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정갑윤 ㈔한국차인연합회 회장

“차인(茶人)에겐 남북도, 동서도 없다… 우리는 하나”

  •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 글 : 고기정 월간조선 기자  yamko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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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의 날’ 45주년 맞아 국회에서 행사 개최
⊙ “‘차에 카페인이 많다’는 건 오해… 첫째 잔만 피하면 괜찮다”
⊙ “차 접한 뒤 ‘피가 참 깨끗하다’ 소리 들어”
⊙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 재직하며 ‘폭탄 돌리기’ 정리했다”
⊙ “신뢰를 쌓고 이해하려는 자세만 있다면 충분히 화합 가능”

鄭甲潤
1950년생. 울산공과대학(現 울산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同 대학에서 산업관리공학 석사 학위 취득 / 제16·17·18·19·20대 국회의원(5선), 제19대 후반기 국회부의장, 現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 ㈔한국차인연합회 회장
사진=조준우
다선(多選) 정치인은 정치판을 떠나도 쉴 수 없다. 지난 2020년 5월 정계를 떠났지만, 여전히 정갑윤(鄭甲潤·74) 전 국회부의장을 찾는 이들이 많다. 그는 지난 3월 11일, ㈔한국차인연합회 제16대 회장에 취임하며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 5월 25일에는 국회에서 ‘제45회 차(茶)의 날’ 행사를 열었다. 이 행사에는 1300여 명이 참가했다.
 
  — ㈔한국차인연합회와는 어떻게 인연이 됐습니까.
 
  “서운(西雲) 박동선(朴東宣) 이사장과의 인연이 저를 차인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 박동선 이사장이면, 1970년대 후반 ‘코리아게이트’의 그분이죠?
 
  “네. 박 이사장이 저를 ㈔한국차인연합회에 추천해 주었죠. 제가 국회부의장으로 있을 당시, 한국-중동의원외교포럼을 개최했는데 박 이사장을 고문으로 모시기도 했습니다. 그 인연이 이어져 국회에서 차의 날 행사를 열 수 있도록 돕는 등 자연스럽게 관계가 깊어졌습니다.”
 
  — 지난 5월 25일, 국회에서 차의 날 행사가 열렸습니다.
 
  “제가 회장으로 취임한 것이 3월 10일입니다. 짧은 시간 안에 행사를 준비해야 했기에 쉽지 않았습니다. 직접 회원들에게 수십 통의 전화를 돌리며 참여를 독려했죠. 다행히도 많은 분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셔서 행사를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차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 특별히 국회에서 행사를 개최한 이유가 있나요.
 
  “올해는 차의 날 4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긴 역사를 가진 단체는 갈등도 있기 마련이죠.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등 외부에서 보기에는 다소 불편한 모습도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민의(民意)의 전당’인 국회에서 차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마음을 하나로 모으자고 제안했습니다. ‘차인에겐 남북도, 동서도 없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전국적인 참여를 유도했습니다.”
 

  — 사이가 멀어진 사람들도 행사에 참석했나요.
 
  “많이 오셨습니다. 우리 연합회 회원이 아니더라도, 차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해 한마음 한뜻이 되었습니다. 차라는 매개체가 사람과 사람을 다시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 이번 차의 날 행사에는 경남 하동군과 전남 보성군도 함께 참여했더군요. 동서 화합의 의미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 솔직히 하동 차와 보성 차, 둘 중 어디 차가 더 맛있습니까.
 
  “서로 자기 고장의 차가 맛있다고들 하지만, 실제로는 비슷합니다. 어느 한쪽이 더 낫다고 말하기 어렵죠. 제 입맛에는 다 맛있습니다.”
 
 
  “차 접한 이후, 의사가 ‘피가 참 깨끗하다’ 해”
 
2025년 5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차의 날’ 행사에서 정갑윤 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한국차인연합회
  — 차 문화의 원조(元祖)는 역시 중국이겠죠?
 
  “중국은 차 문화가 식생활의 일부입니다. 과거에는 깨끗한 물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맹물을 그냥 마시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예전에 대만을 방문했을 때, 비가 많이 와서 저수지 주변 나무들이 침수됐던 적이 있습니다. 물이 빠지고 나니 잎사귀가 석회질로 하얗게 변해 있더군요. 요즘은 정수(淨水) 시스템이 발달했지만, 1980~90년대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서민들은 생수를 사 마시는 게 힘들었죠. 이런 환경이 차 문화 형성에 영향을 줬다고 봅니다.
 
  또 하나는 중국의 흡연 문화입니다. 1989년, 국회의원이 되기 전 상하이(上海)를 방문했는데, 현지 사람들이 아주 독한 담배를 자주 피우더군요. 술도 많이 마십니다. 이런 자극을 해독(害毒)하려는 목적도 있었겠죠. 거기에다 중국 음식은 기름기가 많습니다. 차가 기름기를 줄여주다 보니 자연스럽게 식문화 속에 녹아든 것이라 생각합니다.”
 
  — 한국에도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만, 카페인 때문에 부담스러워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차에 들어 있는 카페인은 커피보다 훨씬 적습니다. 특히 녹차는 아주 미량(微量)이고, 홍차는 비교적 많지만 그래도 커피보다 적습니다. 게다가 차에는 카테킨, 아미노산 같은 성분이 들어 있어서 체내 흡수가 잘 안 되고 금방 배출됩니다. 실제로는 카페인이 거의 작용하지 않아요.”
 
  —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을 설칠 때가 많은데, 차는 괜찮은가요.
 
  “충분히 마셔도 됩니다. 특히 오후나 저녁에도 즐길 수 있어요. 커피는 한 번 타면 그대로 마시지만, 차는 80℃ 이상에서 우리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렇게 우릴 경우 첫 잔에 카페인이 거의 다 우러나옵니다. 그러니까 첫째 잔만 피하면 됩니다. 둘째 잔부터는 카페인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 대신 밤에 화장실을 좀 자주 드나들어야 할 것 같네요.
 
  “그건 혈액순환이 잘된다는 뜻이죠. 사실 저는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당시, 혈관에 스텐트를 삽입하는 시술(혈관성형술·Stent Insertion)을 받았습니다. 이후로 혈액순환을 위해 꾸준히 약을 먹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아스피린(Aspirin)을 만병통치약으로 오해하더군요. 장기 복용하면 위를 해치고, 위염·위궤양, 심하면 위암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차를 즐기기 시작한 뒤 의사들이 ‘피가 참 깨끗하다’고 말합니다. 저는 차가 혈액순환에 큰 도움을 줬다고 믿습니다.”
 
 
  “아내가 먼저 다도 배워”
 
  — 사모님께서 먼저 다도를 배우셨다고요.
 
  “네. 한국다도대학원도 나왔습니다.”
 
  — 대학원 재학 기간은 어떻게 됩니까.
 
  “기본 1년이고, 심화 단계까지 다니면 총 2년입니다.”
 
  — 2년 동안 무엇을 배웁니까.
 
  “커리큘럼을 보면, 전도 예절부터 시작해 차의 고전, 인문학, 자연과학 다 공부합니다. 차를 마시고 품평하는 것은 물론 중국이나 일본의 차 문화에 대해서도 배우죠.”
 
  — 현대 사회인들은 대부분 커피를 달고 삽니다. 차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서운하진 않나요.
 
  “차나 커피나 어디까지나 기호식품입니다. 자기 취향에 맞게 마시면 된다고 생각해요. 다만 출근길이나 점심시간 후에 사람들이 큰 커피잔을 들고 다니는 걸 보면 ‘참 많이도 마신다’는 생각은 듭니다.”
 
  — ㈔한국차인연합회 차원에서 차를 대중화하거나, 젊은 층을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는 하고 있나요.
 
  “이번 차의 날 행사를 맞아 SNS를 통해 일반인 참가자를 모집했는데, 금세 마감됐습니다. 총 48개 팀이 참여했고, 격식 없이 자유롭게 차를 즐길 수 있도록 했어요. 저는 이런 사소한 경험이 차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중일의 차 문화
  “한국의 다례, 지나친 형식보다는 자연스러움 중시”

 
  16세기 후반 승려인 센 리큐(千利休·1522~1591년)가 정립했다는 것이 통설인 일본식 다도(茶道) 문화는 당시 사무라이들의 예절과 일본식 연극인 노카구(能樂)의 영향이 강하게 반영돼 매우 깍듯한 예의와 철저히 지키는 순서가 특징이다. 이 때문에 다도는 외국인에게 비치는 일본인들의 깍듯한 예의범절 이미지의 대표적인 예시가 되기도 한다. 현대 일본에서는 신부수업의 한 과정으로 여기기도 한다.
 
  정인오 ㈔한국차인연합회 부회장은 “우리나라의 차 문화인 다례(茶禮)와 일본의 다도, 중국의 다예(茶藝)는 각자 뚜렷한 문화적 특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한국의 다례는 일본의 다도와 어떤 점이 다른가요.
 
  “한국의 다례 문화는 일본의 다도보다 훨씬 자유롭습니다. 일본의 다도는 차를 마시는 과정을 정신적 수련의 과정이자 예술의 경지로 여깁니다. 그래서 절차가 매우 정교하고 예의가 엄격하죠. 반면, 한국의 다례는 차를 통해 평화와 소통을 추구하는 문화입니다. 지나친 형식보다는 자연스러움을 중시하죠.”
 
  — 중국의 다예와도 다른가요.
 
  “물론입니다. 중국은 불교, 도교, 유교 등 다양한 종교와 철학이 혼재하다 보니 다예 문화도 지역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격식은 잘 갖추고 있는 편입니다. 한국은 그보다는 사람 사이의 정서적 교감에 더 초점을 둡니다.”
 
  — 일본의 다도 문화는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던데, 구체적으로 어떤 맥락인가요.
 
  “일본의 다도는 불교, 특히 선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승려와 사무라이 계층을 중심으로 다도가 정립되었죠.”
 
  — 그렇다면 한국의 다례 문화에도 일정한 예절이 존재합니까.
 
  “네. 다만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을 중심으로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차를 대접하는 공간의 분위기, 말투, 태도 등이 모두 다례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 차 맛을 비교할 때 ‘일본 차가 더 맛있다’는 말이 종종 나옵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 건가요.
 
  “일본 차는 대부분 ‘찐 차’입니다. 찻잎을 증기로 쪄서 만드는데, 이렇게 하면 세포가 부드럽게 분해되기 때문에 목 넘김이 아주 부드럽고 맛이 연하죠. 마시기엔 편하고 순한 맛이라 대중적인 선호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반면, 한국 차는 전통적으로 ‘덖는 차’입니다. 솥에 찻잎을 넣고 직접 덖는 방식인데, 이는 좀 더 향과 깊이를 살리는 전통적인 방식입니다. 차 문화의 역사적 흐름을 보면 찐 차에서 덖는 차로 발전해 왔는데, 일본은 섬나라다 보니 초기에 들어간 찐 차 문화가 지금까지도 유지되는 셈이죠.”
 
  “교직원공제회는 ‘꿈의 직장’”
 
  정갑윤 전 국회부의장은 2023년 12월 18일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직에 임명됐다. 1971년 설립된 한국교직원공제회는 전국 교직원의 생활 안정과 복리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교직원 자산 증진과 수익 극대화를 위해 유가증권 시장 투자는 물론 부동산·인프라 투자, 해외 대체투자 등을 진행하고 있다. 정 전 부의장은 취임사를 통해 “전국 교육 구성원의 소중한 자산을 더욱 안정적이고 투명하게 운영할 것”이라 밝혔다.
 
  — 현재 이사장으로 계신 교직원공제회는 규모나 역할 면에서 매우 탄탄한 조직이라는 인상을 받습니다.
 
  “교직원공제회는 교원 등 교육기관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공제사업을 수행하는 특수법인입니다. 회원에게 급여를 제공하거나, 각종 복리후생사업을 운영하고 있고, 기금 조성 및 자산 운용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올해 4월 말 기준, 자금 규모가 약 77조원에 이릅니다. 자산 운용을 잘 하고 있어 그 어떤 금융기관보다도 이자 지급률이 높습니다.”
 
  — 대개 선생님들의 월급에서 일정 부분을 공제비로 납입하는 방식이죠?
 
  “맞습니다. 강제성은 전혀 없고, 본인의 선택에 따라 자유롭게 여유 자금을 예치하는 방식입니다. 본사 건물이 여의도에 있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대한민국의 금융 허브인 여의도에서 자산 운용 흐름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일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국민연금공단처럼 지방에 있으면 금융 전문가가 오기 어렵지만, 저희는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어서 이른바 ‘엘리트’들도 많이 옵니다. 그래서 ‘꿈의 직장’이란 말까지 나옵니다.”
 

  — 임기는 언제까지입니까.
 
  “3년이 임기라, 내년 말까지입니다.”
 
  —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습니까.
 
  “이사장으로 재임하면서 소위 말하는 ‘폭탄 돌리기’ 같은 문제들을 다 정리했습니다. 예컨대 양재동 호텔 재개발 사업의 경우 약 7조원 규모였는데, 굉장한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호텔 영업을 종료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직원이 250명가량 남아 있었고, 노조도 3개나 있었습니다. 아무도 손을 못 대는 상황이었죠. 제가 직접 기준을 세워 설득했고, 결국 깔끔하게 마무리됐습니다. 그동안 미뤄뒀던 일들을 정리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나쁜 말은 시간이 지나면 ‘부메랑’처럼 돌아와”
 
  — 국회부의장 시절이던 2019년 저와의 인터뷰에서 “2002년 정치권에 들어왔을 때, 처음에는 ‘참 말 잘한다’ ‘돌직구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이다’ 싶은 분들이 존경스러웠지만, ‘언젠가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더라. 그래서 가급적이면 나쁜 일에는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있다’”고 했던 게 기억납니다.
 
  “그 얘길 기억하고 있네요. 그렇습니다. 오랜 시간 정치를 하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고, 갈등은 늘 있게 마련입니다. 정치권, 특히 대변인들 가운데 ‘말 참 잘한다’ ‘속 시원하다’ 싶은 이들이 있죠. 듣는 입장에서는 통쾌할 수도 있지만, 결국 그런 말은 시간이 지나면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한때 저도 감정에 휩쓸려 상대를 향해 날 선 말을 하고 싶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가만 보면,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그 사람도 인격이 있고, 나도 인격이 있잖아요? 요즘은 재판도 3심제고. 상대방에게도 명예가 있다는 걸 생각하면 말을 아끼게 됩니다.”
 
  — 솔직히 한국 정치는 언제나 국민의 비판을 받아왔지만, 특히 지난 국회와 이번 국회는 극단적인 대립이 심했고, 이 결과 계엄과 탄핵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제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을 했을 때, 8월 말 결산이 관례임에도 이게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갈등이 많았고, 당시 강기정 의원(현 광주광역시 시장)과도 마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일을 계기로 가까워졌어요. 당은 달라도 인간적인 유대(紐帶)는 가능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서로 신뢰를 쌓고 이해하려는 자세만 있다면 충분히 화합할 수 있습니다. 한데 지금 정치권을 보면 이런 점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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