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이) 의도적으로 오찬 날짜를 잡고 그런 법안들을 밀어붙였다고 생각”
⊙ “이재명 한 사람을 위해 대한민국의 사법 체계·헌법 질서 무너뜨리겠다는 것”
⊙ “계엄이 잘못됐다고 하는 것이 곧 내란죄 구성한다는 것, 받아들이기 어려워”
⊙ “윤 어게인 안에도 다양한 주장 존재… 모든 주장 다 수용할 순 없어”
⊙ “과거 정리하는 일은 개인이 아니라 국힘이라는 정당이 하는 것”
⊙ “한동훈 지지자 1만 5000명이 국민의힘에 들어오고 2만 명이 나간다면?”
張東赫
1969년생. 서울대 불어교육과 졸업, 제35회 행정고시·제43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제33기 수료 / 대전지법 판사, 서울중앙지법 판사, 광주지법 부장판사, 제21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충남 보령서천) 당선(득표율 51.50%), 국민의힘 원대대변인·사무총장·최고위원 역임. 現 국민의힘 대표
⊙ “이재명 한 사람을 위해 대한민국의 사법 체계·헌법 질서 무너뜨리겠다는 것”
⊙ “계엄이 잘못됐다고 하는 것이 곧 내란죄 구성한다는 것, 받아들이기 어려워”
⊙ “윤 어게인 안에도 다양한 주장 존재… 모든 주장 다 수용할 순 없어”
⊙ “과거 정리하는 일은 개인이 아니라 국힘이라는 정당이 하는 것”
⊙ “한동훈 지지자 1만 5000명이 국민의힘에 들어오고 2만 명이 나간다면?”
張東赫
1969년생. 서울대 불어교육과 졸업, 제35회 행정고시·제43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제33기 수료 / 대전지법 판사, 서울중앙지법 판사, 광주지법 부장판사, 제21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충남 보령서천) 당선(득표율 51.50%), 국민의힘 원대대변인·사무총장·최고위원 역임. 現 국민의힘 대표

- 사진=조준우
3개월 남짓. 6·3 지방선거까지 남은 시간이다. 그는 말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 광역단체장 기준으로 몇몇 곳만 건져도 다행일 것이라고. 스스로 그렇게 입에 올린다. 이기기 어렵다는 걸 알면서 싸움터에 나온 사람의 얼굴은 어떤가. 비장하다. 담담하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무겁다.
한동훈 전 대표는 제명됐다. 그의 토크콘서트에는 지지자 1만 5000명이 모였다. 반면, 장 대표가 있는 무대를 향해선 절연, 단절, 결별, 반탄, 윤 어게인 등 온갖 말들이 에워쌌다. 그는 말한다. 비공개 자리에서 다른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앞에서 이렇게 말하고 뒤에서 저렇게 말한 적도 없다고. 그러나 정치에서는 말의 일관성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오해를 풀어야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등을 돌렸다.
장 대표는 기다리겠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풀릴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석 달이다. 기다릴 시간이 많지 않다. 시계는 멈추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
보수 야당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들이 나온다. 그는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버티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버티는 것과 무너지는 것은 바깥에서 보면 종종 같은 모습이다.
입이 타들어 갈 법도 한데, 인터뷰 내내 그는 물을 마시지 않았다. 단식할 때는 8일간 곡기를 끊었다. 24시간 필리버스터 때는 물만 마시며 버텼다. 마시든 끊든, 채우든 비우든, 그는 진심을 알아 달라며 버틴다. 극적인 반전(反轉)을 그저 기다릴 뿐이다.
석 달 뒤, 표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 기다림 속에, 그 버팀 속에 정치 경력 6년, 국회의원 4년의 장동혁은 인생을 걸고 있다.
제안, 수락, 배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2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재명 대통령과의 오찬에 불참하는 것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기 위해 착석하고 있다. 사진=조선DB2월 12일 오후 4시 40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국민의힘 대표실. 주어진 시간은 1시간 남짓이었다. 그는 이미 그날 아침 8시부터 지도부와 회의를 했고, 예정됐던 이재명 대통령 및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3자 오찬에 불참을 선언했다. 기자들 앞에 섰고, 또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루가 길었다. 그의 말은 빨랐고, 정확했고, 길었다. 법복을 벗었지만 판사의 말투는 남아 있었다.
— 오찬 회동을 거부하며 이재명 대통령에게 ‘배신’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어제(11일) 갑자기 대통령이 오찬을 하자고 했을 때 충분히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가 영수(領袖)회담을 제안했던 상황에서, 영수회담도 아니고 지난번처럼 양당 대표와의 오찬과 별도의 비공개 회담도 아닌, 단순한 오찬만 하자고 했습니다. 최근 여당과 대통령의 관계가 좋지 않았고 여러 갈등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직접 만나기 껄끄러우니 야당 대표를 포함해 오찬으로 풀려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수락했습니다. 제가 먼저 영수회담을 제안했고, 명절을 앞두고 민생이 타들어 가는 상황에서 이런저런 계산을 할 게 아니라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머리를 맞대고 민생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랬는데 당일 아침에 갑자기 불참으로 돌아섰습니다.
“오찬 회동을 제안해 온 그날 밤, 민주당이 말도 안 되는 사법(司法) 파괴이자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악법(惡法)들을 그대로 밀어붙였습니다. 이는 야당 대표와 한 약속이자 결국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것입니다. 만약 처음 있는 일이라면 여당과 대통령실의 소통이 잘 안 됐겠구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됐습니다. 직전에도 오찬을 하자고 각 당 대표를 불러 놓고 그 전날 종합특검법을 올렸습니다. 늘 이런 식입니다. 이렇게 반복된다면 몰랐다거나 소통이 잘 안 됐다는 변명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날짜를 잡고 그런 법안들을 밀어붙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야당 대표로서 매우 불쾌하고, 이것은 국민에 대한 배신입니다.”
“이재명을 무죄로 만들어주겠다는 법”
오찬이 예정됐던 2월 12일 전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여권 주도로 법원조직법 개정안과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표결에 부쳐 처리했다. 대법관을 현행 14명에서 단계적으로 26명까지 늘리는 것, 대법원 판결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게 하는 것. 국민의힘은 이를 4심제 도입이라 불렀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 개정안으로 국민에게 엄청난 피해가 간다고 우려했다.
— 이 개정안, 무엇이 문제입니까? 짧게 설명해 주겠습니까?
“결국 이재명 대통령을 무죄(無罪)로 만들어 주겠다는 법들이라고 봅니다. 지금 여러 법들을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배임죄(背任罪)를 폐지하겠다는 것부터, 항소와 상고를 못 하게 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고, 나아가 대법원 재판을 헌법재판소로 가져가겠다는 겁니다. 헌법재판소는 9명 가운데 이미 6명이 이 정권의 입맛대로 임명된 상태입니다. 그러니 뭐든 다 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법원에서 혹시라도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 무죄가 나오지 않으면, 결국 자신들의 뜻대로 결정을 해 줄 헌법재판소로 가져가 대법원 판결을 뒤집겠다는 의도라고 봅니다.
이 논의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헌법에 맞지 않고 헌법소원만 남발하게 되며 사법 안정을 해친다는 이유로 계속 막혀 왔습니다. 그런데 법원행정처장과 대법원장까지 직접 나서서 심각한 문제이고 그 피해가 오롯이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법관으로 과반을 채워 결국 모든 사건에서 무죄 판결이 나오게 하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대법관 수를 늘리고, 그것도 안 되면 헌법재판소로 가져가 뒤집겠다는 것은 결국 이재명 한 사람을 위해 대한민국의 사법 체계와 헌법 질서를 무너뜨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이렇게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짧은 정치 경력에 과분한 혜택 받아”
— 그렇군요. 6년 차 정치인, 국회의원 4년 차이시지요?
“잠깐만, 2022년, 23, 24, 25, 26년…. 의원은 4년 차가 맞군요. 정치를 한 것 자체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짧은 정치 경력에 비해 저는 당으로부터도 지지자들로부터도 과분한 혜택을 입고 과분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어려움은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받을 때도 솔직히 많습니다. 정말 힘들게 하루를 다 지내고 나면, 제 에너지가 다 소진됐을 때는, 내가 왜 이렇게 정신없이 뛰고 있나, 그런 생각을 할 때도 가끔 있습니다.”
— 평온한 시기였다면 정치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상황들이 저를 정치로 이끌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한 개인의 사법 리스크가 국가 시스템 전체를 흔들었습니다. 이 대통령과 저는 2022년 보궐선거로 함께 국회에 들어온 ‘입사 동기’입니다. 이후 민주당 대표와 대통령 후보를 거친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가 정치의 중심 이슈였고, 그 구도 속에서 제가 당대표가 됐습니다.”
— 판사 생활은 14년 했나요?
“그러니까… 15년이 돼야 부장판사를 하는데, 부장판사를 하고 1년에서 한 달 정도 못 채우고 나왔으니까요.”
— 판사라면 판단으로 끝났을 사안을 정치인이니까 이제 설득하고 타협으로 끌고가야 하게 입장이 바뀌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고방식이 달라졌다고 스스로 생각하시는지, 미묘한 정치적 사안을 판결문 쓰듯이 결론부터 미리 내리고 판단하시는 건 아닌지 하는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한테는 되게 재미있는 질문입니다. 사실 제가 고민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정치인은 미란다(Miranda·감성, 직관)적 요소와 크레덴다(Credenda·이성)적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감성에 호소하는 부분, 또 이성에 호소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법관은 거의 이성에 호소하고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추론해 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안에 대해 말이 깁니다. 그런데 정치는 어떤 때는 그런 논리적인 설명보다 하나의 구호로 끝내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일 때도 있습니다. 나쁜 의미에서가 아니라 좋은 의미에서, 지지자들을 이끌고 전쟁터로 나갈 때 논리적 설득보다 감정적 선동이 훨씬 더 강력하게 힘을 발휘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판사 때 습관이 정치 하면서도 계속 나오는 게 아닌가, 그래서 정치로 끝낼 것을 자꾸 판결로 끝내려고 하는 그게 몸에 배어 있어서, 예를 들면 상임위 질의를 할 때는 판사를 했던 그 논리들이 도움이 되는데, 싸움의 현장에서 정치의 모습을 보여 줘야 될 때 판사의 모습이 나오는 게 아닌가,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동훈이 단식장 왔어도 결과 달라지지 않았을 것”
1월 22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통일교·공천헌금 ‘쌍특검’ 수용을 요구하며 8일째 단식 중인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찾아 대화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권유로 장 대표는 이날 단식을 풀었다. 사진=조선DB— 어린 시절 정치에 꿈이 있었나요?
“어린 시절 꿈은 법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처음에는 행정공무원부터 시작했다가, 그 꿈을 결국 포기하지 않고 공무원 생활 7~8년 하다가 사직하고 다시 공부해서 결국 법관의 길로 갔는데, 정치의 길로 오게 된 건 순전히 제 의지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제 의지보다는 주변의 상황이 저를 정치를 하게 만든 게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단식 이야기 조금 말씀 나누겠습니다. 건강은 어떤지요?
“점차 좋아지고 있고, 이번 주 화요일(2월 10일)인가요? 퇴원 후 처음으로 검진을 한번 했는데 완전히 다 돌아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여러 수치 상으로 특별히 염려할 사항들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궁금한 게 있는데요. 한동훈 전 대표가 단식장에 와서 대표님 손을 잡아 주었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졌을까요? 그러니까 (당 윤리위의) 제명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까요? 기다리긴 하셨나요?
“한 전 대표가 올 것을 특별히 기다리진 않았습니다. 왔더라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걸림돌’은 한 전 대표가 통합을 위해 본인 스스로 제거해야 할 것들이지 저와의 개인적 관계가 아닙니다. 악수하고 손 잡는다고 해서 제거되는 것이 아닙니다.
계엄에서 탄핵으로 가는 과정에서 그분이 당대표로서 보여 줬어야 할 모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과 태도, 속도 면에서 많은 상처를 줬습니다. 선택 자체가 아니라 과정의 문제입니다. 그 상처는 아직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대선 본선 때 안철수 의원이 개표 현장에서 보여 줬던 모습, 당원들은 그런 것을 기대했습니다.”
필리버스터와 러브샷
— 한동훈 전 대표가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군요.
“충분히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당원 게시판 문제도 법적 판단을 떠나서, 풀어 가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에게 실망을 줬습니다. 계엄과 탄핵, 대선, 당원 게시판, 일련의 과정에서 상처 받고 실망한 분들이 있습니다. 한 전 대표가 그 문제를 스스로 풀어 내야 당을 이끌 정치인으로서 자리를 확고히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풀어 내지 못했습니다.
저의 단식장에 오는 것은 그 문제를 푸는 것과 무관합니다. 제 개인적 감정이 문제라면 찾아와 풀면 되겠지만, 그것은 본질도 아니고 해결 방법도 틀렸습니다. 제가 국회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하던 시각 한 전 대표가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김문수 전 대통령 후보와 러브샷을 한 일로 상처 받은 당원들도 있습니다.”
장동혁 대표는 지난해 12월 23일 오전 11시 40분,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표결을 앞두고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쳤다. 전날 같은 시각 시작해 밤을 새우며 연단에 서서 반대 토론을 이어 간 것이다. 제1 야당 대표가 필리버스터에 나선 것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장 대표는 이번 토론으로 최초와 최장 기록을 동시에 세웠다. 종전 역대 최장 기록은 지난해 9월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의 17시간 12분이었다. 물만 마시며 24시간을 꼬박 버틴 장 대표는 필리버스터가 끝난 뒤 국민의힘 의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자리에서 내려왔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그 문제를 푸는 방식은 ‘저한테 노고가 많았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당원들을 향해서 ‘그때 이런 행동은 사려 깊지 못했고 신중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라고 하는 것이 문제를 제대로 푸는 방식이라는 겁니다. 통합이든 뭐든 걸림돌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한 전 대표와 당원들과의 관계가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고, 그 문제를 풀어 내는 숙제는 제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저와 악수하고 손 잡는다고 될 일도 아니고….”
“‘탄핵 반대=계엄 옹호’ 받아들일 수 없어”
— 오늘(2월 12일) 신문 칼럼 제목 중 ‘반탄 야(野) 점령, 당원 주권인가 막장인가’가 있었습니다.
“지금 국민의힘이 힘든 상황으로 가는 본질적인 이유 중 하나는, 우리 내부에서 계속해서 과거의 문제를 가지고 우리끼리 논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 당에서 계엄을 옹호하거나 ‘계엄은 매우 적법했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분은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107명 의원 중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할 것은 있습니다.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계엄을 내란(內亂)으로 기정사실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 당의 입장입니다. ‘계엄이 잘못됐으니까 무조건 탄핵으로 가야 된다’는 것은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래서 계엄이 잘못됐다고 한 107명의 의원들도 대다수가 당론으로 탄핵 반대 입장을 가졌던 것입니다.
탄핵에 반대했다는 것을 곧 계엄을 옹호하는 것과 동일시하는 걸 저는 받아들이기 어렵고, 계엄이 잘못됐다고 하는 것이 형법상 곧 내란죄를 구성한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장 대표가 거부한 것은 등치 오류였다. ‘탄핵 반대≠계엄 옹호’라는 것. 판사 출신답게 그는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구분했다.
“비공개 자리에서 다른 말 하는 사람 아니다”
장 대표는 “정치적인 고려에서 탄핵에 반대했어도 헌재에서 탄핵을 인용했으니 그 헌재의 결정을 존중할 수는 있지만, ‘탄핵을 반대했던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입장을 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저는 그 말을 뒤집은 적도 없고, 예전에는 이렇게 얘기했다가 나중에는 저렇게 뒤집은 적도 없습니다. 비공개로 이렇게 얘기하고, 공개적으론 다르게 이야기하고, 어디 가서는 또 저렇게 얘기한 적도 없습니다. 왜? 대표의 말은 그래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오해 받는 것은)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비판을 두려워해서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분명히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씀드렸고, ‘계엄은 잘못됐고, 그리고 탄핵으로 가는 과정에서 국민적 갈등이 야기되고, 많은 국민들이 상처 받은 점에 사과 드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과할 수는 있지만, 정치적인 소신에 따라 탄핵을 반대한 것이 잘못된 것이고, 헌재의 결정이 있기 때문에 헌재 결정을 존중하는 것을 넘어 ‘그런 생각을 했던 제가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즉, 그는 헌재 결정은 존중하지만 탄핵에 반대했던 자신의 판단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 대표님이 윤 어게인과 겉으로는 거리를 두면서 뒤로는 강성 지지층을 달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 진심은 제 말과 행동으로 그대로 드러납니다. 제 입장이나 행동, 워딩이 전혀 없음에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근거로 저와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한 해석입니다. 저는 비공개 자리에서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의총에서와 전혀 다른 말을 했다면 어떻게든 기사로 나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윤 어게인 안에도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의 주장이 존재합니다. 그 모든 주장을 수용할 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그분들도 자유민주주의를 굳건히 수호해야 한다는 가치 자체는 수용할 수 있다고 분명히 말해 왔습니다. 그것이 제 입장의 전부입니다.”
— 진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끝까지 기다리는 성격입니까?
“웬만하면 기다리는 편입니다. 억울한 비판이 있더라도, 즉각 대응하면 또 다른 오해를 낳기 쉽습니다. 작은 비판마다 바로 반응하다 보면 문제가 더 늘어나고 갈등이 오히려 커질 수 있습니다.”
“통합은 긍정적 에너지로 작용할 때만 의미”
— 과거에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絶緣)을 입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분열의 시작’이라고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중도층은 물론 보수층 일부에서도 윤 전 대통령과의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과거를 정리하는 일은 개인이 아니라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이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말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실제로 지난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은 사실상 탈당했고, 당헌·당규도 개정됐습니다. 당시 김용태 비대위원장은 ‘우리 당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표현까지 쓴 바 있습니다. 원내대표와 비대위원장, 혁신위원장 등 당 지도부도 말과 행동으로 여러 조치를 취해 왔습니다.”
— 하지만 그걸로 문제가 끝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가 당대표가 되고 나서도 이 논쟁은 끊이질 않습니다. 왜?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문제를 말로 해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말로 뭘 하면 내부 갈등이 시작될 뿐, 문제를 종결시키지 못합니다. 탈당과 당헌 개정, ‘우리 당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발언까지 있었지만, 저는 그런 말들이 반복되더라도 이 문제가 최종적으로 (정리)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오히려 내부에서 이 문제를 계속 거론할수록 우리가 던지려는 미래·민생·정책 어젠다가 모두 이 이슈에 묻혀 버립니다.”
— 그렇다면 결연·단절·결별과 같은 표현은 이제 더 이상 반복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건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분명히 입장을 밝혔는데도 ‘내가 원하는 단어로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건 부족하다’고 비판하면 이 문제는 끝없는 논쟁으로 빠져들 겁니다. 말로써 하는 게 아니라 달라진 모습으로, 그리고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한동훈 전 대표가 제명된 지 열흘 만에 1만 5000명 규모 토크콘서트를 열었습니다. ‘장동혁을 의식한 세(勢) 과시’라는 해석도 나오는데, 대표님은 이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오히려 지방선거를 위한 불쏘시개로 삼을 생각은 없나요?
“제가 늘 말씀드리는 것이, 통합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로 작용할 때만 의미가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1만 5000명의 에너지를 우리 당으로 흡수하자고 했을 때, 그것이 그대로 플러스 1만 5000명이 되는지는 따져봐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1만 5000명이 들어오면서, 기존 지지층 가운데 같은 규모의 인원이 투표장에서 이탈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로 인해 불만과 반발로 이탈하는 분들이 1만 6000명 혹은 2만 명이 된다면, 그것은 긍정적인 의미의 통합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만 5000명이 새롭게 들어오는 상황을 만들려면 적어도 그동안 우리 당을 지지해 왔던 분들과의 관계를 먼저 풀었어야 하고, 그 문제는 누가 대신 풀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뉴페이스, 뉴스타트’
— 서울시장 후보 경선 필요성을 언급하며 ‘뉴페이스 등장으로 컨벤션 효과를 만들면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고 하셨습니다. 공천의 콘셉트로 제시한 ‘뉴페이스, 뉴스타트’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이번 우리 당의 경선 과정은 국민들께 신선하게 다가가고 분명한 관심을 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선 단계에서부터 붐이 일어나고, 그것이 컨벤션 효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능력 있고 유능한 인물이라 하더라도 기존에 이미 알려진 사람들만 경선에 참여해서는 국민의 관심을 끌거나 분위기를 띄우는 데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새로운 인물들이 경선에 참여해 국민들의 관심을 모으고, 경선 과정에서 붐을 일으켜 컨벤션 효과를 만들어 냈으면 좋겠습니다.”
— 지방선거가 4개월도 안 남았는데 좀 촉박하지 않을까요?
“저는 찾아보면 정치에 관심이 있고 정치를 준비해 온 신인들이 충분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재영입위원회에서 그런 인재들을 많이 발굴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결론은 ‘장동혁의 스타일대로 가자’”

— 결단을 내릴 때 롤모델이 있습니까? 답을 찾고 싶을 때, 답이 안 보일 때 혹시 사모님이라든지 아니면 정치 선배라든지, 혹시 자문하는 상대가 있나요?
“저는 여러 의견을 듣고 결단을 합니다. 의견이 엇갈리고 정말 답이 보이지 않을 때, 마지막에 제가 내리는 결론은 ‘장동혁의 스타일대로 가자’입니다. 곧바로 입장을 내거나 정면으로 부딪치지는 않지만, 마지막 선택의 방식은 늘 정면 돌파였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걸리고 고민을 많이 하더라도, 애매하게 결론을 내리거나 적당히 타협하지는 않습니다. 답이 확실하지 않을수록 제 스타일대로 정면 승부를 해 왔고, 그것이 지금까지의 제 방식입니다.”
— 대표님 스타일은 일단 4음절이네요. 정면 돌파!
“예. 충분한 숙고를 하고 여러 의견을 듣되, 답이 없을 때는, 그러니까 뚜렷한 답이 없을 때는 정면 돌파한다.”
— 이기는 정치를 강조하셨는데, 승리와 포용이 충돌할 때는 어느 쪽을 택합니까?
“승리와 포용이 충돌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포용은 승리를 가져오고, 기준 없는 포용은 오히려 승리에 장애가 된다고 봅니다. 모든 포용이 승리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고, 원칙과 기준이 있을 때만 승리의 조건이 됩니다.”
— 너무 판사 스타일 아닌가요? 미국 링컨 대통령은 원수까지 포용하는 정치를 실천한 인물로 평가 받습니다. 대표께서 생각하는 정치에서의 포용은 어디까지인가요?
“당연히 링컨처럼 원수까지도 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자꾸 판사 스타일로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저하고 어떤 감정적인 것이 쌓여 있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선거에 이길 수 있다면 당연히 그 사람은 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념적 간극이 크더라도 승리에 도움이 된다면 연대(連帶)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품었을 때 예를 들면 제 원수, 저와 정치 노선을 함께 걷지 않았고 여지껏 노선이 달라서 늘 대척점에 있었고, 어떤 때는 정말 심한 감정적 대립까지 했던 사람을 안았을 때, 그것이 플러스가 되고 오히려 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제조건은 분명합니다. 그렇게 품었을 때, 그것이 실제로 표의 확장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표의 확장이라는 건 일단 상대를 품은 다음에 판단해도 되지 않을까요?
“뭐, 품은 다음에 결정해도 될 수는 있지만… 그냥 어떤 것이든 품으면 플러스가 되니까 일단 품고 보자, 그것도 저는 아닌 것 같습니다.”
— 그러나 이제 정치라는 게 어쨌거나 뺄셈 정치보다는 덧셈 정치라고 한다면, 그런 분들도, 그러니까 한동훈 전 대표 같은 경우도….
“그런데 그 전에 덧셈이라는 게 다른 의미로, 표에 플러스가 돼야지, 그냥 사람을 품어서 한 명이 오면 그 한 명은 플러스가 됐는데 표는 플러스가 안 되면 저는 그건….”
— 너무 타산적인 판단 아닙니까?
“… 오히려 뺄셈 정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19세기 영국 외교를 설계한 파머스턴 경은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고 했다. 파머스턴 경은 국익을 위해 적을 포용했으나, 장 대표는 표를 위해 적을 계산한다는 점이 다를 것이다.
“원칙과 기준은 있어야”
— 마지막으로 오세훈 시장, 유승민 전 의원, 이준석 대표, 한동훈 전 대표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이상적인 통합의 정치를 기대하는 보수 지지층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길 수 있는 길이라면, 그리고 표의 플러스가 된다면, 당내 통합이든 선거 연대든 외연 확장이든 어떤 것이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까부터 계속 말씀드리지만, 당내 통합이든 선거 연대든 외연 확장이든 표에 플러스가 돼야 하고, 그 부분에서 나름의 전략적인 판단, 그리고 원칙과 기준은 있어야 된다, 그게 제 생각입니다.”
‘그게 제 생각입니다.’ 판결문의 마지막 문장처럼 짧고 단호했다.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그것이 그의 방식이었고, 아마 그의 운명이었다.
창밖으로 국회의 겨울이 보였다. 여름의 초입 ‘그날’까지 100여 일 남아 있었다.
‘정면 돌파’라는 그의 네 음절 선언이 승소 판결로 이어질지, 기각으로 끝날지는 100여 일 뒤 투표장에서 결정된다. 보수의 르네상스, 과연 가능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