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에는 언제나 의미가 있다. 어떤 절망에도 희망이 있다”
李時炯
1934년생. 경북대 의과대학 졸업, 同 의과대학원 박사, 예일대 대학원(PDF) / 경북대 의대 교수, 성균관대 의대 교수, 서울대 의대 외래교수, (사)세로토닌문화원 설립자, 건강 100세 연구소 초대 소장, CHA의과학대학교 석좌교수 역임
李時炯
1934년생. 경북대 의과대학 졸업, 同 의과대학원 박사, 예일대 대학원(PDF) / 경북대 의대 교수, 성균관대 의대 교수, 서울대 의대 외래교수, (사)세로토닌문화원 설립자, 건강 100세 연구소 초대 소장, CHA의과학대학교 석좌교수 역임
첫 만남은 대학 시절이었다. 한국 전쟁의 상흔이 아직 가시지 않은 시절, 폐허 위를 바람만 스쳐가던 때였다. 춥고 배고픈 고학생이었던 나는 어느 겨울날, 거리의 가판대에서 우연히 낡은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제목만으로도 끌렸다. 극한의 절망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그 질문이 내 안에서 울렸다. 책장을 넘기며 나는 생각했다. 내 형편을 돌아보며 “그래, 아무렴 거기보단 낫지 않으냐” 이 단순한 깨달음이 내 청춘의 버팀목이 되었다. 이것이 내가 처음 만난 로고테라피(Logotherapy)였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 |
| 李時炯 |
그때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프랭클의 책 구절이 떠올랐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이 한 줄에 매달렸다. 그렇게 나는 본능적으로 ‘의미치료’적 접근을 하기 시작했다. 환자에게 “당신의 남은 삶에 어떤 의미를 둘 수 있을까?”라고 물었고, 놀랍게도 그 물음은 절망의 벽을 조금씩 허물었다. 누군가는 손자에게 남길 편지를 쓰겠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환자회에서 동료를 위로하겠다고 했다. 그들의 표정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한 빛이 돌았다. 바로 그것이었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도 ‘왜 살아야 하는가’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이날 이후 나는 정신의학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 방향이 바로 로고테라피였다.
세 번째로 프랭클을 접한 시점은 한국으로 돌아와 진료와 연구를 이어가던 때였다. 1990년대 초, 빈에서 열린 세계정신의학회. 오랜 갈망 끝에 그를 직접 뵈었다. 강사로 초빙된 대기실. 세계적인 대가임에도 그분은 의외로 소탈했다. 동료 의사에게 정중하고 따뜻했으며, 또한 포로수용소의 잔혹한 이야기를 늘어놓지도 않았다. 대신 관용과 인간 존엄에 대해, 그리고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조용히, 강하게 들려주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진정한 대가는 자신을 증명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고통을 뒤로하고 사랑으로 성숙한 인간이었다.
‘공허의 시대’는 지금 이 시대의 초상
1997년,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내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나는 이후 여러 번 그의 저서를 번역하고 감수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삶의 의미를 찾아서》는 특히 내 진료와 상담의 지침서였다. 번역을 하면서 느낀 건, 그의 문장은 학문적인 논문이 아니라 삶의 기록이라는 점이었다. 정교한 체계보다 체험의 진실이 더 컸다. 그래서 그의 글은 독자의 가슴으로 바로 들어간다. 그는 철학자가 아니라, 인간의 절망 속에서 ‘빛’을 목격한 증인이었다.
로고테라피는 글자 그대로 ‘의미를 통한 치료’다. 프랭클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삶의 의미를 잃는 순간, 인간은 공허와 절망에 빠진다. 오늘날의 사회가 바로 그렇다. 그 악랄한 독일 나치는 사라졌지만, 현대인은 또 다른 수용소에 갇혀 있다. 끝없는 경쟁, 불안, 외로움, 그리고 ‘왜 살아야 하는가’를 잃어버린 허무. 프랭클이 말한 ‘공허의 시대’는 지금 이 시대의 초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프랭클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인생에는 언제나 의미가 있다. 어떤 절망에도 희망이 있다.”
이 단호한 확신이야말로 그가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그는 고통을 피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고통 속에서 스스로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 순간 인간은 운명의 희생자가 아니라 주체가 된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요, 인간의 존엄이다.
나는 이제 아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이르렀다. 고통 없는 인생은 없다. 고통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내가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수많은 실패와 좌절, 이별과 상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이 나를 단단하게 빚은 도가니였음을 안다. 그 속에서 나는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를 계속 찾아왔다. 이것이 바로 로고테라피의 정신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단순한 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이 인간을 살게 하는가에 대한 실험 보고서다.
“자기 몫의 마지막 빵 한 조각을 다른 이에게 나눠주는 사람을 보았다.”
프랭클은 그 장면을 기록하며 인간의 본질을 증언했다. 절망의 바닥에서도 타인을 위한 연민과 사랑이 존재한다는 사실. 이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마지막 불씨다.
“당신의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나는 이 책을 만난 덕분에 정신과 의사로서의 길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길 또한 배웠다. 치료란 병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되찾도록 돕는 일이라는 걸. 오늘도 나는 환자에게 묻는다. “당신의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시대가 바뀌어도, 고통은 형태만 달리할 뿐 사라지지 않는다. 프랭클이 포로수용소에서 던진 물음은 지금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울리고 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만약 그날, 추위 속에서 그 낡은 책을 우연히 집어 들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이 한 권의 책이 내게 길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젊은 세대에게 말한다. 인생을 바꾸는 책 한 권을 만나야 한다고. 그것이 나에겐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였다.
바쁜 일정에도 박상미 교수와 함께 한국의미치료학회를 창설하여 젊은 상담가들에게 빅터 프랭클의 깊은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3년 남짓한 세월, 300여 명의 상담가들이 의미치료상담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리고 올해는 영광스럽게도 빅터 국제 로고테라피·실존분석 협회, 빅터 프랭클 빈 연구소에서 공식 인증 회원증을 수여받았다.
그의 말처럼, 인생은 잘되게 되어 있다. 다만 그 사실을 ‘의식하기만 하면’ 된다.
저 한 문장이, 내 삶을 바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