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 비전의 최종 단계는 선진국·강대국 되는 것… 한국, 가능성 충분”
⊙ 美 관세·방위비 분담금, “빈국으로 떨어지지 않고 강대국 되기 위한 전환비용”
⊙ “자유주의 국제질서에서 혜택 본 대한민국, 미국과 함께 국제질서 교란 세력 막아야”
⊙ “트럼프, 왜곡된 자유주의 국제질서 원상복구하는 중”
⊙ “오늘날의 지도층은 시장 중심으로 마인드를 합리적으로 바꿔야”
⊙ “中, ‘天下경제질서’ 하에서 한국을 소국 취급하려 할 것”
⊙ “박정희·노태우·노무현 정부가 가장 근대적인 정부”
⊙ “트럼프, 우리가 친중 외교 보일 경우 주한미군 철수할 수 있다”
李根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美 위스콘신대 매디슨교 대학원 정치학 석·박사 / 외교통상부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서울대 국제학연구소장·국제대학원 부원장·국제협력본부장,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역임. 現 서울대 국제대학원 국제학과 교수 / 저서 《도발하라》 《대한민국, 넥스트레벨》 《2030 대한민국 강대국 시나리오》 등
⊙ 美 관세·방위비 분담금, “빈국으로 떨어지지 않고 강대국 되기 위한 전환비용”
⊙ “자유주의 국제질서에서 혜택 본 대한민국, 미국과 함께 국제질서 교란 세력 막아야”
⊙ “트럼프, 왜곡된 자유주의 국제질서 원상복구하는 중”
⊙ “오늘날의 지도층은 시장 중심으로 마인드를 합리적으로 바꿔야”
⊙ “中, ‘天下경제질서’ 하에서 한국을 소국 취급하려 할 것”
⊙ “박정희·노태우·노무현 정부가 가장 근대적인 정부”
⊙ “트럼프, 우리가 친중 외교 보일 경우 주한미군 철수할 수 있다”
李根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美 위스콘신대 매디슨교 대학원 정치학 석·박사 / 외교통상부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서울대 국제학연구소장·국제대학원 부원장·국제협력본부장,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역임. 現 서울대 국제대학원 국제학과 교수 / 저서 《도발하라》 《대한민국, 넥스트레벨》 《2030 대한민국 강대국 시나리오》 등
이근(李根) 서울대 국제대학원 국제학과 교수는 단호했다. 이 교수는 최근 《2030 대한민국 강대국 시나리오》라는 책을 내고 새로운 국가 비전과 전략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국제정치이론, 국제정치경제를 전공한 전문가로 그동안 정책과 관련한 남북관계, 한미관계, 공공외교에 관한 다수의 논문과 시론(時論)을 썼다. 노무현(盧武鉉) 정부 출범과 함께 한국 최초의 온라인 네트워크 싱크탱크인 미래전략연구원 발족에 참여했고 세계경제포럼(WEF)의 한반도위원회 위원장, 한국의 공공외교를 담당하는 한국국제교류재단(KF)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알리는 일을 해왔다.
“강대국 기준 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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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30 대한민국 강대국 시나리오》. |
― ‘대한민국 강대국’이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설레네요. 가능합니까?
“자유주의 국제질서 안에서는 가능합니다. 인류 역사의 진화 과정을 볼 때 오늘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새로운 질서로의 진화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새 질서에서 성공적인 역사를 기록하는 중입니다. 선진 강대국은 그 시대의 국제질서에 가장 잘 조응하는 국가 체제를 만든 국가인데, 우리나라는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 과거에는 힘들었지만 오늘날의 상황에는 가능하다는 얘기군요.
“전(前)근대 국가의 힘은 식량, 노동력, 무기에서 나왔습니다. 땅이 가장 중요했죠. 땅에서 식량이 나오고, 식량이 있어서 군사력이 나오고, 군사력이 있어야 국가를 지킬 수 있었기 때문에 땅을 확보해야만 에너지가 도는 선순환 구조였습니다. 그렇기에 더 많은 땅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을 정복하고 복속시키면서 제국(帝國)이 됐습니다. 로마 제국의 힘의 원천을 정치제도, 조세제도, 도시 인프라, 동원체제, 군사력 등에서 주로 찾지만 이 역시 땅을 관리하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후에는 땅 그 자체보다 시장이 중요해졌습니다. 산업혁명 이전 우리의 생존을 좌지우지했던 농업은 ‘중요한 산업 중 하나(one of them)’로 전락했죠. 땅에서 식량을 얻는 것보다 산업의 힘이 훨씬 강하다는 말입니다.”
― 강대국을 규정하는 기준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말이네요.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점을 두고 갑론을박이 있지만, 그 기준이 ‘자본주의 산업화’라는 데 큰 이견이 없습니다. 자본주의 산업화와 함께 탈(脫)종교와 과학적 사고·합리성·법치주의·자유와 인권 같은 보편가치가 강조되는데, 이것들은 자본주의 시장이 제대로 발전하는 데 필수품입니다. 결국 산업화와 자본주의 시장이야말로 국가의 힘, 즉 에너지를 동원하고 유지하고 필요할 때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국가 역량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고로 강력한 산업을 가진 국가가 강국(强國)입니다.
오늘날에는 좀 더 발전해서 기술의 시대로 왔습니다. 과거의 국제정치는 군사력이 강한 국가가 생존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군사력이 강하다고 경제력이 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북한, 러시아가 증명하고 있죠. 한국의 경우 ‘땅의 시대’에는 중국 밑에서 소국(小國)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지만, 기술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우리에게 ‘땅’이 아닌 새로운 경제영토가 생겼습니다. 누구나 능력만 있으면 부자가 될 수 있는 시장질서가 바로 자유주의 국제질서이며, 이 질서에서는 전 세계에 우리의 경제영토를 개척할 수 있습니다.”
“한국, 자유주의 국제질서 하에서만 강대국 가능”
― 우리가 영토가 작으니까 과거에는 강대국이 될 수 없었지만, 오늘날에는 땅의 가치가 줄어들면서 가능해졌군요.
“국제적인 공간에 경제영토를 확보하고, 기술력이 좋아서 국가가 잘 운영되고, 또 문화영토를 확대할 수 있습니다. 오로지 자유주의 국제질서 하에서만 그것이 가능합니다.”
― 요즘 러시아 푸틴과 중국 시진핑이 하는 것을 보면 과거 ‘땅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것은 한국의 국익(國益)에 절대 좋은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들의 방식을 거부해야 하며, 우리가 오랫동안 생존하고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방식을 취해야 합니다. 다른 강대국도 세계시장이라는 영토 안에서 경쟁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사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하는 일도 왜곡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새롭게 원상복구시키겠다는 겁니다.”
― 제국주의 시대로 돌아가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군요.
“제국주의 질서에서는 제국이 되지 않으면 식민지가 됩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에서는 강대국이 되지 않으면 식민지는 아니지만 빈국(貧國)이 됩니다. 이제 우리도 강대국 문턱에 와있습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 하에서 강대국으로 발돋움해야 합니다. 산업력, 기술력, 경제력 모두에서요.”
“트럼프, 와일드하지만 방향은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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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7월 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브리핑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
“미국의 눈에 보인 것은 선도(先導)산업을 갉아먹는 중국의 등장입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교정’하는 작업 중입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시장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과거에는 국가 간의 관계가 시장과 자유무역으로 제도화되어 연결되지 않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질서는 제도와 법, 규범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 안에는 나름의 교정 장치들이 있습니다. 어느 국가든 금융위기 때는 IMF·세계은행(World Bank)이 등장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때는 나토(NATO)가 등장합니다. 이런 교정 장치들에 더해, 패권국이 직접 개입해 비상조치를 취하면서 왜곡을 시정하는 경우도 빈번히 일어납니다.
지금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흔드는 것은 러시아·중국 등입니다. 미국과 자유주의 질서를 수호하는 국가들은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해야 할 공동의 숙제를 가진 셈입니다. 그동안은 주로 미국이 큰 부담을 안으면서 그 역할을 했지요. 하지만 트럼프의 시각에서 보자니 20세기 후반부터 미국만 힘들어지고 동맹국들은 잘살게 된 사실이 억울해진 겁니다. 그러다 보니 자유주의 질서로 혜택을 입은 국가들에 ‘너희도 돈을 내라, 자유주의 질서를 위해서 너희도 피를 흘릴 각오를 하라’고 하는 겁니다.”
― 트럼프가 괜히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군요.
“행동은 와일드(wild)하지만 방향은 맞습니다. 그래서 자유주의 국제질서에서 혜택을 본 대한민국은 미국과 함께 국제질서 교란 세력을 막아야 합니다.”
“시진핑이 자유주의 경제질서 왜곡”
― 중국이 어떻게 자유주의 경제질서를 왜곡하고 있습니까?
“2차대전 이후 국제질서가 시장의 시대로 넘어왔지만, 시장을 거부하던 중국은 허약해졌습니다. 그러다가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하면서 시장이 도입돼 중국이 한동안 발전했습니다. 미국은 2001년에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켜 경제영토를 늘리고자 했습니다. 과거의 적대국을 WTO 등에 가입시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 미국이 괜히 그랬을 리 없겠죠?
“글로벌 시장을 확대하는 데 중국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과거 미국은 일본·독일을 적대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등, 3등 국가로 만들었던 전례가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을 세계 2등으로 만들어서 자유주의 세계시장의 ‘파이’를 키워서 미국의 경제영토를 더욱 키우고 싶어 했습니다. 실제로 중국의 WTO 가입으로 미국 기업이 중국에 진출하며 이득을 봤습니다. 그런데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이 시장을 도입해 자유주의 시장국가가 될 줄 알았는데, 시진핑이 완전히 기조를 바꾼 겁니다. 시진핑은 다시 중국의 문을 통제하면서 시장을 왜곡시켰습니다. ‘중국제조 2025’ 같은 정책을 들고 나와 미국의 첨단 산업을 따라잡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중국은 본국의 시장을 막고 자국에서 과잉생산을 해서 주변국에 팔며, 국가가 개입해서 불공정무역을 했습니다.”
― 미국 입장에서 보면 완벽한 시장 왜곡이겠네요.
“중국은 개도국·중진국·선진국을 내부에 한꺼번에 가진 매우 특이한 국가가 됐습니다. 즉 모든 밸류체인에서 경쟁력을 갖게 된 것입니다. 과잉생산된 상품을 개도국·중진국에 뿌리고 선진국의 첨단 산업까지 침범했습니다. 반면 외국이 경쟁력을 갖는 수입품에 대해서는 자국의 안보를 지킨다는 이유로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텐센트·바이두·알리바바를 중심으로 디지털 플랫폼도 미국과 디커플링하며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요즘은 디지털 플랫폼으로 세상이 돌아가는데 그걸 안보라는 이름으로 죄다 막은 겁니다.”
― 그래서 미국이 중국의 시장을 열라고 압박했군요.
“미국의 입장은 분명했습니다. ‘중국 소비시장을 열어라, 디지털 플랫폼을 막지 말라, 첨단 산업에서 불공정무역 하지 말고 기술 탈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미국이 중국에 요구한 것은 굉장히 정당한 겁니다. 전(全) 세계가 자유무역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다시 만들라는 겁니다.”
“자유질서 세계 유지 비용 분담해야”
―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갑자기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올리고 관세 올리니까 ‘미국에 왜 퍼줘야 하느냐’는 시각이 있는데요.
“강대국은 자유질서 세계를 유지하는 비용을 많이 분담해야 합니다. 우리가 빈국으로 떨어지지 않고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이 전환비용(transition cost)을 어느 정도 내야 합니다. 세계시장 자체가 우리의 경제영토니까 그걸 보호하기 위한 비용을 내야 하는 겁니다. 비용을 내는 만큼 강대국으로 인정받고, 경제영토가 확대되고, 그만큼 경제영토에 대한 지분을 갖게 되는 겁니다.”
― 비용을 내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는 것이 전근대적 마인드라는 것이죠?
“전근대적인 마인드는 토지가 중심입니다. 토지는 남의 땅을 정복하지 않는 한 한계가 정해져 있기에 그것을 두고 제로섬 게임을 합니다. 상층부의 지도층이 토지를 독점하게 하기 위해서 공신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고, 유교의 이념과 신분질서로 그걸 정당화합니다. 조선시대 사화(士禍)가 일어나면 땅을 동인, 서인 간에 재분배한 것도 그러한 이유입니다.”
―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전근대적인 영토의 개념이 없어진 거군요.
“전근대적 사고방식에서는 땅과 함께, 그것을 지켜 내려는 명분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국제정치도 명분으로 이용합니다. 친일파, 반일(反日), 죽창가를 외치는 세력은 한일관계를 국내정치의 세력 싸움 명분으로 이용합니다. 하지만 근대는 합리성을 기반으로 합니다. 시장의 시대에는 서로 경쟁을 하고 파이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한데 전근대적인 명분은 이를 방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근 교수는 책에서 “선진 강대국 세대와 국가를 끌고가야 할 지도층이 아직도 20세기적인 개도국 혹은 중진국의 사고와 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형적인 예가 “우리가 개도국일 때 선진국으로부터 개발원조를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갚아야 할 때다” “한국군과 한미동맹은 한반도를 넘어서는 지역과 이슈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사고방식이라고 꼬집었다.
“우리나라 언론은 정상이 해외에 나가면 여전히 ‘누구를 만나느냐’ ‘우리나라보다 강대국을 언제 만나느냐’를 먼저 따집니다. 하지만 근대적인 사고방식은 우리보다 강대국이 아니라도 경제영토가 늘어날 만한 결과물을 내놓을 정상(頂上)이면 만나는 겁니다. 해외 정상회담을 갈 때 ‘호주는 한 번 갔으니 다음에 간다’ ‘지난번에는 우리가 독일을 방문했으니 이번에는 독일 정상이 한국을 방문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이것은 개도국적인 마인드입니다. 강대국적인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은 ‘만약 호주가 우리에게 이득이 되면 1년에 5~6번이라도 가야 한다’고 해야 합니다. 이러면 일부에서는 ‘호주만 편애하는 것이냐. 국빈 방문을 할 때 세금이 들어가는데 중복투자 아니냐’고 합니다. 저는 근대적인 강대국 사고방식을 하는 지도층은 절대 이런 사고방식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트럼프 대통령이 G7 정상회의에 참석했다가 중간에 박차고 나와서 조기 귀국을 했죠. 그걸 외교적 결례라고 말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겁니다. 중간에 회담을 박차고 나가더라도 미국에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근대적인 사고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통상 있었던 행동방식을 지키지 않았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말합니다. 제가 볼 때 오늘날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도층은 시장 중심으로 마인드를 합리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저항의 축’은 전근대적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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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과 관련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방송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
“그래서 ‘가치’의 문제가 나오는 겁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근대에는 자유·인권 등의 가치가 명확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가치는 결코 이익 실현과 위배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유·인권·평등 등의 가치는 시장 때문에 나왔습니다.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가치가 나온 겁니다. (기회의) 평등이 없으면 신뢰자본이 깨지고 시장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또 자유가 없으면 국가가 언제든 개인의 영역과 재산을 침범하고, 인권이 없으면 노동자를 학대하게 되고 결국은 시장이 교란됩니다. 시장이라는 근본적인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자유나 인권·평등이라는 가치가 나온 겁니다. 인류 보편적이라는 말은 세계가 시장을 공유하고 있기에 나온 말입니다. 서양 사람들만의 특수한 가치가 아니라 ‘시장을 공유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서’ 나온 말입니다. 이들 가치가 점점 진화되어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계몽주의가 아닙니다. 근대 질서가 잘 돌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가치입니다.”
― 결국 모든 것은 시장을 위해 존재한다는 얘기네요.
“시장에서 가격의 효율성을 따지는 것만큼 보편가치가 잘 쓰이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유를 억압하고,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공급망을 교란시키고, 공급망을 무기로 희토류를 지배하는 국가와 안심하고 시장을 공유할 수 있을까요? 그런 차원에서 시진핑의 시각은 전근대적이며, 푸틴과 같이 땅따먹기 지정학(地政學)에 집착하는 사람, 이란·북한과 함께 전근대적인 ‘저항의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중국·러시아·이란·북한이 연합하는 것은 이들의 국가 시스템이 공통적으로 전근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들끼리 친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전근대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근대적 가치를 공유하는 자유주의 국가들에 저항하면서 그들끼리 뭉치는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안보정책 중에 ‘우크라이나를 종전(終戰)시키겠다’ ‘이스라엘을 종전시키겠다’ ‘북한의 핵(核)을 포기시키겠다’고 하면서 제안한 해법을 보면 모두 지극히 시장 중심적인 해법들입니다.”
“트럼프는 똑똑한 사람”
― 요즘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세라서 자꾸 언급할 수밖에 없긴 한데, 트럼프의 시각에 동조하시는 건가요?
“저는 트럼프 대통령이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파워의 개념을 말하자면, 소프트파워와 하드파워를 처음으로 구분한 학자는 미국의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Joseph Nye)입니다. 그는 1970~80년대 미국이 군사력과 경제력 같은 하드파워에서 약해졌지만, 국제적 리더십과 매력이라는 소프트파워에서는 아직 강고하기 때문에 미국의 패권은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조지프 나이의 구분에 의하면 하드파워는 강제력에 해당하는 힘이고, 소프트파워는 매력, 혹은 자발적으로 나를 따르고 도와주게 하는 힘입니다. 당시에는 소프트파워라는 개념에 많은 사람이 비판적이었지만, 이제는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흔히 하드파워를 군사력·경제력으로 이해하고, 소프트파워는 문화·제도·선진성으로 이해합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에서 이런 힘을 발휘한 국가는 압도적으로 미국이었지만, 미국 혼자서 다 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강대국의 협조가 없으면 다자(多者)주의 제도·규범·법을 만들고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을 포함한 강대국들이 함께 ‘강대국 클럽’을 만들고, 그 클럽 안에서 의제를 설정하고 협상하고 협력하고, 자신들이 글로벌 시장을 합리적으로 유지하는 책임을 지게 되는 겁니다. 그것이 미국의 소프트파워에 의해 만들어진 G7이고, NATO·한미동맹·미일동맹과 같은 제도화된 동맹입니다. 강대국이 협의한 법·규범·제도가 다자주의로 글로벌화한 것이 GATT, WTO 같은 다자주의 시장제도이고, 여기에 더해서 지역 차원에서 자유무역협정(FTA)이 제도를 보완하고 더욱 촘촘히 만들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소프트파워에는 매우 약하지만, 지금은 비상 상황이라 신속하고 강력하게 자신의 해법을 밀어붙이는 방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실용이라는 이름의 균형 외교는 매우 위험”
― 오늘날 WTO, NATO 등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제도·규범이 첨단 기술이나 새로운 이슈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중국이 시장질서를 왜곡하면서 그런 얘기들이 나왔지만, 그럼에도 시장에 제도·규범·법이 없으면 세계 자유무역 질서는 지켜지지 않습니다. 시장과 자유무역이 열려 있는 한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앞으로도 지속할(sustainable) 겁니다. 물론 시장을 넘어선 새로운 방식으로 전 세계인이 먹고살 수 있는 방식이 나온다면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다른 질서로 대체되겠지만요. 하지만 요즘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키기 위한 가장 강력한 교정기(期)입니다.”
이근 교수는 국제질서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여러 번 자신의 세계관을 바꾸었다고 했다. 처음에 대학에서 국제정치를 공부할 때와 미국에서 유학하며 심층적으로 연구했을 때, 또 이후에 세계가 급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신뢰하는 사람이 됐다고 했다. 그는 “시대에 맞게 나의 철학적 가치관을 바꾸는 과정에서 주류 학계로부터 이단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며 웃었다.
― 이재명 대통령이 ‘친미(親美)이자 친중(親中)’이 되는 실용주의 정책을 펴겠다는 제스처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중국이 2001년 WTO 체제에 들어가고 자유주의 국제질서에서 ‘개도국 중국’ 시장이 커질 때는 가능한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시진핑 시대가 시작되면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 등으로 건설하려는 ‘천하(天下)경제권’ 체제에서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요? 중국은 한국을 강대국으로 대우하기보다는 소국으로 취급하려 할 겁니다. 중국은 아시아의 맹주이고, 가능한 한 아시아 국가들을 중국의 경제권으로 흡수해서 약한 국가로 만들려고 할 겁니다. 문재인(文在寅) 전(前) 대통령이 중국에 가서 ‘혼밥’을 먹고 온 것으로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중국은 우리가 친근감을 보일수록 오히려 ‘천하질서’의 소국으로 취급할 겁니다. 지금 실용이라는 이름을 빌려서 하는 이른바 ‘균형 외교’는 매우 위험합니다.”
“균형 외교는 허상이고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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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UH-60 블랙호크 헬기가 이륙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
“그렇게 보입니다. 중국의 패권 질서 구축을 용인하지 않으려는 트럼프의 세계관과 협상 전략을 감안하면, 우리가 중국에 치중하는 외교를 펼칠 경우 아주 강력한 카드를 쓸 것으로 예상합니다.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한미동맹의 근간마저 흔들 수도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벙커버스터로 때렸습니다. 강력한 카드를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겁니다.”
― 일부에서는 트럼프가 블러핑(buffing) 한다고 했지요.
“트럼프가 말 바꾸기를 자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협상력이 떨어진다고 느끼니까 필요한 순간에 강력한 카드를 쓴 겁니다. 일본과의 협상에서도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한국이 철저하게 미국과 같은 방향으로 간다는 것을 보여 주지 않으면 극단적인 카드를 쓸 겁니다.”
― 우리가 중국에 붙어서 얻을 것이 있습니까?
“현재의 추세라면 중장기적으로 중국의 속국이 될 뿐입니다. 중국은 한국을 강한 국가로 키워 주지 않습니다.”
“현재 20대가 가장 근대적인 시민”
― 전근대, 근대 얘기를 많이 했는데, 역대 정부 중 가장 근대적인 정부는 어디였습니까?
“저는 박정희 정부와 노태우, 노무현 정부가 가장 근대적인 정부였다고 평가합니다. 박정희 정부는 자유시장경제로 갔고, 근대화에 성공했습니다. 그 과정이 강압적이었지만요. 노태우 정부 때는 고속철도, 인천공항을 건설하고 대륙의 시장을 개척하는 북방외교에 성공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정보화에 성공했고 선진적인 제도에 대해 이해하는 정부였습니다.
사실 정부보다도, 가장 근대적인 사고(思考)를 한 사람은 정주영·이병철·김우중 같은 기업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은 철저하게 시장에 맞춰서 전략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성공한 기업인은 가장 근대적인 사고를 한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근대적이며 훌륭한 사람은 기업을 세워서 많은 사람을 고용하는 사람들입니다.”
― 우리가 왜 이렇게 선진 시민의식이 낮을까요?
“전근대 정신이 관성처럼 남아 있어서죠. 우리나라 근대화의 역사는 1960년대 이후부터입니다. 국가의 경제력은 강해졌지만 국민의 사고방식은 그 정도로 근대화되지 않았습니다. 근대의 하드웨어는 박정희의 리더십에 발맞춰서 수입됐지만, 실제로 운용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이나 고관이 되면 왕인 양 착각을 하고, 고위직의 권한을 권력으로 착각합니다.”
― 권한과 권력은 어떻게 다릅니까?
“권한은 특정한 한계 내에서만 쓸 수 있는, 나에게 주어진 힘이죠. 하지만 권한을 넘어선 권력은 무소불위의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공(公)과 사(私) 구별을 하지 못합니다. 물론 미국이라고 해서 모든 국민이 근대화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국민의 근대화가 지체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끔 정치평론가들의 얘기를 들을 때 느낍니다. ‘윤석열을 배신했다’ ‘참모가 잘 모셨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런 시각은 전형적인 군주제의 행태입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그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데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이 가장 주효(奏效)하지 않았을까요? 그건 법에 충성한다는 얘기인데, 법과 가치에 충성하는 것이 근대적인 생각입니다. 누구를 배신하고, 잘 모시고 그런 차원의 얘기가 아닙니다. 이런 차원에서는 좌파나 우파 모두 똑같습니다. 저는 현재 20대가 가장 근대적인 시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을 잃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 왜 그렇습니까?
“20대는 주식에 투자하는 자연스러운 시장 참여자들입니다. 이들은 회식 문화를 합리적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장들이 ‘회사 성과를 잘 내기 위해서 우리끼리 화합하자’고 하는데, 20대의 생각에는 ‘회사 성과를 잘 내려면 인센티브를 주면 되는데 왜 회식을 하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근대화된 사고방식입니다. 20대는 좌파 우파, 보수 진보가 없습니다. 시장의 참여자가 되어서 직접 플레이어로 뛰면 사람은 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됩니다.”
― 너무 근대적 인간을 따지면 정이 없다, 기성세대와 각을 세운다는 비판들이 있을 것 같네요.
“흔히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고 하는데, 이 또한 전근대 시대에나 맞는 말입니다. 질서가 정체(停滯)된 전근대 시기에는 어떤 민족이 어떤 때 쳐들어오고, 어떻게 국정을 운영하고, 어떤 경우를 위기로 여겨야 하는지가 과거 역사에 교과서처럼 다 들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전근대의 교훈을 오늘날의 정치·경제·문화에 접목할 수 있을까요? 전혀 다른 시대의 교훈을 오늘날에 접목하면 오히려 문제가 불거질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을 요즘 말로 꼰대라고 합니다. 저는 오히려 ‘시장과 합리성을 잃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바꿔 표현하고 싶습니다.”
― 책 제목처럼 2030년까지 우리나라가 강대국이 될 수 있습니까?
“강대국의 하드웨어는 거의 다 갖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강대국적인 사고와 행동입니다. 한국은 강대국적 사고를 하지 않고 다른 강대국과 같이 노는 것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 국가에 가면 대접 받고 맹주 노릇을 하니까 거기에 가면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틈나는 대로 강대국의 모임에 참석해야 합니다.”
G7에서 한국을 부르도록 노력해 정식 멤버가 되어야 하고, 모든 강대국 모임에 항상 끼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생각이다. 한미 정상회담 때는 미국 수준의 어젠다를 우리도 만들어 회담문을 만들고, NATO에서도 어젠다를 먼저 세팅하고 우리가 선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Creative 5’

“그런 차원에서 저는 ‘C5’, 즉 ‘Creative 5’를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문화영토가 큰 국가들끼리의 모임을 만드는 겁니다. 현재 문화산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우리나라와 미국·영국·일본·프랑스를 묶어서 ‘신(新) 문화 강국’ 모임을 만드는 겁니다. 이들끼리의 정상회담은 기존의 딱딱한 회담이 아니라 페스티벌 형태로 자유롭게 합니다. 한국의 문화산업 경쟁력을 만천하에 알리고 첨단산업 기술력,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정상 페스티벌로 만들어서 국민의 관심도 이끌어 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렇게 ‘다이내믹 코리아’를 새롭게 만들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다른 강대국과 함께 있는 한국의 모습이 보이면 국제사회가 한국을 강대국으로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국민은 시대에 걸맞은 가장 근대화된 국가와 세계관을 가져야 합니다. 빠르게 시대의 흐름을 읽어서 국가의 방향을 제시하고, 강대국이 돼야 합니다. 그게 우리의 생존 전략이자, 세계를 리드할 수 있는 선도 산업국가가 되는 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