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가르보의 무표정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신비를 만들어 내는 비결이었다는 의미다. 말하자면 그녀의 얼굴은 인생 역정이 빚어 낸 예술품이었다.
⊙ 가르보는 할리우드 몽환산업이 창조한 대표적인 ‘환상 제품’
⊙ 말도 안 하고 웃지도 않는 가르보의 매혹적인 면모는 남성적인 신비감
⊙ 헵번은 “여자는 아이를 낳지 않아야만 제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다”며 결혼하지 않아
⊙ “사람들은 나를 무슨 오래된 건물처럼 좋아하게 되었다”(헵번)
安正孝
⊙ 71세.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 코리아헤럴드 기자, 코리아타임즈 기자·문화체육부장,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 주요 작품으로 소설 《전쟁과 도시》(후에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은마는 오지 않는다》(후에 《銀馬》) 《악부전》 《솔섬》 등이 있다.
번역서로 《백년동안의 고독》을 비롯해 150여 권이 있다.
⊙ 번역가협회 제1회 번역상, 자랑스런 서강인, 제3회 김유정 문학상 수상.
⊙ 가르보는 할리우드 몽환산업이 창조한 대표적인 ‘환상 제품’
⊙ 말도 안 하고 웃지도 않는 가르보의 매혹적인 면모는 남성적인 신비감
⊙ 헵번은 “여자는 아이를 낳지 않아야만 제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다”며 결혼하지 않아
⊙ “사람들은 나를 무슨 오래된 건물처럼 좋아하게 되었다”(헵번)
安正孝
⊙ 71세.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 코리아헤럴드 기자, 코리아타임즈 기자·문화체육부장,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 주요 작품으로 소설 《전쟁과 도시》(후에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은마는 오지 않는다》(후에 《銀馬》) 《악부전》 《솔섬》 등이 있다.
번역서로 《백년동안의 고독》을 비롯해 150여 권이 있다.
⊙ 번역가협회 제1회 번역상, 자랑스런 서강인, 제3회 김유정 문학상 수상.
옛날식 기차가 역으로 들어오자 기관차에서 구름처럼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가 화면에 가득 차고, 관객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기차가 멈춘 다음 ‘안개’가 걷히면서, 어느새 기차에서 내렸는지 승강단에 홀로 선 가르보의 상반신 모습이, 얼굴부터 먼저, 그중에서도 반쯤 감은 듯 신비한 눈부터 먼저, 서서히 가시적인 현실로 나타난다. 그리고 젊은 미남 청년 장교 우론스키는 남편과 아들까지 둔 유부녀 여주인공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이 장면은 잠시 후에 다시 반복된다. 안나 카레니나의 올케이며 그를 열렬히 사랑하는 애인(타잔 영화의 ‘제인’ 역으로 유명한 모린 오설리반)을 버리고 우론스키가 여주인공을 다시 보고 싶어서 같은 열차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쫓아가는 도중, 눈보라가 휘날리는 어느 간이역의 승강단에서도 똑같은 점진적 노출 공식이 그대로 재활용된다.
많은 경우에 가르보를 신비화하는 작업은 이렇게 노골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똑같은 점진적 노출공식
![]() |
| 영화 <마타하리>에서 그레타 가르보. 그녀는 파리의 물랭루주에서 나체춤을 추던 요염한 무희로 연기했다. |
가르보의 환상은 몸 전체가 아니라, 얼굴에 집중되었다. <그랜드 호텔(Grand Hotel, 1932)>에서 그녀는 보석을 훔치려고 접근하는 도둑 존 배리모어와 비극적인 사랑에 빠지는 발레리나 역을 맡았다가 “무희 치고는 몸집이 지나치게 크다”는 평을 들었다. 그런가 하면 <크리스티나 여왕(Queen Christina, 1933)>에서 그녀는 정략결혼을 하기가 싫어서 남장(男裝)을 하고 도피행각을 벌이는데, 이 영화를 보면 그녀에게서는 ‘여인’이 아니라 오히려 ‘남성’적인 신비감이 더 강하게 풍긴다. 요즈음 여배우로서는 중성적인 인상이 황량할 정도로 강한 글렌 클로스가 바로 그런 경우다.
전형적 북유럽형인 가르보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면, 무성영화 시대의 유물인 게이샤 눈썹, 조금은 게슴츠레하고 그윽한 눈과 칼날처럼 예리하고 우아한 코, 그리고 크면서도 얇은 입술이 어딘가 동양 난초를 연상시키면서도 서양의 석고상을 닮았다. 루돌프 발렌티노와 더불어 인간이 아닌 우상으로서 숭배를 받았던 가르보는 전설을 넘어 신화의 올림포스에 여신으로서 자리를 잡았고, 그래서 핏줄 속에서는 생명이 흐르지 않는 듯싶었다.
그렇다. 가르보의 매혹적인 면모는 그녀에게서 은근히 풍기는 남성적인 신비감에 크게 의존했다. 그녀는 천사였다. 하지만 서양의 개념에서는 천사가, 우리나라의 ‘선녀(仙女)’와는 달리, 여성이 아니라 중성에 가까우며, 페터 한드케가 각본을 쓰고 빔 벤더스가 감독한 <베를린 천사의 시(Der Himmel 쮒ber Berlin, 1987, 영어 제목 Wings of Desire)>에서처럼 남성인 경우도 많다.
가르보에게 홀렸다가 정신을 차리면 어떤 기분?
좀 이상한 비유를 하겠다. 지나친 기대감을 가지고 불안하고도 미숙하게 치르는 첫 성경험에 관한 고백을 들어 보면, 많은 경우에 허탈감과 허무감과 멋쩍은 후회 따위의 감정을 수반한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첫 경험을 하고 나서 이튿날 아침이 되어 잠에서 깨어나 보니, 상대가 중성이나 남자였다면 어떻겠는가? 가르보에게 홀렸다가 정신을 차리면 그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다.
1999년에 미국영화협회(the American Film Institute, AFI)에서 그레타 가르보를 캐서린 헵번, 베티 데이비스, 오드리 헵번, 잉그리드 버그먼에 이어 20세기의 다섯 번째로 위대한 여배우라고 선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상 연기 부문에서 가르보가 네 차례 후보에만 올랐을 뿐 단 한 번도 받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엄청난 인기와 매력에 도취되었던 심사위원들이 막상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뜯어보니까 가르보의 위대성은 신화적인 환각일 따름이요, 예술적인 ‘명(名)연기’ 때문은 아니었다는 현실을 깨달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안나 카레니나는 그레타 가르보가 가장 잘 연기하면서도 가장 싫어했던 그런 유형의 역이었다. 안나는 부도덕한 여주인공으로서, 불륜을 저지른 오빠의 부부싸움을 말리러 모스크바로 왔다가 자신이 불륜에 빠지면서, ‘가장 불행해지거나 아니면 가장 행복해질지도 모르는’ 운명적 사랑을 시작한다. 결코 이혼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남편 카레닌(악역으로 유명했던 배질 래트본)과 극진히 사랑하는 아들(한때 아역배우로 명성을 날렸던 프레디 바톨로뮤)을 버리고 베네치아로 알렉세이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인 그녀는 곧 죄의식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남들의 입방아와 손가락질과 눈총 때문에 사교생활은커녕 마음 놓고 극장에도 못 가고, 세상을 등지고 숨어서 단 둘이 놀기만 하면서 살아가는 불안한 사랑이라면 무엇인가 부족하게 마련이고, 결국 남자는 “재미가 없는 사랑에 지쳤다”면서 그리운 군대로 돌아가 전쟁터로 떠난다. 생일에도 만나지 못하는 아들과 술을 퍼마시며 고성방가를 즐기는 군대―서로 방향이 다른 그리움 때문에 절망에 빠진 나머지, 남자는 떠나고 여자는 기차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참으로 ‘고전(古典)’적인 종결이다.
한번쯤 가져 보고 싶은 여자
![]() |
| 가르보는 영화 <춘희>에서 극장이나 도박장에서 돈 많은 한량들을 사냥하는 부나비 같은 존재로 등장한다. |
세계 각처에서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여러 번 영화로 제작된 <춘희>는 우리나라에서도 1928년 이경손(李慶孫) 감독의 무성영화를 비롯하여, 1959년 신상옥(申相玉) 감독에 최은희(崔銀姬)와 김석훈 주연으로, 그리고 1967년에는 정진우(鄭鎭宇) 감독에 김지미(金芝美) 주연으로 다시 선을 보이기도 했다. 사랑하기는 하면서도 남자의 장래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술집 여자가 착한 여자에게 애인을 양보한다는 동양적인 주제가 한국인들의 정서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 붙인 ‘우리말’ 제목 ‘춘희(椿姬)’는 얼핏 들으면 ‘봄의 아가씨’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동백 아가씨’라는 뜻이다. 하지만 알렉상드르 뒤마(아들)의 소설에 등장하는 ‘동백 아가씨(La Dame aux cam?lias, 1852)’는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마음에 빨간 멍이 들었다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하고는 거리가 까맣게 멀다.
한 달에 25일은 하얀 동백, 그리고 나머지 5일은 빨간 동백을 훈장처럼 맵시로 달고 다니는 마르그리트는 고급 창부(courtesan),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콜걸’로서,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의 줄리아 로버츠보다는 수준이 높고, 우리나라의 황진이나 일본의 정통 게이샤와 유사한 신분이다. 이해하기 쉬운 말로 하자면 ‘계약직 첩’ 정도가 되겠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으로 유명한 소설가 제임스 힐튼이 각색한 <춘희>에서, 가르보는 극장이나 도박장에서 돈 많은 한량들을 사냥하는 부나비 같은 존재로서, 남자로부터 뜯어낸 돈으로 사치와 낭비를 즐기는 막가파 기생충 인생을 살아간다. 가난한 사랑보다는 부유한 사치를 선택하고, 늘 빚에 쪼들리면서도 “슬픈 생각은 하기 싫다”면서, 그녀는 폐결핵으로 죽기 전에 술과 헤픈 웃음 속에서 빨리, 그리고 한껏 쾌락과 방탕을 필사적으로 누리기를 원한다. 먹고 마시고 놀기만 하면서 ‘명품’으로 허전한 인생을 메워 보려는 한심한 여자다.
그녀의 주요 수입원인 러시아의 부호 드 바르빌 남작에게 몸을 파는 틈틈이 그녀가 샛사랑으로 몰래 만나 낭만을 즐기는 청년 아르망 뒤발(Armand Duval, 로벗 테일러)은 그늘에서 그녀를 흠모하는 문학청년으로, 외무부에 일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장군인 아버지한테 용돈을 꼬박꼬박 타다가 놀고먹는 백수다. 그리고 남자처럼 험악하게 살아가는 그녀와는 대조적으로 지극히 여성스러운 아르망에게, 돈이 안 생기는 사랑의 가치를 믿지 못하는 가르보가 묻는다.
“사랑의 이름으로 어떻게 인생의 행로를 통째로 바꾼다는 말인가요?”
“부모님이 30년 동안이나 서로 사랑을 했다고요?”
스무살 때 스톡홀름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 |
| 영화 <안나 카레니나>에서 가르보는 할리우드 몽환산업이 창조한 신비스런 배우였다. |
유진 오닐의 희곡이 원작인 그녀의 첫 발성영화 <안나 크리스티(Anna Christie, 1930)>에서 가르보는 처음으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 역시 창녀다. 그것도 상품 가치가 별로 없는 한물간 창녀여서, 어릴 적에 그녀를 버린 아버지와 그의 정부가 사는 집을 찾아가 얹혀살다가 ‘뱃놈’과 연애를 하게 되는 신세다.
1922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희곡 <안나 크리스티>는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 민중극장이 무대에 올리기도 했었는데, 여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 김애경의 연기가 퍽 인상적이었다. 요즈음 코맹맹이 소리를 해 가면서 농염한 푼수 노릇을 하는 바로 그 김애경 말이다. 야릇한 영화에서 시뻘건 립스틱 짙게 바르고 야릇한 역을 한참 거치더니 목소리가 야릇하게 변한 김애경을 보면 어쩐지 안나 크리스티의 인생행로를 부연시키는 듯싶어서 참 아깝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가르보의 또 다른 영화 <마타 하리(Mata Hari, 1932)>의 주인공이 된 네덜란드 여성 게르트루드 마르가레테 젤레(Gertrud Margarete Zelle, 1876~1917)는 파리의 물랭루주에서 나체춤을 추던 요염한 무희로서, 예명으로 사용한 ‘마타 하리’는 말레이어로 ‘새벽의 눈동자’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상류층 인사들과 어울리며 ‘계약직 첩’ 노릇도 했고,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 첩자로 활동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총살을 당한 매우 극적인 인물이다.
한국전쟁 이후에도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그레타 갈보’라고 표기했는데, 다분히 의도적이었다고 여겨지는 이런 이름은 그녀가 맡았던 일련의 불결한 역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할리우드 키드’는 가끔 의구심을 가졌었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들이 줄지어 흥행에 성공하자 가르보는 작품과 상대역 배우를 선택하는 발언권에서 운신의 폭이 넓어졌고, 그래서 서서히 시대극의 시대를 거쳐 희극으로 활동 범위를 확장하여 1939년 그녀의 첫 희극 작품 <니노츠카(Ninotchka)>로 네 번째 오스카 후보에 오른다.
줄거리는 이렇다. 경제난을 맞은 러시아 정부는 혁명 중에 귀족에게서 빼앗은 보석을 팔아 농기구를 구입하라고 세 명의 요원을 파리에 파견한다. 보석 주인은 그들이 보석을 팔지 못하도록 막으라고 멜빈 더글라스에게 부탁한다. 더글라스는 분방하고 즐거운 파리의 물질주의적 인생으로 세 사람이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든다. 그러자 세 요원이 혹시 자본주의에 맛을 들여 임무 수행에 차질을 빚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 러시아 정부는 사태를 수습하려고 냉정하고도 완고한 열성당원 그레타 가르보를 다시 특사로 보내고, 더글라스는 이제 그녀를 상대로 굳은 표정 대신 웃음을 얼굴에 익히고, 마음의 여유를 갖도록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한다.
말도 안 하고 웃지도 않는
![]() |
| 안정효씨가 그린 그레타 가르보의 캐리커처. 다소 중성적인 느낌을 준다. |
말도 안 하고 웃지도 않는 그레타 가르보―이것은 그녀를 둘러싼 매혹의 핵심을 이룬다. 그리고 <크리스티나 여왕>의 마지막 장면은 이런 표정을 하나의 조각품처럼 보여준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지켜본 다음 슬프고도 착잡한 마음으로 뱃머리에서 수평선을 멍하니 쳐다보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전설적인 명장면’으로 꼽히는 이 대목에서 루벤 마물리안 감독은 이런 명연출을 했다고 한다.
“그냥 거기 서서,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요.”
그러니까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가르보의 무표정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신비를 만들어 내는 비결이었다는 의미다. 말하자면 그녀의 얼굴은 인생 역정이 빚어낸 예술품이었다.
<크리스티나 여왕> 이후에 그레타 가르보의 인기는 미국에서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그녀의 영화들은 해외 판매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었다. 그러다 1941년 <두 얼굴의 여인(Two-Faced Wo man)>에 대한 혹평이 쏟아지자 가르보는 16년간 27편의 영화를 만든 다음, 36세로 갑자기 은퇴하여 은막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고는 전혀 언론에 노출이 되지 않는 철저한 은둔생활로 들어갔다.
1950년대에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레타 갈보’의 은둔이 “늙고 추한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단호한 신비주의적 보안조처라고 널리 알려졌었다. 그녀는 촬영장에서도 단역배우들이나 다른 직원들이 그녀의 연기를 구경하지 못하도록 검정 칸막이를 해 달라고 요구했다지만, 이것은 세간에 알려진 신비주의와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인다. 가르보의 슬픈 무표정과 대인기피증은 가난하고 불행했던 어린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막노동자였던 가난한 아버지 밑에서 더운 물조차 나오지 않는 음울한 집에 살았던 그녀는 학교를 싫어했고, 늘 혼자 놀면서 환상으로부터 위안을 얻었으며,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한 열등감을 연기자가 되는 꿈으로 대신 충족시켰다. 그리고 이발소에서 면도사로 일하던 그녀는 스톡홀름 왕립극단에서 연기를 공부하고 모델을 거쳐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세상을 떠나기 4년 전에 그녀는 은퇴 이유를 이렇게 밝히기도 했다.
“난 할리우드의 삶이 피곤했어요. 일이 즐겁지가 않았고요. 촬영장에 억지로 끌려 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낀 날도 많았고요. 난 정말 다른 종류의 인생을 살고 싶었어요.”
늙음과 맞선 용감한 소수, 헨리 폰다와 캐서린 헵번
젊었을 때는 매우 왕성하게 활동하다가도 나이를 먹으면 많은 사람이 의욕과 힘을 잃어 경쟁사회에서 밀려나 파고다공원에 가서 남들이 두는 장기판이나 어깨너머로 구경하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레타 가르보처럼 노년의 몰락이 두려워 스스로 물러나 어디론가 숨어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용감한 소수는 나이를 먹을수록 관록을 차곡차곡 쌓으며, 평생 갈고 닦은 능력이 완숙하여 별처럼 더욱 빛난다. 1979년에 브로드웨이에서 크게 성공한 어니스트 톰슨(Ernest Thompson)의 희곡을 영화로 만든 <황금 연못(On Golden Pond, 1981)>에서 우리는 그런 노배우를 한꺼번에 두 사람이나 만난다.
톰슨 희곡의 내용에서처럼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별로 대화조차 나누지 않을 정도로 부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제인 폰다는 현실에서의 그런 앙금을 풀어 버리려고 죽음이 눈앞에 닥친 아버지 헨리 폰다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황금 연못>의 영화제작 판권을 사들였고, 심장병과 전립선암으로 투병 중이던 아버지 폰다는 이 마지막 영화에서 마침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시상식에는 병세가 워낙 심했던 아버지 대신 제인 폰다가 참석하여 오스카를 감격스럽게 받아 들었다. 헨리 폰다는 ‘역사상 가장 늙은 수상자’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런 경우를 두고 영어로는 ‘백조의 노래(swan song)’라고 한다.
폰다는 결국 시상식 몇 달 후에 타계했지만, 그 전에 그는 <황금 연못>에 이어 텔레비전극 <여름 바닷가의 회상(Summer Solstice, 1981)>도 완성해놓고 떠났다. 상대역은 왕년의 명배우 머나 로이(Myrna Loy)였다. 필자가 어느 날 낚시를 다녀와서 텔레비전을 틀어 놓고 저녁을 먹다가 AFKN-TV에서 우연히 보았던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노부부가 바닷가에 앉아 사랑과 간통, 위기와 화해를 거치는 인생을 함께 회고하다가 머나 로이가 숨을 거둔다. 그녀를 껴안고 눈물을 흘리는 폰다에게 젊은 경비원이 다가와서 “이곳은 개인 사유지니까 나가 달라”고 한다. 폰다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우린 한평생을 기다려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당신은 겨우 몇 분을 못 기다려 준다는 말이오?”
스펜서 트레이시의 모자
![]() |
| 안정효씨가 그린 캐서린 헵번의 캐리커처. 파마 머리와 얇은 입술이 자유분방한 인상을 준다. |
폰다의 80회 생일을 맞아 <황금 연못> 호숫가 별장에 모인 이혼한 딸 제인 폰다와 그녀가 결혼할 중년의 치과의사, 그리고 의사가 데리고 온 반항적인 사춘기 소년은 늙은이 폰다와의 힘겨운 화해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삶의 맛을 찾아가는데, 이들의 어색하고 서먹서먹한 관계들의 한가운데서 중심을 잡고 상황을 풀어 나가는 인물이 유일하게 ‘심통 영감’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착한 아내 캐서린 헵번(Katharine Hepburn, 1907~2003)이다.
‘착한 아내’라는 위상이라면 평생 거리가 멀었던 여성주의자 헵번은 74세의 나이에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상 후보에 열두 번째 올라 네 번째의 오스카를 받았다. 폰다와 더불어 그녀는 <황금 연못>에서 노익장의 기염을 아낌없이 토해 낸 셈이다.
<황금 연못>에서 폰다가 쓰고 나온 낚시 모자는 본디 주인이 스펜서 트레이시였다. 트레이시는 낚시를 갈 때마다 이 모자를 쓰기만 하면 고기가 잘 잡혀서 ‘행운의 모자’라고 믿게 되었는데, 나중에 그는 이것을 캐서린 헵번에게 선물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헵번은 “여자는 아이를 낳지 않아야만 남자처럼 제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다”면서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대신 하워드 휴스와 더불어 스펜서 트레이시를 애인으로 삼았었다. 그리고 평생 연인이었던 트레이시가 죽은 다음, <황금 연못>의 촬영 첫날에 헵번은 둘 다 늙어서야 영화에서 처음 만나 같이 출연하게 된 폰다에게 이 모자를 선물했다.
행운을 가져다주는 모자의 본디 주인이었던 스펜서 트레이시와 아홉 번째로 함께 출연한 영화 <초대 받지 않은 손님(Guess Who’s Coming to Dinner, 1967)>에서 헵번은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老배우 대신 의자 두 개를 놓고 따로 연기해
![]() |
| 영화 <아프리카 여왕>에서 캐서린 헵번은 무력해 보여도 할 짓, 하고 싶은 짓이라면 무엇이나 다 하는 강인한 여인으로 묘사된다. |
하와이로 휴가를 갔다가 우연히 만나 20분 만에 사랑에 빠져 결혼을 작심한 흑백 남녀의 등장에 트레이시와 헵번 부부뿐 아니라 푸아티에의 부모, 그리고 심지어는 흑인 가정부까지 상상조차 못했던 상황을 맞아 충격에 빠진 나머지 입이 딱 벌어져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러고는 진보적인 천주교 성직자를 포함한 일곱 등장인물의 생각과 마음이 서로 실타래처럼 다각도로 엉키면서 긴장이 점강(漸降)하는 가운데, 트레이시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냉정을 되찾는다.
딸에게 미래에 닥쳐올 현실적인 난관을 곰곰이 계산해 본 다음 결혼에 반대하겠다고 작정한 트레이시는 푸아티에의 어머니로부터 “남자들은 성생활만 끝나면 젊었던 시절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기억조차 못하게 된다”는 비난을 받으며 궁지로 몰리고, 캐서린 헵번도 “당신이 딸과 싸우게 된다면 난 딸의 편에 서겠다”고 경고한다. 이렇듯 헵번은 <…손님>에서 자기주장이 어느 정도 뚜렷하기는 하지만, 버르장머리 없는 청소년들이 잔뜩 모여든 아이스크림 가게 장면에서처럼, 지극히 온순하고 헌신적인 아내의 역할을 해낸다.
트레이시는 이 영화의 촬영이 끝나고 17일 후에 타계했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던 헵번은 완성된 영화를 차마 볼 수가 없을 만큼 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시드니 푸아티에는 트레이시와 헵번 두 원로 명배우와 자리를 같이하기만 하면 주눅이 들어 대사를 몽땅 까먹고는 했기 때문에, 화면에 혼자만 나오는 장면들은 노배우들 대신 의자 두 개를 앞에 놓고 혼자 앉아서 따로 연기를 했다고 한다.
헵번이 실제로 결혼했더라면…
헵번은 <…손님>과 <황금 연못>에서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두 명배우와 호흡을 맞추면서 ‘착한 아내’ 역할을 해냈지만, 그녀는 어디를 봐도 절대로 남자들이 만만하게 볼 여자가 아니었다. 헵번과 트레이시가 여섯 번째 함께 만든 작품인 조지 큐코어 감독의 <아담과 사모님(Adam’s Rib, 1949)>은 우리가 헵번의 여성관을 엿보기에 좋은 하나의 표본이 되겠다.
원제(原題) ‘아담의 갈빗대’에서 아담은 주인공 트레이시의 이름이기도 하면서 히브리어로 ‘사람’을 뜻한다. 그리고 구약성서 창세기 2장 22절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로 데려오시자”라며 노골적으로 여성을 비하하는 대목을 놓고, “그래, 어디 여자가 남자 갈비 한 대밖에 안되는지 한 번 꼼꼼히 따져 보자”는 도발적인 암시를 담았다.
영화가 시작되면 어딘가 좀 모자라는, 무식한 여자 주디 홀리데이가 한 손에 권총을 들고 남편 톰 이웰이 바람을 피우는 현장을 급습하여, 다른 손에 든 사용설명서를 참조해 가면서, 간통을 저지르는 남녀에게 여러 발의 사격을 가한다. 자식이 셋이나 되는 홀리데이는 여러 차례 남편에게 두들겨 맞아 이빨까지 부러졌으면서도 “여자는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식의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철저하다. 그리고 이웰은 막말을 일삼으며 아내를 멸시하고 3년 동안 거들떠보지도 않고서 1년 전부터 애인을 따로 마련해서 숨겨 두고 살아왔지만, “자신이 훌륭한 남편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당당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정도로 뻔뻔스러운 남자다. 20세기의 한국 어디에선가 자주 본 듯한 한 쌍의 부부다.
홀리데이가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자 검사 트레이시가 사건을 맡게 되고, 예일 법대 출신의 변호사인 아내 헵번이 홀리데이의 변호인으로 나선다. <초대 받지 않은 손님>에서 인종차별 주제로 고민했던 트레이시-헵번 부부는 <아담과 사모님>에서 이렇게 푼수 부부를 위해 대리전을 벌이면서 성차별 주제를 놓고 맹렬한 법정공방에 돌입한다.
남성과 여성에게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 통념과 편견에 맞서 헵번은 남녀평등의 당위성을 부르짖는 투사가 되고, 트레이시는 그들의 성대결을 ‘갈빗대의 귀여운 앙탈’ 정도로 받아들이며 처음에는 그냥 웃어넘긴다. 하지만 뉴욕 언론은 그들 부부의 대결을 흥미진진한 권투시합처럼 ‘실황 중계’를 부지런히 벌여서, 그들의 재판은 장안의 떠들썩한 화제가 된다.
하지만 낮에는 법정에서 요란하게, 일단 저녁에 집으로 돌아간 다음에는 그들은 최상류층의 이상적인 부부가 되어, 헵번이 음식을 요리하는 동안 트레이시는 앞치마를 두르고 능숙하게 샐러드를 만드는가 하면, 서로 돌아가며 안마를 해 주고, 예절을 깍듯이 지키면서 지극히 고상한 애정을 주고받는다. 아마도 헵번이 실제로 결혼했더라면 이런 완벽한 부부생활을 꿈꾸지 않았을까 싶다. 여성이 일방적으로 남성을 섬기는 노예 행위가 아니라, 비록 주도하지는 않더라도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여성이 자유롭게 누리는 분방한 사랑의 다양한 면모가 영화 곳곳에서 피어난다.
완충적인 타협의 대사
![]() |
| 헵번은 영화 <필라델피아 스토리>에서 남편 캐리 그랜트와 함께. 무서운 것이 없는 여자로 분(扮)한다. |
‘사내답게’ 행동한다는 칭찬의 의미도 담겼음직한 이 말을 듣고 웨인이 발끈한다.
“어쩌면 그렇게 심한 말을!(Watch your language!)”
이런 식으로 남녀의 위상이 서서히 바뀌면서 재판이 계속 진행됨에 따라 변호인 헵번은 여성의 우월성까지는 아니더라도 남녀의 동등성을 증명할 목적으로 사업가나 학자 따위의 유능하고 지성적인 ‘출세한 여자’들을 줄줄이 증인으로 내세워 법정을 우수한 여성의 표본들을 수집해 놓은 전시장으로 둔갑시킨다. 무식한 피고 홀리데이는 그럴 때마다 ‘여자들이 이렇게 똑똑한가’ 싶어서 놀란 입이 쩍쩍 벌어진다.
그런가 하면 농담 끝에 싸움이 되는 격으로 부부의 법정 공방은 서서히 감정싸움으로 바뀌어 급기야 트레이시가 짐을 싸서 가출을 하기에 이른다. 결국 남자와 여자의 위치를 바꿔놓고 따져보자는 헵번의 웅변적인 최후 변론 끝에 홀리데이는 무죄로 풀려나고, 트레이시와 화해를 하면서 헵번이 말한다.
“법정 판결에도 무승부라는 게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 |
| 영화 속 캐서린 헵번. 그녀는 나이가 들어 맡은 극중 인물에서도 도도한 여장부의 자리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다. |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여자가 열등하다고 그러더군요.”
C. S. 포레스터(Forester)의 1935년 모험소설을 영화로 만든 <아프리카의 여왕(The African Queen, 1951)>에서는 험프리 보가트가 술에 취한 김에 캐서린 헵번을 “말라깽이 노처녀(skinny old maid)”라고 놀렸다가, 양산을 쓰고 뱃전에 꼿꼿하게 앉아서, 그녀가 술 한 궤짝을 몽땅 강물에 쏟아버리는 바람에 낭패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현지의 더위 탓인지는 몰라도 헵번은 이 영화에서 당장 빈혈로 쓰러지기라도 할 듯 유난히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말린 멸치처럼 허약해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리 무력해 보여도 할 짓, 또는 하고 싶은 짓이라면 무엇이나 다 하는 강인한 불굴의 여인이다. 보가트가 갈대밭에서 열병에 걸려도 그녀는 멀쩡하고, 보가트가 여러 번 좌절해도 그녀는 격류를 헤쳐나가며 위기에서 힘을 얻고, 늦게 배운 도둑질처럼 신이 나서 점점 더 엉뚱한 모험심을 드러내다가 결국 고철 덩어리 쪽박배 ‘아프리카의 여왕’에다 어뢰를 만들어 장착하고는 독일군 전함을 침몰시키는 작전을 집요하게 관철시킨다.
강렬함과 연약함의 극단적 조화
![]() |
| 영화 <아담과 사모님>의 포스터. 헵번은 바람 피운 남편을 총으로 쏘려 한 여성의 변호인으로 검사인 트레이시와 법정공방을 벌인다. |
나이를 먹고서도 그녀가 골라서 맡은 역할들을 살펴보면, 변함없이 도도한 여장부(matriarch)의 자리에서 좀처럼 내려오려고 하지를 않았다. 동성연애자였던 테네시 윌리엄스의 심리극을 은막에 재생한 <지난 여름 갑자기(Suddenly, Last Summer, 1959)>에서 그녀는 동성애 상대자를 구하려다가 끔찍한 죽음을 맞은 외아들의 비밀을 영원히 덮어 두기 위해 조카딸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뇌를 수술하려는 작전까지도 불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바퀴의자에 앉아 승강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승천’ 모습은 <선셋대로(Sunset Boulevard, 1950)>의 마지막 장면에서 유령처럼 손을 놀리며 층계를 내려오는 글로리아 스완슨의 모습만큼이나 섬뜩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때로는 무모할 정도로 항상 솔직했던 캐서린 헵번은 그녀의 ‘꿈’에 대해서, 그녀가 성공한 이유에 대해서, 그리고 노년을 맞게 된 심정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처음 활동을 시작하던 무렵에 나는 배우가 된다거나 연기를 공부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난 그냥 유명해지고만 싶었다.”
“사람들은 나를 무슨 오래된 건물처럼 좋아하게 되었다.”
“‘나이를 먹으니 얼마나 좋은가요’라는 말은 정말로 한심한 궤변이다. 그건 바람이 빠진 바퀴가 달린 낡은 차를 타고 싶다는 말과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