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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키드 安正孝의 ‘별들이 빛나는 이야기’ ⑥ 앤토니 퀸과 클린트 이스트우드

“투박한 산도둑 인상의 착한 저능아” vs. “같은 표정 하나로 평생 먹고살다”

  • 글 : 안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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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퀸, 라우렌티스-폰티가 제작한 <길(La Strada)>에서 주연 맡아 일생일대의 대박 터뜨려
⊙ 퀸, 머리가 나쁜 착한 저능아 역할의 1인자
⊙ 이스트우드, 오직 총질에만 헌신하는 “이름 없는 사나이”의 전설
⊙ ‘스파게트 웨스턴’ 영화의 성공은 싸구려 음식이나마 듬뿍 담아주자는 장바닥 전략의 성공

安正孝
⊙71세.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 《코리아헤럴드》 기자, 《코리아타임즈》 기자·문화체육부장,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 주요 작품으로 소설 《전쟁과 도시》(후에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은마는 오지 않는다》(후에 《銀馬》) 《악부전》 《솔섬》 등이 있다.
    번역서로 《백년동안의 고독》을 비롯해 150여 권이 있다.
유럽 영화인들의 이산(離散)은 활동 무대를 넓히려는 문화적인 목적뿐 아니라 스위스에서 사업을 벌이던 알랭 들롱이나 세금의 부담을 벗어나려던 소피아 로렌처럼 경제적인 현상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타의에 의한 우발적인 결과인 경우 또한 마찬가지다.
 
  마지막 경우에 해당하는 인물이 1902년에 미국으로 이주한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安昌浩)의 맏아들 필립 안(Philip Ahn·1905~78)이었다.
 
  1940~60년대에 매우 왕성하게 할리우드에서 활동했던 조연급 전문배우 필립 안은 국적이 미국이었고, 영화에서는 한국전쟁 실화를 다룬 록 허드슨의 <전송가(戰頌歌·Battle Hymn·1957)>와 이동야전병원(MASH)에서 험프리 보가트와 준 앨리슨이 사랑에 빠지는 <전장의 틈바구니에서(Battle Circus·1953)> 정도를 제외하고는 한국인 역할을 맡았던 적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쟁으로 인해서 한국이라는 나라의 비참한 실상이 외국에 어느 정도 알려지기는 했지만, 영화에 한국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지극히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첫 작품인 58분짜리 추리물 <심야의 절규(A Scream in the Night ·1935)>를 비롯하여, 한국전쟁 종군기자와 중국 여의사 한수인(Han Suyin)의 사랑을 그린 <모정(Love Is a Many Splendored Thing·1955)>, 그리고 TV 연속물 <쿵푸(Kung Fu·1972~75)>에서 데이빗 캐러딘의 스승으로 고정출연한 말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화에서 중국인 역할을 주로 맡았다. 그러다가 지극히 동양적인 그의 얼굴이 널리 알려지자 그는 일본인을 비롯하여 동양의 여러 나라 국적의 역할을 독식하기 시작하더니, 해양활극 <자바의 태풍(Fair Wind to Java· 1953)>에서는 심지어 폴리네시아인이 되기도 했다.
 
 
  필립 안과 앤토니 퀸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남인 필립 안. 그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동양인의 얼굴’이 필요할 때마다 등장하는 다국적 존재였다.
  필립 안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동양인의 얼굴’이 필요할 때마다, 기성품 양복을 입힌 인형을 데려다 앉히듯, 상비약처럼 편리하게 차출해 가는 ‘다국적(多國籍)’ 존재가 되었다. 서양 연기자들 중에서는, ‘프랑스인’ 샤를 부아이에나 모리스 슈발리에 같은 고상한 카프카스 백인종의 위상이 아니라 미개(未開)한 제3국인으로 유통되는 경우, 이런 유사한 사례로 오마 샤리프와 앤토니 퀸(Anthony Quinn·1915~2001)을 꼽겠다.
 
  과수원 이주 노동자였던 아일랜드인 아버지와 멕시코 여인의 아들로 치와와(멕시코 북부)에서 태어난 퀸은 미국으로 들어가 1947년 시민권을 획득했다. 공사장 인부, 택시 운전수, 권투선수 따위의 막일을 하다가 1936년부터 영화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는데, 필립 안과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온갖 음흉한 단역을 전문으로 맡았다. 멕시코인은 물론이요 인디언, 아랍인, 쿠바인, 에스파냐인 등등 온갖 ‘다국적인’ 역할을 두루 맡았으나 세월이 흐를수록 성숙을 거듭해 명배우로 변신했다.
 
  퀸의 초기 주요 출연작을 보면, 단박에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볼 수 있다. 초기작 가운데 하나인 <옥스보우의 비극(The Ox-Bow Incident· 1943)>은 월터 클락(Walter Van Tiburg Clark)의 고전 서부소설이 원작이다. 1885년 네바다의 어느 한가하고 작은 마을 사람들이 인근 농장의 주인이 소도둑들에게 살해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광분하여 남군 출신의 장교를 중심으로 추적대를 조직하고는 아무 죄도 없는 세 명의 혐의자를 붙잡아서 목을 매달고 확인사살까지 해서 죽인다는 고발적인 내용이다.
 
  “먹고, 자고, 술 마시고, 노름이나 싸움밖에 할 일이 없는” 평화로운 시골 마을의 주민들이 순식간에 폭도로 돌변하여 불법과 탈법을 합법화하는 행태를 보면, 식당 여종업원이 임신부의 배를 찼다거나 ‘국물녀’가 어쨌다고 일방적인 헛소문을 퍼뜨려가며 만행을 일삼는 요즈음 우리나라 인터넷 문화와 닮았다. 심지어 불법을 자행한 자신의 행동은 모두 정의롭고 상대방의 고발은 ‘입법 살인’이라는 독선적 궤변을 펼치는 우리의 정치 풍토를 씁쓸하고 섬뜩하게 연상시킨다.
 
  <옥스보우>에서 무고하게 교수형을 당하는 세 사람 가운데 멕시코인(앤토니 퀸)은 개성이 대단히 뚜렷한 인물이다. 광란의 폭도와는 말이 통하지 않으리라고 판단하여 일찌감치 변명과 설득을 포기해서, 데이나 앤드루스처럼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지도 않고, 전혀 겁도 내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천연덕스럽게 밥을 챙겨 먹고, 기운을 차려 도망칠 기회만 부지런히 노리는 냉철한 ‘도박사’로서, 생명력이 강한 ‘풀뿌리’의 인상을 준다. 그러고는 구원의 가능성이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술주정뱅이 마을 사람을 아무나 골라서 ‘신부님으로 지정’하고는 고해성사까지 마치고 침착하게 최후를 맞는다.
 
 
  무거운 인중과 투박한 얼굴의 맹랑한 줏대
 
이탈리아 여배우 비르나 리시와 함께 출연했던 영화 <25시> 포스터. 앤토니 퀸은 독일 아리안 인종의 선조로 오인받아 다양한 시련을 겪는다.
  존 스타인벡이 아예 시나리오로 발표했던 <혁명아 자파타(Viva Zapata!·1952)>에서 앤토니 퀸은 역시 멕시코인 역을 맡았다. 혁명의 영웅 에밀리아노 자파타의 형인 그는 대통령의 형이나 자식이라는 그림자 권력에 올라타 온갖 추태를 부리는 몇몇 한국인과 비슷한 작태를 보이는데, 이 풍자적인 역으로 퀸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획득하고 단역배우 시대를 마감한다.
 
  소신이 뚜렷하기로 유명했던 앤토니 퀸은 서부개척기의 전설적인 두 인물 와일드 빌 히콕과 컬라미티 제인의 불완전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대형 서부극 <평원아>에서 샤이엔 용사로 단역을 맡았다. 그리고 촬영장에서 그는 세계 최고봉에 이른 세실 B.드밀 감독의 연기 지도에 “진짜 인디언이라면 숲 속에서 그런 식으로 걷지는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했다고 한다.
 
  무거운 인중과 투박한 얼굴의 제3세계 단역배우가 거침없이 드러낸 이런 맹랑한 줏대를 현장에서 지켜본 드밀의 딸은 얼마 후에 퀸의 아내가 되었다. 이토록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구가 강했던 퀸은 1958년 드밀이 제작한 <대해적(The Buccaneer)>에서 연출을 맡기도 했는데, 모처럼 머리털까지 붙이고 나온 율 브리너는 물론이요 찰턴 헤스톤과 샤를 부아이에, 그리고 클레어 블룸까지 참 아까운 배우 여럿이 헛수고를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루한 졸작으로 만들어놓고 말았다.
 
<길>의 포스터. 페데리코 펠리니가 감독한 이 영화는 아카데미상에 신설된 외국어 영화상을 획득하는 첫 작품이 되었다.
  퀸은 2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고 스스로 밝혔지만, 그들 가운데는 참으로 졸작이 많았다. 그리고 또한 그는 만만한 기회를 포착하려고 해외로 시선을 돌려 기웃거리다가 이탈리아와 기막힌 인연을 맺게 된다. 커크 더글라스를 주연으로 발탁하여 디노 데 라우렌티스와 카를로 폰티가 공동으로 제작한 <율리시즈(Ulisse·1953)>에서 조연을 맡았던 퀸은 이듬해 역시 라우렌티스-폰티가 제작한 <길(La Strada)>에서 주연을 맡아 일생일대의 대박을 터뜨린다.
 
  페데리코 펠리니가 감독하고 니노 로타의 음악까지 곁들인 신사실주의 영화 <길>은 미녀와 야수 주제를 변주한 방랑기(road movie)로서, 아카데미상에 신설된 외국어 영화상을 획득하는 첫 작품이 되었고, 이를 계기로 앤토니 퀸은 국제적인 연기자로 다시 한 차원 위상이 발돋움했다.
 
  투박한 산도둑 인상에 말투까지 사나운 퀸은 거지 보따리를 주렁주렁 매단 헌 트럭을 끌고 장터나 행사장 그리고 곡마단을 찾아다니며 괴력을 팔아먹는 차력사로서, 우악스러운 한 마리 짐승처럼 살아간다. 그런가 하면, 죽은 언니 대신 조수로 부리려고 퀸이 1만 리라에 인신매입을 해서 함께 노숙생활을 시작하는 여자 줄리에타 마시나는, 희극적으로 불쌍한 등장인물이기는 하지만, 지능은 퀸과 그리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마시나는 사실 ‘미녀’하고는 조금 거리가 먼 만화처럼 특이한 얼굴에 어딘가 많이 모자란 듯한 여자인데, 매를 맞아가며 ‘예술’을 배우고는 나름 길거리 연예인으로서의 보람을 느끼고 히죽거리거나, 야수에게 정을 느끼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제대로 궁합이 맞는 품바 한 쌍이다.
 
 
  “인생은 말썽의 연속이죠”
 
<희랍인 조르바>의 포스터.
  앤토니 퀸은 <길>에서와 마찬가지로 <산타 비토리아의 비밀(The Secret of Santa Vittoria·1969)>에서 수염이 텁수룩한 이탈리아 ‘촌놈’ 역을 맡는다. 인구 1200명의 작고 조용한 마을이지만 포도주 산지로는 독일에까지 잘 알려진 산타 비토리아에서 먹고 마시고 놀 핑계만 열심히 찾는 술집 주인 퀸은 어딘가 모자라고 그만큼 마음 또한 헤픈 남자다. 그리고 무솔리니가 사망하자 파시스트 실세들은 마을 사람들의 보복을 피하고 가능하면 기득권도 유지하기 위해 허수아비 이장으로 만만하고 멍청한 퀸을 추대한다.
 
  술에 취해 수레로 자기 집을 부수고 쳐들어간 퀸은 사납고 고약한 욕쟁이 마누라 안나 마냐니에게 몽둥이 찜질을 당하고 쫓겨나 시청에서 기거한다. 마을 통치를 위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지침서로 삼고, 광장 분수대에서 동전 따먹기를 하며 무료한 나날을 보내다가, 이장으로서의 통치력을 발휘할 뜻밖의 기회를 만난다.
 
  하디 크루거가 이끄는 독일군 부대가 포도주를 빼앗아가려고 마을로 진주한다는 말을 듣고 퀸 이장은 지극히 무모한 일을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한다. 지하창고에 비축한 131만7000병의 포도주 가운데 눈속임으로 30만 병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마을 아래쪽 로마 시대의 동굴에 감추기 위해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한 줄로 끝없이 늘어서서 한 병씩 손으로 운반하는 원시적인 작전이 밤낮으로 이루어진다.
 
  진주한 독일군과 게슈타포가 감춘 술을 찾으려고 무진장 애를 쓰지만, 소용이 없다. 영화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한 로벗 크라이튼(Robert Crichton)의 원작 소설을 보면 이 과정에서 마을 사람 몇 명이 처형을 당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들의 소중한 재산을 무사히 지켜낸 마을 사람들은 독일군이 철수한 다음 광장에서 춤판을 벌인다. 이때 앤토니 퀸이 포도주병을 높이 치켜들고 추는 이탈리아 토속 춤은 <희랍인 조르바(Zorba the Greek·1964)>의 마지막 장면에서 퀸이 추는 그리스 토속 춤과 신기할 정도로 똑같다.
 
  발레와 뮤지컬로도 제작된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의 대표작을 영화로 만든 <희랍인 조르바>에서 퀸은 크레타의 폐광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영국 시인 앨런 베이츠를 도와 갈탄 채굴 사업에 착수하는 현장 책임자다. 그는 어디를 가나 만만한 과부가 없는지부터 알아보고, 술과 노래와 여자와 자유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나이. 그의 세계관과 인간성은 그가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곧 짐작이 간다.
 
  “나는 남자고, 남자는 멍청하고, 그래서 결혼을 했다가 쫄딱 망했죠.”
 
  “돌고래를 안 좋아하다니, 당신도 사람이요?”
 
  “인생은 말썽의 연속이죠. 그러니까 허리띠를 풀고 (여자들과) 말썽 좀 부려볼라고요.”
 
  “여자가 혼자 자게 그냥 내버려둔다면 그건 남자 전체의 수치랍니다. 가엾고 나약하기 때문에 난 모든 여자를 사랑합니다.”
 
  “남들은 나이를 먹으면 몸을 아끼고 조심한다지만, 나는 이 만큼 나이를 먹어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어서 서둘러 하고 싶은 짓 신나게 다 할 겁니다.”
 
  그리고 목재를 운반할 케이블 시설물이 통째로 무너지고 두 사람의 사업이 완전히 망한 다음에 그가 말한다. “이렇게 멋지게 왕창 망하는 꼴을 두목은 본 적이 있나요?”
 
 
  순진한 못난이의 오랜 노정
 
영화 <어느 헤비급 복서를 위한 진혼곡>의 한 장면. 퀸의 야수적인 백치성 연기가 절정을 이루는 작품이다.
  <산타 비토리아의 비밀>에서는 순박한 이장 봄볼리니, <희랍인 조르바>에서는 동물적인 생명력을 갖춘 자연아, <길>의 끝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야수였던 앤토니 퀸은 프랑스-이탈리아 합작 영화 <노틀담의 꼽추(The Hunchback of Notre Dame·1957)>에서는 착한 괴수(怪獸) 콰지모도로 분(扮)한다. 이런 순진한 못난이의 노정에서 퀸의 야수적인 백치성은 <어느 헤비급 복서를 위한 진혼곡(Requiem for a Heavyweight·1962)>에서 절정에 이르지 않았나 싶다.
 
  미군 방송 AFKN-TV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1970년대에 시청자가 꽤 많았던 텔레비전 연속물 <환상지대(The Twilight Zone)>에서 음산하고 특이한 목소리로 멋진 해설을 맡았던 로드 설링(Rod Serling·1924~75)이 텔레비전극으로 발표한 <진혼곡>은 본디 1956년 권투선수 출신의 악역 전문 납작코 잭 팰런스가 주연을 맡아 제작되었다.
 
  팰런스의 역을 영화에서 앤토니 퀸이 물려받은 주인공 마운틴 리베라는 캐시어스 클레이(무하마드 알리의 본명)에게 시합에서 무참하게 무너진 다음, 너무 많이 두들겨 맞아서 항상 술에 취한 듯한 상태에 이르는 권투발광징후군(dementia pugilistica)의 진단을 의사로부터 받고, “한 번만 더 시합을 하면 장님이 될 테니까, 볼펜이나 팔면서 살아갈 걱정이나 하라”는 조언까지 듣는다.
 
영화 <평원아(The Plainsman·1936)>에서 인디언으로 출연한 앤토니 퀸. 그는 멕시코인은 물론 인디언, 아랍인, 쿠바인 등 ‘다국적인’역할을 소화하며 명배우로 변신했다.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17년 동안 권투밖에 모르며 살아온 퀸은 무식하기 짝이 없고, 눈치도 없고, 다른 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어서, 막노동이나마 하려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다가 수없이 면박만 당한다. 1952년에는 록키 마르시아노와 대전하고 중량급 5위까지 올랐던 그에게는 뭉개진 얼굴과 비참한 자존심만 남았고, 17년 동안 줄곧 망가져 오던 무용지물 몸으로는 어떤 생계대책도 불가능하다.
 
  더구나 퀸의 마지막 시합에서 승부조작을 하려다가 마피아의 여두목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매니저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로 몰린 그는, 남들의 비웃음을 받지 않도록 그를 마지막까지 보호하려는 코치 미키 루니의 만류까지 뿌리치며, 알량한 의리 하나만큼은 꼭 지키겠다는 미련한 판단에 따라, 결국 인디언 추장 차림으로 난쟁이들과 함께 굴욕적인 레슬링 시합에 끌려나가 광대 노릇을 하기에 이른다.
 
  한창 잘나가던 선수가 나이를 먹어 쓸모가 없어지면 헌 신짝처럼 버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유망주를 발굴하며 토사구팽을 계속하는 퀸의 악덕 매니저 역을 맡은 재키 글리슨(Jackie Gleason· 1916~87)은 본디 유명한 텔레비전 희극인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허슬러(The Hustler·1961)>의 ‘미네소타 뚱보’로 처음 얼굴을 알렸던 중견급 연기자다.
 
 
  머리가 나쁜 착한 저능아 역할의 1인자
 
안정효가 그린 앤토니 퀸 캐리커처.
  극단적 사실주의 영화 <진혼곡>에서 앤토니 퀸은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며 착하게 살아가는데도 왜 인생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지 도저히 스스로 이해를 못할 정도로 머리가 나쁜 착한 저능아 역할의 1인자임을 과시했는데, 이와 비슷한 전형적 인물상은 절망의 시간 <25시>에서 1967년에 반복된다.
 
  이 영화는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Constantin-Virgil Gheorghiu·1916~92)의 원작 소설을 이탈리아의 카를로 폰티가 제작했고, 터키 태생 프랑스계 아르메니아 사람인 앙리 베르뉘가 감독했고, 유고슬라비아에서 촬영하고 영어로 녹음하여 미국의 MGM이 배급했다. 프랑스에서 1950년대에 활동하다가 1965년 <마누라 죽이기(How to Murder Your Wife)>에서 잭 레먼과 연기하게 된 계기로 할리우드에 뿌리를 내린 이탈리아 여배우 비르나 리시가 함께 출연했던 영화 <25시(La Hora 25·프랑스어 제목은 La Vingt-cienqui?me heure·영어 제목은 The 25th Hour)>에서, 카프카스 인종보다는 몽골 인종의 얼굴에 가까운 멕시코 태생 미국인 앤토니 퀸은 44세의 순박하고 건강한 루마니아 농부로서, 독일 아리안 인종의 선조로 오인을 받아 온갖 국적과 인종 문제에 시달린다.
 
  미치광이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한 직후, 1939년 루마니아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쥐꼬리만 한 권력을 제멋대로 남용하는 동네 경찰서장은 유부녀 리시에게 흑심을 품고 그녀의 남편 퀸을 유대인으로 몰아 수용소로 보낸다. 아내가 백방으로 구출운동을 벌이지만 아무 소용이 없어서 퀸은 유대인들과 함께 수로(水路) 공사에 투입되고, 이듬해 독일이 루마니아를 침공하자 유대인의 아내라는 누명 때문에 재산을 몰수당할까 봐 리시는 퀸과 서류상으로 이혼하고는 고향을 떠난다.
 
  한편 현장 감독을 매수하여 수용소를 탈출할 계획을 세운 세 명의 유대인은 힘센 심부름꾼이 필요해지자 퀸을 회유하고, 수용소 생활 17개월 끝에 그는 부다페스트로 가서 마침내 자유를 찾지만, 신분증이 없어서 러시아 첩자로 의심을 받아 헝가리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부역을 위해 1942년에 독일 공장으로 차출된다. 이렇게 끊임없이 상황이 꼬이던 끝에 퀸은 강제노동 공장에서 인류학에 밝은 독일군 장교에게 16세기서부터 순수 혈통을 지켜온 아리안족의 후손으로 “독일인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역사적인 표본”이라는 인정을 받고는 3728가지 선전용 간행물의 표지에 사진이 실린다.
 
  SS 친위대 제복을 입고 명예 경비병으로 근무하던 그는 연합군이 진주해 올 때 우발적으로 독일 병사 두 명을 사살하고는, 미군들에게 영웅 대접을 받으며 이번에는 연합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된다. 나치 선전의 선봉에 섰다는 이유로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회부된 그는 행방불명이 된 아내의 거처를 스위스 적십자사를 통해 알게 되어 어느 시골 역에서 8년 만에 겨우 재회하지만, 아내에게는 러시아 병사들에게 강간을 당해서 태어난 두 살 박이 아들이 생긴 다음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처자식을 만나 얼마나 기쁘냐”면서 미소를 지으라는 사진기자의 요구에 비통하게 일그러지는 앤토니 퀸의 얼굴이 참혹할 지경으로 인상적이다.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로 우뚝 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캐리커처.
  <25시>에서 호흡을 맞췄던 앤토니 퀸과 비르나 리시가 다시 함께 연기한 <산타 비토리아의 비밀>은 로마 근교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영화 도시’ 치네치타(Cinecitta)에서 촬영했다. 치네치타는 나치 정부에서 설립한 UFA 영화사와 마찬가지로 영화의 정치적인 선전 효과를 절실하게 인식했던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재자 무솔리니가 1937년에 설립한 시설이다.
 
  전쟁이 끝난 다음 치네치타는 경제성이 새로운 각광을 받으면서 할리우드의 원정 촬영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는데, 장-뤽 고다르의 <경멸(Le m?pris·영어 제목 Contempt·1963)>을 보면 돈 많고 천박한 미국인 영화제작자 잭 팰런스가 이곳에서 <오딧세이아>를 촬영하며 온갖 건방을 떠는 우스꽝스러운 단면을 재미있게 부각해 놓았다.
 
  이탈리아 영화 제작의 쌍벽이었던 카를로 폰티와 디노 데 라우렌티스는 치네치타를 등에 업고 할리우드로부터 미국 연기자들을 유럽으로 불러들이는 공작을 계속했는데, 이렇게 시작된 역류(逆流)현상에 휩쓸려 이탈리아로 건너가 맹활약을 펼친 대표적인 미국 배우가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1930~)다. 하워드 혹스-존 웨인의 고전 서부극 <광야천리(曠野千?, Red River·1948)>를 CBS방송이 217회에 걸친 텔레비전 연속물로 개조한 <로하이드(Rawhide·1959~66)>에서 소몰이 부두목으로 출연하여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키다리 미남배우 이스트우드를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눈여겨보았던 결과였다.
 
  당시의 영화 조류를 돌이켜보면, 미국과 영국에서는 히피와 비트족과 여성해방운동과 반(反)영웅주의의 도전을 받아서 얌전한 기독교적 가치관이 흔들리기 시작하여, 말론 브랜도와 제임스 딘, 폴 뉴먼, 스티브 매퀸 같은 반항아들이 은막(銀幕)을 지배했고, 서유럽의 문화도 파격의 화법을 다각도로 추구했으며, 홍콩의 샤오이푸(Run Run Shaw) 영화가 중국 교포시장으로 급격히 잠식해 들어간 결과로 ‘일당백(一當百)’ 주인공의 주먹 한 방에 단역배우들이 무더기로 죽어 자빠지는 쿵후물이 엄청난 파괴력을 과시하며 서양 문화권으로 쳐들어가던 중이었다. 그러니까 여섯 발을 장전하는 권총에서 백 발의 총탄이 날아가 수백 명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묻지 마 공식이 ‘스파게티 웨스턴’(‘마카로니 웨스턴’이란 말은 일본에서 날조한 영어임을 밝혀둔다)의 기본 철학으로 자리를 잡게 된 배후에서 쿵후 난장판이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는 유추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겠다.
 
 
  쿵후와 스파게티의 범람
 
영화 <석양에 돌아오다>의 한 장면. 원제는 <잘난 놈, 나쁜 놈, 못난 놈>. 이스트우드는 ‘현상금 사냥꾼’으로 묻지 마식 무차별 대량 살상 화법을 선보인다.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의 <요짐보(用心棒·1961)>를 이탈리아 서부극으로 만든 <황야의 무법자(Per un pugno di dollari·1964·영어 제목 A Fistful of Dollars)>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판초를 걸치고 멋쟁이 가느다란 여송연을 물고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기괴한 음악과 휘파람 소리에 맞춰가며, 돈벌이를 위해 끊임없이 송장을 생산하는 서양 사무라이의 잔혹한 전설로 전 세계를 열광시키기 시작했다.
 
  사랑도 하지 않고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오직 총질에만 헌신하는 “이름 없는 사나이(Man With No Name)”의 전설은 변변한 줄거리조차 없이 온갖 비현실적인 살인의 뽐내기 예식을 백화점처럼 진열하며 학살의 쾌감을 무진장 제공하여 이듬해 속편 <석양의 무법자(Per qualche dollaro in pi쮏)>를 엮어냈다.
 
  치네치타에서 촬영한 <석양의 무법자>에서 ‘파시스트 총잡이’ 이스트우드는 유능하고 초인적이며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는 냉소적인 인물이다. 그는 현상범 살인을 사업이라고 생각하는 또 다른 총잡이 리 밴 클리프를 만나 동업을 벌이는데, 그들은 영화가 시작된 지 15분 만에 3명을 한꺼번에 사살하고, 30초 후에 한 명 더 사살한다.
 
  18분에는 떼강도들이 감옥에 침투하여 경비병 2명을 칼로 찔러 죽이고, 19분에는 두목이 경비병 한 명을 사살하고, 20분에 다시 경비병 4명을 사살하고, 21분에 간수 한 명을 더 사살한다. 10초 후에는 계단에서 경비병 2명을, 24분에는 배반한 동지 한 명과 그의 처자까지 2분 간격으로 두목이 모조리 사살하고, 이스트우드와 밴 클리프 두 총잡이의 기싸움이 길바닥에서 잠시 계속되는 동안 살인이 중단되는가 싶더니 61분에는 두목이 신혼부부 가운데 남편을 죽인 사건을 회상하고, 67분에는 이스트우드가 산으로 유인해 낸 강도 3명을 죽인다. 78분에는 강도단이 은행 금고지기를 사살하고, 90분에는 식당에서 시비 끝에 밴 클리프가 클라우스 킨스키를 데린저 권총으로 죽인다. 101분에는 두목이 부하 하나를, 106분에는 다른 부하를 하나 더 죽이고, 108분에는 부두목이 칼에 맞아 죽는다. 마을에서 벌어진 결투에서는 113분에 두 명, 114분에 두 명, 115분에 다시 두 명이 죽고, 신혼부부 가운데 아내를 죽이는 사연은 117분에 밝혀지고, 123분에는 두목이 마침내 정의의 총탄을 맞고 쓰러진다.
 
  질서정연한 줄거리와 서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이, 가책은커녕 양심조차 없는 등장인물들이 줄지어 나와서, 살인의 예식을 수집한 기록영화처럼 엮어서 “속 시원하게 잘 죽인다”는 보복의 대리만족을 맛보도록 도와주는 이런 영화가 수많은 비평가의 혹평을 들어가며 우후죽순 창궐하던 까닭은 질로 당할 길이 없으면 싸구려 음식이나마 듬뿍 담아주자는 장바닥 전략이 성공했기 때문이지만, 불량식품을 너무 많이 먹으면 결국 배탈이 나고, 이런 ‘배탈’을 한방에서 ‘식상(食傷)’이라고 한다.
 
  쿵후와 스파게티의 범람은 영화가 예술품으로서보다는 오락물로서 훨씬 더 많이 소비된다는 현상을 방증하며, 할리우드 키드 시절의 관객은 영화를 보면 흔히 무엇인가 마음속에 소중히 담아가지고 집으로 갔지만, 요즈음 영화 소비자들은 “답답한 불만을 (털어) 버리고 간다”는 문화적 변천의 증거이기도 하다.
 
 
  멍청영화에 진입한 3시간20분 동안 늘어진 대량학살
 
영화 <황야의 무법자>의 포스터. 이스트우드는 판초를 걸치고 멋쟁이 가느다란 여송연을 물고 나온다.
  레오네와 이스트우드가 함께 만든 세 번째 ‘무법자’ 영화 <석양에 돌아오다(Il buono il brutto il cattivo 영어 제목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는, 원제 〈잘난 놈, 나쁜 놈, 못난 놈〉에서 잘 나타나듯이, 이스트우드, 밴 클리프와 난형난제인 ‘현상금 사냥꾼’ 일라이 월락이 한 사람 더 늘어났을 뿐, 똑같은 무책임한 내용을 똑같은 묻지 마 무차별 대량 살상 화법으로 무려 3시간20분 동안 엿가락처럼 길게 잡아 늘이기만 해서 지루하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컴퓨터 게임과 맞먹는 멍청영화의 차원으로 마침내 진입한다. 마지막 공동묘지의 3각 결투 장면에서는 세 사람이 서로 노려보기만 하면서 부려 7분의 시간을 보낸다.
 
  앞으로 이어질 상황에 대한 긴장감과 호기심으로 흥미를 유발하기가 힘에 부쳐서인지 점점 더 많은 사람을 죽여서 억지로 지루함을 메우려는 대중적 서부영화에 마침내 식상한 이스트우드는 이제는 질과 격조를 높이고 싶다는 욕구를 느껴 할리우드로 돌아가 말파소(Malpaso) 영화사를 세운다. 그는 직접 서부극과 다른 분야의 영화 제작에 착수하며, 그를 대신하여 헨리 폰다와 찰스 브론슨, 리 밴 클리프가 계속 이탈리아를 드나들면서 반영웅(antihero) 무법자의 전통을 이어갔다.
 
  고향으로 돌아간 ‘스파게티 방랑자’ 이스트우드는 제작자와 연출가로 변신하여 운신의 폭을 넓혀서, “여자 한번 잘못 건드렸다가 엄청나게 혼이 나는” 천박한 주제에 에드가 앨런 포우의 시 <애너벨 리(Annabel Lee)>를 접목한 공포극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Play Misty for Me·1971)>로 크게 성공하고, 황금이 발견된 ‘이름 없는 마을(No Name City)’에서 리 마빈과 이스트우드가 진 세버그를 아내로 공유하는 러너와 로우의 뮤지컬 <노래하는 포장마차(Paint Your Wagon)>를 1969년에 세 시간짜리 영화로 제작하여 대형 낭패를 보기도 했다. 또 탈옥 영화 <알카트라즈 탈출(Escape From Alcatraz·1979)>과 한국전쟁 참전 노병이 그레나다 침공에서 활약을 벌이는 <단장의 능선(Heartbreak Ridge·1986)> 그리고 산악 영화 <아이거 빙벽(Eiger Sanction, The Eiger Sanction·1975)> 따위의 여러 범작을 만들지만, 결국 이스트우드의 승부는 변종 서부극에서 종결이 이루어진다.
 
 
  소시민 관객의 욕구불만 심리를 상품화
 
이스트우드가 연출한 영화 <고원의 방랑자>의 한 장면. 이름 모를 ‘나그네(Stranger)’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고, 변두리 수염과 가느다란 여송연을 물고 등장한다.
  전쟁터에서 돈벌이를 하는 모리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수녀로 변장한 창녀 셜리 매클레인을 만나 멕시코 혁명에 끼어들어 난장판을 벌이는 <수녀와 무법자(Two Mules for Sister Sara·1970)>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과, 이스트우드의 옷차림, ‘무법자’가 들어간 우리 말 제목에 이르기까지, 다분히 희극적이기는 하지만 세르지오 레오네의 변종 서부극 화법을 그대로 빼다 박은 연장선상에 놓이고, “처자식이 왜 필요하냐”고 소신을 밝히는 ‘파시스트 무법자’의 일관된 개성(persona)을 차츰 질적으로 점강시키는 기미를 보인다.
 
  말파소 제작에 이스트우드가 연출한 <고원의 방랑자(High Plains Drifter· 1973)> 역시 레오네 서부극 공식을 고스란히 이어받는다. 첫 장면에서 열기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벌판을 가로질러 말을 타고 나타나는 ‘나그네(Stranger)’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고, 변두리 수염과 가느다란 여송연과 지저분한 옷차림도 그대로이고, 채찍으로 때린 원수들을 요란하게 해치우는 싸구려 복수극뿐 아니라, 남자가 까불면 주먹부터 나가고 여자가 까불면 마구간으로 끌고 가서 다짜고짜 강간하는 식으로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인물을 구성하는 방식도 그대로 판박이다.
 
  형기(刑期)를 마치고 출옥한 세 명의 악당이 마을로 돌아와 난장판을 벌인다는 <고원>의 설정은 개리 쿠퍼의 <하이눈>을 퍽 닮았지만, 작품의 질과 재미를 계산하는 방법은 여전히 원시적이다. 질보다 양이라는 장바닥 계산법에 따라 <하이눈>에서 네 명밖에 죽지 않지만 <석양의 무법자>에서는 35명이 죽어 자빠지니까 <석양의 무법자>가 <하이눈>보다 아홉 곱절이나 재미있고 훌륭한 영화라고 우기기는 어렵다.
 
  말파소가 제작한 첫 영화 <9인의 무뢰한(Hang ‘em High·1968)>은 걸핏하면 교수형을 시키기로 유명했던 실존인물(Isaac Parker, the Hanging Judge)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한다면서 독선에 빠지는 팻 힝글 판사가 모처럼 이스트우드 대신 탈법적 최후의 심판자 노릇을 하고, 같은 해에 선보인 <석양의 맨해튼(Coogan’s Bluff)>에서는 마침내 살인통계학이 이성을 되찾아 적절한 함량의 폭력을 유지하고, 총이나 칼을 맞고 죽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석양 장면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노골적으로 <황야의 무법자>에서 우리 말 제목을 복제한 <석양의 맨해튼>에서는 애리조나에서 살인범을 인도받으러 뉴욕으로 가는 보안관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수염을 말끔히 깎고 ‘무법자’보다 10년은 젊어진 모습의 이스트우드가 도널드 시겔 감독과 호흡을 맞춰 ‘파시스트 형사’를 탄생시킨다. 복잡한 법적 절차와 상관의 명령을 무시하고, 목표물만 보고 주변은 둘러보지 않으면서 거추장스러운 논리를 흔쾌하게 벗어나, 짐승 같은 범인을 맹수처럼 사냥하는 열외자(列外者)로서 행동하는 주인공은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을 마음대로 주물러보고 싶어하는 소시민 관객의 욕구불만 심리를 매우 효과적으로 상품화한다.
 
 
  끊임없는 변화로 ‘멍청배우’의 울타리를 넘어
 
영화 <더티 해리>에서의 이스트우드. ‘인간’이 아닌 자들에게는 ‘인간의 권리(人權)’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원칙에 충실한 영화다.
  시겔과 이스트우드가 다시 만나서 만든 경찰영화 <더티 해리(Dirty Harry· 1971)>에서는 파시스트 형사의 개념 정리가 확실하게 이루어진다. 이스트우드가 ‘나쁜 놈’을 큼직한 권총으로 겨누며 “실탄이 남았는지 궁금하냐?”고 놀리며 괴롭히는 장면 따위는 누군가에게 어떤 이유에서이건 통쾌하게 보복을 하고 싶은 관객에게 무한의 대리만족을 제공한다. ‘인간’이 아닌 자들에게는 ‘인간의 권리(人權)’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원칙에 따라, “묻지 마 살인범은 묻지 말고 죽이자”는 식의 시원스러운 논리는 대단히 성공적인 흥행 공식으로 자리를 굳힌다.
 
  테드 포스트가 감독한 <9인의 무뢰한>과 비슷한 구도를 갖추었으며 역시 테드 포스트가 연출한 <더티 해리2―이것이 법이다(Magnum Force·1973)>에서는 탈법적 최후의 심판자 노릇을 이스트우드 대신에 경찰 내부의 소수집단이 맡는다. 데이빗 소울과 로벗 유릭 등 네 명의 신참 명사수 도로 순찰 대원들은 법망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얄미운 살인범, 도박업자, 포주, 마약밀매상, 고급 창녀 따위 인간말종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사냥하고 처형하는 신출귀몰 청소반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식으로 요즈음 과잉생산된 정치모리배를 솎아내어 일망타진하는 《인간시장》 영화나 소설이 나오면 좋아할 사람들이 퍽 많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악의 무리와 싸우다가 희생된 선배 경찰관들의 복수전을 벌이는 핼 홀브룩 경위를 역추적해서 자동차와 함께 폭파해 버리며 이스트우드가 던진 마지막 한마디는 사뭇 예언적이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Man’s got to know his limitations).”
 
  더티 해리 영화는 2편이 한계가 아니었나 싶다.
 
  3편 <집행자(The Enforcer·1976)>에서는 또 다른 무능한 상관 브래드포드 딜먼이 바보 짓을 여전히 반복하고, 폭력 경찰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한심한 잔소리가 반복되고, 관료주의와 절차를 따지는 식상한 비판이 귀가 닳도록 반복되고, 무기고를 탈취한 혁명집단의 천편일률적인 만행이 점철된다. 그리고 강력계 경위로 승진한 여순경 타인 데일리가 바보 짓을 하다가 영웅적으로 전사한다는 삽화 또한 뼈다귀 하나로 열 번을 우려낸 맹물국처럼 진이 빠지고 약발이 사라져 아무런 맛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티 해리의 전설은 10년 전에 강간을 당한 여자가 남자라는 족속을 통째로 상대하여 복수혈전을 벌이는 4편 <서든 임팩트(Sudden Impact·1983)>와 만화 수준의 ‘살인명단’ 놀이가 벌어지는 5편 <추적자(The Dead Pool·1988)>까지 이어진다.
 
  똑같은 표정 하나만 가지고 평생 먹고산다는 혹평은 ‘무법자’ 시절부터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따라다녔고, 어느 비평가(Pauline Kael)는 “그를 나쁜 배우라고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영화에 나와서 아무 연기도 하지를 않으니까, 하지 않은 무엇 때문에 나쁘다고 탓하면 안 된다”고 비꼬기까지 했다.
 
  하지만 일관된 개성과 다양성은 상반된 개념이다. 그리고 이스트우드는 007의 탈을 벗어버리려고 작정한 숀 코너리처럼 끊임없이 다변화를 나름 열심히 시도했으며, ‘멍청배우’의 울타리를 보기좋게 뛰어넘고 변신에 크게 성공한 모범적인 연기자였다고 할리우드 키드는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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