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평화의 사도’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추억

“굽히고 또 굽히되 부러지지 않도록”

  • 글 : 정종휴 前 주 교황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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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나라, 한국 방문 기억해… 사랑하는 한국민들에게 감사”
⊙ 2016년 12월 교황의 신임장 제정 당시 독대 20분… 한반도 평화와 한국 교회 주제로 대화
⊙ 필자에 대한 교황의 편애, 다른 대사들 “교황님은 한 손으로 가볍게 악수만 하시는데, 당신하고는 왜 두 손을…”
⊙ “한반도에서의 대화는 한국민들과 전 세계에 미래의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

鄭鍾休
1950년생. 전남대 법과대학 졸업, 일본 교토대 법학박사 / 전남대 법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 민사법학회장, 한국 법사학회장, 제14대 주교황청 대사 역임. 現 전남대 명예교수, 가톨릭꽃동네대학 석좌교수
정종휴 대사가 2016년 12월 19일(현지 시각)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고 있다.
2025년 4월 26일 온 인류의 애도 속에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가 끝나고 그의 유해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에 그야말로 소박하게 ‘프란치스쿠스(Franciscus)’란 이름으로 안치되었다.
 
  5월 8일 콘클라베에서 교황청 주교부 장관을 맡던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명을 ‘레오 14세’로 택한 그는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자 출신으로 최초의 미국인 교황이다. 새 교황이 회칙 ‘영원하신 아버지(Aeterni Patris)’(1879년)에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가톨릭교회의 공식 학설로 공표하고, 또 다른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1891년)에서 태동 중인 공산주의의 모순과 폭력성을 정면 비판했으며, ‘성미카엘 대천사께 대한 기도’를 정한 레오 13세의 이름을 이어받았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바가 있다.
 
교황 레오 14세가 5월 10일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을 찾아 전임자인 고(故) 프란치스코 교황의 무덤을 참배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교황의 선종(善終) 소식을 접하고부터 교황의 영혼의 안식을 비는 기도와 함께 곧 이어질 콘클라베에서 훌륭한 새 교황의 탄생을 기도해 온 사람으로서 감개무량을 금할 길 없다.
 
  필자는 2016년 11월 18일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제14대 주 교황청 대사로 임명받았다. 실제 부임한 것은 12월 1일이었으며 12월 19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신임장(Lettres de créance)을 제정했다. 이후 박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새 대통령이 나보다 더 나은 분을 새 대사로 임명함에 따라 나는 2018년 1월 12일 로마를 떠났다. 불과 13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으나 1월이 두 번 있어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이야기가 쌓이게 되었다. 재임 기간 중의 스토리를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한 교황의 발언과 함께 적어 보겠다.
 
 
  2016년의 첫 만남, 신임장 제정
 
정종휴 교황청 대사는 신임장 제정에 이어 교황과 독대의 시간을 가졌다. 한반도 평화와 한국 교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교황과의 추억에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면 2016년 12월 신임장 제정식 때 일이다. 주교황청 대사로 부임하면 신임장을 제정한다. 이어 교황 독대의 시간이 있다. 필자에게는 20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10분은 미리 준비한 이탈리아어 원고로 말씀드렸고 나머지 10분은 독일어로 교황님과 대화했다. 이 10분간의 독일어 대화를 위해 몬시뇰 한 분이 통역자로서 배석했다. 교황은 필자의 독일어를 다 알아들으신 듯 단 한 번만 몬시뇰에게 이탈리아어로 통역하라셨다.
 
  여러 사람이 이때 무슨 말을 드렸는지 궁금해하나 이야기할 수는 없다. 주로 한반도 평화와 한국 교회에 대한 이야기였다. 북한의 3대 세습 정권, 최악의 인권 상황, 핵무기 개발을 통한 계속적인 평화 위협을 거론하였음은 많은 이가 짐작하는 바와 같다. 교황은 큰 관심을 보이셨다. 한마디로 과연 ‘평화의 사도’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필자는 교황과의 20분 독대(獨對)에서 모든 이야기를 교리에 입각해 전하려고 노력했다. 교황은 이 점을 곱게 봐주신 것 같다. 이후 이어진 30여 분 동안의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과의 대면에서도 이 점을 선명히 했다.
 
  이듬해 1월 9일 10시30분 교황궁(Apostolic Palace)에서 열린 신년하례식에서였다. 교황청 주재 외교단 400여 명(180개국 이상의 각국 대사 및 직원 부부, 교황청 국무원장, 국무장관, 외교장관 등 주요 인사)이 참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00년 전인 1917년이 1차 세계대전의 격동기였음을 상기하면서 오늘날의 안보와 평화를 주제로 연설하였다. 연설 요지는 이렇다.
 
  〈평화는 하느님이 인류에게 부여한 선물(루카복음 2, 14)이며 “전쟁이 없는 상태” 이상의 것이다. 평화는 반대하는 집단들 간의 세력 균형이 유지되는 상태도 아니며 “보다 완전한 정의(giustizia)를 갈망하는 선의를 가진 사람들의 약속”을 요구한다.
 
  평화는 단순히 “조용한 삶(quieto vivere)”을 영위하는 것이 아니며, 각 개인과 사회가 인간의 선과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만들어가야 하는 “적극적 가치(virtu attiva)”이다.
 
  평화를 만드는 것은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불화, 즉 불의(ingiustizie)를 뿌리 뽑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정의와 평화는 가장 깊숙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평화의 적(nemica)은 인간에 대한 “소극적 시각(visione ridotta)”이다. 이러한 시각은 불의, 사회적 불평등과 부패를 확산시킨다.
 
  평화의 또 다른 적은 이데올로기다. 이데올로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제거해야 할 적으로 보며 경멸과 증오를 조장하기 위해 사회적 불안을 이용한다. 이데올로기는 빈곤, 분열, 사회적 긴장을 남기지만, 평화는 대화와 결속을 통해 승리한다.
 
  평화는 상처를 치유하고 인간관계를 재건하는 용서를 통하여 완성된다. 용서는 정의와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완성하는 것이다. 정의와 용서는 치유를 위한 본질적인 요소이다.〉

 
 
  세계 평화와 한반도 평화
 
  이어 2017년 1월 현재 세계 평화의 어둠과 그늘을 언급했다.
 
  〈오늘날 종교의 이름으로 다른 이들에게 마음을 열기보다는 다른 이들을 거부하고 소외시키며 폭력을 행사하는 일을 목격한다. 특히 근본주의 테러리즘을 생각하며, 아프가니스칸, 방글라데시, 벨기에, 부르키나파소, 이집트, 프랑스, 독일, 요르단, 이라크,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미국, 튀니지, 튀르키예 등에서 자행된 테러의 희생자들을 애도한다. 근본주의 테러리즘은 뿌리 깊은 정신적 빈곤의 산물이며 종종 실질적 사회적 빈곤과 관련되어 있다.〉
 
  교황의 세계 평화에 관한 걱정과 우려는 난민, 쿠바와 미국 간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 중동 문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 리비아 평화 회복, 수단과 남수단 등 아프리카 국가들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 미얀마 문제, 사이프러스 통일 협상, 우크라이나 문제, 유럽 본연의 정체성 회복의 문제, 인간의 한계를 넘는 자연재해 등등으로 이어졌다.
 
  그럼 한반도 문제는? 당연히 중요한 관심사였다. 한반도에서 실시되는 실험들이 지역을 불안하게 하고 새로운 핵무기 경쟁 위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교황의 신년하례식 연설 중 한반도 관련 내용을 들어보자.
 
  〈우리의 공통된 갈망은 개탄스러운 무기 거래를 없애고 보다 정교한 무기를 개발하고 확산하는 끝없는 군비 경쟁을 종식시키는 것이다. 특히 한반도에서 실시되는 실험들이 지역을 불안하게 하고 새로운 핵무기 경쟁 위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교황 성 요한 23세가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에서 진실되게 말한 바와 같이 “지혜와 인성(sagezza ed umanita)은 무기 경쟁을 중단하고, 동시에 기존 무기를 감축해야 하며 핵무기를 금지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향후 군축회의에서 교황청은 핵무기에 관한 논의를 조건 짓는 공포와 “봉쇄(chiusura)”를 넘어서는 평화와 안보의 윤리를 제시하고자 한다.〉

 
  교황의 연설이 끝나자 교황과 각국 대사들과의 개별 인사가 이어졌다. 인사 순서는 신임장 제정 순서에 따른다. 그러니까 부임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나는 대사로서는 거의 꼴찌 순번이었다. 외교관 수가 워낙 많아서 한 사람당 2~30초 정도였다. 가볍게 악수하고 인사만 했다. 그런데 필자 차례가 됐을 때는 달랐다. 교황은 서 있던 자리에서 한 걸음 다가오며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손을 잡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독일어로 말하였다.
 
  “지난번 당신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당신의 원고를 잘 읽었다. ‘당케, 당케, 헤르츨리헤 당케(Danke! Danke! Herzliche Danke!)’ 고맙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주위에 있던 다른 나라 대사들이 필자에게 물어올 정도였다.
 
  “교황님은 한 손으로 가볍게 악수만 하시는데, 당신하고는 왜 두 손을 잡고 고맙다고 인사까지 하시나?”
 
 
  “핵무기는 반드시 금지되어야 한다”
 
  2018년 1월 8일 교황궁에서 개최된 주 교황청 외교단 신년하례식 연설에서 교황은 “한반도에서 이뤄지는 대화를 위한 모든 노력에 지지를 표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e di primaria importanza che si possa sostenere ogni tentativo di dialogo nella penisola coreana)”고 강조했다.
 
  “한반도에서의 대화는 현재의 대립 상황을 극복하고 상호 신뢰를 회복하면서 한국민들과 전 세계에 미래의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교황은 “국가 간의 분쟁은 무기가 아니라 반드시 협상과 합의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면서 “오늘날 보다 파괴적이며 정교한 무기들이 생산되고 있음에도 우리가 서로 만나 협상함으로써 서로를 인간 대 인간으로 연결시키는 자연스러운 관계를 인식하게 되는 것은 희망적”이라고 했다.
 
  불과 며칠 전 북한 김정은이 핵 버튼을 준비했다고 주장하자 미국 트럼프 대통령 또한 트위터를 통해 미국의 버튼이 더 크고 강력하다고 주장했던 차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냉전이 한창일 때 교황 요한 23세가 발표한 문서를 인용하며 “핵무기는 반드시 금지되어야 한다. 우연과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대화재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2018년은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이자 세계 인권 선언 70주년이었다. 전쟁의 교훈과 평화, 인권과 정의, 난민과 이주민 보호, 기후변화에 대응한 환경 보호를 역설했다.
 
  〈1차 세계대전으로부터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는, 승리란 패배한 적에게 굴욕을 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공포와 위협을 통해서는 상대방의 공격적 행동을 억지할 수 없다는 교훈이다. 둘째는 평화는 모든 나라가 동일한 조건에서 토론했을 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
 
  이어진 180여 국 외교사절과의 개별 인사에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필자에 대한 편애(?)는 사람들의 놀라움을 불러일으켰다. 필자에겐 더 많이 말씀하신 것이다. “연설 후 개별 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른 외교관들보다 정종휴 한국 특사와 더 많은 시간을 대화에 할애했다(At the individual greetings after the speech, Francis spent more time chatting with South Korea’s envoy, Jonghyu Jeong, than with most other diplomats)”는 로이터 통신 보도는 국내에서도 바로 소개되었다.
  (https://www.reuters.com/article/world/pope-in-state-of-world-speech-urges-dialogue-in-korea-nuclear-ban-idUSKBN1EX0UP/)
 
 
  ‘평화의 사도’의 한반도 사랑
 
교황은 아시아권에서는 최초로 한국을 첫 방문국으로 선택했다. 교황 즉위 후 세 번째 방문국이 한국이었다. 2014년 8월 15일 대전 노은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 참석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신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조선DB
  교황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반도의 평화를 언급하였다.
 
  2017년 12월 25일 성베드로 광장에서 행한 성탄 강복(Urbi et Orbi) 메시지에서 “한반도가 협력의 정신을 되살려 그동안 겪어온 긴장을 극복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Possa la penisola coreana vedere superate le tensione che l’attraversano in un rinnovato spirito di colla borzaione)”고 언급했다.
 
  교황은 상기 한반도 평화 기원 외에도 전 세계에서 전쟁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과 테러리즘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이들에게 평화를 기원했다.
 
  2017년 3월 25일. 교황은 밀라노 대성당에서 성직자들과 대화 중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를 잠시 언급했다. 교황은 강론 중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선교지에서 이슬람교인들 사이에서 묵묵히 선교하는 수녀들에 대해 말하면서 “(한국 천주교는) 초기에 3~4명의 중국 선교사가 있었으나 2세기 동안 천주교는 평신도들에 의해 전파”되었다고 했다.
 
  물론 사실관계는 다르다. 한국 천주교는 1984년(정조 8년) 이승훈이 베이징에서 영세를 받고 돌아와 정약전, 이벽 등과 함께 신앙공동체를 결성하면서 시작되었고 평신도들이 교황청에 요청하여 1794년 중국인 주문모 신부(1명)가 최초의 선교사로 파견되었으며, 평신도들이 주축이 되어 여러 차례 대규모 박해 속에서도 꾸준히 전파된, 세계의 가톨릭 역사상 독특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교황의 한국 천주교회 언급은 2014년 아시아권 최초로 한국 방문(교황 즉위 후 세 번째 방문국)을 비롯, 한국 천주교회에 대한 교황의 애정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2017년 9월 2일 한국 7대 종단 지도자들이 교황을 알현한 자리에서 교황은 “종교 지도자들은 증오의 말잔치(rhetoric of hatred)를 거부하고 공포를 조장하는 표현들과는 분명히 다른 평화의 언어로써 비폭력과 평화를 선언하며 실천하는 평화의 전도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아름다운 나라인 한국 방문을 기억하고, 한국 방문에 대해 하느님과 사랑하는 한국민들에게 감사하며, 특히 하느님께서 한국민들에게 평화와 형제적 화해의 선물을 주실 것을 계속 기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아흐레 뒤인 9월 11일 콜롬비아 방문 후 귀국 기내 기자회견 중 북한과 관련하여 “지정학의 세계는 이해하지 못하나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이권의 다툼이 있다고 믿는다(una lotta di interessi che mi sfugge)”고 언급했다.
 
  필자는 2017년 10월 대사관저에서 열린 국경일(개천절) 리셉션 인사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얼마 전 한국의 종교 지도자들을 영접하였을 때, ‘증오의 말잔치(rhetoric of hatred)’를 거부하고, 평화의 언어로써 비폭력과 평화를 선언하며 실천하는 평화의 전도사가 될 것”을 당부하였음을 거론했다.
 
  교황은 그해 12월 25일 정오 무렵 성베드로 광장에서 실시된 성탄 강복(Urbi et Orbi) 메시지에서 한반도 평화를 기원했다.
 
  “한반도의 대결 상황이 극복되고 전 세계의 관심 속에서 상호신뢰를 증진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Preghiamo che nella penisola coreana si possano superare le contrapposizioni e accrescere la fiducia reciproca nell’ interesse del mondo intero).”
 
 
  세계 평화를 향한 교황의 지혜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18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국내 12개 종단 지도자들을 만나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17년 3월 25일 로마조약 60주년 특별정상회의를 하루 앞두고, 영국을 제외한 27개 EU 회원국 정상과 EU 상임의장과 집행위원장이 바티칸을 찾아 교황을 알현했다.
 
  교황은 “조약이 정신과 생명을 담고 있지 않으면 죽은 글자와 마찬가지”라면서 “유럽의 첫째 요소는 결속(solidarity)이다. 결속은 이기주의(self-interest)가 아닌 타인에 대한 개방성(openness towards others)으로부터 생성된다”고 했다. 당시 발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유럽의 선구자들이 가진 공통분모는 봉사정신(the spirit of service)이었다. 유럽 문명의 기원에는 그리스도교 정신(Christianity)이 있으며, 이것이 없으면 그동안 유럽이 지켜온 인간의 존엄성, 자유, 정의, 가족사랑, 생명존중, 관용, 협력과 평화의 가치가 이해될 수 없다.
 
  참혹한 전쟁을 거친 후 지난 60년간 또 다른 전쟁을 회피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오늘날 세계는 다시 위기의 시대로 특징되고 있다. 경제 위기, 가족 위기, 제도 위기, 이민 위기 등등을 겪고 있다.
 
  위기(危機)는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위기가 언제나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위기(crisis)라는 말의 그리스어 어원은 krino이다. 이것은 무언가를 식별하거나 가늠하거나 헤아리는 것(to discern, to weigh, to assess)을 뜻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의 시대는 식별(discernment)의 시대이다. 우리는 무엇이 본질적인지를 식별하고, 무엇을 만들어가야 할지 결정하는 도전과 기회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60년 전 유럽의 지도자들의 답이 바로 인간 본위, 결속, 세계에 대한 개방성, 평화와 개발의 추구, 미래에 대한 개방성이었으며 현재 유럽의 지도자들은 희망의 길을 식별(discerning the paths of hope)할 책임이 있다.
 
  슬프게도 오늘날 유럽 내에 유럽 시민들과 제도 사이에 균열(split)이 증가한다는 의식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 중심(the centrality of man)은 가족정신(spirit of familty)의 회복을 의미하며 유럽은 사람들의 가족(a family of people)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모든 좋은 가족에서는 구성원은 각자 다르지만 하나로 모인다. 유럽 연합은 다양성의 결합(a unity of differences)이자 다양성 속의 결합(a unity in differences)이다.〉

 
  2017년 6월 17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교황을 비공식 알현했다. 전날 로마로 오는 도중 헬무트 콜 전 수상이 서거하자 “정치의 예술가”라 칭하면서 그의 서거를 애도한 메르켈 총리는 7월 7~8일 함부르크에서 개최 예정인 G20 정상회의를 두고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교황은 메르켈 총리에 대해 현재의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안정을 지키는 지주(an anchor of stabiltiy in a messy world)”로 자리매김하면서 글로벌 리더로 부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메르켈 총리는 교황 알현 후 독일대사관저에서 공식 오찬을 주최했다. G20 국가 대사들을 초청했다. 필자는 메르켈 총리 내외와 함께 헤드 테이블(9명 착석)에 프랑스 대사 부부, 남아공 대사, 성직자 3명과 앉게 되었다. 필자 왼쪽에는 메르켈 총리의 남편 자우어 교수가 오른쪽에는 프랑스 대사가 앉았다.
 
  오찬 환담 중 메르켈 총리는 필자의 휴대폰을 보고 “삼성 제품이냐”고 웃으면서 관심을 표명하였고, 남편 자우어 교수는 필자더러 “어떻게 독일어를 잘(?) 구사하게 되었느냐”고 묻기에 1990년대 초 뮌헨 생활, 필자와 베네딕토 16세와의 인연을 말하였다.
 
 
  “굽히고, 굽히되 부러지지 않도록”
 
2017년 6월 17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교황을 비공식 알현한 뒤 대사관저에서 공식 오찬을 주최했다. 정종휴 대사는 총리 내외와 함께 헤드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메르켈 총리는 오찬 연설에서 금번 교황청 방문 목적은 함부르크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주요 이슈에 대한 조언과 격려를 얻고자 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그런데 메르켈은 최근 발간된 자서전 《자유》(한길사, 2024)에서 교황 알현 시의 흥미로운 기억을 털어놓았다.
 
  당시 메르켈의 진짜 걱정거리는 미국의 파리 기후 협약 탈퇴 문제였다. 메르켈은 교황에게 구체적인 이름은 밝히지 않은 채 중요 인물들이 모인 그룹에서 근본적으로 의견이 다를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교황은 그 말을 바로 알아듣고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
 
  “굽히고, 굽히고, 또 굽히되 부러지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메르켈은 이 비유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 앞에서 같은 말을 되뇌었다고 한다. 굽히고, 굽히고, 또 굽히되 부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라….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진 최고의 덕목은 ‘용기’라고 본다. 당신의 판단이 잘못됐다 싶으면, 그다음 날이라도 폐기할 수 있는 용기다. 교황으로서 보통 용기가 아니다. 한국의 유흥식 추기경을 대전교구장에서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 발탁한 것도 교황다운 용기의 발로였다. 교황청 국무원장인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에게도 이 말을 자주 드렸다. 교황께 이 용기를 21세기 가톨릭 르네상스의 지렛대로 쓰실 수 있도록 보좌해야 되지 않겠냐고 했다. 필자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발휘하신 크나큰 용기가 전 세계에 감동을 주었다고 본다.
 
  평화는 누구나 원하는 바이고 유일한 분단국인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절실한 소원이기도 하다. 반평생을 법학교수(민법학)로 지낸 필자에게도 나름대로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필자가 생각하는 것은 정치인들이 말하는 평화와는 결이 다른 것이다. 평화 전문가도 무엇도 아닌 필자가 의지하는 것은 가톨릭교회의 교리가 말하는 평화론이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세계 평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가톨릭교회 교리서-요약본》(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07)
 
  〈481. 세계 평화는 무엇인가?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인간 생명의 존중과 증진이 요구된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만도 아니고, 적대 세력들 사이의 균형을 보장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질서의 고요함(the tranquility of order)”(성 아우구스티노)이고 “정의의 결과(the work of justice)”(이사 32, 17)이며 사랑의 결실이다. 지상의 평화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나타내는 것이며 그 열매다.
 
  482. 세계 평화를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가?
 
  세계 평화에는 재화의 균등한 분배와 사람들의 선익 보호, 사람들 사이의 자유로운 의사소통, 사람들과 민족의 존엄성 존중, 정의와 형제애의 끊임없는 실천이 필요하다.〉

 
 
  민간인 신분으로 로마를 찾아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다음 날인 4월 22일 충남 서산 해미순교성지 성당에서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추모하는 미사가 열리고 있다. 사진=조선DB
  대사로 재임 중에 교황을 가까이서 여러 번 뵈었으나 말을 주고받을 상황은 주어지지 않았다. 오랜 벗 일본 교수랑 산타 마르타(교황이 머물던 성직자 숙소)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할 때 마침 점심을 드시고 떠나는 교황께 인사한 정도였다. 국무원장 파롤린 추기경과 외교장관 갈라거 대주교도 여러 번 만났으나 불과 몇 분간의 인사가 대부분이었다. 갈라거 대주교를 대사관저 만찬에 초대했을 때에도 동석한 사람들의 이목이 있어 대화는 즐거운 덕담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임할 때는 달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1월 이임 인사차 들른 필자에게 “당신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파롤린 추기경과 갈라거 대주교와는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2018년 1월 대사 임무를 마치고 귀국 후에도 로마를 찾았다. 물론 모두 자비 부담이었다. 진선미의 종합인 가톨릭 교리에 대한 확신과 가톨릭교회의 사명을 믿기 때문이었다.
 
  그해 9월과 2019년 10월 로마를 찾아 파롤린 추기경을 면담했다. 2020년 9월 어느 날도 12시15분 접견 약속이 잡혔으나 코로나19 방역 규제가 심해진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다. 2021년 10월 22일 12시15분 다시 파롤린 추기경을 만났다. 파롤린 추기경의 배려로 이틀 뒤 일반 알현 맨 앞자리(prima pila)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잠시 알현했다. 필자의 인사말에 바로 날 알아보신 듯했다. 마지막으로 로마를 찾은 것은 2023년 1월 5일 베네딕토 16세 교황 장례미사 때였다.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도 뵙고 국무원장 파롤린 추기경도 예방하였다.
 
  민간인으로 교황청을 방문할 때는 당연히 대사일 때와는 전혀 달랐다. 그렇더라도 필자의 경우는 조금 특이했던 것 같다. 어떤 경우는 차량으로, 어떤 경우는 사복 차림의 스위스 근위병이 나와 필자를 일종의 비밀통로 같은 곳을 통하여 국무원장 파롤린 추기경의 집무실로 안내했다. 파롤린 추기경도 따뜻한 마음씀씀이를 보여주었다.
 
  한번은 집무실에서 만난 다음 날이 공휴일이었을 때 필자는 아침 일찍 국무원장 관저(집무실 옆에 있으나 입구는 다른)에서 미사 참례 후 커피와 쿠키도 대접받았다. 물론 사복 차림의 근위병을 따라 조용한 통로를 거쳐 추기경 거처에 이른 것이었다. 현직에서 물러난 게 언젠데 여러 해 동안 교류가 이어진 것에 대해 과분한 은총으로 생각하고 있다.
 
 
  교황의 영혼의 안식과 새 교황에 대한 기대
 
  강자에게 굽히지 않았고 약자에겐 더욱 약한 자가 되려 했던 “평화의 사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혼의 안식을 빈다. 아울러 전지전능하신 분의 풍성한 은총으로 새 교황 레오 14세의 재위 중 1960년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래 공의회의 의도와는 전혀 달리 지리멸렬한 붕괴의 길을 걸어온 가톨릭교회에 21세기 가톨릭 르네상스의 꽃이 필 것을 빌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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