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인이든 흑인이든, 우리는 다 같은 보츠와나인”(한국인 선교사 유미향씨의 남편 찰스)
⊙ ‘한국의 슈바이처’ 김정 박사, 보츠와나 쥬빌리병원에서 28년간 봉사
⊙ 소떼와 충돌하는 교통사고 후 칼라하리사막行 포기, 빅토리아 폭포에서 번지점프
文鐘星
⊙ 30세. 전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6년간 약 80여 개국을 자전거로 여행하기로 마음먹고 2007년 5월
미국 뉴욕에서부터 자전거 세계일주를 시작. 북미와 중남미를 거쳐 현재 아프리카를 자전거로
여행 중.
⊙ 저서 : 《비전청년의 세계일주 - 자전거 타고 쿠바여행》 《라이딩 in 아메리카》
《일생에 꼭 한 번 가 봐야 할 곳, 멕시코》.
⊙ ‘한국의 슈바이처’ 김정 박사, 보츠와나 쥬빌리병원에서 28년간 봉사
⊙ 소떼와 충돌하는 교통사고 후 칼라하리사막行 포기, 빅토리아 폭포에서 번지점프
文鐘星
⊙ 30세. 전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6년간 약 80여 개국을 자전거로 여행하기로 마음먹고 2007년 5월
미국 뉴욕에서부터 자전거 세계일주를 시작. 북미와 중남미를 거쳐 현재 아프리카를 자전거로
여행 중.
⊙ 저서 : 《비전청년의 세계일주 - 자전거 타고 쿠바여행》 《라이딩 in 아메리카》
《일생에 꼭 한 번 가 봐야 할 곳, 멕시코》.

- 도로 옆에서 수박 파는 아이. 하나에 우리 돈 800원 정도인데 씨가 너무 많고 제대로 익지도 않았다. 그래도 이만한 게 어디냐며 맛있게 먹었다.
국경사무소 안의 모든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쏠린다. 지금껏 수많은 육로(陸路) 국경을 자전거로 넘었지만 세금 내본 적이 없었다. 짐짓 당황한 내가 토끼눈을 했다. 그러자 여직원은 시선을 피하며 냉담한 어조로 다시 재촉한다.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합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왔잖아요. 여기 신고서류입니다.”
“오, 저기 말이죠. 내가 타고 온 건 자전거인데요? 밖을 한 번 보시지요.”
“뭐라고요?”
그녀는 대답과 함께 풍만한 몸체를 일으켜 밖을 내다봤다. 그리고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도리질을 한다. “맙소사, 미안해요. 멀리서 보고 당연히 오토바이인 줄 알았지 뭐예요. 저렇게 짐이 주렁주렁 달려 있으니 누가 알아보겠어요? 여길 자전거로 지나는 이가 매우 드물거든요. 호호.”
여권의 빈 면에 입국 스탬프 찍히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오해와 긴장으로 숨죽인 세상이 다시 기지개를 켠다. 해빙(解氷) 무드가 도래하자 이제야 그녀가 좀 더 사실적으로 보인다. 새하얗고 가지런한 치아가 인상적인 여직원이 여권을 내밀며 환영인사를 건넨다.
“웰컴 투 보츠와나! 당신의 보츠와나에서 멋진 시간 보내세요!”
오웬스 부부의 《야생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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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츠와나의 생태를 탐구한 마크와 델리아 오웬스 부부. |
종(種)을 가리지 않고 생존을 위해 오늘도 쫓고 쫓기는 생(生)의 열망으로 가득 찬 오카방고 삼각주는 그야말로 생태(生態) 자원의 보고(寶庫)다. 여기에 더해 전(全)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야생 코끼리가 서식하는 초베 국립공원, 부시맨으로 유명한 산(San)족이 사는 칼라하리 사막은 인류가 야생 속에서 원시(原始)낙원의 정체성(正體性)을 찾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자 보츠와나의 3대 보물이라 할 수 있다.
탄자니아에 침팬지들의 어머니 제인 구달이 있다면 보츠와나에는 마크, 델리아 오웬스 부부가 있다. 국내에 《야생 속으로》란 번역본의 저자로 소개되어 있는 이 생태학자 부부는 칼라하리 사막 연구의 선구자다. 이 책은 7년 동안 달랑 낡은 텐트에서 최소한의 세간으로 기거하면서 밝혀낸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야생동물들의 특성과 오지(奧地)에서의 치열한 삶의 기록들을 담고 있다. 덕분에 나는 이 땅을 밟기 전 컬러풀한 아프리카의 모습을 마음껏 음미할 수 있었다.
그들은 거친 황야에서 생존 가능성을 시험하고 야생동물 연구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어떤 상황에도 한계를 지우지 않았다. 책을 읽는 내내 그 열정이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그들이 야생에 대해 문명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하나하나 벗겨내는 작업은 정말 탁월했다. 무엇보다 현지 연구 중에 칼라하리 사막에서 무차별적으로 강행되는 자원 개발과 무분별한 토지 개발로 점점 터전을 잃어가는 동물들의 편에 선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부부는 인간 또한 과거에는 야생 속에서 하나였음을, 자연이 없으면 인간도 없다는 상호보완 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생명의 숨결을 질식시키려는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굽히지 않고 목울대를 세웠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게 된 장면이다.
이렇듯 어느 곳보다 태고의 신비로 야생의 장막을 쳐놓은 이 길에 이젠 내가 서 있다. 비록 마크, 델리아 오웬스 부부처럼 아프리카를 뜨겁게 이해하고 사랑하며 큰 족적을 남기지는 못하겠지만 대신 누구나 함부로 갈 수 없는 길을 가는 모험가의 자부심을 가져본다.
다시 심장에 시동을 걸었다. 늦은 오후, 하루 일을 마치고 귀가하면서 흙길을 차는 맨발들이 보인다. 이들과 시선을 맞추고, 인사를 건네는 순간 남아공(南阿共)과는 비교할 수 없는 평온이 온몸을 휘감는다. 해거름에 자전거는 그리메(그림자)를 끌고 오고, 낯선 이방인을 살갑게 대하는 그들의 미소는 온기를 끌어 온다. 순간 나는 예감한다. 생각보다 꽤 따뜻한 자전거 여행이 될 것 같다고.
보츠와나의 한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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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츠와나 시골 학교의 벽화. 야생동물과 친숙한 아프리카 특유의 냄새가 묻어난다. |
“아이고, 대한의 청년들, 어서들 오시오. 환영합니다.”
얼굴 곳곳에 덕지덕지 깊이 팬 묵은 주름이 꼭 대들보의 갈라진 틈 같다. 나직이 세월의 흔적을 속삭인다. 고희(古稀)를 목전에 둔 김종암 할아버지는 아내가 잠시 한국을 방문한 까닭에 혼자 지내고 있었다. 예순이 훨씬 넘은 나이에 아프리카 와서 그간 말 못할 고생이 많았던지 엷은 미소 속에 회한(悔恨)이 보이는 듯하다. 일행을 그지없이 반갑게 맞아준다. 현지인들과 함께 지내는 공간에 마침 일거리가 있단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국인이 그리웠을 게다.
굿 호프는 주로 츠와나(Setswana)어를 쓰는 보츠와나에서 유일하게 영어식 표기를 사용하는 지역이다. 부계(父系)사회가 강하고 연장자(年長者)가 우대받는 이곳은 원래 척박한 곳이었다. 오랫동안 전형적인 씨족(氏族)사회로 맥(脈)을 이어오던 마을은 그러나 현대에 들어 서구(西歐) 문물과 사상의 유입으로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전통적인 대추장(大酋長)의 권위가 많이 사라졌고 결속력도 약해졌단다.
우리는 도착한 다음 날부터 바로 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땅을 고르고, 잡초를 뽑고, 울타리를 치기 위한 지지대를 세웠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격렬한 노동은 주변 공기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쉬는 시간에 그늘로 몸을 피해 들이켜는 콜라 한 잔은 노동의 신성함과 고됨을 몸소 느끼게 해준다. 김종암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나이가 있으니 이제 인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때이지요. 나는 참된 가치를 찾아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왔어요. 한국에선 여건이 녹록지 않지만 여기에선 내가 할 일이 많더군요. 내가 지내는 공간에서 현지인들에게 잠자리와 일자리를 주는 것이 내 소박한 꿈이랍니다.”
천 년 바람에도 돌부리를 쥐고 서서 기개를 굽히지 않는 소나무 같았던 젊은 시절의 얘기를 들으며 지금은 작게 이는 바람에도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 같은 그의 얼굴이 너울거리는 촛불 사이로 묘하게 대조된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보츠와나의 대지와 씨름하며 우리는 모두 기분 좋은 시커먼스가 되었다.
소떼와 충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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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밤에 소와 정면충돌한 찰스의 차. 차는 반파되었지만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
대신 칼라하리 사막에 가기로 했다. 영화 <부시맨>으로 유명한 산족을 만나기 위해서다. 오지 여행은 늘 흥분되는 일이다. 자전거로 갈 수 없는 모래사막이라 우리는 차량을 섭외하고, 텐트와 물 등 이틀 동안 지낼 모든 장비를 챙겼다.
떠나기 전날 유미향 선교사의 남편 찰스가 우리를 픽업하러 왔다. 백인임에도 보츠와나인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그였다.
“내가 태어난 고향이고, 또 살아갈 나라이며, 죽을 때까지 이곳 사람(흑인)들과 함께 머물 테니까요.”
오랜만에 한국인의 정(情)을 느끼며 유쾌한 저녁식사를 마쳤다. 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 추적추적 내리는 비로 도로는 차끈했다. 찰스는 신중한 남자였다. 늘 진지한 태도로 일을 처리하고 관계를 만들어나갔다.
“사업을 하면서 단 한 번도 경찰에게 뇌물을 준 적이 없어요. 법이 정해 놓은 원칙이 있는데 당연히 원칙대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불편할 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옳은 길을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교통경찰도 마찬가지예요. 예전엔 매번 얼토당토않는 트집을 잡으려 했지만 그때마다 정당하게 따지고 원칙대로 나갔어요. 오죽하면 이젠 내 차만 보면 경찰들이 먼저 알아서 보내준다니까요.”
그는 자신에게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는 백인 공동체로 들어가지 않고 흑인들과 어울려 살기를 택했다. 때문에 백인의 인종차별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는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모두가 하나의 보츠와나인”이라는 것이다. 찰스네 가족은 우리가 근처에서 머무는 동안 아예 흑인들이 머무는 외곽 지역으로 이사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오, 맙소사!”
“악!”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은 불현듯 찾아온다. 1초나 되는 시간이었을까. 아니 찰나였다. 살아가면서 순간이 억겁의 시간처럼 길게 느껴진 적이 또 있었던가. 29년의 생을 압축한 1초짜리 모노영화가 되어 스크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파열음과 함께 격한 충격이 전해졌다. 차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리는 중에 갑자기 출몰한 소떼와 정면충돌한 것이다. 빗속이라 시야 확보도 안됐고 워낙 갑작스러운 통에 브레이크 밟을 여유도 없었다.
가청(可聽)주파수를 상회하는 소의 격렬한 울음소리가 습한 공기를 뚫고 대지에 쩌렁쩌렁 울린다. 급히 확인해 보니 크게 다친 사람은 없다. 천만다행이다. 찰스 덕분이다. 차가 없음에도 그는 차분히 규정 속도를 지켰다. 조금만 더 빨랐더라도 운명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칼라하리行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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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원주민 부시맨(산족)이 현대문명과 접하면서 받는 충격을 코믹하게 그린 영화 <부시맨>. |
보츠와나의 법규상 교통사고의 책임은 소 주인에게 있단다. 가축을 통제하지 못해 일어난 사고라는 이유다. 반대로 아프리카 다른 나라는 운전자에게 책임이 부과된다. 그래서 도로에서 가축을 치는 사고가 생기면 보상을 해야 한다.
찰스의 동생은 1년 전 동물을 피하려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우리는 즉석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음 날 예정된 칼라하리 사막 행을 취소했다. 여행을 강행하기엔 아무래도 분위기가 무거웠다.
비가 계속 내리는 쌀쌀한 어둠 속에 사고 수습까지 늦어져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발을 동동 굴러본다. 이 와중에 진정하기 위해 아이용 장난감 퍼즐을 완성하고 보니 ‘God care me’란 익살스런 문장이 씌어 있다. 우연한 발견이지만 우연으로 받아들이기엔 상황이 극적이다. 단어 하나하나가 의미 있는 몸짓이 되어 묵직하게 가슴에 파고든다.
어느 날 경(輕)비행기에서 신(神)의 물건이라고 생각되는 빈 콜라병이 사막 한가운데 떨어진다. 이 콜라병이 희비극의 모티프가 되어 영화 <부시맨>은 부시맨들의 문화충격에서 오는 유쾌한 사건들을 다룬다.
이번 여정은 어린 시절 기억 속에 타잔과 더불어 가장 아프리카적인 캐릭터였던 부시맨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살다 보면 미련 없이 뜻을 접어야 할 때도 생긴다. 때로 포기하는 것은 상황을 보는 지혜를 길러준다. 부시맨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나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아프리카의 슬픈 영웅으로 남아 있다. 영웅이되 슬픈 것은 그들의 조슈아 트리(Joshua tree) 같은 야성적 기개가 자꾸 불도저 같은 문명 앞에 힘없이 짓밟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시 칼라하리에 오게 된다면 콜라병 때문에 희화화(戱畵化)된 그들이 아닌 거친 광야에서 쇠심 같은 생명력으로 늠름하게 가슴을 편, 작은 체구에도 큰 기상을 바라보는 진짜 사나이들을 만나길 고대해 본다. 그땐 나도 하루쯤은 팬티만 걸치고, 창 하나를 가지고, 세찬 바람에 맞서는 꽤 낭만적인 전사가 되어 보련다. 단, 맹수 사냥 시에는 무리 뒤로 빠지는 당당한 솔직함도 애써 감추지는 않으리라.
자연과 하나가 되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머피의 법칙’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머피의 법칙 핑계로 투정 좀 부려보자. 내 경우 자전거 여행 중에는 꼭 손 쓸 수 없는 곳에서 탈이 난다. 어쩜 그렇게 얍삽하게 재기(再起)의 사각(死角)지대에서 사고가 일어나는지 모른다.
보츠와나도 예외는 아니다. 로바체에 들어오면서 라이딩 중 돌연 자전거 앞바퀴가 빠져버렸다. 중심을 잃고 고꾸라지면서 하마터면 프레임의 날카로운 부분에 얼굴을 찍힐 뻔했다. 내리막이나 혼잡한 차도(車道)였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남아공에서 자전거 조립과 정비를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만전을 기했기에 허탈감이 더 컸다.
나는 심각한 ‘기계공포증’을 앓고 있다. 복잡한 기계만 보면 앞이 캄캄해지고 소화도 제대로 안될 정도다. 그래서인지 심지어 전자기기를 쳐다보기만 해도 고장이 나는 것만 같은 착각에 종종 빠진다.
그런데 두 번째 사고가 다시 터졌다. 마할라페(Mahalapye)로 가는 길에 앞바퀴가 또 빠진 것이다. 구조적인 결함을 파악했지만 하필 바퀴와 프레임 사이의 고장이라 부품이 없었다. 임시처방으로 버텨야 했다. 3km 갈 때마다 계속 만져주었다.
자연의 박동소리와 내 심장소리가 하모니를 이룬다. 세상 끝까지 펼쳐져 있을 것 같은 쭉 뻗은 도로에서는 바람의 소리만 귓가를 간질일 뿐이다.
나는 다만 침묵할 뿐인데 많은 이야기가 들려온다. 물을 긷는 아이로부터, 조악한 품목을 매매하는 노점상으로부터, 그늘 속 한가로이 담배를 피우며 젊음을 탕진하는 청년으로부터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이야기가 보인다.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에서 정호승 시인이 말했다. “내가 누군가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내 손이 빈손이어야 한다”고….
그런데 환희 속에서 내 모든 기관은 자연을 껴안고 있지만 귀만큼은 딴 세상에서 놀고 있었다. 자연의 손을 잡기에 나는 욕심이 너무 많은 존재였다. 아이팟(I-pod)으로 듣는 결 고운 음률(音律)로 편곡된 클래식마저도 공해(公害)일 뿐이었다.
온몸으로 자연을 껴안고 싶었다. 거추장스러운 존재를 떼어내야 했다. 이어폰을 뺐다. 그리고 뺨을 훑는 바람의 소리에, 거칠게 내뿜는 호흡 소리에, 길 위에 쩍쩍 붙어 굴러가는 바퀴 소리에 집중했다.
그제야 여행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비로소 심신의 균형이 잡혔다. 이 길을 더 집중하고, 누리게 되었다. 이것이 최고의 자전거 여행 아니고 무엇이랴. 메커니즘 포비아를 압도하는 그야말로 순도 100%짜리 진짜 라이딩을 하는 기쁨이다.
그대, 첨단 문명의 이기(利器)로 무장한 자전거 여행을 하려거든 차라리 뜨겁게 벌거벗어라! 길을 잃었다고 불평할 게 아니라 새로운 길을 가게 되었노라고 신나게 노래하라! 안락한 호텔을 전전하는 나약함을 버리고 땅에 입맞추고, 하늘을 이불 삼아라! 도대체 자전거 여행까지도 매뉴얼대로 구속되고 싶은가? 모험을 하자! 그대를 위해, 그대만이 갈 수 있는, 그대만의 길을 떠나자!
아프리카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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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자리를 제공해 준 맥스의 어머니와 조카.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불을 지피고 있다. |
오늘도 잠잘 곳을 찾아야 한다.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과다. 따뜻한 샤워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김치찌개 생각이 간절하다. 아니면 따뜻한 방바닥이라도 그저 고맙다. 하나 여기는 아프리카다.
숙소를, 정확히는 텐트 칠 자리를 알아보는 중에 귀한 초청이 들어왔다.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을 하는 맥스(Max)라는 친구가 어머니 댁 공간에 텐트를 쳐도 된다는 것이다.
“방이 없어서 미안해요. 방마다 식구가 여럿이 자거든요.”
“무슨 말씀인가요? 우리에겐 최고의 공간입니다.”
별채 부엌 옆에 창고로 쓰이는 공간이었다. 그의 누이와 조카가 우리가 불편하지 않도록 급하게 청소를 해준다. 창고 한구석은 덜 익은 수박과 야채들로 가득했다. 팔기엔 값어치가 없지만 식구가 철을 나기엔 충분하게 보인다.
비라도 피한 게 어딘가 싶다. 눅진한 흙냄새가 펄펄 풍기는 실내에 텐트를 쳤다. 침낭에 몸을 들이미니 번데기가 된 기분이다. 아늑하다. 너무 아늑해서 저녁식사 생각이 달아날 만큼 몸을 움직이기조차 싫어진다. 하이테크 시대에서 승자독식(勝者獨食)의 피비린내 나는 경쟁에 놓여 있다가 이젠 누울 자리만 있어도 행복한 인생이 되었다. 그냥 남들과 다른 곳으로 시선 한 번 돌렸을 뿐인데 말이다.
만찬(晩餐)으로는 옥수수 통조림과 과일이 전부다. 조리해 먹기가 번거로워서 아예 버너와 코펠을 두고 왔다. 식단은 매번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라이딩 중엔 잼 바른 빵과 과일, 옥수수 통조림으로 돌려가며 속을 달래고 있다.
전기 없는 세상, 더 많은 별을 보다
식사 중에 비가 그쳤다. 귀찮긴 했지만 양치만은 하려 오들오들 떨며 밖으로 나왔다. 콜라 중독으로 치아 상태가 좋지 않아서다. 밤이 내린 세상, 주위는 고요한 어둠에 잠겼다. 밤의 침묵은 낮의 침묵보다 어째서 더욱 로맨틱한 것일까. 나는 보았다. 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별들을. 어두워서 더 밝게 빛나는 982개의 별을.
‘어제보다 100개가 줄었군.’
나는 고개를 젖혀 별의 수를 가늠해 보며 싱거운 혼잣말을 내뱉었다.
‘어젠 1082개였는데….’
문득 전기가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아프리카에 왔지만 틈만 나면 컴퓨터와 아이팟을 사용하고 무의식적으로 전기에 의존하는 나를 본다. 전기 없이는 하루 나기도 힘겨워 하는 나는 여전히 문명 제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인이다. 그런 내가 광야(廣野)의 길이라니 당치도 않다. 자연의 섭리는 하얗게 발하는 가짜 빛에 마음 두며 살아가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전기는 일상의 혁명을 가져다주었지만 일상의 소소한 보물을 빼앗아가기도 했다. 명멸(明滅)하는 별빛을, 밤이 오는 소리를, 조용히 잠자리에 들어야 할 때를…. 앞으로도 우리는 편리한 것들을 얻기 위해 얼마나 또 자연스러움을 잃어야 하는 걸까.
전기 없는 밤, 하늘에 박혀 있는 유난히 청초한 별빛들이 눈을 정화시키는 작품이 되고 콧등 시린 감동이 된다. 어느샌가 수줍게 내 가슴에 들어온 줄도 모르고. 벌써 몇 분째 멍하니 고개 젖혀 든 줄도 모르고.
‘이 별은 나의 별, 저 별도 나의 별….’
온통 별천지 틈에서 나는 어둠 속에 덩그러니 홀로 남아 살짝 외로운 감정을 유치하게 달래고 있다.
보츠와나의 플라우잉 문화
청춘엔진에 제한속도는 없다. 마할라페에서 출발해 넘치는 혈기로 종일 북진하며 팔라페(Palapye)를 지나 세룰레(Serule)에 도착했다.
“두멜라(Dumela, 안녕하세요).”
“두멜라(Dumela).”
“췰렐라 필리(Tswelela Pele, 계속 달려가세요)!”
격의 없이 건네고 받는 인사에 힘이 난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조용한 나라로 손꼽히는 보츠와나에서 가장 조용하기로 소문난 마을인 세룰레의 분위기는 평온하기 그지없다.
14년간 군인으로 복무한 53세의 나메조 세첼레(Nametso Sechele). 숙소를 찾아 두리번거릴 때 안마당에 텐트를 치라며 기꺼이 자신의 집을 개방해 준 현지인이다. 그의 사촌 타볼로호 레조와(Tha bologo Lejowa)도 반갑게 맞아준다.
그간의 수입을 모아 너른 안뜰에 1년 동안 직접 지었다는 집은 멋스러운 넉넉함이 있었다. 그의 성실함을 칭찬하는 아내는 짐바브웨 출신이다. 그가 짐바브웨로 일하러 갔을 때 지금의 아내를 보고 반해 청혼(請婚)했단다. 2남 2녀 중 세 아이는 수도(首都) 가보로네에서 공부하고 딸 하나만 부모와 같이 살고 있었다.
“보시다시피 평화롭기 그지없는 마을이지요. 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답니다.”
“그럼 어떻게 지냅니까? 아이들 학비도 필요하고, 생활비도 있어야 할 텐데요.”
“허허, 사실 소를 방목(放牧)해서 키운답니다.”
“소를 매매(賣買)하는 건가요?”
“아니에요. 난 14년 군인 생활을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소들을 샀어요. 보츠와나는 플라우잉(ploughing·쟁기질) 문화가 발달해 있지요. 해서 소의 노동력을 이웃에게 제공한답니다. 그러면 이웃은 수확한 작물의 일부분을 주는 거지요. 물론 소를 매매할 때도 있지만 극히 드뭅니다. 소를 살 만한 여력이 있는 집이 별로 없거든요.”
레조와가 사촌형의 말을 거든다.
“나 역시 이웃 농장에 가서 품을 팝니다. 돈이 아니라 작물로 품삯을 받는 경우도 많아요. 어떨 땐 달걀을 받기도 해요.”
집주인에 콜라 1병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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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귀 마차를 이동과 물자 운반 수단으로 삼는 츠와나 족. 차량이 다니지 않는 오지 마을엔 당나귀가 주요 교통수단이 된다. |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낯선 우리를 도울 생각을 했나요?”
“우리 속담에 이런 말이 있지요. 마보고 딘꾸 아 테바나(Mabogo dinku a thebana). 남에게 베푼 친절은 언젠가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나를 포함한 많은 보츠와나인이 지금까지 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요. 아마 다니다 보면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첼레의 배려에 대한 답례로 콜라 한 병을 줬다. 그도 샤워를 마친 우리에게 차를 권유한다. 조용히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많았지만 소파에 마주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오래 대화를 나눈 듯 편안했다. 간혹 그의 눈웃음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이 어색한 완전한 평화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했다.
내가 사는 세상은 오염된 동기(動機)들로 점철된 초(超)이기주의가 정당화되고 있는데, 내가 만난 세상은 정말이지 경이롭게 조용하고 친절하기만 하다. 그런 까닭으로 이 밤 나는 고민에 휩싸인다. 이들에게 어떤 플라우잉을 하고 있는지, 어떤 플라우잉을 해줄 수 있는지 가만히 물어본다. 답은 떠오르지 않고, 오욕(五慾)의 때를 벗기지 못한 젊은 몽상가는 좀체 잠 못 이루며 세룰레의 긴 밤을 보낸다.
‘한국의 슈바이처’ 김정 박사
유명한 사진작가 김중만씨가 보츠와나 출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김중만 작가의 아버지는 김정 박사.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렸던 김 박사는 여기 쥬빌리 병원에서 외과의사로 28년간 인술(仁術)을 베풀다가 일생을 바쳤다. 그 병원이 500병상(病床) 규모의 병원으로 확장이전한 것이 지금의 양가베병원이란다. 보츠와나의 제2 도시인 프랜시스타운(Francistown)에서는 김정 박사의 얘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이곳 교민 3가정 중 2가정이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먼 곳까지 왔다며 교민 가정이 모두 모여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 고기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눈물 나게 맛있는 저녁식사다. 그간 잘 못 먹은 설움이 머릿속에서 완전히 포맷(format)되어 버린다. 만찬 앞에서 여행자는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 다음 날도 예배 후에 립(rib)을 대접해 준다. 황송할 뿐이다. 이 마음을 잊지 않고 다시 이 땅에 꼭 베풀겠노라 다짐해 본다.
오카방고 삼각주를 포기하고, 칼라하리 사막도 사고로 차질이 생겼기에 자전거를 잠시 맡겨두고 마지막 보루인 초베 국립공원과 빅토리아 폭포에 다녀오기로 했다.
프랜시스타운에서 이 나라 미니버스인 콤비를 타고 7시간이 넘는 고충 끝에 작은 관광지 마을 카사니(Kasane)에 도착했다. 도중에 딱딱한 의자도 그랬지만 현지인들의 환상적(?)인 체취에 그만 정신을 잃어버릴 지경이었다. 우리는 별 4개짜리 초베 사파리 로지(Lodge)로 숙소를 잡았다. 그래 봐야 캠프 사이트에서 텐트를 치는 저렴한 잠자리다. 밤에는 하마 소리를, 낮에는 원숭이의 재롱을 볼 수 있어 만족했다.
오랜만에 자전거에서 내려와 맘 편히 초베 국립공원 보트 투어를 했다. 1인당 30달러인데 지갑 열기가 두렵다. 아프리카를 위한 짠돌이 여행자가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여행 경비를 아껴 마련한 돈으로 구호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투어 내내 하마와 악어, 코끼리, 독수리, 도마뱀, 각종 새들을 향한 관광객들의 셔터 소리가 바쁘게 들린다. ‘만물의 영장(靈長)’ 자리에서 내려와 거대한 생태계 속에 구속된 똑같은 피조물이 되는 몽상을 해본다.
하이라이트는 일몰(日沒) 때다. 석양을 보노라면 그 눈부신 아름다움에 말을 잃게 된다. 사진으로는 감히 담아낼 수 없는 장엄함이 서려 있다. 식사는 여전히 빵과 사과와 주스뿐이지만 우리는 어느 때보다 황홀하게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석양이 지고도 텐트 앞으로 밀려드는 물결과 텐트 위로 떨어지는 별똥별이 있으니 우리는 하늘을 지붕 삼아 모기를 친구 삼아 오래도록 얘기꽃을 피웠다. 근방의 하마의 울음소리에 놀라곤 했던 첫째 날과는 달리 다음 날엔 여유롭게 자장가 삼으며 잠을 청할 수 있을 정도로 자연에 친숙해져 있었다.
빅토리아 폭포에서의 번지 점프
보츠와나, 잠비아, 짐바브웨 3국의 국경지대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곳으로는 초베 국립공원도 좋지만 백미(白眉)는 역시 빅토리아 폭포다. 영국 탐험가 리빙스턴이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 폭포라 부른 것으로 유명한 빅 폴(Vic Fall)은 처음에 원주민인 로지족에 의해 ‘천둥 치는 연기’라고 불렸었다. 세계 3대 폭포인 이곳을 보기 위해 짐바브웨로 잠시 들어가야 했는데 그즈음 짐바브웨로 루트를 정했기에 멀티 비자를 신청했다.
하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불과 며칠 전에 내린 많은 비로 폭포의 경치를 제대로 만끽할 수 없었다. 물보라 벽이 공중으로 300m 이상 튀어 올라 다시 내리기에 온종일 소나기를 맞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 위엄은 어디 가지 않았다. 트롬본 합주곡 같은 소리의 웅장함에 놀라고 끝없이 쏟아지는 수량의 웅장함에 감탄했다. 빅 폴 구경 중 우리는 운명에 이끌리듯 폭포교(Falls Bridge)로 향했다. 그리고 직감했다. 맞설 수 없는 상황에 맞서야 하는 불나방 신세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여기까지 왔는데 번지 점프 한 번 해봐야 하는 거 아냐?”
“물론이지, 나는 진작부터 고대하고 있었어. 하지만 너부터!”
“아니, 이런 건 양보가 미덕이지. 용기가 가상한 형님부터!”
승강이만 10분. 폭포교 아래 잠베지강(江)은 태연하게 검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래 급류(急流)를 내려보기만 했는데도 온몸에 양기(陽氣)가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근용과 병무는 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결단을 내렸다. 기요틴(guillotine)과 다를 바 없는 공포의 점프대에 서기로 한 것이다. 심드렁해진 둘이서 똑같이 내게 묻는다.
“종성, 자네는 왜 극구 번지 점프를 마다하는가?”
“살아 오면서 빚을 많이 졌네. 아직 세상을 위해 할 일이 많아. 착하게 살아야지, 암.”
그러나 버틴다고 버텨지는 게 아닌 일, 끝내 내 다리에도 줄이 묶이기 시작했다.
“그럼, 잠시 요단강 좀 건너 구경하고 오겠네.”
111m 점프대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저 아래 세차게 흐르는 잠베지강은 선하게 살지 못한 지난날을 깊이 뉘우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점프대 위에는 태어난 이래 신(神)의 현현(顯現)을 갈망하며 가장 순수한 신앙심으로 기도하는 내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