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뇨레의 그윽한 눈과 두툼한 몸집은 무방비 상태로 방치한 중년여인의 관능을 상징
⊙ 몇몇 평론가는 시뇨레를 “늙어가는 권투선수(aging boxer)”에 비유
⊙ 슈나이더, 얼굴이 네모난 정도가 아니라 큼직한 눈까지 시뇨레를 빼닮아
⊙ 슈나이더, 獨·佛·오스트리아 중 어느 나라가 자신의 ‘뿌리’인지 관객에게 각인 못 시켜
⊙ 로이베릭, 단정하고 말끔한 인상에 환한 금발의 머리카락, 킴 노박을 연상시키는 엷은 눈썹
⊙ 로이베릭, 한국에서 슈나이더의 인기를 능가하는 ‘국민 누나’
安正孝
⊙71세.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 《코리아헤럴드》 기자, 《코리아타임즈》 기자·문화체육부장,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 주요 작품으로 소설 《전쟁과 도시》(후에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은마는 오지 않는다》(후에 《銀馬》) 《악부전》 《솔섬》 등이 있다.
번역서로 《백년동안의 고독》을 비롯해 150여 권이 있다.
⊙ 몇몇 평론가는 시뇨레를 “늙어가는 권투선수(aging boxer)”에 비유
⊙ 슈나이더, 얼굴이 네모난 정도가 아니라 큼직한 눈까지 시뇨레를 빼닮아
⊙ 슈나이더, 獨·佛·오스트리아 중 어느 나라가 자신의 ‘뿌리’인지 관객에게 각인 못 시켜
⊙ 로이베릭, 단정하고 말끔한 인상에 환한 금발의 머리카락, 킴 노박을 연상시키는 엷은 눈썹
⊙ 로이베릭, 한국에서 슈나이더의 인기를 능가하는 ‘국민 누나’
安正孝
⊙71세.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 《코리아헤럴드》 기자, 《코리아타임즈》 기자·문화체육부장,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 주요 작품으로 소설 《전쟁과 도시》(후에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은마는 오지 않는다》(후에 《銀馬》) 《악부전》 《솔섬》 등이 있다.
번역서로 《백년동안의 고독》을 비롯해 150여 권이 있다.
두 사람은 아메리카 시장을 겨냥한 범죄물 <암흑가의 두 사람(Deux Hommes dans la ville, 1973, Two Men in Town)>과 <지하실의 멜로디(M?lodie en sous-sol, 1963, Any Number Can Win)> 그리고 <시실리안(Le Clan des Siciliens, 1969, The Sicilian Clan)>에서 함께 짝을 짓기도 했다. 때로는 이탈리아 권투선수 출신이며 프랑스에서 조연급으로 잔뼈가 굵은 리노 방튀라(Lino Ventura)도 그들과 합세했다. 세계적인 문화국 프랑스가 범죄공화국 시카고의 뒷골목 식민지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 지경이었다.
흥행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예술성은 별로 없는 가뱅의 후반기 범죄물 가운데 그나마 괜찮았던 장 들라누아 감독의 <매그레 서장, 덫을 놓다(Maigret tend un pi?ge, 1957)>는 벨기에 태생인 조르주 심농(Geroges Joseph Christian Simenon, 1903~89)의 소설이 원작이다. 언론인 출신의 심농은 미국의 해롤드 로빈스와 마찬가지로 부지런한 다작으로 유명한 통속작가다. 하루 60~80쪽씩 글을 써서 장편소설 200여 권에 중편 150여 권을 발표해 전 세계에서 총 5억5000만 부의 책을 팔았으며, 필명이 20여 개라고 한다. 2003년에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벨기에 정부가 기념주화까지 냈으니, 얼마나 유명한 작가인지 짐작이 간다.
그는 쥘 매그레 반장(Commissaire Jules Maigret)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추리소설만도 생전에 103권을 발표했는데, 영화 <매그레 서장, 덫을 놓다>에서 장 가뱅은 20년 경력의 듬직한 명수사관 역을 인상적으로 연기해 내지만, 음악과 미술의 신동이 어머니의 과보호로 인해서 연쇄살인범이 된다는 심리 설정이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아쉬운 작품이었다.
심농의 소설 《고양이(Le Chat, 1967)》는 비교적 중후한 심리물로서 1972년에 영어로 번역되었고, 노년의 장 가뱅은 이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에 주연하여 1971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았다. 그리고 가뱅과 함께 <고양이>에 출연한 50세의 시몬느 시뇨레(Simone Signoret, 1921~85, 본명 Henriette Charlotte Simone Kaminker) 역시 같은 영화제에서 나란히 여우주연 은곰상을 받았다.
가뱅과 시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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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고양이>의 포스터. 장 가뱅과 시몬느 시뇨레는 서로 반목하는 노부부로 분했다. |
증오와 슬픔과 원한은 아내 시뇨레 쪽이 훨씬 강하다. 줄타기 곡예사였다가 사고를 당해 다리를 절게 된 그녀는 억울하고 그리운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힌 포로가 된다. 지난날을 집요하게 따지고 계산하면서 왜 지금은 그들 부부 사이에 미움만 남았는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인생이 짜증스럽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으면 동거하지 못하게 법으로 정해야 한다”고 진심으로 불평한다.
그들 부부에게는 자식이 없어서 삶이 더욱 쓸쓸하고, 가뱅은 아내에 대한 미움을 고양이에 대한 사랑으로 해소한다. 시뇨레는 남편이 자신보다 훨씬 사랑하는 동물과의 경쟁에서 점점 밀려나게 되자 견디다 못해 고양이를 권총으로 쏴 죽인다. 화가 난 가뱅은 가출하여 여관방에서 혼자 지내고, 부부는 공원에서 만나더라도 냉담하게 그냥 지나치며 점점 더 심한 갈등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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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고양이>에서 시몬느 시뇨레는 남편(가뱅)이 자신보다 고양이를 더 사랑하자 고양이를 권총으로 쏴 죽인다. |
도대체 인간은 증오와 냉담한 슬픔으로부터 무엇을 얻는가, 하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끔찍하고도 비참한 황혼 영화 <고양이>에서 가장 심금을 울리는 연기를 보여준 부분을 꼽으라면, 시몬느 시뇨레의 두 눈이 아닐까 싶다. 금방 눈물이 주룩주룩 쏟아질 듯 시커먼 그녀의 눈에는 항상 깊고도 그윽한 우수(憂愁)가 담겼고, 어쩌다 눈물이 조금 비치기라도 했다가는 슬픔의 홍수에 세상이 통째로 가라앉는 듯한 비탄의 느낌까지 준다.
어느 평론가(Philip Kemp)는 시뇨레의 눈을 이렇게 묘사했다.
“젊은 시절의 시뇨레가 발산하던 아름다움과 무르익은 관능미는 은막에서 광채를 낸다. 느릿하고 졸린 그녀의 미소와 두툼한 눈꺼풀은 포근한 침대와 여름의 풀밭을 연상시킨다.”
몽땅 눈동자로만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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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효는 시뇨레가 출연한 <산장의 밤>을 보고 그녀의 눈이 몽땅 눈동자로만 이루어졌다고 착각했다고 한다. |
1940년대 영국의 소도시를 무대로 어느 ‘성난 젊은이(Angry Young Man)’의 이기적인 정신세계를 그려낸 <산장의 밤>은 티오도어 드라이저의 소설 《아메리카의 비극(An American Tragedy)》을 영화로 만든 <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un, 1951)>를 그대로 빼다 박은 듯 비슷한 내용이다. 노동계급 출신이라는 과도한 열등감에 시달리며 ‘윗동네(the Top)’의 돈 많은 사람을 미워하면서도 자신은 부자가 되고 싶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자비한 25세의 기회주의자 청년 로렌스 하비가 주인공이다.
욕구불만에 가득 차 천민의식에 시달리는 ‘촌놈’ 하비는 인상부터가 톰 크루즈처럼 차갑고 이기적이다. “사랑의 척도는 돈과 가문”이라는 철학에 입각하여 부잣집 딸을 임신시켜 놓고는 수치심도 없이 억지로라도 결혼해 출세를 하겠다는 확고한 계획을 집요하게 행동으로 옮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비서와 바람을 피우는 남편의 무관심 속에서 우울하게 살아가는 프랑스인 유부녀 시뇨레를 상대로 욕정의 군것질을 한다.
타인들이 입는 마음의 상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천박하고 잔혹한 젊은이 하비에게서 찌꺼기 행복이나마 누리게 되어 잠시 행복해진 시뇨레. 그녀는 젊은 남자에게서 언젠가는 버림을 받을까 봐 전전긍긍하고, 몇 차례 위기를 거치다가 결국 그들의 늦사랑이 구체적으로 시작된 ‘참새 언덕’에서 자살에 가까운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시뇨레의 죽음에 잠깐 눈물을 비치는가 싶더니 하비는 처음부터 계획했던 대로 부잣집 딸과 결혼하여 소기의 경제적인 목적을 당당하게 달성한다. 아무리 현대적 인간형 가운데 극단적 표본이라고 할지라도, <산>의 못된 동생 로벗 와그너처럼 정말로 나쁜 놈이라는 욕이 저절로 나온다.
독일 태생의 프랑스 여배우 시몬느 시뇨레는 영국 영화 <산장의 밤>으로 미국의 아카데미 주연여우상을 거머쥐는 다국적 이변을 낳았을 뿐 아니라, 칸 영화제에서도 같은 작품으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런 영광의 배후에서는 그리움과 슬픔에 펑 젖은 듯한 시뇨레 눈이 적지 않은 공헌을 분명히 했다. 젊은 다른 여자에게 정신이 팔려 하비의 마음이 자꾸 그녀로부터 멀어지려고 할 때, 거울로 자신의 중년 나이를 들여다보며 우울해하는 장면에서 시뇨레의 뭉그러진 검은 시선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눈여겨보기 바란다.
육중한 탱크를 방불케 하는 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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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년의 시몬느 시뇨레. |
<고양이>와 <산장의 밤>에서 시뇨레가 실제 나이보다 훨씬 많아 보이는 까닭은 아무래도 몸 가꾸기를 지나치게 소홀히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여성 연기자로서의 당연한 의무 수행에 태만하고 관객을 모독했다며 발끈한 사람들은 “여자가 좀 가꾸고 살아야지”라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차원을 넘어, 입이 험한 어떤 평론가들은 그녀를 “늙어가는 권투선수(aging boxer)”나 “여성 말론 브랜도”에 비유하기도 했다.
하기야 그녀는 젊었을 때부터 귀엽고 가냘픈 아가씨 같은 모습을 보였던 적이 별로 없고, 듬직하게 넓은 어깨에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선 기본자세는 육중한 탱크를 방불케 했다. <고양이>에서 그녀는 묵직한 상대역 장 가뱅과 어느 모로 보나 막상막하였고, <바보들의 배(Ship of Fools, 1965)>에서는 그녀보다 겨우 한 살 아래인 상대역으로 설정된 유람선의 전속 의사 오스카 워너의 어머니처럼 보인다.
‘바보들의 배’는 서양 문학과 미술에서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주제다. 1549년 독일 목판화로 확인이 가능하듯이 “어릿광대(fool)들을 가득 태운 배”가 보다 정확한 번역일 듯싶다. 정신 상태가 어딘지 이상한 인간 군상이 키잡이가 없는 배에 함께 타고서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조차 알지 못하며 온갖 해괴한 짓을 벌이는 풍자적 상황을 다루는 고전적 ‘어릿광대’ 주제를 미국의 여성작가 캐더린 앤 포터(Katherine Anne Porter)가 재활용하여 1962년에 발표한 소설이 <바보들의 배>의 원작이다.
시뇨레가 맡았던 역은 세 번의 결혼 경력을 가진 에스파냐 백작부인(La Condesa)으로서, 멕시코 사탕수수 지역의 저항 세력을 돕다가 집이 불타고 경찰에 체포되어 독일 수용소로 이송되는 역할이다. “인생에서 산전수전을 이미 다 겪고 나서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진” 시뇨레는 마약에 중독되어 불면증과 금단현상에 시달리는 막다른 골목의 여인이며, “죽음을 앞두고 만난 사람”처럼 오스카 워너와 짤막한 사랑을 필사적으로 나눈다. 소녀처럼 순수하고 낭만적인 사랑을 하고 싶다는 그녀가 하선하여 수용소로 끌려가기 전에 “한 번만 키스해 줘요, 환한 대낮에”라고 워너에게 부탁하는 작별인사는 전형적인 시뇨레식 사랑의 그늘을 눈물겹게 보여준다.
역경과 우수가 담긴 두 눈에 어울리는 맞춤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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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복의 처녀>에 출연한 로미 슈나이더(왼쪽). 부모를 잃고 기숙사 학교로 간 16세 소녀이자 여교사를 사랑하는 여학생의 역을 맡았다. |
<산장의 밤>이 제작될 때는 지성과 관능의 비극적인 결합을 갖춘 영국의 여배우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프랑스의 시뇨레에게 그 역할이 돌아갔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었는데, 이렇듯 지나치게 짙은 마스카라를 칠한 인상을 주는 시뇨레의 눈은 배역을 결정할 때의 결정적인 기준 노릇을 했다. 훨씬 젊은 시절에 그녀가 출연했던 마르셀 카르네의 영화 <테레즈의 비극(Th?r?se Raquin, 1953)>에서도 시뇨레는 참으로 옹색한 사랑을 하는 비극적인 여주인공 역을 맡았다.
카르네의 영화는 자연주의 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테레즈 라캥(1867)》이 원작으로, 이 작품을 발표할 때 에밀 졸라는 “(주인공의) 성격이 아니라 체질(또는 기질)에 관한 과학적 연구”라고 작품의 성격을 규정했다. 소설의 여주인공 테레즈는 그리스 의사 갈레노스(Claudius Galenos)가 네 가지로 분류한 체질 가운데 ‘우울한(melancholic)’ 유형이다.
테레즈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모의 손에서 불행하게 성장한다. 그녀가 결혼할 나이에 이르자 고모는 노예나 하녀처럼 평생 부려먹기 위해 강제 결혼을 통해 그녀를 아예 며느리로 들여앉힌다. 테레즈가 남편으로 맞는 병약한 사촌은 ‘냉담한(phlegmatic)’ 기질이다.
어머니의 과보호를 받으며 무거운 가방 하나 들어올리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하고 이기적으로 성장한 사촌 남편을 위해서 테레즈는 무료 간호사 노릇뿐 아니라 보호자인 어머니 역할까지 떠맡는다. 그녀의 결혼생활은 당연히 운명적으로 불행하고, 그래서 시뇨레는 강인하고 쾌활한 ‘다혈질(sanguine)’ 화물차 운전사 라프 발로네를 만나자, 살인과 파멸로 곧장 달려가는 불륜의 가도에 돌입한다.
관객은 여배우 시몬느 시뇨레와 주인공 테레즈 라캥은 체질 자체가 똑같다는 사실을 저절로 수긍하게 된다.
시뇨레와 같은 ‘네모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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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루돌프 보겔(Rudolf Vogel)과 함께한 로미 슈나이더. |
그런데 오스트리아 태생이며 흔히 독일인이라고 알려진 스위스 여배우 마리아 셸도 네모난 얼굴이다. 네모난 얼굴은 흔히 독일 여성의 건강미를 상징한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태생인 독일 여배우 로미 슈나이더(Romy Schneider, 1938~82, 본명 Rosemarie Magdalena Albach-Retty)는 얼굴이 네모난 정도가 아니라 큼직한 눈까지도 시몬느 시뇨레를 그대로 빼닮았다.
연기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14세 때부터 배우로 활동한 로미 슈나이더는 독일 영화 <제복의 처녀(M쮙dchen in Uniform, 1958)>를 통해 한국에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최초의 주류 여성 동성애 영화라고 떠들썩하게 꼽히는 1931년 작품을 다시 만든 이 영화에서 슈나이더는 부모를 잃고 기숙사 학교로 간 16세 소녀이자, 여선생 릴리 파머를 미친 듯 사랑하는 순진무구한 여학생의 역을 맡았다.
로미 슈나이더가 제복을 입고 나타났을 때만 해도 동성애는 문명세계에서 더 이상 별로 충격을 주는 주제가 아니었다. 더구나 슈나이더의 사랑은 전혀 육체적인 암시나 뒷맛을 곁들이지 않아서, 감옥처럼 억압이 심한 학교에 새로 부임한 상냥하고 온화한 젊은 여교사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느낄 만한 그런 흠모의 마음에서 크게 벗어나지를 않는다. 그리고 슈나이더가 파머에게 키스를 하는 장면이 영화에 삽입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침실처럼 은밀한 장소에서가 아니라 여교사의 사무실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여서, 병적이거나 더럽다는 인상을 전혀 주지 않는다.
파머 선생으로부터 속옷을 선물로 받았다고 거짓말 자랑을 했다가 문제가 커지는 바람에 슈나이더가 학교에서 징계를 받고 자살소동까지 벌어지기는 하지만, 아무리 봐도 슈나이더는 그냥 눈치가 없을 정도로 순진하고 풋풋한 여고생일 따름이지, 병적인 인물이 전혀 아니다. 아직 이성 간의 ‘자유연애’라는 풍습이 일반화되기 이전이었던 20세기 중반까지도, 우리 주변에서는 정서적으로 일종의 대리만족을 제공하는 동성 간의 이런 깊은 우정이라면, 남자들의 전우애나 마찬가지로, 그리 탓할 만한 흠이 아니었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사는 거짓말쟁이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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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효가 그린 시몬드 시뇨레의 캐리커처. |
이 영화에서 얄개적인 양념 노릇을 하는 헬무트 코이트너 감독의 즐겁고 경쾌한 해설을 들어보면, “실존주의자들의 고향 파리에서는 가난한 사람일수록 하나님과 가까운 곳에서 산다.” 그래서 빨간 양말을 신고 다니는 스무 살 가난뱅이 헝가리 청년 화가 ‘몽프티’ 호르스트 부크홀츠는 지저분한 건물의 옥탑방에서 산다. 영화의 원제인 ‘몽프티’는 “귀여운 나의 남자(mon petit)”라는 프랑스어 표현이고, 부크홀츠는 슈나이더에게 ma petite라는 여성형 애칭으로 화답하기도 한다.
워낙 가난한 부크홀츠는 방세도 내지 못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어 배에서 계속 꼬르륵 소리가 나고, 걸핏하면 정신이 혼미해져서 헛것이 보이는 바람에 늘 악몽과 몽상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그런데 부크홀츠가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로미 슈나이더는 자가용을 굴리는 굉장한 부잣집 딸이라고 자기소개를 한다. 다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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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미 슈나이더의 캐리커처. |
심지어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은 “날씨가 나빠 못 나온다는 말을 해주려고 나왔다”는 거짓말도 한다. 만나러 공원까지 나왔으면서 못 나온다는 말을 하러 나왔다고 우기는 논리가 귀엽다. 그런 식으로 슈나이더는 좋으면서도 토라진 체하면서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투정을 부렸다가, “아무리 여자가 헤어지자는 말을 했다고 해서 정말로 며칠씩이나 공원에 안 나타나면 어쩌느냐”고 따지기도 한다.
부크홀츠는 영화가 거의 다 끝날 때까지 이런 얘기가 모두 거짓말이라고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가난뱅이 처지 때문에 시집을 들고 다니는 고상하고 부유한 아가씨에게 주눅이 든다. 하지만 슈나이더는 어려서 부두노동자였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고아로 성장하여, 지금은 양장점에서 일하며 근근이 먹고사는 소녀다. 그리고 그녀는 함께 일하는 다른 여자들에게 헝가리 귀족 집안의 남자 몽프티와 2년 전에 결혼했으며, 지금은 임신 중이라고 거짓말 자랑을 늘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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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트 로이베릭의 캐리커처. |
슈나이더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서는 아무 저택이나 가리키며 자기 집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제야 의심이 간 부크홀츠가 숨어서 살펴보니 저택으로 들어가는 척하던 슈나이더는 옆 골목으로 빠져나가 그녀가 사는 허름한 하숙집으로 간다. 슈나이더 역시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꼭대기층에 사는 것이었다.
화가 난 부크홀츠는 거짓말쟁이라며 그녀의 뺨을 때리고 택시를 잡아타고는 가버린다. 당황한 슈나이더는 그를 붙잡으러 쫓아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얼마 후에 경찰관이 부크홀츠를 찾아와서는 그의 ‘아내’ 슈나이더가 병원에 입원했다고 알려준다. 몽프티와 결혼했다고 혼자서 상상하던 그녀가 죽은 다음에, 부크홀츠가 병원에 가서 알아보니 슈나이더는 나이가 스무 살이 아니라 열일곱 살이었다. 사랑을 받고 싶어서 온갖 거짓말을 하는 계집아이의 슬픈 얘기가 예쁘고 작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눈부시게 밝은 화면에 펼쳐진다.
현실에서 재연된 들롱과의 삼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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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미 슈나이더와 알랭 들롱이 출연한 영화 <사랑은 오직 한 길>의 포스터. 영화에서처럼 현실에서도 두 사람은 삼각관계로 파혼했다. |
슈나이더는 1962년에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오손 웰스의 야심작 <심판(Le Proc?s)>에서 남자만 보면 더듬기부터 시작하는 웰스의 음탕한 여동생으로 출연하지만, 워낙 쟁쟁한 배우들이 여럿 함께 출연하는데다가 음침하기 짝이 없는 흑백 영화여서 별로 빛을 내지 못한다. 이어서 그녀는 할리우드로 건너가 희극영화 <주인 좀 빌리세요(Good Neighbor Sam, 1964)>에서 잭 레먼과 연기하며 훨씬 날씬하고 세련된 모습을 보이지만, 별다른 개성은 드러나지를 않는다.
<주인>은 1500만 달러의 유산을 받게 된 로미 슈나이더를 도우려고 모범적인 가장 레먼이 그녀의 가짜 남편 노릇을 해주느라 온갖 고초를 당한다는 시끄러운 내용인데, 사회적 비판이나 각별한 예술적 시각을 곁들이지 않은 단순한 희극영화로는 미모의 여배우가 할리우드 명성을 굳히기에 역부족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후에도 슈나이더는 여러 나라에서 많은 영화에 출연하지만 크게 뚜렷한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데, 혹자는 그녀가 젊은 시절의 인기를 계속해서 살려나가지 못했던 이유가 ‘뿌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른바 국제적인 명성을 누린 연기자들은 국적과 활동 무대가 다른 경우, 본국에서 생산한 작품이 해외시장에서 얼마나 인정을 받느냐에 따라 인기의 정도가 결정되는데, 비록 프랑스에서 후반기에 많은 활동을 했더라도 슈나이더는 어디엔가 제대로 뿌리를 박은 정체성이 부족했다는 평이다.
예를 들어 소피아 로렌은 아메리카에서 아무리 활동을 많이 했더라도 이탈리아 여배우로서의 유럽적 정체성을 끝까지 잃지 않았다. 그러나 슈나이더는 오스트리아와 독일, 프랑스 가운데 어느 나라가 ‘뿌리’인지 관객에게 확실한 각인을 시켜주지 못했다.
독일에서만 34편의 영화에 출연한 토박이 독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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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새면 언제나>에서의 로이베릭. 이 작품에서 그녀는 평범한 노란 잠옷을 입은 모습까지도 지극히 매혹적이었다. |
1950년대에 세계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독일 영화들 가운데 하나인 <보리수(Die Trapp-Familie, 1956)>는 마리아 폰 트랍의 회고록이 원작이다. 훗날 로저스-해머스타인의 뮤지컬로 크게 성공한 <사운드 오브 뮤직>의 고전 음악적이고 정서적인 원조이며, 홀아비 해군 장교의 여러 자식을 합창단으로 키워내는 내용을 담은 이 감동적인 영화에 주연했던 헌신적인 모습의 로이베릭은 열녀문 전통을 섬기던 한국에서 삽시간에 인기의 최고봉에 이르렀다.
이어서 폰 트랍 가족 합창단이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한 후일담을 엮은 <속(續)·보리수(Die Trappe-Familie in Amerika)>를 위시하여, 수용소 영화 <철조망(Taga, 1959)>,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사진기자의 외로운 아내가 주인공인 <고독(Franciska)> 등의 로이베릭 영화가 쏟아져 들어와 계속 보증수표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아마도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늘날까지도 가장 잘 기억하는 그녀의 작품은 <날이 새면 언제나(Immer wenn der Tag beginnt, 1957)>일 듯싶다.
그레타 가르보를 보고 여배우가 되려는 꿈을 키웠다는 루트 로이베릭의 매력은 단정하고 말끔한 인상에, 환한 금발의 머리카락과 킴 노박을 연상시키는 엷은 눈썹, 그리고 독일 여성 특유의 건강한 몸매다. <날이 새면>에서 로이베릭은 평범한 노란 잠옷을 입은 모습까지도 지극히 매혹적이었다.
“노래는 천사처럼 잘 부르지만 악마 같은 아이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에 수학과 물리 과목을 가르치려고 나타난 로이베릭은 남학생들만 다니는 이 학교의 유일한 여교사여서, 당연히 주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전에 몸을 담았던 학교에서 그녀는 도둑질을 한 문제 학생을 신고하지 않아 교육위원회로부터 눈총을 받기도 했지만, 알고 보면 대단히 지적이고 유능하며 도전적인 여선생이다.
그녀가 담임을 맡은 졸업반 아이들은 지극히 하찮은 일을 두고 크게 번민하는 나이로서, 다분히 반항적이기는 하지만 심성이 연약하고 착한 학생들이다. 대입 예비고사를 준비하면서도 재즈 악단을 만들어 저녁이면 학교 지하실에 모여 벽에다 베니 굿맨과 진 크루파의 사진을 붙여놓고 음악에 심취하는 그들은, 우선 실력으로 그들의 기선을 제압하고 과외 공부를 시키려고 덤비는 로이베릭 선생에게 “사생활 침해를 받기 싫다”며 처음에는 수업을 거부하고, ‘독약’을 선물로 보내기까지 한다.
불량한 기질이 농후한 청소년을 가르치는 ‘국민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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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이베릭이 출연한 영화 <속(續)·보리수(Die Trappe-Familie in Amerika)> 포스터. 폰 트랍 가족 합창단이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한 후일담을 담았다. |
로이베릭이 하숙을 하는 집에서 공교롭게 같이 살게 된 학생 크리스찬 볼프는 개똥벌레를 고전적이라고 생각하며, 시를 즐겨 쓰고, 지하실 재즈 악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한다. 부모에게 버림을 받다시피 해서 “사람들은 책임도 못 지면서 왜 아이를 낳느냐”고 불평한다. 언제나 상상 속에서 아름다운 꿈을 찾던 그는 <제복>의 로미 슈나이더처럼 여선생 로이베릭을 사랑하는데, 부엌에서 그가 여선생에게 하는 어색한 키스를 보면 슈나이더의 입맞춤보다 훨씬 이성적인 감정이 짙어서 아슬아슬해 보인다. 선생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지만, 어린 학생의 감정은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고 강렬하기 때문이다.
볼프 학생은 결국 세상을 비관하여 권총자살을 시도하지만, 로이베릭에 대한 그의 짝사랑을 절절히 고백해 놓은 일기장이 선생들에게 발각되면서 상황이 복잡해진다. 속옷 사건에 휘말린 <제복>의 슈나이더처럼 로이베릭 선생과 볼프 학생은 궁지에 몰린다. 낡은 사고방식에 항상 적극적으로 맞서온 여교사 로이베릭은 “기성세대가 저지른 잘못의 결과를 왜 오늘의 젊은이가 대신 뒤집어써야 하는가”라고 항의하며, 자신이 학교를 그만둘 테니까 학생을 퇴학시키지 말라고 교육위원회에 요구한다.
그들의 편에서 이토록 씩씩하게 싸워주는 안경잡이 여선생에게 ‘부엉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화해를 청하는 학생들을 대표하여 종이로 만든 평화의 비둘기를 들고 방으로 찾아갔던 반장은 “존경하는 선생을 위해 지나치게 열심히 공부를 하다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지만, 사실 그는 심한 심장병을 앓던 아이였다. 그리고 반장은 그가 죽으면 슬픈 장송곡 대신에 지하실 악단 아이들에게 재즈를 장례식에서 연주해 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로이베릭은 여러 사람을 설득하여 결국 반장의 유언을 관철시키지만, 재즈 장례식을 언론과 교육위원회에서 문제로 삼아 “말썽꾸러기 여교사”는 다시 이리저리 불려다닌다. 장례식에서 학생들이 연주한 ‘밤하늘의 블루스’는 우리 말 가사를 붙여 당시 한국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기도 했었다.
학창영화 <날이 새면 언제나>는 감수성이 강하거나 불량한 기질이 농후한 사춘기 학생들이 다니는 어느 학교에 신임 교사가 부임해 와서 전개되는 전형적 상황을 다룬다. 로빈 윌리엄스의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 1989)>와 시드니 푸아티에의 <언제나 마음은 태양(To Sir, With Love, 1967)>, 그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의식을 담은 글렌 포드의 <폭력교실(Blackboard Jungle, 1955)>, 그리고 슈나이더의 대표작 <제복의 처녀>에 이르기까지 요즈음 관객에게는 매우 익숙한 주제지만, 남자 고등학교에서는 다분히 폭력적인 하향식으로 교육 행태가 일관되었던 195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관객에게는 매우 혁신적인 내용이었다.
1950~60년대는 할리우드에서 청년기의 반항을 주제로 한 영화를 왕성하게 생산하던 무렵이었고, 그래서 루트 로이베릭의 이런 모습은 오영진 각본의 <10대의 반항(1959)>과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1964)>이 선을 보였던 20세기 중반의 한국 관객들에게 가히 영웅적인 우상으로 각인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