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중국 입국 거부당한 고구려 연구자 서길수 이사장

“우크라이나 전쟁 원인도 역사적 영토 문제가 바탕”

  • 글 : 백재호 월간조선 기자  1ooh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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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 동북공정 성공적으로 끝내…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한국은 사실 중국의 일부’라고 한 것이 그 예”
⊙ “오전에만 여권 검사 세 번… 옌볜 호텔선 화장실도 한 사람씩, 公安이 동행”(답사단원)
⊙ “중국, 한국사 중 고조선·부여·고구리·발해 역사 3000년 훔쳐 자기네 역사化”
⊙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모두 일본사 전공자나 정치학자들… 中 동북공정 맞서 싸워 보지도 못해”

徐吉洙
1944년생, 국제대학교(現 서경대학교) 경제학 학사, 단국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박사 / 서경대 금융경제학과 교수(1979~2009년), 경제사학회 부회장(1996~1997년), 문화재관리국(現 국가유산청) 북한문화재연구위원(1997~2001년), (사)고구려연구회 이사장(1994~2007년) 역임. 現 고구리·고리연구소 이사장(2007년~), (사)고구려발해학회 고문(2013년~), 세계에스페란토협회 명예회원(2016년~)
사진=백재호
지난 5월 6일 서길수(徐吉洙·81·前 서경대 교수) 고구리·고리(고구려·고려)연구소 이사장은 10년 만에 ‘고구려·발해 유적 답사단’ 16명과 중국행 비행기를 탔다. 하지만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밟던 중 서 이사장은 중국 입국을 거부당했다. 현장에서 입국 거부 이유를 수차례 물었지만 공항 측의 답변은 “모른다”는 말뿐이었다. 서 이사장은 그렇게 공항 보안 담당 직원에 이끌려 출국장으로 되돌아갔고, 그 직원은 서 이사장의 여권을 대한항공에 넘겼다. 그는 한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린 뒤에야 여권을 되돌려받을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주(駐) 선양 한국 총영사관을 통해 입국 거부 이유를 알아보았지만 총영사관 측 역시 “중국 측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어 재차 확인 중”이라고만 했다.
 
  서 이사장은 “지금까지 고구려 유적 답사 등의 목적으로 30차례 넘게 중국에 입국했고, 마지막으로 중국에 갔던 2015년에도 입국에 별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입국 거부를 겪고) 시진핑 체제 하 중국의 대외적 태도가 대단히 경직화됐다는 것을 느꼈다”며 “(당시 공항에서) 차라리 체포라도 됐다면 국가적 보호와 국민적 관심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 했다.
 
 
  공안 차량 두 대가 항상 따라붙어
 
  서길수 이사장은 입국을 거부당한 자신만 빼고 중국에서 어렵사리 답사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답사단의 소감을 기자에게 보내 줬다.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나 싶었다. 여행 내내 수사 수준의 조사를 받았다”고 쓴 문장이 눈에 띄었다. 나머지 답사단 일행도 현지 공안(公安)의 과도한 감시와 제한으로 극심한 불편을 겪었다고 한다. 한 단원은 “마치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이동의 자유는 물론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통제받았다”고 증언했다. 또 “여행 첫날부터 학력과 직업을 적으라고 해, ‘관광에 그런 정보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항의했다”고 했다.
 
  “감시는 내내 삼엄했습니다. 이동 중에는 차량 앞뒤로 공안 차량 두 대가 그림자처럼 항상 따라붙었는데 그중 한 대는 번호판조차 없었습니다. 선양부터 옌지(延吉)까지 10여 개 도시를 이동하는 내내 우리 동선(動線)은 공안 손바닥 위에 있었습니다. 한번은 지그재그로 꺾이는 좁은 산길을 지나다가 고장 난 덤프트럭 때문에 호텔 도착이 늦어지자 ‘왜 아직 호텔에 도착하지 않았느냐’는 연락까지 왔습니다. 우리 일정을 다 꿰고 있었던 겁니다.”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에 들어서자 감시는 극에 달했다.
 
  “호텔 체크인 때는 여권을 들고 얼굴 사진까지 찍었습니다. 다음 날 오전에만 여권 검사를 세 번이나 받았고, 화장실도 공안이 따라붙은 채 한 사람씩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당초 계획했던 유적지 방문도 거의 불가능했다. 주요 고구려·발해 유적지는 ‘공사 중’ 혹은 ‘군사 훈련 중’ 등의 이유로 모두 차단됐다. 답사단원들은 “계획에 없던 옌볜박물관과 발해 테마파크, 오대징(吳大澂·청나라 외교관)박물관 같은 곳에 안내받았다”고 한다. “특히 조·중·러 국경 지대인 팡촨(防川) 삼각주는 고속도로를 통해서만 가도록 허락받았고, 그마저도 도중에 검문이라는 명목으로 심문을 받았다”고 했다. 다른 단원은 “직업을 이미 제출했는데도 또다시 ‘어느 학교에서 무슨 과목을 가르쳤는지’ ‘어떤 회사에서 어떤 직책이었는지’ 하나하나 물어봤다. 자영업자는 업종까지 적으라고 했다”고 했다.
 
 
  “고구려가 아니라 고구리·고리”
 
서길수 교수는 1990년 중국 지린성에 위치한 고구리 옛 수도 환도산성에 올라 고구리 연구를 결심했다. 사진 속 멀리 국내성과 압록강이 보인다.
  “백 기자, ‘고구리’ ‘고리’라고 압니까?”
 
  지난 6월 1일 (사)고구리·고리연구소에서 만난 서길수 이사장의 첫 질문이었다. 서 이사장은 지난 35년간 ‘고구리’를 전문으로 연구해 온 역사학자다.
 
  “고구려(高句麗)를 말씀하시는 것이냐”고 되묻자 그는 “고구려가 아니라 ‘고구리’ 혹은 ‘고리’라 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우리가 고울 려(麗)로 읽는 한자는 고유명사일 때는 ‘리’로 읽어야 한다는 것.
 
  “고구리는 장수왕(長壽王·394~ 492년) 11년(423년)부터 ‘고리(高麗)’라 썼고 그 뒤에는 단 한 번도 ‘고구리’라 쓰지 않았어요. 평양 천도(遷都)와 함께 정식 나라 이름을 고구리에서 고리로 바꾸었지요.”
 
  서 이사장은 ‘고구리 연구의 아버지’다. 고구리 연구를 위해 중국만 30차례 다녀오는 등, 20년 동안 만주와 몽골을 누비며 131개의 성(城)을 답사한 고구리 산성 연구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1994년에는 경복궁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고구리 특별대전(大展)’을 열어 고구리 역사의 대중화에 앞장서기도 했다. 고구리와 관련된 저서와 논문만 해도 각각 30여 권, 100여 편에 달한다.
 
 
  ‘쇠말뚝 교수’
 
  원래 서길수 이사장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가르친 경제학자였다. 석·박사 학위도 역사학이 아닌 경제학이었다.
 
  ― 어떻게 역사학자의 길을 걷게 됐습니까?
 
  “처음에는 고구리 역사 연구가 아니라, ‘쇠말뚝’을 뽑으려 1984년부터 전국을 다녔어요. 내 별명이 ‘쇠말뚝 교수’입니다.”
 
  서길수 교수의 쇠말뚝뽑기운동은 일본에도 전해져 일본 후지TV에서 3박 4일간 서 교수를 취재하러 오기도 했다.
 
  “우리 국민들의 마음에 있는 열등(劣等)의식을 뽑기 위해 쇠말뚝을 뽑았지요.”
 
  ― 우리는 결코 열등하지 않은데요? 살아오면서 그렇게 느껴 본 적 없습니다.
 
  “(웃음) 우리는 긴 역사를 가진 우수한 민족이고 숱한 고난을 이겨 냈지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타 국가에 의존해 왔습니다. 열등의식이라고 말하는 건, 이제는 자주(自主)정신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광개토태왕碑 보고 고구리 연구의 길로
 
지난 2022년 고구리·고리연구소에서 발행한 《동북공정 백서》.
  서길수 교수는 한중 수교 6년 전인 1986년 세계에스페란토(Esperanto·국제적으로 소통되는 공용어를 목표로 한 인공어)협회 임원 자격으로 중국을 처음 방문했다. 공식 일정 뒤 백두산 방문을 희망했지만, 끝내 무산됐다.
 
  “그래도 백두산 방문을 포기할 마음이 없었어요. 1989년 11월에 에스페란토 대표임원으로 다시 중국을 갔습니다. 이번에는 베이징 일정이었죠. 일정에 좀 여유가 있어서 곧바로 지린(吉林)성 성도(省都)인 창춘(長春)시에 갔습니다. 거기서 ‘지린성박물관’에 갔는데, 거기 안내에 부여(扶餘)·고구리·백제가 중국 지방민족으로 설명되어 있는 겁니다.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이왕 거기까지 갔으니 이번에는 백두산을 꼭 보고 싶었습니다.”
 
  서 교수는 중국 공안과 함께 백두산으로 향해 결국 천지(天池)를 보고 내려왔다고 한다.
 
  ― 어떻게 공안의 협조를 받을 수 있었습니까?
 
  “중국에서는 꽌시(關係·인맥)가 중요하거든요. 아무튼 그렇게 백두산을 보고, 곧바로 베이징으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고구리 수도였던 국내성[國內城·現 지안(輯安)]도 보고 싶어서였죠. 한 조선족 청년의 안내로 국내성과 장대한 광개토태왕비(廣開土大王碑)와 함께 환도성(丸都城)까지 보며 우리 민족도 강성했던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구리 연구에 매진해 민족사를 살려 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중국 중원(中原)을 호령하던 수많은 나라가 명멸(明滅)해 간 과정에서, 고구리도 분명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단적인 예로, 고구리가 존속한 기간(기원전 37~기원후 668년) 동안 중원에서 35개 정권이 수립됐다가 사라져 갔습니다.”
 
  ― 중국은 고구리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봅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일환인 ‘고구려 지방정권론’인데, 그 논리를 제가 꾸준히 비판해 왔어요. 중국은 고구리가 중국에 조공(朝貢)한 나라이기에 중국의 속국(屬國)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조공과 책봉(冊封)은 당시 동아시아의 외교 관례, 명목에 불과했어요. 중국의 논리대로면 한반도뿐 아니라 정기·부정기적으로 중국에 조공한 일본, 베트남, 튀르키예도 똑같이 중국의 역사로 봐야 하는데, 가당치도 않습니다.”
 
  서 이사장은 “무려 45년 전인 1980년 시작된 동북공정은 이미 2009년에 성공적으로 끝났다”면서 “이미 그 사실을 국민에게 ‘계몽’하는 단계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 단적인 예가 지난 2017년 4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당시 1기)에게 ‘한국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Korea used to be a part of China)’라고 말한 것입니다. 중국 내 모든 고구리 유적지와 관련 박물관만 보더라도 ‘고구리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라 이미 명시해 놨습니다. 중국 언론들이 한국의 전통 복식인 한복(韓服)을 ‘중국에서 넘어온 한푸(漢服)’라고 왜곡하거나 한국의 전통 발효식품인 김치를 파오차이(泡菜)라 주장하는 것도 역사적 뒷받침을 이미 마친 뒤 자신감을 가지고 문화 침탈을 하는 것입니다.”
 
  ― 우리 정부는 그에 맞서 적절한 대응을 하고 있습니까?
 
  “대응을 하긴 합니다. 지난 2004년 국가 연구기관으로 ‘고구려연구재단’을 만든 게 그 예지요. 하지만 고구려연구재단은 중국과의 학술회의에서 중국의 역사 침탈을 학술적으로 밝혀 비판하거나 고구리 역사가 우리 역사라는 것을 제대로 주장하지 못했어요. 고구려연구재단은 2006년경 동북아역사재단에 흡수됐는데 이후의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모두 일본사 전공자나 정치학자들이 맡아서,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싸워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3000년 우리 역사를 중국에 내주게 됐습니다.”
 
 
  “고구리·발해 연구자들, 중국 눈치 보며 연구하는 게 현실”
 
서길수 교수는 지난 2007년 10월 대한민국·북한·러시아 3국 국제학술대회에서 동북공정 문제를 발표했다. 이는 남북이 처음 동북공정에 대해 함께 논한 자리였다. 맨 오른쪽 하단이 서길수 교수다.
  1994년 6월 24일 서길수 교수는 서경대 내 자기 연구실에 ‘고구려연구소’를 세웠다. 21년이 지난 지금은 ‘고구려발해학회’로 바뀌어, 서 이사장의 뜻을 이어 후배 연구자들이 고구려·발해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고구려발해학회 학술회의에서 강연과 논문 발표를 하던 중 ‘중국의 역사 침탈’이라는 말을 쓰니 후배 연구자들이 ‘역사 왜곡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해 깜짝 놀랐어요. 후배 학자들이 중국의 눈치를 보며 연구하고 있는 것이죠. 물론 중국의 동북공정이 잘못이라는 데는 학자들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지만, 중국이 무서워서 말을 못 하는 겁니다. 저처럼 중국 입국이 거절되면 현지 연구는 앞으로 어렵게 되니까요. 실제로 우리 쪽의 한 학자가 ‘백두산이 우리 역사’라고 했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쫓겨난 적도 있습니다.”
 
  ― 이사장님을 이을 만한 후배 학자는 있습니까?
 
  “참 아끼던 박사가 있었는데 지난 2016년에 일찍 세상을 떴습니다. 현시점에서 제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할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고구리·발해 연구로는 밥 못 먹고산다’는 말이 있지만, 각 대학은 물론 동북아역사재단에서도 고구리와 발해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상황을 보면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반면 중국은 사범대학마다 역사학 석·박사 과정을 개설하고 국가가 주도해서 역사학자들을 양성하고 있고, 일자리도 보장합니다. 이렇게 한 해 양성되는 인력만 수천 명에 달할 겁니다.”
 
  ― 북한의 연구 상황은 어떤가요?
 
  “불행중다행으로 북한에서도 2007년부터 동북공정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남한)는 자체적으로 고구려를 연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지리적인 이유에서죠. 북한에서 백제와 신라를 연구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집니다. 고구리 학술연구를 목적으로 한 남북 협력 사업이 다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실제로 2007년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김일성종합대 소속 교수들과 한국 교수진들이 러시아 학자들과 함께 학술대회를 진행한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 저와 북한 교수들은 ‘고구리를 둘러싼 정치문제(동북공정)를 배제하고 오직 고구리에 대한 순수 학술 연구를 진행하자’고 했었지요.”
 

  서길수 이사장은 “중국이 고구리 유적지들을 관광 자원으로 개발하면서 이제는 유적 원형(原形)을 볼 수 없게 됐기 때문에, 제 연구실에 있는 자료 중 일부는 이제 중국에도 없는 희귀 원본이 됐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서적 등 연구 자료를 북한으로 보내 고구리 연구에 보탬이 되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 예전이었다면 간첩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2000년 민족사를 되찾는 데 남북한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끼어들면 안 됩니다. 역사에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야말로 역사가 평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시아 공동 역사서 쓰는 게 꿈”
 
  역사학자로 변신한 서길수 이사장의 남은 꿈은 20개국의 역사학자들을 초청해 최초의 아시아 공동 역사서를 쓰는 것이었다. 20개국은 중국과 육상에서 국경을 맞댄 14개국(몽골 러시아 북한 인도 네팔 부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베트남 라오스)과 해상으로 연결되는 6개국(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이다.
 
  ― 한중일 3국은 없군요.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20개국이 먼저 함께 공동대응한다면 아무리 중국이라 해도 그 영향력을 외면할 수 없을 겁니다. 또 아시아 공동 역사서 쓰는 일에 한중일까지 23개국이 다 참여한다면 아시아는 적어도 역사 갈등 없는 대륙이 될 겁니다. 중국의 역사 침탈의 해결책은 ‘오수부동(五獸不動·닭 개 사자 호랑이 고양이의 다섯 짐승이 한곳에 모이면 서로 두려워하고 꺼려 움직이지 못하듯, 사회 조직이 서로 견제하는 여러 세력으로 이루어져 있는 상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전체의 역사’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를 꼭 가지길”
 
  ― 역사학자로서 젊은 세대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올바른 사관(史官)과 사론(史論)을 가졌으면 합니다. 앞으로 젊은 세대가 우리 역사를 바라볼 때는 ‘전체의 역사를 정립’하는 데 목적을 두길 바랍니다. 단순히 역사적 사건 하나하나에 치중하는 건 이제 지양해야 합니다. 단적인 예로 많은 이들이 ‘우리 민족’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막상 우리 민족이 뭐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 해요. 그 이유는 그동안 우리는 역사를 단순히 ‘사실이다, 아니다’라는 관점에서 주로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보고 싶은 역사’가 아닌 ‘전체의 역사’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를 꼭 가지길 바랍니다.”
 
  서길수 이사장은 “무엇보다도 중국이 우리 역사 가운데 고조선·부여·고구리·발해 역사 3000년을 훔쳐 가 자기 역사로 만들고 그것을 백과사전까지 고쳐 일반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내가 《동북공정백서》(2022년)를 냈지만,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어요. 지금 2030세대는 동북공정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왜 중국이 한복과 김치를 자기네 것이라고 하는지 모르고 감정적으로만 대하고 있는 듯합니다. 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뚜렷한 역사관을 가지고 우리 역사의 정체성(正體性)을 확고하게 하는 연구를 해야 합니다. 중국이 무슨 논리로 고조선·부여·고구리·발해사(史)를 자기 역사라고 하는지 알고 대처해야 합니다. 현재 진행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원인도 역사적 영토 문제가 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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