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누적 판매량 1억 4000만 부… 한국에서도 2011년 소개된 이후 지속적으로 인기
⊙ 인간을 잡아먹는 초대형 ‘거인’과, ‘방벽’ 속에서 생존 위해 투쟁하는 인간들
⊙ 파생 콘텐츠의 ‘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벽 안의 삶’의 논리로써 바깥세상 예단하다가 판단 그르치는 상황 상정
⊙ 작가, 우익 논란에 대해 “일본, 패전 겪은 이상 다시 싸우는 일은 없을 것”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 인간을 잡아먹는 초대형 ‘거인’과, ‘방벽’ 속에서 생존 위해 투쟁하는 인간들
⊙ 파생 콘텐츠의 ‘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벽 안의 삶’의 논리로써 바깥세상 예단하다가 판단 그르치는 상황 상정
⊙ 작가, 우익 논란에 대해 “일본, 패전 겪은 이상 다시 싸우는 일은 없을 것”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만화가 이사야마 하지메(諫山創)가 불과 23세 나이부터 그리기 시작한 장편 만화 데뷔작 〈진격의 거인〉이 일본 만화 월간지 《별책 소년 매거진》에서 처음 연재를 시작한 건 2009년, 연재가 마무리된 게 2021년이다. 단행본으로는 총 34권으로 완결됐다. 더 대단한 건 그 미디어믹스, 즉 타 미디어로 옮겨진 콘텐츠이다. 일단 만화가 TV 애니메이션으로 소화돼 시즌 4까지 이어졌고, TV 애니메이션 내용을 압축해 극장용으로 만든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총 5편 나왔다. 그리고 극장용 실사(實寫) 영화로 한 편, 실사 TV 드라마로 한 편이 더 있다. 스핀오프 소설판도 상하권으로 또 있고, 스핀오프 만화는 7편이 더 있다. 참 보기 드물게 무수히도 쏟아진 셈이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히트작이었다는 방증(傍證)이다.
〈진격의 거인〉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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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격의 거인〉의 작가 이사야마 하지메. 사진=조선DB |
시사주간지 차원에선 아예 〈진격의 거인〉 신드롬을 놓고 진지한 분석 기사를 기획해 ‘만화 〈진격의 거인〉 보면 일본 갈 길 보인다?’(《주간동아》 2013년 6월 3일 자), ‘〈진격의 거인〉 한국을 잡아먹다’(《시사인》 2013년 6월 20일자), ‘[김호기의 예술과 사회] 일본 만화 〈진격의 거인〉과 포위된 젊음’(《주간경향》 2013년 7월 3일 자) 등이 줄기차게 쏟아졌다. 방송 뉴스에서도 SBS의 2013년 8월 9일 자 ‘문화 신드롬 된 日 애니 〈진격의 거인〉, 왜?’를 시작으로 방송사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관련 보도들을 쏟아 내기에 이른다. 이러니 대중문화에 별다른 관심 없는 이들일지라도 〈진격의 거인〉에 대해서만큼은 아예 모를 수는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나아가 ‘진격의 ◯◯’라는 표현 자체가 유행처럼 번져 ‘진격의 영희’ ‘진격의 바지’ ‘진격의 금붕어’ 등이 사진기사 제목으로 쏟아지고, 유명 프로야구 구단과 프로축구 선수에게도 ‘진격의 거인’이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당시 가장 인기 있던 방송 예능 프로그램 MBC 〈무한도전〉에는 ‘진격의 정 과장’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했다. 온 세상이 〈진격의 거인〉으로 가득 차 있었던 셈이다.
아닌 게 아니라 2013년 글로벌 검색 엔진 구글코리아에서 발표한 올해의 검색어 1위가 ‘진격의 거인’이었고, 토종 검색 엔진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발표한 같은 해 올해의 검색어 1위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게 〈진격의 거인〉 TV 애니메이션 시즌 1이 화제를 불러 모은 2013년 단 한 해 동안 벌어진 일이다.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 6위
지금은 그로부터 12년이 지났다. 그 12년에 걸쳐 쏟아진 관련 텍스트는 이루 셀 수조차 없다. 예컨대 아직도 《조선일보》 2025년 7월 14일 자 기사로 ‘[여기 힙해] 韓 청년들은 왜 日 애니 〈진격의 거인〉에 빠졌나’ 등이 등장하고 있을 정도다.
한국에서 이 정도였으니 본국인 일본에선 더 말할 것도 없다. 단행본 누적 판매량은 무려 1억 4000만 부, 권당 400만 부 이상씩 팔아 치운 셈이다. 또 2021년 일본 TV아사히에서 발표한 ‘만화총선거: 일본 국민 15만 명이 뽑은 좋아하는 만화 베스트 100’에서 〈진격의 거인〉은 6위에 랭크됐다. 그 위로 21세기 들어 연재를 시작한 만화는 〈귀멸의 칼날〉 단 한 편뿐이었다. 각종 언론 미디어의 분석이나 그를 다룬 학계 논문의 수에 있어선 둘 중 〈진격의 거인〉 쪽이 압도적이었다. 설정과 전개 면에서 현대 일본인과 일본 사회의 멘탈리티(mentality)를 더 노골적이고 치열하게 드러낸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거인’과 ‘방벽’
그럼 여기서 〈진격의 거인〉의 기본 설정과 도입부 전개 부분을 살펴보자. 어딘지 중세(中世)적인 분위기가 도는 가상 세계가 무대다. 그런데 이 세계에서 인간은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 아니다. 어느 시점부턴가 갑자기 등장한 ‘거인’들에게 잡아먹혀 인간은 멸종 직전까지 내몰렸다. 거인은 3m에서 15m까지 다양한 크기로, 생체 유지를 위한 것이 아님에도 어떻게든 인간을 먹어 치우려고 온 세상을 배회한다. 결국 살아남은 인간들은 한곳으로 몰려들어 시가지를 이루고, 시가지 주위로 높이 50m의 방벽(防壁)을 3중으로 에워싸 거인들의 침입을 막아 왔다.
〈진격의 거인〉은 이 철통과도 같이 여겨지던 방벽이 크기 50m가 넘는 초대형 거인의 출현으로 100년 만에 그 가장 바깥쪽부터 무너지면서 시작된다. 성벽 안에 사는 일련의 젊은이들과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거인들과 싸워 나가며 어떻게든 두 번째 성벽이 함락되지 않도록 투쟁하는 과정이 만화의 도입부다. 물론 그 뒤로 여러 차례 기본 설정을 뒤집는 반전(反轉)이 나오긴 하지만, 〈진격의 거인〉 신드롬은 도입부까지만 전개가 진행된 상황에서 이미 불거져 나왔다. 여기까지로도 일단 일본과 한국의 대중에겐 매혹적인 콘텐트로 받아들여졌다는 얘기다.
그중 두 가지 설정 요소, 즉 ‘거인’과 ‘방벽’에 모든 관심이 쏠렸다. 사실상 그 둘이 셀링 포인트(selling point)였던 셈이다. 그리고 이 점은 추후 여러 차례 기존 설정들이 무너지고 전개가 엎치락뒤치락 휘몰아치는 과정에서도 변치 않았다. 과연 저 거인의 정체는 무엇이며 어떤 목적으로 존재하는지, 그리고 방벽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장장 12년 동안 끊이지 않고 꾸준히 이어졌다.
일단 거인부터 살펴보자. 명확한 목적도 없이 세상을 휘젓고 다니며 인간들을 잡아먹는 이들 거인 설정은 만화 연재 초반부터 대중의 시선을 잡아끄는 주요인이 됐다. 이들의 행각 자체가 사뭇 난폭하고 엽기적(獵奇的)일뿐더러, 그 목적에 있어선 그야말로 미스터리로 똘똘 뭉친 존재로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를 무력하게 만드는 진짜 거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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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격의 거인〉 속 정체 모를 거인의 의미에 대해 여러 주장이 있다. 사진=학산코믹스 |
〈공포와 무력감은 만화책 속에서, 애니메이션 동영상 속에서 확장돼 현실과 합쳐진다. 오늘, 우리를 무력하게 만드는 진짜 거인은 누구일까. (중략) 많은 사람이 거인에게 제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만, 문강형준 문화평론가는 오히려 ‘텅 빈 기표’로서의 거인을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 “거인은 무엇이나 될 수 있습니다. 노동자에게는 자본주의 사회일 수 있고, 자본가에게는 ‘강성 노조’일 수도 있죠. 학생에게는 입시일 수도, 여자에게는 성적 폭력일 수도, 냉전주의자에게는 빨갱이일 수도 있을 겁니다. 분석하는 글마다 거인을 다양하게 상징함으로써 독자적인 이야기를 만들 수 있고, 그것이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대중문화 콘텐츠를 통해 제기되는 대부분 담론(談論)은 한층 거창한 국제질서 변화의 은유로서 해석하는 쪽이 더 인기를 얻게 마련이다. 한국에서도 이 거인 설정에 대해 그렇게 접근한 언론 미디어가 다수였고, 《주간동아》 2013년 6월 3일 자 기사 ‘만화 〈진격의 거인〉 보면 일본 갈 길 보인다?’도 그중 하나다.
〈먼저 쌓아 올린 성벽을 넘어 머리를 들이미는 거인군단 이미지는 중국의 강력한 부상과 폭발적인 군사력 강화에 긴밀히 맞닿아 있다. 일본의 보수 정치세력이 선거 때마다 핵심 구호로 활용하는 ‘중국 위협론’이 그것이다. 몰려오는 외부 ‘거인’들에게 둘러싸인 ‘약한 존재’의 공포감이다. 특히 어떻게 생겨났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작품 속 거인의 특성도 중국에 대한 일본 지식인들의 불안과 맥이 닿는다. 군사정책이나 안보정책의 의사결정 구조가 불투명하기 짝이 없어 더욱 염려스럽다는 시각이다.
쌓아 올린 성채와 그 안에서 보낸 100년간의 평화는 종전 이후 일본이 누렸던 장기간의 평화와 연결해 해석할 수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평화 시기의 군대는 반복적인 경비업무로 매너리즘에 빠져 나태하기 짝이 없는 상태. 10대 소년인 주인공 엘렌 예거는 이러한 모습에 분노하며 “싸움이 나면 막아 낼 수 있는 군대”를 소리 높여 외치지만, “전쟁 같은 건 일어날 리 없다”는 어른들에게 번번이 꾸중을 들을 뿐이다. 성채 밖의 세상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을 끊은 채 살아가는 모습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가축의 삶’으로 묘사된다.〉
어딘지 상당히 익숙한 해석이다. 아닌 게 아니라, 강용석 전 국회의원만 해도 JTBC 시사 프로그램 〈썰전〉의 2013년 5월 13일 자 방송분에 출연해 일본의 우경화(右傾化) 원인은 성장하는 중국에 대한 공포심이라 주장하며, 일본 입장에선 중국이 마치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진격의 거인〉 속 거인의 모습과 닮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쯤 되면 특히 한국에선 가장 보편적인 ‘거인 해석’이라 볼 만하다.
물론 이런저런 해석들 모두 원작자의 의도가 실제로 어떤지와는 관계없는 얘기다. 다만 〈진격의 거인〉 설정이 대중에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졌기에 그토록 대단한 신드롬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각자 해석의 영역일 뿐이다.
괴수 ‘고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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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괴수 콘텐츠의 원조 〈고질라〉 |
1954년 일본 도호영화사의 〈고질라〉 에서 처음 선보인 고질라 캐릭터는 사실상 다른 해석을 불가하게 할 정도로 ‘미국’ 그 자체를 노골적으로 상징했다.
〈진격의 거인〉 속 초대형 거인과 같은 크기인 50m 정도로 설정된 ‘공룡 모양의 거인’ 고질라는 애초 1954년 미국의 비키니섬 핵실험 당시 근처에서 조업하다 피폭(被曝)당한 일본 어선 제5후쿠류마루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탄생한 캐릭터다. 그러니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투하된 지 불과 9년 만에 또다시 일본인들이 피폭의 공포를 겪으며 만들어진 캐릭터라는 얘기다.
일단 고질라는 ‘방사능 괴수’다. 입에서는 우라늄 방사열선(放射熱線), 즉 방사능 광선을 발사하며 인간들의 서식지를 폭파하고 주위를 황폐화한다. 일본에 대뜸 상륙해 그 거대한 몸집만큼이나 ‘그 누구도 쓰러뜨릴 수 없다’는 무력감을 인간들에 심어 준다. 심지어 고질라는 일본의 각종 미사일 공격이나 수소폭탄 공격에도 멀쩡히 살아 있는 강대함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야말로 ‘미국’ 또는 ‘미국의 핵폭탄’에 대한 일본인들의 공포를 고스란히 담아낸 캐릭터였던 셈. 〈고질라〉에선 ‘거인=미국이라는 수퍼파워’다.
〈고질라〉의 대대적인 흥행 성공으로부터 얼마 안 있어 한국계 일본인 프로레슬러 역도산(본명 모모타 마쓰히로, 귀화 전 김신락)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프로레슬링 시합들이 연속 유치되면서 일본에선 가히 현상적인 프로레슬링 붐이 일어난다. 우편엽서에 “일본 역도산”이라고만 적어 우체통에 넣어도 무사히 도달했다던 시절이다.
선악 개념으로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존재
〈고질라〉 시리즈도 이 붐에 편승해 점차 ‘괴수 레슬링’ 형식을 띠게 됐다. 그렇게 1962년 시리즈 3편 〈킹콩 대 고질라〉가 탄생해 일본 내 1100만 관객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고, 곧 거대화한 괴수들과 맞서 싸우는 같은 크기의 거대 히어로도 등장하게 된다. 1966년 일본 방송 TBS의 시리즈물로 대단한 인기를 누린 〈울트라맨〉의 주인공 캐릭터가 그것이다. 이 〈울트라맨〉이 또 대단한 인기를 끌며 〈철인 28호〉 〈마징가 Z〉 등 1970년대 거대 로봇 애니메이션 열풍을 낳는다.
결국 일본 대중문화 콘텐츠 속 거인은 처음엔 명확한 악역(惡役)으로 등장했다가, 이후 그에 맞설 상대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선한 히어로도 되고, 이내 그 모든 선악(善惡)의 규정이 흐트러지면서 함께 뒤섞여 버리는 흐름으로 나아갔다는 얘기다. 즉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악당도 거인이고, 그를 처단해 줄 영웅도 똑같이 거인이어야만 하는 설정이 1960~70년대를 거치며 일본 대중문화계에서 흔한 공식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진격의 거인〉 역시 중반을 넘어가면 거인도 선악으로 딱 잘라 말하기 힘든 존재로 드러나며, 일종의 능력이자 도구에 더 가까운 개념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러면서 고질라라는 거인이 상징했던 ‘살아 있는 핵폭탄’ 개념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간다. 결국은 거인의 원점 회귀(回歸)에 가깝게 간 셈이다.
어찌 됐든 이들 거인은 일본 대중문화에서 지난 70여 년 동안 늘 존재해 왔고, 늘 특정 국가 또는 특정 국가의 대량살상무기 등을 상징해 왔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런 상징으로서의 거인은 고질라도, 울트라맨도, 마징가 Z도, 결국 〈진격의 거인〉 속 거인까지 일본과 한국에서 모두 통용시키며 같은 수준의 충격과 공포로 어필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중국에 대한 위협감이든, 광포한 자본주의 논리에 대한 공포든, 또 그 반대로 스멀스멀 밀려들어 오는 포퓰리즘과 사회주의에 대한 경계심이든, 현대를 살아가는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보다 큰 규모의 공포와 불안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만큼은 이해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진격의 거인〉 신드롬의 모체와도 같은 지점이다.
‘벽으로 둘러싸인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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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TV 애니메이션 〈하이바네 연맹〉. |
물론 일본에서도 이런 설정을 취한 콘텐츠는 〈진격의 거인〉이 처음은 아니다. 유명한 콘텐츠 중에서만 골라 봐도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1985년 장편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속 ‘벽으로 둘러싸인 수수께끼 마을’ 설정이 존재한다. 벽으로 외부와 격리돼 ‘마음’을 갖고 있지 않지만, 그 벽 덕택에 마을 사람들은 안락한 나날을 보내는 것으로 묘사된다. 서브컬처계에도 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 영향받은 2002년 TV 애니메이션 〈하이바네 연맹〉이 또 있다.
그러고 보면 외부와 고립돼 자신들만의 논리로 살아가며 외부인들의 접근을 사실상 막아 세우는 시골 마을 설정은 일본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상당히 흔한 편이다. 예컨대 〈소년탐정 김전일〉 같은 추리 만화나 이토 준지의 공포 만화 등에서도 이렇듯 스스로 외부와 단절시킨 마을 설정은 단골에 가깝다.
그런데 이들 일본 콘텐츠 속 ‘벽으로 둘러싸인 마을’ 설정은 서구의 그것과 조금 다른 구석이 있다. 서구도 외부의 환란(患亂)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벽 안에서 안락감을 누리다 위기의식을 잃는다는 설정을 취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일본 콘텐츠의 경우 점차 벽이라는 장치에 의존하다가 결국 그 벽 안의 삶의 논리로써 바깥세상을 예단(豫斷)하는 통에 전체 판단을 그르친다는 설정이 상당수다. 이를 두고 사방이 외부의 침입을 막아 주는 바다라는 벽으로 둘러싸이다시피 한 섬나라 일본의 근성 중 하나라는 점을 지적한 책이 일본 비평가 가토 슈이치(加藤周一)의 저서 《일본문화의 시간과 공간》(2007)이다. 가토는 일본 건축의 증축(增築)주의가 ‘전체로부터 세부를’ 향하기보다는 ‘세부로부터 전체를’ 향하는 일본인들의 사고 경향을 드러낸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기’에서 세계 전체를 보는 것이지, 세계 질서라는 전체로부터 그 일부인 일본 즉 ‘여기’를 보는 것이 아니다. (중략) 이세(伊勢)는 아마테라스의 성지(聖地)이다. 그 성지는 우리들의 ‘지금-여기’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 내부에 있다. ‘지금-여기’가 연장될 수 있는 최대의 영역은 일본이며, 일본은 세계이자 세계는 이세의 성지를 둘러싸고 있다.〉
사회학자인 미야다이 신지(宮台眞司) 도쿄도립대학 교수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일본 정치인들의 각종 국제관계 망언(妄言)들에 대해 ‘섬나라 근성’이라 비판하기도 한다. 섬나라에 갇혀 살다 보니 여기서 말하는 게 섬 바깥까지도 전달될 수 있는 현실을 자신도 모르게 간과(看過)하게 된다는 것이다.
방벽 속 마을은 섬나라 일본
그러니 결국 〈진격의 거인〉 속 방벽으로 보호되는 마을은 섬나라 일본 그 자체가 된다. 그렇게 ‘일본이 중국으로부터 위협을 받는다’는 테마가 나름대로 설득력을 얻고, 일본인들에게는 더 처절하게 와닿으며, 일본 바깥의 세계 대중에게도 〈적사병의 가면〉 류가 보여 주던 광경과는 또 다른 감흥을 선사하게 된다.
혹자는 〈진격의 거인〉 속 방벽 설정이 먼 서구에까지 인상을 남긴 데 대해, ‘은둔형 외톨이’, 일명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 정서가 201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번져 나간 상황을 원인으로 들기도 한다. 점차 외부와 단절되고 고립돼 가는 현대인 정서 자체가 곧 방벽 안에 갇힌 주인공들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얘기다.
우익 논란
끝으로, 한국에서 〈진격의 거인〉은 ‘우익(右翼) 논란’으로 더 자주 회자(膾炙)되는 감이 없지 않다. 〈진격의 거인〉 기사만 나왔다 하면 “우익 논란도 있었다”는 식의 설명이 빠지는 일이 없다. 앞선 ‘중국 위협론’을 통해 일본 우경화를 지지하는 내용이라는 해석부터, 원작 만화가 이사야마 하지메의 확인되지 않은 비공식 X(옛 트위터)에 우익적인 발언이 있었다는 둥 갖가지 설이 돌았지만, 이에 대해선 이사야마가 직접 《조선일보》와의 인터뷰(2013년 11월 1일 자 ‘[Weekly BIZ] “食人거인의 공격에 반격하는 인간… 단순한 플롯이 〈진격의 거인〉 성공 비결”’)를 통해 언급한 일이 있다.
〈일본이 오른쪽으로 가지 않을까, 만화의 인기가 그걸 보여 주는 것 아닐까라는 질문일 텐데. 개인적으로는 일본이 그렇게 갈 것 같지 않다. 옛날에 주변국들에 엄청난 폐를 끼친 일이 있었지만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패배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섬나라이기 때문에 외부와 격리돼 있다가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순간에 그런 식으로 폭주한 것이다. 패전을 겪은 이상 다시 싸우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듯 원작자 본인이 명확한 뜻을 이미 십수년 전 밝혔음에도 저 ‘우익 논란’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일본 대중문화 상품 또는 일본 연예인이 한국에서 주류적(主流的)인 인기를 얻는 순간 논리를 끼워 맞춰서라도 어떤 식으로든 내밀어지는 게 ‘우익 논란’이기 때문이다. 일본 문화 유입에 대한 경계 내지는 단순 거부감에 기인하는 부분이 큰 논란이라 봐야 한다. 그러니 최소한 지금으로선 막을 수도 없고, 상세히 반론을 제기해 봐야 사실상 소용도 없다.
그런 점에서 이제 〈진격의 거인〉을 놓고 진행해 봐야 하는 논의는 이념 논쟁 같은 게 아니라 이 지극히 일본적인, 즉 ‘일본인에 의한’ ‘일본에 대한’ 얘기가 어떻게 한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 공감을 얻어 내고 두루 상업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는지에 대한 부분이라 봐야 한다. 그간 ‘일본의 딜레마’ 정도로만 여겨졌던 지점들이 어떻게 ‘세계의 딜레마’가 될 수 있었는지 말이다. 이는 곧 현대 일본에 대한 이해가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로 넘어가는 지점이라 볼 수도 있다.
어찌 됐든 〈진격의 거인〉 신드롬은 원작 연재 시작으로부터 1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니 앞으로 진진하게 논의해 볼 기회도 많을 것이다. ‘2025년의 〈진격의 거인〉 해석’이 갖는 또 다른 의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