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할리우드 키드 安正孝의 ‘별들이 빛나는 이야기’ ③ ‘국민배우’의 원조, 장 가뱅과 김승호

믿음직스럽고 텁텁·구수한 하층민의 자화상

  • 글 : 안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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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뱅, 찌든 삶이 고달프기만 한 비극적 프롤레타리아 역
⊙ 가뱅, 무식한 말투에다 성형수술로 위장한 인위적 얼굴 거부
⊙ 김승호, 이웃에 사는 동네 복덕방 영감 같은 친근한 얼굴
⊙ 김승호, 관객이 흠뻑 공감하여 눈물을 펑펑 쏟게 하는 역할

安正孝
⊙71세.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 《코리아헤럴드》 기자, 《코리아타임즈》 기자·문화체육부장,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 주요 작품으로 소설 《전쟁과 도시》(후에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은마는 오지 않는다》(후에 《銀馬》) 《악부전》 《솔섬》 등이 있다.
    번역서로 《백년동안의 고독》을 비롯해 150여 권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국민 배우’라는 말이 갑자기 유행하는 듯싶더니, 대한민국은 순식간에 ‘국민’투성이가 되어버렸다. ‘국민 여동생’이라는 월계관을 최진실로부터 문근영이 물려받는가 했더니, ‘국민 여동생 탤런트’ 김유정을 비롯해 너도나도 ‘국민 여동생’을 자처하는 난장판이 벌어졌다. ‘국민 어머니’ 김혜자와 ‘국민 엄마’ 김해숙이 경합을 벌이고, ‘국민 누나’가 나오자마자 ‘국민 MC’ 유재석, ‘국민 욕쟁이’ 김용민, ‘국민 밉상’ 김태우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러다가 ‘국민 조폭’과 ‘국민 노숙자’도 나오고, 어물전에서 ‘국민 꼴뚜기’가 날뛰는 꼴을 보게 될까 봐 마음이 심란할 지경이다.
 
  어느 케이블 방송에서 “우리의 국민 목소리는 누구인가?”를 놓고 한참 따진 적이 있다. ‘가요의 황제’니 ‘트로트의 여왕’이니 해가면서 왕족 또한 어찌 그리 즐비할까. 그런데 우리 연예계에서 원조 ‘국민’이라고 해야 마땅할 ‘국민 배우’는 누구일까?
 
  여기서 잠깐. ‘국민’은 본디 국가나 민족을 대표하는 최고의 위상을 나타내는 탐탁한 외국어 형용사 ‘national’을 오역한 표현이다. “민족의 영웅(national hero)”이라는 표현에서처럼 ‘민족적’이라는 의미에 훨씬 가깝다. 그러니까 차라리 북조선식으로 ‘민족 배우’라고 하면 훨씬 이해가 쉽겠다. 할리우드 키드가 기억하기로는 세계적으로 공인된 ‘민족 배우’의 호칭을 들었던 최초의 연기자는 프랑스의 장 가뱅(Jean Gabin·1904~76·본명은 Jean Alexis Moncorg?)이었다.
 
 
  제라르 드파르디외와 장 가뱅
 
장 가뱅이 출연한 영화 <망향>의 한 장면.
  요즈음 프랑스의 ‘민족 배우’라고 일컬어지는 제라르 드파르디외와 장 가뱅은 신기하게도 닮은 곳이 많다. 우선 젊은 시절 강인하고 묵직한 인상을 주던 용모와 두 사람 다 나이를 먹어가며 콧방울이 주먹만큼 커지는 특이한 현상이 그러하고,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의 프랑스 민족성을 아주 잘 나타내는 서민적 보편성의 성향 또한 서로 매우 흡사하다.
 
  카바레 연예인이었던 부모를 둔 가뱅은 19세까지 노동자로 일하다가 모리스 슈발리에의 흉내를 내면서 무대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사실 그는 별로 눈에 두드러지는 매력도 없고 연기력 또한 그리 섬세하지 못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1930년대 후반, 프랑스의 암울하고 비관적인 정서와 분위기 속에서 꿋꿋하게 버티며 나아가는 믿음직스럽고 겸손한 주인공들을 연기해 냄으로써 인기를 다져나갔다.
 
  ‘어두운 영화(film noir)’의 원조라고 할 시적 사실주의(poetic realism) 계열의 고전 명작인 쥘리앙 뒤비비에의 <망향(望鄕, P?p?le Moko, 1936)>에서 가뱅은 프랑스로부터 도망친 범죄자로, 사창가와 술집이 밀집한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토착민 우범지역 카스바(Casbah)에서 숨어 살며 지하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한다. 어느 날 카스바에 나타난 미모의 프랑스 관광객 미레유 발랭을 보고 가뱅은 ‘파리의 지하철’이 상징하는 해방과 자유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 그녀와 짧지만 강렬한 사랑에 빠진다. 카스바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나면 그의 운명은 끝장이 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뱅은 위험한 사랑을 선택, 갈등 끝에 결국 목숨을 잃는다.
 
  영국 작가 그레이엄 그린(Henry Gra ham Greene·1904~91)은 “가뱅의 영화 <망향>을 보고 영감을 얻어 <제3의 사나이(The Third Man)> 시나리오를 썼다”고 언젠가 BBC 방송에서 고백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가뱅의 인기가 상승기류를 탔던 까닭은 인민전선(front populaire)의 붕괴와 정치적인 불안, 그리고 피폐해지는 경제의 와중에서 답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의 금욕적인 표정에서 그대로 우러났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위대한 환상>
 
장 가뱅이 출연한 <위대한 환상>은 해학적인 내용을 담은 반전(反戰) 영화다.
  장 가뱅의 세계적인 명성을 더욱 굳혀준 <위대한 환상(La Grande Illusion, 1937)>의 전반부 3분의 2 가량은 할리우드의 고전 탈출 영화 <제17 포로수용소(Stalag 17, 1953)>와 스티브 맥퀸의 <대탈주(The Great Escape, 1963)>를 방불케 해서,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삼아 프랑스 공군 중위 가뱅이 격추되어 독일군 수용소에 수감된 다음 영국과 소련 포로들과 함께 땅굴을 파는 얘기가 주도한다.
 
  프랑스의 유명한 인상파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아들 장 르누아르가 연출한 <환상>은 도입부에서 퍽 희극적인 전개를 계속하면서도 “아이들은 군인 흉내를 내고, 이제는 군인들이 아이들처럼 노는구나”와 같은 해학적인 비판을 여기저기 곁들여 반전(反戰)영화로 분류되기도 한다. 영화의 신랄한 제목은 본디 영국 경제학자의 저서(《The Great Illusion》, Norman Angell)에서 “전쟁은 백해무익한 ‘엄청난 착각’”이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으로, ‘위대한 환상’이라는 표현은 그야말로 엄청난 착각이라고 하겠다.
 
  전쟁이 너무 길어져서 기진맥진 지친 <환상>의 포로들은 “지루해서 탈출이라도 해야 되겠다”고 농담을 하면서도, <망향>에서의 지하철처럼 튤립과 치즈를 진심으로 그리워하고, 혹시 탈출에 성공하여 고향에 돌아가면 아내와 세상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불안해하기도 한다. 2년이나 걸려 땅굴을 겨우 파놓지만 탈출을 감행하기 직전에 가뱅과 다른 포로들은 새로운 수용소로 허망한 ‘이사’를 한다.
 
  18개월 동안 몇 군데 수용소를 옮겨다니며 굴뚝 청소부, 독일 병사, 여자로 변장하여 다섯 차례의 탈출 시도에서 실패한 끝에 가뱅은 마지막으로 악명 높은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 소장의 수용소로 끌려간다. 귀족 의식이 유별난 폰 스트로하임을 통해 우리는 전쟁으로 인해서 무너지는 신분 사회와 ‘귀족뿐 아니라 평민도 똑같은 질병에 걸리는 평준화,’ 그리고 간수와 포로의 신분을 넘어서는 ‘적과의 우정’ 따위의 복합적인 주제를 접한다.
 
  가뱅은 결국 유대인 장교와 함께 수용소를 탈출하여, 시골 농가에서 한겨울 낭만적인 사랑을 잠시 맛보고는, 하얗게 눈이 덮인 산을 넘어 스위스로 자유를 찾아간다.
 
 
  위화감을 주지 않는 평민적인 얼굴
 
  서민층의 고뇌를 대변하는 민족 배우라면 위화감을 주지 않는 평민적인 얼굴과 더불어, 솔직하고 무식한 통속성이 아마도 우선적인 조건이리라 여겨진다. 성형수술로 위장한 인위적 아름다움의 표준 따위하고는 얼굴의 거리가 무척 멀었던 장 가뱅은 <위대한 환상>에서 “머리가 복잡해지기 싫어 연극은 안 본다”며 무식함을 털어놓아 일반 관객으로부터 동일시 반응을 자극하고, <야수 인간(La B?te humaine, 1938, 영어 제목 The Human Beast)>에서는 기차만을 사랑하는 서민 기관사 자크 랑티에(Jacques Lantier) 역을 맡는다.
 
  하지만 자크 랑티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되는 그런 평범한 인물이 아니다. 랑티에는 느닷없이 발작적으로 살인 충동을 느끼는 불완전 인간이어서, 사랑을 하다가도 무의식적으로 여자의 목을 조르려고 한다. 그는 살인을 저지른 동료 기관사의 하녀 출신 아내 시몬느 시몽과 불륜에 빠진 다음 시몽으로부터 남편을 죽여달라는 청탁을 받지만, 오히려 충동적으로 시몽을 죽이고 자살한다.
 
  장 르누아르가 에밀 졸라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야수 인간〉의 주인공은 “유전적인 폭력성을 타고난 위험한 남자”라고 설정되어 있는데,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인 그의 ‘유전적’ 배경을 이해하려면 족보를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싸운 공로로 무공훈장과 십자전공훈장 받아
 
장안의 화제였던 <현금에 손대지 마라>의 한국판 포스터.
  이상주의적 사회주의자이며 자연주의 문학의 태두가 된 에밀 졸라(쭮mile Fran쮛ois Zola·1840~1902)는 1869~93년 거의 1년에 한 권꼴로 20권에 달하는 《루공-마카르 총서(Les Lougon-Macquart series)》를 발표했다. 정신병자, 술주정뱅이, 불구자 등등 파리의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비정상적인 인간 군상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 총서에서 르누아르 영화의 원작이 된 《수인(獸人)》은 1890년에 출판되었다.
 
  짐승 같은 인간 랑티에는 르네 클레망의 <목로주점(Gervaise, 1956, 소설 제목은 L’assommoir)>에서 마리아 셸이 연기했던 절름발이 세탁부 제르베스에게서 태어난 아들로서, <제르미날(Germinal, 1885)>에서 파업을 주동하는 떠돌이 노동자 에티엔 랑티에와 형제간이고, 졸라의 친구였다가 결국 그 작품으로 인해 결별하고만 화가 폴 세잔을 모델로 삼은 《작품(L’Oeuvre, 1886)》의 클로드 랑티에와도 형제간이며, ‘춘희’처럼 창녀로 사치스럽게 살다가 환멸을 느껴 자살하는 《여우 나나(Nana, 1880)》의 여주인공과는 이복남매간이다.
 
  <야수 인간>과 같은 해에 선을 보인 마르셀 카르네의 시적 사실주의 영화 <안개 낀 부두(Le Quai des brumes, 영어 제목 Port of Shadows)>에서 탈영병 장 가뱅은 암흑가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17세 아가씨 미셸 모르강과 짤막한 사랑을 나누고는 새로운 삶을 찾으러 베네수엘라로 떠나려다가 포기하고 모르강을 구해내기 위해 소중한 목숨을 내놓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가뱅은 할리우드로 건너가 활동을 계속하려고 했다. 하지만 연인 사이가 된 마를레네 디트리히를 함께 출연시키지 않으면 영화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지나치게 고집을 부리다가 미운털이 박혀 구박만 받고는 미국에서의 활동을 접고 프랑스 해군에 입대한다. 그는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용감하게 싸워 무공훈장과 십자전공훈장까지 받았으며 노르망디 상륙을 거쳐 감격적인 파리 입성에도 참가했다. 그래서 가뱅이 사망한 다음 화장한 그의 유해는 군함에서 바다에 뿌려가며 군사적인 예우를 제대로 갖춰 영결식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 영웅이라는 후광은 배우로서의 가뱅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양길로 들어서는 듯싶었던 그가 화려하게 부활한 작품은 <현금에 손대지 마라(Touchez pas au grisbi, 1953)>였다. 제목만으로도 절반은 그냥 먹고 넘어갔던 <현금>은 해양활극 <형제는 용감하였다(All the Brothers Were Valiant, 1953)>와 더불어 1950년대 후반에 장안에서 대단히 활용빈도가 높은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절망 속에서도 왕처럼 행복한 남자”
 
영화 <프렌치 캉캉>의 한 장면. 장 가뱅은 극장식당의 공연기획자로 완숙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현금>은 또한 여름 한낮의 뜨거운 나른함 같은 주제곡으로도 상당히 오랫동안 무척 유명했다. 특이한 점은 영화에서 다른 음악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잔소리 없이 줄거리를 직선적으로 전개하는 조폭영화였기 때문이다. 오를리 공항에서 여덟 토막의 금괴를 훔친 장 가뱅과 친구는 잔느 모로에게서 정보를 입수한 리노 방뛰라 일당과 대결을 벌이는데, 마지막 시골길에서의 총격전이 벌어질 때까지 별로 군더더기 상황을 곁들이지 않고 숨차게 절정을 향해서 치닫는다.
 
  ‘마지막 한 건’을 성공시켜 부하들과 함께 범죄계로부터 영원히 행복하게 은퇴하려고 꿈꾸었던 가뱅의 낭만적인 계획은, 프랭크 시나트라를 포함한 5인의 ‘쥐떼(the Rat Pack)’가 찬란한 주연을 맡았던 루이스 마일스톤의 <오션과 11인의 전우(Ocean’s 11, 1960)>와 비슷한 결말로 허망하면서도 우스꽝스럽게 끝난다. 떼죽음과 대량학살로 점철된 비디오 게임 수준의 요즈음 멍청 영화들과는 달리 단 한 번의 총질만으로 대단한 긴장감을 쏟아내는 <현금에 손대지 마라>는 범죄와 조폭의 미화작업을 도모하려는 영화인들에게 참으로 볼 만한 ‘어두운 영화’의 교과서 노릇을 하리라고 믿어진다.
 
  <현금>의 마지막 장면에서, 불타는 차에 남겨둔 금괴가 몽땅 경찰의 손으로 넘어가 일확천금의 꿈이 수포로 돌아간 다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 식당에서 밥을 먹는 가뱅의 모습은 느긋하기 짝이 없다.
 
  장 가뱅은 <현금>보다 대중예술에 대한 장 르누아르의 솔직한 시각이 담긴 <프렌치 캉캉(French cancan, 1954)>에서 훨씬 더 느긋하고 완숙한 모습을 보이며 묵직하게 무게를 잡는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1890년대 파리에서 극장식당을 경영하는 공연기획자 가뱅은 애인 마리아 펠릭스의 배꼽춤이 인기를 잃어 손님이 자꾸 줄어들자 젊은 프랑수아즈 아르눌을 새로운 인기 연예인으로 키워 밤무대에 세우려고 한다. 요즈음 한국 연예기획사들의 행태를 어딘가 조금쯤 닮은 가뱅의 처사에 화가 난 펠릭스가 보복작전에 나서 야간업소의 돈줄인 남작을 부추겨 자금을 회수하게 만들고, 궁지에 몰린 가뱅은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식당을 사들여 “부자들이 비싼 샴페인을 마시며 춤을 구경하느라고 돈을 펑펑 쓰게 만들기 위해” 물랭 루주(Moulin Rouge ·붉은 풍차)로 신축 개장하고, 이곳에서 캉캉 춤을 명물로 포장하여 떼돈을 벌기 시작한다.
 
  “숯장수나 연금을 타먹는 공무원”의 안정된 삶을 부러워하면서도 무대예술을 위해서라면 사랑조차 우습게 여기고 팽개치는 가뱅, “절망 속에서도 왕처럼 행복한 남자”라고 자처하는 가뱅이 마지막 장면에서 무대 뒤에 혼자 앉아 흐뭇해하며 발로 음악에 장단을 맞추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던 <캉캉>은 춤과 음악이 뚤루즈-로트렉의 그림처럼 화려하고 경쾌하지만, 할리우드 키드는 오줌 냄새가 진동하는 동네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어린 나이에 무척 화가 나고 슬프기도 했었다.
 
 
  노동자에서 중년 신사로
 
  한국전쟁 직후의 누추하고 궁핍했던 우리의 현실에서 보면 자유분방한 파리의 생활이 분명히 동경의 대상이기는 했으나, “다른 나라 사람들은 저토록 행복해 보이는데 우리 민족은 왜 이렇게 너저분한 삶을 살아야만 하는가” 억울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파리로 유학을 간다”는 표현이 마치 지고한 꿈의 실현이라고 여겨지던 시절의 얘기다.
 
  암울한 1930년대에는 찌든 인생이 고달프기만 하던 비극적 프롤레타리아 역을 맡아 해내기에 썩 잘 어울리는 매력적 남성상의 얼굴을 갖추었던 장 가뱅은 전쟁이 끝나고 너도나도 행복해지기에 바쁜 시대로 접어들자 갑자기 수요가 줄어들어 은막에서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렇지만 그는 <현금에 손대지 마라>에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하는 노련하고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새로운 시대의 프랑스인들을 대변하게 되었다. 그는 사회적인 이단자나 범죄자, 그리고 노동자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시대의 흐름을 따라 이제는 막강한 기업인이나 변호사나 금융업자나 의사처럼 전문 직종의 중년 남자로 변신했다.
 
  그리고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가뱅은 점점 더 풍족하고 행복해지는 프랑스인들의 표본으로서 느긋하게 노년을 즐기는 사람들의 역을 맡아 희극영화로까지 진출했다.
 
  ‘민족 배우’ 또는 ‘국민 배우’란 이처럼 어느 한 민족의 변천하는 모습을 한평생에 걸쳐 제대로 반영하여 에스프리(esprit)라는 정신적인 생명체의 한살이를 창조하는 연기자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 오역하여 잠시나마 인기가 오르는 아무 연기자에게나 적용하느라고 함부로 남용하는 ‘국민 배우’의 명칭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쩐지 낯 간지러운 느낌이 든다.
 
 
  텁텁·구수한 서민적 매력
 
안정효씨가 그린 장 가뱅의 캐리커처.
  프랑스의 장 가뱅처럼 한 시대와 민족의 초상을 집약적으로 그려낸 한국 연기자로는 김승호(金勝鎬·1918~ 1968)를 꼽기에 서슴거려야 할 필요가 없겠다. 겨우 50의 나이로 타계했으면서 70~80대 노인층까지 자연스럽게 대변하여 당시에는 아직 생겨나지도 않았던 표현인 ‘국민 배우(=민족 배우)’ 노릇을 제대로 했다. 그런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국내 일간지의 문화면이 아니라 예외적으로 사회면에서 큰 지면을 차지하여 그의 ‘국민적’ 위상을 굳혀주기도 했다.
 
  영화 제작에 손을 댔다가 빚을 져 부정수표 단속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던 김승호는 뇌일혈로 쓰러져 병보석으로 풀려나 집에서 고혈압 치료를 받던 중에 “억울하다”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했는데, 언론에서는 그를 “이웃에 사는 동네 복덕방 영감 같은 친근감과 텁텁·구수한 서민적 매력”을 지닌 연기자라고 평가했다.
 
  그는 1935년 동양극장 전속 청춘좌(靑春座)에 연구생으로 입단하여 극단 신협을 거치며 25년간 무대 활동을 한 다음, 영화에는 광복한 이듬해 제작된 <자유만세>에서 독립투사로 처음 출연했고, 10년 후 1956년에는 1944년 초연된 오영진의 희곡 <맹진사댁 경사>를 영화로 만든 <시집가는 날>에서 딸의 결혼식에 하녀로 신부를 바꿔치기했다가 낭패를 보는 졸부형 욕심꾸러기 영감 역으로 인기를 굳히고는, 총 234편의 작품에서 얼굴을 보였다.
 
  하지만 그가 출연한 수많은 영화는 어딘가 단 한 편의 작품으로 집약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천편일률적이어서 재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김승호 영화’는 대한민국 서민의 모습에서 공통분모를 집약한 한 폭의 초상화였다. 그러니까 김승호가 맡았던 역할들은 서로 매우 비슷하지만, 당시의 한국 관객은 김승호 영화들을 지루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비슷한 영화를 반복해서 보고도 국민이 지루해하거나 따분하다고 불평하지 않고 감동을 끊임없이 받았던 당시 한국 사회문화의 현상에는 그럴 만한 배경이 바탕에서 작용했다고 해야 이해가 빠르겠다. 초기의 장 가뱅이나 마찬가지로 늙수그레한 고집불통 영감 김승호는 ‘서민을 대표하는 배우’였다. 문제는, 1950~60년대의 한국인은 거의 모두가 너도나도 먹고살기조차 힘든 슬픈 서민이었고, 그래서 그들은 한없이 쌓이는 슬픔을 해소하기 위해 서럽고 비슷비슷한 영화를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눈물샘이 지칠 줄을 몰랐다.
 
 
  “니가 박사라면 나는 박사 핼애비다”
 
김승호의 캐리커처.
  할리우드 키드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에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명랑소설 《얄개전》으로 유명한 조흔파가 원작을 쓴 <서울의 지붕 밑(1961)>을 보면, 김승호는 30년 관록의 한의사이며 건물을 임대할 정도로 생활이 넉넉하고 나중에 시의원으로 출마까지 하는 ‘골목 유지’다. 영화 후반부에 가면 그의 아내 한은진이 쪼개진 바가지를 바늘로 꿰매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는 플라스틱이 널리 보급되기 전이어서, 쉽게 깨지는 바가지를 이렇게 양말처럼 꿰매어 다시 사용하는 것이 매우 낯익은 장면이었고, 그래서 깨진 쪽박에 대한 속담이나 우스갯소리도 퍽 많았다.
 
  “새로운 시대와 낡은 시대가 어깨를 겨누고 사는 좁은 골목 안에서는 서울의 꿈과 사랑과 웃음과 눈물이 함께 숨을 쉬었다”는 상냥한 해설로 시작되는 영화 <지붕 밑>에서는 널빤지 울타리를 두른 기와집 동네의 “요지경 세상”은 퍽 다채로우면서도 당시 대도시 어디를 가나 흔히 눈에 띄는 그런 ‘천편일률’ 풍속도를 이루는 곳이었다.
 
  모시 적삼에 부채를 든 ‘심술의 권위자’ 김승호 영감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앞집 2층에 산부인과를 차려놓은 양의사 김진규 때문에 30년 활동의 터전에서 위협을 받자 “니가 박사라면 나는 박사 핼애비다”라고 소리치며 김 박사를 “감옥소에 집어넣겠다”고 벼른다. 하지만 홀아비 김진규는 한약국 2층에 미장원을 차려놓고 “머리에 인두질을 하는” 전쟁미망인이요 김승호의 딸인 최은희와 날이면 날마다 눈길을 주고받으면서도, 마음대로 연애를 못 하고 누가 두 사람의 중신을 서기만 하염없이 기다린다. 주요섭 원작의 애절한 신상옥 문예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확인이 가능하듯 이때만 해도 한국사회는 점잖은 집안이라면 열녀의 체면 때문에 과부의 재혼을 호락호락 용납하지 않았었다.
 
  김승호의 한약방 ‘건물’에는 빈대붙기를 상습적으로 즐기는 가난뱅이 김희갑 영감이 세를 들어 차려놓은 복덕방이 훈수 두고 뺨 맞기 장기판 사교장 역할을 한다. 같은 집 다른 방에 세를 들어 ‘운명감정사’ 사무실을 차려놓은 점쟁이 허장강은 “인도 철학을 전공했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해 가며 손님을 끌고는 하는데, 어느 날 몰래 바람을 피우다 그만 마누라한테 걸려 골목이 떠나갈 듯 시끄러운 부부싸움이 벌어진다.
 
  이렇게 골목에서 집안싸움이 한바탕 벌어지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문 밖에 둘러서서 구경을 한다. 장마철에 한강이 범람하면 강변으로 몰려가서 물구경을 하고, 어디 불이 났다 하면 불구경을 쫓아다니던 시절의 얘기다. 텔레비전이 보급되지 않아 약장수와 곡마단 말고는 볼거리가 별로 없었던 그때는 할리우드 키드에게도 물구경, 불구경이 가장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였다.
 
  골목 안 대폿집 여주인 황정순의 딸 도금봉은 처녀의 몸으로 임신 4개월이 되었는데, ‘속도위반’의 범인 신영균은 김승호의 외아들로서 대학을 나오고도 취직이 되지 않아 셋방 하나 얻을 돈이 없어 상황을 질질 끌다가 문제가 복잡해지고 말았다. 그래서 착한 아들 신영균은 약국의 인삼을 이웃 아줌마에게 몰래 팔아먹고 대신 도라지를 채워 넣은 다음 그 돈을 꿍쳐가지고 가출하여 도금봉과 단칸방에 살림을 차린다. 이렇게 겨우 초라한 신혼살림을 시작한 신영균이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돈을 몇 푼 벌어오면 도금봉은 풍로에 국을 끓이면서 한심할 정도로 행복해한다.
 
  한밤중에 시경 ‘풍기 단속반’에 쫓겨 집으로 들이닥친 젊은 여자(매춘부)를 방안에 숨겨주었다가 오해를 받은 김승호는 마누라로부터 “굶겨 죽이겠다”는 협박을 당하고는 쫄쫄 굶으면서, 아들이 바꿔치기한 도라지로 겨우 연명하기도 한다. 참으로 정상적인 콩가루 집안이다.
 
 
  완고한 영감탱이, 원시적 가부장 심통
 
영화 <박 서방>에서 김승호는 ‘완고한 영감탱이’로 분(扮)한다.
  완고한 영감탱이 김승호의 원시적 가부장 심통은 구공탄 아궁이를 고치는 전문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박 서방(1960)>에서 고전적 가관의 차원에 이르러, “누가 날 욕해? 나만 보면 좋다고 술들만 잘 사는데”라고 우기기까지 한다.
 
  적삼 차림에 고무신을 끌고 술을 마시러 다니는 박 서방은 “딸년들 입 맞추고 돌아다니는 꼴”을 못 보겠다며, 연애를 하는 현장을 들키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는 조미령과 엄앵란의 바깥나들이를 단속하느라고 목숨을 걸다시피 한다. “요새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자주 만나야 한다”는 아들 김진규의 설득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김승호는 엄앵란이 직장 동료인 애인을 소개하려고 집으로 데려오자 “내일부터 회사 그만둬”라는 억지를 부린다. 또 딸의 남자친구가 좀처럼 물러나지 않으려고 하자 “안 나가? 그럼 내가 나가지”라며 휑하니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그리고 “머리를 쓰는 사람은 가끔 휴식도 취해야 한다”며 등산을 가려는 엄앵란과 애인을 감시하려고 북한산까지 쫓아 올라가며 이렇게 호통친다.
 
  “나도 구공탄 아궁이 때문에 머리 많이 쓰니까, 같이 가자.”
 
  목욕탕을 가지 않고 마당에서 목물을 하는 박 서방의 이러한 제자리걸음 유아독존은 차츰 시대적인 가치관의 변화로부터 도전을 받기 시작한다. <박 서방>뿐 아니라 여러 국산영화에서 노스웨스트 항공사의 포스터가 걸핏하면 발전과 번영의 시작을 상징하는 시대적 소품으로 나타나고, 똑같은 이유로 ‘기술본위 드라이크리닝’ 간판이 골목에 나붙고, 타자수 엄앵란과 운전기사 황해의 직업이 아궁이 전문가보다는 선망의 대상이 되는 선진화 속에서 서민층의 가치관은 필연적인 혼란에 빠진다.
 
  홍차를 까서 먹으려는 박 서방이 미국 물을 비교적 많이 먹은 사돈 여편네한테 면박을 당하고, 보아하니 뇌물로 받았겠지만 “선물로 들어왔다”며 중산층 여자가 “몸에도 좋다는 귀한 양주”를 대접하는 계몽단계를 거쳐, 새 시대에 차차 익숙해지면서 박 서방은 해외 지사로 5년 동안 나가서 일하게 된 아들과의 이별을 미래지향적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국가의 시대상을 온몸으로 연기
 
강대진 감독의 영화 <마부>의 한 장면. 김승호는 자기희생적 아버지상을 보여주었다.
  굵은 민족 배우는 이렇게 한 국가의 시대상을 온몸으로 연기하고, 그래서 김승호는 ‘김승호 영화’라는 하나의 새로운 유형(genre)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전후의 폐허를 앙상한 뼈다귀처럼 드러낸 길거리로 촬영기를 들고 나간 비토리오 데 시카의 신사실주의(neorealismo) 화면을 짙은 흑백으로 강렬하게 연상시키는 강대진 감독의 <마부(1960)>에서 김승호는 가족의 붕괴가 이루어지기 직전의 마지막 초라한 가부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못된 바람둥이 남편에게 걸핏하면 매를 맞고 집으로 쫓겨 오다가 결국 투신자살을 하는 벙어리 딸 조미령, 싸움질을 일삼더니 결국은 도둑질을 하다가 경찰에 체포되는 말썽꾸러기 고등학생 막내아들, 취직을 못 해 백수 신세로 살아가는 큰아들 신영균, 그리고 마부의 딸이라고 천대를 받기 싫다며 반항의 길로 들어서는 엄앵란-이들을 거느리고 판잣집에서 고된 삶을 살아가는 홀아비 박 서방은 ‘싸이도카(sidecar, 요즘으로 치자면 용달차나 소형 화물차로 쓰이던 삼륜차)’의 등장에 밀려 앞날이 참담한 마차꾼이다.
 
  <박 서방>에는 촌스러운 한복을 입은 엄앵란이 멋진 양장을 한 친구 최지희에게 “이 꼴을 해가지고 내가 너하고 어떻게 같이 다니니?”라고 창피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고는 다방 아가씨로 일하던 엄앵란은 하류 인생을 벗어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부잣집 딸이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돈 많은 남자를 사냥하려는 속셈으로 최지희의 양장을 빌려 입고, 뾰족구두를 신고 걸음걸이를 연습한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의 서양문화에 갑자기 노출된 한국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한 폭의 풍속도다.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우리 농촌에서는 시골 아가씨들이 멋쟁이 서양 뾰족구두를 신고 진흙에 뒷굽이 푹푹 빠져가며 논둑을 힘겹게 걸어가는 진기한 풍경을 종종 구경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박 서방>에서는 요즘의 운수회사 사장이나 마찬가지인 마주(馬主)의 횡포에 맞서 마부들이 저항하려는 노사분규의 싹이 피어나는 과정도 엿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힘겹게 살아가던 박 서방 일가는 맏아들 신영균이 세 번의 실패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한꺼번에 모두 팔자를 고친다는 간편한 종결을 맞아 환한 미소를 짓는다. 과거 시험에서 장원급제를 하여 한 방에 팔자를 고친다는 조선시대의 신화가 로또 복권 한 장으로 만사를 해결한다는 요즈음 풍토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우리 국민이 어떻게 황금만능주의 학습을 시작하는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영화 <돈>과 <노다지>
 
영화 <노다지>는 돈 앞에 간교해지는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돈에 대한 탐욕을 그린 1958년 김승호 영화는 제목이 아예 <돈>이다. 착한 시골 농부 김승호는 빚에 쪼들리다 추수한 쌀 두 가마를 팔아 겨우 현금을 좀 마련하지만, 최남현의 꾐에 빠져 그 돈을 몽땅 노름판에서 잃고 만다. 농사가 너무 힘들다고 생각한 김승호는 “우린 정직하고 고지식해서 못 사는 모양”이라고 판단하고는, 소를 팔아 다시 마련한 자금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가 구호물자 장사를 해서 보다 쉽게 돈벌이를 시도하지만,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서울 바닥에서 전택이와 노경희 사기단을 만나 다시 가진 돈을 몽땅 날리고 귀향한다. 그리고 길바닥에서 주운 돈에 욕심을 내던 그는 결국 살인자가 된다.
 
  <돈>과 주제와 구도가 비슷하면서, 문예영화의 언저리까지 근접할 만큼 자연주의 냄새가 짙고, 그리고 또한 황금 탐욕 주제의 고전인 <시에라 마드레의 황금(The Treasure of the Sierra Madre, 1948)>을 곳곳에서 연상시키는 <노다지(1961)>에서 김승호는 “사람으로 치지도 않았던” ‘금쟁이’로 나온다.
 
  황금에 미쳐 김승호가 20년간 허장강과 함께 산속을 헤매는 동안 아내 조미령은 철도에서 기차가 흘리고 간 석탄을 주워다 팔아 겨우 연명하다가 열차에 치여 죽는다. 김승호는 남의 집에서 ‘부엌강아지’가 된 딸 전영선을 업고 산으로 올라갔다가, 어린 자식이 너무나 거추장스러워 죽일 생각까지 하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야산에 버리고는 다시 황금 찾기를 계속한다.
 
  드디어 사금을 배낭으로 하나 가득 발견한 그는, 서부의 개척자 데이비 크로켓(Davy Crockett) 옷차림에 엽총을 메고, 꿈에도 그리던 문명세계로 돌아온다. 이제는 여성 칼잡이 날강도로 성장한 딸 엄앵란을 찾고, 온갖 고초를 같이 겪은 다음, 사금을 발견하자마자 죽은 허장강의 아들 황해에게 황금의 절반을 나눠주기 위해서다. 돈과 황금 앞에서 간교해지는 온갖 인간 군상에 섞여 가짜 딸과 사기꾼들이 김승호의 주변으로 꼬여 들면서 영화는 갑자기 한국의 현실과는 좀처럼 이가 맞지 않는 말랑드라마로 바뀐다.
 
 
  전후의 한 세대를 대표하여 혼자서 찍은 단체사진
 
김승호가 출연한 영화 <서울의 지붕 밑>의 한 장면.
  또 다른 탐욕 주제의 영화 <인생차압(人生差押, 1958)>은 광복 직후 친일파 모리배들의 행태를 풍자한 오영진의 희곡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1949)》를 영화로 만든 작품으로, 김승호는 국유림을 차지하기 위한 공문서 위조, 사기, 횡령, 탈세 따위의 온갖 비리를 저지르다가 재산을 빼돌리고 위장 자살을 하지만, 뒤따라 벌어지는 한심한 상황에 낙담하여 진짜로 자살을 하기에 이른다.
 
  대한민국이 전쟁의 충격으로부터 점차 벗어나고 산업화를 거치며 조금씩 피어나는 살림에 피아노와 자가용이 일종의 신분증 노릇을 하고 서민들이 조금이나마 행복감을 느끼는 시대적 배경을 담은 <로맨스 빠빠(1960)>는 출연 배우들의 구질구질하던 옷차림부터가 <박 서방>이나 <마부>와는 달리 말끔해지고, 김승호와 주증녀 슬하의 세 딸과 두 아들은 하나같이 효자다. 그리고 “돈과 시간과 자유를 달라”고 구호를 외치는 자식들에게 권위주의를 앞장서서 열심히 타파하는 아버지 김승호가 외친다.
 
  “그런 건 내게도 없다.”
 
  같은 신상옥 감독의 작품 <로맨스 그레이(1963)>는 <로맨스 빠빠>와 언뜻 같은 맥락으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축첩 관행을 낭만으로 해석하는 시각은 ‘황혼 이혼’이 신혼 이혼보다 훨씬 많아진 요즈음 감각으로는 대단히 시대착오적이다.
 
  김승호-황정순-최은희의 공감시대에 쏟아져나온 한국영화는 일종의 맞춤형 대량생산 제품이어서, 관객이 흠뻑 공감하여 눈물을 펑펑 쏟고는 마음이 후련해져서 집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주로 했었다.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려는 그런 목적으로 인해 수많은 한국의 희극영화는 <서울의 지붕 밑>이나 <박 서방>도 예외가 아니었지만,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느닷없이 갈팡질팡 우울하고 비극적인 용두사미 전개로 쏠리곤 했었다.
 
  가난과 신분과 지적 수준이 전쟁의 파괴력으로 인해 <위대한 환상>에서처럼 자연스럽게 평준화했던 김승호 시대에는 전체가 부분에 공감하기가 어렵지 않은 세상이었고, 그래서 지나치게 똑같은 판에 박힌 안이한 화법으로 영화예술 제품들이 깊이를 잃는 폐단 또한 생겨났다.
 
영화 <로맨스 빠빠>의 한 장면과 포스터.
  <로맨스 빠빠>에서도 후반부로 접어들면 김승호가 “후진들을 위해 물러나 달라”는 요구를 받고 보험회사에서 쫓겨난 다음, 출근하는 체하며 친구들의 회사를 찾아다니며 구명활동에 나서고, 그래도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까 파고다 공원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 ‘퇴근’을 하는가 하면, 회중시계를 팔아 월급이라며 아내에게 갖다주는 비극적 분위기로 급선회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온 가족이 눈물을 흘리는 대신 합심하여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훨씬 더 행복한 종결을 창출해 낸다.
 
  한 권의 소설처럼 줄거리가 이어지기보다는 저마다의 장면이 독립된 삽화로 기능 하는 사진첩과 같이 여러 토막의 일화가 줄지어 연결되는 <로맨스 빠빠>에서는 ‘밤손님’ 주선태가 등장하는 짤막한 장면이 퍽 우뚝하다.
 
  쫄망쫄망한 자식이 열둘을 헤아리는데 마누라는 다시 만삭이 되었고, 20년 수위로 일하던 직장까지 잃고 난 주선태는 미역을 구할 길이 없어 초보 도둑질에 나선다. 그리고 몰래 훔친 맥주를 함께 나눠 마신 김승호가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도둑이 아니라 집주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허겁지겁 도망치는 도둑 주선태에게 김승호가 “미역 가지고 가!” 소리치며 골목길을 쫓아가는 장면은 얼마 전이었다면 자연주의 비극의 형태를 갖추었겠지만, 이제는 희극적인 양념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이제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가 아니라 웃어가며 슬픈 얘기를 할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김승호는 고달프기 짝이 없었던 전후의 한 세대를 대표하여 혼자서 찍은 단체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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