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금기창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중증·난치 질환 중심 병원으로 재편… ‘최상급종합병원 표준’ 만들겠다”

  •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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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증 환자 감소, 의료 대란의 순기능… 의료기관 ‘뉴노멀’ 시대 도래
⊙ 국내 유일 중입자 치료 등 新 의료 기술로 중증·난치·질환 치료 선도
⊙ 폐암센터 신약 임상 규모·로봇 수술 세계 최고 수준… “연구와 임상 함께 이뤄져야”
⊙ 기부로 세워진 ‘국민병원’… 2025년 기부액 700억원 예상
⊙ 중증 치료·AI·교육·기부 문화의 ‘넥스트 세브란스’ 비전… 또 다른 100년史 쓸 것

琴基昌
1963년생. 연세대 의과대학 졸업, 방사선종양학 박사 / 연세의료원 홍보실장, 세브란스병원 연세암센터 방사선종양학과장, 연세대 의과대학 방사선종양학교실 주임교수, 대한방사선종양학회장(이사장 겸임), 연세의료원 건설사업단 중입자건립추진본부장, 연세암병원장, 송도세브란스병원 건립추진본부장 역임. 現 연세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사진=조준우
원래도 생사(生死)를 다투는 곳이지만, 그땐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의정 갈등이 의료 체계를 뿌리째 흔들던 시기. 전공의(專攻醫) 집단 사직으로 의료진은 밤샘 당직과 외래·수술을 반복하며 버텨야 했다. 금기창(琴基昌·62)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그 격전(激戰)의 한가운데서 취임했다. 2024년 3월, 전공의 이탈이 본격화된 시점이었다.
 
  그는 원장직에 앉자마자 ‘비상 경영 체제’를 가동했다. 우선 지출 구조를 일일이 뜯어봤다.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지를 기준으로 병원 운영을 원점(原點)부터 다시 설계했다. 선택 진료를 조정하고 비(非)필수 사업 투자와 신규 채용은 과감히 미뤘다. 모든 역량을 한곳에 집중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바로 중증(重症) 진료다. 극한의 위기 속에서도 세브란스의 정체성(正體性)을 지킨 셈이다.
 
  실제로 그해 의료 수익이 1200억원 적자를 기록하는 와중에도 중증 진료는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금 원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세브란스만이 할 수 있는 중증 질환 진료의 불은 꺼뜨리지 않겠다는 책임감이 무겁게 다가왔다”고 했다. 공(功)은 직원들에게 돌렸다. “병원을 지킨 구성원들의 숭고한 헌신과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면서다.
 
  2025년 10월, 정부는 보건의료 위기경보 ‘심각’을 해제하며 의료 대란 종료를 공식화했다. 격랑(激浪)이 지나간 자리는 의외로 기회의 땅이었다. 금 원장은 “이번 사태로 의료기관의 수련·교육 환경이 바뀌면서 ‘뉴노멀’의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고 했다. 의료 체계가 중증 중심으로 재편됐다는 의미다.
 
  2025년 12월 9일 그를 만나봤다. 부임 후 첫 언론 인터뷰다. 금 원장은 “연세의료원이 중증·난치(難治) 질환에 더욱 집중해 상급종합병원을 넘어서는 ‘최상급종합병원’의 표준을 제시하겠다”고 했다.
 
 
  의료 대란 후 ‘뉴노멀’
 
  ― 오는 3월이면 취임 2년이 됩니다. 그간을 돌아보면 어떻습니까.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어요. 취임 초기엔 말 그대로 전쟁터였습니다. 의정 갈등이 계속됐고, 하루하루 대응하느라 무엇을 했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이 없었어요. 큰 계획을 세워 추진하기보다는 급한 불을 끄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2024년 10월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 사업이 도입되고, 이듬해 6월 진료지원간호사(PA) 제도가 제도권으로 들어오면서 전공의 공백을 메웠고, 시스템이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 향후 의료 대란과 같은 갈등 재발을 막기 위해 보완해야 할 점은 뭐라고 봅니까.
 
  “수도권–비수도권, 인기과–비인기과 쏠림 같은 의료 불균형을 바로잡는 게 먼저라고 봐요. 의대 증원 논란도 결국 여기서 비롯된 거니까요. 정부가 여러 방안을 내놨지만 실질적인 동기부여나 해법은 되지 못했고, 이제는 경제적 계산이나 정치 논쟁보다 사람 중심으로 정부·의료인·병원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제는 의대 증원만 따로 볼 게 아니라 지역·전문과목·수가(酬價)·수련 시스템을 하나로 묶어 근본적으로 논의해야 해요. 반복되는 갈등에서 벗어나려면 정부–의료계–병원이 상시 논의하는 협의체가 필요하고요. 필수·중증 의료는 국가가 보상과 근무환경을 책임지는 구조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연세의료원도 현장 데이터와 대안을 제시하는 파트너가 되려고 합니다.”
 

  ― 의료 대란 이후 ‘뉴노멀’ 시대를 맞이했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전공의가 진료의 핵심 노동력을 맡던 방식은 이제 지속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수련과 ‘일’을 동시에 떠안는 구조가 한계에 다다랐고, 사회 인식도 달라졌습니다. 결국 그 역할을 대신할 인력이 필요해지고, PA 제도도 그런 흐름 속에서 자리 잡을 겁니다.
 
  앞으로 대형병원은 경증보다 중증·난치병 진료를 강화해야 합니다. 연구와 진료가 함께 돌아가고, 성과가 바로 환자 치료로 연결되는 구조가 필요하죠. 이른바 ‘4차 병원’이 그런 역할을 맡게 될 것이고, 그 아래 대학병원·종합병원·2차 병원은 각자의 전문성을 분명히 해야 의료 체계가 제대로 굴러갈 겁니다.
 
  이번 사태를 거치며 환자 흐름도 재정렬됐습니다. 세브란스 응급실이 경증을 받지 않는다는 걸 환자들이 알고 실제로 1·2차 병원으로 이동하고 있어 과거처럼 경증 환자로 대형병원이 막히는 악순환이 줄었습니다. 저는 이걸 사태의 순기능으로 봅니다. 중증 수가가 개선되면서 병원도 중증 진료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고요.”
 
 
  ‘최상급종합병원의 표준’
 
  ― 환자들은 이 변화를 어떻게 체감할까요.
 
  “중증 환자들에게는 긍정적이죠. 과거엔 전공의가 당직을 서며 입원 환자를 대부분 맡았지만, 이제는 전문의가 직접 당직을 서고 입원 전담 전문의의 비중도 커졌으니까요. 다만 병원 입장에서는 고급 인력이 더 필요해지면서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났죠. 중증 진료 수가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 배경이고요.”
 
  ― 정부의 상급종합병원 지원 사업도 상급종합병원의 역할을 중증·난치병 치료로 재편하려는 정책입니다.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이 모두 참여한 상태인데, 연세의료원이 제시할 수 있는 ‘최상급종합병원 표준’은 뭘까요.
 
  “초기 암(癌) 치료나 표준화된 수술은 웬만한 상급종합병원이면 이미 잘합니다. 큰 차이가 없죠. 하지만 폐암·췌장암처럼 ‘초기’가 아니면 승부가 어려운 난치암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제가 연세암병원장 시절부터 ‘난치암 두 축만큼은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흐름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신약(新藥)이 필요한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약은 아무 병원에나 공급되지 않습니다. 임상시험 운영 능력, 전문 의료진, 간호 인력의 숙련도, 환자 관리 프로토콜 같은 요건을 갖춰야 하고, 그걸 충족하지 못하면 애초에 신약을 쓸 수가 없어요.
 
  뿐만 아니라 연구·임상 시스템을 환자에게 가장 빠르게 적용할 수 있는 것 또한 차별점 중 하나예요. 예컨대 우리 폐암센터는 신약 임상 규모가 전 세계 최다입니다. 환자들이 고가(高價) 신약을 비용 없이 받을 수 있고, 표준 치료가 듣지 않을 때 한 번 더 시도해 볼 무기가 생기는 거죠.”
 
 
  국내 ‘최초’이자 ‘유일’ 중입자 치료
 
연세의료원은 중입자(重粒子) 치료 등 신(新) 의료 기술로 중증·난치 질환 치료를 선도하고 있다. 사진은 중입자 치료 가속기. 사진=연세의료원

  연세의료원은 중입자(重粒子) 치료 등 신(新) 의료 기술로 중증·난치 질환 치료를 선도하고 있다. 2023년 국내 최초로 중입자 치료를 도입해 현재까지 유일하게 시행 중이며, 약 900명의 환자가 치료를 받았다. 이 중 75%는 전립선암 환자이며 폐암·간암·췌장암에도 적용됐다.
 
  중입자 치료는 가속기 싱크로트론으로 탄소 원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한 뒤, 고정형·회전형 치료기를 통해 암세포에만 에너지빔을 정밀 조사하는 방식이다. 중입자는 양성자보다 질량이 커 암세포에 가하는 충격이 훨씬 크다. 기존 방사선 치료보다 효과가 뛰어난 이유다. 세브란스병원은 고정형 1대, 회전형 1대를 가동 중이며, 2026년 상반기 회전형 1대를 추가 가동해 두경부암 등 적용 범위를 넓힐 예정이다. 금 원장은 “중입자 치료는 단순한 기계 도입이 아니라 난치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라고 했다.
 
  ― 5000만원 상당인 중입자 치료비를 두고 비싸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많이들 한 번 쏘는 가격으로 알고 있는데, 처음 설계부터 전체 치료가 끝날 때까지 모두 포함된 비용입니다. 중입자 치료를 하려면 컴퓨터단층촬영(CT)·자기공명영상(MRI)촬영, 치료 계획 수립, 매일 들어가는 치료 세션까지 전 과정이 들어가죠. 일종의 포괄수가제(DRG) 개념이라고 보면 됩니다. 중입자 장비와 시설 구축에 우리가 투자한 비용이 약 3000억원입니다.”
 
  참고로 독일·일본 등으로 원정 치료를 가면 1억원 이상이 든다.
 
  ― 환자가 늘어나면 치료비용을 낮출 수 있을까요.
 
  “쉽지 않습니다. 환자가 많아도 장비를 더 오래 가동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엔지니어들이 매일 오후에 정밀 조율 작업을 해야 해서죠. 때문에 치료는 오후 4시 무렵이면 종료해야 하고, 하루에 치료할 수 있는 환자 수가 자연스럽게 제한됩니다. 이 결과 전립선암은 대기 기간이 약 6개월, 다른 암종도 대부분 3개월 이상 기다려야 합니다. ‘기계를 더 들이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비용입니다. 싱크로트론 장비를 도입하고, 이를 수용할 차폐 시설(일명 벙커)을 짓고, 전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2500억~3000억원이 필요합니다. 병원이 단독으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닙니다. 사립병원이 이런 투자를 결행하려면 이사회와 의료원 전체의 큰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웬만한 병원 하나를 새로 짓는 비용이니까요. 그만큼 대형 프로젝트예요. 실제로 중입자 치료기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기관은 있으나, 현재 국내에서 실제로 운영 중인 곳은 세브란스가 유일합니다.”
 
 
  ‘통합 난치암 센터’
 
  ― 중입자 치료를 ‘치료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본다면, 향후 5년 내 연세의료원이 만들 의료 혁신의 청사진은 무엇입니까.
 
  “중입자 치료 기반의 난치암 통합 치료 시스템을 완성하는 겁니다. 2026년 두경부암 등 적용 범위를 확대해 치료를 적용할 수 있는 환자군을 지속적으로 넓혀갈 예정입니다. 이 외에도 항암, 수술 등 다양한 옵션을 활용해 수술이 어려운 췌장암, 간암과 같은 초고난도 난치암에 대해 최적화된 병합 치료 프로토콜을 정립함으로써 글로벌 난치암 치료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할 생각이에요. 이렇게 중입자 치료, 수술, 항암·면역 치료, 영상·유전체 분석을 하나의 임상·연구 플랫폼으로 통합해 환자별로 가장 효과적인 조합을 찾아내는 ‘통합 난치암 센터’를 완성하는 게 5년 청사진이죠. 이를 통해 췌장암·간암·재발암 등 그동안 손대기 어려웠던 암에서 생존율을 실질적으로 끌어올리고, 그 치료 경험을 세계와 공유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로봇 수술 분야도 독보적(獨步的)이다. 세브란스병원은 세계 최초 단일기관 로봇 수술 4만 례 달성을 비롯해 로봇 수술 분야에서 세계를 리드하고 있다. 2021년 6월에는 전 세계 1호 단일공(SP) 로봇 수술 에피센터(Epicenter)로 지정되기도 했다. 존슨앤존슨과 차세대 수술로봇, 디지털 수술 플랫폼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이 밖에 의료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분야 혁신도 꾀하고 있다. 금 원장은 “의학 분야에서 디지털 기술은 이미 대세”라고 했다.
 
  ― 연세의료원에서 사용 중인 AI 기술은 무엇입니까.
 
  “전자의무기록(EMR)에 AI를 적용한 ‘와이낫(Y-Knot)’이 대표적입니다. 개인정보 규제가 강한 EMR에 AI를 넣은 국내 첫 모델이라 의미가 커요. 또 음성 인식 솔루션 ‘케어보이스’로 환자–의료진 대화를 자동 기록·요약하고 있습니다. 방사선 치료에서는 AI가 CT·MRI 영상을 분석해 종양·장기 경계를 자동으로 그려주죠. 덕분에 예전에는 한 환자당 3~4시간 걸리던 컨투어링 작업을 크게 줄일 수 있었어요.”
 
  ― 인공지능 기술과 로봇 수술이 보편화되는 시대에 절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다고 보는 의료 영역은 어디입니까.
 
  “환자 말을 자동으로 EMR에 기록하고, 검사 결과와 증상을 조합해 의심 질환을 제시하는 등 AI의 진단 보조 역할은 크게 확대될 겁니다. 의무기록 작성도 대부분 AI가 맡게 되면서 레지던트와 간호사의 기록 업무는 크게 줄고, 내과처럼 데이터 기반 진단은 AI 정확도가 더 높아질 거라 봅니다.
 
  수술 역시 자동화가 가능한 부분이 늘어나겠지만 최종 진단과 치료 결정은 여전히 의사의 몫입니다. 법적, 윤리적 책임과 개별 상황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니까요. 스마트 기기와 연동된 모니터링 시스템이 실시간 데이터를 EMR로 보내면 이상 신호가 자동으로 표시되고, 의료진은 더 빠르고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의사가 더 이상 기록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기록·정리·요약을 AI가 하면 의사는 환자와의 대화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인간적 접촉 시간도 오히려 늘어날 겁니다. 진료의 질과 친밀도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거죠.”
 
 
  임상과 연구, 최상급 의료의 조건
 
2028년 준공 예정인 송도세브란스병원 조감도. 800병상 규모로 지어지며 지역 필수 의료와 차세대 연구 기능을 결합한 모델을 추진한다.

  AI 기반 진료 지원부터 로봇 수술, 신약 임상 플랫폼까지 미래 의료의 핵심 역량을 선도적으로 구축해 왔다는 점은 교육·연구 체계의 확장과도 맞닿아 있다. 금기창 원장이 “임상과 연구가 함께 움직여야 최상급 진료가 가능하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같은 변화는 의학 교육의 기반을 재편하는 대규모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 연세대 의대 신축 캠퍼스는 2029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규모는 기존의 두 배 이상이다. 연구·교육 인프라를 전면 개선하는 프로젝트로 약 330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현재 설계사 선정 후 설계가 진행 중이며, 인허가 절차를 거쳐 착공에 들어간다. 의대는 이미 의사과학자 양성 프로그램과 MD–PhD 지원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기초·의공학 인재를 길러온 기반 위에 신축 캠퍼스가 더해지는 셈이다.
 
  인프라 확장은 필연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요구한다. 이를 위해 의대는 신축 기금 모금 위원회를 발족했다. 최재영 의대학장과 이재범 의대 총동문회장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교수진·총동문회 보직자 등 39명이 참여한다. ‘새 의과대학은 세브란스 동창들의 힘으로 짓자’는 슬로건 아래 조직적 모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금까지 모인 기부금은 약 280억원이다. 동문 대상 ‘5020 프로젝트(50만원의 헌신·20개월 동행)’를 비롯해 이비인후과 역사관 3억원, 세란극회 동아리실 5000만원 약정 등이 대표 성과다. 의대는 향후 대규모 모금을 위한 ‘더 넥스트 세브란스’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다.
 
  의료원 전체의 기부 문화도 꾸준히 확장 중이다. 연세의료원은 2024학년도 모금액 536억원을 기록하며 3년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 개인·환자 후원이 305억원으로 가장 컸고, 동문 기부는 전년 대비 57% 증가했다. 고(故) 장명환 미주 의대 동창의 유산 기부 43억원, JYP엔터테인먼트의 소아청소년 치료비 5억원, 조홍로 삼륭물산 회장의 5억원 기부 등이 이어졌다.
 

800병상 규모 송도세브란스병원 2028년 개원


부동(不動)의 1위다. 세브란스병원은 국가고객만족도(NCSI) 조사에서 병원 부문 15년 연속, 전체 산업 5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환자 진료 경험이 지속적으로 개선되면서 쌓아온 성과다.
 
  병원은 넓은 부지와 복잡한 동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클로이 안내로봇, 주요 동선 색상 표지, ‘쉬운 길 찾기’ 웹 메뉴 등을 도입해 이동 편의성을 높였다. My세브란스 앱은 모바일 진찰권, 조제 진행 상황 확인, 실시간 주차장 조회 등 기능을 더해 환자의 병원 이용 전반을 간소화하고 있다.
 
  물리적·디지털 편의 개선뿐만 아니다. 환자 응대의 질도 높이는 중이다. 의료진·교직원 대상 진료 면담 컨설팅과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강화하고, 직원 간 감사를 주고받는 ‘땡큐 세브란스’ 캠페인을 운영해 조직 문화의 안정감을 높였다.
 
  세브란스의 다른 병원들도 각자의 특화 전략으로 경쟁력을 확장하고 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첫 연구중심병원 인증을 통해 미래 의학과 기술사업화 역량을 넓히며, 강남-테헤란 연구 클러스터 조성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용인세브란스병원은 AI 기반 의료 서비스 전환을 선도하며 DX 서비스 어워드 4년 연속 월드 그랑프리를 수상, 디지털 혁신 병원으로 자리 잡았다.
 
  2028년에는 송도세브란스병원이 준공 예정이다. 지역 주민들의 오랜 염원이었다. 800병상 규모로 지어지며 지역 필수 의료와 차세대 연구 기능을 결합한 모델을 추진한다. 금기창 원장은 “송도 병원을 우리 재정에 부담 없이 짓기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 중”이라면서 “지역 기업인들 모금 등을 준비하며 병원 개원 후 적자까지 감당할 수 있는 탄탄한 재정 구조를 미리 만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사회적 책무도 중요한 축이다. 세브란스는 장애인 의무고용률 100%를 넘어 고용노동부 장관상을 받았고, 혈압측정보조원·환자이동보조원 등 장애 친화 직무를 신설해 고용 기반을 넓혔다. 해외 의료 취약국 인력 양성을 위한 에비슨 인터내셔널 펠로십, 10x10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글로벌 보건 교육에도 기여하고 있다.
 
  의료사각지대를 돕는 ‘선한 사마리아인 SOS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651명의 중증응급환자를 지원했고, 글로벌 채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30여 개국 환자를 치료했다. 서울시 장애인구강진료센터 개소로 중증 치과장애인 진료까지 확대하며 공공 구강보건 역할도 강화하고 있다.

 
  기부와 헌신의 DNA
 
연세의료원의 2025년 기부액은 7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기관과 협력해 유산 기부 활성화 등 새로운 기부 문화 조성에도 나서고 있다. 사진은 금 원장이 2025년 5월 20일 ‘The Great Future, 위대한 미래를 여는 밤’ 행사에서 모금캠페인에 관해 설명 중인 모습.

  2025년 6월 23일에는 방탄소년단(BTS) 슈가가 50억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이 돈은 슈가의 본명을 딴 ‘민윤기치료센터’ 설립에 쓰인다. 자폐스펙트럼 장애 아동을 위한 언어·심리·행동 치료센터다. 슈가와 금기창 원장이 함께 찍은 착공식 사진은 전 세계 아미(ARMY)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고, 금 원장은 세브란스 140년 역사상 가장 세계적으로 얼굴이 알려진(?) 의료원장이 됐다고 한다. 금 원장은 “2025년 기부액은 7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금융기관과 협력해 유산 기부 활성화 등 새로운 기부 문화 조성에도 나서고 있다.
 
  ― 이렇게 대규모의 기부를 받는 비결이 뭡니까.
 
  “세브란스는 처음부터 ‘기부로 만들어진 병원’입니다. 호러스 뉴턴 알렌이 제중원을 열었고, 운영이 어려워지자 미국 선교사들이 후원을 모았죠. 그때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 선생이 지금 가치로 수백억, 수천억원 규모의 거액을 기부했고, 그 돈이 병원의 기반이 된 겁니다. 그 DNA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거예요.
 
  세브란스는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입니다. 기부자와 구성원이 중심인 병원이기 때문에 ‘국민병원’이라는 정체성이 뚜렷해요. 기부금이 모두 환자에게 돌아가는 구조라 설득도 비교적 쉽습니다. 감동받은 환자·보호자, 더 많은 환자를 돕고 싶은 분들이 자연스럽게 기부에 참여하고, 병원에서는 기부자 예우를 매우 중시합니다. 기부금 사용처를 매년 투명하게 보고하고, 장학금·연구비·신축 의대 등 목적이 분명한 ‘기부 상품’을 만들어 설명합니다. 이런 문화가 자리 잡기까지 10년 넘게 걸렸어요. 이 전통이 쌓이며 세브란스는 매년 기부 기록을 경신하는 병원이 됐고, 이렇게 수백억원 규모의 기부를 꾸준히 받는 사례는 국내에서 거의 없죠.”
 
 
  병원이 보유한 기술과 연구 성과를 실제 사업으로 연결
 
  기부뿐만이 아니다. 연세의료원은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수익 구조의 다변화(多邊化)를 추진 중이다. 대표적인 게 기술지주회사의 운영이다. 병원이 보유한 기술과 연구 성과를 실제 사업으로 연결해 수익을 창출하는 전담 조직이다. 의료원이 얻는 수익은 기술이전료, 지분 가치 상승, 배당, 펀드 수익 등으로 구성된다. 펀드를 통해 기업을 육성하고, 상장·매각·기술 라이선스 아웃 등을 거쳐 수익을 돌려받는 구조다. 특허료 역시 중요한 수익원이다.
 
  ― 병원이 운영하는 기술지주회사는 다소 낯설게 느껴집니다.
 
  “국내 의료계에서는 첫 시도일 거예요.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매우 흔한 구조입니다. 미국 의대 교수들은 대부분 벤처를 하고, 대학이 특허 출원부터 펀딩, 인큐베이션, 심지어 회사를 매각할 때까지 전 과정 시스템을 지원합니다. 연구자가 아이디어와 기술을 개발하면 대학이 사업화를 돕는 방식이죠. 현재 200억 규모 펀드를 조성해 1차 투자를 마쳤고, 총 21개 회사에 투자했습니다. 교수들이 창업한 기업 중에는 의료원이 지분을 일부 보유한 곳도 있어요. 이 회사들이 성장해 상장하거나 기술을 라이선스 아웃하면 그 수익이 다시 의료원으로 돌아옵니다. 바이오 분야는 5억 투자해 500억을 벌 수도 있는 시장이기 때문에 수익 잠재력이 큽니다.”
 

  ― 지금까지 기술지주회사를 통해 창출된 성과나 가치는 어느 정도입니까.
 
  “이미 성장세가 뚜렷한 회사가 10여 곳 되고, 내년이나 내후년 상장이 가능한 기업도 있습니다. 실제로 기술지주회사 전체 평가가치(밸류에이션)는 초기 몇천만원 단위였던 기업들이 모여 최근 1조600억원 규모로 뛰었어요. 아직 본격적인 현금 수익이 들어오는 단계는 아니지만, 가치 상승 속도가 매우 빠르고, 구조적으로 수익이 기대되는 모델입니다.”
 
 
  ‘더 넥스트 세브란스’
 

  ― 환자를 진료할 때와 병원을 운영 중인 지금을 비교하자면요.
 
  “힘든 건 비슷합니다. 다만 고민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환자 한 사람, 한 케이스를 두고 고민했다면 지금은 병원이 어떻게 해야 제대로 굴러가고, 환자들이 더 편하게 진료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환자와 구성원 모두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쪽으로 생각이 옮겨간 거죠.”
 
  ―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솔직히 잘 못 합니다. 주말에 집 근처 헬스클럽에 한 번 가는 정도죠. 평일엔 저녁 약속이 많다 보니 운동은 그것밖에 못 해요.”
 
  ― 건강을 위해 ‘최소한 이것만은 해야 한다’고 조언할 만한 게 있을까요.
 
  “술·담배만 끊어도 절반은 갑니다. 억지로라도 틈틈이 채소 드시고, 어려우면 토마토를 갈아서 주스로 마시세요. 물도 많이 드시고, 가능한 한 운동도 하고요. 또 하나 중요한 건 스트레스를 없애는 겁니다. 저 같은 경우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것 먹으며 수다를 떨면 해소가 되더군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년 건강검진. 이건 기본입니다. 다들 아는 얘기예요. 건강관리란 게 방법을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잖아요?(웃음)”
 
  ― 앞으로 신축 의대에 들어올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장래희망에 슈바이처를 쓸 수 있는 사람, 누군가를 살리는 데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와야 합니다. 의학 지식은 기본이고, 협력·책무·공감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해요. 힘든 순간을 견디는 내구성(耐久性)도 필요하고요. 안 그러면 오래 못 버텨요. 레지던트 시절의 고된 훈련도 그 힘을 키우기 위한 겁니다. 군인이 혹한기 훈련을 하는 것과 같아요. 버티는 힘이 의사의 실력이고 태도예요. 기술만 배우러 오면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생명을 맡는 순간부터 책임이 따라오니까요. 의사는 결국 천직(天職)이어야 하는 거예요. 언젠가부터 의사가 이기적인 집단으로 비치고 있는데, 이런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결국 국민이 피해를 봅니다.”
 
 
  “저는 세브란스 140년 역사에 한 점을 찍는 사람”
 
 
제공=파카(PARKER) 만년필
― 연세의료원장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지, 훗날 어떤 원장으로 남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앞으로의 목표는 ‘더 넥스트 세브란스’ 비전의 완성입니다. 중증 치료, AI 전환, 의사과학자 교육, 기부 문화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하는 미래 전략이죠. 의정 사태라는 어려운 시기에 원장이 된 것처럼 연세의료원의 또 다른 100년을 설계하는 것 또한 제게 주어진 사명(使命)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어떤 원장으로 남겠다’라는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세브란스 140년 역사에 한 점을 찍는 사람일 뿐이고, 그 점들이 이어져 역사는 흘러가는 거죠. 그저 ‘정말 열심히 했던 원장이었다’ 정도로 기억되면 충분합니다.”
 
  ― 한 개인으로서는 어떻습니까.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바가 있다면요.
 
  “개인적으로는 지금 이 자리에 올라온 것만 해도 정말 감사한 마음이에요. 연세대에 들어와 교수가 되고, 의료원장까지 맡게 됐으니 가문의 영광이죠. 그래서 앞으로 뭘 더 이루겠다는 욕심은 없습니다. 사실 지금 당장은 제 목표를 생각할 겨를도 없어요. 임기 끝나고, 65세 이후에나 해볼까요. 그땐 의료계를 떠나 제2의 인생을 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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