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과의 차 한잔

소설집 《흰 산 기슭》 펴낸 박덕규

자본에 무너진 사람의 배후를 찾다

  •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글자 크기 조정
  • 스크랩
  • 본문 음성 듣기
  • 글자 크기 조정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 ‘나는 더 살 수밖에 없었다. 더 깊은 수렁에 빠져야 할 것이다’
⊙ 현실에선 갈 수 없으나 마음의 길에서는 얼마든지 닿을 수 있는…
⊙ “지금 시대는 분단시대 이후이자 탈북의 시대”
⊙ 이미지와 스토리 아우르는 ‘多장르 작가’로 안착

朴德奎
1958년생. 경희대 국문과, 同 대학원 졸업 / 1980년 《시운동》으로 시 등단,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평론 등단, 1994년 《상상》으로 소설 등단 / 시집 《아름다운 사냥》 《골목을 나는 나비》 《날 두고 가라》, 소설집 《날아라 거북이!》 《포구에서 온 편지》 《함께 있어도 외로움에 떠는 당신들》 《흰 산 기슭》 외 다수 / 現 단국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 및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소장
작가 박덕규와 신작 소설집 《흰 산 기슭》
시인이자 소설가, 평론가이자 대학교수인 박덕규(朴德奎·65)의 신작 소설집 《흰 산 기슭》(곰곰나루)을 만났다. 몇 달 전 책을 처음 접했지만 안에서 곰삭도록 기다렸다. 발효되는 시간 속에 책과 문장의 맛이 깊어짐을 느꼈다.
 
  일곱 개의 단편이 실렸는데 멀게는 2000년, 가깝게는 2023년 작이다. 21세기를 거쳐온 다양한 사람들의 굴곡진 삶이 소설 속에서 형상화된 인상을 받았다. 작품 속 인물들은 대개 ‘무너진’ 사람들이다. 무너졌지만 무너지지 않으려는, 그러나 종국엔 사라지거나 잊힌 사람들이다. 무너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는 힌트를 듣고 그 배후가 궁금해져 소설을 읽게 되었다.
 
  〈… 그 강물을 따라 내 몸이 구부러져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더 살 수밖에 없었다. 더 많은 여행지를 다니고, 더 깊은 수렁에 빠져야 할 것이다. 내 삶의 마지막은 이제 다시 고쳐 써야 할 한 편의 소설에 달려 있었다.…〉(단편 〈구부러진 물길〉 중에서)
 
 
  ‘더 살 수밖에 없는’ 일이란…
 
2006년 9월 28일 이문구 전집 완간을 기념하러 관촌 솔밭에 모인 문인들. 오른쪽부터 소설가 박덕규, 황충상씨, 김윤식 명지대 석좌교수, 이문구 선생의 부인 임경애씨, 문학평론가 임우기씨, 소설가 김주영씨, 한 사람 건너 소설가 강형철씨, 시인 이정록씨, 박희석 랜덤하우스 전무.
  기자는 ‘나는 더 살 수밖에 없었다’에 밑줄을 그었다. ‘더 깊은 수렁에 빠져야 할 것이다’에 두 줄을 그었다.
 
  살기 위해선 더 깊은 수렁에 빠져야 하고, 수렁에서 몸부림치는 삶의 서사가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다.
 
  박덕규의 소설 속 ‘더 살 수밖에 없는’ 일이란 무언가 몸부림치며 곰삭는 과정인지 모른다. 그 과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으며, 기이함과 섬뜩함, 파괴성을 품고 있다. 죽기 살기로 살아야만 이 시대의 식탁 모서리 한쪽에 앉을 수 있는 것일까.
 
  혼자 일방적으로 기이한 통일운동을 제안하다가 갑자기 종적을 감춘 듯한 시애틀 동포(〈흰 산 기슭〉), 자신들이 파멸시킨 당사자에게 정자를 제공받아 임신하는 부부(〈구부러진 물길〉), 폭력과 돈으로 장악한 여고생에게 순정을 바치는 경찰관(〈지렁이, 지렁이떼〉), 위조한 여권으로 탑승한 비행기가 공중 폭파되어 영원한 실종자가 된 사업가(〈싸락눈〉) 이야기 등 소설집에는 어느 하나 순탄하거나 정상적인 이야기가 없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궁금증을 해소하려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지렁이, 지렁이떼〉 〈싸락눈〉 〈비밀의 방〉 〈구부러진 물길〉 〈흰 산 기슭〉 등은 사라진 인물들에 대해 유추하거나 추적하는 스토리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 인물들은 대개 자본논리가 팽배하는 사회에서 그 욕망의 고리에서 희생되거나 그로부터 도피한 인물들이라 할 수 있죠. 그 인물을 캐는 과정이 마치 미스터리물의 구조와 닮아 있지요.”
 
  여러 시점의 다양한 인물을 릴레이로 연결하면서 중심서사와 주변서사를 혼재하는 서사 구축 방법이 매우 독특하게 다가온다.
 
 
  만년설, 흰 산, 한인들의 산, 어머니 나라의 산
 
  박덕규는 자신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단편 〈흰 산 기슭〉에 애착이 많이 간다고 했다. 줄거리는 이렇다. 동진은 지진으로 사망한 친구 부부의 딸 수잔의 후견인으로 재산을 물려받아 수잔을 데리고 시애틀에 정착해 살면서 모국의 통일운동가 표창대에게 ‘비눗방울 프로젝트’라는 이색적인 통일운동을 구체적으로 제안한 상태다. 표창대는 병이 악화되자 이런 내용을 ‘나’에게 설명하며 그동안 받은 이메일을 넘겨준다. ‘나’는 동진의 이메일에 등장하는 만년설의 도시 시애틀에 왔다가 동진을 찾아가지만 만나지 못한다.
 
  〈… 신기하잖아. 그 먼 곳에서 한국의 통일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는 거. 만년설을 쳐다보면서 고향의 흰 산을 그리워하느니, 죽은 친구 딸을 데리고 사는데 그 딸한테 아주 특별한 재능이 있다느니, 나더러 자기 아비를 닮았다느니 하는 소리까지 하면서 말이야.…〉(단편 〈흰 산 기슭〉 중에서)
 
  소설 속 동진은 만년설을 ‘흰 산’이라 부른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다. ‘한인들의 산’처럼 들린다. ‘어머니 나라의 산’ 같다. 그 ‘흰 산’은 어쩌면 고향이자 모국, 시원(始原)이리라.
 

  어쨌든 그의 소설은, 현실에선 갈 수 없는 길이지만 마음의 길에서는 얼마든지 닿을 수 있는 길, 그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박덕규가 왜 그토록 사라진 인물들을, 사라진 그 자리에 두지 않고 끝까지 들춰내려는지 이해가 된다.
 
  박덕규는 이 소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흰 산 기슭〉에 공들인 기억이 많이 남아 있는데 소설이지만 그 안에 다양한 글쓰기 양식을 실험한 글쓰기가 됐어요. 다장르 작가로서의 제 특징을 녹일 수도 있었어요. 미국에 자주 드나들면서 느낀 것들이 녹아 있기도 하고요. 작중 주인공이 기자나 작가 같은 직업이 아닌데도 글쓰기 형식을 다채롭게 활용하는 내용이라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으로 설정한 것에서 딴은 꽤 특이한 양식의 소설이 되지 않았나 싶네요.”
 
 
  “脫北은 인간의 기본영역에 대한 문제”
 
박덕규는 시인이자 소설가, 교수이자 평론가인 다장르 문인이다.
  그러고 보니 〈흰 산 기슭〉은 특이하게도 소설 안에 여러 개의 장(章)을 거느리고 그 장마다 화자와 시점을 달리하고 있다. 또한 하나의 텍스트 안에 서로 다른 표현 양식, 장르, 이념적 요소를 섞은 ‘혼성모방’, 서사적 전통을 따르지 않고 실제와 허구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메타픽션’ 등의 기법이 혼융돼 있는 점이 흥미롭다. 음악으로 친다면 ‘크로스오버’에 해당할 것이다.
 
  박덕규는 오래전부터 탈북(脫北)을 소재로 한 소설을 써왔다. 2012년 8편의 단편을 모아 소설집 《함께 있어도 외로움에 떠는 당신들》을 펴낸 일도 있다.
 
  1980년대 말 중국이 개방을 시작하면서 연변 지역에 100만 명이 넘는 우리 동포가 우리말, 글을 그대로 쓰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 남북이 대치한 지 반세기가 되는 즈음에 북한에서 탈북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두 가지 일이 박덕규의 상상력을 구체적이고 풍성하게 넓히는 데 기여했다.
 
  “저 같은 세대는 분단시대에 깊이 몸을 담아 왔기 때문에 통일 문제는 벗어나기 어려운 주제였어요. 그런데 제가 더욱 관심이 있었던 것은 한국식 자본주의 문제였어요. 모두들 출세의 욕망에 시달리는 상황을 그려내는 게 제 소설 방향이었어요. 그 과정에서 이 복잡한 자본주의 세상을 향해 목숨을 걸고 찾아오는 ‘탈북 사태’를 눈여겨보게 됐습니다.”
 
  ‘탈북’에서 ‘정착’으로 연대기를 이어오고 있는 이들에게 ‘이 무시무시한 삶의 현장’을 헤쳐나갈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탈북은 그 자체로 이미 확고한 서사이기도 했고요. 탈북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대립 이전에 인간의 기본영역에 대한 문제이지요. 저는 지금 시대를 분단시대 이후라고 보고 있어요. 아직 통일 이전이니까 현대를 대표하는 현상을 ‘탈북’이라고 봐요. 말하자면 지금은 탈북시대인 거지요. 이걸 외면할 수는 없다고 봐요.”
 
 
  내 문학 年代記는…
 
첫 시집 《아름다운 사냥》(1984)에 실린 박덕규의 캐리커처. 시인 김영태가 그렸다.
  박덕규는 1958년 7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모두 상주 출신이고, 본관도 상주다. 의성 등을 거쳐 대구로 간 것이 서너 살 때. 식구들은 봉산동에서부터 대구 생활을 시작했는데 기억에 남는 유년의 첫 장소는 삼덕동 2가다. 당시 대구교도소 담 둘레로 형성된 넓은 공터에서부터 시작되는 긴 골목의 시작점, 그러니까 도로에서 보면 막다른 골목 끝에 집이 있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 아니라 ‘나의 살던 고향은 대구형무소’라고 할 수도 있을 만큼, 그는 교도소 주변, 주로 공터를 놀이터 삼아 간이 야구 같은 걸 하며 놀았다.
 
  1965~1970년. 삼덕동에서 동덕국민학교를 다녔다. 키가 컸지만 유약했다. 2학년 때 가교사에서 공부하던 기억이 난다. 3학년 때 아버지가 교장선생님으로 부임한 북구 칠성동의 옥산국민학교로 전학을 가서 2년을 보냈다. 3학년 때 우연히 4학년 교실 앞 복도에 방학숙제로 전시된 ‘개인 문집’을 보고 혼자 힘으로 책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책과 문학에 눈을 떴다.
 
  이 장면은 마치 영화의 한 컷처럼 박덕규의 눈빛 클로즈업이 필요하다. 이 순간이 그를 시인과 소설가로 이끄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마도 열 권 정도의 문집은 만들었던 듯해요. 그 문집에 동시나 동화 같은 것 말고도 희곡, 시나리오 같은 것도 넣었고, 신문기사를 오려 붙여 잡지처럼 만들기도 했죠.”
 
  1978~1982년. 경희대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가 당장 소설가가 되겠거니 거만하게 굴었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걸 아닌 척하려고 애썼지만 서서히 본모습이 드러났다. 서울이라는 도시도, 어른들의 세계도, 그리고 독재정권도 그에겐 버겁기만 했다. 소설은 끝내 쓰지 못했고, 시는 시라고 부르기 어려운 흉내만 간신히 내었다. 그러다 문사들이 드나드는 대학에서 점점 시야가 넓어지고, 흉내 또한 차츰 그럴싸해졌다.
 
  “10·26, 1980년 봄, 5·18을 거치며 한 잡지에 투고한 시가 뽑혔다는 연락을 받고 시인이 되었는데 그 잡지는 계엄사령부의 폐간 통보를 받게 돼 저절로 시인이 안 되어 버렸습니다. 그해 12월 동인지 창간호에 시를 내면서 첫발을 내디뎠지요.”
 
  시인이 되었다가 안 되었다가 다시 시인이 된 셈이다.
 
 
  “그렇게 다시 시를 붙잡고 또 소설을 붙잡았어요”
 
2014년 7월 미국 LA에서 열린 단국대 미주문학아카데미에서 박덕규 교수가 재미동포에게 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 《시운동》으로 화려하게 시단에 이름을 올리셨어요.
 
  “원래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1980년 《시운동》 동인지 창간호에 시를 발표하며 시인으로 나섰어요. 신춘문예에 평론이 입상하면서 문학평론 활동을 겸하게 됐고요. 1990년대 중반(30대 중후반) 들면서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로 소설 창작을 주로 했는데, 1998년 대학 문예창작과 교수가 되면서 창작 활동에 차질이 빚어졌어요.
 
  소설을 쓰기 위해 시 창작은 상당 기간 중단했는데 나중에 그럴 이유가 없어졌죠. 그래서 다시 시를 발표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시와 소설을 겸하는 삶이 되었어요. 또 교수 생활을 하면서 여전히 평론도 쓰고 이런저런 목적으로 다른 장르에도 손을 대다 보니 ‘다장르 작가’가 된 겁니다.”
 
  창작은 이미지와 스토리를 거느리는데, 그의 경우 이미지 쪽으로는 시를 택하고 스토리 쪽으로는 소설을 택했다.
 

  또한 창작은 그 자체로 창작일 뿐 아니라 연구 행위이기도 하고 다른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식이었다. 이는 다시 강의로 이어져 강의 내용도 되고 학생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공동 체험, 프로젝트로 이어갈 수도 있었다.
 
  “강의와 연구는 생활의 방편인데 창작 역시 그 방편이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끝없는 자양을 제공하잖아요. 제 삶이 참으로 이상적이구나! 하고 생각했고 그렇게 다시 시를 붙잡고 또 소설을 붙잡았어요.”
 
 
  AI 시대와 소설
 
  ― AI 시대입니다. 작가가 AI의 도움을 받아 글을 쓰는 게 불가피하다고 보십니까. 이 시대에 소설을 쓴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AI의 지능이 인간의 정신적인 영역으로까지 파고들고 있는데, 이런저런 시인들이 허술하게 발표하는 시 정도는 AI 또한 얼마든지 써낼 수 있지요. 고급스러운 시나 단편 이상 분량의 소설을 창작하는 수준은 못 되고요. 지금으로서는 글쓰기를 할 때 정보를 탐색해 집적해 주는 데는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리드만 잘 하면 이전에 작가가 직접 해야 할 일들은 단숨에 처리해 줍니다. 가끔 끼어드는 가짜 정보만 조심하면 AI는 굉장히 유익한 기능입니다.”
 
  박덕규는 “나중에 ‘AI가 쓴 소설’과 경쟁하는 시대가 오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그 소설 역시 특정 작가의 리드가 전제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앞으로 하시고 싶은 꿈은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시와 소설을 마음껏 쓰는 것이 제 꿈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래 왔듯이 현실의 일들이 그걸 쉽게 허용하지 않지요. 이상과 현실의 차이라 할까요? 예전에는 그 차이마저도 수긍하면서 살아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차이를 좁힐 의지가 박약해진 것이지요.”
 
  다채로운 인생의 파편을 모아, 그는 앞으로도 변주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