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츠와나 프랜시스타운에서 남아공 출신 무슬림 나짐·임티아즈와 만나
⊙ 임티아즈, “자유를 주는 것보다 있을지 모를 사고를 예방하는 게 더 중요”
⊙ “가장 중요한 것은 알라의 뜻에 따라 남편과 사랑하며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
(불라와요에서 만난 무슬림 여성 수산나)
文鐘星
⊙ 30세. 전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6년간 약 80여 개국을 자전거로 여행하기로 마음먹고
2007년 5월 미국 뉴욕에서부터 자전거 세계일주를 시작. 북미와 중남미를 거쳐
현재 아프리카를 자전거로 여행 중.
⊙ 저서 : 《비전청년의 세계일주 - 자전거 타고 쿠바여행》 《라이딩 in 아메리카》
《일생에 꼭 한 번 가 봐야 할 곳, 멕시코》.
⊙ 임티아즈, “자유를 주는 것보다 있을지 모를 사고를 예방하는 게 더 중요”
⊙ “가장 중요한 것은 알라의 뜻에 따라 남편과 사랑하며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
(불라와요에서 만난 무슬림 여성 수산나)
文鐘星
⊙ 30세. 전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6년간 약 80여 개국을 자전거로 여행하기로 마음먹고
2007년 5월 미국 뉴욕에서부터 자전거 세계일주를 시작. 북미와 중남미를 거쳐
현재 아프리카를 자전거로 여행 중.
⊙ 저서 : 《비전청년의 세계일주 - 자전거 타고 쿠바여행》 《라이딩 in 아메리카》
《일생에 꼭 한 번 가 봐야 할 곳, 멕시코》.

- 짐바브웨 횡단 중에 포즈를 취한 일행. 좌로부터 강병무, 나짐, 필자, 임티아즈, 이근용.
장엄한 빅토리아 폭포의 경치를 감상하고 다시 현지 미니버스인 콤비를 타고 프랜시스타운으로 내려왔다. 곧 떠나기 위한 준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수리점에 들러야 했다. 보츠와나 제2의 도시지만 아프리카 상황이 다 그렇듯 부품 구하는 것마저 확신할 수 없다. 거리를 봐도 모두 ‘쌀집 자전거’를 타지 나처럼 전문 MTB로 다니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이 좋았다. 만약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시내에 나와 현지인들에게 묻고 또 도움을 얻어가며 두리번거리기를 20분여. 드디어 원하는 부품이 정갈하게 전시된 자전거 전문점을 발견한 것이다.
“오, 세상에. 이곳에 이런 자전거점이 있다니요?”
“하하, 아프리카 대륙 종단하는 라이더들이 늘상 들르는 곳이지요. 그래, 무슨 문제 때문에 왔습니까?”
넉넉한 풍채에서 나오는 여유로운 웃음을 띠며 남자는 물어왔다. 남자에게 문제를 설명하자 가볍게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매장 안 수리하는 공간으로 끌고 들어간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다지 어렵지 않게 수리할 듯싶었다. 옆에는 아랍계로 보이는 두 청년이 잡담을 나누며 자전거를 점검하기 위해 서 있었다.
크리스천, 무슬림을 만나다
“수리하러 왔나 봐요?”“네, 점검차 들렀어요. 우린 아프리카 종단 중이거든요.”
“맙소사, 나도 그래요! 친구들과 아프리카를 자전거로 여행 중이에요.”
뜻밖의 만남이었다. 두 청년은 단순한 자전거 수리가 아니라 대륙 종단을 위해 종합 점검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모험을 즐기는 열혈청년, 우린 마음이 금방 통했다. 나짐(Nathim)과 임티아즈(Imtiyaz)는 남아공(南阿共) 출신의 아랍계 청년들이다.
“남아공에서 수단까지 갔다가 그곳에서 배를 타고 다시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로 향할 거예요. 도착하는 디 데이(D-day)가 바로 라마단(Ramadan) 기간이거든요. 중간 중간 무슬림들을 만나 교제하고, 유적지도 돌아보려 해요. 그러니까 우리 자전거 여행의 목적은 순례지요. 인샬라(Insha'Allah, 알라의 뜻대로).”
라마단 기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방문한다는 것은 무슬림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이자 축복인 동시에 신성한 의무이기도 하다. ‘타는 듯한 더위와 건조함’을 뜻하는 ‘라미다(ramida)’ 또는 ‘아라마드(arramad)’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는 라마단은 이슬람 최대 축제일 중 하나다. 그 기간 동안 경건한 무슬림은 하루에 5번 기도하는 것 외에 모스크(Masjid)에 매일 가며, 코란을 읽고 기도하는 일에 하루의 주요 시간을 사용한다.
초승달이 떠오를 때 시작하여 30일 후 다시 초승달이 떠오를 때까지 진행되는데 특별히 그들은 ‘밤 기도(Taraweeh Prayer)’라 불리는 특별한 기도서를 암송하면서 다섯 차례의 예배 중 첫 번째와 네 번째 예배인 새벽 예배부터 저녁 예배까지 사이에는 경건한 의무인 금식(禁食)을 한다. 이 시간 동안 천국문이 열리고 지옥문이 닫히며 누구든지 금식에 참여하는 자는 과거의 모든 죄를 거의 다 용서받는다고 믿는다.
나짐과 임티아즈는 아직 이십대 초중반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금 더 알라의 뜻을 분별하고 은총을 입기 위해 자전거 순례를 택했단다. 여행과 신앙을 접목시켜 의미 있는 도전을 결의한 것이다.
“손님에게 베푸는 것이 이슬람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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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딩을 하다가도 기도 시각이 되면 멈춰 기도하는 나짐과 임티아즈. 우리는 그 시간에 맞춰 휴식을 취했다. |
“우리는 짐바브웨로 향할 예정입니다. 불라와요(Bulawayo)를 지나 하라레(Harare)로 가려고요.”
“저도 그쪽입니다!”
“그래요? 같이 가면 좋을 텐데요.”
급작스레 분위기가 훈훈해진다. 낯선 땅에서 서로 기댈 수 있는 동지를 만나는 건 기쁨이다. 더구나 우리 쪽은 세 명이지만 경험이 일천해 여전히 아프리카 치안 상황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는 중이었다. 짐바브웨 동반 횡단에 관한 의견조율이 급물살을 탔다.
“우리는 언제나 환영합니다. 함께 가고 싶다면 주저 말고 연락주세요. 우리와 함께 가는 길에 무슬림들을 만나면 횡단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행여 립서비스라 한들 종교를 넘어 말이라도 고마울 따름이다. 나짐은 수첩의 한 귀퉁이를 찢어 자그마하게 자신의 연락처를 적어주었다. 수많은 인연이 이런 식으로 만나고 헤어지지만, 인연이 지속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이들과 동행하기를 꿈꿨다.
이윽고 수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는데 수더분한 인상의 주인이 손을 내젓는다.
“당신에게 돈을 받지 않겠습니다. 힘든 여정을 하는데 이거라도 작게 도와야죠. 알라의 자비가 그대에게, 인샬라!”
“이게 우리 무슬림의 문화입니다. 손님에게 베푸는 거죠. 알라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친구에게 결코 사기를 치거나 장사하며 돈을 바라는 법이 없습니다.”
임티아즈가 자랑스럽게 말한다.
나는 갑작스런 도움이 낯설었다. 식사 때가 가까워 와서 그런지 헛헛한 배가 채워지는 충만한 기분이었다. 아랍 상인 하면 유대인과 더불어 이재(理財)에 밝고, 상황을 이용한 술수가 능한 줄 알았건만 그런 편견을 말끔히 씻어준 고마운 경험이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멋진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네요.”
악수를 나누고 헤어질 때 가볍지만은 않은 인연의 끌림이 다음 여로를 암시한다. 두 친구를 길에서 다시 마주할 수 있을까. 기분 좋은 불확실성을 움켜쥔 채 나는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두 무슬림 친구와 함께 횡단하자는 의견에 대해 동행자인 근용과 병무는 신중했다. 의논 끝에 나와 근용이 나짐과 임티아즈를 만나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무슬림 친구들과 짐바브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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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무슬림 친구들. 좌측 위부터 이근용, 임티아즈, 아딜, 현지인 친구, 강병무, 현지인 친구, 필자, 싸르왓, 현지인 친구, 나짐. |
나짐과 임티아즈를 다시 만났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그들이 머물고 있는 모스크. 생전 처음 방문한 생경스런 이슬람교 회당(會堂)이다. 그들은 모스크에서 숙식하고, 코란을 읽으며, 시간마다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실내에 들어선 우리는 다시 건물 내에 설치된 간이 목욕탕에서 수족을 깨끗이 씻었다. 자신의 몸을 깨끗이 하고 알라 앞에 정결하게 나아가야 된다는 이유다.
“물 한 방울도 알라 뜻대로 써야 합니다. 낭비는 절대 안 되지요.”
점심 초대라 우리는 그들의 방식대로 식사를 했다. 고기와 야채, 빵과 통조림 음식을 깨끗이 씻은 오른손으로 먹는다. 왼손은 부정(不淨)한 의미이므로 되도록 일상생활에서라도 사용을 절제한다. 음식은 간소하지만 손님에 대한 예(禮)가 담겨 있음이 느껴진다. 여행자가 여행자를 대접하는 데 음식의 질을 논하는 것만큼 방정맞은 게 없다. 물 한 잔도 고마워하는 것이 길 위의 인연들의 인지상정이다.
무슬림 식으로 대했지만 그리 낯설지가 않은 고마운 점심 대접이었다. 다음 날 나짐은 나와 근용이 가는 현지인 교회에 마중 겸 따라왔다. 크리스천이 무슬림 회당으로, 무슬림이 교회로 오가는 가운데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꽤 괜찮은 그림이 나올 성싶었다. 서로 악수를 건네면서 육중한 신뢰가 오갔다.
며칠 후, 우리 일행은 나짐, 임티아즈와 함께 짐바브웨 국경을 넘어 인근 마을인 플럼트리(Plumtree)에 당도했다. 훅훅 덮치는 열기로 고생했으나 보츠와나 무슬림 친구들의 전폭적 지지와 배려로 어렵잖게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함께하자는 약속이 이뤄진 것이다. 짐바브웨에서의 첫날 숙소는 모스크다. 우리는 그들을 따르기만 하면 되었고, 둘이서 숙소를 섭외했다. 특별히 무슬림들은 손님 접대를 귀하게 여기기에 이들은 이슬람 커넥션을 십분 활용했다. 여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아프리카의 밤중에 나짐과 임티아즈의 리드는 밤바다의 등대 같은 것이었다.
시인 이상(李箱)의 표현을 빌리자면 벌레가 무도회의 창문을 열어놓은 것처럼 왁작 요란스러웠다. 바깥은 고즈넉했고, 문을 열면 곤충 오케스트라가, 닫으면 왱왱거리는 모깃소리가 밤의 침묵을 깨곤 했다. 우리는 모스크 별관에 딸린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식사는 간단한 통조림과 빵으로 해결했고, 수압이 약한 수도에서 겨우 얼굴과 발을 씻고, 양치질하는 걸로 세면을 끝냈다.
식사 후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우리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5명의 리더로 나이가 가장 어린 임티아즈를 선정했고, 우리는 그의 지휘에 따라 움직이기로 했다. 리더는 나이와 언어를 넘어 팀원들을 독려하고 포용할 수 있는 점에 주안을 두었다. 무엇보다 서로의 종교에 대해 인정하고 배려하는 시선을 가지면서 원활한 의견교환이 이루어지고 있음이 고무적이었다.
파울로 코넬료를 좋아하는 임티아즈
자유시간에는 각자 주제를 찾아 따로 대화를 하는데 근용은 나짐과 여행 얘기를, 나는 임티아즈와 주로 신앙 얘기를 주고받았다. 처음 격식을 갖추던 우리는 어느새 친구처럼 친해져 있었다. 막내 병무는 중간에서 열심히 귀동냥을 하며 부지런한 성격대로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주변정리를 해나갔다.
“코란(Quraan)의 중심 내용은 한마디로 ‘신(神)은 알라만이 유일하다(No God except Allah)’야. 이것은 우리에게 경건한 신앙심을 요구하지.”
“성경도 마찬가지지. 유일신(唯一神)을 믿기 때문에.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이 있어 그것에 힘쓰려고 노력해. 사랑을 특히 강조하는 게 기독교지. 그렇게 살지 못하니 그렇게 살기 위해 신자들은 치열하게 살아야 하기도 하고.”
“우리도 그래. 알라는 모든 이가 평화롭기를 원해. 사실 기독교와 싸우는 게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아. 얼마든지 형제처럼 지낼 수 있는데 말이야. 가끔 과격한 무슬림들로 인한 사건을 보며 난감할 때가 있어. 그들 때문에 오해를 받는 게 유감이야.”
“나도 동의해. 다원주의(多元主義)는 아니지만 다르다는 이유로 아예 반대편의 사람들을 적대시하는 건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이 아닌 거라 생각해.”
탕아적(蕩兒的) 매력이 물씬 풍기는 임티아즈는 손에 들고 있던 파울로 코넬료의 책 《순례자》(The Pilgrimage)를 잠시 덮어두고는 나와 시선을 맞췄다.
“난 파울로 코넬료의 깊은 사색과 깨달음이 좋아. 종교를 넘어서 그가 왜 순례하는지 알고 싶어. 다른 근본주의 무슬림이라면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는 나에게 영감(靈感)을 주곤 해. 여행을 하면서 이 책이 나에게 위로를 주는 말이 있어. ‘최선을 다해라, 어차피 죽음은 피할 수 없으니 잃을 건 없다(Do the best, you have nothing to lose, Death is inevitable).’ 내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야. 무언가 잃기가 두려워 망설인다면 결국 다 잃게 되는 거지.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망설일 필요가 뭐가 있어? 끝까지 해보는 거지!”
그는 코란에서 자신의 신앙 정체성(正體性)을, 코넬료의 문학작품에서 인생의 방향을 찾는다고 고백했다. 다시 신앙 얘기로 돌아와 그는 무슬림들의 작금의 세태를 꼬집었다.
임티아즈, “젊은 무슬림 보며 위기감 느껴”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해. 요즘 젊은 무슬림들을 보며 가끔씩 위기감을 느껴. 옷차림도 야해졌고, 길거리에서는 심심찮게 스킨십을 보게 돼. 이건 심각한 문제야. 자유를 주는 것보다 혹시 있을지 모를 사고를 미리 예방하는 게 더 중요해. 왜 여성들이 히잡을 두르는데?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태우는 일도 잦아졌어. 게다가 채팅 사이트를 통해 이성(異性)을 만나면서 신앙심이 약해지거나 다른 종교의 사람과 사귀는 일이 많아졌지. 율법이 생활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거야. 너무 자유주의라고. 경건해야 할 기도시간에도 다 자기들 편의대로 일 보기에 바쁘지.
그뿐만인 줄 알아? 너도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그래. 미국은 세계의 평화주의자를 자처하고 있지만 정말 이기적인 집단이기도 하지. 미국 때문에 나쁘게 묘사되는 아랍권이 ‘공공(公共)의 적(敵)’이 되고 있어.
여기서 억울한 것이 있어. 그에 대한 반대급부인 테러리스트들 때문에 이슬람교의 이미지가 실추된다는 거지. 우린 그런 식의 대응을 원하지 않아. 다수는 평화적인 협의를 원해. 냉정하게 보면 그들은 절대 무슬림이 아니야. 미국도 이슬람 테러리스트도 다 옳지 못한 길을 걷는 거야. 과격 무슬림 단체나 미국이나 모두 우릴 그냥 평화롭게 내버려뒀으면 해.”
나는 여러 얘기 중 이슬람교 내에서 억압의 이미지인 여성의 권리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괜한 논쟁이 될 것 같아 넌지시 질문의 물꼬를 바꾸었다.
“그렇다면 네 이상형이 뭔데?”
“난 말이야, 배우자를 볼 때 네 가지를 봐. 우선은 건강해야 하고, 다음으론 가풍(家風)을 보지. 전통적인 이슬람교를 믿는 가족이어야 해. 또 코란을 잘 알고 실천하는 지혜로운 여성이길 바라. 무슬림이 아니라면 어떤 조건이라도 함께할 수 없어. 내 확고한 신념이야.”
“그리고?”
나는 매의 눈으로 그의 표정을 살폈다. 살짝 머뭇거리던 임티아즈가 쑥스러운 듯 입을 연다.
“사실, 예쁘면 좋겠지.”
“남잔 다 똑같네. 본심은 다른 곳에 있었군. 하하하.”
임티아즈와의 얘기는 이쯤에서 끝났다. 기분 좋게 피곤하고 들뜬 밤을 맞이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 그가 가르쳐준 현지어들을 조용히 읊조렸다.
“안녕(Mhoro). 어때(Unofara here)? 좋아(Ndinofara). 내 이름은 문입니다(Lena la me ke Moon). 한국에서 왔습니다(Ke tswa Korea). 가게 어딨어요(Shopo e khe)?”
野都 불라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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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머물렀던 불라와요 시내 모스크. 안에 숙소가 있고 예배실도 따로 있었다. |
“원래 불라와요가 교통과 상업을 위시로 한 경제 중심지였지요. 그런데 독재자 무가베가 수도(首都) 하라레에 자신의 역량을 집중하면서 찬밥 신세가 된 거 아니에요? 더구나 이곳 사람들이 무가베 정권과 정책을 반대하다 보니 더욱 소외되어 가고 있지요. 무가베도 처음부터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었겠지만, 지금은 실책(失策)이 너무 많습니다. 너무 폭압적이에요.”
우리를 초대해 준 불라와요의 이맘(무슬림 지도자)과 노장들은 식당에 걸린 무가베의 사진을 흘겨보며 못마땅해했다.
불라와요에 도착하자 연이어 성대한 만찬(晩餐)이 열렸다. 첫날엔 모스크에서 만난 무슬림 동지들이 환영인사를 전하며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해 주었고, 둘째 날부턴 무슬림 청년들을 만나 교제하는 시간이 늘었다. 그중 독실한 무슬림이자 엔지니어인 아딜(Aadil)과 핸섬가이 아이 아빠 싸르왓(Tharwat)과 우정을 쌓으며 기분 좋은 휴식을 취했다.
“난 한국 역사에 관심이 많아. 세계 지리를 배우면서 남북이 분단된 비극적인 이유와 평화적인 교류가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 엔지니어로 지내면서 일 때문에 아시아에 몇 번 가본 것 때문에 관심이 많아졌어. 실은 극동(極東)보단 사우디로 이민을 갔으면 해. 유럽이나 아시아보다는 적응하기 수월하고 문화와 말도 통하니까.”
불라와요의 만찬은 사흘 내내 이어졌다. 천방지축 장난꾸러기 아들을 돌보는 싸르왓은 집으로 두 번이나 초대해 주었다. 5명이나 되는 일행을 다 챙기기 버거울 텐데도 그는 기쁨으로 맞이했다. 무슬림의 손님 접대에는 보통 여자들의 노고가 따른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일견 고단해 보일 법한 여자들이 오히려 자신의 삶을 감사하고, 인정한다는 것이다. 손님상 차리느라 주방에서 바쁘게 진두지휘하는 인도에서 온 수산나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간혹 이슬람은 여성에게 너무 가혹하고 폐쇄적이라는 얘기를 합니다. 그건 알라의 말씀인 코란을 잘못 해석한 겁니다. 여성은 가정을 위해 코란에 명시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의무가 있고, 항상 몸을 정결히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마냥 가정에만 틀어박혀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도 여성끼리 따로 모여 여성들이 어떻게 사회 발전에 참여하고, 알라의 뜻을 어떻게 경건하게 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토론하곤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알라의 뜻에 따라 남편과 사랑하며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이지요. 이 역할만 해도 그리 작지 않은 겁니다. 나는 지금 내 삶이 매우 행복하거든요.”
이때쯤 나짐이 병원에 갔다. 단기간에 합당한 영양 상태를 유지하지 못한 채 무더위를 뚫고 오느라 체력 소모가 컸고, 백혈구 수치 저하 문제로 휴식이 필요했다. 열이 나고 힘이 없는 증상이었다. 회복 주사를 맞고 약을 받아갔다. 지난 며칠간은 우리 중 누구라도 이 증상이 나타나도 이상할 게 없는 고된 여정이었다. 나짐의 진료를 핑계로 잠시 인터넷을 하러 갔는데 시간당 2.5달러다. 1시간 동안 딱 메일 하나 확인하고, 메일 한 통 보냈다. 속도가 예술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여기는 ‘잠자는 거인’(Sleeping Giant) 아프리카다. 아프리카의 희망찬 내일을 의심하진 않는다. 다만 그나저나 잠에서 언제쯤 깨어날까?
“나는 미스 짐바브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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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을 미스 짐바브웨라고 소개한 간이 수퍼마켓 직원 야라조. |
길을 가다 중간에 쉬는 시간. 모두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 주기적으로 1시간에 10분씩 시간을 내 쉬고 있다. 마침 작은 간이 수퍼가 있어 물로 목을 축이고, 비상식량으로 허기를 달래고 있었다. 그런데 안의 분위기가 봄날 벚꽃 흐드러지듯 들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여직원이 웃음을 흘리며 계산대에 있는 것이다. 야라조(Nyaradzo)라는 그 여성은 25세 된 자칭 ‘짐바브웨형 미녀’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미스 짐바브웨 출신이에요.”
“글쎄, 미스 짐바브웨라고 하기엔 얼굴이 좀 아니올시다인데. 게다가 한적한 도로변 작은 마켓에서 일하는 것도 이해가 가질 않아.”
생글생글한 말투와 살가움에 착해 보이긴 했지만 아프리카 특유의 분위기 띄우기용 거짓말이라 생각했다. 나는 일행에게 넌지시 대꾸했다. 그러나 일행은 이미 이 여인의 매력에 빠져 있었다. 율법의 엄격함을 자랑하던 나짐과 임티아즈는 스킨십도 마다 않고 같이 사진을 찍는가 하면 근용과 병무 역시 그리 싫지 않은 듯 곁에서 포즈를 취한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과일 주스 한 통에 5불(弗)이면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흑인 미녀 대하고자.>
시내와 비교해도 거의 두 배 가격인 과일 주스 한 통을 거리낌없이 구입한다. 하루 생활비가 5달러인 나에게 이런 사치는 쉬이 납득가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분위기는 이미 그깟 돈이 중요시되는 게 아니었다. 교태(嬌態)라고 보기엔 조금 어색한, 애교(愛嬌)라고 하기엔 조금 진한 모션 속에서 그녀는 분명 다들 외국인이라고 배짱을 피운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녀는 우리가 10분 쉬기로 하던 계획을 바꿔 아예 점심식사를 할 때 슬그머니 옆에 오더니 태연하게 통닭을 받아먹는다. 거기에 소시지와 감자볶음을 더한 샌드위치까지 당연한 듯 같이 먹는다. 임티아즈가 농담으로 식사 값 5달러를 달랬더니 자신은 그런 일 없다며 약간 일그러진 표정으로 손사래를 친다. 꽤 재미있는 캐릭터다. 사실 나는 그녀의 허세가 못마땅했지만 모든 것을 여유롭게 즐기는 일행의 분위기를 깨긴 싫었다.
“나는 미스 짐바브웨 출신이에요.”
이 말을 열 번은 듣고서야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자신의 경력을 자주 강조하는 게 못 미덥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 했다. 어쩌면 초라해 보이기 싫어하는 야라조의 자존심이었을까. 우리가 떠날 때 그녀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래, 그 다정한 미소라면 미스 짐바브웨로 믿어준다.’
월급 200달러 광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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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길 옆 숲에서 만난 광부 노동자들. 가족을 위해 노동의 현장에서 분투하는 이들의 고단한 삶에 응원을 보낸다. |
현실의 높은 파고(波高)는 메트로폴리탄 고층 빌딩의 화이트 칼라족(族)이나 도시 빈민가나 아프리카 시골의 노동자나 다 똑같이 느껴지는 듯하다. 각자의 이상에 다가가지 못하는 인간의 제어되지 않는 욕망이 있는 한 말이다.
한적한 시골 도로에서 쉬다 숲을 헤쳐나오는 무리를 만났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광부 복장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단단한 돌 위에 엉덩이를 걸치더니 멋쩍은 웃음으로 금을 캐고 있단다. 수입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땅속에 들어가 하루종일 일하고 받는 돈은 한 달에 200달러 정도. 대개 그렇듯 짐바브웨의 광산업도 투자자가 이득의 대부분을 가져가고 노동자는 최소한의 대가만 주어진다. 그나마 이런 일자리도 많이 없기에 열악한 환경의 인부들은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가진 회사의 요구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아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 꿈이에요. 정말이지 다른 건 다 제쳐놓고 중고차라도 하나 사는 게 소원입니다. 이곳에서 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카시아스(Cascious)란 작은 마을이 제 집인데 일하느라 이곳에서 먹고 자고 하니 일주일에 하루밖에 들어갈 수 없어요. 아이들도 보고 싶고, 아내도 그리운데 그게 힘드네요. 차가 있으면 가족 데리고 놀러도 가고 이동하기도 편할 텐데, 아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여러 곳도 다녀보고요. 고되긴 하지만 이것이 또한 전문적인 나의 일이라 포기하지 않고 하고 있어요.”
남자는 잠깐 주어진 시간 동안 탁한 물로 목을 축이고, 빵과 몇 개의 야채로 버무려진 조악한 점심을 들고는 다시 숲 속으로 사라졌다. 거친 숨소리와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에 그의 내일이 찬란히 꽃피기를 기대해 본다.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노동으로 다져진 근육질의 어깨 위에 걸터앉은 단란한 가족의 행복이 보이는 듯했다. 문득 자식의 미래를 위해 텁텁한 공장 속에서 청춘을 다 바친 내 아버지가 생각난다. 가족이 힘이다. 아버지는 위대하다.
카도마, 일상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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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액면가 10조 달러짜리 짐바브웨 지폐. 미국 달러를 사용하기 시작한 후 한때 길에 버려지기도 했으나 지금은 기념품으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
5명이서 함께한 지 벌써 2주째, 우리는 야생성(野生性)을 잃어버리며 그들의 뒤만 쫓아다녔다. 물론 두 친구가 적극적으로 이끌어준 까닭도 있지만 나는 짐바브웨 이후의 여정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짐바브웨 국경을 통과하고 나서 수도 하라레에 거의 근접하기까지 10원 한 푼 쓰지 않아도 되었을 만큼 무슬림들은 호의적이었고 또 배려해 주었다. 늘 편안한 분위기 속에 우리는 어느 유명한 영화배우의 수상 소감처럼 ‘잘 차려진 밥상 위에 숟가락 하나 더 얹으면’ 그만이었다. 그들에게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은 친구가 되기에 전혀 거리낄 만한 사안이 아니었고, 언제나 내가 고민에 빠질 때는 그 짐을 같이 나누려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에게 지구상에서 실제로 존재한 가장 큰 화폐단위 중 하나였던 10조 짐바브웨 달러 지폐를 선물 받으면서 웃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에도 도취될 수 있었다. 크리스천임에도 무슬림 예배에 참여하면서 그들의 경건한 신앙을 탐색해 볼 기회도 얻었다. 아이들은 또 어떤가? 사진을 찍어도 꼭 붙어 찍고, 나만 보면 쉽게 안기고 손을 잡고 포옹하는 녀석들의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다. 녀석들을 안고 있노라면 마치 정말 내가 행복 덩어리를 안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런 생활을 벗어나야 할 때가 왔다. 다시 거친 광야로 나갔을 때 또 얼마나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무슬림의 연락망이 새삼 위대하고, 그래서 라이더는 때론 위험하다. 내가 다시 아프리카 광야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면.
하라레로 들어가기 전 카도마(Kadoma)에 들렀다. 석양 때문인지 꼭두서니빛으로 도배된 조용하고 작은 도시다. 사람들의 눈동자가 온순하고 걸음걸이는 차분하다. 사실 출발 전 짐바브웨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독재자의 집권으로 불만을 품은 반대 세력과의 다툼으로 정치가 불안하고, 빈민가와 시골 등에 치안이 부재(不在)하고, 경제 인플레 여파로 물가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아니었다. 짐바브웨를 밟아보지 않은 이들의 괜한 노파심이었다. 나는 지금 이 푸근하고 정겨운 시골의 시정이 마냥 좋다.
땅거미를 데리고 돌아온 자전거 뒷바퀴가 느려지고, 우리는 또다시 나짐의 소개로 알게 된 어느 무슬림 상인 집에 초대되어 하룻밤 몸 누일 공간을 차지했다.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대화를 하고, 주제가 없어도, 새로운 것이 없어도, 그냥 흘러가는 시간에 마음을 맡기고 의자에 가만히 기대 진짜 내가 생각하던 여행을 만끽한다. 초 단위로 흐르는 명징한 시간의 개수를 하나하나 세어보며 거리의 풍경을 보는 것 말이다. 코발트 블루빛으로 스카이라인이 물들고 별들이 얼굴을 내미는 때,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평화로운 곳에서 짐바브웨 일정이 조용히 끝나가고 있었다.
하라레에서의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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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바브웨에서 극진한 배려와 대접을 아끼지 않은 무슬림 친구들. 왼쪽이 아딜, 오른쪽이 임티아즈. |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 차들의 경적 소리, 현대적으로 치장된 여기서 우리는 두 무슬림 친구와 헤어져야 했다. 2주 동안 한 번의 다툼 없이 우리는 아주 멋지게 짐바브웨 횡단을 했다. 나짐과 임티아즈는 하라레 모스크로, 우리는 대사관에서 소개해 준 교민 집으로 각각 발걸음을 돌렸다. 한국 대사관으로부터 식사 초대가 있었기에 잠시 휴식도 취할 겸 다음 행선지 잠비아에서의 봉사활동을 준비해야 했다. 잠비아에서부터는 아프리카의 여러 난제 중 하나를 도와주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본격적인 구호 활동이 시작될 터였다. 우리는 가벼운 포옹과 악수로 헤어짐을 갈음했다.
며칠 뒤, 우리는 시내의 한식당(韓食堂)에서 만났다. 그간 그들이 보여준 배려가 고마워서 모처럼 큰맘 먹고 비싼 한국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서였다. 며칠 만에 다시 보는 얼굴들인데도 오래 헤어졌던 연인을 보는 것처럼 반가웠다. 헤어지기 전 나짐은 잠비아로 우리를 따라올까 잠시 고민했으나 친구 임티아즈를 놓고 갈 수는 없었다. 그들은 계속 동진하며 모잠비크로, 우리는 잠비아로 이동한다. 우리는 페이스북을 통해 계속 소식을 주고받기로 했다.
길 위에서 맺은 인연의 끝이 아름답고 또 서글프다. 다름을 인정하고 공유(共有)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여행길 위였기 때문 아닐까. 라이딩 중 자전거 문제나 건강 문제 등으로 몇 가지 소소한 어려움이 없진 않았지만 이들과의 만남은 나와 다른 입장에 있는 이들과의 만남, 이해, 포용의 과정을 거치며 새롭게 나를 성숙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메카까지 무사히 도착하기를 나는 그들을 축복하며 이제 떠나보낸다. 갓 블레스 유(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