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北 수용소 참상 다룬 소설 쓴 장진성 작가

“사람들 대부분 실존 인물… 실제보다 톤을 낮췄다”

  • 글 :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kj961009@chosun.com
글자 크기 조정
  • 스크랩
  • 본문 음성 듣기
  • 글자 크기 조정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 9월 9일 신간 장편소설 《캠프 15》 1쇄 2000권 발행… “드라마·영화 요청 들어와”
⊙ “씨받이 공작… 외국으로 북한 여자 내보내서 임신시킨 아기를 간첩으로”
⊙ “보위원·경비대 등 그 질서에 갇힌 사람들도 조명”

張陳城
1971년생. 평양음악무용대 졸업, 김일성종합대 어문학부 박사원 졸업 / 北 조선중앙방송위원회 TV총국 문예부 기자, 北 중앙당 통일전선부 101연락소 작가,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네덜란드 레이던대 북한학 초빙교수 역임. 現 뉴포커스 발행인 겸 대표 / 저서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김정일의 마지막 여자》 《시를 품고 강을 넘다》 《경애하는 지도자에게》 《수령연기자 김정은》 등
“석방 대상자를 호명하는데, 나가는 사람이 다리가 없어서 기어서 나가고…. 당사자가 이미 죽어서 연좌제로 함께 끌려온 가족만 남아 있고. 이런 것들이….”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부여잡더니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어느새 붉어진 눈시울…. 신간 장편소설 《캠프 15》를 펴낸 장진성(張陳城·54) 작가의 얘기다.
 
  수많은 노역을 통해 거친 돌덩이가 전부 둥글게 변한 곳. 15호 수용소로 통하는 함경남도 소재 요덕 수용소. 하지만 장 작가는 북한 대부분의 곳이 요덕의 안팎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줄거리는 픽션이지만 등장인물과 시스템은 다큐멘터리다. 오히려 이곳에서 자행되는 인권 유린과 노역, 범죄에 관한 묘사는 현실보다 수위를 낮췄다. 요덕 수용소를 탈출한 사람들의 증언과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로부터 얻은 요덕 수용소 생존자 명단을 바탕으로 스토리 라인을 구성했다. 가미된 픽션은 애써 따뜻한 위로로 채웠다. ‘악랄한 보위원(간수)과 불쌍한 죄수’라는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니다. 등장인물들 각자가 가진 고민과 갈등을 입체적으로 그려내 그 체제를 지탱하는 원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초판 1쇄가 발간된 9월 9일 장 작가를 서울 사당역 인근에서 만났다.
 
 
  “실제는 더 끔찍해요”
 
  이야기는 16세 도성진을 주인공으로 시작된다. 정치범으로 요덕 수용소에 끌려온 도성진은 그곳에서 다양한 ‘죄수’들을 만난다. 도성진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결국 하나하나 죽어간다. 한 장(章)에 한 명씩. 총살당하거나, 힘든 노역 끝에 병사(病死)하거나,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자살하기도 한다. 연좌제가 남아 있는 북한에선 정치범을 ‘장본인’이라고 하고 함께 수용된 장본인의 가족들을 ‘가족 세대’라고 부른다.
 
  ― 이번 소설을 쓴 계기가 있나요.
 
  “북한을 다룬 문학은 전무하다시피 해요. 한국 작가들은 경험을 못 해봤으니 상상만으로는 부족하죠. 탈북자들이 직접 글을 쓰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대신 써주는 경우가 많아요. 탈북자 본인이 썼다고 해도 그걸 담는 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북한 관련 문학이 전 세계적으로 전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펜을 들게 됐습니다.”
 

  ― 주인공 도성진이 옥수수 알갱이 몇 개를 주워 먹으려 흙을 파헤치는 등 비참한 장면과 범죄의 묘사가 책에 등장하는데, 과장은 없었나요?
 
  “실제는 더 끔찍해요. 그걸 다 표현하게 되면 문학이 될 수 없을 만큼. 그래서 한국과 전 세계 독자들에게 보여주려면 그에 맞는 문화적 표현으로 스토리텔링을 해야 합니다. 오히려 현실보다 (적나라한 묘사를) 절제하고 감면했죠.”
 
 
  “보위원도 수용소에 갇힌 셈”
 
요덕 수용소의 위치. 사진=조선DB
  사실 요덕 수용소는 정치범, 한국으로 치면 ‘범털(돈이 많고 지적 수준이 높은 죄수를 이르는 은어)’들이 수용되는 곳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수용자들도 국가보위부 부부장의 아들, 외교관 자녀, 유엔개발계획(UNDP) 북한 사무관, 심지어 현직 당 부주석 등이다. 하지만 이들도 여느 북한의 수용자들처럼 끼니를 굶는 건 예사고 고된 노역도 해야 한다.
 
  ― 부주석으로 등장하는 김동규라는 인물은 실제 존재한 인물인가요.
 
  “맞아요. 실존 인물이에요. (소설에 나온 대로) 그렇게 살다 갔어요.”
 
  ― 어디까지가 실제고, 어디까지가 픽션인가요.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 대부분 실존 인물이죠. UNDP 사무관도 실존 인물이고요. 요덕 수용소 수용자들의 명단은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에게서 받았어요.”
 
  ― 소설이지만 실제에 가깝네요.
 
  “그렇죠. 그리고 수용소 보위원들도 사실상 수용소 시스템에 갇힌 사람들이에요. 그 질서에 갇힌 사람들도 조명했어요. 보위원, 경비대, 그들의 가족 등을 영국이나 미국에 가서 취재했죠.”
 
  ― 기쁨조 선발 과정도 실제와 같나요.
 
  “네. 사실입니다.”
 
  ― 파란 눈을 가진 혼혈 수감자도 실존 인물인가요.
 
  “그럼요. 아직 북한에 있고요, 북한의 ‘씨받이 공작’이 얼마나 비참한지 얘기하고자 했어요. 이 책 5장에 나온 씨받이 전략은 임신 공작이에요. 외국으로 북한 여자들을 내보내서 임신시키고, 그렇게 낳은 아기들을 외국 간첩으로 보내기 위해서 관리하는 거죠.”
 
  ― 상상 이상이네요.
 
  “책을 쓰면서 개인의 일탈이 아닌 시스템을 통한 인권 유린을 말하고자 했어요. 하지만 있는 그대로 어둡고 암울하고 슬픈 내용만 이어지면 읽기가 힘들죠. 그래서 캐릭터 중심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살렸어요.”
 
  가장 중요한 주인공 도성진의 모티프가 된 사람이 누구인지를 묻자 장 작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나지막이 “그 사람의 개인적인 일이니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 또 어떤 등장인물이 유명한 실존 인물인가요.
 
  “별명이 ‘검은손’인 수용자. 그 사람은 북한의 유명 축구선수였던 박승진(朴承振·1941~2011년)이에요. ‘도련님’으로 불리는 수용자는 리종옥(李鍾玉·1916~1999년) 부주석의 아들인 실존 인물이고요.”
 
 
  기약 없는 刑期
 
  ― 아들을 신고해서 수용소로 보낸 당 간부도 등장하는데, 이러한 작동 체계와 시스템도 전혀 허구가 아닌가요.
 
  “네. 들어가면 연좌제로 함께 끌려온 아들을 장본인인 아빠와 벽을 사이에 두고 갈라놔요. 그러고 장본인이 죽어야 가족을 내보냅니다. 얼마나 독하고 악랄한가요. 아버지와 아들을 같은 곳에서 서로 못 보게 하고요. 서로를 밀고하고 감시하는 요덕 밖의 북한 체제와 똑같습니다.”
 
  ― 책을 보면 수용자들의 형기(刑期)도 안 알려준 채 김정일의 생일인 매년 2월 16일마다 수용자들을 모아놓고 석방 대상자를 부르던데, 실제로도 그런가요.
 
  “그 안에서 ‘혁명화’가 잘된 사람에 대한 평정서(評定書)를 올리고 수뇌부에서 이 ‘혁명화’가 잘됐다고 판단하면 내보내는 식이죠.”
 
  ― 평가 기준이라는 게 있을 수 있습니까.
 
  “사실 애초에 수용될 때부터 ‘이 사람은 몇 년쯤 가둬놔야겠다’는 내부적인 판단은 이미 있죠. 하지만 문제는 그마저도 알려주지 않는 거죠. 1년이 될 수도 있고, 10년이 될 수도 있고, 한평생이 될 수도 있어요. 이걸 모른 채 계속 그곳에서 살아야 해요. 이게 정말 큰 고통인 거죠. 사람의 심리를 조종하고 무너뜨리는 방법이에요.”
 

  ― 매년 2월 16일 김정일의 생일에 당사자와 가족 세대 수용자들을 모아놓고 석방자를 발표하는 묘사가 머릿속에 그려지네요.
 
  “수용 해제 명단을 발표하는 그 장면….”
 
  장 작가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곤 서두에서 언급한 반응을 보였다.
 
  ― 당사자가 죽어야 가족 세대가 풀려난다면, 가족이 죽길 바라는 비인간적 상황도 벌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얼마나 잔인하고 악랄하냐고. 나도 북한에서 살아봤잖아요. 끝까지 고통을 줍니다.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요. 북한의 선전·선동 방송을 보세요. 《로동신문》 성명도 그렇고, 발표할 때 쓰는 단어들이 얼마나 독하고 상스럽습니까. 제가 북한에서 선전·선동 담당 기관에 있었을 때 윗사람으로부터 ‘더 자극적인 말 없어?’라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승냥이들의 심장을, 창자를 어떻게 어떻게…. 그 성명을 보면 북한의 인권 유린 실태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북한 사회는 확장된 요덕 수용소예요.”
 
 
  “左右 정권 안 믿는다”
 
  ― 이재명 정부 이후 달라진 대북 정책 기조는 어떻게 보나요.
 
  “대한민국은 국가잖아요. 지향하는 가치가 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인권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데,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면 정권 공백이나 마찬가지죠. 일관된 자세가 필요하다고 봐요. 이분법적으로 유화, 강경으로 각각 나뉘어선 안 된다고 봐요. 인권이라는 가치를 생각했을 때 아쉬운 면이 있죠.”
 
  ― 지금 국제사회에서 바라보는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 추이, 경향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한국 정부의 태도를 따라가는 것 같아요. 세계 추세는 저희가 하기 나름이라는 말입니다. 한반도에 대한 주인의식을 대한민국이 아니면 누가 가집니까. 한국이 먼저 얘기를 꺼내지 않으면 방관시되는 게 북한 인권이에요. 그런데 보수 정부 들어설 땐 잠깐 북한 인권 문제가 ‘반짝’하다가 진보 정부 들어와선 금기어처럼 되고, 이게 안타깝습니다. 우파든 좌파든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 자체를 안 믿게 됐어요. 일관적인 정책을 내가 보지 못했어요. 우파 정부에서도 그래요. 상징적인 선언만 했습니다. 실질적인 노력은 없었어요.”⊙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