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은 정제된 정보를 공적 조직 통해 보고받아야. 비선 실세 보고는 필터로 걸러야”
⊙ “DJ, 공무원들 스스로가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하라”
⊙ “대통령이 ‘나는 머리가 좋다, 정치를 잘 안다’는 사고 가지면 큰일 난다”
⊙ “DJ 정부 때 전 정부 관료들 강봉균·이기호·조규항 등 대거 기용”
⊙ “내란 세력 척결한다고 자꾸 얘기하면 될 일도 안 돼”
⊙ “대통령, 공식 기구 통해 국정 수행해야”
⊙ “대통령이 말을 적게 하고 많이 듣게 하는 것이 비서실장 역할”
金重權
1939년생. 고려대 법과대학, 서울대 사법대학원 졸업, 법학 박사, 명예정치학 박사 / 제8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고등법원 판사, 제11·12·13대 국회의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대통령 정무수석, 대통령 비서실장, 새천년민주당 대표 최고위원 역임. 現 대만 밍촨(銘傳)대 종신 명예교수
⊙ “DJ, 공무원들 스스로가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하라”
⊙ “대통령이 ‘나는 머리가 좋다, 정치를 잘 안다’는 사고 가지면 큰일 난다”
⊙ “DJ 정부 때 전 정부 관료들 강봉균·이기호·조규항 등 대거 기용”
⊙ “내란 세력 척결한다고 자꾸 얘기하면 될 일도 안 돼”
⊙ “대통령, 공식 기구 통해 국정 수행해야”
⊙ “대통령이 말을 적게 하고 많이 듣게 하는 것이 비서실장 역할”
金重權
1939년생. 고려대 법과대학, 서울대 사법대학원 졸업, 법학 박사, 명예정치학 박사 / 제8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고등법원 판사, 제11·12·13대 국회의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대통령 정무수석, 대통령 비서실장, 새천년민주당 대표 최고위원 역임. 現 대만 밍촨(銘傳)대 종신 명예교수

- 사진=조준우
이후 진보-보수, 보수-진보 대통령이 주도한 정권이 징검다리 건너듯 들어섰지만 기대와 좌절의 반복이 이어졌다. 실패한 여러 대통령을 보좌하던 비서실장들 역시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DJ의 첫 인사인 김중권 전 비서실장만큼 성공한 비서실장도 드물다.
그에게 정권 교체기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어떤 각오로 국정에 임해야 하는지, 새 대통령이 귀담아 들어야 할 게 있다면 무엇인지, 한국의 대통령은 왜 반복해서 실패하는지를 듣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
6월 10일 마포구 서교동 그의 개인 사무실에서 만났다.
불행히도 우리는 짧게는 1987년 민주화 이후 그리고 길게는 건국 이후 이념과 지역을 초월하여 모두가 인정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없다.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이가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그에게 비서실장론(論)부터 물었다.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는 곧 비서실장의 역량과 수행에 크게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비서실은 익명으로 움직이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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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대통령이 1999년 3월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전 김중권 비서실장으로부터 회의 자료에 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조선DB |
“대통령이 주연으로 연출하는 무대 뒤에서 소리 없이 그림자처럼 익명으로 움직이는 자리죠.”
당시 DJ는 전임 김영삼(金泳三·이하 YS) 정권의 비서실 중심 국정 운영 결과 나타난 한보사태와 차남 김현철 사건 등의 폐해(弊害)를 보고, 이를 방지하고자 내각 중심의 국정 운영을 선언하였다. 무엇보다 DJ는 국정을 국무총리나 내각의 장관을 통해 직접 챙기겠다는 방침을 수차례 밝혔다. 심지어 YS 정부 시절 확대되었던 청와대 조직과 인력을 약 3분의 1 수준으로 줄여 개편했다고 한다.
― (대통령의) 그림자 역할에 충실했겠네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과거와 같이 대통령 비서실이 내각을 통제, 조정, 간섭하진 않았지만 여러 일이 많았어요.”
―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요?
“IMF 극복과 제2 건국 운동과 같은 주요 국가 정책 과제를 비서실이 중심이 돼 끌어가야 했고 자민련과의 공조도 비서실이 나서서 어떤 식으로든 풀어가야 했어요. 일부 부처 장관들은 대통령과 정치적 견해나 이해가 다르고 대통령과 인식을 공유(共有)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어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과 역할이 필요한 점도 있었습니다.”
― 가장 열심히 챙겼던 건 뭔가요.
“비서실을 국정 아이디어의 산실로 만드는 것과 정책적 프로젝트를 국민에게 알리고 홍보하는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었죠.”
― 전임 YS 청와대의 실패 사례도 주의 깊게 연구했겠네요.
“상도동 가신그룹 등의 월권(越權)과 전횡이 비서실의 정상적인 가동을 파행시킨 전례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았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의 필터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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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10월 22일 국회 운영위에 출석한 김중권 대통령 비서실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먼저 대통령과 비서실장이 격의 없이 토론하며 국정을 논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요. 대통령의 통치철학, 국정철학이 내각에 제대로 반영되는데 대통령 비서실 역할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전임 대통령들을 보세요. 전부 실패하지 않았나요? 반드시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각오로 대통령과 비서실이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한 몸이 안 될 때 실패합니다. 실패한 대통령들을 보세요. 그 대통령 비서실, 비서실장도 실패하고 말았어요.”
― 대통령 비서실, 아니 비서실장은 대통령에게 어떤 존재여야만 합니까.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비서실장에 3선의 강훈식(姜勳植·52) 국회의원을 발탁했다. 그는 이재명 대선 캠프에서 전략기획본부장을 맡아 선거 전략을 총괄했다. 1990년대 운동권 출신이지만, 계파색이 엷은 중립적 성향이라는 평이다.
“국정을 논할 때 사심 없이 대통령에게 직언(直言)하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노(No)’라고 말하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한 가지 예를 들어 볼게요. 대통령이 국정 수행을 하는데 수많은 사람이 접촉을 하고 싶어 합니다. 만나고 싶어 하고, 거기 기대어 뭘 하고 싶어 하죠. 또 대통령이 보고 싶어 하는 사람,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서실장은 ‘필터’ 역할을 해야 합니다.”
김중권 전 실장은 필터 역할에 대해 “대통령이 만나야 할 사람 중 불필요한 사람은 만나지 못하게 거르는 것”이라 말했다.
“이걸 막아야 하는데 굉장히 어려워요. DJ가 대통령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의 보좌(補佐)를 받았겠습니까. 흔히 말하는 동교동 가신들 같은 수많은 이의 근접 보좌, 그들의 희생적인 삶이 있었다고요.”
| 대통령실 비서관이란? 대통령 비서실 월례조회를 한 까닭은… 김중권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 비서관이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비전을 이해하고 체화(體化)시키지 못하면 그 국정철학과 비전은 실현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래서 ‘대통령 비서관은 대통령의 혼(魂)을 닮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 아무리 뛰어난 실무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해도 대통령의 철학을 읽지 못하면 비서관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 이를 위해 수석비서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할 때 가급적 관련 비서관이 배석하도록 관행을 바꿨다. 대통령과 비서관과의 의사소통과 토론을 확대해 보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비서관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체화시키는 기회의 장을 제공하기도 했다. 다음은 그의 주장이다. “‘작지만 강한 비서실’을 목표로 출범한 DJ 정부 비서실장은 거의 유례없는 리더십을 행사했어요. 과거 대통령이 주재하던 수석비서관 회의를 매일 주재하기 시작했고, 매달 첫 번째 월요일에는 비서실 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 월례조회를 실시했죠. 각 수석실 비서관, 행정관들과도 정기적인 회합을 가졌습니다. 비서실장이 각 수석실의 업무와 실상을 소상히 파악하기 위함이었어요. 지난 정권 시절 청와대 난맥상을 비교적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좌 기능을 시스템화하고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또 비서관과의 관계와 역할을 보다 안정적으로 구축해야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
“독대 없앴다”
현재 민주당은 국회의원 전부가 이 대통령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친명계로 과거 동교동계, 상도동계와 비견된다.
“대통령이 이런 사람들을 무작정 만나기 시작하면 이건 정말, 대통령이 국정 수행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봐요.”
― 그건 왜 그렇습니까.
“(대통령은) 공인이기 때문에 항상 공적(公的) 조직을 통한 보고를 받아야 해요. 이게 정제된 보고입니다.”
― 측근이나 비선 실세의 보고가 아니라는 의미인가요.
“그렇죠. 그들이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를 대통령한테 집어넣거나 때론 겁을 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대통령도 인간이기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게 됩니다.”
― 흔히 말해 오염(汚染)된 정보에 대통령이 노출된다는 말이군요.
“항상 정제(整齊)된 정보를 접해야 합니다. 정제된 정보라는 것은 공식 라인, 공적 조직을 통한 회의(會議)의 결과를 말하며, 이런 정보를 가지고 대통령이 판단해야 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김 전 실장은 “필터 역할이 너무너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성공하려면 신세 진 주변이나 친명계 의원들부터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말로 들렸다.
“제가 비서실장이 되면서 ‘독대(獨對)’라는 걸 없앴어요. 반드시 관련 청와대 수석이 배석하도록 했어요. 총리가 대통령에게 보고할 때는 비서실장인 제가 배석했고 국정원장이 대통령에게 보고할 때는 외교안보수석을, 감사원장이 대통령에게 보고할 때는 법무비서관을 배석시켰어요. 한 달에 한 번씩 장관들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을 정례화시켰는데 그때도 반드시 청와대 수석들이 배석도록 했어요.”
― 왜 배석이 중요한가요.
“과거 안기부장(지금의 국정원장)은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잖아요. 거의 정보를 독점하다시피 했는데 자기네가 회의를 해서 얻은 결론을 가지고 청와대에 옵니다. 그러고 관련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한 부 드리고 자기도 한 부 가지고 보고하죠. 그런데….”
― 그런데….
“이 보고로 끝나는 게 아니고 안기부장이 양복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는 거야. 이거 사람을 죽이는 거예요. 대통령을 겁주고… 완전히 개인적인 자기(自己) 리포트란 말이에요. 이것 때문에 수많은 피해가 생긴 거예요. 제가 노태우(盧泰愚) 정권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일할 때 이걸 봤어(요).”
“노맨(No-man), 무시무시한 눈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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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장 시절인 1998년 2월 10일 김중권 실장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내정자를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은 박지원 당시 청와대 공보수석 내정자. 사진=조선DB |
“큰일 납니다…. 그래서 중요 인사들이 대통령에게 보고할 때 관련 수석을 다 배석시켰던 거죠.”
그는 “퍼스트 인포메이션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처음 정보를 입력하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 대통령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는데 잘못된 정보 입력이 이뤄지면 그다음엔 누가 무슨 보고를 해도 잘 믿지 않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공조직을 통해 얻어진 결론을 가지고 대통령에게 보고를 드리고 그걸로 판단하게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비선 실세의 보고, 안 됩니다.”
그는 대통령 비서실의 필터 역할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사심이 일절 없는 양심, 정치적 사안의 본질을 꿰뚫는 능력, 정책 결정의 선후를 따질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셔먼 애덤스(Sherman Adams)가 역사상 그 필터 역할을 잘한 대표적인 참모장입니다. 그의 별명은 ‘노맨(No-man)’이었죠. 이 말은 ‘무시무시한 눈사람(abominable snowman)’이 변용된 말이기도 합니다. 비서실장은 대통령 옆에 떡 지키고 앉아 불필요하고 가치 없는 정보, 백해무익한 인물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는 정치적 식견과 판단력을 갖춰야 합니다.”
행정 경험이 풍부한 셔먼 애덤스는 1953년부터 58년까지 백악관 비서실장을 맡아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정책을 조율했다.
“대통령, 공무원 안심시키는 게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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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1월 14일 검찰과 야당의 대결이 격화된 가운데, 새천년민주당 김중권 대표가 김영환 대변인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사진=조선DB |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잖아요. 이재명 대통령이 동요하는 공무원들을 안심시키는 것이 우선입니다. DJ로 정권이 교체될 때 관료들이 불안해하더군요. 자기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DJ가 제게 하신 첫 말씀이 뭐냐면 ‘그분들 스스로가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하라’였습니다.
모든 인사를 능력 위주로 하겠다고 선언했지요. 과감히 능력 있는 테크노크라트들을 발탁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이에게 기회가 간다고 설득하니 조직이 안정되기 시작했어요.”
― 인사와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에게 충고를 한다면?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고 공직사회가 지금 술렁이고 있을 텐데요, YS가 정권을 잡았을 때 노태우 정부에서 일하던 고위직들을 한 사람도 안 썼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접니다. 제가 청와대 정무수석을 했잖아요. 정무수석을 했기에 민정계와 민주계를 오가며 노태우 대통령과의 관계를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니 어떤 면에서 제가 1등 공신일 수 있어요. YS는 제 손을 꼭 잡고 고맙게 생각했는데 대통령이 되고 제일 먼저 자른 이가 접니다.”
― 비정하게 느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예외가 하나 있는데 당시 염홍철 청와대 정무 비서관이 한국공항공단 이사장에 임명됐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제 대통령이 됐단 말이야. 윤석열 정부에서 일했던 사람들… 무슨 아무 기준 없이 막 자르고, 내보내면 이건 정말 위험천만한 발상이고 그러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수한 인력들, 능력 있는 인재들은 발탁해야 합니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동의한다면 전 정권 인사도 발탁해야 합니다. DJ는 능력을 보고 테크노크라트를 발탁해서 썼어요.”
DJ의 대통령 당선자 시절 첫 인사는 비서실장으로 영남 출신 김중권을 발탁한 것이었다.
“DJ가 당선자 시절 제일 먼저 한 인사가 접니다. 제가 그분과 무슨 관계가 있어요? 아무 관계도 없고 오히려 제가 그분을 괴롭혔지. 공격하고…. 전 정권에서 종사했다는 이유로 일언지하(一言之下)에 내침을 당했는데, 절 데려다 앉혔습니다.”
“DJ, 전 정권의 장관을 수석으로 써”
그러더니 줄줄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요, 전 정부에서 정보통신부 장관을 하던… 강봉균(康奉均)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 쓰고, 또 노동부 장관을 하던 이기호(李起浩)를 경제수석으로 다시 쓰고, 문교부 차관을 했던 조규향(曺圭香)을 청와대 수석(사회복지수석, 교육문화수석)으로 과감하게 발탁했잖아요. 전 정권에서 종사했다고 해서 안 된다가 아니고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기준이 돼야 합니다.”
― 이재명 대통령의 첫 비서실장인 강훈식 실장에게 덕담을 하신다면?
“그분에게 날 찾아가라고 하세요. 나한테 교육을 받아야 돼. 대통령을 어떻게 보좌해야 하는가를 배워야 해요.(웃음)
사실 비서실장이 만능은 아닙니다. 대통령 비서실에 좋은 인재들이 많잖아요. 우수한 인재가 만든, 검증된 자료로 대통령을 설득해야 하는 거죠. 그걸 비서실장이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통령이 ‘나는 머리가 좋다, 뛰어나다, 정치를 오래 해서 잘 안다’는 사고를 가지면 큰일 납니다. 대통령은요, 듣는 귀가 있어야 돼요. 자기가 말할 기회가 적어야 되는 거야. 대통령이 말을 적게 하고 많이 듣게 하는 것이 비서실장 역할입니다.”
― 비서실장이 보통 자리가 아니군요.
“번뜩이는 지혜, 능력, 직언하는 용기 등 대통령이 국정을 수행하는 데 전략적인 마인드를 갖도록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보좌해야 하는 거죠.”
김 전 실장은 이 대목에서 숨을 가다듬은 뒤 이렇게 쏟아냈다.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해요. 이재명 대통령은 굉장히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고 봐요. 한 번도 만나본 일이 없지만 TV나 연설할 때 보면 굉장히 기민한 머리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임기응변도 되고. 알다시피 그분은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중요한 경력(시장, 도지사)도 다 쌓았잖아요. 이런 사람일수록 남 얘기를 안 들으려 해요. (비서실장은) 그걸 극복해야 합니다.”
― DJ도 입지전적인 인물인데 자수성가한 분들이 갖기 쉬운 오만함, 편견 같은 게 있었을 것도 같은데.
“아닙니다. 굉장히 합리적인 분입니다. 난제를 만나면 정치인들은 자꾸 머리를 쓸려고 하는데 DJ는 그러지 않았어요. 이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김 실장! 어려울수록 원칙대로 가자고!’ 이게 정답이에요. 어려울수록 정도(正道)로 가야 합니다.”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심리적 우군’”
김 전 실장에 따르면 헨리 키신저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대통령의 1급 참모론에 대해 이렇게 설파했다고 한다.
〈어떤 대통령이건 성숙하고 정직한 충고뿐 아니라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충고도 필요로 한다. 대통령은 그의 참모가 강하며 자신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란 지위의 고립성, 고도의 책임성을 깊이 동감해 주고 그의 심리적 부담을 경감시켜 주어야 한다.〉
그의 말이다.
“참으로 정확한 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서실장은) 두뇌와 이론, 빈틈없는 집행력 못지않게 대통령의 ‘심리적 우군(友軍)’으로서 그의 업무상 본질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일종의 ‘고독’과 ‘고립감’의 일부를 떠맡는 자세가 필요하죠.”
그러더니 이 말을 덧붙였다.
“제3공화국 이후 지금까지 역대 우리 대통령 비서실장들의 역할이 단순히 대통령 명의 출납(出納)을 담당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 정책의 기획에서 추진, 집행, 평가까지 관여할 수 있게 된 이유입니다.”
“대통령 비서실은 개혁의 주체이자 총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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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9월 21일 노태우 정부 시절의 김중권 청와대 정무수석이 노 대통령의 탈당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국회로 가 민주당 김대중 대표를 만나는 모습. 사진=조선DB |
DJ는 경제, 사회, 공공부문, 노사, 정치 등 각 분야에 걸친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해 나갔다.
“국정의 뇌수(腦髓)에 해당하는 청와대(대통령 비서실)는 개혁의 이데올로기, 아이디어,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각 부처, 각 분야별로 제시했고 개혁은 전방위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그는 마치 방점을 찍듯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대통령 비서실은 개혁의 주체이자 총본산이 되어야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나 강훈식 비서실장도 이 점을 잘 알았으면 합니다.”
― ‘강한’ 비서실장이어야 합니까.
“글쎄요, 뭐라 할까 독선적이고 독주하는 스타일보다는 모든 일을 공평하게 대하는 ‘중립적 해결사’가 대통령의 성공적인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됩니다.”
― 대통령은 권위의 상징인데 직언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웬만한 용기가 없이는 어렵습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민자당 대표인 YS와 주례 회동이란 게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무수석으로 가까이서 지켜보니) YS는 순한 양이야.”
― YS가요?
“YS가! 남들 앞에선 막 떠벌리고 험담하고 그러다가 청와대에 오면 순한 양이에요. 대통령 직위에 대한 권위에 자기도 모르게 움츠러든다니깐요.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직언한다는 게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YS는 순한 양”
― 더군다나 대통령과 참모가 생각이 다를 때는….
“대통령은 갑(甲)이고 대통령 비서실은 을(乙)의 자리일 수 있는데, 을의 생각을 대통령에게 설득해 교정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세요?
대통령이 보고를 받다가 ‘여보, 김 실장! 그것 나 다 알고 있는데요?’ 그 얘기하지 말라는 겁니다. 표정에 탐탁지 않다는 게 다 담겨 있어요. 그 표정을 견디며 계속 보고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총리든 장관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위축되죠. 위축되는 거예요. 그러나 이걸 뛰어넘어야 합니다.”
― 참, 어렵네요.
“이걸 뛰어넘으려면 평소에 대통령과 비서실장 간에 신뢰가 형성돼 있어야 합니다. ‘아, 저 친구 사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어야 해요.”
― 당시 사심이 없으셨어요?
“… 1997년 12월 20일, 그러니까 대선이 끝난 이틀 뒤에 김대중 당선자가 직접 전화를 주셨습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일산 자택에서 당선자 발표 이후 첫 대면자로 만났죠. ‘새 정부의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아주셔야겠다’는 말을 듣고 거절했습니다.”
사실 세명대 총장으로 가기로 내정이 된 상태였다고 한다.
“이틀 뒤인 22일 다시 일산 자택으로 절 부르셨고 25일 크리스마스 날 저녁 다시 당선자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러고 이튿날인 12월 26일 비서실장 임명이 당에서 공식 발표됐지요.”
― 일방적인 통보였네요.
“더 이상 사양할 수 없었어요. 그때 다짐했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나로서는 마지막 공직이며, 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사심 없이 국가에 봉사하겠다’고요.
마지막 공직으로 대통령을 보좌하는데, 그 진심을 대통령이 안다면 제 이야기를 듣지 않겠어요? 사실 대통령에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정권에서 단 두 명밖에 없어요.”
― 누군지 알 듯도 합니다.
“영부인과 비서실장입니다.”
― 이재명 정권이 출범했습니다. DJ 정부 때처럼 호남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탄생한 정부입니다. 상대적으로 영남은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또 대선 득표율이 절반에 못 미치는 49.42%였습니다. 계엄과 탄핵을 포용하는 통합의 정치가 큰 화두입니다.
“통합의 정치가 필요한 이 마당에 산술적으로 표 계산을 해 국정을 운영해선 안 됩니다. 이쪽은 표를 많이 주었으니 배려하고 저쪽은 표를 적게 줬으니 외면하고 해선 안 됩니다. 인사를 할 때 영남에 인재가 있다면 과감히 발탁해 써야 해요. 그렇다고 호남을 역차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호남 출신 중 좋은 인물이 있다면 발탁하되 호남이기에 더 많이 쓰고 영남이기에 덜 쓴다면… 안 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6월 10일 장·차관 후보자를 포함한 고위급 인사에 대해 국민추천제를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인사 추천 대상은 장·차관, 공공기관장 등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주요 공직 자리다.
이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국민과 함께 국민주권정부의 문을 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국민 추천제는 인사 절차의 변화를 넘어 국민이 국가 운영의 주체가 되어 주도권을 행사하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고 했다.
“국민 추천제는 막아야”
― 장·차관, 공공기관장을 국민 추천으로 임명하겠다고 합니다.
“그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저도 민주당 대표를 했지만 민주당에서 이런 발상을 하는 사람이 많아요. 깜짝 쇼를 하는 거잖아요.”
― 정권 지지 세력인 개딸들과 함께 정치하겠다는 말 같아요.
“인사를 그렇게 하면 되나요? 인사를? 능력이 있는 사람을 뽑아야 되는데. 추천제는 여론 조사하는 것과 비슷한 거 아니에요? 여론 조사의 객관성을 누가 신임(신뢰)을 해요? 정말 이게 안 맞는 겁니다. 차관 자리는 직업 공무원 중에서 선택하는 겁니다. 무슨 추천받아서 가는 자리가 아니에요. 정말 이것은 막아야 합니다.”
― 영부인이나 친인척 문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지난 정부에서 김건희 여사 문제로 나라가 요동쳤습니다.
“어느 날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나한테 보고를 하는 거예요. 대통령 아들이 인사에 개입하는…. 개입이란 게 딴 게 아니라 인사 부탁을 하는 거지요. 그걸 보고하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 앞으로 일선(관련 부처)에 말하지 말고 내게 먼저 말하라고 했어요. 자격이 있으면 쓰고 안 되면 못 쓰고… 그런 거 아니겠어요? 참, 이런 일도 있었어요.”
DJ의 靑 비서관 지명과 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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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가 1998년 2월 22일 조각 인선 문제와 관련, 서울 청구동 자택으로 찾아온 김중권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와 요담한 뒤 배웅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최규선씨가 대선 당시 많은 활약을 했더라고요. 제 성격이요, 대통령이 쓰라고 해서 덜컥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 아닙니까?
“그렇게 안 합니다. 왜 청와대에서 일해야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내 부하로 데리고 써야 될 사람이잖아요. 검증을 해보니까….”
― 해보니까….
“안기부하고 검찰 쪽 자료를 가지고 보니까 아니야. 청와대에 들어올 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제가 (DJ에게) 쭉 설명을 했어요. 그래서 당으로 보내기로 결정하고 최규선씨를 불렀어요. 제가 최규선씨에게 당신의 이러이러한 이력 때문에 도저히 청와대에서 근무하기 어렵겠다고 하니 하루라도 근무하게 해달라고 하더군요, 하루라도.”
그는 잠시 인상을 쓰더니 이렇게 말했다.
“결국엔 사고를 치잖아요. DJ 아들이 구속되고 권노갑씨도 구속되고….
그런 사람이 청와대에 들어왔다면 DJ 정부 초반부터 그냥 야단이 났을 겁니다.”
― 주위 견제를 많이 받았을 것 같습니다.
“DJ를 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동교동계에서 얼마나 애를 썼을까요? 그런데 제가 나타나니…. 아이고, 지금까지도 견제를 해, 지금까지도.”
― 지금도요?
“어디 가니 의자조차 안 줍디다.”
― 동교동계 모임 같은 데 가면요?
“그런 자리엔 안 가죠. 제가 사적인 감정이 있었던 게 아니잖아요. 그분들은 대통령을 만드는 데까지 1등 공신이지만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선 후선에 앉아야 합니다. 대통령이 측근들의 사사로운 얘기를 듣고 정치를 하면 그냥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예요.”
김 전 실장은 비장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대통령이 공식 기구를 통해 국정을 수행해야지 사사로운, 프라이빗한 걸로 연결돼 국정을 운영하면 안 됩니다. 이런 면에서 저는 철저했어요.”
“적폐 청산, 적폐를 더 낳지 않았나”
― 문재인 정부는 보수 인사들을 적폐 세력으로 몰았는데 이재명 정부는 내란 세력으로 몰지 않을까요.
“안 할 겁니다. 자기가 내란 세력 척결한다고 자꾸 얘기한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요. 특검도 안 할 겁니다. 이미 집권해가지고 검찰을 컨트롤할 수 있는데 무슨 특검이요?”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10일 두 번째 국무회의를 열고 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내란·김건희·채해병에 대한 이른바 ‘3대 특검법안’을 심의·의결했다.
“대통령은 국민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줘야 해요. 자꾸 긴장시키면 안 돼, 이제는…. 표가 될 때는 긴장시키고, 자기 우군을 확보하려 희한한 말도 많이 하지만 집권을 하게 되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 역대 정권마다 집권 초기에 늘 사정(司正)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죠. 적폐 청산을 그렇게 해서 오히려 적폐를 더 낳았잖아요.”
― 특검을 통해가지고 내란 세력을 이렇게 한다고 하니까 우리 사회가 또 술렁이고….
“사법부 판단에 맡겨야지요. 더더구나 기소해가지고 재판 중인데….”
― 이 대통령이 청와대를 고쳐서 들어가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보세요.
“흉(凶)터냐, 아니냐를 떠나서 청와대는 궁궐처럼 권위적으로 보이잖아요. 정작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동이 대통령 집무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대통령에게 보고하려면 차를 타고 5분 정도 올라가야 해요. 그런데 왜 굳이 청와대에 가려는지 난 잘 모르겠어요. 용산에 있는 것이 왜 기분 나쁜가요? 집무에 어려움이 있나요? 난 별로 찬성하지 않아요.”
앞서 지난 5월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대선 전에 파기환송심 선고가 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지만, 논란이 일자 법원은 대선 이후로 선고를 미뤘고 이 대통령은 “일부 사법부 구성원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대법관 증원, 아주 잘못됐다”

― 대법관 수를 2배로 증원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사법부 장악의 시각이 존재합니다.
“아주 잘못됐어요. 국회가 사법부의 의사나 공론을 들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증원한다는 것은 정말 맞지 않다고 봐요. 지난번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됐을까요? 이건 누가 봐도, 어린아이가 봐도 사법권을 장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이는 거지. 물론 대법관 수가 부족하다는 얘기는 꾸준히 있었어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 상고법원을 별도로 만들려고도 했죠.
이해는 가지만, 공론의 장을 거쳐, 당사자인 법원의 의견을 청취하고 결정을 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이렇게 처리하면 권력 분립의 원칙이 사라집니다.”
― 지금 이재명 대통령 잘할 것 같습니까?
“잘해주길 바라요. 선출된 유일한 권력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해요. 그런 생각에 빠지면 대통령이 오만해지고 국회를 지배하려 듭니다.”
― 이 대통령의 여러 재판과 관련해 ‘방탄 입법’ 우려도 나옵니다.
“위인설법(爲人設法)이잖아요. 법 앞에 평등한데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해 법을 만들면…. 어디까지나 재판부의 결정에 따르면 되는 것이죠.
그리고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는 일은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 그 말씀을 하시니 YS가 전직 대통령을 ‘역사바로세우기’로 법정에 세웠잖아요. DJ는 그걸 어떻게 바라봤나요?
“DJ는 전직 대통령들을 모두 청와대로 초청했고 사면도 다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을 지으신 분이죠.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피해자 대통령이 돌아가신 가해자 대통령을 용서하겠다’고.”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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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파카(PARKER) 만년필 |
그는 주저 없이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는 문장을 써 내려갔다.
“이 문장은 《토지》를 쓰신 박경리 선생이 제게 주신 말씀입니다.
저는 서울에서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린다는 시골,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신문배달과 미나리 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고, 고학으로 대학을 마쳤지요. 그 시절에 그 정도 어려움은 누구나 겪었겠지만, 고생스럽기는 참으로… 고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늘 꿈을 원대하게 꾸는 소년이었어요. ‘사람은 꿈꾸는 이상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다’는 말이 뇌리에서 떠난 적이 없었어요. 그 믿음이 오늘의 저를 있게 만들었습니다.”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남아 있는 나날》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세심하게 챙기면서도 시중드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게 하는 것이 훌륭한 시중의 핵심이다.”
김중권 전 비서실장에 따르면, 훌륭한 비서실장의 덕목은 그림자처럼 묵묵히 일하되 직언을 아끼지 않고, 토론에 참여하면서도 중재자 역할을 하며, 지혜롭고 중립적인 해결사가 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 모든 덕목은 능력 중심으로 인재를 발탁해야 하는 대통령에게도 요구되는 자질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