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코마 인근 마을에서 봉사활동 중 말라리아 걸려
⊙ 근용·병무 두 친구와 헤어지고, 기연 합류
⊙ 모기장 나누어준다는 소문을 듣고 새벽길을 달려온 할머니, “모기장을 살 형편이 안 되는데,
하나만 받아가면 안 될까요?”
文鐘星
⊙ 30세. 전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6년간 약 80여 개국을 자전거로 여행하기로 마음먹고
2007년 5월 미국 뉴욕에서부터 자전거 세계일주를 시작. 북미와 중남미를 거쳐
현재 아프리카를 자전거로 여행 중.
⊙ 저서 : 《비전청년의 세계일주 - 자전거 타고 쿠바여행》 《라이딩 in 아메리카》
《일생에 꼭 한 번 가 봐야 할 곳, 멕시코》.
⊙ 근용·병무 두 친구와 헤어지고, 기연 합류
⊙ 모기장 나누어준다는 소문을 듣고 새벽길을 달려온 할머니, “모기장을 살 형편이 안 되는데,
하나만 받아가면 안 될까요?”
文鐘星
⊙ 30세. 전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6년간 약 80여 개국을 자전거로 여행하기로 마음먹고
2007년 5월 미국 뉴욕에서부터 자전거 세계일주를 시작. 북미와 중남미를 거쳐
현재 아프리카를 자전거로 여행 중.
⊙ 저서 : 《비전청년의 세계일주 - 자전거 타고 쿠바여행》 《라이딩 in 아메리카》
《일생에 꼭 한 번 가 봐야 할 곳, 멕시코》.

- 잠비아 현지 마을에서 친해진 아이들과 헤어지기 전 추억 만들기.
한쪽에선 수백 명의 마을 주민이 나와 밥을 짓고, 춤을 추고, 노래하며 이 밤의 여흥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야성미가 물씬 풍기는 구성진 그들의 노래 속에는 소외된 삶에 대한 회한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 데에 대한 고마움이 가락을 타고 전해졌다. 정말이지 아프리카 자전거 여행에서 처음으로 가슴 뭉클한 현지인 마을에서의 첫날밤이었다.
이날, 잠비아의 외딴 오지(奧地) 마을인 케즈와(Keezwa)에서는 새벽 미명에 이를 때까지 꺼지지 않는 떠들썩한 축제가 벌어졌다. 아무도 춤을 그칠 줄 몰랐다. 누구도 노래를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텐트에 들어가 눈을 붙이기 전까지 80여 명의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주려 애썼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불러주며 진짜 아프리카를 안아주고 있었다.
‘사마리아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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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호단체에서 파 준 우물은 현지인들에게 생명과도 같다. 우물물을 마시는 아프리카 어린이. |
‘공정여행’이란 한마디로 ‘불편을 의미 있는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는 여행’이다. 돈이 우선시 되는 여행자 본위의 합리적인 소비가 아닌, 현지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공정하고 착한 소비를 하는 책임 있는 여행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는 보다 적극적으로 그 의미를 적용하기로 했다. 공정한 소비를 넘어 공정한 나눔을 행하자는 것이다.
병무는 ‘나눔 더하기’란 봉사단체를 조직해 달동네에 사는 어려운 이웃에 연탄을 후원하는 일을 꾸준히 해왔다. 근용은 교회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봉사활동을 한 경험이 많다. 나 역시 이번 아프리카 모험이 단순한 여행을 넘어서는 여행이 되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셋의 의견은 한곳으로 모였다.
우리는 여행 경비를 기부하기로 했다. 맥도널드나 코카콜라 같은 제품의 이용을 가급적 삼가고, 고급 숙박시설은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텐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현지 부유층이나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고급 레스토랑보다 조악하더라도 현지인들이 직접 만들거나 재배한 길거리 음식을 먹는 등 현지인들에게 이득이 되면서도 친환경적인 소비를 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아낀 경비를 소외된 이웃에 적극적으로 나누어주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모토다. 바로 아프리카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인 말라리아로 신음하는 오지와 빈민촌에 모기장을 쳐주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성서》에 언급된 착한 사마리아인에서 힌트를 얻어, 여행하면서 이웃의 어려움을 무심히 지나치지 말자는 취지의 ‘사마리아 프로젝트(Samaria Project)’로 명명했다.
구호활동의 3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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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계 사회의 전통이 살아 있는 아프리카 마을엔 여자들이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
아프리카 구호 활동에 있어 꼭 필요한 세 사람이 있다. 오랫동안 교류해서 현지 사정에 밝은 선교사 혹은 구호단체 관계자, 마을의 질서를 다스릴 수 있는 추장(酋長)이나 종교 지도자 혹은 경찰, 그리고 도움 주려는 곳의 정보와 통역을 담당하는 현지 코디네이터가 그들이다. 이들이 유기적으로 잘 이어질 때 비로소 하나의 건강한 구호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여기서 어느 하나라도 빠져버리게 되면 오해와 불신이 초래되기 마련이다. 이 경우 일의 진척이 더디므로 열정과 의욕만으로 일을 추진하는 것은 되도록 삼가는 것이 좋다.
다행히 마을 사람들은 우리를 반긴다. 깊은 주름이 팬 고단한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미리 정보를 알았던 사람이 얼마 없었기에 신기하게 쳐다보는 이들도 많다. 불볕더위에 남자들은 다들 어디 있는지 얼굴 보기가 힘들고 온통 여자들이 일을 하러 나온 모양새다.
학교를 파하는 아이들은 몇 분 내로 100여 명이 몰려든다. 어디를 가나 10대들은 호기심 왕성하기 그지없다. 이들은 우리와 장난치며 노는 것이 좋은지 어울리며 까르르 웃을 뿐이다. 비록 교복은 다 해지고 남루하여도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박한 표정에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신기한 외국인과 악수 한번 하겠다고 자기네끼리 아옹다옹한다.
더 어린 아이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너무 낯설어 무서워 울면서 도망가는 쪽과 해맑게 웃으며 다가와 재롱을 부리는 쪽이 그것이다. 녀석들은 내 손을 자기 손으로 쓰다듬고 얼굴에 비비며 바짓자락을 붙들고 아양을 떤다. 그러고는 올려다보며 씩 웃는 모습이란. 아, 서릿발치는 기운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햇살과도 같다고나 할까. 제 젖을 새끼에게 물리는 어미 돼지의 마음이 느껴진다면 지나친 망상일까.
케즈와 마을의 축제
우리는 가가호호 들러 모기장을 직접 쳐주기 시작했다. 빈곤이란 말이 이렇게 피부로 와닿은 적이 없었다. 모기장을 치려고 들어선 공간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보호되지 못하는 척박한 현실에 뒷목이 뻐근해져 왔다. 고시원 방보다 약간 큰 공간에 햇빛도 들지 않고 가축들도 자유로이 드나든다. 이 협소한 공간에 보통 대여섯이 모여 산단다. 위생은 둘째 치고 맘 편히 다리 뻗을 공간마저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게다가 만성적인 식량난에 시달리니 누가 이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생수 같은 기적을 전해줄 수 있을까?
그나마 구호단체의 간헐적인 도움이 있기에 극히 적은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정부가 흩어져 사는 종족들에게까지 관심을 가져줄 리 만무하다. 그런 까닭에 물이 귀한 이곳에서 아이러니하게 이들의 눈물은 마를 줄을 모른다. 마음의 감정들이 온통 쇠붙이가 되어 슬픔과 절망으로 덧칠된 자석에 달라붙는다.
총 300개 이상 준비한 터라 모기장을 첫날에 다 설치하지 못했다. 우리는 텐트를 치고 마을 공터에서 잠을 잔 뒤 다시 작업을 재개하기로 했다. 날이 저물면서 마을의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흥얼흥얼 대던 무리가 곧 벌판으로 모여들었다. 노을이 지평선 너머로 숨어버릴 땐 모인 수가 200여 명에 이르렀다. 축제가 펼쳐졌다. 마을이 오랜만에 왁자지껄하다.
“축제를 여는 거예요.”
“무슨 축제인데요? 오늘이 무슨 특별한 날인가요?”
“아니에요. 그냥 당신네가 방문해 도와주는 것이 좋아 벌어지는 즉석 축제랍니다. 아마 밤에 불을 피워놓고 실컷 춤추며 노래할 거예요.”
사람들은 그간 집에서 단출하게 먹던 것을 떠나 공동으로 모여 서로 음식을 나누고, 즐겁게 담소 나누며 정취를 즐겼다. 정말이지 지치지도 않을까. 춤과 노래가 끊이질 않는다. 이들의 리듬감 넘치는 부족 노래는 흥겨운데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음이 애잔하게 느껴짐은 내가 너무 감성적이어서 그런가. 교교한 달빛 아래 아이들도 흥에 겨웠는지 내가 제의한 강강술래를 잘도 따라한다. 밤이 깊도록 자지러지게 웃는 소리가 그칠 줄을 모른다.
다음 날 우리는 케즈와에서의 남은 봉사일정을 마치고, 다시 소외 지역인 카젬바(Kazemba), 수수(Susu) 마을을 돌아 거리의 아이들을 돌보는 루사카 시내의 치소모 센터(Chisomo Center)까지 일주일에 걸쳐 모기장 설치와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쳤다. 매순간 열심히 땀 흘린 대가만큼 모두가 행복했다. 우리가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자 모두가 혜택을 받는 시간들로 가득 채워졌다. 여행이 점점 의미 있어지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酋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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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위 산골 장애인 마을에서 모기장 구호 활동을 하고 있는 필자와 최기연. |
아이는 두 손을 동그랗게 모아 오므리고 무릎을 살짝 굽혔다 다시 폈다. 도움을 주는 이에 대한 예의이며 중부 아프리카의 인사 문화다. 길을 가다 만난 아이들에게 종종 사탕이나 비스킷, 혹은 과일 따위를 주는데 아이들이 도움을 받을 때 모습은 너무 귀엽고 겸손해서 만면에 미소가 퍼진다. 그들이 낮은 톤으로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때는 오히려 내가 작은 도움을 주고 답례인사를 받는 것이 미안할 지경이다.
반대로 부족의 추장을 만날 경우 방문자는 무릎을 꿇어야 한다. 아프리카에 현대정치와 사회 시스템이 들어오면서 발전과 변화를 가져왔지만 수백 년을 이어온 의식까지 아직 다 바꾸지는 못했다. 추장이 관할하는 지역에서는 그의 권력과 명예가 국회의원 같은 정치인을 훌쩍 넘어선다. 추장을 만날 때에는 극진히 예(禮)를 갖추어야 한다. 대개는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하는데 이때도 추장의 얼굴을 바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을의 코리더(Co-leader)를 통해 절차를 밟으며 행해진다.
이때 추장이 “당신을 우리 마을의 손님으로 영접하겠다”라는 제스처를 취하면 비로소 정식 손님으로 인정받는다. 보통 가문 대대로 이어지는 마을 추장은 손님에 대해 환대하는 편이다. 하지만 관계를 맺기 위해 찾아온 외부인을 경시하면서 그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추장도 있다. 목적을 상실한 물질적 도움을 자꾸 받다 보니 고마운 마음도 갖지 않게 된다.
에티오피아 구호 때 처음 생겨난 것으로 전해지는 ‘원조 피로 증후군’이 그것인데 내 경우 시골에선 그런 볼썽사나운 일을 겪지는 않았다. 시골마을에는 아직 부족문화가 남아 있어 예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추장 대신 주술사나 이슬람·기독교 등 종교 지도자 등이 점차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아무래도 종교가 그들의 비루한 현실 속에서 마음의 안식을 제공하고 물질적 필요를 채워주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잠비아 아이들이 다소곳이 나와 깍듯이 대하는 모습과 손님의 방문을 흔쾌히 허락하는 추장의 넉넉한 배려를 보며 사라져가는 아프리카 부족 문화의 자투리를 경험할 수 있었다는 점은 다행이면서도 동시에 서글픈 일이었다.
말라리아에 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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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위 산골 마을 은코마의 작은 병원. 온통 말라리아에 걸린 아이들로 병원 밖까지 북새통을 이루었다. |
말라위에 도착했을 때 체력이 소진된 상태였지만 모기장 구호를 멈출 수는 없었다. 주저할 것 없이 즉시 말라위 호수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남쪽의 산골마을로 향했다. 그곳에서 모기장 250개를 소형 트럭에 실어 베이스캠프인 은코마(Nkoma)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각 가정마다 모기장을 설치하는 도중 몸에 이상이 왔다.
천만다행으로 근처에 작은 병원이 있어 그곳에서 치료받을 수 있었다. 말라위는 학교, 병원 등 공공시설 수준이 최악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 병원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장기(長期) 여행자에게는 위로가 된다. 만약 북부에서 몸이 좋지 않았다면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을 야기할 수 있었다.
이 외진 시골마을에는 수십 년 전에 서양 선교사들과 구호단체의 도움으로 조그만 병원이 생겼다. 병원은 온통 갓난아이들로 북적거린다.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아는 걸까? 사방에서 울음이 끊이질 않는다. 보자기에 아이를 싸고 전전긍긍하는 여자들의 표정엔 작은 기적을 바라는 간절함이 보인다. 진료실은 물론 병원 내부와 건물 바깥쪽까지 수백 명이 기나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모두 말라리아 의심 환자입니다. 진료를 받고, 양성(陽性) 반응을 보이면 치료를 받는 거지요. 한 해에만도 근처 마을에서 수백 명의 아이가 말라리아나 합병증으로 허무하게 죽어간답니다. 가장 심각한 건 HIV 바이러스에 감염된 아이들이 말라리아까지 중복 감염되는 것이지요. 이런 열악한 환경에선 대책이 없습니다.”
진료비도 문제다. 나에게는 한 번 진료에 5달러가 드는 비용이 적은 편이지만 이들에겐 며칠치 생활비다. 치료경비를 감당할 수 없거나 교통편을 마련하지 못하는 이들은 아예 병원행(行)을 포기한다. 더 심각한 건 말라리아 감염 의심조차 못하고 아무런 방책도 세우지 못하는 깊은 오지 마을의 실상이다.
빈곤 속에서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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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서민들의 주식이자 간식거리인 만다지. 기름에 튀겨낸 빵으로 우리 돈 50원에 하나다. 위생은 불결하지만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어디에서든 자주 먹게 되는 음식이다. |
직접 산골마을을 다녀보니 장애인이 부지기수다. 초기에 치료시기를 놓쳐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꽤 깊숙한 오지인 치부이(Tchibui) 마을에는 유니케(Eunike) 할머니 가족이 살고 있었다. 이 집 사람들은 대부분이 장님으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 스텝션(Steption) 할아버지는 집이 없어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잔단다. 산골이라 밤부터 새벽까지 웃풍이 상당할 텐데 심히 걱정이다. 마을에는 이들 말고도 팔과 다리 등에 장애를 가진 주민들이 수십 명이나 있었다.
모기장 설치 봉사를 하면서 장애인, 노인, 아이가 있는 가정을 우선순위로 배려하고 있지만 이곳은 그렇게 줄 세울 필요마저 없을 정도였다.
한번은 이른 새벽부터 웬 할머니 한 분이 숙소까지 찾아와 제 풀에 지쳐 주저앉았다. 한눈에 봐도 굶주리고, 야윈 행색이었다.
“어제 당신들이 우리 옆 마을에 모기장을 쳐준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도 모기장이 꼭 필요하답니다. 우리 집에 아이들이 여럿 있는데 모기장 하나 없어 너무 고생하고 있어요. 모기장을 살 형편도 안 되고요. 부탁인데 하나만 받아가면 안 될까요?”
어제 모기장을 쳐준 곳은 자전거로도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그 먼 곳에서부터 추위를 뚫고 새벽 걸음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아이들 걱정에, 단지 모기장 하나 받기 위해서. 할머니의 걸음은 헛되지 않았고 그 자리에 있던 우리 모두를 숙연케 했다.
은코마 마을은 아직 문명이 많이 유입되지 않아 때 묻지 않은 인심에 경치 역시 너무나 예쁜 마을이다. 모기장을 쳐주고 있으면 할머니들이 그들의 주식인 은시마(Nsima)를 대접하기도 하고, 내게 고맙다며 거친 주름 더 깊게 패게 웃으며 연방 손자처럼 꼭 안아준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내가 그들을 이해하고 포용하겠다고 교만하게 떠난 여행길에서 오히려 그들이 나를 기탄없이 가족으로 맞아주고 따뜻하게 배려해 준다는 사실을. 이들 때문에 나는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 내가 가는 길에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도와줄 곳으로 내가 갈 거라고. 모기장을 치는 내내 마을 축제마냥 뒤따라 다니며 노래를 불러주던 할머니들 덕에 말라리아 양성 판정을 받은 내 몸도 한결 회복되었다. 더 없이 불편한 몸에 삶마저 빈곤하지만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그들의 노랫소리가 아직도 선연하게 기억난다.
“njo, njo, njo mwayesu muli chimwemwe, aleluya(기쁘고, 기쁘도다. 주 안에서 기쁘도다. 이것이 행복일세, 할렐루야)!”
이후 은코마를 중심으로 외부인이 쉽게 들어가기 힘든 산간마을 음제레마(Mjerema), 캄판딜라(Khampandila), 음팡가(Mphanga), 치부이 오지 지역에 설치하는 것으로 모기장 구호 사업을 갈무리했다.
이별과 만남
함께 라이딩을 해온 근용, 병무와 헤어질 시간이다. 남아공(南阿共)에서부터 벌써 4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처음 동행 약속이 중부 아프리카까지였다. 이제 서로 다른 길을 갈 때다. 라이딩 중 사고를 당해 몸이 완전치 않은 근용은 말라위와 우간다, 잠비아를 돌며 봉사활동을 하다가 유럽으로 나갈 예정이다. 병무는 말라위 봉사활동을 조금 더 한 다음 탄자니아를 거쳐 바로 한국으로 떠날 것이다.
대신 또 다른 여행자 한 명이 동행을 자청해 왔다. 여행과 봉사를 병행하고 싶다는 스물다섯 청년 최기연이다.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Working Holiday·나라 간에 협정을 맺어 젊은이들로 하여금 여행 중인 방문국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는 제도)를 하고 있던 그는 우리 소식을 듣고 단번에 합류를 결심했단다. 이미 그와는 짐바브웨에서부터 동행했었다. 적응기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같이 다닌 건 잠비아에서부터다. 성격이 쾌활하고 붙임성 좋은 그는 잠비아에서 한 달간 건축봉사를 하거나 모기장 구호활동을 할 때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젠 그와 둘이서 종주해야 한다. 근용과 병무 두 사람과는 다시 볼 것을 약속하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둘이서 떠나는 길, 이제 새로운 환경이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말라위 호수는 남북으로 580km 길이로 형성되어 있으며 말라위 국토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다. 바다가 없는 말라위에서는 이 호수를 삶의 터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아직도 호수 민물고기를 잡아 훈제로 만들고 기름에 튀기거나 아니면 잡았던 그 상태 그대로 길거리에 내다 파는 상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나는 말라위 호수변도 좋지만 섬에 가고 싶었다. 호수 한가운데 위치한 리코마와 치주물루 섬에서 호숫가를 바라보며 독서하는 황홀한 망중한(忙中閑)을 누리고 싶었다.
여행 중 음악을 듣는 것은 몸의 균형을 깨는 일이다. 모든 신경과 감각 기관이 자연과 교감하기 위해 반응하는데 귀만 인위적인 기계음 소리에 밸런스가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진짜 자전거 여행을 하고 싶다면 볼륨을 꺼야 한다. 공해 없는 상큼한 녹색 바람을 가르니 라이딩이 거칠 것이 없다. 호수 길을 달리며 말라위 호수 주변에 위치한 가장 큰 도시인 은코타코타(Nkhotakota)에 도착했다. 섬에 가려면 이곳에서 배를 타야 하는데 간밤에 이미 떠났단다.
다우선 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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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주물루 섬에 사는 한 어부가 물고기를 잡아 말리고 있다. 대개는 정기선을 통해 뭍으로 내다 판다. |
하룻밤 아늑한 잠자리를 제공한 현지 장로교 목사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은카타 베이는 수상교통의 요지다. 말라위 호수를 통해 인접한 탄자니아, 모잠비크, 그리고 섬들을 가려면 이곳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배낭여행 왔다가 우연히 들른 이곳이 좋아 아예 빅 블루 로지(Big blue lodge)라는 게스트 하우스를 차린 영국인 부부는 섬으로 가는 여러 정보를 알려준다.
“치주물루(Chizumulu) 섬에 가는 배가 두 척이 있는데 하나는 다우(Dow)고, 하나는 정기선입니다. 가격은 다우선이 더 싼 대신 속도가 느리고, 정기선은 가격은 다양하지만 밤에 출발합니다.”
“어휴, 다우선은 절대 안 돼요. 어찌나 풍랑에 이리저리 휩쓸리던지, 정말 타다가 객귀 될 뻔했지 뭐예요. 절대 추천하고 싶지 않네요.”
옆에서 대화를 듣던 한 여행자가 커피를 입에 대기 전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젓는다. 과연 다우선은 그 명성 그대로다. 여행자들의 배낭과 자전거를 싣고, 사람들이 하나 둘씩 타기 시작하자 배가 만재홀수선을 훌쩍 넘어 가라앉아 버렸다. 게다가 배 안으로 물이 차올랐다. 가뜩이나 워터포비아(Waterphobia·물 공포증)가 있던 난 혼비백산해 급히 자전거를 빼냈고, 상황을 주시하던 다른 서양 여행자들도 기겁하며 승선을 취소했다. 다우선으로 치주물루 섬에 가려 했던 8명의 여행자 모두 정기선으로 갈아타기로 했다. 선주는 뒤늦게 “문제 없다(No problem)”를 외쳤지만 이미 신뢰를 잃고 물 건너간 뒤였다.
이-메일 주소를 달라는 로즈
밤 10시가 넘어 정기선 일라이라(ILAILA)호가 출항 기적을 울린다. 산더미만 한 바나나와 각종 박스, 공산품들을 배에 빼곡하게 실으니 출항시각이 1시간이나 늦어진다. 나와 기연은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퍼스트 클래스가 아닌 화물칸 티켓을 끊은 터라 짐에 섞여 있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갑판에서 시원한 호수바람에 잠을 청하는 낭만을 그렸지만 어디서부턴지 스멀스멀 역한 냄새가 올라오고, 수십 명이 뒤엉켜 자니 도난에 대해서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게다가 배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최악의 잠자리가 예상된다.
평소 수영을 잘해 라이프 가드(Life Guard) 자격증까지 취득했으면서도 배만 타면 멀미가 있던 기연은 요동치는 배 위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연방 호수에 구토를 해댄다. 현지인들은 고생하는 이방인의 모습에 깔깔거리면서도 차분히 쉴 수 있도록 누울 자리를 마련해 준다. 나 역시 구토만 없을 뿐이지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었다. 아프리카의 3대 호수가 파도가 거세 사고가 많다는 얘길 들었는데 절절이 공감되는 상황이다. 깊은 밤으로부터 동 트는 새벽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겪어보지 않고서는 그 고통을 모른다.
마침내 섬이 보인다. 일라이라호는 수심이 얕고 항구가 없는 섬에 정박하지 못하기 때문에 작은 배로 한 번 더 이동해야 했다. 뭍에 닿을 때 짐이 젖지 않게 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도와주겠다고 한다. 자전거와 짐들이 워낙 많은 이방인이 멀고 먼 이곳까지 고생하며 온 것에 대해 현지인들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발동한 것이다. 팁을 바라는 게 아니다. 마음이 순수한 것이다.
나는 그중 한 여자아이의 손을 잡았다. 녀석은 말없이 내 가방들을 호숫가로 안전하게 옮겨주었다. 그리고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부모에게 간다. 나는 아이를 붙잡았다.
“이건, 일에 대한 대가가 아니야. 네 꿈을 위해 투자하는 거야.”
영어가 서툰 아이는 알 듯 모를 듯 미소를 짓는다. 그러면서 호기심 어리게 말을 꺼낸다.
“제가 편지 보낼 주소 있어요? 아니면 이-메일(E-mail) 주소라도요.”
“응, 이-메일 보낼 주소는 있단다. 그런데 너 인터넷 사용할 수 있니? 이-메일이 있어?”
“아니요. 호호.”
로즈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아이는 뭔가 기념이 될 만한 흔적을 갖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고작 수십 가구가 사는 작고 조용한 섬에 인터넷은 고사하고 컴퓨터조차 있을 리 만무했다. 나는 로즈에게 먹을 것을 더 얹어주며 수첩 한 장을 찢어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었다. 녀석의 환한 표정에 콧등이 시큰해진다. 친구들은 부러움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로즈는 종이를 받자마자 깔깔거리며 친구들과 함께 글씨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석양의 바오밥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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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주물루 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오밥 나무. |
“맙소사! 이 바오밥 나무들 좀 보라고!”
소설 어린 왕자 덕분에 유명해진 바오밥 나무가 섬 전체에 위풍당당 서 있다. 제멋대로 걸어다니다 이 장면을 본 신(神)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바오밥 나무를 거꾸로 심어 뿌리가 하늘로 뻗었다는 전설처럼 퍽 재미있는 형상이다. 그러나 가볍지 않은 아우라(예술작품에서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다. 아프리카의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며 자라는 나무라 그런지 어딘지 모르게 위로가 된다. 사실 아프리카 부족들이 신성시하는 이 영험한 나무를 보기 위해 수많은 여행자가 마다가스카르나 빅토리아 폭포 주변을 찾는다. 그러나 그럴 기회가 없었던 나에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다.
정말 오랜만에 자연 속에서 게으른 여유를 부리며 하루종일 섬 주변을 산책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휴식을 취했다. 문명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행복이나 불편함을 내가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으리라. 두어 시간이면 섬을 한 바퀴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크기가 작다. 온 섬을 둘러 열을 지어 서 있는 바오밥 나무의 경치가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리코마 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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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위 호수를 여행할 때 이용하는 다우선. 조악하기 그지없으며 종종 전복사고가 일어난다 한다. 나는 2배의 요금을 지불하고서도 구명조끼를 지급받지 못했다. |
역시나 예정보다 세 시간 늦게 출발한다. 딱 봐도 안정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노후한 다우선이다. 자전거를 포함한 승선비를 놓고 지루한 논쟁을 거친 끝에 현지인 가격의 2배를 주기로 했다. 그러고 난 후 불현듯 부끄럽고 허탈했다. ‘겨우 우리 돈 1000원 차이로 고생하는 뱃사람과 꼭 소모적인 논쟁을 해야 했을까’ 하는 자책이 들어서다.
그런데 승선하고 나서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파도가 거칠게 이는 데다 배가 노후해 뒤집힐 위험이 있었다. 선주와 사공, 조타수 그리고 현지인 승객 몇몇은 어디서 구했는지 태연하게 구명조끼를 착용했다.
“이봐요, 나는요? 나는 수영할 줄 모른단 말이오!”
“허허, 미안하지만 나 역시 수영을 하지 못해요. 유감이군요.”
“하지만 난 손님이잖아요. 뱃삯도 두 배나 내지 않았소?”
“배가 뒤집히면 그깟 돈이 중요하겠어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대꾸하는 사공이 얄밉기만 하다. 수평선을 바라보던 수영도사 기연도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형님, 배가 뒤집히면 우리는 그냥 남남인 겁니다. 제 이름 부르지 마세요.”
배가 섬으로 향하는 동안 뱃전에 파도가 넘쳐와 온몸을 적시고, 배 안으로 물이 찬다. 현지인들은 언제나 그랬다는 듯 익숙하게 바가지로 물을 퍼내고 경치를 감상하는 경지이지만 정말이지 워터포비아인 내 얼굴은 사색이 된다.
아담하고 고즈넉한 치주물루 섬에서 리코마 섬으로의 이동은 다시 문명의 혜택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치주물루 섬에 비해 리코마 섬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거주한다. 추산으로 약 5000~7000여 명 정도 되는데 학교와 교회가 있고, 인터넷이 가능하다. 게다가 비록 조악하기는 하지만 천연 활주로가 있어 경비행기가 뜨기도 한다. 정기 취항 없이 위급한 상황 때 이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섬은 찾아오기 위해 오랜 시간과 많은 경비를 투자해야 하고, 산 넘고, 물 건너 불편한 루트를 거쳐야 닿을 수 있는 오지 중의 오지다. 더불어 자전거를 타지도 못하고 밀면서 산을 넘어야 하니 땀과 눈물 없이는 닿을 수 없는 험준한 지형이다. 그래서였을까. 고생 끝에 낙이 있었다. 이것이 여행의 순리다. 우리는 이 섬에서 우연찮게 특별한 이를 만나게 되었다.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진 빈곤한 이 섬에 학교를 세우겠다는 꿈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는 벨기에 출신 여인 조세가 자비로운 표정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