에서 버그만이 맡은 역 또한 프랑스가 아니라 바이킹의 나라 노르웨이 여자다.
제1차 할리우드 시절에 그녀는 영국에서 건너온 알프렛 힛치콕이 만든 두 편의 화제작에서 주연을 맡아 크게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 첫 번째는 우리나라에서 한때 <백색의 공포>라는 제목이 붙었던 <망각의 여로(Spellbound, 194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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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오리엔트 특급살인>의 한 장면. 버그만은 이 영화로 오스카 조연상을 탔다. 명탐정 앨벗 피니가 12명의 혐의자를 추적하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
버몬트의 어느 정신병원에 새로 부임해 온 원장이라면서 나타난 그레고리 펙은 하얀 바탕에 박힌 평행선 자국만 보면 심한 공포감에 빠지는 기억상실증에 걸렸고, 그를 사랑하게 된 여의사 잉그릿 버그만은 살인 혐의로 쫓기게 된 그의 과거를 되찾아 주려고 여기저기 함께 시골 여행을 다닌다. 어린 시절의 고통을 기억해 내기만 하면 정말 자동적으로 이런 고민이 말끔히 치유가 되어 백발백중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때부터 기억상실증은 19세기의 폐병이나 20세기 후반의 백혈병처럼 상상력이 부족한 작가들이 손쉽게 기성품처럼 만만하게 영화나 소설에서 활용하는 진부한 소도구가 되어 버렸다.
<도망자(The Fugitive)>의 리처드 킴블처럼 범인으로 오인을 받아 쫓기는 신세이면서 붙잡히기 전에 자신의 정체를 알아내야 하는 긴장의 이중구조를 갖춘 <망각>에는 또한 살인 현장을 목격한 펙의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는 유명한 ‘꿈의 해석’ 장면이 나온다.
벽에 수많은 눈이 박혀 있는 이 환상적인 작품은 영화 작업도 앤디 워홀만큼이나 열심히 했던 에스파냐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omingo Felipe Jacinto Dal I Domnech, 1904~89)의 솜씨다. 가위로 눈알을 자르는 부분은 그가 루이 부뉘엘과 함께 만든 <안달루시아의 개(Un Chien Andalou, 1929)>를, 그리고 권총을 상징하는 바퀴 그림은 그의 대표작 <기억의 고집(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에 담긴 시계를 연상시키는데, 그때만 해도 퍽 충격적이었던 이 ‘꿈 장면(dream sequence)’은 관객의 정서를 고려하여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짧게 처리했다고 한다.
영화 <추상>으로 할리우드 재입성에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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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한 장면. |
아버지가 나치 첩자로 활동했다는 복잡한 정치적 배경을 지닌 미국 여성 잉그릿 버그만은 <오명>에서 첩보원 캐리 그랜트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브라질에 잠복한 나치 조직에 침투하여, 그들이 무슨 음모를 꾸미는지 알아내라는 특수 임무를 맡는다. 그래서 그녀는 아버지의 친구였던 클로드 레인스에게 접근하여 미인계를 써야 하는데, 어느새 그녀를 사랑하게 된 그랜트는 다른 남자에게 교태를 부리는 버그만을 지켜보면서 점점 심기가 불편해진다. 그러다가 사랑의 오해로 상황이 복잡해지던 끝에 화가 난 버그만은 덜컥 레인스와 결혼까지 해 버린다.
결국 버그만은 레인스의 저택 지하 포도주 창고에서 술병에 담긴 우라늄을 찾아내지만, 그녀의 정체를 알아낸 레인스는 흉악한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그녀를 독살하려고 커피에 약을 타서 먹인다. 하지만 결국 버그만의 진심을 알게 된 그랜트가 레인스의 저택에 침투하여 (영화사상 긴장감의 극치라고 알려진 장면에서) 나치분자들이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기만 하는 가운데 그녀를 절묘하게 구출해 낸다.
<오명>에서처럼 남편의 ‘음모’에 시달리는 역을 맡아 <가스등>에서 첫 오스카 주연상을 받았던 잉그릿 버그만은 로베르토 롯셀리니와 이혼한 다음 율 브리너와 공연한 <추상(Anastasia, 1956)>에서 두 번째 아카데미상을 손에 넣으며 할리우드 재입성에 당당하게 성공했다. 버그만은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Murder on the Orient Express, 1974)>에서 다시 오스카 조연상을 탔는데, 어느 평론가(Robert A. Nowlan)는 “버그만이 별로 한 일도 없이 받은 상이기 때문에 멋쩍어했으리라”는 농담을 했다.
버그만이 아카데미상을 받아야 할 만큼 사실 별로 두드러져 보이지 않았던 <오리엔트>에서는 뒤통수를 치는 애거타 크리스티의 상황 설정이 가장 매혹적인 장치다. 흉악한 유괴범이었다가 지금은 재벌 사업가로 행세하는 리처드 위드막을 살해했다고 명탐정 앨벗 피니(에르퀼 푸아로)가 의심하는 12명의 혐의자 중에는 위드막의 비서 앤토니 퍼킨스, 영국인 시종 존 길구드, 수다스러운 사교계의 여인 로렌 바콜, 헝가리 외교관 마이클 요크와 그의 아내 재클린 비셋, 러시아 황족 웬디 힐러, 인도 주둔 영국군 장교 숀 코너리, 바그다드에서 교사로 일하는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그리고 스웨덴 선교사 버그만이 포함되었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누가 범인일까 관객이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추리를 하게 되는데, 마지막에 밝혀진 범인은 12명 모두다.
“성형수술을 하지 않고도 그렇게 아름다운 피부와 미모를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잉그릿 버그만은 “자주 비를 맞으며 산책한다”고 대답했다는데, <빗속의 산책(A Walk in the Spring Rain, 1970)>은 어쩌면 그래서 붙여놓은 제목이 아닐까 싶다.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연상시키면서도 스털링 실리펀트(Stirling Silliphant, 1918~96)의 각본이라고는 쉽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실망스러운 <빗속>은, 안식년을 맞아 책을 한 권 쓰려는 교수 남편과 함께 1년 동안 산골 마을로 들어가 살려던 버그만이 산장 관리인 앤토니 퀸과 사이비 바람을 피운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다국적 ‘촌놈’으로 오랫동안 각인되어 온 퀸이 “뭣하러 책을 또 써요? 지금까지 나온 책들로 부족한가요?”라는 식으로 상당히 억지스러운 대사를 구사해 가면서 순진하고 낭만적인 자연아 노릇을 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만 하고, 불륜을 저지를까 말까 망설이는 버그만의 여성상 또한 영혼이 없는 허수아비처럼 보인다. 어느 평론가(Robin Wood)는 “버그만이 나쁜 여자 역을 맡으면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빗속>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되겠다.
잉마르 베리만 감독이 스웨덴어로 만들었으며 그녀의 마지막 영화가 된 <가을 소나타(Hstsonaten 영어 제목 Autumn Sonata, 1978)>에서도 버그만은, 비록 “예술 활동에만 열심이고 남편과 두 딸에게는 평생 관심조차 없었던 무정한” 여자라고는 하지만, 전혀 ‘나쁜 년’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무정한 여자’지만 ‘나쁜 년’으로 안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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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가을 소나타>에서 잉그릿 버그만(오른쪽). 그녀는 남편과 두 딸에게 무관심하지만 ‘나쁜 년’으로 보이지 않는다. |
대학을 나오고 두 권의 저서까지 발표했으며 딴에는 “끊임없이 자아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울만은 해외 공연을 다니느라고 몇 달씩 집을 비우며 자식들에게 별로 사랑을 베풀지 않았던 엄마 버그만을 털끝만큼도 이해해 주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고 맹렬한 공격을 계속한다. 성취욕이 심하고 개성이 지나치게 강했던 자신에 대해 죄의식을 느낀 버그만이 용서를 빌고 도와달라고 애원까지 하지만 소용이 없다. 사고로 아들을 잃은 다음 우울증에 빠진 딸 울만은 남편을 포함해 어느 누구도 사랑할 능력이 없는 냉담한 여자가 되었고, 그런 딸에게서 끝없는 구박을 받던 버그만은 결국 아프리카로 떠난다.
엄마는 엄마대로 그녀를 평생 한 번도 따뜻하게 대해 주지를 않았던 딸을 늘 섭섭하게 생각했었다. 사라져 가는 과거의 영광과 허리의 통증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예술가의 고통을 어른이 되어서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딸이 너무나 야속하기 때문이었다. 음악적인 정서는 풍부해도 인간적인 정서가 부족한 버그만은 늘 외로워하며 평생 집을 그리워했지만, 막상 집으로 돌아가면 그녀가 찾는 대상이 그곳에는 없기 때문에 늘 불안해지는 인생을 살았다. 그리고 어릴 적에 받은 상처 때문에 사랑과 증오와 갈망이 혼란스럽게 뒤섞인 울만의 마음은 발육이 중단된 상태였다.
이쯤 되면 평범한 여자 노릇을 제대로 못한 버그만보다는 (엄마 못지않게 이기적이면서도 일방적으로 비난을 퍼붓는) 울만이 훨씬 더 나쁜 여자로 보이게 마련이다. 사랑이란 약을 먹듯이 시간에 맞춰 주고받기가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서로 과거를 해석하는 시점(時點)과 방법이 다르고, 말은 주고받더라도 마음이 오가지 않는 사람들은 불쾌한 기억밖에 머릿속에 남지 않는다.
노년의 어머니에게 그토록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힌 다음 다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딸의 뻔뻔스러운 편지를 받고 황당해하는 버그만의 얼굴이 화면에 가득 담기면서 영화가 처량하게 끝난다. <소나타>는 겨우 한 번 사는 인생이 어쩌면 이토록 힘겨울까 무거운 마음으로 고통스럽게 봐야 하는 부담스러운 작품이다.
게리 쿠퍼와 버그만, 그리고 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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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효가 그린 잉그릿 버그만 캐리커처. |
러시아의 부르주아 집안 태생으로 혁명의 여파를 피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여성 작가 랜드의 작품세계는 나이 70이 넘은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다분히 과대망상적인 이상주의에 치우쳤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 <마천루>에 요란하게 반영된 그녀의 역설적인 자아존중 철학(egoism)은 낭만적 사실주의에 한때 깊이 몰입했던 어린 대학생에게는 결코 거역하지 못할 신비한 환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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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트리샤 닐 캐리커처. |
상류사회 여성인 패트리샤 닐은 그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지나치게 개성이 강한 탓에 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천재 건축가 쿠퍼를 옹호하느라고 그녀는 신문에 집필하는 고정란을 통해 고군분투한다. 그녀 또한 격렬하고 천재적인 개성의 소유자로서, 범속한 군중과는 절대로 타협할 줄 모르는 여성이다. 이렇게 극단적인 자존심의 소유자인 두 주인공이 만나서 충돌하며 폭발시키는 사랑은 당연히 순탄할 리가 없다.
여러 차례의 만남을 거친 다음 어느 날, 닐은 말을 타고 공사장으로 쿠퍼를 찾아가서, “당신이 ‘평생 구경하지 못할 장면’을 보여주겠다”며, 여자로서의 자존심을 던져 버리고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는 결혼하자고 청한다. 하지만 쿠퍼는 “결혼하기 전에 아직 할 일이 많다”며 거절한다. 굴욕을 참아 내면서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 화가 잔뜩 난 닐은 벌떡 일어나 말채찍으로 그를 후려갈기고는, 벌써부터 그녀에게 구혼을 계속하며 오래 기다려 온 언론 총수 레이몬드 매씨에게 달려가 덜컥 결혼한다.
단숨에 관객과 비평가의 주목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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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대 건축계와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이상만을 추구한 영화 <마천루>의 포스터. |
재판에 회부된 쿠퍼는 건축의 독창적인 예술성에 대한 열변을 토하면서, 천재적인 소수는 범속한 군중과 같은 가치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변호한다. 가히 니체의 초인(超人)주의와 라스콜니코프(《죄와 벌》)의 영웅관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패트리샤 닐(Patricia Neal, 본명 Patsy Louise Neal, 1926~2010)은 이렇게 잉그릿 버그만의 평균치 주인공들보다 훨씬 강렬하고 공격적인 도도한 여인상을 그려내어 단숨에 관객과 비평가들로부터 주목을 받으며 은막에 등장했다. 그리고 이듬해 닐은 게리 쿠퍼를 <야망의 종말(Bright Leaf)>에서 다시 만나 저마다 <마천루>의 남녀 독불장군 역을 되풀이한다.
쿠퍼는 숙부가 유산으로 남겨 놓은 황폐한 작은 농장을 팔아 치우려는 목적으로 노드 캐롤라이너 시골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수작업으로 생산하는 여송연보다 기계로 권련을 생산하면 저렴한 가격에 대량으로 담배를 공급하여 떼돈을 벌게 되리라는 기회를 우연히 포착한다. 쿠퍼는 이것이 복수를 위한 좋은 기회라고 판단한다. 가난한 소작농이었던 쿠퍼의 아버지는 가족과 함께 마을에서 쫓겨나 타향에서 한 많은 생애를 마쳤다. 그의 담배 농사가 본궤도에 오르려고 하자 경쟁자를 애초에 제거하려고 무자비한 폭군 농장주 도널드 크리습 소령이 집과 땅을 빼앗고는 그들을 몰아냈기 때문이었다. 닐은 크리습 소령의 딸이다.
쿠퍼는 유산으로 받은 농장을 팔지 않고 사업계획에 착수하고는 옛 애인 로렌 바콜을 찾아간다. 어머니로부터 ‘접대업소’를 물려받아 지금은 부자가 된 바콜을 찾아간 이유는 흘러간 사랑을 되살려 보려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오직 공장을 세울 돈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원한이 맺힌 고향에서 ‘재벌’에게 복수를 하려는 가난뱅이 쿠퍼의 계획은 단숨에 크게 성공한다. 그리고 시대의 진보적인 변화를 읽지 못해 여송연 생산만을 고집하던 크리습은 몰락하여 빚더미에 올라앉는다. 그러자 쿠퍼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그를 멸시하던 크리습의 딸 패트리샤 닐을 차지하겠다는 병적인 집념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교만하고 성깔이 대단한 부잣집 딸 닐은 ‘탄탈로스의 갈증’과 같은 존재여서, 애타게 갈망하며 쫓아갈수록 점점 더 멀어지기만 한다.
“당신 위험한 남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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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리 쿠퍼와 1949년 <마천루>에서 만난 스물세 살의 패트리샤 닐과의 만남은 극적이었다.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를 여러 면에서 그대로 빼닮은 그녀는 “한밤중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일어나 앉아 무슨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리는가 하면, 아버지 크리습 소령에게는 “지금은 1894년이고, 나는 현대 여성이에요. 나는 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잘 알아요”라면서 당당하게 맞서고는 한다. 이런 패트리샤 닐이 쿠퍼와 결혼하기로 결심하는 까닭은 오직 하나, 그녀의 아버지에게 복수를 자행한 쿠퍼에게 맞복수를 하기 위해서다.
크리습 소령 못지않게 무자비한 사업가로 변신한 쿠퍼는 빚에 몰린 크리습의 저택까지 몰래 손에 넣는다. 그러고는 결투를 신청하는 소령을 무시하고 모욕하여, 마지막 자존심까지 잃고 굴욕감에 빠진 나머지 크리습이 비신사적인 짓을 저지른 다음 자살하게 만든다. 어쨌든 복수를 위한 결혼은 이루어지고,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직후부터 닐은 정상적인 부부관계는 물론이요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기조차 거부하고, 쿠퍼 몰래 담배회사 재산을 몽땅 빼돌려 그를 파멸로 몰고 간다.
복수를 끝내고 짐을 싸서 집을 나갈 때 패트리샤 닐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금부터 당신을 잊어버리겠지만, 당신은 나한테 당한 모든 일을 생각하면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한시도 나를 잊지 못하리라. 싱글턴 저택은 당신이 가져도 좋다. 그만한 대가는 충분히 치렀으니까.”
원하는 바를 다 성취하고도 진심으로 원하는 대상만큼은 손에 넣지 못했던 쿠퍼는 20세기로 들어서는 첫날, 저택에 불을 지르고 올 때처럼 빈손으로 고향을 떠나기에 앞서서, 로렌 바콜을 찾아간다. 그리고 사랑하기 때문에 사업자금을 대주었지만 끝내 그에게 배반을 당한 여인에게 쿠퍼가 말한다.
“세상을 다 얻은 줄 알았지만 소중한 건 다 잃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큰 실수를 했던 건, 당신이었다.”
게리 쿠퍼와의 만남과 이별
우리 주변에도 아내나 남편처럼 가장 소중한 사람을 가장 소홀히 하다가 뒤늦게 황혼이혼을 당하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원인을 설명해 주는 설정이다.
이렇게 함께 영화 작업을 하던 사이에 21살 때부터 패트리샤 닐은 25살이나 연상이었던 유부남 게리 쿠퍼의 정부가 되어 임신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당연히 그녀는 잉그릿 버그만처럼 여론에 시달렸고, (그녀가 커크 더글라스와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한) 쿠퍼에게서 뺨을 맞기도 했다. 결국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11살이나 아래인 쿠퍼의 딸 마리아가 닐의 얼굴에 침을 뱉는 수모를 겪고서야 두 사람의 관계가 겨우 정리되었다. 훗날 그녀는 《그렘린》과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으로 유명한 영국 작가 로울 달(Roald Dahl, 1916~90)의 아내가 되었다.
쿠퍼와 결별하고 얼마 안 가서 그녀는 신경쇠약에 걸려 오랫동안 고생했으며, 1965년에 다시 뇌동맥류로 세 번이나 쓰러져 거동조차 못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서 닐은 <졸업(The Graduate, 1967)>의 로빈슨 부인 역을 앤 뱅크로프트에게 넘겨주었고, 인기 TV 연속 가족극 <월튼네 사람들(The Waltons, 1972~81)>에 출연할 호기까지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닐에게 가장 큰 시련은 쿠퍼와의 불륜이나 병마(病魔)와의 싸움보다도 할리우드의 첫 번째 황금기라고 할 고전시대(classical period)의 막판에 그녀가 빛을 발산했다는 시간적 우발성이었다. 영화학자들은 1930년대를 할리우드의 고전시대 그리고 1940년대를 후기 고전시대라고 분류하는데, <마천루>는 그 마지막 해에 해당되는 1949년 작품이었다. 그래서 말랑말랑한 사랑과 총칼을 휘두르는 활극을 주로 팔아서 먹고 사는 상업주의 시대로 넘어가기 직전의 할리우드 사람들은, 어디에 써먹어야 좋을지 모르겠는 첨단 신제품을 앞에 놓고 당황하듯, 고전시대의 전형적인 여배우 패트리샤 닐을 어떻게 상업화해야 할지 난감한 처지에 봉착했던 것이다.
패트리샤 닐은 재클린 케네디와 고두심과 에마 톰슨의 얼굴을 합성한 듯, 어디론가 한쪽으로 일그러지면서 이목구비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특이한 인상을 주는 여배우다. 그리고 양쪽으로 무척 길게 늘어난 그녀의 입에서는 “네 속셈을 빤히 다 안다”고 비웃는 듯 야릇한 미소가 떠날 줄을 모른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이 원작인 <파국(破局, The Breaking Point, 1950)>에서만 해도 닐은 이 능글맞은 얼굴을 앞세워 남자들의 등을 쳐 먹고 사는 요부(femme fatale)로 확실하게 각인된다.
세파에 닳고 닳아 시궁창에서도 부초(浮草)와 같은 막장 인생을 요령껏 건사하며 태연하게 살아남는 술집 가수 닐은 <파국>에서 뚱보 남자와 함께 바다낚시를 와서는 슬그머니 존 가필드 선장을 유혹하려고 수작을 벌인다. 그리고 “당신 낚시나 할 줄 아느냐”고 가필드가 빈정대자 이렇게 명대사로 받아친다.
“Ooh, I don't think I like you.(이런, 보아하니 당신 내 맘에 안 들겠는데.)”
악녀, 양념, 꽃 노릇만 하다 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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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허드>에 출연한 닐과 폴 뉴먼. 닐은 중년 하녀의 고달픈 잡초 인생을 연기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
냉전의 공포를 순진하게 상업화한 공상과학 영화의 전성기를 인증하는 고전적 이정표로 꼽히는 <지구 최후의 날(The Day the Earth Stood Still, 1951)>에서 패트리샤 닐은 데뷔 2년 만에 이미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역을 맡기 시작했다. “인간의 핵개발이 지구뿐 아니라 우주 전체에 어떤 불행을 가져올지를 경고하기 위해 찾아왔다”가 오히려 인간들로부터 푸대접을 받는 외계인 마이클 레니의 심부름을 해 주는 닐은 어느 모로 보나 가짜 착한 여자 같기만 하다. 교태를 부리고 술을 마시며 놀아나던 여자가 집안에 들어앉아 살림을 하면 저렇게 어색해 보이겠구나 하는 인상을 물씬 풍기면서 말이다.
수많은 유명한 배우들(헨리 폰다, 커크 더글라스, 휴 오브라이엔, 데이나 앤드루스, 슬림 피큰스, 버지스 메레디트, 프랭크 오코너, 패트릭 오닐, 조지 케네디, 브루스 캐봇, 래리 해그먼)이 백화점 식으로 줄줄이 등장하는 대형 ‘진주만’ 영화 <공과 해(In Harm's Way, 1965)>에서 존 웨인 함장과 연애를 하는 간호장교 닐의 역할 또한 잔뜩 진열해 놓은 여러 작은 화분들 틈에 낀 한 송이처럼 양념으로 들어가는 ‘꽃(여자)’ 노릇만 하다가 그친다.
또 다른 해전 영화 <태평양 기동작전(Operation Pacific, 1951)>에서도 그녀는 역시 존 웨인과 연애를 하는 간호장교 역을 맡았다. <공(空)과 해(海)>에서보다는 장난기가 약간 살아나기는 하지만, 병원에서 아기를 안아 올리는 그녀의 어색한 모습을 보면 시대를 잘못 만나 낭비되는 비범한 악녀처럼 아깝기만 하다.
패트리샤 닐의 능글맞은 미소가 어느 정도나마 제값을 한 영화는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 1961)>에서였다. 비록 단역이기는 하지만 그녀는 가난뱅이 작가 조지 페퍼드를 두둑한 용돈까지 챙겨 주며 사육하는 상류사회 여인 노릇을 노련하게 해낸다. 그리고 2년 후에 닐은 <허드(Hud)>에서 머리카락이 얼굴로 후줄근하게 흘러내리는 중년 하녀의 고달픈 잡초 인생을 연기하여 마침내 아카데미상을 챙겼다.
도박사 남편에게 버림을 받은 <허드>의 그녀는 텍사스의 황량하고 외딴 목장에서 정직하고 성실한 멜빈 더글라스, 술과 여자밖에 모르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아들 폴 뉴먼, 그리고 친구가 아무도 없는 외로운 사춘기 소년 브랜든 드 와일드의 뒷바라지를 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뉴먼은 자꾸 닐에게 집적거리며 수작을 걸지만, “자기밖에 모르는 개자식들(cold-blooded bastards)”이라며 이미 신물이 난 그녀는 좀처럼 응하지 않는다. 결국 뉴먼은 그녀를 강간하려다 조카 드 와일드가 막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닐은 “어디를 가나 똑같은 인간들을 만나 똑같은 일을 당하는” 뜨내기 인생의 설움을 재확인하며 다시 길을 떠난다.
<허드>는 시대 조류를 따를 줄 모르는 고지식한 아버지와 기회가 제한된 답답한 시골 생활에 지친 욕구불만의 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가장 두드러진 주제다. 그리고 줄거리는 마틴 리트 감독의 특유한 적막감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고독하고 반항적이고 불량한 뉴먼의 인간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내가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는 이 영화에서 그녀가 맡았던 역은 사실 주연이라고 하기에는 좀 억지라고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트리샤 닐에게 아카데미 조연상이 아니라 주연상을 안겨 주었던 까닭은 뭘까. 아마도 시대를 잘못 만났을 뿐 아니라 오랜 병마에 시달려 온 그녀를 슬픈 눈으로 지켜본 사람들이 그녀가 이미 오래전에 받았어야 마땅한 보상을 뒤늦게나마 챙겨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듯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