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자전거 종주기 ⑦

‘폴레폴레’의 탄자니아

  • 글 : 문종성 자유기고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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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 머무를 수 있다면 유일하게 꼽을 수 있는 곳이 잔지바르 섬이다. 물자도 풍부하고, 사람들도 여유롭다. 엄격한 이슬람 문화가 서려 있어 치안도 좋은 편이며, 풍경은 말할 것도 없다.

⊙ 콘돔으로 풍선 부는 아이들… 가난한 아이들도 즐겁게 놀 권리는 있지만
⊙ 이방인 자전거 여행자를 불쌍하게 여겨 기도해 주던 아프리카인들

文鐘星
⊙ 30세. 전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6년간 약 80여 개국을 자전거로 여행하기로 마음먹고
    2007년 5월 미국 뉴욕에서부터 자전거 세계일주를 시작. 북미와 중남미를 거쳐
    현재 아프리카를 자전거로 여행 중.
⊙ 저서 : 《비전청년의 세계일주 - 자전거 타고 쿠바여행》 《라이딩 in 아메리카》
    《일생에 꼭 한 번 가 봐야 할 곳, 멕시코》.
축구가 신성시되는 아프리카에서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중 하나는 당구다. 탁구, 배구 등도 비교적 인프라가 넓게 퍼져 있다.
탄자니아 남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린디(Lindi). 모잠비크와의 국경에 위치한 음트와라(Mtwara)에 이어 남부에서는 두 번째로 규모가 큰 도시다. 이곳으로 가기 전 아직 마콘데(Makonde) 부족의 조각 문화가 남아 있는 작은 기념품 가게에 들르기로 했다. 화전농업과 사냥으로 생활하는 반투어족(아프리카 대륙 남반부의 광대한 지역에 걸쳐 쓰이고 있는 언어군)인 이들은 섬세한 칼놀림이 인상적인데 나무 조각품이나 가면으로 유명하다. 특히 가면은 사냥에서 위장 수단으로 사용하다 점차 살상한 동물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신접물(神接物)로 발달되었다고 전해진다.
 
   “조각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크기에 따라 다르지요. 작은 공예품은 하루에 서너 개도 만들 수 있지만 한 달 가까이 섬세하게 작업하는 것도 있습니다.”
 
  “가격은요?”
 
  “구입하려고 그러우? 조그만 건 3000탄자니아 실링부터 있수다.”
 
  칼을 갈고 다시 나무를 파는 장인은 묵묵히 땅만 보며 일을 하고 있는데 판매상이 나서서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행색이 초라해 보이는 자전거 여행자가 과연 사겠느냐는 표정이다. 대량생산 체제가 아닌 수작업으로 정성을 기울여 만드는 그들의 노고에 비하면 나에겐 저렴한 가격이다.
 
  나는 곧 자유로운 붓놀림으로 화려한 곡선과 색감을 살린 팅가팅가(tinga tinga) 그림에 시선을 돌렸다. 팅가팅가는 탄자니아 잔지바르 섬에서 시작된 대표적인 화풍으로,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해 1960년대부터 유럽 시장에서 인정받은 화가 에드워드 사이디 팅가팅가를 기념해 불리는 미술 기법이다. 이 그림은 아프리카의 원색과 문화, 사상을 혼합해 보여주는 절제된 화려함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꽤 괜찮은 한 폭의 그림이나 조각품을 구입하려 해도 마땅히 담을 곳 없는 나그네의 자전거는 삐걱거리며 무겁게 신음한다. 행여 미술품이 짐이 될까 미리 앓는 듯하다. 팅가팅가는 그 고향인 잔지바르에서 더 보기로 했다. 그리고 마콘데 조각들을 한두 시간 더 보는 것으로 문화체험을 매조지하며 이쯤에서 바삐 행로를 돌렸다.
 
익살스런 화풍이 돋보이는 팅가팅가 그림.
 
  험준한 린디 가는 길
 
  린디로 가는 길은 한창 공사 중이었다. 수십 곳의 비탈길과 언덕을 깎아 도로를 내는 대규모 공사다. 벌써 몇 년째 부분 공사 중이란다. 남부 지역에서 수도 다르에스살람까지 동부간선도로를 만드는 중이다. 이전까지는 남부에서 북부로 가기 위해 해로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나아져 차로도 하루 만에 닿을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길이 너무 험해 4륜구동이 아닌 이상 엔진이나 차체 고장은 감수해야 한다.
 
  자욱한 먼지바람이 시계(視界)를 가린다. 길을 통제하던 경찰관은 눈썹을 치켜들고 내 동태를 살핀다.
 
  “어디 가슈?”
 
  “린디를 거쳐 다르에스살람이요.”
 
  “안 돼요. 난 허락할 수 없습니다.”
 
  “왜죠?”
 
  “이렇게 여기저기 공사 중이라 길이 너무 나빠요. 언덕을 수십 개는 넘어야 합니다.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중간에 마을도 없어요. 더욱 위험한 건 날이 어둑해지면 강도를 만날 공산이 커요. 워낙 가난하기 때문에 자전거로 지나가다간 무조건 봉변당할 겁니다. 거기 빈민촌엔 경찰도 없으니까요. 그래도 지나갈 겁니까? 차라리 차를 잡아타고 가세요. 내가 도와줄 테니. 자전거로는 도저히 무립니다, 무리예요.”
 
  경찰은 고개와 양 손을 동시에 가로저으며 그냥 보내지 않겠단 제스처다. 이 정도로 강하게 나오면 나로서도 다른 방도가 없다. 현지인의 진지한 조언은 허투루 들을 게 아니다. 나는 이내 수긍하며 차량 한 대를 수배했다. 다행히 린디로 가는 소형 트럭이 있단다. 단, 요금을 받는 비공식 운행차였다.
 
  린디에 가려는 현지인들로 빽빽하게 찬 짐칸에 공간이 없어 자전거를 짐칸 뒤 발 디딤판을 축으로 삼아 단단히 고정시켜 묶고, 나는 겨우 두 발 비집고 들어갈 공간을 얻어 내내 서서 가야 했다. 불평할 필요는 없었다. 아이들과 여성을 제외한 남자들은 모두 짐칸에서 일어선 채로 짐을 부리기 위해 만든 지지대를 잡으며 아슬아슬 곡예를 만끽하고 있었다. 아이와 여자들을 위해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는 그들의 태도에 작은 감동이 밀려온다. 아프리카의 작은 촌에서 나는 훈훈한 장면을 보고, 또 참여하고 있다.
 
  난감하다. 날은 어둑해지는데 차는 자주 멈춰 섰다. 엔진이 퍼졌다. 급경사가 태반인 비포장 길을 헤쳐 나가기엔 차량이 노후한 데다 적재량을 훌쩍 넘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것 같다. 초조해지는 나와는 달리 모두들 태평이다. 때 되면 다시 간다는 듯 통달한 표정들이다. 어떤 이는 수리하는 틈을 이용해 급한 볼일을 본다.
 
  이때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상인이 트럭 앞으로 다가왔다.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코코넛을 가져온 것이다. 즉석에서 껍질을 벗겨 주며 흥정을 시도했다. 뒤이어 왼쪽 어깨에 구운 옥수수를 가득 담은 바구니를 든 청년도 트럭으로 다가왔다. 차량 고장으로 어수선하던 분위기는 갑자기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코코넛 하나 주시오. 아니, 하나 더!”
 
  한 남자가 코코넛을 하나 시키더니 하나 더 주문한다. 그리고 날 보며 씩 웃더니 코코넛을 건넨다. 부족어를 쓰는 통에 말이 통하진 않지만 나보고 하나 들라는 것이다. 코코넛 과육의 달콤함에 감탄하자 짐칸의 승객들은 나를 보며 만족한 듯 깔깔 웃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를 위한 단 한마디는 선명하게 들렸다.
 
  “인샬라.”
 
  무엇 때문에 이들은 아무 조건 없이 나에게 선행을 베푸는 걸까.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넉넉한 그들의 순수한 배려가 고맙다. 신기하게도 영원히 멈출 것만 같았던 차는 용케 다시 엔진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체득된 삶을 통해 기다림을 즐길 줄 아는 ‘폴레폴레(천천히)’ 아프리카 문화다.
 
 
  콘돔의 변신은 유죄
 
콘돔을 부는 아이. 아프리카에는 이렇게 교육부재로 치명적인 환경에 노출된 이들이 적지 않다. 나는 이 콘돔을 과자와 바꿔 발로 찢어 버렸다.
  아프리카 도로의 이야기들을 끌어모을 만한 호기심거리 중엔 이방인의 자전거만한 게 없다. 느리게 달리다 현지인의 시야에 들어가면 고즈넉한 시골 풍경에서 나는 어느새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된다. 사람들은 시신경을 곤두세우고는 상황을 빠르게 파악한다. 위협을 느끼는 아이는 놀라서 엄마 뒤로 숨고, 한껏 여유로움을 부리는 할아버지는 멋들어지게 손을 올려 인사한다.
 
  특별한 사고 징후가 없다고 판단되어 잠시 그늘 아래 쉬어갈 요량으로 나무에 자전거를 기대 세우고 풀썩 주저앉았다. 곧 수십 개의 호기심 어린 눈들이 한 발씩 접근해 둥그렇게 원을 만들고는 나를 주시한다. 졸지에 감상체가 된 난 무덤덤하게 한 모금의 물을 들이켠다. 구경꾼의 대부분인 아이들은 집에 갈 일도 잊어버린 듯 하릴없이 오래도록 나의 휴식을 감상한다.
 
  그때였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바지를 주섬주섬 챙기던 어느 중년의 남자가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풍선처럼 생긴 고무조각을 던졌다. 나에게 집중되던 시선들이 모두 그 풍선으로 쏠렸다. 풍선은 맥없이 풀 위로 떨어졌고 몇몇이서 치열한 쟁투 끝에 한 녀석이 전리품을 챙겨 들어 보이곤 신나게 뛰어갔다.
 
  아쉬워하는 아이들은 망연자실 쳐다보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아이는 풍선을 입에 대고는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그러나 난 곧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어딘지 모르게 모양이 이상했던 그 풍선은 다름 아닌 콘돔이었던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제 막 사용한 것이 틀림없었다. 다량의 정액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미끌미끌한 정액을 위생 상태를 따지기도 부끄러운 듯 자기 옷으로 닦으며 입으로 힘껏 바람을 넣었다.
 
  “안 돼!”
 
  내가 흥분하자 아이가 순간 놀라는 표정이다. 놀란 순간에도 이런 아픈 현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급히 사진을 찍고 나서 나는 바로 콘돔을 작은 비스킷 한 봉지와 바꾸자고 제안했다. 아이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녀석은 고작 우리 돈 200원짜리 과자에 세상을 다 얻은 표정이다.
 
  “콘돔이야말로 아이들이 쉽게 즐기는 놀이도구입니다. 마치 풍선과 같아서 공기를 주입하면 부피가 커지고 외관에 비닐을 여러 겹 씌우고, 그 외 재료들을 덧입혀 줄로 꽁꽁 감싸 주면 훌륭한 공이 되기 때문이죠.”
 
  콘돔의 변신에 대해서는 이미 남아공과 모잠비크에서 들었던 터다. 가난한 곳의 아이들도 즐겁게 놀 권리가 있다.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놀아야 할지도 이곳 아이들에겐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HIV 바이러스 발병률이 전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난제의 땅에서 가장 기본적인 교육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에 나는 마음이 무너지는 경험을 해야 했다.
 
  그 남자는 어디선가 들었을 콘돔 사용법에 대한 인식만 했지 사후조치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했다. 이렇게 또 한 생명이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곳에서 허무하게 에이즈에 감염될 수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답답함에 속상해진 나는 콘돔을 마른 땅에 솟아오른 돌부리에 던져 놓고는 발로 비벼 찢으며 내 행동을 주시하고 있는 수많은 눈동자들을 보았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콘돔을 입으로 불지 말라는 몸동작뿐이다. 그런데도 이방인이 마냥 신기한 듯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나는 좌절감에 깊은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도무지 맘 편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순간이다. 어떻게 해야 이들에게 안전한 사랑을 나눌 수 있게 하고, 콘돔의 올바른 사용을 제안할 수 있을까? (후에 콘돔뿐만 아니라 의약품들도 오용하고 있음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나는 무거운 맘에 예정보다 더 오래 주저앉아 쉬면서 나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무력함에 깊은 한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다시 떠나기를 종용한 것은 나에게 흥미를 잃은 아이들이 하나둘 흩어지면서였다.
 
 
  날 보고 고생한다며 갑자기 울음 터뜨려
 
  한 남자가 눈물을 훔친다. 탄자니아 남부 오지에서 살다 린디로 공부하러 나온 늦깎이 만학도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제임스는 뒤늦게 향학열을 불태우며 기독교 신학을 배우고 있다. 아프리카의 많은 부족이 수많은 토속신앙을 숭배하는 가운데 그가 이방종교를 선택한 까닭은 뭘까? 과거 인도양을 따라 무역을 통해 이슬람이 많이 전파되었고, 내륙은 유럽으로부터 기독교 신앙이 포교를 진행해 왔다. 상대적으로 설 자리를 잃은 토속종교는 외부종교와의 혼합을 통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지금도 아프리카의 이슬람교와 기독교에서는 엄격한 종교적 율법 외에 수백 수천 년을 이어 온 자신들만의 규칙을 만들어 질서를 지키고 있다.
 
  이제 갓 종교에 귀의해 살아가기로 결심한 그는 나를 보더니 별안간 울음을 터뜨렸다.
 
  “이 험한 길을 어찌 오셨습니까? 맙소사, 당신이 걸어온 길을 생각하니 너무 슬픕니다.”
 
  그는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꺼이꺼이 울어 젖히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고생은 하고 있지만 난 괜찮다. 그러니 그의 감정 표현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다음엔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옆에 있던 또 다른 남자가 눈시울을 붉히는 것이다.
 
  “오,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 먼 곳에서부터 왔다니요. 힘든 길을 걸어온 것이 대단하긴 하지만 고생한 걸 생각하니 한편으론 너무 불쌍합니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이들의 감수성이 예민한 건지, 남부 현지인들의 감정이 유난히 풍부한 건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중요한 사실은 그들의 눈에는 내가 너무 불쌍하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소외받고 사는 이들에게 나는 오히려 위로받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격려를 받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다. 진심으로 나를 위함이 전해진다. 묘한 기분이다. 물론 고맙기도 했다. 그들은, 행복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기도가 끝나자 양 팔을 벌려 안아 준다. 그들의 체온을 느끼고, 마음을 느끼고, 나는 어느새 콧등 시리게 감동을 받고 있는 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오렌지 맛 보라며 두 청년이 서로 건네줘
 
  탄자니아 남부와 중부의 가교 역할을 하는 낭구루꾸루(Nangurukuru). 지리적으로 수도와 남부 지역 중간에 위치해 있어 장거리 차량들이 하룻밤을 묵어 가며 근방에 해양 휴양지 킬와(Kilwa)로 가기 위한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도로가 갈라지는 사거리 검문소에서 나는 경찰들과 잡담하며 정보 또한 얻고 있었다.
 
  “오렌지 하나 먹어볼 텐가? 맛이 아주 기가 막히거든.”
 
  “하하, 괜찮습니다. 콜라 한 캔 마시면 갈증 풀릴 거 같군요.”
 
  자신을 책임자라고 소개한 중년의 경찰은 나에게 꼭 여기서 생산된 오렌지를 먹이고야 말겠다는 심산 같았다. 그는 주변에 손수레로 오렌지를 가득 실어 판매하는 청년들에게 동전 한 닢 던져 주며 오렌지를 부탁했다. 청년은 히죽거리며 능숙한 칼질로 쉽게 베어 물 수 있게 껍질을 벗겨 건네주었다. 맛은 좋았다. 먹고 남은 껍질은 도로에 막 버린다. 경찰이 앞서서 던지니 너도 나도 거리낌 없이 음식 쓰레기를 투척한다. 영문을 몰랐다. 그러나 금방 그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 곧 가축들이 다가와 그 껍질을 낚아채 간다. 먹을 것이 풍성하지 못한 이곳에서 오렌지 껍질은 가축들의 긴요한 사료가 된다.
 
  잠시 쉬고 있는데 방금 오렌지를 팔았던 청년이 나를 부른다. 쑥스러운 표정이 얼굴에 가득하다. 내게 슬며시 오렌지를 건네는 것이다. 하나 더 먹으라는 것이다. 나는 뜻밖의 호의에 고맙다는 말을 건네며 한 개 더 먹는 횡재를 누렸다. 양심상 손수레에 오렌지가 가득하긴 했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이들의 오렌지를 넙죽 받아 먹기가 미안해 동전을 꺼냈다. 그러자 손을 내저으며 됐단다. 이러다 혹시 호의를 무시하는 것으로 오해할까봐 그대로 두기로 했다. 곧 연이어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뭐가 그리 신 나는지 또 다른 오렌지 파는 젊은 상인이 내게 맛보라며 오렌지를 하나 건네주는 것이다.
 
  “방금은 친구가 줬지만, 이건 내가 주는 겁니다. 아마 내 것이 더 맛있을 거예요. 갈증날 텐데 하나 더 먹어요. 어서요.”
 
  “야, 무슨 소리야? 내 것이 더 맛있지. 안 그래요? 분명 내 것이 나을 거예요. 하하하.”
 
  각각 자신의 수레에 가득 실은 오렌지를 파는 두 청년이 티격태격이다. 그러면서도 흰 이가 눈이 부실 정도로 맑게 웃는다. 둘은 싸우는 듯하면서 여행자에게 친절을 베푼다. 거칠고, 무서울 것 같은 낯선 길 위에서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소박한 기쁨에 젖어 잠시 가슴이 먹먹해진다.
 
  청년들은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온 낯선 여행자인 나와 더 친해지고 싶어했지만 경찰이 있어 절제하는 눈치다. 날이 어두워지자 나는 경찰이 직접 안내해 준 매우 안전하고 저렴한 숙소에서 하룻밤 여장을 풀고 내일을 기약했다. 귀머거리도 듣고, 장님도 볼 수 있다는 작은 친절 앞에 모든 긴장이 풀린 날이다. 현지인의 선한 마음이 여행을 하는데 청량제 역할을 함은 분명하다. 그들에게는 더 큰 행복이 찾아오리라. 나는 이 감사에 보답하고자 곧 탄자니아를 도울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잔지바르에서 모기장 구호사업을 도와주는 코이카 신채연 단원과 현지인 코디네이터. 12명으로 이루어진 팀은 땡볕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마을 깊숙한 곳까지 당도해 모기장을 설치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마약 줄기 씹어 보라며 권하는 운전기사
 
  다음 날 새벽, 북진하는 도로 역시 한창 공사 중이라 이동이 불편한 것과 치안부재의 이유를 들어 자전거로 다니기에는 불가하다는 경찰의 조언에 트럭을 잡아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물론 버스가격에 준한 팁을 또 쥐여 줘야 했다.
 
  차량을 타고 다닌 길에는 아프리카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트럭은 좀체 시원하게 달리질 못했다. 무슨 까닭인지 수 km에서 수십 km마다 한 번씩 검문을 받고는 창 너머로 미리 준비한 지폐 한 장을 꼬깃꼬깃 접어 배시시 웃으며 경찰에게 넘기는 것이다. 심한 경우 2~3km마다 한 번씩 뇌물을 줘야 했다.
 
  뿐만 아니다. 엉성하게 줄 하나 쳐 놓고 차량통행을 막는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도 같은 방법으로 돈을 줘야 했다. 통행료라고 하기엔 너무 지나친 횟수다. 경찰들은 조용히 돈을 쥐고는 몇 마디 잡담을 나누고 인사를 건넨다. 남의 나라 시스템을 전후사정도 모른 채 왈가왈부할 수 없어 조용히 조수석에서 지켜보고만 있는데 이번엔 운전수가 비닐에 싸인 무언가 꺼낸다.
 
  “한입 들어 보지 않겠어?”
 
  “뭐죠?”
 
  “먹으면 아주 힘이 솟는 명약이야. 기분도 업되지! 한 줄기만 씹어 봐.”
 
  남미에서 본 코카와는 형태가 다른 잎줄기가 가지색에 연하고 여린 잎으로 된 식물이다. 한 손에 움켜쥘 양이 우리 돈 2000원 이상이니 현지에서 싼 가격은 결코 아니다. 이 식물을 파는 상인들이 적지 않았다. 그가 마약의 일종이지만 대수롭지 않다며 크게 웃는다.
 
  “실은 경찰들이 알고도 묵인하는 경우가 많아. 그들도 몸이 피곤하거나 뜨거운 잠자리를 갖고 싶을 땐 원하는 아무 때라도 한 번씩 씹을 때가 있거든. 게다가 상인들이 정기적으로 이익의 일부를 상납하니 경찰들도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큰 제재를 가하진 않아.”
 
  나는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 이왕 말 나온 김에 하나 물어 보기로 했다.
 
  “당신이 자꾸 돈을 건네주는 것을 봤어요. 그렇다면 그건 왜 그런 거죠?”
 
  “아, 그거? 실은 말이야.”
 
  남자는 눈치를 살피더니 운전을 위해 전방을 주시하며 멋쩍은 듯 대화를 이어 나갔다.
 
  “물건을 운반하는 데 필요한 서류가 없거든. 그냥 뭐 일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서류가 있어야 하는데 그걸 일일이 다 구비하려면 돈도 많이 들고, 또 꼬투리 잡혀 곤욕 치르기도 싫거든. 우리 같은 노동자들이 법을 지키면서 일을 하기엔 공식적인 세금과 절차에 필요한 부대비용은 너무 부담이야. 차라리 그냥 경찰에게 푼돈 쥐여주고 일을 진행시키는 게 여러모로 좋지.”
 
  대충 내용을 얼버무리며 남자는 다시 줄기를 가져다 잎과 함께 씹기 시작했다. 뇌물은 가난이 만들어 낸 암묵적 편법이다. 먹고살기에는 경찰도 빠듯하단다. 그러니 서로 상부상조하며 나라에서 걷어야 할 세금들을 본인들이 별개로 조정하는 것이다. 통신이나 컴퓨터 시스템이 전무한 것이 그런 블랙 커넥션을 만들어 내는 데 일조하고 있는 듯 보였다. 여전히 종이와 펜을 가지고 수기로 기록하는 검사는 조작이 훨씬 쉽고 간편할 것이다.
 
  “10번 뇌물을 줘도 원래 내야 할 금액의 10%밖에 되지 않으니 이용하는 거라고. 어때, 웃기지?”
 
  문득 운전사의 옆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힘들어도 법을 지키기를 강요해야 할까, 아니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고단한 그들의 삶을 보며 조용히 불법을 눈감아야 할까. 전자는 고단한 운전사의 깊게 팬 주름 때문에, 후자는 질서가 무너지는 부패 만연한 사회의 정의실현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개발도상국의 생채기를 나는 지금 자욱한 먼지를 마시며 보고 있다.
 
 
  수도 다르에스살람의 카리아코 시장 풍경
 
모기장 설치를 위해 들어간 집. 얼굴을 모기장 밖으로 내밀 수 있을 정도로 낡아 새것으로 바꿔 주었다.
  탄자니아의 경제 수도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은 아프리카 5대 도시에 꼽히는 메트로폴리탄이다. 이곳에 오기 전까진 어느 곳을 가든 친근한 말투로 ‘뽈레뽈레(pole pole·천천히)’를 들을 수 있었다. 급할 것 없는 민족성과 문화를 가장 잘 대변해 주는 여행자에게 친근한 스와힐리어다. 하지만 여기서 들려오는 건 조바심 난 차들의 클랙슨 소리들과 잔뜩 날이 선 ‘하라카 하라카(haraka haraka·빨리빨리)’ 소리들이다. 도로 교통은 숨 쉴 틈 없이 차량들로 꽉 채워졌고, 길거리에는 시장바닥처럼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표정도 과묵하고 어둡다.
 
  “이봐요, 조심하세요. 한눈파는 순간 당신을 노리는 강도들에게 당합니다.”
 
  도심에 진입해 자전거로 돌면서 분위기를 파악하자니 어리둥절하다. 전혀 아프리카답지 않은 화려한 대도시의 형태가 그랬고, 사람들이 연방 내게 주의를 주고는 나더러 자전거 짐을 잘 지키라며 충고하는 것이 그랬다. 특히 내가 들른 도심에서 가장 번화한 카리아코 시장은 범죄의 온상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곳에 코이카(KOICA) 소속으로 봉사하러 온 한국의 청년들도 현지인들에게 강도당했다는 얘기가 들렸다.
 
  마침 옷이 없어 구입하러 시장으로 들어갔다. 자전거를 밀고 다니기에는 퍽 좁아 보였지만 이 좁은 바닥을 다니며 인파를 홍해 가르듯 가르는 차들의 끼어들기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여기저기 걸려 있는 옷을 보고 구입을 고민하던 중 소란스러운 곳을 바라보니 경찰과 상인 간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런데 관심을 가지고 보니 일방적인 싸움이다.
 
  우락부락한 인상과 거대한 체구의 경찰에 비해 상인은 매우 왜소한 체격에 나이 들어 보였다. 불법으로 주걱이나 행주 등 간소한 살림도구들을 조악한 수레에 내다 파는, 누가 봐도 사정이 안타까운 생계형 노점이었다. 경찰은 노점을 때려부수고, 노인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훌쩍거리며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불법이라 해도 지나친 처사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 와중에 더 안타까운 장면이 보였다. 그 상인은 귀머거리였다. 그러니 말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다. 경찰의 태도에 위압감을 느꼈는지 다들 아무도 나서서 말리는 이 없다. 행여 경찰에게 밉보일까 염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혼잡한 거리에서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과일과 옷가지, 각종 전기 기기류를 파는 다른 노점상들은 경찰의 터치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 남자는 과연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렇게도 모진 수모를 당해야 하나.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그의 핸디캡과 경찰의 태도에 여행자는 그저 말없이 입술을 깨물 뿐이다.
 
  시장을 한 바퀴 돌아 깔끔한 반팔티와 바지를 구입하고 다시 같은 자리에 왔을 땐 누구도 방금 전의 일에 대해 언급하는 이 없이 평소대로 번잡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까 그 자리는 말없는 슬픈 흔적만 남긴 채 비어 있었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또 가족들에겐 뭐라고 말을 할까? 힘 없고 약한 자들이 살아가기에 편한 곳은 어디일까? 혼자만 공허해진 이곳의 분위기가 어지럽단 핑계로 나는 이내 자리를 떴다. 스와힐리어를 전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에서 방관자로 남았다는 작고 미안한 부담 때문이었으리라.
 
 
  인도양의 천국, 잔지바르 섬에 가다
 
라마단 기간에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지키는 무슬림들.
  라마단 기간이 시작되었다. 마침 무슬림 문화가 꽃피어 있다는 잔지바르(Zanzibar) 섬으로 가기로 했으니 그들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최적의 기간이다. 다르에스살람 포스타(posta)에서 잔지바르로 가는 배편은 여럿이 있다. 대부분 영세한 회사가 운영하는 곳이지만 대형 회사가 운영하는 쾌속선 배라야 안심하고 탈 수 있다.
 
  흥정을 유도하는 영세한 회사에서 주선한 배는 낡고 기동성이 낮을 가능성이 있다. 또 출항 시간을 제대로 지키는 기본 서비스조차도 엉망이며 뱃삯이 대형 회사가 운영하는 쾌속선과 크게 차이 나지도 않는다. 인터넷에 뜨는 여행 사건사고에는 엔진고장으로 배가 바다 한가운데서 멈췄다거나 예정시간보다 두 배 이상 걸려 도착할 정도로 시스템이 엉망이었단 사례가 있었다.
 
  나는 아잠 시 스타(Azam Sea Star) 회사를 통해 가장 고급형인 킬리만자로 쾌속선을 이용하기로 했다. 마침 라마단 기간에는 가격을 할인해 준단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는 올라탔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잔지바르는 탄자니아 내의 또 다른 나라로 반드시 여권이 필요하다. 배는 거친 파도와 바람을 가르며 약 2시간반 만에 천혜의 섬에 도착했다. 동서교역의 허브 역할을 담당하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이슬람 문화가 발달된 이곳의 풍경은 관광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차분해 보였다.
 
  미리 연락이 된 코이카 단원의 숙소에 여장을 풀고 봉사와 여행을 위한 5일 계획을 짰다. 상업과 어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본토보다 비교적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지만 이곳에도 여전히 가난에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므로 나는 그들을 돕고자 했다. 말라리아가 기승을 부리니 빈민촌에 들어가 가가호호 방문해 모기장을 직접 쳐 주기로 한 것이다. 고맙게도 이 일에 잔지바르에서 봉사하고 있는 코이카 단원들과 현지 코디네이터들이 함께 손을 거들었다. 200여개의 모기장을 설치하고 남은 건 기아대책에 기증해 필요한 곳에 쓰도록 했다.
 
  말라리아 예방 활동은 국제구호단체들뿐만 아니라 나라와 지역에서도 사활을 걸고 있는 보건정책임에 틀림없다. 일례로 보건기구에 공식기관의 인증을 거쳐 서류를 제출하면 나라에서 무상으로 모기장을 지급받을 수 있다. 또한 산모들은 기본적으로 나라에서 주는 모기장을 하나씩 후원받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게다가 해마다 수십만 개의 모기장이 각 기관을 통해 후원된다. 그러나 이는 한 해 10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는 말라리아를 예방하기에 역부족이다.
 
 
  라마단 핑계로 저녁마다 과식
 
프리즌 아일랜드에서 볼 수 있는 장수 거북이. 등에 적혀 있는 숫자는 나이다. 100세 넘긴 장수 거북이가 몇 마리 생존해 있다.
  2005년 부시 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아프리카 순방과 더불어 말라리아 발의안을 만들 정도로 보건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그는 재임 시절 아프리카를 순방하면서 인류의 시초가 된 땅에서 절망과 가능성을 동시에 보았다. 특별히 탄자니아를 방문하는 동안에는 모기장을 후원한 것으로 현지에서 대서특필되었는데 일부 정치인들과 현지인들은 도리어 화를 냈다고 한다. 이유인즉 그 모기장이 모두 기득권층인 이슬람 정파를 위해 쓰여졌다는 것이다. 정권을 잡고 있는 무슬림 세력들에게 분배가 되고 내륙과 해안 일부의 기독교 세력엔 제공이 거의 되지 않았단다.
 
  청춘의 땀을 값지게 흘렸던 모기장 설치 봉사를 마치고는 오랜만에 휴식다운 휴식을 취했다. 100년 이상 된 장수 거북이들을 만날 수 있는 프리즌 아일랜드와 일본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시원한 라멘과 김치를 맛볼 수 있는 섬 동부에 위치한 음탕가니(Mtangani) 해변은 피로를 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여기에 스톤타운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골목골목의 인도식 문화는 길을 잃어도 방황이 낭만으로 점철될 수 있는 멋진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라마단 기간에는 엄격한 율법에 따라 어린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음식 섭취가 불가했지만 외국 여행자들에게는 너그러운 태도를 취한 덕분에 시선을 피하는 분위기에서 간단한 토속음식들도 맛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야시장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진한 사탕수수 주스와 우리 돈 7000원이면 푸지게 먹을 수 있는 한 상자들이 새우는 잔지바르 최고의 명물 음식이다. 아프리카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며 이렇게 음식 때문에 행복해 본 적이 없었다. 라마단 기간을 핑계로 저녁때만 되면 매일 마시고, 매일 과식했다. 종교적 교리 때문에 해가 떠 있는 동안 먹는 걸 금하지만 바꾸어 보면 해가 진 후에는 억눌렸던 식탐을 채우는 광란의 파티가 매일 밤 펼쳐졌다.
 
  아프리카에 머무를 수 있다면 유일하게 꼽을 수 있는 곳이 잔지바르 섬이다. 물자도 풍부하고, 사람들도 여유롭다. 엄격한 이슬람 문화가 서려 있어 치안도 좋은 편이며, 풍경은 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가난한 마음으로 품어야 할 이들 또한 적지 않다. 봉사자들이 잔지바르를 사랑하는 이유다.
 
  5일간의 체류를 마치고 다시 다르에스살람으로 나왔다. 본격적인 라이딩을 다시 시작할 참이었다. 탄자니아의 제반 인프라는 아프리카에서 꽤 준수한 편이다. 구호 사업과 관광 산업이 가장 발달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나는 탄자니아의 내륙으로 들어가서 이것들을 좀 더 활용해 볼 필요가 있었다. 짐을 재정비하고 라이딩을 위한 점검도 모두 마쳤다. 나침반이 북쪽으로 향했다. 또다시 외로운 모험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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