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가 힘이 들 때 사랑을 선택하라!
鄭浩承
1950년생. 경희대 국문과·同 대학원 졸업 /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등 14편의 시집을 펴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상화시인상, 공초문학상, 김우종문학상, 하동문학상 수상
鄭浩承
1950년생. 경희대 국문과·同 대학원 졸업 /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등 14편의 시집을 펴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상화시인상, 공초문학상, 김우종문학상, 하동문학상 수상
이 그림은 렘브란트가 사망하기 한 해 전인 1668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사실 나는 이 그림을 렘브란트 화집이나 몇몇 성당 벽에 걸려 있는 것을 무심히 봤을 뿐 평소 큰 관심은 없었다. ‘렘브란트도 유럽의 다른 화가들처럼 성화(聖畵)를 그렸구나, 신약성서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토대로 해서 그린 그림이구나’ 하는 정도로만 보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아… 사랑을 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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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鄭浩承 |
헨리 나우웬은 《탕자의 귀향》을 렘브란트의 그림 〈돌아온 탕자〉를 보고 썼다. 어느 사무실 벽에 포스터로 걸려 있는 것을 우연히 보고 큰 감동을 받아 원화를 보기 위해 러시아를 찾았다. 그는 에르미타주 미술관의 허락을 얻어 이틀 동안이나 의자를 놓고 앉아 그림을 감상하면서 깊은 사랑의 관계를 성찰했다. 사랑의 여러 가지 본질 중에서 용서의 본질을 영성적 태도로 깊게 성찰한 결과가 바로 그의 대표적 저서인 《탕자의 귀향》이다.
성서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는 작은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 멀리 다른 지방으로 가서 허랑방탕하게 쓰다가 흉년이 들어 돼지치기로 살며 굶주리게 되자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 용서를 청하는 이야기다. 렘브란트는 이 비유의 말씀을 그림으로 승화시켰고, 헨리 나우웬은 그 그림에 나타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사랑과 용서의 관계로, 신(神)과 인간의 관계로 영성적 측면에서 깊게 성찰하고 묵상했다. 그는 아버지를 떠난 작은아들이 우리 자신의 모습일 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모습이라고 설파한다.
나는 《탕자의 귀향》을 다 읽고 그를 소개하는 글에 오랫동안 마음이 머물렀다. 거기에는 내가 미처 읽지 못하고 지나친 말이 있었다.
“관계가 힘이 들 때 사랑을 선택하라.”
나는 이 말을 읽는 순간 누가 나를 한 대 힘껏 때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아, 맞아. 관계가 힘이 들 때마다 나는 미움과 증오를 선택하면서 살아왔구나. 이 말씀을 진작 알았더라면 내 인생이 이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텐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관계가 힘이 들 때마다 사랑을 선택하자.’
이 말은 헨리 나우웬이 직접 한 말은 아니다. 캐나다에 있는 지체장애자들의 공동체 라르슈 데이브레이크에서 그와 10여 년간 함께 생활했던 수 모스텔러 수녀가 한 말이다. 그녀는 “헨리 나우웬의 정신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관계가 힘이 들 때 사랑을 선택하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고 했다.
분노에 휩싸여 잠 못 이룰 때마다
나는 헨리 나우웬이 이 말을 내게 직접 하는 말로 여겨졌다.
“당신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마라. 관계가 힘이 들 때는 사랑을 선택하라. 서로 하나 되기 위해서 상처 입고 쓰라린 감정 사이를 거닐라. 마음으로부터 서로 용서하라.”
수 모스텔러 수녀는 헨리 나우웬의 정신적 유산을 단 몇 마디로 이렇게 다시 요약 소개했다.
나는 요즘 ‘관계가 힘이 들 때 사랑을 선택하라’는 말을 늘 가슴에 품고 산다. 이 말이 내 인생의 화두(話頭)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이 말은 내 과거를 성찰하게 하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 남은 인생을 매 순간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분명한 해답을 준다.
관계가 힘이 든다는 것은 용서하지 못한다를 의미한다. 미움의 관계를 사랑의 관계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용서가 전제돼야 하나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것은 마치 키 작은 나보고 지금 키가 크라고 하는 것과 같다. 수영할 줄 모르는 내게 지금 한강을 헤엄쳐 건너라고 요구하는 것과도 같다. 그렇지만 남을 용서하려고 노력은 해야 한다. 남을 용서하는 일이 독약을 내가 먹고 남이 죽기를 바라는 일처럼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노력을 통해 희망을 가져야 한다.
나는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분노에 휩싸여 잠 못 이룰 때마다 헨리 나우웬의 말씀을 통해 내가 용서해야 할 일보다 용서받아야 할 일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용서만이 사랑이자 희망이라고 속삭이는 ‘돌아온 탕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용서를 청하고 용서해 주는 용서의 진정한 자세는 그림 속의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자세여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다.
러시아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 렘브란트의 그림을 본 순간 내 가슴은 떨렸다. 렘브란트의 그림을 가능한 한 빨리 많이 보고 찍기 위해 전자동 소형 카메라까지 하나 새로 샀는데, 정작 〈돌아온 탕자〉 앞에 서자 손발이 떨리고 가슴마저 떨려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었다. 나중에 보니 제대로 초점이 맞은 사진이 한 장밖에 없었다. 어쩌면 헨리 나우웬도 〈돌아온 탕자〉 앞에 선 순간 감동을 나처럼 자제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평화가 웃는 얼굴로 발소리도 가볍게 내게로
우리는 누구나 ‘너와 나’와의 관계 속에서 산다. 부모형제와 나와의 관계, 배우자와 자식과 나와의 관계, 이웃과 친구와 나와의 관계 속에서 산다. 이런 인간관계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관계의 속성은 좋을 때보다 좋지 않을 때가, 힘들지 않을 때보다 힘들 때가 더 많다. 나 또한 관계가 좋지 않고 힘들 때가 더 많았다. 이럴 때마다 사랑을 선택하지 못하고 미움과 증오를 선택해 관계는 더 악화되고 내 삶은 더 고통스러웠다. 미움을 먼저 선택한 탓으로 사랑을 선택할 기회조차 잃어버렸다.
헨리 나우웬의 말씀처럼 관계가 힘이 들 때 사랑을 선택했더라면 오늘의 내 인생은 참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늦었을 수도 있지만 남아 있는 인생이라도 관계가 힘이 들 때 반드시 사랑을 선택하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해 본다. 그러면 지금껏 내 인생에서 미처 만나지 못한 평화가 웃는 얼굴로 발소리도 가볍게 조용히 나를 찾아올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