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많은 사람이 전쟁과 군사 문제에 관심을 갖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
⊙ “한국군, 경계형·행정형 군대로 변질… 야성 강한 군인은 일찍부터 거세”
⊙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전쟁의 본질은 변치 않아”
⊙ “군인은 평화를 먼저 이야기해선 안 돼… 제1임무는 敵을 죽이는 것”
⊙ “동양을 대표하는 전쟁은 대장정·베트남전, 서양은 걸프전”
⊙ “한국군 군사혁신, 초급 간부가 전쟁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때 완성”
⊙ “1년 동안 책 팔아 한 달 월세 내면 끝… 책방 유지하고자 副業도”
⊙ “한국군, 경계형·행정형 군대로 변질… 야성 강한 군인은 일찍부터 거세”
⊙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전쟁의 본질은 변치 않아”
⊙ “군인은 평화를 먼저 이야기해선 안 돼… 제1임무는 敵을 죽이는 것”
⊙ “동양을 대표하는 전쟁은 대장정·베트남전, 서양은 걸프전”
⊙ “한국군 군사혁신, 초급 간부가 전쟁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때 완성”
⊙ “1년 동안 책 팔아 한 달 월세 내면 끝… 책방 유지하고자 副業도”

-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군사 전문 독립서점 워랩의 천종웅 대표. 세계전쟁사 부도를 들고 있다. 이 책은 너무나 많이 펼쳐 본 탓인지 제본이 모두 해어졌다.
국방부가 있는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과 신용산역 사이에 있는 워랩은 10여 평쯤 되는 공간에 전쟁(사)·군사 서적으로 벽을 둘렀다. 이 중에는 책방 주인이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책도 있다. 곳곳에는 지도가 붙어 있었다. 정기적으로 ‘북토크(book talk)’와 ‘전쟁 연구 모임’도 열리는데, 전쟁·군사·안보 분야에 관심 있는 이들을 한데 모으는 사랑방 역할을 한다.
천 대표는 1993년 육군 소위로 임관해 2015년 군을 떠났다. 8~9세쯤 부모님이 사주신 열 권짜리 세계 위인전집 중 첫 번째인 칭기즈칸을 읽고는 군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책만 팔아선 서점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시작했다. 이에 대학 출강과 방산업체·기관 연구 과제 수행을 병행하며 번 돈을 워랩 운영에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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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랩에서는 절판돼 시중 서점에서는 구하기 힘든 서적도 구할 수 있다. |
“개점 1년을 맞아 정산해 보니 매출은 1300만원가량 됐습니다. 이 중 순수익은 10%쯤 되는데 한 달 치 월세죠. 이 정도면 생각보다 선전(善戰)했다고 봐요. 만족합니다.”
— 몇 권이나 팔린 겁니까.
“700~800권쯤 돼요. 책값이 1만원대부터 3만원대까지 다양하니까요. 워랩 홈페이지를 통해 전방(前方)에서도 주문이 많이 들어옵니다.”
— 서점을 연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만류하진 않던가요.
“크게 두 가지 반응이었어요.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며 걱정해 주시는 분부터 ‘그거 참 좋은 생각’이라며 응원해 주시는 분들요.”
“연금은 손대지 않겠다”
— 가족들 반응은요.
“아내는 처음엔 반대했지만, 제가 다른 사람 말은 잘 듣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개점을 앞두곤 많이 도와줬죠. 대신 ‘(군인) 연금에는 손대지 않겠다’ ‘어떻게든 내 힘으로 운영하겠다’고 약속했죠.”
— 손님 비중은 어떻게 됩니까.
“군인 5, 일반인 5쯤 돼요. 일반인은 자영업자부터 대기업에 다니는 분, 사학과 학생, 기자, 이른바 ‘밀리터리 덕후’ 등 배경이 다양합니다.”
—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요.
“‘왜 서점을 하느냐’는 물음이죠.”
— 뭐라고 답합니까.
“‘좋아서 한다’고 말하죠.”
— 군 생활을 비교적 일찍 마쳤습니다.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일찍 전역했습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덕분에 세계 전적지를 실컷 돌아다니죠.”
천 대표는 육사 교장 전속부관, 육사 순환직 교수, 35보병사단 예하 남원 지역 대대장 등을 지냈다. 합동참모본부(합참) 전력기획부에서 육군 전력 건설을 총괄 계획하는 실무도 맡았었다. 육군본부 과학화경계사업단 근무를 끝으로 군을 떠났다.
— 육사 생활은 어땠습니까.
“제가 1970년생인데, 당시에는 지금처럼 정보가 많지 않았습니다. 육사에 가면 전쟁사를 공부하고 군사 훈련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일반 대학과 다를 게 없더라고요. ‘여기(육사)에 잘못 온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종종 있었죠. 사관생도 시절에도 전쟁사를 좋아했는데 전적지 답사를 갈 때가 가장 좋았어요.”
— 영국 킹스칼리지(King’s College London)에서도 공부했더군요.
“2019년 석사(MA) 과정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초급 장교 시절부터 킹스칼리지 전쟁학과(War Studies)에 꼭 가고 싶었어요. 전쟁·군사 서적을 접할 때면 킹스칼리지 전쟁학과가 소개되곤 하거든요. 세계 최초의 전쟁학과이자 전쟁 연구를 독립적인 학문 분야로 확립한 곳이죠.”
킹스칼리지 전쟁학과
천 대표는 공학박사 학위가 있음에도 자비를 들여 영국으로 갔다. 천 대표가 전공한 분야는 ‘과학기술과 국제 안보(Science and International Security)’였다. AI 등 첨단 과학 기술이 전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한다. 그의 킹스칼리지 석사 논문 주제는 ‘첨단 재래식 무기를 활용한 한국의 북핵 억제 전략’이다.
천 대표는 킹스칼리지에서 공부를 마친 뒤 옥스퍼드대(University of Oxford) 산하 연구소인 ‘CCW(The Changing Character of War Centre)’ 방문연구원(2021~2022)으로 자리를 옮겼다. CCW는 전쟁의 변화와 이에 따른 전략, 국가 운영, 기술의 영향을 학제적으로 연구하는 곳이다. CCW에서 수학한 한국인은 그가 처음이었다.
— CCW에선 어떤 연구를 했습니까.
“킹스칼리지에서 다룬 내용을 더욱 심화했습니다. 당시 우리 정부는 대통령부터 국방부 장관까지 ‘3축 체계로 북핵을 억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죠. 외국인 시각으론 ‘핵무기를 재래식 무기로 억제한다’는 개념이 생소해 보였기에 제가 하는 연구에 관심이 많았죠.”
— 결론은요?
“‘가능하지 않다’였습니다. 미국의 확장 억제 역량을 보조하는 수단이 될 순 있지만 ‘3축 체계만으로도 북핵을 억제할 수 있다’는 주장은 오히려 억제에 도움이 안 된다는 내용이었죠.”
— 해외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전쟁을 연구합니까.
“다양해요. 군인, 기자, 펀드매니저, 외교관, 국제기구 종사자 등등요. 군인은 10명 중 2명 정도입니다.”
— 펀드매니저가 전쟁을 공부한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전쟁은 부(富)를 창출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죠. 우크라이나 전쟁을 앞두고 한 펀드매니저가 ‘밀값이 오른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선물(先物)에 투자했다면 저도 큰 수익을 냈을 겁니다.”
“서양은 戰爭을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으로 인식”
— 외국은 전쟁을 어떻게 인식합니까.
“한국은 전쟁을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하죠. 그런데 서양에서는 전쟁을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으로 보고 객관적으로 접근합니다. 전쟁은 언제,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다고 봐요. 이 때문인지 학제 간 협력이 활발하고, 전쟁에 대한 논의가 자유롭습니다.”
— 서구식 사고가 전쟁을 더 유발하는 건 아닙니까.
“한국에서는 전쟁을 군인들만의 문제로 봅니다. 전쟁을 논하면 호전주의자(好戰主義者)로 여기죠. 반면 선진국은 전쟁을 준비하고 연구할수록 전쟁을 억제하거나 예방할 수 있다고 봐요. ‘전쟁의 역설’이라고 하죠. 이에 전쟁의 기술, 반(反)전쟁(평화)의 기술, 패권을 유지하는 기술은 같은 맥락에서 연구됩니다. 질병에 대해 더 잘 알수록 치료 효과가 높아지듯,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 영국에서 공부한 뒤 느낀 점이 있다면요?
“선진국이 전쟁을 대하는 시각과 태도를 체험한 뒤로는 ‘한국에서 꼭 서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죠. 유학하기 전부터 ‘언젠가는 전쟁·군사 서점을 열겠다’고 마음속으로 품고는 있었습니다.”
— 해외는 어떻습니까.
“곳곳에 전쟁 영웅을 기리는 동상이 서 있어요. 서점만 해도 전쟁·군사 관련 서적이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고 다양해요. 전쟁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한 서점에 갔는데, 전쟁·군사 서적이 아주 많아서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영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차이를 보며 한국에서 전쟁·군사 서점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 우리나라는 전쟁을 왜 외면합니까.
“항상 당하기만 했기에 두렵고 기억도 하기 싫은 거죠. 외침(外侵)을 겪으면 이를 기록하고 교훈으로 삼아 대비해야 함에도 외면했습니다. 이에 침략당하는 역사가 되풀이됐죠. 워랩을 시작하게 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초한전》 《지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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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4월에는 《초한전》을 한국어로 번역한 이정곤 박사를 초청해 북토크를 했다. 사진=천종웅 대표 |
“청일 전쟁을 두고 ‘청나라와 일본이 싸운 전쟁’이라고만 생각해요. 저기 랴오둥반도 어디쯤에서 일어난 전쟁인 줄 알죠. 이 전쟁으로 조선군(朝鮮軍)이 해체됐다는 사실도 잘 몰라요. 청일 전쟁은 1894년 경복궁에서 시작됐습니다. 경복궁에서 벌어진 이 전투를 두고 우리는 제대로 된 명칭조차 없습니다.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미국이나 영국은 자국 군대가 벌인 작은 전투 하나에도 이름을 부여하고 기억합니다. 교훈으로 삼으려면 기록부터 제대로 해야 합니다.”
— 한민족(韓民族)이 애초에 상무(尙武) 정신이 부족한 거 아닙니까.
“상무 정신이 부족하기에 더욱더 기억하고 연구하며 대비해야죠. 전쟁은 지정학적입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전쟁을 외면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 가장 많이 팔린 책은요?
“《초한전(超限戰·Unrestricted Warfare)》요. 《지리의 힘》도 많이 찾고요.”
‘21세기판 손자병법’이라는 별칭이 붙은 《초한전》은 중국 국방대 교수인 챠오량(喬良)과 왕샹수이(王湘穗)가 함께 쓴 책으로 1991년 걸프전 당시 미국의 활약상을 분석하고 ‘21세기 전쟁상(像)’을 ‘24개(군사/비군사) 형태’로 분류했다.
중국과 같은 나라가 미국처럼 강한 나라를 어떻게 상대할 수 있는지를 추상적으로 접근한다. 《초한전》은 천 대표의 육사 동기인 이정곤 박사가 번역했는데, 이 박사는 초한전을 주제로 워랩에서 북토크를 했다.
— 서점에 진열하는 책은 어떤 기준으로 고릅니까.
“처음에는 제가 본 책 중 괜찮다 싶은 걸 가져다 놓았어요. 지금은 주변에서 추천하는 책도 들여놓고 있습니다. 육사 후배이자 《한국군의 뿌리》를 쓴 김세진 작가가 좋은 책을 몇 권 소개해서 가져다 놓기도 했어요.”
— 도매상에서 책을 공급받나요?
“아니요. 제 돈으로 선결제하고 책을 가져옵니다. 일반 서점은 외상 위탁 방식을 쓰는데, 전쟁·군사 서적은 수요와 중간 이윤이 적어서 이 방식이 어려워요.”
— 책이 팔리지 않으면 손해 아닙니까.
“제가 읽으면 되니 괜찮습니다. 돈을 벌 생각이었다면 서점을 하지 말았어야죠.”
“敵을 많이 죽이는 군인이 훌륭한 군인”
— 한국 사회에서 전쟁·군사 문화를 다루는 수준은 어떻습니까.
“전문성보다는 흥미 위주로 소비되는 경향이 강해요. 북핵부터 전쟁사, 무기체계까지 모두 다루는 ‘안보 전문가’가 많은데, 해외의 경우 이와 달라요. 킹스칼리지에서 2차 세계대전사를 공부할 때, 담당 교수에게 태평양 전쟁에 대해 묻자 ‘나는 유럽 지역 전문가라 태평양 전쟁은 잘 모른다’고 답하더군요. 정말 몰라서가 아니라, 한 분야에 집중하는 문화 때문이죠. 군대 규모로만 보면 한국이 영국보다 큽니다. 한데 우리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전문성이 부족하죠.”
— 수요는 충분하다고 봅니까.
“수요도 공급도 부족하다고 봅니다. 양질의 콘텐츠가 나와야 수요도 함께 늘어나죠. 전쟁은 군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누구나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또한 가져야만 하는 콘텐츠입니다.”
— 전쟁은 인간의 본성입니까, 정치·사회적 산물입니까.
“본성이라고 생각해요. 어린아이들이 좋은 걸 두고 서로 가지려고 싸우잖아요. ‘좋은 걸 얻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누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줬을까요? 본능이죠.”
— 전쟁은 무엇입니까.
“폭력, 물리력을 사용해 상대방에게 내 의지를 강요하는 행위입니다. 레슬링을 떠올려보세요. 또 다른 의미로는 위선이 걷히고 실체가 드러나는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 전쟁을 치르는 군인은 어떤 존재입니까.
“군인의 임무는 적을 죽이는 겁니다. 저는 군인이 평화를 먼저 이야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억제력은 물리력, 폭력을 보유했을 때만 작동하기 때문이죠.”
— 훌륭한 군인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습니까.
“호전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훌륭한 군인은 ‘아군의 피해는 최소화하고, 적은 최대한 많이 죽이는 사람’입니다. 적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많이 제거하는 능력이 있는 자가 이상적인 군인이죠.”
— 전쟁에 대한 본질은 어떻게 학습해야 합니까.
“전쟁사를 공부해야죠.”
— 전쟁사는 거대 담론 위주로 다루어집니다. 개인의 고통은 소외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맞아요. 위인, 장군들의 이야기만이 전쟁사 전부는 아니죠. 거시적 관점에서 전략·전술을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쟁의 미시적 측면, 개인의 고통과 상처도 분명 살펴봐야 합니다.”
천 대표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소련 여성들의 증언을 기록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추천했다.
“전쟁의 본질은 바뀌지 않아… 기술은 수단에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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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지기 한 달 전인 2024년 11월 4일 워랩은 민병돈(예비역 육군 중장, 가운데) 전 육사 교장을 초청해 강연회를 가졌다. |
“전쟁사도 승자(勝者), 기득권의 역사입니다. 미화되거나 부풀려지는 일이 있죠. 비판 의식을 갖고, ‘권위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읽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 과학 기술의 발전이 전쟁의 양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수고스럽게 전쟁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요.
“‘전쟁의 안개’라는 표현이 있죠. 전쟁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합니다. 첨단 기술은 안개를 걷어내기도 하지만, 반대로 안개를 더욱 짙게 만들기도 해요. 예를 들어 인공위성과 드론이 정보를 수집하면, 모순 관계처럼 재밍(전파 방해) 기술은 이를 무력화시키죠. 결국 기술은 전쟁을 구성하는 요소일 뿐, 본질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최근 등장한 드론, AI 등이 전장을 바꾸고 있다. 일각에선 첨단 기술에 대한 효용이 과장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천종웅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드론과 AI는 전쟁의 속도와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병과와 육·해·공군의 경계까지 무너뜨리고 있죠.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간에 벌어지는 가자지구 분쟁에서 드론은 정찰·타격·교란 임무를 저(低)비용으로 수행하며 신속하게 전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AI는 실시간 분석 및 목표 식별로 작전 속도와 정확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 속도와 정확도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더욱 극대화될 겁니다.
일부에서는 AI, 드론 기술의 효용을 과장했다고도 평가하지만, 역사적으로 새로운 기술과 무기 체계가 등장할 때마다 과장과 무시는 반복됐습니다. 과거 사례에서 얻을 교훈은 새롭게 등장한 기술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과대나 과소평가 없이 전장 현실에 맞게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명심할 점은 상대방도 우리처럼 첨단 기술을 활용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기술로 우리의 속도와 정확도를 약화하려 할 테니, 기술적 우위가 전략적, 작전적, 전술적 우위를 항상 보장한다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현재 언급되는 AI 기술은 전장에서 실제 어떻게 활용되고 어느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전기가 기계에 생명을 줬다면, AI는 기계와 무기 체계에 지능을 부여해 인간의 인지적·육체적·정신적 한계를 보완합니다. 현재는 무인 차량 등 개별 무기체계의 자동화와 정밀도 향상에 주로 활용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지휘통제 체계 전반에서 판단 속도와 정확성을 높이며 전장 효율성을 극대화할 전망입니다.
더 나아가 AI는 보통 사람이 인지하기 어려운 수준의 복잡한 정보와 전황 속에서 일부 군사적 천재만이 꿰뚫어 보던 전쟁의 본질을 포착하고, 이에 부합하는 전투 행동을 지원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기술의 전쟁 활용은 윤리적 논란을 동반하겠지만, 역사적으로도 기술을 먼저 전장에 도입한 국가가 우위를 점해왔고, 상대방 역시 윤리만을 이유로 뒤처질 수 없습니다. 결국 AI는 전쟁에서도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며 인지적·육체적·정신적 한계를 지닌 인간을 상당 부분 대체하게 될 겁니다.”
— AI가 전쟁의 본질을 알려줄 수 있지 않습니까.
“AI도 수단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건 전쟁에서 과학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 아는 능력이죠. 군인은 AI를 배우는 것보다 전쟁에 대한 통찰을 갖추는 게 먼저입니다. AI 기술이 필요하다면 AI 전문가와 협업하면 됩니다.”
— 전방에서 소총을 들고 경계 근무를 서는 말단 병사도 전쟁사를 알아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지휘관 시절에도 훈련의 맥락과 목적을 병사들에게 항상 설명했습니다. 이런 사소한 인식이 유사시에 큰 힘이 됩니다. 전쟁사를 알면 자기 임무의 정당성과 중요성을 더 확실히 인식하게 되죠.”
— 일반인도요.
“전쟁사는 곧 문명사(文明史)입니다. 전쟁을 이해하면 인간 본성과 사회를 이해하게 됩니다. 초등학생도 6·25 전쟁사에 대해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땅에서 왜 전쟁이 벌어졌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 모르면 대비할 수 없죠.”
― 군사 기술 관점에서, 시대별로 전장/전쟁 판도를 바꾼 무기 체계를 소개해주십시오.
“새로운 기술과 이를 적용한 무기체계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전쟁 수행 방식과 전략, 그리고 군사·사회 구조까지 아우르는 전방위적 변화를 이끌어왔습니다.
고대 전쟁–고대 전차(Chariot)
고대 이집트와 히타이트 등에서 활용된 전차는 말이 끄는 2륜 수레로, 속도와 충격력을 바탕으로 보병을 압도했습니다. 빠르게 접근해 타격 후 이탈하는 기동전 방식은 오늘날의 전차와도 본질적으로 유사하며, 고대 전쟁에 기동성과 돌파력이라는 새로운 전술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중세 전쟁–장궁(Longbow)
영국의 장궁은 장거리에서 중무장 기병을 꿰뚫는 강력한 무기로, 백년전쟁에서 기사 중심의 전술을 무너뜨렸습니다. 보병과 궁병의 전술적 가치가 급격히 상승하며 중세 군사 질서의 균열을 가져온 결정적인 병기였습니다.
근대 전쟁–화약 무기(Musket)
화약의 도입은 머스킷 총과 대포를 탄생시켜 전투를 원거리 집단 사격 중심으로 전환했습니다. 특히 총검을 결합한 머스킷 보병의 선형 전투 방식은 전장의 질서를 완전히 바꾸었으며, 성곽과 기병의 시대를 끝냈습니다.
현대·21세기 전쟁–컴퓨터와 사이버 기술
오늘날 전쟁은 물리적 충돌을 넘어 정보와 알고리즘이 좌우하는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컴퓨터 기반 지휘 체계, 인공지능 분석, 사이버 공격·방어 능력은 전장을 가시화하고 통제하는 핵심 역량이 되었으며, 전투의 무대는 이제 현실뿐 아니라 사이버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동서양을 대표하는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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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식 전쟁의 대명사인 걸프전 당시 미군 탱크의 모습(왼쪽), 대장정을 이끌었던 마오쩌둥. |
“가장 동양적인 전쟁은 국공내전의 한 국면인 마오쩌둥의 대장정(大長程)입니다. 불리한 전세(戰勢)를 시간과 공간을 활용해 극복하며 변(邊)을 장악하는 방식으로 싸웠죠. 베트남전도 동양식 전쟁이죠. 이 두 전쟁은 약자(弱者)의 전쟁 방식이기도 합니다.”
— 서양은요.
“1991년에 벌어진 걸프전입니다. 미군은 사막에서 기동전으로 이라크군을 포위하고 섬멸했죠. 당시 미 중부사령관으로서 ‘사막의 폭풍 작전’을 지휘한 노먼 슈워츠코프는 ‘칸나이 전투(기원전 216년)와 탄넨베르크 전투(1914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습니다.”
— 최고의 전략가를 꼽는다면요.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입니다.”
— 이유는요.
“공세적인 전략으로 전황(戰況)을 바꿨기 때문입니다.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이 로마를 공격하자 로마 원로원에서는 로마를 방어해 달라고 요구했죠(2차 포에니 전쟁, 기원전 218~201년). 하지만 스키피오는 한니발의 근거지인 북아프리카 카르타고를 공격(자마 전투)했습니다. 훗날 영국 버나드 몽고메리 장군은 스키피오에 대해 ‘방어에만 급급하지 않고 적 지역을 공격했다. 전략적으로 위대했다’고 평가합니다. 스키피오의 전략은 한국인에겐 없는 사고방식이죠. 우리는 적에게 공격받으면 그 전장(戰場)을 한반도로 국한해 대응하잖아요.”
— 우리나라는 반도라는 지리적 제약이 있지 않습니까.
“이탈리아도 반도입니다. 스키피오는 배를 타고 가서 카르타고를 쳤습니다.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벌어졌을 때 조선군이 대마도를 공격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전략적 종심(strategic depth)’을 확보하기 위해 적의 영토에서 전투를 수행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한반도를 공격하면 우리 영토가 피해를 당한다’는 선례가 없으니, 주변국이 한반도를 자주 침략하는 겁니다.”
천종웅 대표가 꼽은 3大 전사
천 대표는 자신가 공부한 전사 중 가장 인상 깊은 사례 3개를 들었다.
“자마 전투(스키피오 대 한니발, 기원전 202년).
로마 장군 스키피오는 이탈리아반도를 공격한 한니발에게 대응하여 적의 근거지인 카르타고를 공격함으로써 전략적 주도권을 확보했습니다. 당시 로마 원로원은 스키피오에게 자신들이 있는 로마의 방어를 요구했지만, 그는 전장을 이탈리아에서 북아프리카로 옮겨버렸고, 결국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을 꺾으며 전쟁을 종결지었습니다.
이 사례는 이스라엘이나 한국처럼 전략적 종심(Depth)이 짧은 국가들에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적의 공격을 자신의 땅에서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빠르게 전장을 적의 심장부로 확장해 능동적으로 전세를 전환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오늘날의 전쟁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전략적 사고입니다.
쌍령 전투(병자호란, 1637년).
병자호란은 단순한 전투 실패 이상의, 전쟁 지도 체계가 구조적으로 무너진 비극적 사례입니다. 청나라 군대가 압록강을 건넌 지 불과 며칠 만에 조선의 수도 한양은 사실상 함락되었고, 왕은 남한산성에 고립되었습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전격전을 통해 프랑스를 무너뜨린 속도보다도 빠른 진격이었으며, 수적 우위와 조총을 앞세운 조선군은 청의 기병에 완패했습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이후 벌어진 한반도에서의 세 차례 대규모 전쟁—임진왜란, 병자호란, 6·25전쟁—모두 적이 공격을 개시한 지 불과 며칠 만에 수도가 마비되고 전쟁지도부가 기능을 상실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단지 지휘 체계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종심이 짧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취약성과 위기 대비 체계의 부재를 보여주는 역사적 패턴입니다.
쌍령 전투는 그 상징적 전투였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조선군이 병력의 숫자와 화력 면에서 유리했지만, 실제 전투에서는 청의 기병에게 각개격파를 당하며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습니다. 그 이면에는 문관과 무관이 혼합된 기형적 지휘 체계, 전쟁의 효율성보다는 왕의 안위와 명분과 체면을 중시하는 성리학적 문화, 그리고 치밀한 작전계획 없이 병력만 집중시킨 안이한 작전적/전술적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 전투는 전쟁에서 수적 우위나 무기체계의 우세가 반드시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전쟁은 정치적 이상이나 명분 따위가 아니라 철저히 현실적 판단과 유기적인 지휘 구조, 정신적 유연성 등 복합적 요소가 뒷받침되어야 국가의 생존이 가능함을 경고합니다.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사건(청일전쟁, 1894년).
1894년, 청일전쟁은 조선의 심장부인 경복궁 일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일본군은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조선의 수도를 선제 점령했고, 이에 조선군과 충돌하며 실질적인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 수십 명이 전사했으나, 명확한 전투 명칭조차 제대로 남아 있지 않으며, 대부분의 국민에게는 존재조차 잊힌 사건입니다.
이 사건 이후 조선은 군사적 자주성을 상실하고 군대 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무력화는 일제 식민 지배로 이어지는 결정적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반면, 미국과 영국 등은 자신들의 군대가 벌인 모든 전쟁과 교전 하나하나를 기록하고 명명하며, 국가의 기억과 교훈으로 축적합니다. 우리는 역사의 결정적 장면이 벌어진 우리 땅, 우리 수도에서의 참혹한 현실조차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몽골의 일본 원정, 임진왜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등, 우리는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전장(戰場)과 군수물자, 민초들의 자식들을 내어준 비참한 역사를 지녔습니다. 다가오는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또다시 이러한 반복을 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냉정한 역사 인식과 객관적 분석, 철저한 대비 태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잘못된 역사는 외면할수록 반복되며,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무지로 이어지고, 무지는 결국 국가적 재앙으로 돌아옵니다. 120여 년 전 조선의 심장부에 벌어진 잊힌 이 사건은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이 역사를 기억하고, 연구하고, 대비하는 것, 그것이 곧 생존의 시작임을 일깨워 줍니다.”
빨치산유격대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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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망디 해변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천종웅 대표. 사진=천종웅 대표 |
“빨치산 유격대 현장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최후의 빨치산’이 1963년까지 활동했죠. 남자(성석제, 1951년 사살)는 공산주의자였고, 여자(정순덕, 비전향 장기수)는 남편을 따라 입산(入山)했어요. 정순덕은 전쟁이 끝나고도 10년 동안 유격대 활동을 했습니다.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이념이라는 게 참 무섭다’는 걸 느꼈죠.”
— 해외 전적지는요.
“노르망디 해변이요. 현장을 찾으면 연합군이 노르망디를 상륙 지점으로 택한 이유를 알게 돼요. 다른 해안은 절벽이지만 이곳은 모래사장이었습니다. 해변을 걸으면서 수십 년 전 이곳이 피로 물들었다고 생각하니 여러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전적지에 가면 책에서 배운 역사를 현장에서 검증하는 느낌이 듭니다.”
― 사례를 들어주십시오.
“방어 형태는 기동 방어와 지역 방어가 있습니다. 독일군 롬멜은 기동전의 대가였어요. 당시 독일군 수뇌부는 롬멜에게 기동 방어를 지시했는데, 오히려 롬멜은 지역 방어를 선택해요. ‘기동전의 대가인 롬멜이 왜 기동전을 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했죠. 기동전은 보급이 뒷받침돼야 해요. 하지만 당시 독일군은 군수 지원이 넉넉지 않았고 결국 연합군의 상륙을 막지 못했죠.”
— 더 추천할 만한 곳이 있습니까.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요. 로마 제국 북쪽 국경이었던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따라가다 보면, 당시 로마군이 ‘야만족’으로 여기던 북방 부족을 상대로 어떻게 싸웠는지를 상상하게 됩니다. 로마군은 문명을 전파한다는 사명감으로 이 험준한 땅을 정복해 나갔죠.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임에도 군인 복지와 보급 체계가 상당히 체계적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죠.”
전쟁은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
― 어처구니 없는 실수나 우연으로 전황이 뒤바뀐 사례도 많지 않습니까?
“일부 존재하나 많진 않아요. 전쟁에선 ‘언더독(underdog, 이길 가능성이 적은 자)’이 승리하는 사례가 더 적어요. 전쟁은 실력 있는 사람이 살아남기 때문이에요. 준비하는 자만이 승리할 수 있어요. 전쟁은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이기 때문이죠.”
― 올해는 6‧25전쟁 발발 75주년입니다. 6·25전쟁을 이끈 가장 훌륭한 지휘관 3명을 꼽는다면요.
“6사단장으로서 춘천 대첩을 이끈 김종오 장군, 백선엽 장군, 그리고 국가 지도자로서 이승만 대통령이라고 생각해요.”
— 워랩을 개점하고 기억에 남는 일이 있습니까.
“나가시노(長篠) 전투를 주제로 한 모임이요. 주한일본대사관 무관(武官)이었던 다케다 요헤이 대령이 참석해 발표했죠. 다케다 대령의 조상은 나가시노 전투에서 패한 다케다 가쓰요리(武田勝賴)입니다. 패장(敗將)의 후손이 직접 전투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죠.
또 사관생도와 사학과 학생들이 방문한 게 기억에 남아요. ‘교보문고보다 전쟁사 서적이 많다’며 웃는 얼굴로 돌아가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나가시노 전투(1575년)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의 아들 다케다 가쓰요리가 맞붙은 전투다.
종교와 전쟁, 전쟁과 종교
— 종교는 전쟁에, 전쟁은 종교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종교는 전쟁에 필요한 정당화 논리를 제공합니다. 대표적으로 중세의 십자군 전쟁이 있죠. 이종교(異宗敎)에 대한 살육을 정당화했죠.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아이젠하워 장군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앞두고는 ‘십자군 원정(Crusade in Europe)’이라고 표현하며 정당성을 강조했죠.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잔인하게 싸운 이유도 천황을 신으로 받들어 행위를 정당화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이 벌이는 각종 분쟁의 배경에도 종교가 있지 않습니까?”
천종웅 대표는 “전쟁은 종교 지형도 바꾼다”며 전쟁이 기독교 세계화에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기독교가 전파된 것도 로마의 이스라엘(유대인) 공격으로 인한 디아스포라(diaspora)가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을 수 있어요. 디아스포라가 없었다면 기독교는 유대인들의 종교로만 남았을 가능성이 있죠. 결국 로마의 박해와 정복 전쟁이 기독교 세계화에 기여한 셈이죠. 이슬람은 오스만 제국의 정복 전쟁을 통해 발칸 반도로 확산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 지역에 이슬람교가 퍼졌고, 이후 발칸 지역에서는 종교적·민족적 갈등이 심화했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20세기 코소보 전쟁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 이상(도덕, 정의, 법)과 현실(생존, 승리, 명령)이 충돌할 때 전쟁사는 무엇을 택해야 한다고 말합니까.
“이런 질문 굉장히 많이 받아요. 딜레마 상황이죠. 전쟁법에 근거해 포로를 다뤘다가 우리 병사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 포로를 죽여야 하는가? 이는 국제법에 어긋나죠. 모범 답안은 없어요. 다만 ‘미리부터 생각하고 고민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번 12·3 비상계엄 당시 우리 군 수뇌부는 어떻게 행동해야 했을까? 천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육군은 국내 정치에 휘말릴 가능성 있어”
“영국 사례가 있습니다. 영국에선 해군과 공군을 각각 ‘로열 네이비(Royal Navy)’ ‘로열 에어포스(Royal Air Force)’라고 칭해요. 외적(外敵)과 싸우는 데 초점을 두죠. 하지만 육군은 브리티시 아미(British Army)라고만 합니다. 그 배경에는 잉글랜드 내전(1642~1651년)이 있습니다. 내전 당시 의회파가 왕당파(찰스 1세)에 대항하기 위해 ‘신형군(New Model Army)’을 창설합니다. 신형군은 1660년 왕정복고 후 해산됐지만, 군대가 정치적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남겼습니다.
이처럼 육군은 국내 정치에 휘말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기밀 해제된 문서에 따르면, 광산 노동자 대파업(1984~1985년) 당시 영국 대처 총리는 군대를 동원해 파업을 진압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습니다. 군대, 특히 육군이 정치적 갈등에 개입될 수 있는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죠. 적어도 장군이 되면 ‘내가 정치 지도자에게 이용될 수도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전쟁사에서 군대가 정치적 도구로 활용된 사례를 제대로 학습했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서 고위 장성들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 미래에도 지금처럼 병종(兵種), 병과(兵科)를 구분할까요.
“전쟁의 신(神)이 있다면 이 신은 지금과 같이 구분하지 않을 듯해요. 하나로 통합, 융합해 효과를 극대화하리라고 봐요. 우리가 육군, 해군, 공군을 구분하는 이유는 편의성 때문입니다.
나폴레옹이 ‘군사적 천재’라는 소리를 들은 이유는 그전까지만 해도 따로 움직였던 보병과 포병을 하나로 묶어 전장에서 함께 운용했기 때문이죠. 향후 AI와 같은 기술이 발전하면 지금과는 다른, 통합된 형태로 전쟁이 벌어지리라 예상돼요. ‘하늘과 땅, 바다에서도 활약하는 건 오리밖에 없다’고들 말하는데, 훗날 기술이 발전하면 아이언맨과 같은 존재가 탄생할 수도 있죠.”
“《군인과 국가》는 將軍이 꼭 읽어야 할 책”
— 전쟁·군사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야 할 책이 있습니까.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앨빈 토플러가 쓴 《전쟁과 반(反)전쟁》, 호머 리의 《무지의 만용》을 추천합니다. 지휘관을 희망한다면 《롬멜보병전술》,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도 좋습니다.”
— 장군 또는 장군이 되고자 하는 이가 읽어야 할 책이 있다면요.
“민군(民軍) 관계에 대해 쓴 새뮤얼 헌팅턴의 《군인과 국가》요.”
— 한국군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경계형·행정형 군대로 변질됐다는 점입니다. 본질적으로 군인은 전투적 사고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사고 없는 군대’를 지향합니다. 야성(野性)이 강한 군인은 일찍부터 거세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군 생활이 의미 있을 리 없죠.”
— 해결 방법은 무엇입니까.
“군사 혁신이 필요하죠.”
— 어떻게요?
“제가 생각하는 혁신은 기존 권위에 자유롭게 질문하는 환경이 마련되는 겁니다. 그런데 아는 게 있어야 질문도 할 거 아닙니까? 이를 위해선 전쟁사를 공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초급 간부들이 전쟁에 대해 자유롭게 논의하는 문화가 형성된다면, 저는 ‘한국군 문제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전쟁사를 공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초급 간부들이 전쟁에 대해 자유롭게 논의하는 문화가 형성된다면, ‘한국군 문제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문치(文治)가 헤게모니(주도권)를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천종웅 대표는 워랩을 전쟁·군사 문화를 대중에 전파하는 장(場)으로 만들고자 한다. 일각에서는 워랩을 상무 정신의 기틀을 마련하는 ‘진지(陣地)’라고도 표현한다. 그의 다음 목표는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을 한데 모아 초등학생도 알기 쉽게 정리해 아틀라스(Atlas) 전집과 같은 책으로 엮어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