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쌀이 남아돌아 걱정? 당장 올해부터 부족할 수도”

  •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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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업, 단순 산업 아닌 의료·국방 같은 국가 기반 시스템”
⊙ “농업 기술은 최고… 小農 구조와 반세기 전 법·제도가 발목”
⊙ “한일, 정부가 농업에 가장 많은 지원해 준 나라지만 구조 전환은 가장 늦어”
⊙ “지금은 식량 위기 前兆… ‘농업 문맹’ 벗어나야 잘 먹고산다”
⊙ “‘생산 25, 조달 75’ 황금比라야 농업의 지속성·안정성 기대”

李周亮
서울대 식품공학과 졸업, 연세대 대학원 경영학 석·박사 /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연구원 역임. 現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
사진=이주량
다들 참 속 편하게 사는 것 같다. 적어도 밥상머리에선 그렇다.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먹기만’ 하니 말이다. 맛있는지 없는지만 따지지, 농산물의 속사정은 외면하기 바쁘다. 예컨대 밥을 한술 뜨며 ‘우리가 언제까지 자포니카 쌀을 먹을 수 있을까’ 우려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주량(李周亮)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은 이런 세태(世態)가 걱정이다. 사람들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 지난해 10월에는 책까지 썼다. 제목도 《당신이 모르는 진짜 농업 경제 이야기》다. 장장 360페이지에 걸쳐 ‘당신이 알아야 하는’ 농업 경제 이야기를 담았다. 책에서 그는 “지금 인류는 역사상 유일하게 가장 많이 먹고, 가장 싸게 먹고, 가장 멀리에서 가져다 먹는 ‘짧은’ 행운을 누리고 있다”면서 “식량 과잉생산 시대가 종언(終焉)을 고하는 만큼, 식량난은 곧 다가올 미래”라고 했다. 쌀도 마찬가지다. 올해라도 당장 부족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이 연구위원은 경고한다.
 
  낮 최고 기온이 30도까지 올랐던 지난 6월 7일, 세종시에서 이 위원을 만나 ‘먹고사는 문제’를 짚어봤다. 평년보다 빨리 찾아온 더위였다.
 
 
  ‘농업 문맹’
 
  — 책에서 ‘농업 문맹(農業文盲)’이라는 표현을 썼더군요.
 
  “‘농업 문맹(agricultural illiteracy)’은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하지만 외국에서는 자주 쓰는 말입니다. 우리가 초·중·고 과정에서 거의 다루지 않는 분야가 두 가지 있죠. 금융과 농업입니다. 두 가지 모두 삶에 필수적인 영역인데도요. 유럽에서는 이 둘을 정규 교육과정 안에서 가르칩니다. 가령 연금 제도와 노동시장 구조,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이해를 금융 교육과 연결시키고, 농업 역시 단순히 작물 재배로서만 아니라 생태·환경·건강·공동체 같은 요소들과 함께 교육하죠.”
 
  — 농업 문맹인 대중들의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지대한 요즘입니다. 먹방이나 요리 채널이 범람하죠.
 
  “농업이 주는 즐거움도 분명 농업의 구성 요소입니다. 다만 전반적으로 지나치게 희화되고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해요. 농업은 단순한 산업이 아닙니다. 의료, 국방처럼 국가 기반 시스템이기도 해요. 그런데 이걸 예능 소재 정도로 소비해 버리면 농업의 핵심적인 기반성과 전략성이 사회적으로 전달되지 않게 됩니다.”
 
  — 먹는 데만 열중하면 왜 안 됩니까? 우리가 농업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
 
  “우리 삶과 직결되는 분야니까요. 농업을 공기처럼 당연히 주어진 거라 생각하지만, 식량을 둘러싼 글로벌 불안정성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커졌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농업은 정책과 시장이 절반씩 맞닿은 영역이라는 겁니다. 정책은 곧 세금의 영역이죠. 때문에 이 분야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판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관련 정책이 허술해집니다. 실제로 그 때문에 한국이 손해를 보는 부분이 많습니다.”
 
 
  ‘레귤러’만 있고 프리미엄급 없는 한국 우유
 
현재 국내 젖소 중 99.8%는 홀스타인 품종이다. 사진은 한 축산농가에서 저지 품종의 소(갈색)들이 홀스타인(얼룩무늬 젖소) 품종과 함께 섞여 있는 모습. 사진=조선DB
  이날 인터뷰는 커피숍에서 했다. 이 대목에서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팥빙수였다. 이주량 위원은 식탁에서도 놓인 음식을 보며 가끔 식재료의 배경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이런 식이다.
 
  “우유로 만든 얼음이네요. 우리나라 젖소의 99.8%가 홀스타인(Holstein) 품종입니다. 왜 홀스타인이었을까요? 기르기도 쉽지만 유량(乳量)이 많아서예요. 질병 저항성이 강하고 한반도 기후와도 잘 맞는 품종이기도 하고, 사료 효율도 뛰어나고요. 요컨대 싸게 많이, 안정적으로 보급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저출생 시대로 들어서면서 우유 소비량 자체가 감소했죠. 소비 수준도 높아졌어요. 이제는 홀스타인뿐만 아니라 저지(Jersey) 소도 많아져야 하는 겁니다.”
 
  저지는 영국령 채널 제도의 저지섬 출신 품종이다. 홀스타인보다 체구가 작다. 그래서 우유 생산량도 상대적으로 적지만 유지방 함량은 훨씬 높고 단백질·미네랄도 풍부하다. 맛과 품질 면에서 ‘프리미엄급’으로 친다.
 
  “외국 여행을 가서 우유나 아이스크림, 치즈를 먹고 정말 맛있다고 느낀다면 저지 우유일 가능성이 큽니다. 국내에도 당진낙농축협 등에 저지 소를 키우는 농가가 있는데, 극히 일부예요. 지금 한국 우유 시장은 말하자면 ‘레귤러 라인업’만 존재하는 구조입니다. 대부분의 시장은 레귤러 외에 프리미엄 라인이 있기 마련이죠. 문제는 우리가 이 프리미엄 마켓을 한번도 제대로 키워 본 적 없다는 데 있습니다. 저지 우유를 선호하는 소비자 층이 생기고 이를 위한 새로운 생산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농업 생태계가 다양성과 내구성(耐久性)을 갖게 됩니다. 소비자들이 농업을 조금만 더 잘 알면 농업이 훨씬 강건해질 수 있어요.”
 
 
  “한국 농업, 국민연금보다 심각”
 
  — 지금 우리 농업에서 가장 크게 고민해야 할 지점이 뭡니까?
 
  “한국은 농업 여건이 매우 불리한 나라입니다. 국토의 70%가 산지라서 농지가 워낙 부족하죠. 한국은 연간 약 2000만t의 식량이 필요한데, 농지 면적은 150만 헥타르(ha)에 불과합니다. 이 면적에 옥수수만 심는다고 해도 국민이 소비하는 옥수수의 85%밖에 조달할 수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생산할 수 있는 식량은 전체 수요의 약 25% 수준(500만t)이에요. 따라서 한국 농업의 포트폴리오는 25%는 ‘잘 생산하고’, 75%는 ‘잘 조달하는 것’이 돼야 합니다. 그 25%의 지속성과 75%의 안정성을 어떻게 높이느냐가 핵심 과제예요.”
 
  —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있죠. 농업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술, 구조, 법·제도’라는 세 가지 축(軸)이 나란히 가야 합니다. 이 중 기술은 문제가 안 돼요.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우리 농업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문제는 구조와 법·제도에 있어요. 한국은 소농(小農) 중심 구조입니다. 소농은 경지 면적이 작고 영세해 대규모 투자, 기계화, 첨단 기술 도입이 어려워요. 정부 지원도 소농 보호에 집중되면서 농업의 규모화와 산업화, 시장 경쟁력 강화가 지체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법·제도 또한 발목을 잡아요. 대부분 40~50년 전에 만들어진 겁니다. 당시에는 소농 구조를 유지하면서 농민들이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법철학이었지만, 지금과는 맞지 않죠.”
 

  — 그런 법·제도를 왜 계속 안 바꾸는 겁니까?
 
  “정치인들의 표심(票心) 때문이기도 하고, 국민들의 무지(無知)도 한몫합니다. 농업 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이런 제도들이 여전히 통하는 거예요. 심각한 ‘전환 지체’인 거죠. 국민연금의 경우는 지금 이대로 두면 나중에 큰일 난다는 걸 알잖아요. 농업은 그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에요. 전환 지체의 끝단에 가있다고 보면 됩니다. 아까 언급한 홀스타인 젖소도 그중 하나예요. 저지 소로 바꿔 고급 우유를 생산하고 고가(高價)에 판매할 수 있는데도 ‘지금은 내가 홀스타인 키우니까 정부가 지원금 줘야지’라는 식인 거죠.
 
  흥미로운 점은 OECD 국가 중 정부가 농업에 가장 많은 지원을 해준 나라가 한국과 일본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구조 전환이 가장 늦은 곳도 바로 한국과 일본이에요. 비유하자면 부모가 모든 걸 다 해준다고 해서 아이가 잘 크는 건 아니라는 얘기죠. 한데 일본은 산업화 트랙을 타면서 한국과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어요. 일본도 우리처럼 식량의 75%를 해외에 의존하지만 조달 시스템은 안정적입니다. 대부분 인소싱(insourcing·자체 생산) 구조죠. 더 세련됐고, 점차 고도화(高度化)되고 있고요.”
 
 
  “농해수委에는 여야가 없다, 다 야당”
 
  — 일본도 과거엔 소농 중심 구조였던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애초에 농업 지원을 극진하게 했던 건 소농이 많아서였죠. 그랬던 일본이 이 같은 변화를 꾀할 수 있었던 건, 한 당(黨)이 장기 집권하면서 일관된 정책을 폈기 때문이에요. 반면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농업정책이 왔다 갔다 하죠. 한 번은 소농을 살렸다가 한 번은 죽이는 식으로요. 우스개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에는 여야(與野)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 야당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 해줘라’ ‘저거 해줘라’ 식의 요구만 쏟아낸다고요. 정부만 여당인 셈이죠.”
 
  — 소농 구조가 개선되면 식량 자급률이 몇 퍼센트 오른다, 이런 연구 결과가 있습니까? 그래야 소농들을 설득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량화(定量化)된 데이터가 있다면 정부와 국민과의 소통에서 매우 유용하겠지만,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만들기도 어렵습니다. 자급률을 높인다는 건 농지를 늘린다는 것과 같은데, 그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일이에요. 다만 소농 구조를 개선하면 현재 25% 수준인 자급률이 질적(質的)으로 탄탄해지고, 산업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아지죠. 가령 10명이 1헥타르씩 맡아 농사를 지으면 10명의 소농이 모두 지원을 받아야 하지만, 1명이 10헥타르를 맡으면 대농(大農)이 되기 때문에 정부 지원 없이도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이 위원은 이어 “농지의 상속(相續) 문제도 손봐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농지가 민법상 균등상속의 예외예요. 그런데 한국은 농지도 균등상속을 원칙으로 하죠. 그래서 자식이 셋이면 농지가 셋으로 나뉩니다. 두 세대 지나면 20필지, 30필지로도 쪼개져요. 그러다 보니 농지를 활용하려 해도 소유주 간 합의가 어렵습니다. 한 명은 전화를 안 받고, 또 한 명은 해외에 체류 중인 식으로요. 도장을 받을 수가 없는 거예요. 유럽 국가들은 농지는 원칙적으로 자녀 1인이 몰아서 상속받게 돼 있어요. 농지를 쪼개서 상속시키다간 문제가 생기겠다 싶어 제도를 바꾼 겁니다. 그런데 한국은 제도 정비에 손을 놓고 있었던 거죠.”
 
 
  “쌀 생산 포트폴리오 전환 필요”
 
  자급률을 논할 때 ‘주요 작물’은 쌀·밀·콩·옥수수의 4가지다. 이 중 쌀만은 다른 세 작물과 달리 거의 100% 자급이 가능한 상태다.
 
  — 쌀은 남아돌아 걱정이죠.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쌀 재배 면적 감축 사업, 타(他)작물 전환 지원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 중이죠. 이런 정책들은 정확하고 지속 가능해야 합니다.”
 
  —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어떻게 봅니까? 쌀값이나 농가 안정에 효과적일까요?
 
  “개정 양곡관리법은 민주당이 야당 시절 추진했던 법과 내용이 다릅니다. 이름은 같지만 조건과 수치 등이 ‘톤다운’돼 이전보다 이행 가능성이 높은 형태가 됐어요. 이 법의 기대효과는 해석에 따라 상반된 평가가 나올 수 있어서 언급을 삼가겠습니다. 다만 수매(收買) 관련 조항은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이 조항은 기본적으로 필수 재화가 부족할 때 정부가 직접 구매해 가격 폭등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법이에요. 법이 어떻게 설계되느냐에 따라 그 효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 양곡관리법을 떠나 쌀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생산 포트폴리오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현재 한국 쌀은 대부분 단립종(短粒種·자포니카) 중심이에요. 그런데 이를 소비하는 국가는 한국·일본과 중국 일부 지역 정도입니다. 전 세계 대부분의 쌀 시장은 장립종(長粒種·인디카)이 주류죠. 장립종은 아열대(亞熱帶) 기후에 적합하고 가공성이 뛰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이 가능합니다. 수출도 가능하고요. 단립종은 수출이 어려워요. 수요가 없으니까요. 최근 한국의 기후가 아열대로 변화하고 있잖아요. 단립종 중심의 생산 구조를 점진적으로, 서서히 장립종으로 바꿔야 한다고 봐요. 전남 해남 등 극히 일부 지역에서 장립종을 재배하고 있지만, 이제 그 비중을 점차 늘려야 할 때인 거죠.”
 
 
  “경기 북부와 남부에 맞는 벼 달라”
 
  — 장립종 비중을 늘리는 절차는 까다롭지 않습니까?
 
  “무지하게 어려운 일이죠. 우선 적합한 종자를 들여와야 하는데, 이게 그냥 씨앗으로 들여 오는 게 아니고 육묘장(育苗場)에서 길러 모내기용 판으로 제공해야 하죠. 이걸 누가 하겠습니까? 농협, 농촌진흥청, 민간 육묘장 등 민간과 공공이 협력해야 돼요. 그러려면 예산이 필요하겠죠? 또 재배 환경도 맞춰야 합니다. 쌀을 포함해 모든 작물은 아주 예민합니다. ‘종자 적성’이라고, 경기도 북부에서 심는 쌀과 남부에서 심는 쌀이 다를 정도예요. 장립종은 수백 수천 가지가 있기 때문에 한국 땅에 맞는 종자를 선별해야 합니다. 이후엔 표준화된 재배법도 필요해요. 언제 심고, 언제 비료 주고, 언제 약 치고 수확하는지까지 모두 정형화돼야 하죠. 여기에도 대규모 R&D가 필요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개별 농가에게 장립종을 선택할 유인(誘因)도 줘야 합니다. 아무도 안 길러 본 품종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재배할 농민은 없겠죠? 정부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실패했을 때 일정 부분 리스크도 떠안아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쳤다고 해도, 결국 소비자들이 사먹어야 하죠. 이 모든 걸 아우르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엄청난 작업인 거예요. 시도조차 못 하는 이유죠.”
 
  — 해결책을 아는데 실현 가능성은 없는 거네요.
 
  “농민이 종자를 바꾸려면 그 종자가 압도적으로 좋다는 근거가 있어야 하고, 인센티브도 제공해야 하며, 위험도 정부가 함께 져야 하니까요. 쌀에 정부 재원(財源)이 필요하다고 하면 국회의 답은 딱 하나예요. ‘지금도 쌀이 남아도는데 왜?’”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지금이야 쌀이 남아서 걱정이라지만, 곧 ‘없어서 걱정’인 때가 올지도 모른다. 이 위원은 “지금은 쌀 생산량이 소비량보다 훨씬 많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라면서 최근 일본의 쌀 부족 사태를 언급했다. 일본은 2024년 여름 기록적인 폭염 등 이상기후로 쌀 생산량이 급격히 줄었다. 2024년 하반기부터 쌀값이 폭등했고, 지난 2월에는 사상 최고가(最高價)를 기록했다. 일본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비축미 21만t을 방출했고, 이어 4월에도 10만t을 추가로 시장에 풀었다.
 
 
  “日 쌀 부족 사태, 남의 일 아냐”
 
지금은 쌀이 남아돌지만 기후 변화로 당장 올해라도 쌀 부족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지난 2022년 괴산유기농박람회 통일벼 시험포장에서 이주량 박사. 사진=이주량
  — 일본과 같은 쌀 부족 사태가 한국에서도 벌어질 가능성은 어느 정도입니까?
 
  “기후가 한번 흔들리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당장 지난해만 해도 신호가 있었죠. 벼멸구병이라는 병충해로 전체 쌀 수확량 중 5%가 타격을 입었습니다. 벼멸구는 중국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비래(飛來) 해충입니다. 저기압에서 날아들어 증식하는데, 한 번에 개체 수가 200배씩 늘어납니다. 보통은 세 번 증식하고 기온이 떨어지면 사라지는데, 작년은 추석 때까지 30도를 넘는 이례적 더위로 네 번까지 증식했어요. 그 결과 전체 논 면적(75만 헥타르)의 약 5%가 피해를 본 건데, 이 수치가 10%로 늘어난다면 ‘쌀이 남는다’는 명제는 없어지는 겁니다. 촘촘한 정책을 펴온 일본도 순식간에 쌀 부족 사태를 맞았다는 걸 주목해야 해요. 이런 상황에서도 최근 몇 년간 입법부와 행정부는 중장기 계획을 세우기보다 ‘정부가 쌀을 사주네 마네’ 같은 얘기만 하고 있는 겁니다. 당장 눈앞의 일만 보는 거죠.”
 
  자급률 문제뿐만 아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곡물을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식량 안보도 취약하다는 뜻이다. UN에 따르면 2050년 무렵 세계 인구는 100억 명에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 그때가 되면 인류는 지금보다 60% 더 많은 식량을 필요로 하게 된다.
 
  — 인구가 80억에서 100억이 되는데 식량은 왜 25%가 아닌 60%가 더 필요한 겁니까?
 
  “섭생(攝生)이 바뀌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칼로리를 공급받는 여러 가지 원천이 있잖아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모두 저렴한 것부터 고급까지 있죠. 소득이 늘면 칼로리 포트폴리오가 바뀝니다. 예전에는 감자, 고구마 먹다가 지금은 고기를 먹는 것처럼요. 참고로 소고기 1kg은 옥수수 8kg과 같은 겁니다. 돼지고기 1kg은 옥수수 5kg이고, 닭고기 1kg은 옥수수 3kg에 해당해요.”
 
 
  싱가포르의 ‘30 by 30’ 전략
 
  — 현재 한국의 곡물 조달 안정성은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안정적이라고 보기 어려워요. 제가 책에서도 지적했듯, 우리는 곡물 엘리베이터처럼 곡물을 저장·건조·분류·선적할 수 있는 기반 인프라가 부족합니다. 물류망(網)도 마찬가지고요. 해외에 우리가 실질적 소유권을 가진 농장이나 축산 자산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대부분 남이 생산한 곡물을 사오는 구조이기 때문에,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공급 차단이 가장 먼저 일어납니다. 완전히 외부에 의존하는 이른바 ‘풀 아웃소싱(full outsourcing·전면 외주)’이기 때문에 공급망 안정성은 낮고 위기에는 더욱 취약해요. 그러다 보니 25% 국내 생산도 지속성이 떨어지죠. 자연히 소비자 부담과 정부 지출이 늘어나는 겁니다.”
 

  — 공급처 다변화(多邊化)를 꾀해야겠네요.
 
  “그렇죠. 싱가포르가 그런 사례예요. 싱가포르는 원래 식량 자급률이 9%밖에 안됐습니다. 제주도의 절반 정도 되는 면적에 산지가 많아 농지 자체가 없었어요. 그러다 코로나19 이후 외부 공급망이 한순간에 끊기면서 엄청난 타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2030년까지 식량 자급률을 30%로 끌어올리겠다’는 ‘30 by 30’ 전략을 공식화했습니다. 핵심은 세 가지예요. 식량 조달국을 170개국으로 확대하고, 국가 차원의 식량안보청을 설립하고, 국내 생산 비중을 30%까지 늘린다. 사실 식량을 수출할 수 있는 나라는 10여 개국뿐이라서 170개국은 ‘선언적 의미’가 강해요. 그만큼 ‘안전성이 최우선’이라는 철학으로 전(全) 지구적 공급선을 확보하겠다는 국가의 의지를 보여 준 거죠. 물론 우리나라와 싱가포르의 사정은 달라서 단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이 정도의 국가철학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미중 농산물 싸움, 미국이 압도적 우위”
 
이주량 위원은 농산물 자체로는 어렵지만 가공식품 등 농업 후방으로 확장하면 농식품 수출 1000억 달러 목표가 달성 가능하다고 했다. 사진은 지난 2024년 8월 덴마크 내에서 개최된 불닭볶음면의 리콜 철회를 기념하는 파티에서 시민들이 즐거워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 미중(美中) 갈등 문제도 식량 공급 위기에 한몫하고 있죠. 한국이 새우 등 터지는 모양새고요.
 
  “미국과 중국의 농산물을 둘러싼 싸움에서는 미국이 단연 압도적입니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식량 부족 국가고 미국은 농업에 최적화된, 그야말로 축복받은 땅이니까요. 중국이 머릿수로 미국을 압박할 수 있는 품목은 대두(大豆·콩) 정도죠. 중국은 세계 최대 대두 수입국이고, 그동안 브라질 대두 생산과 유통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브라질산 수입 비중이 전체의 70%가 넘습니다. 만일 중국이 브라질 콩을 대규모로 매입하면 우리는 같은 물량을 훨씬 비싼 값에 사야 하고, 아예 확보가 어려워질 수도 있겠죠.”
 
  —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어떤 전략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봅니까?
 
  “간단해요. 먹고사는 문제에서는 이기는 편이 우리 편이에요.”
 
  그는 “여러 단편적인 문제가 얽혀 있는 게 지금의 한국 농업의 사정”이라면서 “그걸 지금껏 기술 하나로만 버텨 온 것”이라고 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따지면 희망도 보인다.
 
  — 책에서 농식품 수출 1000억 달러 목표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불안정한 여건에서도 가능한 얘깁니까?
 
  “농산물 자체로는 어렵지만 가공식품이나 기능성 식품 등 농업 전방과 종자·농기계·농자재·농약 등 농업 후방으로 확장하면 얘기가 달라지죠. 뛰어난 기술력에다 한국 음식의 세계적 인기도 뒷받침해 주니까요. 과거엔 한국 화장품이 프랑스 브랜드를 넘어설 거라고 아무도 상상 못 했잖아요. 식품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봐요. 불닭볶음면 보세요. 다만 이 모든 건 생산농업이 일정 수준 이상 유지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1차 산업으로서 생산농업이 튼튼하게 자리 잡아야 가공·유통을 담당하는 전방농업, 비료·종자·농기계 등의 후방농업도 제 역할을 하죠. 이 세 부문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균형 있게 발전할 때 농업 전체의 가치사슬이 제대로 작동하는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1000억 달러 수출도 충분히 가능할 거라 봅니다.”
 
 
  “배양肉, 15년 내 농업 판도 바꿀 것”
 
  — 혹시 장은 직접 보십니까? 왠지 장을 볼 때 특별한 기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요. 차려 주는 대로 먹습니다.”
 
  — 앞으로 100년 후 우리 식탁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배양육(培養肉)이 일상적인 메뉴가 될 거라 예상해요. 100년 후가 아니라, 2040년쯤이면 이런 변화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축산업은 농업 내에서도 자원을 많이 소모하는 부문인데, 이게 배양육으로 전환되면 농업의 판도 자체가 바뀌게 될 겁니다. 연구실에서 고기를 배양한다는 건 사실 문명의 방향이 바뀐다는 의미죠. 현재 자급률 기준으로 보면 소고기는 약 30%, 돼지고기는 70%, 닭고기는 80% 수준입니다. 배양육이 상용화되면 목초지나 사료용 농지가 산림 등으로 전환될 수 있겠죠. 한국은 발효와 배양 기술에서도 경쟁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분야를 선도하게 되면 수입에 의존하던 식재료를 되레 수출할 수 있게 됩니다. 그야말로 노다지죠.”
 
  이주량 연구위원은 책에서 ‘농업 선진국의 세 가지 요건’을 언급했다. 첫째 국민이 농업의 특성과 가치를 깊이 이해하는 나라, 둘째 농업의 지속 가능성이 확립된 나라, 셋째는 다원주의(多元主義)가 정착한 나라다. 우리는 첫 번째 요건부터 빗나간다.
 
  — 앞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농업에 관심을 가지는 시기가 올까요?
 
  “올 거라 믿어요. 이미 출발점에 들어왔다고 봅니다. 예전에는 농업에 눈 돌릴 틈도 없었고 오해는커녕 무관심의 영역이었는데 지금은 오해라도 하잖아요. 무관심에서 오해까지 왔으니 이제 이해로 한 발 더 나아가면 되지 않을까요.”
 
  이주량 위원을 만나고 나흘 후인 6월 11일, 정부가 4년 만에 정부양곡을 시장에 방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최근 쌀값이 오름세를 보이면서 일본처럼 비축미를 제때에 방출하지 못해 가격이 급등했던 사례를 방지하려는 조치라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쌀값이 아직은 안정적이라면서도 “예상보다 빠른 가격 상승과 일부 산지 유통업체의 벼 확보 난항이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전에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일본과 같은 쌀 부족 사태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던 이 위원의 경고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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