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짝퉁’ 헬로키티와 코카콜라, 그리고 삼양라면… 北의 이중성
⊙ 카스텔라에 적힌 ‘두뇌 발달 촉진’ ‘당뇨·노화예방’ 문구… ‘ISO 인증’ 표식
⊙ 경북 영덕까지 떠내려오는 北 쓰레기… 10개 중 9개가 평양산
⊙ 다 해져 꿰맨 아이의 샌들, 이름 새긴 칫솔·페트병도 떠내려와
⊙ 지뢰밭·출입금지구역·전쟁통 러시아 다니는 이유? “현장에 답 있다”
⊙ 일상에서 통일 접해야… 5년 내 북한 쓰레기 박물관 건립 목표
⊙ 카스텔라에 적힌 ‘두뇌 발달 촉진’ ‘당뇨·노화예방’ 문구… ‘ISO 인증’ 표식
⊙ 경북 영덕까지 떠내려오는 北 쓰레기… 10개 중 9개가 평양산
⊙ 다 해져 꿰맨 아이의 샌들, 이름 새긴 칫솔·페트병도 떠내려와
⊙ 지뢰밭·출입금지구역·전쟁통 러시아 다니는 이유? “현장에 답 있다”
⊙ 일상에서 통일 접해야… 5년 내 북한 쓰레기 박물관 건립 목표

- 국내 유일 ‘북한 쓰레기’를 연구 중인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이를 통해 북한의 사회상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사진=본인
강동완(姜東完·50) 동아대 교수(동아대 하나센터장)는 매년 11월이 되면 서해 5도(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로 향하는 승선권을 산다. 이듬해 4월, 파도가 잦아들 때까지 부산과 인천을 수십 차례 오간다. 이유는 하나, 북한 쓰레기를 줍기 위해서다.
주워서 뭘 하느냐고? 수집하고, 분석한다. 이를 통해 북한의 사회상을 읽는다. 누군가 버린 물건이 강 교수에겐 ‘떠내려온 증언’인 셈이다. 지난 7월 31일, 남풍(南風)이 부는 여름철엔 바다 대신 육지에서 지낸다는 그를 만나봤다.
“북한이 어느 공장에서 어떤 제품을 생산하는지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이런 제품을 만들었다’고 선전(宣傳)만 할 뿐, 생산지나 원료 구성은 공개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의외로 쓰레기가 그런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거기에 주민의 흔적까지 묻어 있어요. 그들의 삶과 북한 사회를 보여주는 중요한 연구 도구인 거죠.”
― 가장 먼저 발견한 쓰레기는 뭡니까.
“북한 소주병이었습니다. 백령도 해안에 사진 촬영을 갔다가 발견했죠. 처음엔 ‘이게 왜 여기 있지?’ 싶었는데, 곧 조류를 따라 떠밀려온 걸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서해 5도 전역에 북한 쓰레기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2020년 가을 무렵부터 5개 섬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햇수로 6년간 서해 5도에서만 쓰레기 1500점을 수집했다. 지난 2021년 11월에는 그때까지 주운 것들을 묶어 《서해 5도에서 북한 쓰레기를 줍다》라는 책을 펴냈다. 장장 448쪽에 걸쳐 식료품, 주류, 담배, 잡화, 의약품 등 다양한 쓰레기를 사진과 함께 실었다.
줍고 보면 십중팔구 평양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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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안과 동해안에서 떠내려온 북한 쓰레기들. 현재까지 약 5000점을 수집해 연구실 한편에 모아뒀다. 사진=강동완 |
이를 바탕으로 논문도 여럿 발표했다. 〈북한 상품의 현황과 특징: 서해 5도 지역에서 수거한 생활 쓰레기 중 상품 포장지 분석을 중심으로〉(2021), 〈북한 일용품 포장지를 통해 본 북한 사회: 개별 일용품 특징과 정치·경제·사회적 함의를 중심으로〉(2022), 〈동해안에 유입된 북한 생활 쓰레기 현황과 특징: 북한 상품 포장재 분석을 중심으로〉(2023) 등이 있다.
― 서해와 동해에서 수거한 쓰레기의 차이점이 있습니까.
“지역별로만 나오는 쓰레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해의 해주(海州)에서 생산한 아이스크림 껍데기는 동해안에서는 볼 수 없고, 청진(淸津) 공장 제품은 서해안에 없습니다. 그 지역에서만 유통되기 때문이죠. 반면, 어디서나 발견되는 것도 있습니다. 북한은 상표법에 따라 포장지에 공장명과 원료를 표시하는 ‘국규(국가규격)’를 적용합니다. 이를 보면 쓰레기 10개 중 9개가 평양산(産)이에요. 이 중 식료품의 경우 대부분이 ‘오일종합가공공장’ 제품입니다. 라면, 아이스크림, 주스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곳인데 김정은이 현지 지도한 전략 공장이죠. 계획경제 특성상 한정된 원료를 이 공장에 집중 공급하기 때문에 이 공장 제품은 특히 동·서해 모두에서 자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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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견되는 제품의 십중팔구는 평양산이다. 사진은 평양의 ‘정성제약종합공장’에서 나온 링거팩. 사진=강동완 |
“가령 떠내려온 링거팩의 경우 ‘정성제약종합공장’에서 나온 제품이 있습니다. 평양 소재 의약품 생산 공장인데, 2000년대 중반 한국 NGO의 지원으로 건립된 곳입니다. 역시 김정은이 여러 번 방문한 곳이죠. 저도 준공식 때 다녀왔는데, 여기서 나온 링거팩은 한국산과 비슷합니다. 품질이 좋아요.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것은 품질이 현저히 떨어져요. 링거팩뿐만 아니라 평양산이 아닌 제품은 그게 뭐든 굉장히 조악해요. 청진의 포항(浦港) 구역에서 나온 빵 같은 경우 포장지만 봐도 우리나라 70년대 느낌이 들죠. 다만 제 연구는 완제품이 아닌 포장지를 통해서 보기 때문에 실제 위생 상태나 영양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韓 디자인 버젓이 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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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을 비롯한 해외 캐릭터를 카피한 제품이 왕왕 눈에 띈다. 사진 왼쪽은 삼양라면 소고기면(아래)을 모방한 북한의 즉석국수들. 오른쪽은 ‘짝퉁’ 헬로키티가 그려진 사탕 봉지. 사진=강동완 |
“막대 아이스크림(에스키모)을 보시면, 대추맛, 호두즙맛 등 종류가 상당히 많죠. 우유도 귤맛, 포도맛, 파인애플맛, 참외맛 등 한국보다 많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걸 보고 ‘북한이 잘사는구나’라고 생각하지만, 핵을 만드는 독재국가에서 아이스크림 맛이 다양하다고 잘산다고 하긴 앞뒤가 안 맞죠. 게다가 이건 개혁·개방의 산물이 아니라 전부 오일종합가공공장에서 김정은 지시로 만든 겁니다. 김정은이 육아 정책을 강조하니 어린이용 제품은 잘 만들 수밖에 없고, 그래서 동·서해 어디서든 이 포장지가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겁니다. 결국 이 포장지 자체가 선전의 표본인 셈이죠.”
― 북한에 어린이가 많다는 뜻으로 봐야 합니까.
“아이들이 먹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서해와 동해는 국경 연선(沿線) 지역입니다. 이 아이스크림 일부는 군대에 보급되기도 합니다. 생산을 하는 것과 소비 주체는 전혀 다른 문제죠.”
― 제품 디자인도 생각보다 다양하군요.
“북한은 산업디자인을 꽤 강조합니다. 보다 보면 한국 제품을 모방한 사례가 많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신라면, 초코파이, 바나나킥, 삼양라면 등과 유사한 캐릭터가 그대로 쓰이죠. 삼양라면 소고기면의 소 캐릭터는 거의 복사 수준입니다. 이 외 유통되는 생활 제품에는 디즈니 캐릭터나 헬로키티도 들어가 있어요. 헬로키티는 원래 눈이 검은데, 딸기향이 들어갔다며 눈을 빨갛게 그려놨습니다. 직관적인 발상이죠.”
북한의 ‘코카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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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카콜라를 카피한 라벨 모습. ‘ISO 22000 식품안전관리체계 인증을 받았습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사진=강동완 |
“신라면을 비롯해 여러 한국 제품이 북한 장마당을 통해 유통되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니까요. 자연스럽게 친숙해진 결과라고 봅니다.”
― 당 차원에서 그걸 허용합니까.
“북한의 이중성이 드러나는 지점이죠. 어떤 제품에는 ‘ISO 세계표준기구 인증을 받았다’는 표시가 붙어 있기도 해요.”
― 그런 걸 받았을 리가 없잖아요.
“그렇죠. 지난 2023년 1월 서해안에서는 심지어 ‘코카콜라’ 라벨도 주웠습니다. 북한이 그동안 콜라를 ‘코코아향 탄산단물’이라 표기한 적은 있어도 이번처럼 ‘코카콜라’라고 쓴 건 처음이에요. 원산의 ‘송도원식료공장’에서 생산한 300ml짜리 제품이었는데, 빨간색 바탕에 흰 글씨의 디자인도 똑같아요. 거기에도 ‘(ISO 22000) 식품안전관리체계 인증을 받았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 영락없이 겉과 속이 다른 북한의 두 얼굴을 대변하는 거죠.
북한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원료를 배분하는 계획경제 체제라, 일부 평양 공장을 제외하면 원료 공급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기업체 책임자가 중국에서 직접 원료를 구해오는 ‘자율책임제’가 도입됐지만, 이는 할당된 물건을 만들어 상부에 제출하기 위한 제한적 자율성일 뿐입니다. 생산품 판매 과정에서 포장·디자인 등을 자체 판단하더라도, 근본 구조가 국가에 보고하고 물자를 바치는 방식이라 우리가 말하는 자유로운 시장으로 보긴 어려워요. 위에서는 여전히 억압하지만, 아래에서 장마당과 시장경제 요소가 확산되면서 체제를 흔들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다 해진 ‘영리한 너구리’ 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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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리한 너구리’가 새겨진 어린아이의 샌들. 다 해져 여기저기를 기워놨다. 사진=강동완 |
“북서풍이 불면 파도가 굉장히 세집니다. 보통 4~5m 정도 되는데, 격랑이 지나간 뒤에 쓰레기가 많이 쌓입니다. 그래서 그 시기에는 늘 날씨 예보를 봐요. 파도가 높게 쳐 배가 결항된 직후 날이 풀리자마자 들어가면 정말 많이 떠내려와 있어요. 때를 못 맞추면 일주일씩 섬에 갇히기도 합니다.”
― 오는 겨울에도 섬으로 갈 겁니까.
“갈 때마다 새로워서 안 갈 수가 없습니다. 오늘 주워도, 내일 가면 또 다른 쓰레기가 떠내려와 있어요. 시기마다 쓰레기의 종류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예컨대 코로나19 시기에는 소독약을 많이 주웠어요. 한국과 달리 액체가 아니라 고체 이산화염소를 쓰더군요. 그때 마스크 포장지도 처음 봤습니다. 국규를 보니 코로나19 시기 때 처음 제정됐더군요. 그 전까지는 마스크 규격 자체가 없었다는 의미예요.”
― 수많은 쓰레기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요.
“‘영리한 너구리’가 새겨진 신발이 있었습니다. 남색의 어린아이 샌들인데, 그 두꺼운 신발이 사방으로 다 뜯어져서 실로 일일이 꿰매놨더군요. 우리는 아무리 어려워도 신발을 기워 신지는 않지 않습니까. 어떤 탈북민이 그 사진을 보더니 ‘탈북하지 않았더라면 내 아이도 이런 신발을 신었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참고로 ‘영리한 너구리(령리한 너구리)’는 1987년부터 방영된 대표적인 북한 과학 교육 만화영화의 주인공 캐릭터다. 북한에서 ‘토종’의 상징으로, 외국 만화영화 캐릭터에 대응하는 나라 인식·자립정신의 홍보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치약·칫솔도 많이 떠내려오는데, 치약은 속까지 긁어 쓰느라 하나같이 밑동이 잘려 있고, 칫솔은 심하게 마모돼 있어요. 이름이 쓰여 있는 경우도 있고요. 심지어 페트병 뚜껑에다 자기 이름을 적어놓은 경우도 있었어요. 그런 다음에 그걸 헝겊으로 고이 싸놨더군요. 페트병을 여러 개 묶어서 부표(浮漂)로 썼던 게 떠내려오기도 합니다. 한국 해안 쓰레기 중 제일 많은 게 부표인데, 북한에서는 페트병을 재활용하는 거죠.”
국내 유일 北 쓰레기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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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해수욕장에는 북한 쓰레기가 쌓이지 않아, 군인들이 철책을 열어줘야 하는 구역에 들어가 쓰레기를 줍는다. 그래서 지뢰의 위험도 있다. 사진=강동완 |
“부산에는 없고, 경북 영덕까지는 내려오더군요.”
― 너무 멀리까지 오는데요. 북한에서 삐라나 오물을 띄워 보내기도 하는데, 우리 군은 왜 최북단에서 수거하지 않는 겁니까.
“군(軍)이 1년에 한두 번 청소를 하긴 하지만, 북쪽 접경 해안은 지뢰지대가 많다 보니, 상시 군인들을 동원해 치우기에는 위험 부담이 있죠. 사고 나면 책임도 져야 하고요. 솔직히 양도 너무 많습니다.”
― 지뢰 위험을 무릅쓰고 쓰레기를 줍는 겁니까.
“군이 순찰용으로 만들어놓은 길이 있어서 그 경로 위주로 다닙니다. 그 경로 외 지역에 쓰레기가 너무 많이 쌓여 있으면 가끔 조심스럽게 들어가서 줍기도 하죠.”
― 조심한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래도 그냥 갑니다.”
― 동행자가 있습니까.
“혼자 갑니다. 사람들이 조교에게 시키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같이 갈 수 있는 상황도 안 되고 무엇보다 위험해서요.”
― 온갖 쓰레기를 다 줍는데 질병 감염 걱정은 안 듭니까.
“주변 분들이 그런 걱정을 하며 장갑을 끼고 작업하라고 하는데, 장갑을 끼면 작업이 굉장히 불편합니다. 일일이 사진을 찍고, 기록도 해야 하니까요. 물론 집게는 쓰지만, 그건 허리가 아파서고요.”
― 섬에 단골집도 생겼겠습니다.
“늘 가는 숙소가 있어요. 연평도에서 우체국장을 하셨던 분이 운영하는 곳인데, 그분이 연평도 포격 때도 현장에 계셨어요. 연평도에 대해선 그분보다 잘 아는 분이 없어요. 처음 갔을 때부터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 북한 쓰레기를 연구하는 학자가 또 있습니까.
“국내에는 없습니다. 해외에는 일본에 한 명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학자는 아니고, 신문사 기자예요. 그분이 어떤 쓰레기를 줍고 제게 자문을 구한 적이 있습니다. 내년 겨울 일본 현장에 함께 갈 계획입니다.”
‘평양 밖 북한을 보라’
해외에선 일찍이 그를 주목해 왔다. 영국 BBC와 일본 NHK를 비롯해 미국, 프랑스의 주요 언론사에서 그가 쓰레기를 줍는 현장을 동행 취재해 갔다. NHK는 시청자 반응이 좋다며 두 차례나 다녀갔다.
10여 년 전 강 교수는 평양을 오가며 북한을 연구했다. 더 이상 북한에 못 가게 되자 중국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의 첫 연구 분야는 북한 내부의 한류(韓流)였다. 2011년 펴낸 《한류, 북한을 흔들다》는 북한 내 한류 열풍을 본격적으로 다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4년 뒤에는 《사람과 사람》을 펴냈다. 국내 최초로 김정은 집권기 북한 주민 100명을 직접 만나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응답과 증언을 통해 북한의 생활상, 통일 의식, 대남 인식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그러다 2016년, 동아대 하나센터장으로 부임했고 수많은 탈북민을 만나며, 북한 인권 문제를 맞닥뜨리게 됐다. 그길로 중국을 오가며 탈북 여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봤다. 2018년 인신매매 피해 여성들의 실태를 고발한 《엄마의 엄마》를 썼다. 한편 남성 탈북민들의 경우 러시아에서 해외 노동자로 일하는 사례가 많았다. 러시아로 건너간 이들의 인터뷰는 《러시아에서 분단을 만났습니다》(2019)에 담았다.
중국 현지에서 탈북 여성을 찾아다니다 보니, 자연히 북중(北中) 접경지를 계속 가게 됐다. 그곳에서 보이는 북한을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북중 접경지에서 본 북한 주민의 모습은 평양과는 너무 달랐다”고 했다. 망원렌즈와 고가 장비를 들고 평양 밖 주민들의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 또한 인권 연구의 연장이었다.
그 기록은 《평양 밖 북조선》(2018), 《그들만의 평양》(2019), 《평양 882.6km》(2020)에 고스란히 남겼다. 제목이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평양 밖의 북한을 보라.’ 첫 책이 세상에 나온 건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무렵이었다. 세간의 시선이 ‘평양’에만 쏠리고, 북한이 ‘잘산다’는 이미지가 퍼지던 때였다. 강 교수는 “이를 세상에 알리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땐 늘 ‘중국 국경수비대의 눈을 가려 달라’고 기도하며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中서 추방 후 쓰레기 연구 시작
― 이제 중국은 안 갑니까.
“추방당해서 갈 수가 없습니다.”
― 언제요?
“지난 2019년 11월, 코로나19 시기 직전이었어요. 국경 지대에서 촬영하니 늘 대비는 했습니다. 크고 작은 조짐은 계속 있었어요. 어느 날 검문소에서 여권을 주자 ‘당신은 중국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인데 왜 여기 있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외려 큰소리를 쳤죠. ‘그렇다면 공항에서 막았어야지, 여기서 잡아두면 대사관에 문제 제기하겠다’고요. 또 한 번은 신고를 받고 나왔다며 ‘목적이 뭐냐, 숙소가 어디냐’고 물었고, 숙소를 수색하기까지 했습니다. 다행히 그날 카메라는 일행이 갖고 있었죠. 당시만 해도 반(反)간첩법 강화 전이라 무작위로 엮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결국 마지막 방문 때 쌓였던 게 터진 거죠.”
― 어떻게 추방됐습니까.
“상하이 공항 착륙 30분 전, 승무원이 절 찾았습니다. 당국에서 연락이 왔다며, 비행기에서 가장 먼저 내리도록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겁니다. 기내 맨 앞으로 불려 나갔죠. 게이트가 열리자 중국 공안 두 명이 제 여권 복사본을 내밀며 ‘당신 맞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하니 곧바로 연행했습니다.”
― 그러고 나서요.
“휴대폰을 압수당해 대사관과 연락도 못 했습니다. 입도 열지 못하게 하면서 ‘무조건 추방’이라고 했습니다. 화장실에 가겠다 하니 소변기 옆까지 따라붙더군요. 2시간 남짓이었지만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게이트 앞에 서면 ‘또 잡혀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 일 이후로 탈북민들이 정말 위대하다 여기게 됐습니다. 추방도 이렇게 공포스러운데, 그들은 목숨을 걸고 탈북하는 거잖아요. 그 심정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 이제 중국은 영영 못 가는 겁니까.
“다들 가지 말라고 하는데, 저는 당장에라도 다시 가서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물론 입국 거부를 당할 수는 있겠죠. 추방되는 건 괜찮은데, 체포되는 건 좀 두렵긴 해요. 지금 정부가 저를 빼내줄 가능성은 낮으니까요.”
‘현장에 답이 있다’
― 중국 추방을 계기(?)로 서해 5도로 발을 돌리게 된 거군요.
“북중 접경지를 못 간다면, 어디를 가야 북한을 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백령도부터 가게 된 거죠. 물론 육지에도 전망대가 있으니 거기서도 북한을 볼 수는 있죠. 그런데 연평도나 백령도처럼 북한과 더 가까운 곳에 가면, 뭔가 다른 풍경이 보이지 않을까 싶었고, 특히 백령도는 한반도 최서단이잖아요. 조국의 끝자락을 한 번 꼭 밟아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거기서 우연히 북한 소주병을 보게 된 거예요.”
― 문득 궁금한 게, 러시아로도 북한 쓰레기가 갈까요?
“갑니다. 3년 전쯤 러시아에서도 북한 쓰레기를 주운 적이 있어요. 연해주(沿海州) 최남단 ‘하산(Khasan)’이라는 북한 접경 지역에서죠. NGO 활동에 관심이 많은 러시아 현지분이 저를 돕고 싶다고 연락을 해와서 함께 가게 된 거였어요. 그때도 출입금지 지역에 들어갔다가 러시아 국경수비대에 잡혀 3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죠. 중국에서의 악몽이 떠오르더군요.”
― 지뢰밭뿐만 아니라 출입금지 지역까지 들어갔군요. 북한을 연구할 수 있는 방식은 다양할 텐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제가 책상에 앉아서 하는 공부를 잘 못 합니다. 어떤 이론을 적용해 북한을 보는 연구는 적성에 맞질 않아요. 발로 뛰는 걸 좋아하고, 실제로 현장에 가면 답이 있기도 하고요. ‘북한에서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본다, 중국 내 탈북 여성들의 인신매매가 이뤄진다’는 말만 듣고 그칠 게 아니라 직접 확인해 본 거죠. 두 달 전에도 러시아를 다녀왔는데, 사람들은 전쟁 와중에 뭐 볼 게 있겠느냐고 했지만 전쟁 중 북한 노동자들의 양태를 확인하러 간 거예요. 이렇게 현장을 가보면 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北 제대로 알면 좌파 될 수 없어”
― 언제부터 북한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학창 시절 교회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하라’는 기도를 받았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분단 현실에 문제의식을 갖게 됐어요. 한때는 ‘대학 가면 전대협 의장을 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그게 정의로운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북한을 제대로 알게 되니, 절대 좌파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지금의 좌파들은 이걸 알면서도 북한 체제를 옹호하니 정말 나쁜 거예요.”
―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어떻게 봅니까.
“집권하자마자 대북 확성기·방송 중단, 대북 전단 금지, 개별 관광 허용 같은 북한에 유리한 조치를 내놨죠. 김여정은 그걸 ‘성의 있는 노력’이라며 통일부 해체, 한미군사훈련 중단 같은 더 큰 양보를 요구했고요. 담화가 나온 지 9시간 만에 정부는 또 한미군사훈련 조정 검토를 밝히는 등 조급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정치적 퍼포먼스에 치중하다 보니, 북한 인권·대북 정보 유입·탈북민·통일 같은 근본 가치는 빠져 있는 거죠. 이 네 가지가 빠진 대북 정책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 통일을 해야 합니까.
“요즘 북한학에서도 ‘왜 통일을 이야기하느냐’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저는 통일을 말하지 않을 거면 북한학을 왜 배우느냐는 입장입니다. 북한을 학문적으로만 접근하면 ‘북한엔 주체사상이 있다’ 정도만 남아요. 그걸 배워서 뭘 합니까. 북한학은 북한을 제대로 알기 위한 도구, 통일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하나의 독립국가가 아니라 우리 조국의 반쪽이고요.”
‘통일덕후’
그는 ‘통일덕후’로도 불린다. ‘대학교수’보다 그 호칭이 더 좋다고 했다.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명은 ‘통생통사’다. ‘통일만 생각하고 통일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통일·북한 관련 책 99권을 쓰는 것이 목표다. 마지막 100번째 책은 자서전으로, 저자 사인은 “통일 조국을 위해 작은 노둣돌 하나 놓은 사람”으로 남기고 싶다고 했다. 제3국 출신 탈북민 자녀를 위한 돌봄학교와 통일문화센터 건립도 꿈꾼다.
― 젊은 세대들은 분단 체제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데요.
“MZ 세대 같은 청년층은 경제적 이득 이야기로는 통일 설득이 안 됩니다. 북한 지하자원, 유라시아 철도, 관광 산업에 따른 국익을 얘기해도… 집도 못 사고 결혼도 포기한 세대에겐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죠. 오히려 친구가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듯, 북한 주민이 아플 때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식의 감성적인 접근이 효과적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말하는 ‘경제 수준 맞추고 여건 되면 통일하자’는 건 물에 빠진 사람 놔두고 수영 배우러 가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김정은 정권이 존재하는 한 ‘평화 공존’은 애초에 불가능한데, 정부는 마치 ‘전쟁할래, 평화할래’ 식으로 통일 담론을 몰고 갑니다. 북한 주민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평화롭지 않아요. 이런 상황에서 대북 전단 살포나 북한 인권 문제 제기를 전쟁 프레임으로 묶는 건 말이 안 되는 건데, 우리는 그 프레임에 갇혀 있죠.”
― 북한 쓰레기 연구는 통일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그 반쪽 땅에 우리 조국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업인 거죠. 그들이 어떤 고통 속에 살고, 어떤 삶의 흔적을 남기는지 잊지 않게 하는 겁니다.”
5년 내 박물관 건립 목표
― 5000점의 쓰레기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일일이 세척해 말린 뒤 제 연구실에 모아두고 있습니다. 향후 북한 쓰레기 박물관을 지어 전시할 예정입니다. 박물관 건립 또한 일상 가운데에서 통일을 이야기하자는 차원이에요. 굳이 접경지 전망대에 가지 않고도 내 주변에서도 통일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 일환으로 분단 현실을 늘 체감하게 하는 공공 디자인이 생활 곳곳에 필요하다고 강조하는데, 가령 도로교통법상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횡단보도 양쪽에 백두산과 한라산을 그려놓으면, 그 자체가 생활 속 통일 교육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그리는 한국 지도엔 북한이 빠져 있고, 정부기관에서 제작한 둘레길 자료에도 반쪽짜리 지도가 쓰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나라 지도를 그리라고 하면 반쪽 지도를 그려요.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이 통일을 생각하기는 어렵겠죠.”
― 박물관은 어디에 세울 생각입니까.
“부산으로 생각 중입니다. 관광 인프라가 있어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찾는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6·25 전쟁 당시 마지막 보루였던 상징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피란은 부산까지 밀려 내려왔지만, 통일은 반대로 위로 밀고 올라간다는 의미도 담을 수 있고요.”
― 그 박물관은 언제쯤 가볼 수 있을까요.
“5년 내에는 꼭 이루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