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한국 잠수함의 선구자 안병구 제독

“제2의 장보고함은 핵추진잠수함으로, 최소 6척 필요”

  •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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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보고함 다른 나라에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 한국 1호 잠수함 장보고함, 34년 동안 34만 마일(지구 16바퀴) 무사고 항해
⊙ 2004 림팩 훈련에서 43회(140만t) 가상 격침… 미군, “퍼펙트 장보고” 찬사
⊙ “잠수함은 약자의 무기이자 기습 공격에 최적화된 무기… 방어용으론 부적합”
⊙ “잠수함엔 권위의식과 비밀이 없어… 승조원 모두가 한 가족화”
⊙ “러시아제 킬로급 잠수함 도입 저지한 게 가장 자랑스러운 이력”
⊙ “해군, 치열함과 절박함 갖고 핵추진잠수함 준비해야”
2025년 12월 29일 경남 창원시 진해군항에서 거행된 장보고함 퇴역식에서 안병구 초대 장보고함장이 회고사를 하고 있다. 이하 사진=해군
2025년 12월 31일 한국 해군의 수중(水中) 개척자였던 1호 잠수함 장보고함(SS-I·1200톤급)이 퇴역했다. 1992년 10월 14일 독일 현지에서 우리 해군에 인수돼 퇴역하는 날까지 34년(1만 2131일) 동안 34만 2120마일(63만 3603km, 지구 약 16바퀴)을 항해했다.
 
  장보고함은 척당 도입 비용이 약 1500억원이었다. 해군은 장보고함을 시작으로 장보고급(1200t) 잠수함 9척을 도입했으며, 1호함 퇴역으로 현재 8척을 보유하고 있다. 이어 손원일급(1800t) 9척, 도산안창호급(3000t 이상) 4척이 건조됐다.
 
  장보고함은 2004년 림팩(RIMPAC) 훈련에 참가해 미 핵잠수함 방어망을 뚫고 미 항모 존스테니스호, 이지스함 등 수상함 14척을 총 43회(140만t) 가상 격침했다. 한번도 탐지되지 않아 미군 측 훈련지휘관에게 “퍼펙트 장보고”라는 찬사를 받았다.
 
2025년 12월 29일 퇴역식을 앞둔 장보고함이 해군잠수함사령부 부두에 정박해 있다.

  안병구(安柄九·77·해사 28기·예비역 해군 준장) 제독은 장보고함의 탄생과 마지막을 모두 지켜봤다. 그는 초대 장보고함장을 거쳐 잠수함전대장, 잠수함전단장, 해군 감찰관 등을 지냈다. 지난해 11월 19일에는 장보고함 마지막 함장인 이제권 소령과 마지막 항해를 함께했다.
 
  잠수함은커녕 대잠전(對潛戰) 교육이 전부였던 한국 해군에 잠수함을 보급한 인물이 안 제독이다. 그의 형은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안병태(해사 17기·예비역 해군 대장) 제독이다.
 
  ― 잠수함은 어떤 무기입니까?
 
  “한마디로 약자(弱者)의 무기입니다. 바닷속으로 들어가 기습 공격하기 때문이죠. 수중에서 어뢰를 쏴 수십, 수백 배 큰 수상함을 두 동강 낼 수 있습니다. 2차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 U-47(500t급, 승조원 42명)이 영국 해군 군항에 몰래 침입해 3만 톤급 전함 로열오크호를 격침해 833명을 수장(水葬)시켰습니다. 영국 처칠 총리는 ‘진실로 두려웠던 것은 독일 U보트 부대였다’고 했습니다.”
 
  독일은 잠수함을 U보트라고 부른다.
 
 
  對潛戰 유학 가서 잠수함과 첫 인연
 
  ― 잠수함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습니까?
 
  “1976년 중위 시절 미 해군 대잠전 과정(6개월) 유학을 다녀왔습니다. 미 해군 잠수함학교에 견학을 가 실물을 접하고는 ‘잠수함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시간만 나면 미 해군대학 도서관에서 잠수함 관련 서적을 읽었어요. 한국에서는 구경도 못 했던 내용이었죠.”
 
  당시 미국은 군사원조의 일환으로 한국군 장교들에게 군사교육을 제공했다. 대잠전 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장교 두 명을 이종수(해사 9기·예비역 해군 소장) 당시 대령이 불렀다. 이 대령이 “무엇을 배우고 왔느냐”고 묻자, 두 장교는 “대잠전 전술을 배우고 왔다”고 했다. 이 대령은 안 중위에게 이것저것 더 묻고는 그를 방에서 내보냈다. 그리곤 혼잣말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해군에 잠수함 전문가가 하나 나오겠구먼.”
 
  이 말을 등 뒤에서 들은 안 중위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벅찼다”고 회고했다.
 
  이종수 제독과의 첫 만남으로부터 16년 뒤 그는 해군 최초의 잠수함 함장이 됐다.
 
 
  잠수함 잘 몰라 경질된 해군총장
 
1992년 10월 14일 독일 HDW 조선소에서 장보고함 인수식이 거행되고 있다.

  ― 1992년에 잠수함이 처음 도입되는데, 그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1983년 당시 해군 기획관리참모부장(소장)이었던 이종수 제독이 소령인 저를 호출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이 해군참모총장에게 잠수함 확보에 관해 물었는데 해군에서 실망스러운 답을 해서 대통령이 대로(大怒)하고 총장도 경질됐다는 소문이 돌았죠.”
 
  ― 이종수 제독이 임무를 줬습니까?
 
  “TLR(최고수준요구서)이라고, 지금은 성능요구서(ROC)라고 부르지만, 무기 도입에 필요한 계획을 담은 문서죠. 이 TLR을 6개월 동안 만들었습니다.”
 
  ― TLR을 준비하며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습니까?
 
  “우리가 도입할 잠수함의 규모였습니다. 고민 끝에 1200톤을 기준으로 ±100톤으로 정했습니다. 장보고함의 톤수가 1200톤이죠. ‘더 작은 잠수정은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무렵 잠수함 국외 도입 사업을 방해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1983년 당시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자체 개발한 300톤급 잠수정을 해군과 협의도 없이 공개한 뒤 잠수함 자체 설계·건조 능력이 있는 양 선전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U보트도 500톤급이었는데, 우리 해군도 300톤급으로 시작해 차근차근 크기를 키워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로 ‘돌고래’급 잠수정이다. 통산 3척이 건조돼 2016년 모두 폐선됐다.
 
  잠수정은 통상 500톤 미만으로, 작전 시간이 짧아 모선(母船)이나 기지의 지원이 필요하다. 승조원은 소수이거나 무인이며 특수임무 중심이다. 배수량이 1000톤 이상이면 잠수함으로 분류된다.
 
  ― 1983년 TLR을 통해 잠수함 도입 방향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으나, 정작 잠수함 도입 계약은 1987년에야 합니다.
 
  “도입 결정은 1983년에 이뤄졌지만 예산 문제 때문에 사업이 중단됐습니다. 이후 1987년에야 해군이 대우조선(현 한화오션)과 건조 계약을 체결하고, 대우조선은 독일 HDW와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건조사업을 시작했습니다. 1번함은 독일에서, 2~3번함은 국내 건조로 진행됐습니다.”
 
 
  한국에서 1년 반, 독일에서 2년 교육
 
2017년 해군 장보고함 승조원들이 전투정보실에서 어뢰 발사 훈련을 하고 있다.

  동해에서 미사일 고속초계함장을 하던 안병구 중령은 1988년 독일로 갈 준비를 했다. 1번함 함장으로 내정된 그는 장교와 부사관으로만 구성되는 승조원 선발 권한을 갖고 있었다. 1~3번함 승조원이 될 43명이었다. 장교는 선발했지만, 부사관은 적격자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부사관 1200명을 대상으로 서류 심사를 거쳐 120명으로 추려 냈다. 이 중 100여 명을 대상으로 신체검사를 했는데 70%가 탈락했다. 탈락자가 너무 많아 서류 심사에서 걸렀던 이들을 다시 분류해 신체검사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잠수함 승조원 선발을 위한 표준화된 신체검사 기준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었다. 잠수함 승조원이 되려면 고막이 튼튼해야 하고 폐쇄공포증이 없어야 한다.
 
  ― 잠수함은 1992년에야 도입됐는데, 그 전까지는 어떤 근무를 했습니까?
 
  “중령까지 수상함에서 근무했습니다. 고속정 정장, 구축함(대구함) 부함장, 초계함(PGM-351) 함장을 했습니다.”
 
  ― 잠수함과 수상함을 모두 경험했는데,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잠수함은 비좁습니다. 승조원도 절반 수준입니다. 이 때문에 일인다역(一人多役)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 해군은 배에서 계급에 따른 위계가 엄격하지 않습니까.
 
  “잠수함에는 이른바 계급에서 오는 권위주의가 없습니다. 불필요한 권위의식은 모두 사라집니다. 함장과 일부 장교를 제외하곤 고정된 자기 침대도 대부분은 없어요. 빈자리가 나면 거기 들어가서 자는 겁니다. 더 밀접할 수밖에 없습니다. 잠수함에 있는 승조원들은 가족화된다고 해야 할까요. 잠수함에는 비밀도 없습니다. 사소한 갈등은 모두 무시합니다.”
 
  ― 계급별로 침실이 구분되지 않습니까?
 
  “부사관, 장교별로 나눌 뿐이지 ‘이 자리는 누구 자리다’라고 고정되지 않았죠. 3층 침대가 각각 양쪽에 놓여 있고 그 사이 통로 폭이 50cm입니다. 침대도 똑바로 눕지 않고 모로 누우면 어깨가 위 침대 바닥에 닿죠.”
 
  독일로 가기 전 국내에서 1년여간 사전교육을 했다. 영어 공부부터 시작해 컴퓨터 교육, 해난 구조 교육 등 다양했다.
 
  그리고 1990년 10월 독일 북부 킬에 도착했다. 초급 부사관은 출국 전 이발 교육까지 받았는데 이는 한국 해군이 항시 단정한 두발을 유지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독일 조선소에서 교육받고 있는데 하루는 대우조선 감독관 대표가 긴한 부탁이라며 저를 찾아왔습니다. 독일 조선소에 와 있는 대우조선 기술자들이 이발 때문에 곤란하다, 독일 현지 이발비를 낼 테니 해군이 이발을 좀 해 줄 수 없느냐는 부탁이었습니다. 처음엔 거절했으나, 나중에는 현지 가격의 절반만 받되 이 돈으로 이발기구와 소모품을 사고 나머지는 이발 담당이 수고비로 나눠 갖도록 했죠. 대우조선 기술자와 유대도 좋아지고 한국 사람 모두의 머리가 단정해졌죠.”
 
 
  신문사 연상케 한 인수요원 교육
 
장보고함 초대 함장인 안병구 제독(오른쪽)과 마지막 함장인 이제권 소령.

  ― 2년 동안 독일 유학을 했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까?
 
  “초반에는 언어 장벽 때문에 교육 성과가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습니다. 장교들과 논의한 끝에 강의 자료를 요약해 번역하고 이를 부사관들에게 나눠 주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조선소 교실에서 합동교육을 할 때면 그날 교육받은 교재를 장교가 번역하고, 이를 부사관이 받아 컴퓨터로 입력하고, 이를 다시 출력해 제본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마치 신문사를 연상케 하는 일과였죠.”
 
  ― 현지에서 인원 관리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숙소에 모두 모여 지내는 게 아니라 2~4명씩 한 집에 하숙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일과 후에는 제가 일일이 붙어 있을 수 없으니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도 많이 했죠.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당할 위험도 있었고요.”
 
  ― 실제로 문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까?
 
  “다행히 큰일은 없습니다. 제가 항상 ‘인복(人福)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한번은 2년 동안 한국의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군인 가족들이 독일까지 찾아온 사건으로 골치를 썩인 일이 있었다. 당시 대우조선 기술자들은 가족과 함께 독일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잠수함 인수요원들은 가족을 대동할 수 없었다. 이에 일부 인수요원 가족들이 비싼 돈을 들여 독일 현지에 왔는데, 결국 이들을 곧장 한국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獨 교관 “장보고함처럼 적극적이고 열성적인 승조원 못 봐”
 
  인수교육을 마치고 귀국한 안병구 중령은 1992년 8월 1일 장보고함부대가 창설되자 대령으로 진급하며 장보고함 초대 함장으로 취임했다. 부대원을 이끌고 다시 독일로 간 안 대령은 그해 10월 14일 장보고함을 인수하고 태극기를 달았다. 보름 뒤인 10월 29일에 안 대령이 장보고함을 몰고 첫 출항에 나섰고, 다음 날 첫 잠항을 했다.
 
  ― 인수교육과 인수 후 돌아올 때까지, 독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1993년 2월 5일 장보고함 승조원들에게 잠수함 마크를 달아 줄 때였습니다. 제겐 독일 해군 교관 책임장교가 마크를 달아 줬죠. 그는 ‘장보고함 승조원들처럼 적극적이고 열성적인 승조원은 보질 못했다’고 했습니다.”
 
  독일에서 장보고함 승조원들은 독일 해군이 교육한 내용과 운용 지침을 참고해 한국 해군만의 잠수함 운용 방안을 구상했다. 독일에서 떠나기 전 인수요원들이 만든 내용을 독일 해군에 보여 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한다면 확실성은 높아진다. 그러나 승조원들이 많이 힘들 것이다.”
 
  장보고함은 1993년 4월 16일 네덜란드 선박회사의 1만 3000톤급 반잠주(半潛走)식 선박 도크 익스프레스 11호에 실려 한국으로 출발해 5월 20일 거제 옥포조선소에 도착했다. 일주일 뒤인 26일에는 옥포조선소를 출항해 모항인 진해 기지로 입항했다.
 
 
  잠수함이 싸우는 방법
 
  ― 잠수함은 어떻게 싸웁니까?
 
  “크게 접촉→접근→공격→회피 단계가 있습니다.
 
  접촉(contact)은 목표물을 찾는 단계입니다. ‘발견했다’는 의미의 해군 전술 용어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반드시 목표물에 우리가 먼저 접촉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우리 배를 먼저 접촉하면 상대를 기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은 공격하기 위해 목표물에 접근(approach)합니다. 접촉당하지 않고 최적의 공격 위치에 도달하는 것이 함장의 역량입니다. 접촉당하는 순간 상대 측 전력이 우리 잠수함을 향해 총출동하기 때문입니다. 쫓는 자에서 쫓기는 자가 됩니다.”
 
  ― 우리 배가 접촉당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목표물의 움직임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상대도 대응기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 상대방은 우리 잠수함의 존재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소나(Sonar·음파탐지기)로 음파를 발산해 잠수함을 찾습니다. 음파가 잠수함 선체에 맞으면 선체에 반사돼 ‘핑, 핑’ 소리가 납니다.”
 
  잠수함에는 두 가지 소나가 있다. 수동 소나와 능동 소나다. 수동 소나는 자신을 향해 오는 음파를 탐지하는 기능만 수행한다. 능동 소나는 음파를 발산하고, 반사돼 돌아오는 음파를 탐지한다. 문제는 능동 소나를 사용하면 이를 발산한 잠수함의 위치도 상대방에게 노출된다는 점이다. 잠수함은 눈으로 볼 수 없고 소리에만 의존하는, 예민한 청각을 가진 ‘시각장애인’과도 같다.
 
  “세 번째가 공격(attack)인데, 바람직한 공격 위치는 목표물 좌우 45도 전방이며, 거리는 4~5마일입니다. 현재는 어뢰 성능이 향상돼 어느 위치에서든 공격할 수 있지만, 후방에서 공격할 경우 어뢰의 항주거리가 길어지고 상대가 회피할 시간도 늘어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 상대에 어뢰를 쏜 순간 자기 위치를 드러내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래서 상대가 대응하지 못하도록 즉각 회피(avoidance)해야 합니다.”
 
  ― 잠수함 방어에 최적화된 수단도 잠수함입니까?
 
  “방어 수단으로서의 잠수함은 전술적으로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잠수함은 기본적으로 수상 목표물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전략적 측면에서 보면, 잠수함 운용은 상대가 잠수함에 대비하기 위해 대잠(對潛) 전력을 지속적으로 투입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효과가 있습니다. 잠수함으로 잠수함에 대응하는 것은 알맞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 잠수함을 가장 잘 탐지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엇입니까?
 
  “재래식, 즉 디젤 잠수함을 놓고 보면 현재까지는 대잠항공기입니다. 재래식 잠수함은 수중에서 활동하기 위해 배터리를 충전해야 합니다. 반면 핵추진잠수함은 배터리 충전이 필요 없어 부상(浮上)하지 않습니다.”
 
  재래식 잠수함은 배터리(축전지)로 프로펠러를 돌려 수중에서 추진한다. 배터리가 방전되면 디젤 엔진을 가동해 배터리를 충전해야 한다. 디젤 엔진은 흡입→압축→폭발→배기 행정을 거치므로 외부 공기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재래식 잠수함은 충전시 수면 가까이 부상해 길이 1m쯤 되는 스노클을 물 밖으로 꺼내 공기를 흡입하는데, 이때가 외부 공격에 가장 취약한 시점이다.
 
  ― 먼저 해군이 된 형의 영향을 받아 해군사관학교로 진학한 겁니까?
 
  “당시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어요. 돈이 없으면 대학에 못 가는 줄 알았죠. 그래도 형님이 해군에 있으니 다른 데보단 나을 거 같아 해군사관학교에 갔죠.”
 
 
  러 킬로급 잠수함, 형제가 도입 막아
 
  ― 해사에 지원한다고 했을 때 형은 어떤 반응이었습니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요. 뜨뜻미지근한 반응이었죠.”
 
  ― 군 생활 하면서 형의 도움을 받진 않았습니까?
 
  “전혀요. 형에게 의존한다는 인상을 가질까 봐 더더욱 조심하며 거리를 뒀어요. ‘통신’이 없었죠. 형도 제게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고요. 형님한테서 정을 느끼지 못했죠. 나중에 형님이 참모총장이 됐을 때도 축하한다는 말도 안 했어요.”
 
  그는 사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도 군 출신답게 ‘통신’이라고 표현했다.
 
  ― 오히려 두 분이 거리를 뒀기에 서로 잘된 것은 아닙니까?
 
  “결과적으론 그렇게 됐는데…. 잠수함을 택한 것도, 수상함 전문인 형님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도 좀 있었어요. 왜냐하면 잠수함에선 내가 형님보다 더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안병구 제독의 친형 안병태 제독이 해군참모총장에 임명된 후 6개월쯤 지나 동생에게 늦은 밤 연락을 했다. 안병구 제독은 형이 평소 자신에게 연락할 일이 없는데 이상하다고 느꼈다.
 
  “당시 저는 진해에서 잠수함전대장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형님이 전화로는 이야기할 수 없다고 하면서 해군본부가 있는 계룡대로 급히 오라는 거예요.”
 
  김영삼 정부 출범 후 7~8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당시는 소련 붕괴로 고르바초프가 실각하고 러시아 정부와 경제가 사실상 무너진 상태였다. 러시아는 외화를 확보하기 위해 군수 장비를 팔려고 힘을 쓰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킬로(K)급 잠수함을 적극적으로 선전하고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권영해 국방부 장관을 불러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국방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권 장관은 러시아의 킬로급 잠수함을 언급했다. 대통령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당시 한국은 구소련에 14억1000만 달러 규모의 차관을 제공한 상태였다. 러시아가 현금 상환할 능력이 없자 차관 일부를 킬로급 잠수함으로 받자는 취지였다.
 
  권영해 장관은 안병태 총장에게 킬로급 잠수함 도입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안 총장은 잠수함에 대해 잘 아는 동생을 불렀다. 안병구 제독은 “군 생활 하면서 나를 불러 진솔한 이야기를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라고 했다.
 
  “케이(K)급 잠수함이 뭐냐? 이걸 가져와도 되느냐? 네가 한번 알아봐라.”
 
  당시 해군은 독일제 209급 잠수함을 3척(장보고함, 이천함, 최무선함) 도입해 운용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킬로급 잠수함이 도입되면 전혀 다른 체계가 생겨난다. 안병태는 안병구에게 러시아 극비 현지 조사를 지시했다. 현지에 간 안병구는 충격을 받았다.
 
  “발트해 인근 크론슈타트 해군기지에 갔습니다. 물이 빠지면 뻘이 드러나는 지역인데, 잠수함이 옆으로 뒤집힌 채 널브러져 있었어요. 세어 보니 17척이었죠. 처음에는 퇴역함이나 처분 대기 함정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운용 중인 잠수함이었습니다.”
 
  ― 고장이 난 겁니까?
 
  “‘움직일 연료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우리 해군으로선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죠.”
 
  안 제독은 킬로급 잠수함을 타고 출항해 봤다. 잠항과 부상 과정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가 내세우는 킬로급 잠수함이 허위·과장된 선전의 산물이라는 점을 알아차렸다. 외형만 크고 그럴듯할 뿐, 내부는 엉망이었다.
 
 
  “참모총장 임기는 2년이지만 해군은 영원해야”
 
장보고함 승조원들이 잠항 1만 시간 무사고 항해(2001년 12월 31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러시아 경제가 무너지면서 부품 생산과 공급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장비 공급망에 관해 물으면 러시아 측은 화를 냈다. ‘스탠더드(규격·표준)’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킬로급 잠수함 정비 교범은 책 한 권이 전부였습니다. 반면 우리 장보고함은 정비 교범만 손수레로 하나 분량입니다. 부품별 정비 절차, 필요 공구, 점검 기준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2주간 현지 조사를 하는데, 러시아 측은 대함 미사일을 얹어 주겠다는 등 과장된 제안을 쏟아 냈습니다.”
 
  귀국 후 다시 두 해군 형제가 만났다. 당시 도청이 우려돼 계룡산 노적봉에서 심야에 단둘이 만나 2시간 넘게 이야기했다.
 
  “잠수함을 제대로 운용하려면 ▲운용 ▲정비 ▲군수지원 ▲기지 ▲부품 조달 체계가 동시에 갖춰져야 합니다. 핵심은 표준화된 부품 조달 체계인데, 러시아제를 들여오면 기존 잠수함 체계가 완전히 붕괴합니다.”
 
  그는 형에게 “총장을 그만두든지, ‘Yes’라고 해서 해군을 망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총장 임기는 2년이지만 해군은 영원해야 합니다”라고 직언을 날렸다. 안병태 총장은 권영해 장관에게 “잠수함은 안 된다. 대신 다른 무기로 대체해 달라”고 건의했다. 그 결과 러시아 차관 대체 물자로 산불 진화 헬기와 무레나급 공기부양정을 들여왔다. 안병구 제독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 킬로급 잠수함이 해군에 들어왔다면 해군은 망했을 겁니다. 인도가 킬로급 잠수함 10척을 도입했지만 지금 제대로 움직이는 함정은 거의 없습니다. 부품 공급이 안 돼 동류(同類) 전환으로 연명하고 있죠. 사람들은 장보고함 함장을 제가 가진 최고의 이력이라고 말하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내세우고 싶은 공(功)은 킬로급 잠수함 도입을 막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안병구 제독은 장보고함 퇴역식에서 “해군의 숙원 사업인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위해 힘써야 할 때”라며 “제2의 장보고함은 핵추진잠수함이 돼야 한다. 지나간 34년보다 앞으로의 10년이 더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 한국이 처한 환경에선 재래식 잠수함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재래식 잠수함의 원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큰 발전이 없습니다. 결국 배터리 동력으로 기동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한계가 있죠. 더 많이, 빨리 움직일수록 더 많은 스노클링을 해야 합니다. 문제는 대잠수함 수단이 너무나 발달해 재래식 잠수함만으로는 생존성을 보장할 수 없어요.”
 
 
  핵추진잠수함 최소 6척 필요
 
  ― 핵추진잠수함은 비싸다는 단점이 있지 않습니까.
 
  “잠수함의 생명인 은밀성(stealth)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핵추진잠수함은 물속에서 속력에 구애받지 않고 달릴 수 있습니다.”
 
  핵추진잠수함은 우라늄을 연료로 하는 소형 원자로를 가동, 운항한다. 바닷물을 끓여 고압 증기를 만들고 터빈을 돌려 프로펠러를 움직인다. 이때 프로펠러가 과도하게 회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프로펠러와 터빈 사이에 감속 기어를 설치한다. 원자로를 식히는 냉각 장치도 필요하다. 동력을 만드는 과정에서 산소를 소모하지 않기에 스노클을 할 필요가 없다. 함내 식량만 충분하면 이론상 부상 없이 ‘무제한 작전’도 가능하다.
 
  ― 몇 척이나 도입해야 합니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최소 6척은 있어야 합니다. 해군은 ▲운용 ▲정비 ▲교육훈련이라는 주기로 전력을 운영합니다. 6척이 있어야 최소 2척은 온전한 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 모든 절차가 순탄하게 진행된다면 언제쯤 핵추진잠수함이 완성될까요?
 
  “첫 번째 선도함이 등장하기까지 최소 10년, 길게는 20년이 걸릴 겁니다.”
 
  ―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앞두고 해군에 하고 싶은 말씀은?
 
  “앞으로 해군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겁니다. 핵추진잠수함은 운용 개념부터 다릅니다. 이를 위해 기반 시설부터 교육 체계 마련 등 해군에서 서둘러 준비해야 할 내용이 많습니다. 기술적으로 문제는 없으나 정치외교 분야가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해군에서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관심은 줄어들 겁니다. 열심히 뛰어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해군이 치열함과 절박함을 가져야 합니다.”
 
  정부는 퇴역한 장보고함을, 폴란드의 차세대 잠수함 도입사업인 ‘오르카 프로젝트’에서 장차 한국 업체의 수주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포석으로 폴란드 해군에 무상 양도할 계획이다.
 
  ― 장보고함이 폴란드에 공여(供與)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쉽습니다. 안 보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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