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풀이춤은 죽은 자의 恨을 풀어 情으로 연결된 산 자에게 행운 안겨줘
⊙ 한국 근대 춤 효시인 한성준-한영숙으로 이어진 살풀이춤 계보가 이은주로 완성
⊙ 승무의 휘날리는 춤사위, 태평무 디딤새의 섬세함이 어우러질 때 살풀이춤 絶頂 드러나
⊙ 서울시무형문화재 살풀이춤 예능 보유자로 지정된 지 올해 10년째… 오는 10월에 큰 공연 준비
李銀珠
1955년생. 세종대 무용학과 졸업, 同 대학원 석·박사, Johann Wolfgang Goethe Universitat 철학과 수학 / 중요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전수 장학생,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제46호 살풀이춤 예능 보유자 / 세종대 강사, 한예종 전통원 겸임교수, 국립인천대 예술체육대학장 역임. 現 인천대 명예교수 겸 (사)한영숙살풀이춤보존회 이사장
⊙ 한국 근대 춤 효시인 한성준-한영숙으로 이어진 살풀이춤 계보가 이은주로 완성
⊙ 승무의 휘날리는 춤사위, 태평무 디딤새의 섬세함이 어우러질 때 살풀이춤 絶頂 드러나
⊙ 서울시무형문화재 살풀이춤 예능 보유자로 지정된 지 올해 10년째… 오는 10월에 큰 공연 준비
李銀珠
1955년생. 세종대 무용학과 졸업, 同 대학원 석·박사, Johann Wolfgang Goethe Universitat 철학과 수학 / 중요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전수 장학생,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제46호 살풀이춤 예능 보유자 / 세종대 강사, 한예종 전통원 겸임교수, 국립인천대 예술체육대학장 역임. 現 인천대 명예교수 겸 (사)한영숙살풀이춤보존회 이사장

- 사진=이하 이은주
〈집에 돌아온 아버지(김덕순)는 주머니에서 잘린 상투를 꺼내 상 위에 얹어 놓고 사방을 향해 절을 한 뒤 스스로 남은 머리를 삭발하고 버릿겨 반 말을 싸들고 나(김숙자)를 떠나 청룡사 부근의 토굴로 들어갔다.〉
예술 인생의 행로(行路)란 이처럼 절절하고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면의 티끌까지 쏟아내야 하는 예술이 살풀이춤이 아닐까. 흰 치마저고리를 입고 긴 수건이 이곳저곳의 공간을 가르는 살풀이춤은 우리 전통춤 중에서도 비장미(悲壯美)가 아름다운 예술이라는 어렴풋한 확신을 품고 이은주 명예교수를 찾아뵈었다. 시름 너머의 눈빛, 꼭 다문 입술, 구름처럼 날아오르는 하얀 수건, 온몸을 감싸는 하얀 치마저고리에는 가장 한국적인 한(恨)의 정서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혹자는 살풀이춤을 한국무용의 백미(白眉)라고 일컫는다.
승무와 태평무를 거쳐 완성되는 춤
전통무용을 보잘것없다고 헐뜯던 시대에 이은주 명인은 자신의 인생을 살풀이춤에 아낌없이 던졌다. 평생 춤을 췄지만 지금도 혼신(渾身)의 땀을 흘린다. 지난 5월 27일 서울 영등포구 그의 전수관에서 만난 이 교수는 “살풀이춤을 이 춤 하나로만 출 수 없고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승무(僧舞)를 추고 태평무(太平舞)를 추어야만 비로소 정제된 춤을 출 수 있다”고 했다.
“살풀이춤은 용솟음치는 힘, 감정의 억제, 이성의 냉혹함이 한데 어우러져야 제맛이 납니다. 승무의 휘날리는 춤사위, 태평무 디딤새의 섬세함, 장단의 박진감으로 이뤄지는 발동작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살풀이춤의 절정(絶頂)이 보이는 거죠.”
기자가 이해하기에 많이 어려운 말이지만, 승무와 학(鶴)춤, 태평무 등 전국 팔도의 장단과 춤사위를 집대성한 뒤 연희자(演戱者)의 삶까지 온전히 쏟아부어야 무아(無我)의 춤사위에 이를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살풀이춤은 한국 민족의 고유한 민족적 애환인 액운을 푸는 ‘살풀이굿’을 극장형 무용의 형태로 창조적 구성을 한 것이죠. 살풀이춤의 내용이나 춤의 형태, 의상, 그리고 반주음악까지 가장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이 아닐까요?”
한영숙의 살풀이춤, 88올림픽의 대미 장식
이 교수는 1988년 서울올림픽의 대미를 장식한 공연이 한영숙(韓英淑·1920~1989년) 선생의 살풀이춤이 아니었냐고 했다. 기자의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무엇보다 살풀이춤은 흰 명주 수건으로 풀어내는 삶의 혼이 담긴 예술이다. 손끝에서 너울거리는 수건을 어느덧 어깨너머로 툭 넘길 때 마치 홑겹의 수건이 바위 같은 삶의 무게를 넘기는 듯하다.
객석에서도 고통과 회한이 교차한다. 춤사위와 함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위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무대가 완성된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넘은 살풀이가 춤으로 승화한다.
살풀이춤에 쓰이는 수건은 삶의 슬픔과 고통, 한을 풀어내는 것을 상징함과 동시에 이승과 저승, 인간과 신 (神) 사이를 연결하는 은유이자, 억눌린 감정과 내면의 응축, 인내와 절제를 표현하는 무구(舞具)로 쓰인다.
수건의 재질은 명주. 명주는 베틀의 폭이 정해져 있기에 폭이 넓지 않다. 이은주 교수가 추는 ‘한영숙류 살풀이춤’은 연희자의 키에서 15cm를 더한다. 키가 160cm라면 수건은 175cm.
“연희자의 키에다 15cm를 더하고 춤의 길과 살풀이 수건의 길이, 몸의 방향이 모두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살풀이춤다운 묘미가 나오죠. 수건이 너무 길면 긴 수건 사위를 하고 걸어갈 때 땅에 수건 끝이 끌리게 됩니다. 너무 길면 수건을 뿌렸을 때 수건 자체의 움직임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덜음의 미학, 엇박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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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주 명인의 앞뿌림 사위. 수건을 오른손으로 잡고 자연스럽게 앞으로 뿌린다. 허공에 수건을 던지듯이 뿌리는 것이 핵심이다. |
한성준(韓成俊·1875~1941년)이 한국 근대무용의 효시(嚆矢)라면 그의 손녀 한영숙은 전통춤의 르네상스를 연 명무(名舞)다. 한영숙은 1988년 서울올림픽 폐막식 당시 살풀이춤을 공연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한영숙의 수도여자사범대학(지금의 세종대) 제자가 바로 이은주 교수다.
그러나 살풀이춤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 전에 한영숙은 이미 세상을 뜨고 말았다. 한영숙류 전통춤 가운데 ‘승무’와 ‘학춤’은 무형문화재로 전승과 보존이 이뤄졌지만, 살풀이춤은 상당한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한영숙의 제자 이은주는 1997년 살풀이춤보존회를 세웠고, 2008년 사단법인 한영숙살풀이춤보존회를 설립해 살풀이춤 전승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결국 지난 2015년 1월 ‘한영숙류 살풀이춤’이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되었다. 한성준–한영숙으로 이어진 살풀이춤 계보가 이은주로 완성된 셈이었다.
이은주는 1974년 수도여자사범대학 무용과에 입학해 한영숙과 사제(師弟)의 연을 맺었으며 스승의 권유로 1977년 제14회 전국신인무용경연대회에서 살풀이춤을 추어 특상을 수상했다. 이후 ‘한영숙류 살풀이춤’이 스러지지 않도록 흰 명주 수건의 지평을 차근차근 넓혀갔다.
한성준에서 이은주로 이어진 살풀이춤은 군더더기나 불필요한 동작이 없이 극히 정제된 담백한 멋이 돋보인다. 여러 동작을 구사하지 않고 한 사위를 하는 데 몇 장단을 끌고 당기며 단아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도 엄숙하고 담백하려면 ‘덜음의 미학’이 중요해요. 군더더기 없이 덜어낼수록 절제(節制)의 미가 표출되는 살풀이춤이 되기 때문이죠.”
― 이때 흰 명주 수건은 어떻게 사용하나요.
“깜깜한 밤하늘에 무언가 너울거리는 광경처럼 수건을 사용합니다. 수건을 쓸 때 힘이 들어가면 안 됩니다. 아주 자연스러워야 해요.”
‘한영숙류 살풀이춤’에는 일반적으로 전통춤에서 보이는 강약의 배치에 비해 변주(變奏)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같은 동작이라도 일률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어떤 때는 강약약약, 강약중간약, 약약약강으로 달라진다. 또한 엇박의 묘미 속에서 춤사위를 자유롭게 즐긴다.
“강약에 따라 춤이 달라지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춤의 마디를 가져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
또 약간 엇박으로 하면 훨씬 춤의 해석력과 전달력이 좋아지죠.”
그래서 살풀이춤은 음악 박자를 무시하며 춤추는 것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냥 우뚝 서 있거나 늘어져 있다가도 별안간 우줄우줄 춤을 추거나, 돌아갈 듯하다가 머무르고 또는 머무르듯 빙글 느리게 돌아가며 춤을 춘다. 살풀이춤은 서양 춤과 달리, 메트로놈 같은 정확한 박자 기준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 교수의 말이다.
“완전히 고정되지 않은 장단과 이를 넘나드는 춤사위는 이완과 긴장의 배합 속에서 절묘한 한국춤의 묘미를 완성하는 겁니다. 또 시나위 반주는 삼현육각으로 연주되며 장구를 치는 사람은 춤추는 사람의 동작을 보고 박자를 이끌어가요.
이런 면에서 살풀이춤을 즉흥적인 춤이라 할 수 있는데 한국인의 자유정신을 잘 표현한다고 할 수 있어요.”
“자의가 아닌 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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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 한영숙의 고희연(1989)에서 꽃을 달아드리고 있는 이은주 보유자. |
“자의가 아닌 타의랍니다. 한영숙 선생님께서 ‘너는 살풀이춤을 춰’라고 하신 것이 계기가 되었지요. 실은 살품이춤에 애정이 크지는 않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수건 하나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게 뭐가 좋나 싶었지요.
1969년 최초로 승무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기에 누구나 승무를 선호했고 저도 그 춤을 전수받고 싶었죠. 1981년도에 승무 전수장학생으로 인정되어 1년여 과정을 거치던 중 독일 유학으로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처음엔 선생님께서 하라고 하시니 따랐는데 돌이켜보면 선생님의 혜안이 저를 살풀이춤으로 이끄신 듯해요.”
다른 제자들에겐 다 승무를 추라고 권했는데 이은주에게만 살풀이춤을 배우라고 했으니 한창나이에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러셨는지 지금도 궁금하단다.
“살풀이춤은 참 어렵습니다. 추면 출수록 더 어려워요. 30분간 승무를 추고 나면 대장정을 마쳤다는 생각이 들고, 태평무는 복잡한 장단과 춤사위를 소화하고 나면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살풀이춤을 추고 나면 ‘왜 이게 안 되는 걸까’ 하는 것만 남아요.”
― 전통춤의 미학적 접근을 위해 독일 유학을 떠났는데, 뭘 배웠나요?
“한국의 정서를 몸의 언어라는 춤으로 물려받았으니 이 귀한 유산에 대한 학문적인 토대를 구축하고 싶어 미학(美學)을 공부하고자 했어요. 결국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3년여의 짧은 시기에 학문으로 가는 길을 터득했다고 감히 말할 수는 있어요.”
― 1974년 한영숙 선생과의 만남을 회상한다면요?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천운(天運)이자 운명이었지요. 대학에 입학해 보니 그해(1974년) 조교수로 부임하셔서 당신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대학 3학년, 그러니까 그해 4월 1일에 선생님이 ‘장래 꿈이 무엇이니?’라고 물으신 질문으로 이어진 인연이 곧 천운임을 알리는 시작이었어요. 그 어려운 난관을 거쳐 무형유산 보유자가 되어 선생님의 춤을 추는 것이 제 운명(運命)이 되었습니다.”
“승무는 승려만 춰야 할까요?”
― 어린 시절 꿈은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는 꿈이라는 것을 정하기 이전에 ‘춤을 추는 것’에 대한 갈망이 깊었어요.”
― 갈망이 깊었다….
“춤을 춰서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보다 춤을 추기 위해, 아니 춤을 위한 삶을 꿈꾸었으니 ‘기승전(起承轉) 무용’이었던 셈입니다. 한 번도 춤 외에 눈을 돌린 적이 없었어요.”
― 한성준–한영숙의 살풀이춤을 문화재로 지정받도록 하는 것이 꿈을 이뤄가는 과정이었겠네요.
“선생님이 남기신 자료와 관련 문헌 등을 조사 정리하면서 저변을 넓히려 ‘사단법인 한영숙살풀이춤보존회’를 사비로 인가받고 지금까지 여러 가지 사업을 벌였어요.”
2009년부터 매년 청소년을 위한 한영숙류 살풀이춤 무료강습회, 전국한국춤경연대회, 빛고운춤, 살풀이춤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 등을 열어왔다. 또 전국신인무용경연대회 입상자 중 대상 수상자에게, 동아무용콩크루 고등부 살풀이춤 입상자에게 장학금을 수여해 왔다.
― 성공한 무용인으로서의 덕목은 무엇인가요.
“노력과 자질, 인내심, 끈기 등이 모두 전제되어야 합니다. 자질은 타고나는 거기도 하지만… 노력만 해서도, 타고나기만 해서도 부족해요. 두 가지가 조화롭게 잘 어우러져야 합니다.”
― 한 연극배우를 만났을 때 종교가 때로 연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하던데 왜 그런가요? 살풀이춤을 추는 교수님은 종교가 있나요?
“종교와 예술의 분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자칫 예술을 종교적 관점에서 풀어간다면 예술의 생존력에 대한 의미가 희박해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특히 한국의 민속예술은 대부분 무속에 근간을 두고 있잖아요. 국악이나 춤이 종교의 의미를 넘어 예술화한 지 이미 100년이 지났죠. 한국의 민속예술이 종교적 관념에서 분리되지 못한다면 ‘한국 민속예술가는 모두 무속인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할지 모릅니다. 소중한 무형유산인 승무는 승려만 춰야 할까요?”
“승무가 춤을 익히는 기본이라면 살풀이춤은 몸과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는 춤”이다. 바로 한영숙 선생이 제자 이은주에게 당부한 가르침이다. 승무에서 장삼 자락을 넘기는 것과 살풀이춤에서 수건을 날리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 교수의 말이다.
“무용사적으로 한성준 선생은 한국 전통춤을 집대성해 근대적인 극장 무대에 맞게 재구성, 새로운 양식을 정립하셨죠. 선생은 승무에다 모든 민속적인 춤사위를 다 접목하려 하셨어요. 전통춤의 기본기를 모두 학습해야 승무를 출 수 있으니 춤을 ‘익히는’ 기본이라 할 수 있어요.
반면, 살풀이춤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야 하는 춤입니다. ‘살을 푼다’는 본질적으로 강조되고 한을 흥으로 푸는 승화적 구조를 강조합니다.”
| 살풀이춤의 철학적·미학적 의미 “恨을 興으로 승화하는 구조” 이은주 인천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죽은 자의 한(恨)을 풀어 산 자에게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액풀이’가 살풀이춤에 담겨 있다고 한다. 이는 한국인들에게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는 전통적인 정서와 상통한다. 이 교수는 “한을 흥(興)으로 승화하는 구조”라고 설명한다. 미학적으로 살풀이춤은 넓은 치마폭 안에서의 발동작이 현란할지라도 일단 한복 밖으로 표현된 모습은 한없이 부드럽고 정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신체의 직접적인 미를 추구하는 서양 발레(ballet)와 달리 신체 움직임의 아름다움이 한복에 가려진 채 표현된다. 한을 흥으로 변화시키는 정중동(靜中動)의 감정적 조화미 그 자체다. 인위적이 아닌 자연스러운 표현을 살풀이 수건으로 나타내는 모습이 춤사위와 함께 독특한 미적 형상을 창출한다. 살풀이춤은 조건과 환경에 따라 춤추는 사람의 즉흥성이 발휘되고 이에 따른 시나위 반주가 연주됨으로써 변화무쌍한 미적 표현을 아우를 수 있다. |
“‘한영숙 살풀이춤’의 DNA를 전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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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주 명인은 ‘한영숙류 살풀이춤’의 춤사위 25가지를 직접 명명했다. 긴수건 사위. 오른손으로 수건의 사분의 일 지점을 쥐고 나머지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
“살풀이춤이 문화재로 지정받았으니 원칙은 전통의 보존과 계승에 있어요. 살풀이춤을 퓨전화하는 그 순간부터 문화재적 가치를 상실한다고 볼 수 있어요. 살풀이춤을 퓨전화하는 것이 아니라 살풀이춤을 모티브로 한 창작은 가능하죠.”
― 살풀이춤의 한영숙류, 이은주류는 똑같나요?
“살풀이춤의 원형을 지키는 것은 원칙이나 보전 과정에서 사람에 따라, 그리고 본인이라 할지라도 세월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죠.
다만 ‘한영숙 살풀이춤’의 DNA를 전달하는 것! 인위적인 변화와 변질을 최소화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한영숙과 이은주가 다른 사람이니, 부득이 ‘이은주식(式)’ 살풀이춤은 그가 강조하는 동작에 따라 자연스럽게 또 다른 미적 의미를 내포할 수밖에 없다.
이은주는 독일 유학을 통해서 얻은 미학에 대한 지식과 지평으로 한영숙의 살풀이 춤사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춤사위에 고유 명칭을 붙이는 작업을 해왔다. ‘한영숙류 살풀이춤’의 춤사위 25가지는 모두 이은주 교수가 명명한 것이다. 펴는 사위, 사선 사위, 긴수건 사위, 앞뿌림 사위 등은 동작을 직관적으로 포착한 춤사위다.
연꽃 사위, 구름 사위, 반달 사위도 있는데 이는 춤사위의 시각적인 형상을 자연에 빗댄 명칭이다. 예를 들어 반달 사위는 두 손으로 쥔 수건이 그리는 아담한 곡선의 품이 반달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명명했다.
“춤사위를 달이나 구름, 정갈한 이미지의 연꽃에 빗대 단순히 춤의 형태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전통춤의 품격을 높이는 의미를 담은 것이죠.”
― 살풀이춤 유래는 무속(巫俗)과 관련이 있나요.
“당연히 무속적인 액운을 몰아내는 살풀이굿과 깊은 관련이 있어요. 민속학적으로 무속의 3요소(무가, 무무, 무악)에 해당하는 무무(巫舞)에 근간을 두고 무악(巫樂)에 맞춰서 추는 작품으로 무속에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살’의 어원 또한 무속에 있습니다.”
― 살풀이춤을 통해 관객은 어떤 감정을 경험하게 되나요.
“한국인의 기본 정서를 ‘한’과 ‘정’ 그리고 ‘신명’이라고 한다면 액운을 푼다는 것은 한을 푼다는 것과 의미가 같아요. 이는 한을 흥(신명)으로 승화한다는 의미와도 통하기 때문에 살풀이춤을 통해 관객은 자신의 한을 흥으로 푸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지요.”
― 전통춤 명맥을 계속 잇게 하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요.
“현재의 무형유산제도는 제정 당시의 틀에서 크게 변한 것이 없어요. 명칭이 바뀌고 문화재 지정 관련 조례가 바뀌는 등의 시도가 있었지만 이러한 변화보다는 문화재 보전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한다면 깊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국가 정책이 바뀌어 무형문화재가 국가유산청과 지자체로 분류되면서 보유자들 간의 차별성, 갈등 조장 등이 드러나고 있어요. 문화를 둘러싸고 국가와 지방이 서로 우열을 주장하며 지역 간의 거리를 두게 하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춤은 초심 그대로”
― 현재 교수님의 모습이 과거에 자신이 바라는 모습과 얼마나 일치하나요.
“다른 부분은 많이 변하고 생각도 바뀌었다고 볼 수 있지만 춤에 대한 초심은 그대로라 자부합니다. 오히려 열정이 더욱 강해졌고 사명감, 의무감 등이 더욱 강해진 현재의 저는 과거엔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이죠.”
― 한 연극배우를 만났을 때 유복하게 자라서 감정 드러내기가 어렵다고 하던데, 무용도 감정 표현을 통해 완성되어 가는 것이라면 성격도 변하지 않나요? 또 몰랐던(과거에 눌렀던) 감정을 자주 표출하게 되지 않나요?
“연극은 시나리오를 외워서 감정을 이입 내지는 표출한다면 무용은 언어를 몸의 언어로 변환시켜 감정을 표출하죠. 예를 들어 화를 내는 신(scene)을 연극은 구구절절 언어로 감정을 실어 표현한다면, 무용은 그 감정을 절제하여 몸의 언어로 순화시켜 표현해요. 전공 때문인지 아무리 화가 나도 감정이 극도로 치닫는 일은 거의 없어요.”
오는 10월 〈舞知의 發見〉 공연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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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풀이춤 군무(群舞). 서울 영등포구 이은주 전수관에서 오는 10월 14일 예정된 〈무지(舞知)의 발견(發見)〉 공연을 연습하고 있다. |
이미 공연 제목을 〈무지(舞知)의 발견(發見)〉으로 정했다. 이는 한영숙 선생의 깨달음에 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부제는 ‘벽사의 춤을 잇다, 벽야 춤을 짓다’. 벽사(碧史) 한영숙의 춤을 이어가는 제자 벽야(碧也) 이은주의 춤에 대한 행보를 담는다. 이 교수의 말이다.
“한영숙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나이 40이 되니 춤에 대해 조금 알 것 같고, 춤을 아니 삶의 끝이 되었다’고요. 이 말씀이 곧 ‘무지의 발견’이라 생각해요.
살풀이춤 이수자와 전수자를 중심으로 단원 40여 명이 무대에 오릅니다. 한영숙 선생의 주옥같은 춤 유산인 살풀이춤, 승무, 태평무, 학무와 이은주류 춤인 금선무, 타령입춤, 적(笛)푸살, 풍류바라춤 등으로 구성했어요. 마지막의 살풀이춤 군무(群舞)가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게 될 겁니다.”
“승무와 태평무의 춤사위를 먼저 익혀야 비로소 정제된 살풀이춤에 이를 수 있다”는 이은주 교수의 말은, 단순한 기술의 습득을 넘어 삶도 그렇게 천천히 다듬어지고, 깊어지는 것임을 조용히 일깨운다. 살풀이춤은 치맛자락 속 숨 가쁜 움직임을 감추고, 겉으로는 고요한 아름다움만을 드러낸다. 마치 한과 흥이 서로를 감싸안으며 조율되듯, 그 속에는 말없이 번져가는 삶의 결이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