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북민 교육’에서 ‘고려인 교육’으로 영역 확대… 카라칼팍스탄 자치공화국과 교육 계약
⊙ “봉사는 남몰래 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알려서 많은 사람 동참토록 해야”
⊙ 선친 백봉 라용균 선생 뜻 이어받기 위해 재단 설립
羅鍾億
고려대 생명과학대 졸업 / 순천향대 명예교수 및 명예 정치학 박사, 카자흐스탄 국립예술원 명예박사,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기묘국제대학 명예교수. 現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 심양·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통일과나눔아카데미 운영, 북한연구학회 명예고문,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 대통령표창 / 저서 《라종억의 청풍소언》 《왼손과 오른손의 대화》 《북조선 환향녀》 《1인치의 장벽을 넘어서》 등
⊙ “봉사는 남몰래 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알려서 많은 사람 동참토록 해야”
⊙ 선친 백봉 라용균 선생 뜻 이어받기 위해 재단 설립
羅鍾億
고려대 생명과학대 졸업 / 순천향대 명예교수 및 명예 정치학 박사, 카자흐스탄 국립예술원 명예박사,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기묘국제대학 명예교수. 現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 심양·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통일과나눔아카데미 운영, 북한연구학회 명예고문,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 대통령표창 / 저서 《라종억의 청풍소언》 《왼손과 오른손의 대화》 《북조선 환향녀》 《1인치의 장벽을 넘어서》 등
한국인에게 낯선 카라칼팍스탄 자치공화국 정부는 지난 6월 25일에 한국 통일문화연구원의 교육실장인 전대근 HY교육 대표와 양국 교육 협력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어떤 사연이 두 나라의 교류를 열었는지, 통일문화연구원의 라종억(羅鍾億) 이사장을 지난 6월 30일에 만나 사연을 들어 봤다.
“카라칼팍스탄 청년들, 한국 대학생으로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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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우즈베키스탄 ‘통일과나눔아카데미’ 5기 수료식에서. |
“이 자치공화국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의 통일과나눔아카데미와 의료 봉사, 장애인 봉사를 하게 된 것이 계기였습니다. 꽤 많은 고려인이 여기 거주하고 있거든요. 고려인은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분명한 조선인의 후손입니다. 소련이 붕괴하기 이전엔 한국계 소련인이었고, 우리와 정체성이 흡사합니다. 카라칼팍스탄의 고려인들에게 한국어 가르치기 운동을 시작하면서 애정을 갖게 됐습니다.”
― 카라칼팍스탄의 국민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아나요?
“저희가 카라칼팍스탄의 수도 누쿠스에 ‘세종학당’을 만들 계획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고, 고려인과 현지인에게 한국어 교육과 문화 보급을 하고 있습니다. 식습관과 생활문화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는데요, 우리나라의 1960년대와 아주 흡사합니다.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교육열이 굉장히 뛰어납니다. 모국어는 우즈베크어이지만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의가 굉장하며, 드라마 ‘겨울연가’의 노래가 계속 나올 정도로 한국에 친화적입니다. 내년에는 이들 중 우수한 젊은이들을 한국으로 데려와 국내 대학에서 공부하고 취업까지 하게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카라칼팍스탄 청년들이 우리나라에 오는 건가요?
“이번 7월에 한국어로 일상생활이 가능한 32명의 학생이 국내에 들어와 동서대, 신라대, 경기대 등 4년제 대학에 입학할 예정입니다. 카라칼팍스탄 정부는 현지 학생(특히 고려인)의 한국 대학 진학을 공식적으로 지원하며 비자 발급, 금융 지원, 입학 보증 등 전(全) 과정을 공화국 차원에서 협력할 예정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일문화연구원과 연계한 HY교육이 학생 모집에서 국내 대학 정착, 취업까지의 과정을 담당합니다. 앞으로 매년 500명의 학생을 데려올 예정입니다.”
―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해외의 정부와 공식적으로 연계된 교육 프로그램으로 한국 대학 진학 및 취업을 연계하는 첫 번째 사례입니다. 이 모델은 독일의 이민정책 모델과 비슷합니다. 해당 국가의 정부가 보장을 해주고, 이 혜택을 받은 학생들은 해당 국가에서 일익을 담당할 겁니다. 카라칼팍스탄에 거주 중인 고려인에게는 한민족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는 계기가 될 것이고, 또 인구가 감소하는 우리나라에는 양질의 젊은이를 공급한다는 이점이 있을 겁니다. 그동안 카라칼팍스탄의 젊은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에 몰두한 것을 넘어서 이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한류의 성과이자 민간외교 성과라고 자부합니다.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다는 것과 별개로, 사실 카라칼팍스탄 자치공화국은 무궁무진한 시장입니다. 최근 몇 년간 연평균 5~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고 미네랄 소금, 시멘트, 석회암, 건축용 석재와 같은 광물이 매장돼 있으며, 유네스코 목록에 있는 풍부한 문화유산을 갖고 있습니다.”
― 우리가 카라칼팍스탄 자치공화국이라는 곳을 너무 몰랐네요.
“외국인의 투자 총액이 2020년 8700만 달러에서 2024년 15억 6300만 달러로 급증했을 만큼 해외의 관심을 끄는 곳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Republic of KIDL’이 첨단 온실농장 사업을, 숙명여대와 현대경제연구원이 함께 ‘여성직업훈련센터’를 만들고 ‘ACRY’라는 회사가 IT센터를 설립했습니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앞으로 이 공화국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통일문화연구원이라고 해서 통일 얘기를 들을 줄 알았는데, 고려인 얘기를 들을 줄 몰랐습니다.
“처음 연구원을 설립할 때는 국내에 거주 중인 탈북민이 원활하게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고려인으로까지 관심이 넓어졌고, 요즘은 다문화 가정을 위한 도움에 관심이 갑니다.(웃음) 문화 전파로 북한과 소프트 론칭을 하는 게 저희 통일문화연구원 설립 취지예요. 선친(先親)인 백봉 라용균(羅容均) 선생의 영향이 컸습니다. 저는 쉰이 넘어서는 늘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일에 한 몸을 바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젠틀맨’ 백봉 라용균
라종억 이사장의 눈빛이 반짝였다. 사실 라 이사장을 언급할 때 선친인 고(故) 라용균 전 국회부의장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대한민국 제6대 보건복지부 장관, 제6대 국회부의장을 지낸 백봉 선생은 독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그는 일제시대 때 일본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정치학과에 유학하던 중 유학생들과 함께 3·1운동 직전에 2·8 독립선언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 일본에서 옥고를 치르고 상하이로 망명,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해 독립운동을 하다 1945년 8·15 해방 후 귀국했다. 1948년 5·10 총선거에서 민주당의 전신(前身)인 한국민주당 후보로 전북 정읍에 출마해 당선되고 제헌국회 내무치안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이후 정치인의 길을 걸은 백봉 선생은 보건사회부 장관을 거쳐 1963~65년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 선친은 어떤 분이었나요?
“호남의 대지주셨지요. 서울에서 부산을 가려면 우리 집안의 땅을 밟아야 한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선친은 3·1운동의 선구인 2·8 독립선언 사건의 주역으로 옥고를 치르고 상하이 임정에서 의정원의원이 되셨고, 레닌이 초청한 원동(遠東)혁명자대회(1921년)까지 간 분입니다. 그곳에서 김규식·여운형 등은 ‘공산당식 혁명’에 동조했지만 선친은 끝내 자유민주주의식의 해방을 원하셔서 또 옥고를 치렀지요. 그때 김규식이 45세, 여운형이 36세였고 선친은 26살에 불과했는데 어떻게 그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일제시대 때도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분입니다. 이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을 견제하는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했고, 박정희 대통령 때 야당 부의장이면서 유일하게 베트남전쟁 파병에 찬성했습니다.
이런 것과 별개로 선친은 신사였습니다. 어려서 선친께 험한 말을 듣거나 회초리로 맞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 신사적인 면모를 보이면 상대방도 신사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저 젠틀맨이셨지요. 부(富)와 권력을 배제하고 애국애민(愛國愛民)정신을 몸소 실천한 분이셨습니다.”
“한국어 못 하는 탈북민 늘어… 탈북민도 세대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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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종억 이사장이 카라칼팍스탄 최고회의 의장으로부터 훈장을 받고 있다. |
“애국자였던 선친의 얼을 이어받아서 제가 할 일이 이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국내에 450여 명의 탈북민이 있었습니다. 저는 탈북민이 우리 땅에 온전히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연구원을 만들 당시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한창일 때였는데요.
“저는 전쟁을 막으려면 전쟁 준비를 해야 하고, 안보가 무엇보다 튼튼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6·25전쟁 때 16개국이 참전하면서부터입니다. 이후 88올림픽을 계기로 ‘코리아’라는 이름이 알려졌죠.
저는 통일을 앞당기고 통일 이후의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은 문화라고 봤습니다. 일본이 대동아전쟁을 할 때 ‘문화전파단’이 있었습니다. 말레이시아, 베트남을 점령하면서 선민(選民)작업이라고 해서 현지인들을 문화로 싸안는 작업을 했죠. 우리도 첫 번째 작업으로 국내에 있는 탈북민들을 제대로 교육하고 그들을 통해 남북을 하나로 묶는 소프트랜딩을 시도하자고 생각해 탈북민 교육에 앞장섰습니다.”
― 교육해 보니 어떻던가요?
“탈북민들은 굉장히 자존심이 강합니다.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 식당에서 일하지 않습니다. 한국으로 넘어와서는 방송에 출연하고, 대학 가고, 박사 학위를 따고 그럽니다. 조선족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남한의 문화를 가르치는 것이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사정이 좀 달라요. 요즘 탈북민 중에는 한국어를 못하는 탈북민이 너무 많습니다. 북한을 탈출하고 중국에서 태어나서 머물다가 온 학생들이 꽤 되기 때문이죠. 탈북민 세상도 세대가 완전히 바뀐 겁니다.”
“처음엔 고려인 돕겠다고 했다가 문전박대 당해”
라종억 이사장은 1998년에 사재 5억원을 털어 재단을 만들었다. 통일부로부터 2001년에 법인 설립을 인가받고, 2002년에 기획재정부의 공익성 기부금단체로 승인받아 현재 기부금과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된다. 민족문화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보존 계승하며, 탈북민과 고려인의 안정 정착을 통해 문화 이질화를 극복하는 것이 목표다. 통일문화연구원 산하에는 2014년에 《조선일보》와 공동 설립해 운영 중인 ‘통일과나눔아카데미’ 외에 ‘중앙아시아 통일과나눔아카데미’ ‘우즈베키스탄 통일과나눔아카데미’ ‘청소년 나눔아카데미’ ‘탈북민 의료지원센터’ ‘통일문화포럼’ 등이 있다. 1999년부터는 백봉 라용균 전(前) 국회부의장을 기리며 매년 가장 신사적인 언행과 모범적인 의정활동을 보인 현역 국회의원을 선정해 시상하는 ‘백봉신사상’을 형님(라종일 백봉정치문화교육원 이사장)이 운영한다. 라종억 이사장의 얘기가 이어졌다.
“탈북민에 대한 관심이 고려인까지 넘어가게 된 것은 카자흐스탄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저는 당시 민주평통 문화체육예술위원장을 맡고 있었는데 카자흐스탄의 ‘고려극장’을 방문하게 됐습니다. 고려극장은 1937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입니다. 그 극장에 있는 젊은이들과 대학을 연계해서 장학금을 지급하면서 고려인들과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제 평소 소신이 ‘문무(文武)를 겸비한 인재는 스스로 빛난다’인데 이들이 딱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 고려인들 사회에서 고마워했겠네요.
“천만에요. 처음엔 고려인들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우리가 좋은 일을 하려는데 왜 그랬나 이상하시죠? 우리나라의 몇몇 단체에서 고려인들 지원사업을 한다며 돈을 조금 주고 사진만 찍고 가는 일이 자주 있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2017년에 ‘도움을 주려고 왔다’니까 다들 ‘돌아가라’고 하더군요.”
― 봉사를 하기도 쉽지 않네요.
“제가 먼저 나서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언어, 문화, 금융 교육을 하고, 취업을 알선해 주고, 병원의료 지원사업을 하니까 서서히 인심이 돌아섭디다. 사실 의료 지원이 굉장히 중요해요. 한국의 의사들이 진료해 준다고 하면 사람들이 막 몰립니다. 그곳 사람들이 골반이라든가 무릎 수술을 제일 원했습니다. 그걸 하다 보니까 북한과 가까운 나라였던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꾸준하게 의료지원사업을 펼치니까 현지 언론도 조금씩 우리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고, 고려인들도 우리의 진심을 믿어 줬습니다.”
― 고려인들의 성향은 우리와 비슷한가요?
“머리가 상당히 좋습니다. 언어는 굉장히 쉽게 배우는 편이고, 그보다 수준 높은 IT 교육 등을 해주기를 원합니다. 저는 이들에게 수학을 꼭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저희가 가르치는 필수과목으로 언어와 함께 수학을 넣어서 세계에서 처음으로 수학 라이선스를 내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슈토베 고려인추모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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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자흐스탄에 만들어진 고려인 항일 독립운동가 추모비. |
“우슈토베 추모공원은 한국인에게는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장이자, 고려인에게는 민족 정체성을 찾고 한민족으로서 동질감을 고취할 수 있는 장소로 활용될 것입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이, 우리나라가 이제 선진국 반열에 올랐고 글로벌 시민으로서 전 세계인을 향해서 봉사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국가에, 누구를 위해서,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단체가 참 많습니다. 가령 의료봉사를 가고 싶어도 어디를, 누구랑 가야 할지 몰라서 못 가는 겁니다. 통일문화연구원은 그런 브리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레오 4세 교황도 ‘인간과 인간을 잇는 공동체’ 역할을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저희의 역량에 한계가 있다 보니, 봉사를 원하는 단체들과 그것이 필요한 국가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통일문화연구원 같은 단체는 왜 있어야 합니까?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없는 민간외교를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요. 사실 저는 봉사활동은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7세기까지만 해도 ‘봉사는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고, 18세기 들어서는 ‘좋아서 하지만 뿌듯함이 타인에게 가는 것인지 자기에게 오는 것인지에 따라 다르다’고도 했습니다. 여전히 일부 봉사단체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이 ‘저희는 빛도 그림자도 없이 봉사한다’는 말입니다.”
― 조용히 봉사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시각이 여전히 있지요.
“저는 우리 사회에서 봉사하는 사람을 많이 참여시키는 것이 진정한 봉사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좋다고 노숙자 한 명을 도와주고 혼자 만족하는 것은 봉사가 아닙니다. 노숙자 숫자를 줄이는 데 일조하거나, 봉사를 하려는 사람을 많이 끌어모으는 것이 중요해요. 그러려면 봉사를 조용히 해서는 안 됩니다. 봉사를 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남들이 동참하도록 독려해야 합니다.”
‘왼손과 오른손의 대화’
인터뷰를 위해 만난 라종억 이사장 사무실은 현대사의 보고(寶庫)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임원 합동촬영 사진 속에는 신익희, 안창호, 손정도, 송병조, 여운형 등의 얼굴이 담겨 있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백봉 선생에게 써준 글귀 등이 빼곡하게 전시돼 있었다. 그중에서 한가운데에 적힌 글귀가 ‘왼손과 오른손의 대화’였다. 라 이사장이 몇 해 전에 낸 책 제목이자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라고 했다.
“통일문화연구원의 기본 정신은 ‘왼손과 오른손의 대화’입니다. 왼손과 오른손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뤄야 신체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습니까. 우리나라가 과거 도움을 받던 국가에서 이제 다른 국가에 도움을 주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남을 도울 수 있어야 그만큼 우리도 성장할 수 있습니다. 저는 남을, 다른 국가를 돕는 일이야말로 미래에 대한 투자이자 국위선양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경제대국이지만, 이에 걸맞은 사고와 철학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되돌아봐야 합니다. 우리의 체구가 커진 만큼 상대방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선진국의 마음가짐이며, 저희 연구원이 그 첨병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 아무래도 이사장께서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셨으니 그런 마음이 더한 걸까요?
“행복은 돈으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이타심을 갖는 것이 국가나 개인의 행복을 가져오는 길이고, 그것이 진정한 선진국민의 자세입니다. 저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이 행복해 하는 눈동자를 보는 것에서 무한한 감동을 느낍니다. 그런 차원에서 올해부터 우리나라에 오는 카라칼팍스탄 청년들이 대한민국에 어떻게 정착하고 살아갈 것인지에 요즘 관심이 가장 큽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다문화 사회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문화 사회 인정하고 ‘유나이티드 코리아’로 가야”
― 국제결혼을 통해 태어난 아이들이 벌써 스무 살이 넘었죠.
“서울을 벗어나면, 특히 소득 하위 70%에는 다문화 가정이 많습니다. 이들을 언제까지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단일민족을 탈피해서 ‘유나이티드 코리아’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을 사회 하층민으로 취급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교육해서 함께 생존해야 합니다. 미국과 같이 유나이티드된 사회로 만들어야 오늘과 같은 저출산·인구 감소 시대에 국가경제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
― 이민을 반대하는 사람 중에는 그들이 가져올 부작용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노동력이 급하다고 아무나 데려오면 사회적 문제가 된다는 것은 이미 프랑스 파리의 폭력 사태에서 엿봤습니다. 하지만 진작부터 가르쳐서 데려온다면 어떨까요? 저는 한국에 오는 카라칼팍스탄 청년들이 그 물꼬를 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 고려인은 이미 한국어, 문화, 금융 교육을 마친 이들이고, 평균 연령대가 20세인 젊은이들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와 뿌리가 같은 고려인들이고요. 국내에 마구잡이로 들어온 이들의 대부분은 금전적인 문제로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며 국내의 범죄율을 높이곤 하는데, 카라칼팍스탄에서 올 이들은 자치공화국이 학비, 생활비 등을 지원해 줍니다. 통일문화연구원에서도 이들에게 허드렛일을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진정한 다문화를 안착시키고자 우수한 인력을 들여오는 겁니다. 초창기에 입국하는 이들은 미미한 숫자이지만, 앞으로 매년 1000명씩 들어오면 사회 분위기가 바뀔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30년 가까이 통일문화연구원을 운영해 왔는데 아직도 할 일이 태산입니다. 저희의 활동을 지지하고 동참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