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말할 만한데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할 만하지 않은데 말하면 말을 잃는다.”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과 학사, 런던대 로열헐러웨이컬리지 박사(비교연극사) /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경기영어마을 사무총장,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 MBC 라디오 앵커, 배나TV·(주)戰後70년 ‘생생현대사TV’ 대표 역임. 現 성남FC 사장 / 저서 《논어를 축구로 풀다》 《장원재의 배우열전》 《북한요지경》 《끝나지 않는 축구 이야기》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과 학사, 런던대 로열헐러웨이컬리지 박사(비교연극사) /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경기영어마을 사무총장,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 MBC 라디오 앵커, 배나TV·(주)戰後70년 ‘생생현대사TV’ 대표 역임. 現 성남FC 사장 / 저서 《논어를 축구로 풀다》 《장원재의 배우열전》 《북한요지경》 《끝나지 않는 축구 이야기》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년)은 논어 해설서인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를 짓고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논어》는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바가 있습니다. 흡사 어렸을 적에 새벽에 밤나무 동산에 가서 홀연히 붉은 밤알이 난만히 땅에 흩어져 있는 것을 만나 그것을 다 줍기가 벅찼던 것과 같으니, 이를 장차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조선에선 《논어》 자체가 관직으로 나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험 과목이었다. 그래서 《논어》 외우기는 사대부(士大夫)의 필수 교양이었다. 그런 시대가 400년 이상 흘렀는데도 정약용은 위와 같이 평했다. 말하자면, 《논어》에 관한 더 이상의 논의나 해석이 가능할 법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이 조선 후기 최고의 천재는 《논어》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희열에 찬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李秉喆·1910~1987년)의 회고록 《호암자전(湖巖自傳)》에는 이런 대목이 보인다.
“가장 감명 받은 책, 혹은 좌우(座右)에 두는 책을 들라면 서슴지 않고 《논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라는 인간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은 바로 《논어》다. 나의 생각이나 생활이 《논어》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만족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을 일구어 낸 영웅적 경영자에게도 《논어》는 일생을 관통하는 감화력을 행사하고 있다. 《논어》의 감화력은 시대를 뛰어넘는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그렇다. 《논어》는 고착화(固着化)한 책이 아니다. 시대가 흐르면서 이해도가 누적되어 해석의 깊이를 더하는 것만이 아닌 서적이다. 오히려 모든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해석과 접근을 통해 매번 새롭게 재탄생해야 하는 인류 문명사의 보고(寶庫)라고 봐야 한다. 그만큼 현대적이다.
김충열 교수님의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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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張源宰 |
이 불일치를 해결해 주신 분은 동양철학의 대가이신 은사 고(故) 김충열(金忠烈·1931~2008년) 교수님이시다. 소생이 초임 교수 시절이던 2001년 숭실대학교로 특강을 나오셨던 김충열 교수님을 찾아뵙고 이 말씀을 여쭈었다. 대학 시절 김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부터 품었던 의문이다. 돌아온 답은 정말 의외였다.
“공자님 말씀을 포함, 모든 중국 경전은 농경사회, 왕정국가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 사회와는 적합하지 않은 면이 많이 있다. 다만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 속성은 그때와 지금 사이에 비슷한 점이 없지 않으므로, 읽는 사람이 가려서 습득하고 정리하면 공자님 말씀은 현대인들에게도 인생 지침서로서 유용한 참고서 노릇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동양철학의 세계적인 대가께서 “공자님 말씀은 시대와 문화권을 뛰어넘는 절대선(絶對善)이 결코 아니다”라고 이렇듯 딱 부러지게 말씀하실 줄은 미처 몰랐다. 소생에게 이 말씀은, 김충열 교수님 당신께서 평생을 바쳐 천착(穿鑿)하신 무언가가 절대적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실로 대가가 아니고서는 하시기 어려운 이야기로 들렸다. 마음이 탁 트이고 신세계가 열리는 느낌이었다. 교수님 말씀을 소생 나름대로는 이렇게 새겼다.
“공자님 말씀을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논어》라는 덫에 갇힌다. 《논어》를 ‘인생을 경영하는 데 필요한 일종의 참고서’라 생각하면 우리는 《논어》라는 열쇠를 사용해 광대한 지혜의 세계로 나아가는 비밀의 문을 열어젖힐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인생이라는 사막을 건너는 데 《논어》는 성능 좋은 나침반 노릇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배움과 향상의 본질은 유연함’
《조선일보》 문화부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논어등반학교장으로 있는 이한우(李翰雨) 선배와는 자주 만나는 사이다. 소생의 《논어》 공부는 이한우 선배의 저작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 《논어》 의 자구(字句)를 해석하는 일은 많은 학자들이 이룩한 일이다. 하지만 글자를 뛰어넘어 왜 그 문장이, 개념이, 단어가 그 대목에서 쓰였는가를 논하고, 나아가 그 표현이 현대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역사적·사회적 맥락에서 풀어 간 글은, 물론 소생의 과문(寡聞)함이 문제겠지만, 이한우 선배의 저술이 우뚝한 듯하다. 예컨대 공자께서 말씀하신 시(詩)·예(禮)·악(樂)이란 무엇인가, 왜 그것이 그토록 중요한 개념인가, 그 개념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명료하게 설명하는 과정을 거쳐야 《논어》가 현대인에게 보다 새롭고 친밀한 테스트로 거듭날 것이라는 선배의 의견에 100% 공감한다. 《시경(詩經)》은 단순한 시집이 아니고 인간의 감정 상태를 샘플링하여 제시함으로써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가능케 한 문헌이며, 《주역(周易)》은 점술서(占術書)가 아니라 시대 및 외부 상황의 샘플링으로, 개인으로 하여금 대세를 읽고 판단하도록 도움을 주는 문헌이라는 선배의 평가에 따라 언젠가는 소생도 《시경》과 《주역》에 두 눈과 마음을 담그고자 한다.
《논어》는 ‘개인의 향상(向上)’을 다룬 책이다. 소생은 ‘학즉불고(學則不固)’를 ‘배움과 향상의 본질은 유연함이다’라는 뜻이라고 새긴다.
최근 들어 감명 깊게 읽은 구절이 있다. 어떤 일을 도모함에 있어 누구와 어떻게 뜻을 함께할 것인가. 공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함께 말할 만한데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할 만하지 않은데 말하면 말을 잃는다(可與言而不與之言 失人. 不可與言而與之言 失言).”
공자님은 “난폭함과 무례함을 용기로 아는 자를 싫어한다”고 하셨다. “모두에게 좋은 소리를 듣는 것은 줏대가 없거나 기회주의자다. 좋은 사람에게는 좋은 소리를 듣고, 못된 사람들로부터는 나쁜 소리를 듣는 것이 진정한 군자다”라는 말씀도 소생에게 용기를 주는 《논어》의 한 구절이다.
이한우 선배는 공자 제자 중 본인과 비슷한 성격의 누군가를 찾아 가상 대입을 하며 글을 읽는 것도 좋은 독법의 하나라고 말했다. 선배가 가탁(假託)한 인물은 자공(子貢)이며, 소생이 의탁한 인물은 자장(子張)이다. 공자의 이 두 제자가 어떤 인물인지는 《논어》를 읽으며 직접 확인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