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기록의 힘, 광산〉

‘모든 가난한 사람들의 西部’, 영월 석탄 광산, 전시로 만나다

  •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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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도시영월, 어두운 석탄 광산에서 빛나는 문화 광산으로
⊙ 영월 탄광 기록한 희귀 사진·자료 등 공개… 학계 관심 커질 것
⊙ “영월 탄광, 중국에서도 약 800명 노동자 일하러 왔다”(진용선 아리랑아카이브 대표)
⊙ 탄광 배경 영화 촬영도… 엄앵란 주연 〈구름은 흘러도〉(1959) 大히트
⊙ 전시 숨은 공로자 ‘영월 시민기록단’, 《상동광업소의 기억, 우리의 기록》 펴내
1980~90년대 석탄산업 동향을 보여주는 자료. 사진=이건송
‘머리 조심.’
 
  ‘안전제일.’
 
  탄광을 촬영한 옛 흑백 영상을 보면 갱도 곳곳에 이 같은 문구가 붙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좁고 위험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광부들에게 ‘안전제일’이란 말은 인사말과 다름없었다. 탄광이 무너지면 꼼짝없이 목숨을 잃기에 석탄 채굴은 위험천만한 작업이었다. 탄광 마을 주민들도 갖가지 징크스를 달고 살았다. 도시락 쌀 때 4주걱 퍼담지 않기, 흉몽(凶夢) 꾼 날은 출근하지 않기, 갱내 쥐 잡지 않기, 휘파람 불지 않기…….
 
  2024년 11월 1일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관광센터에서 개막한 〈기록의 힘, 광산〉 전시장 한쪽에서도 ‘머리 조심’ ‘안전제일’ 문구를 볼 수 있었다. 석탄 광산 모습을 재현하듯, 높이가 낮은 입구를 지나야 전시장이다. 총 4부로 구성된 전시는 영월 탄광의 기록과 자료들을 선보인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산하기관들이 한반도 지질조사를 하고 만든 보고서부터 영월 탄광을 배경으로 촬영한 영화와 기념엽서, 석탄 채굴이 한창이던 시절 마을 주민의 일상을 찍은 사진까지, 영월 탄광 80년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삼국사기》에도 석탄 추정 기록
 
  18~19세기는 ‘석탄의 시대’였다. 갓 탄생한 증기기관과 기계식 공장의 주연료원으로 석탄이 널리 사용되면서 당시 영국에선 ‘석탄은 왕’이라고까지 할 정도였다.
 
  석탄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 기록은 무려 609년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에는 진평왕 31년 정월에 “모지악(毛只嶽·현 경북 경주 부근으로 추정) 아래의 땅이 불에 탔는데 10월 15일에야 꺼졌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또 태종무열왕 4년(657년) “토함산(吐含山)의 땅이 불탔는데 3년 만에 꺼졌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석탄은 조선 말부터 개발이 시작됐지만 본격적으로 연료원으로 사용된 건 20세기 초·중반 들어서다. 일제강점기에는 한반도 곳곳에 탄광이 들어섰다. 석탄 생산량은 1980년대에 절정에 이르렀다. 대한석탄협회에 따르면 광복 직후 우리나라 석탄 생산량은 50만톤 수준이었으나 이후 생산량이 가파르게 증가해 1980년 1862만톤을 넘어섰다.
 
  특히 영월은 우리 석탄산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1935년 조선전력주식회사가 영월군 정양리에 화력발전소를 건립하면서 영월 탄광이 발전용 탄(炭) 공급기지로 개광(開鑛)했다. 개광 37년 만인 1972년 일시 폐광했다가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다시 조업을 이어가다 1989년을 끝으로 문을 닫으면서, 영월 탄광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폐광과 함께 ‘광산 도시’ 영월도 지역 소멸의 길로 들어서는 듯했다. 영월군은 이 위기를 문화의 힘을 빌려 극복하고자 했다. 문화도시를 통해 ‘어두운 석탄 광산(鑛山)에서 빛나는 문화 광산(光山)으로’라는 목표로 폐광을 문화 콘텐츠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어두운 鑛山에서 빛나는 문화光山으로’
 
1938년 촬영한 영월 탄광 갱도와 광부들의 모습.
  2022년 12월 영월군은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제4차 문화도시로 지정됐다. 이에 따라 영월군은 2027년까지 5년간 국비 포함 총 150억원을 들여 문화도시 조성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번 전시 〈기록의 힘, 광산〉도 그 일환으로, 영월문화관광재단과 아리랑아카이브가 공동으로 주관했다.
 
  문체부는 영월군을 문화도시로 선정하며 인구 감소, 경제 침체 등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지역소멸 대응형 문화도시’ 모델의 가능성을 제시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영월군 관계자는 “폐광 이후 인구 급감 등 산업화의 명암(明暗)을 고스란히 품은 영월이 문화도시에 도전하면서 지역 발전에 유용한 자양분을 다졌다”며 “작은 도시의 큰 꿈이 기적처럼 이뤄졌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자료는 1930~40년대 촬영한 영월 탄광 광부들의 사진이다. 1937년 판교갱 앞에서 찍은 단체사진은 영월 탄광을 기록한, 현재 남아 있는 사진 중 최초의 것으로 평가받는다. 사진에는 광부들과 함께 일본 헌병 모습도 담겼다.
 
  1938년 갱도 막장에서 촬영한 사진은 석탄 채굴 노동 현장을 보여준다. 광부들이 헤드랜턴을 쓰고 곡괭이를 쥔 채 모여 앉아 있다. ‘광부는 두 겹 하늘을 이고 살아간다’는 말처럼 몇 명은 힘에 부친 듯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반면 옅은 미소를 머금고 카메라를 바라보는 광부들도 있다.
 
 
  ‘광부는 두 겹 하늘을 이고 살아간다’
 
진용선 아리랑아카이브 대표. 사진=이건송
  1935년 11월 영월 탄광 개광 이후 탄전(炭田)은 점차 확장됐다. 남쪽 판교에서 시작된 확장공사가 마차리 북쪽까지 이어졌다. 이런 초기 모습들이 사진으로 남았다. 영월문화관광재단에 따르면 이 시기 영월 탄광과 마차리 일대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은 30여 점으로,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것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광산과 갱도, 광부와 마을 모습은 증언과 기록으로만 전할 뿐 실상은 베일에 가려져 왔다. 출처와 시기 검증까지 거친 희귀 사진들이 대거 공개되면서 학계의 관심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전시에 출품된 문헌자료와 사진은 진용선 아리랑아카이브 대표가 1990년대부터 모아 온 것들이다. 진 대표는 “광산 역사엔 경제사, 산업사, 민속사뿐만 아니라 디아스포라의 역사도 들어 있다”면서 “영월의 경우 국내 전 지역은 물론 중국에서도 약 800명의 노동자가 일하러 왔다”고 설명했다. 실제 1938년 “강원도 곳곳의 공사장에서는 노동력 기근이 심해졌다. 영월 탄광에서 노동력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중국에서 ‘지니쿠리’라고 하는 노동자를 수입했다”는 보도가 있다(《조선일보》 1938년 8월 2일).
 
  진 대표는 이번 전시 기획 배경에 대해 “2025년 도계광업소를 끝으로 대한석탄공사 산하 모든 광산이 문을 닫는다”며 “저물어 가는 ‘석탄 시대 100년’의 기록을 얼마나 소중히 간직해야 하는지를 조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전시를 통해 영월 광산의 역사를 정리하고, 관련 문헌을 메타데이터로 축적해야 한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또 하나 시선을 끄는 자료는 1992년 영월광업소 광부의 임금이 겉에 적힌 이른바 ‘노란 봉투’다. 그해 10월 광부 이동열씨는 기본금 72만9810원, 입갱(入坑)수당 7만2981원, 야간수당 11만4031원 등 총 110만5027원을 벌었다. 그해 8시간 기준 최저일급(日給)이 7400원(월 약 18만원 상당)이었으니, ‘월급날엔 강아지도 만원짜리 입에 물고 다닌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땀내 나는 노란 봉투 손에 쥔 날 광부 이동열은 통닭 한 마리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토끼 같은 자식들이 고소한 닭다리를 뜯는 모습을 지켜보며 미래를 향한 희망도 움켜쥐었을 테다. 이처럼 각지에서 흘러온 무일푼 노동자들도 ‘꿈’을 꿀 수 있는 곳이 바로 탄광이었다.
 
 
  “그곳에 가면 배고픔이 없고……”
 
영월 탄광 일대에서 촬영된 영화 〈구름은 흘러도〉 포스터. 사진=이건송
  전시장 한편에선 영월 탄광을 배경으로 촬영한 옛 흑백영화들을 상영하고 있었다. 몇몇 관람객들이 스크린 앞에 서서 오래도록 떠날 줄을 몰랐다. 영화들은 주로 탄광 마을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그렸다. 고단한 현실에서도 이웃과 정을 나누며 악착같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중 유현목 감독의 작품 〈구름은 흘러도〉(1959년)가 영월 탄광 일대에서 실제 촬영한 가장 오래된 영화다.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NHK의 라디오와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재일(在日) 한국인 소녀 야스모토 스에코의 《니안짱 10살 소녀의 일기》(1958년)를 영화화한 것으로, 1960년대 최고 인기 배우였던 엄앵란의 초기 출연작에 해당한다.
 
  ‘광산촌의 열 살 소녀 안말숙 4남매는 아버지마저 잃고 가난에 쫓기며 살고 있다. 끝내 4남매는 뿔뿔이 흩어져 살아간다. 말숙은 흩어진 형제들을 그리워하며 매일같이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우연한 기회로 말숙의 일기가 단행본으로 출판된다.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전국 각지의 독자들로부터 온정의 손길이 뻗쳐오기도 했다. 많은 원고료도 받았다. 그 덕분에 흩어졌던 4남매는 다시 모여 살게 된다…….’
 
  영월광업소와 광업소 삭도(索道·케이블카) 정거장, 갱도로 들어가는 광부와 광차(鑛車)의 모습도 생생히 담긴 이 영화는 10만 명 가까운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 성공했고, 국내 영화상(賞)들을 휩쓸고 해외 영화제에도 출품되는 등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영월 탄광을 배경으로 한 시집과 소설, 수필, 사진집의 실물들도 전시돼 있다. 그중 영월 출신 소설가 최용운의 소설 《그곳엔 까만 목련이 핀다》(1993년) 속 한 구절이, 탄광이 문을 닫고 쇠락해 가는 영월의 모습을 생생하게 일깨운다.
 
  〈엊그제 가본 내 고향은 이제 거덜나고 일그러지고 있었다. 북적거리던 저잣거리의 점방들은 태반이 문을 닫았고 길에는 묵은 탄먼지가 쌓여 있었다. 광산촌은 한때 모든 가난한 사람들의 서부였고 꿈의 마을이었다. 그곳에 가면 배고픔이 없고,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믿음과 희망 때문에 방방곡곡 가진 것 없는 이들이 모여들어 태백선을 탔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다시 태백선을 타고 어딘가로 가야 할 것이다.〉
 
 
  광산 아카이빙과 ‘차별화’ 과제
 
2024년 11월 28일 영월관광센터에서 열린 학술 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는 염경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조사연구과장. 사진=이건송
  2024년 11월 28일, 전시장이 위치한 영월관광센터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석탄산업 유산의 가치와 활용’이라는 주제로 학술 포럼이 개최된 것. 폐광이 문화 광산으로 재탄생한다는 기대에 궂은 날씨에도 많은 사람이 영월관광센터를 찾았다.
 
  먼저 염경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조사연구과장이 ‘광산 자료의 가치와 활용’을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염 과장은 영월이 광산 문화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과제를 해외 선진국들 사례와 비교하며 제안했다. 그는 “석탄 광산 콘텐츠를 활용해 다른 탄광 도시와 차별화된 사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용선 대표도 ‘일제강점기 마차리 탄광 사진 자료의 발굴과 의의’ 주제로 발표했다. 진 대표는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초반 영월 탄광 사진의 발굴 과정을 돌아보며 아카이빙(자료 보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석탄산업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 여러 의견이 오갔다. 이건욱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장, 김태수 (사)폐광지역활성화센터 학술연구소장, 정의목 영월문화관광재단 이사, 박현욱 전 서울역사박물관 학예부장 등이 발제자로 참여했다.
 
  포럼 자리에 참석한 주민들은 “석탄 광산에서 문화 광산으로 제2의 광산 부흥기를 준비하는 영월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행사였다”고 입을 모았다.
 
 
  “광산문화 확산시켜 나갈 것”
 
영월 시민기록단. 사진=이건송
  ‘영월 시민기록단’도 이번 전시의 숨은 공로자다. 지역 주민 으로 구성된 기록단은 영월 광산문화 기록을 위해 2023년 하반기 여러 활동을 해나갔다. 이들은 진용선 대표와 함께 신문기사와 사진자료 수집, 지명(地名) 및 설화 조사, 지역 주민 구술 채록 등의 작업에 몰두했다. 이 활동 결과가 2024년 발간된 《상동광업소의 기억, 우리의 기록》이라는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상동광업소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텅스텐 광산이었다.
 
영월 시민기록단이 2024년 《상동광업소의 기억, 우리의 기록》을 펴내기까지의 과정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이 책을 펴내기까지의 기록사업 과정도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박상헌 영월문화관광재단 대표는 “영월 시민기록단의 활동은 사라져가는 광산문화를 기록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영월만의 정체성을 가진 문화자산 발굴작업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희 영월문화관광재단 문화도시센터장은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경기 침체 등은 영월군만의 문제가 아니라 폐광 지역 모두의 고민”이라며 “‘어두운 석탄 광산에서 빛나는 문화 광산으로’라는 정책 브랜드를 통해 ‘광산’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폐광 지역의 주민 참여와 독려를 위한 공공재 역할을 하며 광산문화를 확산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레바논계 미국 시인이자 철학자인 칼릴 지브란은 이런 말을 남겼다. “오늘의 슬픔 가운데 가장 비참한 것은 어제의 기쁨에 관한 추억이다.” 과거 영월의 부흥기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이 말을 가슴으로 이해할 테다. 이제 석탄 광산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가족을 먹여살리려 갱도로 뛰어든 광부들 역시 잊혔다. 하지만 기억과 함께 ‘기록’은 남아서 이들에게 숨을 불어넣고, 나아가 영월을 ‘빛나는 문화 광산’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지금 영월은 석탄이 남긴 위대한 유산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전시는 오는 2월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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