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사 생도·특전부사관후보생, 강하 4회 마치고 왼쪽 가슴에 공수휘장 달아
⊙ 모형탑 이탈하며 실수하지 않으려 방광에 있는 힘을 다 줘
⊙ “공수교육은 특전사·육사 생도에게 가장 의미 있는 훈련”
⊙ 교관, “훈련 강도 높으니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먹어야”
⊙ 놀라웠던 공수교육대,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에서 훈련 진행
⊙ 강하주에는 새벽 2시 기상… 6시간 준비하곤 2분가량 창공 체험
⊙ 공수훈련 1등 수료자, 비결은 자기 전 침대에 누워 10분씩 동작 복습
⊙ 육사 83기 생도가 말하는 공수기본교육
⊙ 모형탑 이탈하며 실수하지 않으려 방광에 있는 힘을 다 줘
⊙ “공수교육은 특전사·육사 생도에게 가장 의미 있는 훈련”
⊙ 교관, “훈련 강도 높으니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먹어야”
⊙ 놀라웠던 공수교육대,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에서 훈련 진행
⊙ 강하주에는 새벽 2시 기상… 6시간 준비하곤 2분가량 창공 체험
⊙ 공수훈련 1등 수료자, 비결은 자기 전 침대에 누워 10분씩 동작 복습
⊙ 육사 83기 생도가 말하는 공수기본교육

- 공수기본교육에서 강하가 이뤄지는 DZ 일대. 강하자들이 낙하산을 편 채 낙하하고 있다.
공수훈련은 육군 특수전학교(경기 광주) 공수교육대에서 3주간 실시한다. 1~2주 차에는 지상에서 강하에 필요한 동작을 배우고 3주 차(강하주)에는 기구나 항공기에서 강하(降下)한다.
공수기본교육을 수료(강하 4회 이상)하면 왼쪽 가슴 위에 공수휘장을 달 수 있다. 공수윙(wing), 공수패치(patch)라고도 한다. 양 날개를 편 독수리가 낙하산을 메고 있는 모습이다. 군필자 사이에서 이 휘장은 공수훈련을 받았다는 자부심으로 통한다. 육군에선 사관학교, 특전사, 특공대 출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공수훈련을 경험한 이들은 강하보다 지상 훈련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기자는 강하하기 전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궁금했다. 이에 지난 7월 말 공수교육대(공교대)를 찾아 공수기본교육 887기 과정 중 육군사관학교(육사) 생도로 편성된 조(組)에서 지상 훈련 일부를 체험했다.
기자는 13년 전에 입었던, 지금은 맞지 않는 전투복과 생산된 지 15년 된 새 전투화를 집에서 찾아 들고는 공교대로 갔다. 군화를 본 공교대 주임원사는 “이거 언제 적 전투화냐”고 했다.
887기에는 육사 3학년 생도와 특전부사관후보생 등 약 400명이 입교했다. 공교대에선 계급과 명찰을 떼고 교번(敎番)을 부여받는다. 이 숫자를 헬멧과 오른쪽 엉덩이 위쪽 요대(腰帶)에 붙였는데 교관은 이름 대신 번호를 불렀다.
오전 4시30분 일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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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은 생도가 착지를 준비하고 있다. |
공수기본교육 입교식을 마치고 가장 먼저 하는 훈련은 공수체조, 이른바 공수PT다. 첫날 2시간 동안 공수체조를 배웠다. 생도들이 교장(敎場)에 모이자 교관들은 훈련 분위기를 만들고자 “양팔 간격 좌우로 나란히” “좁은 간격 좌우로 나란히”를 반복했다. 교장에서는 전투화 구르는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일었다. 기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모서리에 선 생도가 가장 힘들었다. 교관은 속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지금보다 100배 빠르게 하라”고 했다. 생도들 얼굴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공수체조는 8가지로 구성된다. 기자는 이 중 5번이 가장 힘들고 7번이 가장 쉬웠다. 1번은 ‘앉아 높이뛰기’인데 점핑 스쿼트(jumping squirt)다. 2번은 ‘발 바꿔 앉기’로 점핑 런지(lunge)를 연상하면 된다. 3번은 팔굽혀펴기, 4번은 엎드려 발 바꾸기인데 일명 ‘마운틴 클라이머’다. 5번은 온몸 비틀기다. 곧게 누워 고개를 들고 시선은 배꼽을 향한 채 다리를 30도가량 들어 좌우로 움직여야 한다. 6번은 누워 일어나 앉기로 윗몸 일으키기와 유사하다. 7번은 옆으로 발 벌려 뛰기다. 팔과 다리를 벌려 ‘대(大)자’를 만들어야 한다. 8번은 종합 뛰기로 버피(burpee)와 같다.
“어깨 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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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지를 마치고 장비를 정비한 민예진 생도가 집결지로 이동하고 있다. |
공수체조를 진행하는 교관이 단상에서 호루라기를 불면 나머지 교관은 생도 사이, 대열 뒤편에서 이를 지켜봤다. 동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따로 불러내 팔굽혀펴기를 시켰다.
기자는 1번을 제외하곤 모든 동작이 힘들었다. 5번을 할 때면 뒤통수를 땅에 대고는 무릎을 굽힌 채 교관 눈치만 봤다. 고개를 계속 들고 있다간 목과 어깨에 담(痰)이 오겠다는 강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뒤통수에 흙과 자갈이 곳곳에 박혔다. 기자가 편한 자세로 누워 있을 때도 생도들은 육사 생도대가(生徒隊歌)를 부르며 5번 자세를 이어갔다.
공수체조는 마지막 구호를 외치면 안 된다. 교관이 13개를 시키면 “열셋”은 생략한다. 생도들은 지친 나머지 마지막 숫자를 여러 번 외쳤고, 체조는 계속됐다. 기자는 1부터 10까지만 외치고 나머지는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이날 일출 시각은 오전 5시 34분이었다. 공수 체조를 마치고 동틀 무렵 특수전학교를 둘러싼 고지 너머에서 서광(曙光)이 비쳤다. 빛줄기가 하늘을 물들이며 살굿빛 마블링 무늬를 그렸다. 공수체조를 마치고 10분가량 휴식을 한 뒤 훈련이 이어졌다.
“최대한 많이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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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하자들이 기구에 탑승해 상승하고 있다. 입구 방향으로 경사가 있어 올라가며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
공수훈련 중 지상 훈련은 ▲체력단련(공수체조) ▲항공기 이탈 ▲착지 ▲공중 동작 ▲모형탑(막타워) 훈련 ▲낙하산 회수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 착지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쓴다. 주말을 제외하고 훈련 기간 약 14일 중 7일은 착지 훈련을 한다. 제대로 착지하지 못하면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착지에 필요한 신체 부위는 5곳인데, 앞꿈치→장딴지→허벅다리→엉덩이→승모근 순으로 땅에 닿아야 한다. 앞꿈치를 제외하고 근육이 많은 부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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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사관학교 소형기(육군 소장) 학교장. |
착지 동작을 익히는 첫날, 번기마다 훈련 장소가 달랐다. 어느 번기는 땡볕 아래 완충도 안 되는 모래바닥에서, 또 다른 번기는 잔디밭에서 동작을 익혔다. 기자가 훈련받는 날, 전날 내린 비로 잔디가 젖어 있었다. 빗물이 고인 곳에서 구른 생도는 전투복이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훈련 장소에 따라 군복색에도 차이가 났다. 모래밭은 밝았고, 잔디밭은 어두웠다. 잔디밭에서 연습한 생도들은 군복이 땀으로 이미 다 젖었기에 물웅덩이에서 굴러도 푹신한 잔디밭이 더 좋았다고 했다.
“평생에 처음 하는 동작… 힘들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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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공수기본교육 887기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1등 수료자 최원혁 생도. 활차를 이용해 이동 착지 연습을 하고 있다. |
교관들은 “평생 해본 적이 없는 동작이기에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다. 이겨내야 한다”고 했다. 또 “항상 앞꿈치와 무릎을 붙여야 한다”고 했다. 양발, 양다리를 붙이지 않으면 이른바 짝발이 돼 한쪽으로 충격이 몰려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도들은 착지 동작을 익히기 위해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고 하루에도 수백 번 뒹굴었다. 신체 5개 착지 부위를 따라 구른 후 배에 힘을 준 뒤 고개를 양손으로 끌어당겨 L자 모양을 만들었다. 동작이 익숙해지면 2피트(feet·약 60cm), 4피트 단상에서 뛰어내렸다. 2피트는 쉬웠는데 4피트가 되니 체공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기자는 실수로 뒤꿈치로 착지했는데 그 충격이 무릎에서 허리를 타고 머리까지 이어졌다. 착지 훈련에서 기자가 힘들었던 두 가지는 쉴 틈이 없었고, 맞지 않는 군복 사이로 굵은 모래가 속옷까지 파고들어 쌓인다는 점이었다.
271번 교육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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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사 이승현 생도. |
“공수훈련을 받는 사관생도들이 너무 멋있어 보였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창공을 날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훈련도 더욱 진심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승현 생도는 가끔 동작을 반대로 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몸치’라고 답했다. 그럼에도 동작이 틀리면 곧장 바로잡으려 노력했다. 그는 “첫날 공수체조를 배우는 시간이 가장 힘들었다. 학생장, 번기장 등 교육생이 더 좋은 여건에서 훈련받을 수 있도록 고생하는 이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887기에서 고생을 가장 많이 한 교육생은 학생장인 250번 양준서 생도였다. 기수를 대표하는 학생장은 다른 생도들보다 먼저 일어나야 했다. 교관 지시 사항을 수시로 전파해야 했고 매일 저녁에는 훈련 결산에 참여하느라 남들보다 늦게 잤다. 250번은 큰 목소리를 계속해서 내는 바람에 훈련 이틀 만에 목이 다 쉬었다.
공중 동작 교육은 하네스를 착용하고 진동환에 매달린 채 진행됐다. 진동환은 종(鐘) 모양의 장치로 지면에서부터 4m쯤 위에 설치돼 있다. 생도들은 진동환에 고정된 채 사주경계를 시작으로 낙하산이 제대로 펴졌는지 확인하고, 주낙하산이 산개하지 않으면 예비 낙하산을 펴는 방법, 장애물을 만났을 때 대처법 등을 익혔다.
낙하산의 구조는 우산처럼 생긴 상부를 ‘캐노피[canopy·주포(主布)]’라고 한다. 캐노피는 산줄(suspension lines)을 통해 좌우측 라이저(riser)와 연결되고 라이저는 하네스로 이어진다. 라이저는 캐노피에서 발생하는 양력을 하네스로 전달한다. 라이저 하단에는 떡볶이 코트 단추처럼 생긴 손잡이가 달려 있다. 이를 ‘조종 토글(steering toggle)’이라 하는데 조종줄과 연결돼 있어 왼쪽을 당기면 왼쪽, 오른쪽을 당기면 오른쪽으로 회전한다. 조종줄의 탄성은 상당했다. 교관은 이 줄을 허벅지까지 당겨야 낙하산이 회전한다고 했다. 낙하 속도를 줄여야 할 때는 조종줄 양쪽을 모두 당기는데, 캐노피가 공기 저항을 더 많이 받는 형태가 된다.
진동환에 매달린 기자는 집에서 키우는 개가 겪는 고충을 그제야 알게 됐다. 우리 집은 개를 산책시킬 때 목줄 대신 하네스를 입힌다. 산책 중 말을 듣지 않으면 하네스에 연결된 줄을 강하게 낚아채곤 했다.
노란색·빨간색 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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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형탑 훈련 장면. 튀르키예에서 한국 육사로 수탁 교육을 온 에투를 생도. 이상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
생도들은 착지→공중 동작→항공기 이탈 훈련을 반복했다. 착지 동작이 미흡하면 노란색 원형 딱지(패치)를, 공중 동작이 미흡하면 빨간색 원형 패치를 왼쪽 팔에 붙여야 했다. 어떤 생도는 노란색과 빨간색을 모두 붙였는데, 지금은 해체된 26사단 부대 마크를 연상케 했다.

훈련 2주 차 중반에는 모형탑 훈련을 했다. 과거에는 막타워(mock tower)라고 불렀다. 11m 높이인 5층 건물에서 하네스에 매달린 채 약 123m 떨어진 지점까지 케이블을 타고 건너갔다. 모형탑에서 도착 지점까지 30초가량 걸렸는데 체중이 무거울수록 일찍 도착했다.
모형탑 5층 정상은 예상보다 넓었다. 정사각형 구조로 한 변이 4~5m쯤 됐다. 도약(이탈)하는 난간은 건물 밖으로 1m쯤 돌출돼 있었는데, 이 때문에 건물 안에서 뛴다는 느낌보다는 건물 밖에서 투신한다는 생각이 들어 아찔했다.
난간에서 뛰어내리기 전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오줌을 싸진 않을까’였다. 놀이기구를 탈 때면 방광에 압력이 높아지는 걸 경험했는데, 혹시 모형탑에서 처음으로 실수할까 걱정됐다. 이 때문에 방광에 힘을 잔뜩 주곤 난간에서 도약했다. 0.3초가량 자유 낙하를 하더니 케이블이 방출하는 탄성 때문에 몸이 살짝 위로 튕겨 올랐다. 이후 몸을 L자로 만들고는 반대편까지 건너왔다. 마치 집라인(zip line)을 타는 느낌이었다.
1만, 2만, 3만

기자는 모형탑에서 뛰어내릴 때 실수를 했다. 수셈을 하지 않은 것이다. 강하자는 이탈할 때 반드시 “1만, 2만, 3만”을 외쳐야 한다. 1만, 2만, 3만은 1초, 2초, 3초를 뜻한다. 왜 ‘초’ 대신 ‘만’을 쓸까. 숫자에 ‘만’을 붙이면 발음이 늘어지는 효과가 있다. 강하 시 공기 저항과 아드레날린으로 호흡이 빨라지기 쉬운데 이를 막을 수 있다. 숫자에 만을 붙이면 초시계로 잰 시간과 거의 일치한다. 4만까지 외쳤는데도 캐노피가 펴지지 않는다면 예비 낙하산 전개 절차를 시행해야 한다.
생도들은 모형탑에서 뛰어내리자마자 곧장 공중 동작을 취했다. 사주경계부터 기능 고장, 예비 낙하산 개방 등 실제 상황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즉시 대처할 수 있도록 철저히 훈련에 임했다.

모형탑 아래에선 교관이 이탈 자세와 공중 동작을 평가했다. 생도가 케이블을 타고 건너편에 모이면 4명이 한 조가 돼 “공중침투”를 외치며 뛰어와 평가 교관 앞에 섰다. 교관은 생도들에게 보완해야 할 점을 알려줬다. 모형탑에서 훈련하지 않는 번기는 차광막 아래서 공중 동작을 반복하며 숙달 연습을 했다.
교관들은 군기를 유지하기 위해 훈련 중에는 웃고 떠들지 말라고 했다. 대신 일과를 마친 후 내무 생활은 자유롭게 풀어줬다. 공수훈련을 체험하기 전에는 훈련 분위기가 무겁고 교관도 고압적이리라 예상했지만 훈련 분위기는 밝고 긍정적이었으며 교관은 교육생을 존중했다.

2주 차 훈련을 마쳐갈 때쯤 9번기 담임 교관인 김종래 중사에게 생도들을 평가해 달라고 했다. 김 중사는 “다른 기수에선 모형탑에 올라가서 ‘못 뛰겠다’ ‘퇴교하겠다’고 하는 교육생도 있었지만, 육사 생도들은 모형탑에서 주저하는 일은 있어도 ‘한 번 더 해보겠다’며 적극적이었다. 정말 잘하고 있다”고 했다.
생도들은 1주 차 주말에 1박 2일 외박을 했다. 이후에는 주말에도 특수전학교에서 시간을 보냈다.
특수전학교 군장점에는 특전사 관련 용품이 많았다. 독창적인 그림이 인쇄된 기능성 셔츠도 있었다. 구수민 생도는 공수휘장 아래 공수훈련 기수(887)와 자기 교번(234)을 노란색으로 오바로크한 패치도 주문 제작했다. 구 생도는 “특전사에서만 구할 수 있는 의류가 많아 샀다”고 했다. HALO(고고도 강하 저고도 산개)가 적힌 흰색 양말, 특전사 707부대 마크가 그려진 검정 반바지 등 다양했다.
“땀은 피보다 진한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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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관이 호루라기를 부르며 집합 지시를 내리자 생도들이 일제히 달려 나가고 있다. |
하훈의 밤 행사에선 훈련에 대한 세미나와 장기자랑이 열렸다. 하훈은 하계 군사훈련을 뜻한다. 육사 생도들은 하계·동계 휴가(방학)를 앞두고 학년별로 군사훈련을 받는다. 3학년 생도들은 하계 군사교육대(교육대장 허장안 대령)를 편성해 하훈을 받고 있었다. 공수훈련 입교에 앞서 전남 장성에 있는 상무대에서 훈련했다.
세미나에서 생도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밝혔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육사 83기 동기회장인 송민서 생도가 8번기장인 유성호 생도를 칭찬하는 내용이었다.

“유성호 생도는 본인도 힘들 텐데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동기들이 훈련받는 데 큰 힘이 됐습니다. 교관님이 호루라기를 불면 항상 가장 먼저 달려가 기준이 됐습니다. 덕분에 나머지 생도들이 빠르게 정렬할 수 있었고 훈련도 먼저 받았습니다. 유 생도는 식사도 가장 마지막에 했습니다. 훈련이 고되기에 다들 빨리 밥을 먹고는 쉬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유 생도는 번기원들이 먼저 먹도록 배려했습니다. 배울 점이 많은 동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유성호 생도에게 박수 한 번 부탁드립니다.”
한 생도는 “혹서기에 생도 군사 훈련이 집중되는 바람에 훈련에 여러 제약이 있어 아쉽다”며 “강군 육성을 위해 실전과 같은 훈련을 해야 한다. 시기를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세미나에 이어 장기자랑도 열렸다. 허장안(육사 49기) 대령이 기타 연주를, 박승민(선임 훈육관) 소령이 노래했다. 하훈의 밤 행사를 마친 생도들은 식당으로 이동했다.
폭우 예상 일기예보

행사를 마치고 식당으로 이동하자 TV에선 월요일부터 폭우가 예상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식당에선 탄식과 한숨이 터져 나왔다. 비가 오면 강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하를 제때 못 하면 훈련 기간이 연장된다. 이렇게 되면 당초 계획했던 휴가 계획이 모두 어그러진다. 국외여행을 계획해 둔 생도 중 일부는 여행사에 전화까지 했다.
생도들은 우울한 상태로 주말을 보냈다. 당초 3주 차 월요일부터 강하를 시작해 목요일까지 4회 차 강하를 마치곤 금요일에 수료식을 가질 계획이었다. 종교가 있는 생도들은 기도했다.
일기예보와는 달리 월요일 새벽 비가 온 뒤로 날이 밝자 비구름이 사라졌다. 오후부터 강하한다는 결정이 나왔다. 생도들은 기쁜 마음으로 첫 강하를 준비했다. 훈련 3주 차, 강하주가 가장 바쁘다. 식사 시간도 짧아 5분 안에 끝내야 할 때도 있다.
강하 준비는 강하 3시간 전부터 시작했다. 낙하산을 받은 뒤 자기 순서가 올 때까지 기다린 후 강하를 한 시간쯤 앞두고 산악복과 낙하산 등 각종 장비를 착용했다. 이후 차례대로 기구에 올랐다.
강하를 마치면 낙하산을 회수하고 산악복을 벗어 배낭에 담았다. 이후 정비대(整備隊)로 이동해 낙하산을 손질하고 반납했다. 300m 상공에서 초속 4m로 낙하하면 70~90초 뒤 지면에 도달하는데, 창공에서 이 1분여 남짓한 시간을 위해 5~6시간을 들여야 했다.
정비대에는 신기한 낙하산도 있었다. 일명 ‘GPS 화물낙하산’인데 GPS를 입력하면 목적지까지 알아서 날아간다. 특전사가 적지에 침투했을 때 재보급을 위해 사용한다. 이 GPS 화물낙하산을 전력화한 실무자가 3학년 생도를 이끌고 특수전학교에 온 허장안 대령이다.
강하할 때 산악복을 입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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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형기 육사교장이 생도들을 격려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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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사 강민서 생도가 특전부사관후보생의 낙하산 착용을 돕고 있다. |
강하는 ‘DZ(Drop Zone)’ 상공에서 실시한다. DZ는 고지에 둘러싸인 경사진 평원인데, 12시, 6시 방향으로 아스팔트 도로가 나 있다. 이 도로를 제외하고 좌우측 잔디밭에 착지해야 한다. 착지할 때는 이른바 홀딩(holding)을 유지해야 한다. 맞바람을 맞으며 내려앉아야 한다는 의미다. 반대로 바람을 등지는 걸 러닝(running)이라고 한다. 러닝 착지는 초보 강하자가 해선 안 된다.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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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나종남 교수(육군 대령). |
‘코끼리’에서 첫 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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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끼리라는 별칭이 붙은 기구에서 강하자들이 뛰어내리고 있다. 1번 강하자가 멘 낙하산은 모두 펴졌고 2번 강하자가 기구에서 이탈해 자세를 취하고 있다. 기구 뒷면 형상이 코끼리를 닮았다. |
허장안 대령은 육사 동기생인 박정환(육군 준장) 특전사 참모장과 함께 가장 먼저 뛰어내렸다. 허 대령에겐 50번째이자 마지막 강하였다. 허 대령은 생도들에게 34년 전 첫 강하 경험을 들려줬다. 그는 “1991년 8월 첫 강하에서 첫사랑을 생각하느라 앞꿈치-무릎-이마순으로 착지하며 고꾸라졌다. 생도들은 조종줄-지형-풍향, 앞꿈치-무릎-홀딩을 잊지 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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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육군사관학교 허장안(육군 대령) 군사학처장과 육군 특수전사령부 박정환(육군 준장) 참모장. |
기자는 지상에서 강하를 관찰하기 위해 방탄 헬멧을 쓰고는 DZ로 갔다. 날이 너무 더워 아이스박스에서 생수와 음료 6~7개를 꺼내 마셨다. DZ에 들어가기 전만 해도 분명 소변이 마려웠는데 땀을 뻘뻘 흘려서 그런지 요의(尿意)가 사라졌다.

강하가 시작되면 DZ 주변 고지에 설치된 통제탑에서는 확성기로 조종 지시를 한다. 지상에선 교관들이 휴대용 확성기를 들고는 하늘을 향해 강하자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1번 강하자, 산개 검사…. 좌측 당겨 ○○산, ○○산”
“8번 강하자, 산개 검사…, 우측 당겨 ○○봉, ○○봉”
좌우측 조종줄을 당겨 좌우측으로 회전해 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라는 의미다. 특수전학교 DZ에서는 강하자가 자기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8개 지형지물을 활용한다.
기구에서 강하할 때는 기구와 차량을 연결하는 케이블을 피해야 한다. 기구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해 차량에 연결된 케이블로 이동한다. 난간에서 이탈할 때는 최대한 멀리 도약해야 한다. 수직으로 300m 높이까지 솟은 케이블에 낙하산이 걸리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기구 강하는 6번 강하자가 가장 무서워

기구 강하는 마지막(5~6번) 순서로 뛰는 이가 가장 무섭다. 기구가 하늘로 올라갈 때부터 이미 난간 쪽으로 약 10도 기울어 있는데, 교관과 마지막 강하자만 남은 상태에서 강하자가 난간으로 걸어갈 시 기구가 심하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기구에서 이탈한 1번 강하자가 케이블을 향해 다가왔다. 확성기에서는 케이블을 피하기 위해 1번 강하자에게 “좌측 당겨”를 반복했다.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1번 강하자는 착지 후 교관에게 불려 갔다. 교관이 1번 강하자에게 방송을 못 들었느냐고 하자, 강하자는 자신이 2번 강하자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첫 강하라 긴장했는지 자기 순서까지 잊은 채 뛰어내린 것이다. 착지 준비는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다 지상 30m 상공에서 취해야 한다. 지면을 봐서는 안 된다. 땅을 보면 땅이 마치 하늘로 올라오는 느낌이 들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생도는 착지를 위해 “앞꿈치, 무릎”을 고도 30m 지점에서부터 크게 외쳤다. 기자가 관찰한 생도 중 가장 완벽하게 착지한 생도는 445번 교육생 김하늘 생도였다.

착지한 뒤에는 최대한 신속하게 낙하산을 정리해야 한다. 회수한 낙하산을 배낭에 넣고는 등에 짊어지고 6명이 2열 종대를 만들어야만 DZ를 벗어날 수 있다. 배낭을 멘 모습이 하나같이 불편해 보였다. 무게가 20kg쯤 되는데 배낭과 사람을 연결하는 끈은 길이 조절이 안 됐고 쿠션도 없었기 때문이다. 생도들은 무게 때문에 상체를 기울여야 했다. 일부 여생도는 중심을 잡기 위해 상체를 30도 이상 숙여야 했다.

다음 날인 화요일에는 새벽 2시부터 일어나 강하 준비를 했다. 이날은 두 번째 강하이자 치누크(CH-47) 헬기로 첫 기체 강하를 하는 날이었다. 기체 강하는 소티(sortie)와 패스(pass) 방식으로 진행한다. 소티는 항공기가 한 번 뜨고 내리는 걸 의미한다. 패스는 항공기가 강하 구역(DZ) 상공을 지나가는 비행을 말한다.
치누크 강하

오전 9시24분 치누크가 블레이드로 헬기 착륙장 바닥 흙먼지를 퍼 올리며 훈련장에 도착했다. 치누크는 곧이어 강하자를 태우고는 날아올랐다. 이날 기체 이탈 고도는 약 1600피트(500m)였다. 치누크에는 약 30명이 탈 수 있으나 DZ가 좁아 한 번에 30명이 모두 낙하할 수는 없었다. 이에 10명씩 뛰어내렸다. 강하조는 패스(1~10)로 구분했고 패스당 비행시간은 약 6분이었다. 3패스는 기체에서 자기 순서를 기다려야 하므로 가장 오래 비행해야 했다. 치누크 내부는 시끄럽고 또 창문도 작아 조금의 여유도 허락지 않았다.

이날 조종사의 실력은 아주 좋았다. 교관들은 선회각을 기준으로 조종사의 실력을 평가한다. 선회각이 크면 DZ에 재진입하는 시간을 줄여 패스 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이다. 대신 선회각이 크면 헬기 탑승자들은 몸이 한쪽으로 더 많이 쏠려 불편하다.
생도들은 이날 오후 3시경 강하를 끝냈다. 오후 6시쯤 낙하산 털이까지 마쳤는데 다음 날 세 번째 강하를 위해 오후 7시부터 취침했다. 다음 날에도 새벽 2시에 일어나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날 일몰 시각은 오후 7시 48분이었다.
비가 온 수요일

세 번째 강하를 해야 하는 수요일 오전부터 비가 왔다. 오후에라도 강하하려고 했으나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모든 강하가 취소됐다. 오랜만에 쉴 수 있어 좋다는 반응과 훈련을 일정대로 끝내지 못할까 하는 걱정이 뒤섞인 하루였다.
목요일도 오전 2시에 일어났다. 정비대에서 낙하산을 받은 뒤 대기하고 있다가 동틀 무렵부터 기구 강하를 시작했다. 첫 강하는 오전 5시30분경이었다. 이날도 소형기 학교장이 DZ를 찾았다. 소 학교장은 생도들이 DZ를 드나들 때면 박수를 치며 응원했다.
일부 생도는 착지할 때 다쳤는지 다리를 절뚝거렸다. 그럼에도 “공중침투”를 외치고 군가를 부르며 군인정신을 발휘했다.
생도들이 기구에서 이탈하면 스피커를 든 교관이 지시를 내린다. 한 생도가 착지를 엉뚱한 곳에 하자 교관이 생도를 불러놓고는 이렇게 말했다.
“왜 우측 (조종줄) 당기라고 하는데 좌측 당겨요? 왼쪽, 오른쪽 몰라요?”
교관이 생도들을 앞에 두고 뭐라고 말하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생도들은 “아닙니다”만을 반복했다. 한 생도에게 교관이 무슨 말을 했는지 물었더니 ‘(강하 안 하고) 집에 갈래요?’를 계속 물었다고 했다.
금요일도 강하는 전날과 비슷하게 진행됐다. 오전 5시경 강하를 시작했는데 오전 8시쯤 되자 안개가 DZ 상공을 메웠다. 고도 300m에 기구가 떠 있었는데, 안개에 묻혀 보이질 않았다. 기구에 탑승한 이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두 시간쯤 지나자 날이 개었고 4회 차 강하를 모두 마칠 수 있었다.
강하 1000회 경력자 父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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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임종민 원사·임상언 생도 부자가 강하를 준비하고 있다. 임 원사는 강하 횟수가 1000회를 넘었다. |
임 생도는 아버지가 특전사다. 9공수여단 임종민 원사인데 강하 경력이 1000회 이상이다. 공수교육대 교관보다도 많은 횟수다. 임 원사는 처음엔 아들이 육사에 진학하는 걸 반대했으나 이미 주변에는 아들이 육사에 합격했다고 소문을 다 냈다고 했다.
―실제 강하해보니 어떤가요?
임상언(이하 임): “아버지와 동반강하를 했는데, 아버지가 무서워하지 말고 산을 바라보라고 했어요. 아버지가 먼저 뛰고 저도 따라 뛰었습니다.”
남현수(이하 남): “늘 다른 사람이 뛰어 내리는 모습만 보다가 제가 강하를 했다고 생각하니 설렜죠. 기구를 타고 올라가니 집도 보였어요. 어릴 때 놀았던 하천과 운동장을 내려다보니 기분이 묘했죠. 다들 무섭다고 걱정했는데 저는 오히려 익숙한 풍경을 제 눈에 담아서 좋았죠. 아버지도 망원경을 들고는 강하하는 모습을 봤다고 했습니다.”
―낙하산이 처음 펼쳐졌을 때 어땠나요?
임: “강하 준비할 때부터 낙하산이 어깨를 짖눌러 힘들었어요. 낙하산이 실제 펴지자 안심했죠. 평소 아버지가 ‘하늘 만큼 몸이 편한 곳이 없다’고 하셨어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었죠. 강하해보니 의미를 알게 됐어요.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와 기분도 좋았어요.”
남: “교관이 ‘댓가 없는 자유는 없다’고 했어요. 강하까지 과정은 힘들었지만 창공에 안기는 순간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 보니 어떤가요?
임: 아버지가 어디에 뭐가 있다고 말해주셨는데 이걸 확인하려고 했어요. 아파트 단지 뒤에 에버랜드가 있다고 알려줬는데, 실제로 롤러코스터 같은 물체가 보였죠. 강하 끝내고 아버지한테 연락해 ‘에버랜드가 어디에 있는지 찾았다’고 하니 ‘여유가 있었나 보네’라고 하셨죠.
남: 강하 시간이 짧아 풍경을 내려다볼 여유는 없었어요. 평소 머릿속에 그려놓은 동네를 훑어보고 끝났어요.
―오기 전에 선배에게 노하우도 듣고 왔나요? 같은 걸 받고 왔나요?
임: “‘기구에서 땅을 보지 마라’ ‘난간을 잡지 마라. 잡는 순간 못 뛴다’는 이야길 들었어요.”
남: “‘알려줘도 기억 못 할 테고, 공수훈련을 받으면 몰라도 잘 알려줄 거다’고 했어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요?
임: “날이 더운 게 가장 힘들었어요. 충분히 할 수 있는데도 환경이 열악하니 스스로에게 불만을 갖기도 했죠.”
남: ”동작이 원활하지 못 해 노란 딱지(저조자 표식)를 붙였을 때입니다. 강하하지 못 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했죠. 딱지를 떼려고 훈련에 더 몰입했습니다.”
임 생도는 공수훈련 1주차 주말에 외박을 나가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다. 부자(父子)는 주말 내내 강하 이야기를 하며 과외까지 했다고 한다. 남 생도 아버지는 아들이 뛰는 모습을 볼 수 다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광주 집에서 공수교육대 생활관까지는 20분밖에 안 걸렸다.
남 생도와 임 생도에게 이번 훈련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을 말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김종래(육군 중사) 교관을 이야기했다.
“교관 중 가장 막내였습니다. 가장 먼저 훈련장에 나오고 가장 늦게 훈련장을 떠났죠. 진심을 다해 열정적으로 교육하는 모습에 많은 생도가 감명을 받았습니다. 항상 긍정적인 힘을 주려고자 노력하셨습니다.”
임 생도는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전 당시 아버지가 군인이라는 점 하나만으로 든든했다”며 “아버지와 같은 군인이 돼 주변 사람과 나라를 지키고 싶다. 임관하면 특전사에 지원하고 싶다”고 했다.
남 생도는 “‘밀물이 반드시 밀려오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때를 위해 지금 이 순간을 참고 버티고 있다”며 “훌륭한 군인이 돼 국가가 부를 때 이에 부응하는 군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훈련 끝나자 교관 선글라스 벗겨 맨 얼굴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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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수전학교 양성진(육군 대령) 교육단장이 공수기본교육 887기에서 학생장을 맡은 양준서 생도에게 공수휘장을 붙여주고 있다. |
특수전학교 양성진(육군 대령) 교육단장은 887기 수료자들에게 “좋은 기억만 갖고 돌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이에 대한 답사로 육사 박승민 훈육관은 “사관생도들과 특전부사관후보생들이 땀흘리는 모습은 잊지 못 한다”고 했다.
887기 공수기본과정 1등 수료자는 육사 최원혁 생도였다. 최 생도에게 1등 비결을 물었더니 옆에 있던 윤서진 생도가 이렇게 말했다.
“매일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10분가량 그날 배운 동작을 복습했습니다.”

수료식을 마친 생도들은 3주 동안 지낸 생활관을 청소한 뒤 모형탑 앞에 모여 허장안 대령 주관으로 해단식을 가졌다. 종료 시각은 오후 6시. 생도들은 버스를 타고 육사로 이동했다. 육사에 도착하자 장난기 많은 한 생도는 “좌측 화랑관”을 외쳤다. 좌회전하면 곧장 자신들이 지내는 화랑관으로 가기 때문이었다. 화랑관에는 공수훈련을 마친 선배 생도들을 맞이하기 위해 후배들이 커피와 음료수를 사 들고는 늘어서 있었다. 선배 짐이 무거울까봐 대신 짊어지고 옮겨주기도 했다. 육사 생도들은 하계 군사훈련을 모두 마치고 8월 10일부터 3주 동안 하계휴가를 시작했다.
공수훈련 기간 중 기자가 가장 즐거웠던 공간은 특수전학교 식당이었다. 식욕 해소 때문이 아니라 총을 멘 채 밥 먹는 군인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수전학교에는 전문화를 위해 보수교육 과정에 입교한 특전사 대원이 많았다. 이들은 총을 휴대하고는 위장 크림도 지우지 않은 채 점심을 먹었다. 한 여군은 무거운 적성(敵性) 무기를 든 채 식당에 들어왔는데, 이 모습이 그리 듬직할 수가 없었다. 특수전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는 시간은 감사함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유사시 나와 내 가족을 대신해 싸워줄 군인과 함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백아 83기가 말하는 공수기본교육
육사 83기는 휘호가 ‘백아(白我)’다. 사람으로 치면 호와 같은 휘호를 기수마다 정한다. ‘소박함, 순결함, 깨끗함’이 육사에서 가장 중시하는 명예와 청렴에 걸맞다고 생각해 ‘하얗다, 깨끗하다’는 뜻의 ‘백(白)’과 ‘자신(我), 바르다(雅)’라는 뜻을 가진 ‘아’를 더했다.
김세영(205번) 생도

강하를 준비하는 절차가 상당히 많습니다. 산악복은 통풍이 잘 안되고, 그 위에 낙하산까지 강하게 조여 입으니 답답합니다. 강하할 때는 동기들이 뛰어내리니 저도 정신없이 이탈했습니다. 캐노피가 ‘파바박’하며 펴지는 느낌이 들면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치누크에는 한 번에 30명이 탑승하니 북적북적합니다. 기체 강하는 기구 강하보다 더 높은 고도에서 1초 간격으로 이탈합니다. 더 역동적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교관이 뛰라는 신호를 내리자 0.1초 만에 강민서 생도가 뛰어내리는 모습입니다. 앞선 강하자가 주저하면 다음 강하자도 주저합니다.
강하를 앞두고 날씨가 좋지 않아 생도들이 걱정했습니다. 저는 ‘무조건 뛴다’고 생각했습니다. 날씨는 강하 전까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니까요.
박한별(211번) 생도

강하하기 위해 기구에 오르기 전에는 차례가 되면 잘 뛰어내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기구가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높이감이 느껴져 긴장됐습니다. 이탈하고 4초 가까이 지나 낙하산이 펼쳐졌습니다. 시야가 탁 트였고, 속이 뻥 뚫렸습니다. ‘이 장면을 보기 위해 2주 동안 지상 훈련을 받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낙하산이 펼쳐지지 않으면 예비 낙하산을 제대로 펼 수 있을까’와 같은 걱정도 합니다. 기구에서 뛸 때는 ‘1만, 2만, 3만’을 세어야 낙하산이 펴지는 느낌이지만 기체에서는 ‘1만’을 외치고 ‘으아악’하면 어느 순간 낙하산이 펴져 있습니다.
기구는 사방이 개방돼 있어 이탈 고도까지 올라갈 때 조금은 무섭습니다. 치누크는 기체에서 밖이 잘 보이지 않아요. 램프(ramp, 개방 뒷문)가 열리기 전에는 높이감도 느끼기 쉽지 않죠. 좁은 항공기 안에서 다닥다닥 붙어 있다 보니 답답해요. 대신 램프가 열리는 순간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요. 치누크 안에서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긴장을 풀려고 합니다.
이현승(216번) 생도

착지 동작이 잘 되지 않아 2주 차까지 노란 딱지를 붙이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강하를 앞두고는 뗐습니다. 강하 전 주말에 비가 온다는 기상예보를 접했습니다. 정신 무장이 다 돼 있는 상태였는데 허탈했죠. 생도들도 전부 탄식을 했고요. 다행히 날씨가 돕는 바람이 무사히 강하했습니다.
첫 강하에서는 풍경을 즐기기보다는 제 위치를 파악하고 공중 동작을 하느라 바빴습니다. 기구에서 뛰어내린 뒤 약 4초 동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창공에 내던져진 느낌이었습니다. 캐노피가 펴진 다음에야 머리가 돌아가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착지 후에는 ‘해냈다’는 자신감과 홀가분함을 느꼈습니다.
기구는 자유 낙하, 항공기는 앞사람을 따라 밖으로 빨려 나가는 느낌입니다. 항공기가 이동하면서 저와 기체를 이어주는 생명줄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낙하산이 좀 더 빨리 펴지는 듯해요. 생명줄을 낚아채인다는 느낌입니다.
(216번 이현승 생도와 271번 이승현 생도는 라이벌이다. 216번은 271번과 자신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했고, 271번은 자신이 216번보다 뛰어나다고 했다.)
최혁준(225번) 생도

지상 훈련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없는 살도 빠질 정도였습니다. 막상 강하하는 순간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뛰라고 하니 뛴 것뿐인데, 캐노피가 펴진 순간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놀이기구 중 자이로드롭을 오래 탄 느낌이었습니다. 1만, 2만까지는 괜찮은데 3만부터는 속이 울렁거리는 불쾌감이 있었습니다.
일부 생도는 ‘낙하산이 펴지지 않으면 어떡하나’라고 걱정했는데 저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교관은 공수기본교육 과정에서 수십 년 가까이 강하하면서 예비 낙하산을 펴본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강하를 앞둔 주말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혹시 몰라 예비 표까지 끊어놓았죠. 다행히 훈련을 일정대로 무사히 마쳐서 다행입니다.
일부 생도는 에버랜드의 T익스프레스를 봤다고 했습니다. 저는 직접 확인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외출 때는 동기와 함께 영화를 보고는 집에 가 쉬었습니다. 훈련을 너무 열심히 받은 탓인지 병원에 가 진료도 받았습니다.
구수민(234번) 생도

마지막 강하 주간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오전 2시에 일어나 오후에 생활관으로 복귀할 때까지 계속 밖에서 지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헬멧, 산악복, 낙하산, 예비 낙하산 등 20kg이 넘는 짐을 챙겨 이동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강하 지점까지 기구를 타고 상승할 때가 가장 떨렸습니다. 이탈하는 순간이 가장 망설여졌습니다. 놀이기구를 타듯 소리를 지르며 이탈했어요. 쉽진 않았지만 억지로 ‘1만, 2만, 3만’을 외쳤습니다. ‘낙하산이 안 펴지면 어떡하지?’와 같은 생각은 안 했습니다. 공중에서 풍경을 바라보니 주변이 참 아름다웠는데, 막상 풍경을 감상할 여유는 없었습니다.
마지막 강하에서는 안개가 너무 짙게 낀 나머지 기구에 오르기 위해 걸어왔던 도로가 눈에서 사라지는 일도 있었죠. 일기예보 소식을 듣고는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막상 월요일에는 비가 오지 않고 수요일에 비가 왔어요. 덕분에 수요일을 재충전하는 시간으로 삼을 수 있었죠.
훈련을 마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동기들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공수 휘장을 달아야 한다는 목표도 있었습니다. 공수 훈련만 생각하면 이젠 못 할 게 없다고 생각해요. 내년에 공수 훈련을 받아야 하는 84기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선크림을 잘 바르라’는 말입니다.
김은기(238번) 생도

육사생도는 공수훈련을 기점으로 책임감이 더 커집니다. 4학년이 될 생도로서 준비를 마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선배 생도에게 ‘선크림 많이 바르라’ ‘주춤거리지 말아라’ ‘다치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착지 동작 연습은 재밌었습니다. 새로운 걸 배우니 교관이 알려주는 대로 잘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수훈련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아침 구보였습니다.
강하를 앞두고 기구 문에 섰을 때가 가장 떨렸습니다. 기구가 평행하지 않고 앞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낙하할 때는 오히려 편안했습니다. 갈대밭에 착지했는데 포근했습니다. 낙하산이 펴지는지는 소리로 알 수 있습니다. 캐노피가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가 나면 ‘낙하산이 펴졌구나’ 하고 안심했습니다.
1주 차 주말에는 집에 가 충분히 잠을 자고 테니스를 배웠습니다. 공수훈련 기간에 일기도 꾸준히 썼습니다.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강하를 한 뒤 그 감정을 잊지 않고 기록하고 싶어 감기는 눈꺼풀을 치켜세우며 글씨를 흘려 쓰며 기록했습니다. 불침번을 설 때도 그날 경험했던 일을 적어 내려갔습니다. 주차 별로 목표도 세웠는데 1주 차는 ‘알차게 (훈련) 받자’, 2주 차는 ‘수료만 하자’, 3주 차는 ‘다치지 말자’였습니다. 이번 훈련을 계기로 같은 중대 생도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어 뜻깊었습니다.
김지원(241번, 4번기장) 생도

4번기장을 맡으면서 더욱 책임감을 갖고 공수훈련에 임했습니다. 번기장은 제대를 통제해야 하는데, 한 개 번기에는 45명이 있습니다. 45명을 통제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번기원들이 작은 말 한마디에도 상처받지 않도록 신경을 썼지만, 실제로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첫 번째 강하를 앞두고는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제 차례가 되자 의무감으로 뛰어내렸습니다. 낙하산이 펼쳐지기 전 약 3초 동안, ‘억’ 소리만 냈습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낙하산이 펴진 뒤에야 ‘살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어 확인하니 캐노피가 제대로 펼쳐져 있었습니다. 배운 대로 다리에 힘을 빼고 착지해 무사히 강하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2번 기구에서 강하한 게 오히려 도움이 됐습니다. 2번 기구는 탑승하려면 1번 기구를 지나 언덕길을 5분가량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땡볕에 통풍이 되지 않는 산악복을 입고, 헬멧을 쓴 채 낙하산을 메고 걸어가다 보면 숨이 차서 긴장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양준서(250번) 생도

기구에서 강하하면 마지막 강하자는 기구가 쏠린 상태에서 이탈해야 합니다. 점프해도 수직으로 떨어집니다. 기구에서 강하하면 이탈 후 4초쯤 지나 낙하산이 펴진 것 같아요. 치누크 강하에서는 뛰어내린 지 2초 후 몸이 살짝 들리자 ‘낙하산이 펴졌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탈하면 자유롭게 낙하만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공중 동작 절차가 많았습니다. 공중 이동은 재밌고 신기했습니다.
특전사 근무자들이 특전사에 매료돼 계속 복무하는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특전사는 분기마다 강하해야 하는데, 하늘에서 보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저도 특전사에 지원하고 싶습니다.
학생장을 맡아 공수훈련을 치른 걸 잊지 못할 겁니다. 항상 일찍 일어나고 더 늦게 잠들어야 했기에 힘들었지만, 더 성장하는 기회였습니다.
정재헌(260번, 5번기장) 생도

지상 훈련에서 착지 연습을 하며 몸치인 걸 알게 됐습니다. 착지자세가 나오지 않아 노란 딱지를 붙이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걸 어떻게 하면 빨리 뗄까?’ 신경 쓰며 자세를 고쳐 나갔습니다.
첫 주차 훈련이 너무 힘들어 주말에 무얼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밖에 나가 하루에 5끼를 먹었습니다. 마사지도 받았는데, 근육이 너무 뭉친 나머지 수건을 입에 물고 지압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첫 번째 강하는 착지를 제대로 하지 못해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아드레날린이 솟은 상태이니 아픈 줄도 모르고 곧바로 ‘이상 무’를 외쳤습니다. 모든 충격이 허리로 몰려 시간이 지나면서 통증이 나타났습니다.
두 번째 강하부터는 ‘배운 대로 실천하자’는 생각으로 착지 과정을 되뇌었고, 덕분에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었습니다. 착지 동작을 모두 이어서 한 후에는 ‘해냈다’는 생각에 도파민이 분출되는 듯했습니다. 곧바로 일어나 자세를 잡고 ‘260번 이상 무’ 외쳤습니다.
공수기본교육 입교 일주일 전, 동생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동생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동생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훈련을 받았고, 강하에도 임했습니다. 강하 전날 잠들기 전에는 ‘동생이 멋있다고 생각할 수 있게 잘 뛰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오영재(270번) 생도

기구 강하에서는 낙하산이 펴지기 전까지 자유낙하 시간이 상당히 깁니다. 이탈한 후 ‘낙하산이 펴지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잠시 후 펼쳐진 낙하산을 확인하곤 안도했습니다.
항공기 강하가 더 실감 났습니다. 실제 강하 작전을 하는 느낌이었어요. 엔진 소리 때문에 옆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안 들렸어요.

바람이 높이마다 다르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아쉬운 게 있다면 강하 시간이 짧았다는 점입니다. 공수훈련 일과는 새벽 4시에 시작합니다. 점심 식사 후 잠시 낮잠을 잘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하루를 두 번 사는 느낌이었습니다.
첫 주차 훈련 때는 지상에서 구르다 보니 온몸이 멍투성이가 됐습니다. 주말 외출 때는 사우나에 가서 쉬었습니다. 훈련이 고된 나머지 무언가를 할 의욕이 없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첫 기구 강하에서 교관이 ‘기구 타고 내려가지 말고, 낙하산 타고 내려가라’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김민수(290번) 생도

공수체조를 처음 배울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체력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햄스터가 쳇바퀴를 구르듯 반복되는 착지 훈련도 벅찼습니다. 강하를 해보니 ‘착지 동작을 참 과학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항공기 강하에서는 2패스 2번 강하자였는데, 앞사람이 뛰자 저도 달려갔습니다. 무서워서 지상을 내려다보진 않고 정면만 바라보며 내려왔습니다. 실제 강하 작전은 굉장히 어렵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훈련은 낮에 하지만, 실제 작전은 야간에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유사시 강하하려면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에버랜드를 찾아보려 했지만, 여유가 없어 그러지 못했습니다.
특전사를 막연히 ‘강한 부대’라고만 생각했는데, 특전사의 기본인 공수훈련만 받았는데도 특전사가 얼마나 강인한 집단인지 알게 됐습니다. ‘북한군이 특전사를 무서워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권재현(300번) 생도

상공에서 낙하산이 안정적으로 저를 감싸는 느낌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강하 전에는 걱정이 많았지만, 배운 대로 하니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짜릿했습니다. 오기 전에 선배 생도들이 ‘온몸으로 직접 경험해 봐야 한다’고 했는데 저 역시 후배 생도에게 이렇게 말해야 할 듯합니다.
동기인 박선영 생도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무릎이 안 좋은 상태로 공수교육대에 입교했습니다. 한쪽 다리를 끌며 이동하면서도 훈련을 소화했습니다. 그러다 모형문 이탈 훈련 중 무릎을 다쳤습니다. 훈련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쉬엄쉬엄하라고 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훈련에 임한 모습이 제겐 감동적이었습니다.
교관이 해준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자신이 두렵다고 생각하면, 주변 동기가 특수부대원이라고 생각하라. 그러면 무언가 끓어오를 것이고 강하도 재미있게 할 수 있다”
김지은(306번) 생도

지상 훈련을 받을 때는 새로운 걸 배운다는 생각에 즐겁게 임했지만, 강하를 위해 기구를 타고 300m 위로 올라가니 떨렸습니다. 뛰어내리며 ‘1만’을 외쳤는데 그다음부터는 너무 무서웠습니다. 심장이 목구멍으로 넘어올 듯한 느낌이 3초간 지속되다가 낙하산이 펴지자, 안도감과 함께 포근함을 느꼈습니다. 이 3초 동안 ‘낙하산이 안 펴지면 어떡하지?’를 걱정하며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기구 강하에서 6번 강하자는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1~5번 강하자는 뒤에서 누군가 보고 있다는 압박감 때문에 뛰어내릴 수 있는데, 6번 강하자는 눈치 볼 사람이 없으니까요.
강하를 앞둔 토요일, 일기예보에서 월요일부터 호우가 예상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침울해졌습니다. 여름휴가 때 사회에 있는 친구들과 여행을 갈 계획을 세워 놓은 상태였습니다.
훈련을 받으면서도 일기를 썼습니다. 공수훈련에 간다고 하니 선배 생도가 비타민을 선물해 줬습니다. 후배 생도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앞꿈치, 무릎’뿐입니다.
(김 생도는 선배가 준 비타민을 기억하고자 상표 스티커를 떼어 일기장에 붙였다. 일기도 기자에게 보여줬는데, 글을 쉽게 잘 쓰고 표현력이 좋았다. 김지은 생도는 국민이 믿을 수 있는 군인, 북한군과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군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신동헌(317번) 생도

선배 생도들이 ‘앞꿈치, 무릎’을 강조했습니다. 양팔 간격을 벌릴 때 기준에 최대한 가까워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기 전에는 ‘무섭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첫 강하에서는 동작을 제대로 취하지 못했습니다. 주변 풍경도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낙하산이 생각보다 굉장히 늦게 펴지는 느낌입니다. 1만, 2만, 3만을 외치며 수셈을 하라고 했는데, 셈이 끝났는데도 낙하산이 펴지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강하에서 착지가 원활하지 않자 고민했습니다. 2번째 기구 강하를 할 때는 산악복과 낙하산을 너무 조여 입는 바람에 어깨가 짓눌려 어지러웠습니다. 그럼에도 참고 버텨 강하를 마쳤습니다. ‘홀딩(맞바람 맞으며 착지)’에 집중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임했고, 착지도 안전하게 했습니다.

육사생도에게 공수훈련은 육군 소위가 되는 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길입니다. 힘든 훈련이지만 동기들과 함께 한 덕분에 무사히 공수 휘장을 달게 돼 기쁩니다.
학생장인 양준서 생도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양 생도가 보여준 책임감은 저희 생도들에게 힘을 줬습니다. 남보다 두 배 이상 힘들 텐데, 책임감을 갖고 학생장 역할을 멋지게 수행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문지호(345번, 7번기장) 생도

지상 훈련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날씨도 무척 더웠습니다. 하지만 동기들과 함께여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선배 생도들이 왼쪽 가슴에 공수윙을 단 모습을 보며 ‘빨리 휘장을 달아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이제 그 자격을 얻었다고 생각하니 기뻤습니다.
힘든 훈련을 잘 마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동기애(同期愛)와 육사 정신이었습니다.
이제희(387번) 생도

고소공포증이 조금 있습니다. ‘공수훈련을 못 받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막상 강하를 잘 마쳤습니다. ‘놀이기구를 타는 기분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하늘이 저를 포근히 안아주는 듯했습니다. 저는 오히려 모형탑이 더 무서웠습니다. 모형탑에서 이탈한 후 케이블의 탄성 때문에 튀어 오르는 게 생소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훈련장과 생활관을 내려다보니 거리감이 좁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세상이 매우 작아 보여 신기했습니다.
저는 산줄이 꼬여 DZ에서 벗어난 곳에 착지한 일도 있습니다. 제가 몸무게가 적게 나가다 보니 바람이 불면 이에 영향을 받아 남들보다 더 멀리 밀려나곤 했거든요. 착지한 곳이 중요 시설이었는데 마침 군인들이 풋살을 하고 있더라고요. 잘못 들어왔는데도 무심하게 공놀이를 계속하고 계시길래 오히려 제가 민망했습니다.
잔디밭이나 갈대밭에 착지하면 편안하다고들 하는데, 착지 동작만 잘 지키면 아스팔트에 떨어져도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특전부사관후보생들과 함께 훈련을 받았는데 같은 또래이자 군인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편했어요. 특전부사관후보생이 강하할 땐 육사생도들이 도우미를 했고, 육사생도들이 뛸 땐 특전부사관후보생들이 도우미를 했습니다. 이들이 안전하게 강하할 수 있도록 산악복과 낙하산을 입힐 때 정성을 들였습니다. 자식을 물가에 내놓는 느낌이었습니다.
강하를 앞두고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했는데 저는 걱정 안 했어요. 제가 날씨 요정이거든요. 여행을 가도 날씨가 나쁜 적은 없었습니다.
민예진(405번) 생도

걱정을 많이 했지만 잘 뛰었습니다. 강하를 앞두고 문 앞에 섰을 때가 가장 떨렸습니다. 뛰고 난 뒤에는 하늘에서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놀이기구가 강제로 끌어당기는 느낌이라면 강하는 중력을 따라 자유롭게 하강해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동시에 십자로를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십자로를 기준으로 착지 지점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상 스피커에서는 착지 방법을 알려줍니다. 자신이 몇 번 강하자인지 집중해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공수 훈련에서 힘든 게 있다면 착지 동작을 익히기 위해 같은 자세를 계속 반복해야 했다는 점입니다.
1주 차 주말에는 외출을 나가 집에 가서 많이 먹었어요. 떡볶이, 연어, 육회, 삼겹살 등 여러 음식을 먹었습니다. 이번 하계 군사훈련에서 지휘근무를 맡았기에 책임감을 갖고 훈련에 임했습니다.
지상 훈련에서 반복하며 동작을 익혔는데도 실제 강하에서는 잘되지 않았습니다. 체력이 부족하면 정확한 동작을 만들 수 없고 훈련 효과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체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정지호(463번) 생도

지상 훈련 때 복창하며 동작을 반복했습니다. 실제 강하에서는 몸에 힘이 너무 들어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실전에서 제대로 강하하려면 반복 숙달과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첫날 땡볕에서 공수체조를 배운 경험을 잊을 수 없습니다. 더위를 먹었습니다. 공수체조를 접한 첫날, 첫 교시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1주 차 주말에는 외출을 나가 무한 리필 고깃집에서 원 없이 먹었습니다. 사회에 있는 친구들에게 공수훈련을 받고 있다니 “멋있다”고들 했습니다.
제가 동경했던 육사생도는 하정복을 입고 검게 그을린 피부, 은색 공수 휘장을 왼쪽 가슴에 단 모습이었습니다. 저도 이에 다가선다는 생각으로 훈련을 버텼습니다. 훈련 기간이 하루하루는 빡빡했지만 되돌아보면 금세 지나갔습니다.
9번기 담임 교관을 맡은 김종래 중사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공수교육대에서 첫 담임 교관을 맡았는데 9번기 교육생들이 무사히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관심과 애정을 쏟았습니다.
훈련 강도를 더 높였으면 좋겠습니다. 생도들이 더 힘들어야 합니다. 생도를 위하는 훈련은 생도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훈련이 아닙니다. 좀 더 고되고 실전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생도 실력이 향상되고, 우리 군도 더욱 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