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권의 책

거대한 뿌리 구미 (서명수 지음 | 서고 펴냄)

구미를 둘러싼 ‘정치’ 아닌 ‘정신’의 이야기

  • 글 : 고기정 월간조선 기자  yamko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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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朴正熙) 도시’라는 강한 이미지로 각인된 경북 구미(龜尾). 그러나 저자는 묻는다. “정말 구미는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진 신도시일 뿐인가?”
 
  책은 산업도시라는 단일한 이미지에 가려졌던 구미의 깊고 다양한 뿌리를 더듬는다. 조선 성리학의 발원지이자 신라 호국 불교의 첫 전파지였던 구미는 오랜 시간 한국인의 정신을 지탱해 온 보이지 않는 토대였다. 조선 초 벼슬을 마다하고 낙향해 성리학의 가르침을 실천한 길재(吉再)를 비롯해 김숙자·김종직 부자, 송당 박영 등을 통해 ‘영남 사림(士林)’의 토대가 됐다. 해평 길(吉)씨, 선산 김(金)씨, 인동 장(張)씨 등이 ‘퇴계(이황)의 안동’에 못지않았다.
 
  《거대한 뿌리 구미》는 구미를 단지 박정희의 고향으로만 바라보지 말 것을 당부한다. 박정희 시대에 구미가 산업화 실험장으로 기능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저자는 그것이 개인의 ‘고향 특혜’가 아닌 철저한 전략과 입지 조건에 따른 결정이었다고 짚는다. 또한 이 책은 박정희를 평가하는 방식에서도 감정이나 진영 논리가 아닌, 마오쩌둥(毛澤東) 평가 방식에서 차용한 ‘공칠과삼(功七過三)’ 원칙처럼 차분한 공과 분석을 제안한다.
 

  책은 4부로 구성됐다. 제1부는 ‘박정희 도시’라 불리는 구미의 형성과 변화, 제2부는 조선 성리학과 신라 불교 등 구미의 전통적 뿌리를 조명한다. 제3부는 산업도시 구미가 품은 자연과 생태를, 제4부는 변화하는 도시문화와 구미의 현재진행형 가능성을 그린다.
 

  이 책은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그리지도, 구미에 대한 일방적 미화를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저자는 독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한 국가의 뿌리는 무엇인가?” 그리고 구미라는 도시가 한국 정신사의 중요한 한 줄기였다는 점을 천천히 설득해 나간다. 박정희를 지나쳐 구미를 다시 보고, 구미를 통해 대한민국의 뿌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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