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

시대를 위한 조언,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上)

“親中 행보 보이면 우리의 생존 방정식 일그러진다”

  •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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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美동맹, 첨단 과학기술 동맹으로 확대해야”
⊙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블러핑 정치’… 미국의 활기를 되찾게 할지 의구심”
⊙ “트럼피즘은 미국의 가치였던 ‘자유민주’ ‘시장형 질서’의 퇴조 가져올 것”
⊙ “미국과 核 공유 협정 형식의 핵무장 고려할 만”
⊙ “美蘇 냉전은 경제적 상호작용 없는 진영 이념… 美中 경쟁은 상호 의존성에 뿌리”
⊙ “중국은 굴종하는 국가는 종 부리듯 부리지만, 덤비는 국가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나라”

鄭德龜
1948년생. 배재고, 고려대 상학과 졸업, 美 위스콘신대 경영대학원 석사 / 재무부 경제협력국장·국제금융국장, 재정경제원 대외경제국장·기획관리실장·제2차관보·차관, 산업자원부 장관, 서울대 국제금융연구센터 소장, 중국 베이징대 초빙교수, 중국 인민대 재정금융대학원 교수, 중국사회과학원(CASS) 정책고문, 제17대 국회의원, 국제회계기준재단(IFRS) 이사 역임. 現 니어재단 이사장
사진=정덕구 이사장
“한국과 미국·중국은 한미(韓美)·한중(韓中)의 양자(兩者)관계도 중요하지만, 한미중(韓美中) 3자관계를 상정하고 문제점을 파악해야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습니다.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전통적인 접근법은 더는 먹혀들어가지 않습니다. 한국은 중국의 부상(浮上)에 편승하는 성장 모델에서 벗어나 미중 경쟁 속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경제질서에 적응해야 합니다. 새로운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정덕구(鄭德龜) 니어재단 이사장은 단호했다. 정통 경제 관료 출신으로 외환위기 때 대(對) IMF 협상 수석대표를 맡았고 김대중 정부에서 재정경제부 차관,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정 이사장은 2004년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권유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 들어갔다가 중간에 돌연 사임했다. 이후에 그는 순수 민간 독립 싱크탱크인 니어재단(NEAR·North-East Asia Research Foundation)을 설립하고 20여 년간 러시아·중국·북한 등 동북아 국가들을 연구해 왔다.
 
 
  “중국의 ‘발톱’ 보고 중국 연구 시작”
 
정덕구 이사장이 영문 출간한 《시진핑 시대의 한미중 3자 관계》 표지.
  정덕구 이사장은 지난 연말 미국 유수 출판사(Bloomsberry)에서 《시진핑 시대의 한미중 3자 관계(KOREA-US-CHINA Trilateral Relations in the Xi Jinping Era)》라는 책을 영어로 발간했다. 책의 내용에 미국의 싱크탱크 및 동북아 연구자들은 열광했고, 그는 브루킹스연구소,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등에서 강연했다(13차례). 책이 나온 직후에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했고 전(全) 세계는 불확실성에 빠졌다. 정 이사장은 지난 2월 윤병세(尹炳世) 전 외교부 장관, 김성한(金聖翰) 전 대통령실 안보실장과 함께 미국 뉴욕과 워싱턴을 방문해 미국우선주의정책연구소(AFPI), 브루킹스연구소, 헤리티지재단, 랜드연구소(RAND), 비콘국제전략연구소(Beacon Global Strategies), 전미아시아연구소(NBR) 관계자들과 잇따라 세미나를 개최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변화무쌍한 거래 방식 속에서 한국의 입장을 설득하고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안에 대해 파악, 정리하고 돌아왔다.
 
  학술서에 가까운 책에 미국의 지식인들이 큰 관심을 보인 이유는 그가 중국을 단순히 관료나 학자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20여 년 동안 그 속살을 들여다보고 한미중 관계를 심층적으로 연구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관료를 그만두고 서울대에서 교편을 잡고 국제금융연구소를 설립 및 운영했고, 원자바오(溫家寶) 당시 중국 총리의 초청으로 베이징대 교수, 중국사회과학원(CASS) 정책고문을 역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이라는 미지(未知)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경제를 가르쳐 달라. 우리를 우향우 시켜 달라’고 요청해 정계에 나갔지만, 386을 위시한 민주당이 민노당보다 오히려 좌(左)로 치우치는 모습에 실망해 2년 만에 의원직을 사퇴하고 나와 니어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중국을 연구하면서 그들이 깨어나는 순간을 봤고, 그 안에 숨겨진 ‘발톱’을 봤습니다. 그 발톱을 드러내는 순간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의 생존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해 중국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인들의 이분법적 시각 변화시키려 집필”
 
니어재단에는 그동안 내놓은 《거대 중국과의 대화》 《한국을 보는 중국의 본심》 《극중지계》 등이 진열돼 있다.
  ― 전문적으로 중국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니어재단이군요.
 
  “2000년대 초반에 우리나라에는 중국어문(語文) 관련 학과가 있을 뿐, 본격적으로 중국을 연구하는 단체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우리에게 큰 위협이자 기회라는 것을 인식하고 심층적으로 연구해 여러 권의 책을 냈습니다. 이후 NEAR 학술상 제정 등을 통해 국내에 중국 연구 붐이 일었고, 한중안보전략 같은 회의들이 생겼습니다. 중국 연구에서는 니어재단이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자부합니다.”
 
  ― 민간 연구단체라서 한계가 있었을 텐데요.
 
  “니어재단을 세계 굴지의 싱크탱크로 발전시키겠다는 일념 하나였습니다. 재단을 꾸려 가는 일 외에는 아무런 바깥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흔히들 받는 사외이사, 고문 제의를 다 거절하고 오로지 학문 연구에만 몰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적(知的) 탐구력, 지적 상상력을 통해 얻은 지적 충만함이 주는 기쁨이 제게는 최고의 성취였습니다.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 국가들에 대한 연구가 최우선이었고 미국은 과거 IMF 시절부터 협상 파트너 국가였기 때문에 항상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책은 중국을 무조건 적대시하면서 미중 관계를 한중 관계, 미중 관계 같은 이분법적인 사고로 바라보는 미국인과 아시아 국가 연구가들의 시각을 변화시키기 위해 썼습니다.”
 
  니어재단이 그동안 내놓은 책은 《외환위기 징비록》 《거대 중국과의 대화》 《한국을 보는 중국의 본심》 《극중지계(克中之計)》 《시진핑 시대는 한국의 도전인가》 《기로에 선 북중관계》 《한국의 새 길을 찾다》 등이다. 정 이사장은 “이번에 내놓은 책은 니어재단의 26번째 책인데 그간 연구의 집대성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책은 미국의 상거래 사이트인 아마존에서도 꽤 많이 팔렸다. 학술서가 아마존에서 판매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미중 경쟁은 미소 냉전과 근본적으로 달라”
 
  니어재단이 중국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한 지 10여 년이 지난 2015년 당시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좋은 편이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중국을 미국의 대화 파트너로 인식했다. 하지만 곧이어 집권한 트럼프 1기 정부부터 미중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해 극단적인 대치 상황까지 치달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가두겠다’ ‘중국 디커플링’ 등의 극단적 정책을 쓰는 것을 보면서 저의 중국 연구는 새로운 답을 구해야 했습니다. 미중 경쟁은 과거 미국-소련 간의 냉전(冷戰)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냉전은 경제적 상호작용이 전혀 또는 거의 없었던 두 이념 진영 사이에서 벌어졌지만, 오늘날의 미중 경쟁은 세계화된 세계 내의 상호 의존성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미중 관계 속에서 한국이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는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왔습니다.”
 

  ― 바이든 행정부 때 미중 관계가 조금 소강상태에 들어갔다가 트럼프 2기가 시작되면서 더욱 증폭된 분위기입니다.
 
  “CSIS 등 많은 싱크탱크에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해 2023년 하반기부터 미국 워싱턴에 머물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 논문을 쓰고, 그걸 책으로 묶어 냈습니다. 미국의 고위 관계자들에게 한국과 중국의 ‘불가분의 보완적 생존 관계’를 설명했습니다. 한미동맹은 우리가 최우선으로 추구해야 하는 가치이지만, 미국과 달리 한국은 중국과 오랜 역사적 연관성과 함께 인접국이라는 절대적 특수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폭주하면서 한미·한중 관계는 이상한 회로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한미중 세 나라가 가진 관계를 이해하지 않은 채 양자 관계로만 접근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 한국과 중국, 미국과 중국의 교집합 등 복잡한 함수관계를 이론적으로 증명하기로 했습니다. 한미중 관계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조화된 분석 도구가 필요했습니다.”
 
  ― 어떻게 분석했습니까?
 
  “삼각분석 프레임워크는 지정학, 지(地)경제학, 지기술학 분야에서 3국 간의 교차하는 이해관계, 갈등, 상호 의존성, 그리고 경쟁과 협력 영역의 조감도를 보여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도구는 수학적 분석과 상세 분석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잠복해 있는 갈등과 미래의 경쟁 영역을 조명해 적극적인 정책 수립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美, 전형적인 로마 제국 말기 현상”
 
  책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대(大)전략으로 ‘국력 증강을 통한 세계 강대국 도약’을 천명했다. 중국 인민들에게 지난 100년의 서구 지배의 한(恨)을 고취시키며 미국에 대한 전면 도전을 선언했다. 이를 위해 중국 사회의 질서와 안정 유지, 경제 성장의 반격, 중국의 영토와 주권을 위협하는 외세에 대한 저항, 주요 세계 강대국으로서 지정학적 영향력 확보 및 확대를 내세웠다. 이에 대한 미국의 전략은 ‘미중 분리(디커플링)’로 특징지어졌다. 미국은 중국과의 교류를 점차 제한하면서 칩4(CHIP 4), IPEF(국제경제포럼), 쿼드(Quad) 등의 계획을 통해 중국을 고립시키려 했다. 이에 중국은 경제 자립도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추구해 왔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은 정면으로 충돌했다. 트럼프의 보편적 관세 부과 정책도 이런 과정에서 나왔다.
 
  하지만 미중 경쟁의 근본적인 과제는 양국이 생존을 위해 경쟁하는 동시에 협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책은 “마지못해서나마 협력하는 것과 치열한 경쟁 사이의 미묘한 경계선에서 양국은 파괴적인 충돌 위험을 잘 관리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경제적 상호 의존을 무기(武器)화하는 과정에서 외부적 제약에 직면한다”고 분석했다.
 
  정덕구 이사장은 ‘트럼피즘의 실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저는 미국이 서서히 위축되어 가는 과정을 목도했습니다.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만들었던 4개 기둥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미국을 지탱한 첫 번째 기둥은 1900년대 초부터 초강대국으로 넘어가면서 퍼진 기독교적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입니다. 미국인들은 근면 성실하고 생활을 절제하며 박애정신을 가져 왔는데 그것이 기업가 정신과 결합해 미국 경제력의 대확장을 가져왔습니다. 두 번째 기둥은 고급 인력을 수입할 수 있었던 이민 정책입니다. 독일·프랑스·스페인 등에서 고급 인력이 유입되며 그들을 기반으로 한 과학기술 발전과 문화국가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세 번째 기둥은 민주정치의 갈등 요인을 바로잡을 수 있는 균형감 있는 의회정치였습니다. 공화·민주 양당 정치의 폐해를 의회가 균형 있게 잡아 줬습니다. 마지막은 탄탄한 중산층 벨트, 그리고 사회 균형추였던그들이 뿜어 내는 엄청난 소비문화였습니다.
 
  그런데 미국을 지탱한 100년의 기둥이 무너졌습니다. 미국의 박애정신, 근면 성실함이 사라지고, 정신세계가 무너지고, 중남미 출신 이민이 늘어나자 허드렛일은 그들에게 맡기고 미국인들은 덜 일하고 인생을 즐기며 생활하는 현상이 생겼습니다. 전형적인 로마 제국 말기의 현상입니다. 그걸 트럼프가 정치적으로 이용한 겁니다.”
 
 
  “트럼프, 국내 소비에 주목”
 
트럼프의 관세 전쟁 이후 미국 증시가 폭락했다. 다우 지수와 S&P 500 지수가 2024년 8월 30일에 하락했을 때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사진= 뉴시스
  ― 트럼피즘 등장의 조건이군요.
 
  “민주당의 지나친 ‘인간의 존엄과 가치’ 중시가 오히려 사회를 오염시킨 거죠. 국가 내부의 구조적 문제들이 터져 나오는 과정에서 미국인들은 도덕성이 높은 가치적 인물보다 강경하고 지도력 있는 인물이 미국을 변화시키기를 기대했습니다. 동성애, 불법 이민, 마약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고 재정 위기도 심화됐습니다. 거기에 ‘세계 경찰국가’로서 미국에 대한 자부심도 무너지면서 이에 대한 반발심으로미국인들이 트럼프를 지지했습니다.”
 
  ― 외부에서는 트럼프처럼 도덕적으로 흠이 많은 사람을 미국민이 선택한 것이 의문이라고도 하는데요.
 
  “미국의 국력(國力)은 네 가지입니다. 군사력, 달러 파워, 소프트파워, 마지막은 방대한 국내 소비입니다. 군사력은 유지비 과다로 재정 적자가 확대됐고, 방대한 통화 증발(增發)과 과도한 국가 부채에 따른 달러에 대한 신뢰 상실로 반(反)달러 캠페인이 확산하며 달러 파워도 약화 일로에 있습니다. 첨단 과학기술을 앞세운 소프트파워는 중국의 기술력 강화로 흔들렸습니다. 트럼프가 주목한 것은 마지막 남은 ‘방대한 국내 소비’였습니다. 세계를 흔들어 놓을 ‘무기’로 미국 내 국내 소비를 선택한 겁니다. 그러려면 보호·관리무역 시대로 가야 하니, 관세 정책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의 수단으로 삼은 겁니다.
 
  하지만 그동안 자산이 줄어든 미국인들의 삶을 지탱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값싼 중국 제품이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제이크 설리번 바이든 외교안보보좌관은 2023년 5월에 브루킹스에서 행한 연설에서 ‘뉴 워싱턴 컨센서스’를 제창하며, ‘제조업의 공동화(空洞化) 때문에 중국에 신세를 질 수밖에 없다. 산업의 공동화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으로서는 대체재를 찾으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다른 국가와의 협력도 필요했던 겁니다. 그래서 중국이 아닌 동맹국과 협력하기 위해 우리나라 기업에 ‘미국 내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등으로 해결책을 모색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하고 나서 하루아침에 협력적 보조금을 폐지하고, 관세라는 무기로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블러핑 정치’로 신뢰자산 잃어”
 
2003년 8월 말, 베이징대 초빙교수 임명 전 원자바오 중국 총리(오른쪽)와의 만남.
  ―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한마디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전형적인 블러핑(bluffing·허풍)의 정치라고 봅니다. 트럼프 대통령 1기 때도 초기에 이와 비슷한 매뉴얼로 밀어붙였는데 그 귀결은 10% 정도의 성과로 끝났습니다. 트럼프의 전략은 아무것도 없는 저울 위에 발을 올려놓고 ‘뭐라도 해주면 발을 내릴게’ 하는 정도입니다. 미국은 영국과는 관세를 폐지할 뜻을 내비쳤습니다. 지난 5월 12일 미중 간 관세 협상이 110%라는 양국 관세에서 인하하기로 한 것도 블러핑 외교의 한 예입니다. 전형적인 공갈이죠. 그런데 과연 이것이 미국의 활기를 되찾게 하는 전략이냐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 미국의 관세 정책이 실패하는 것일까요?
 
  “국가 간의 갈등 관계는 그 복잡성(complexity)에 있습니다. 이것을 미국은 너무 단순화해(정 이사장은 ‘oversimplify’라고 표현했다) 생각합니다. 미국은 국력이 자기네 30%밖에 되지 않는 나라를 유연하게 다룰 줄 모르고 굉장히 고압적인 자세로 압도하려 합니다. 과거에 제가 미국과 협상을 할 때 ‘왜 미국인들은 말을 저렇게밖에 하지 못하지?’ 하며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복장 문제로 시비를 걸며 고압적인 자세를 취한 게 그 표징입니다.
 
  미국이 왜 베트남전에서 패했을까요? 베트남 국민이 스스로 베트콩에 가담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은 국력 때문에 실패합니다. 미국 전략가들은 미국의 국력이 남보다 우세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정책 수립 과정에서 과도한 단순화와 과도한 확장 경향으로 인해 이것이 전략적 실패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의 국력이 약화하는 데는 미국의 이런 문제 해결 방식과 태도가 분명히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중국이나 한국에 대해서 양국 관계가 아니라 3국 관계를 중심으로 인식하기 바라면서, 미국이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알리기 위해 책을 썼습니다.”
 
  ― 트럼프 2기 정부가 지금까지의 자세를 유지하다간 실패할 수 있다고 보시는 건가요?
 
  “유연한 협상 자세를 발휘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많은 것을 잃을 겁니다. 영국에 대한 관세가 시금석이 될 겁니다. 미국은 영국에 대해 아마 자동차를 제외하고는 관세를 매기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트럼프의 ‘블러핑 정치’가 잃어버린 것은 신뢰자산입니다. 신뢰는 보이지 않는 자산입니다. 미국은 2010년 이후에 금융 붕괴, 달러 파워 약화로 신뢰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동맹국에 대해서는 적어도 신뢰를 지켰어야 합니다. 지금은 동맹국을 모두 적(敵)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미국 국민은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캐나다 총리 등 전 세계가 절절매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을 위안 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쓸쓸한 고립만 남을 겁니다. ‘트럼피즘 2.0’은 결국 역사에 미국의 취약점만 노출할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게 될 것입니다.”
 
 
  “트럼프, 2027년부터 노벨평화상 수상 시도로 방향 틀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9일(현지 시간) 매콤 커뮤니티칼리지 스포츠엑스포센터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념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 실패할 것으로 보는군요.
 
  “관세 정책은 단기 처방에 불과합니다. 중장기적으로 생산자·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미국 국민의 소비자 잉여를 감소시키고 근원 인플레이션을 상승시킵니다. 특히 부품·소재 등의 중간재에 대한 관세는 강한 역풍을 불러일으킬 겁니다. 그동안 금기시됐던 미국의 적성국들(러시아·중국·이란·북한 등)과 직접적인 딜(deal)을 시도할 경우엔 우방과의 동맹 체제에 균열을 일으킬 것입니다. 한국, 일본, 호주 및 유럽은 미국과의 동맹 체제 와해를 우려할 것이고, 러시아와 이란 등 반미(反美) 세력이 우세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2026년 3월 이후부터 트럼피즘의 속도 조절기(期)가 시작될 것으로 봅니다. 2026년 11월 3일 미 의회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할 수 있을까요? 결과적으로 트럼피즘은 무역 구조의 변화를 꾀하다가 산업 구조를 왜곡하고, 공급망 체계의 혼란을 가져올 겁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은 충만하지만 능력은 부족한 사람들이 대거 포진해 있습니다. 미국에 대한 신뢰의 위기가 증폭되며 ‘가치적 2류 국가’로 전락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올해는 트럼피즘의 유희가 이어지겠지만 내년부터는 속도 조절에 들어갈 것이고, 2027년부터는 트럼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시도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트럼피즘은 미국의 가치였던 ‘자유민주’ ‘시장형 질서’의 퇴조를 가져올 겁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적 가치를 훼손하고, ‘도덕과 윤리’보다 ‘돈’을 추구하는 가치의 역류(逆流) 현상이 발생할 겁니다. 우방들은 지금은 트럼프에 굴종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마음속으로는 추종하지 않을 겁니다.”
 
 
  “시진핑, 2027년 변곡점 맞을 듯”
 
  정덕구 이사장의 미국에 대한 견해를 단순한 이방인의 이해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외환위기 때 IMF와 협상의 수석대표를 맡으면서 미국과의 직접적인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그의 이력 때문이다. 당시에 미국 측은 정 이사장을 ‘가장 까다로운 한국 측 파트너’로 꼽았다.
 
  정 이사장은 20여 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시진핑 시대에 대해서도 고견을 쏟아 냈다.
 
  “중국의 시진핑 체제는 2027년에 당(黨)대회에서 4기 진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변곡점을 맞을 가능성이 큽니다. 중국 군부 내부에서 불협화음이 커지고 있고, 시 주석의 장악력에 다소 금이 갈 수도 있습니다. 중국은 국방위 주석과 당 주석이 합쳐서 중국 전체에 강력한 장악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아직 당은 시진핑에 대해 절대적 충성을 맹세하지만 군사위원회의 모습은 다릅니다. 군사위원회는 부패 구조 속에서 서로 물고 뜯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군부는 민심이 흉흉할 때 들고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현재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20%를 넘고 있습니다. 중국은 거시경제의 함정, 유동성 함정, 중진국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거기서 빠져나오려면 미국의 절대적인 협조가 필요한데, 시진핑은 미국과 극단적인 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 중국이 부상한 지 오래됐고, 다들 중국의 ‘세계의 공장’ 역할과 국내 소비 시장 사이즈를 부담스러워 하지 않습니까.
 
  “미국 국력은 홀로 전 세계 GDP의 26.5%를 책임지는 데서 나옵니다. 동맹국 파워를 합치면 미국이 전 세계 GDP에 끼치는 영향력은 60%에 육박하지만, 중국은 아직 16.5% 정도에 그칩니다. 중국이 전 세계에서 압도적인 파워를 행사하기엔 역부족입니다. 더구나 중국 내 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고급 월급쟁이들조차 버티지 못하고 있고 중산층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수출이 늘어야 하는데, 미국과의 마찰로 그마저 줄어들고 있습니다. 경제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중-러는 언제든지 끊어질 수 있는 약한 관계”
 
  정덕구 이사장은 이번 책 표지에 굉장히 공을 들였다고 했다. 표지 콘셉트를 위해 3개 국가의 복잡성(complexity), 갈등(conflict) 그리고 상호 의존(interdependence)을 바탕으로 한국과 미국, 중국 외에 북한, 일본, 러시아, 호주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표지를 보면 한국과 미국의 교집합이 가장 크다. 한국과 중국의 교집합은 그에 비해 작으며, 한미중 3국가의 교집합도 같이 연결돼 있다. 한국-미국은 짙은 굵은 실선으로 연결돼 있어 둘 사이의 관계가 강함을 보여 주는 반면, 한국-일본은 가는 실선이다. 한미 관계보다 한일 관계가 약하다는 뜻이다. 중국-북한-러시아 삼각관계를 실선 아닌 점선으로 나타낸 것은 언제든지 끊어질 수 있는 약한 관계라는 뜻이다. 정덕구 이사장의 얘기다.
 
  “한국-미국-중국이 형성하는 복잡하고 미묘한 삼각관계를 분석하면 동북아 지역 내 다른 세 삼각관계가 일으키는 복잡성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첫 번째 삼각관계는 한미일로, 캠프 데이비드 선언(2023년 8월 18일)의 결과물입니다. 두 번째 삼각관계는 한중일입니다. 2024년 5월 26~27일에 서울에서 개최한 3국 정상회의가 성공적이었다면 한미일 3국의 안보협정에 대한 중국의 불만은 상당히 완화됐을 겁니다. 세 번째는 중국-러시아-북한입니다. 이 외에도 한미중, 한중러라는 미묘한 관계가 있습니다.”
 
  ― 굉장히 복잡한 관계네요.
 
  “충돌 지점이 전부 다릅니다. 미·중은 상호 보완적 관계에서 대립 관계로 변했습니다. 중국이 첨단 기술과 플랫폼 분야에서 미국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미국은 중국의 성장 잠재력을 과소평가했죠. 미국은 중국에 대한 장기적인 전략을 재검토해야 할 상황에 부닥쳤습니다. 한중 관계에서 한국은 중국이 남북 관계에 대해 중립적 입장을 유지하기를 기대하고, 중국은 역시 한국에 미·중 사이의 중용을 요구합니다. 한미중의 삼각관계는 단순한 국가이익 충돌을 넘어서 상호 안보 위협으로 확대되었습니다. 하지만 한중, 한미, 한미중 사이에는 모두 경제적 상호 보완성이 명백하게 존재합니다. 때문에 이들 간의 갈등은 미소 냉전 시대와 다른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정면 충돌보다는 궁극적으로 타협하며 관리되는 라이벌 관계입니다. ”
 
 
  한국의 핵무장
 
  정덕구 이사장은 지난해 9월에 열린 ‘인태(印太) 지역의 안정을 위한 한일중 3국 협력’을 주제로 열린 ‘2024 제주포럼’에서 다음과 같이 기조연설했다.
 
  〈최근 미중 간 대립은 한국을 자강(自强)의 길로 내몰고 있다. 현실적으로 한국과 중국은 가치적, 문명사적 동류(同類) 국가가 될 수 없다. 미국의 국내정치 특성 때문에 한국이 어려울 때 미국이 항상 세이프가드나 최종 대부자(lender of the last resort)가 될 것이라는 믿음은 비현실적이다. 중국과 미국 모두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며, 한국이 이에 반하는 선택을 할 경우 언제든지 국익 차원에서 한국에 등을 돌릴 수 있다. 한국은 미중 사이에 낀 존재에서 벗어나 두 강대국 모두에 필요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 자강론도 당분간 두 나라의 협력 없이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 제주포럼에서 ‘자강론’을 언급하셨는데요.
 
  “모든 것을 감안할 때 가장 합리적인 것은 한국의 핵(核)무장입니다.”
 
  ― 한국은 NPT(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해 있는데요.
 
  “우리가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만들어서 보유하지 않고, 그 최종 전(前)단계까지만 가면 됩니다. 미국과 핵 공유 협정을 맺거나, 독일이나 일본처럼 ‘무기화되지 않은 무기(unweaponized weapon)’ 형태로 보유하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한국이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NPT 위반이 아니며, 어떤 형태로든 핵 무기를 생산할 때 최종적으로 미국과 협의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 사드(THAAD) 배치 문제로도 중국이 난리를 쳤었는데, 이를 받아들일까요?
 
  “사드 배치 자체가 아니라, 한국 안보 라인의 외교적 실수인 부분이 있었습니다. 미군이 중국 본토를 감시할 수 있는 사드 레이더를 우리나라에 배치하려 한다는 것을 중국 사람들이 몰랐을까요? 과연 중국 사람들이 한국이 우리의 이익 때문에만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한다고 생각했을까요? 중국 사람들은 우리가 아니라 미국인들의 전략적 선택이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의 안보 라인이 처음부터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동맹국인 미국이 하려는데 어떻게 반대를 하느냐’고 중국을 설득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드 배치를 놓고 우리 안보 라인의 말이 연일 달라지니까 중국이 우리를 신뢰하지 않은 겁니다. 우리의 전략 미스였죠. 중국한테는 솔직하게 말하고 이해를 구했어야 합니다.”
 
 
  “중국, 사드 사태 후 반성 중”
 
  ― 말씀대로 했다면 중국도 이해했을 것으로 보시는군요.
 
  “중국은 한국과 미국이 동맹국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완전히 미국 쪽으로 기울면 자신들에게 피해가 갈 것 같으니까 가운데 어느 지점에 서주기를 바랍니다. 중국은 어차피 우리가 중국 편에 서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윤석열(尹錫悅) 전 대통령과 페루에서 만나고, 올해에도 시 주석이 경주 APEC 정상회담에 온다고 하고 그러는 것은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위상 뿐 아니라 우리에 대한 유화책입니다.”
 
  ― 중국이 굳이 우리에게 그래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첫째, 한국에서 공급받아야 할 기술력, 첨단 제품이 필요한 등 한중 협력의 필요성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한국의 군사력 때문입니다.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 육성 이후 자주국방 프로그램이 착착 진행돼 와서 우리의 군사력은 이미 강대국 수준이고, 세계 유수의 무기 생산국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보유한 무기 중 상당수는 구식 무기라는 정보가 있습니다.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무기가 너무 구식이라는 것이 만천하에 공개됐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막강한 군사력은 중국에 큰 위협이 됩니다. 중국 전역에 우리의 미사일이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중국으로서도 위협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중국, 러시아는 공산주의 국가의 한계 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제가 과거 베이징대 사회과학대학원 정책고문을 할 때 ‘중국에 외환위기가 생기면 한국 국민처럼 금 모으기 운동을 할 것이냐’고 했더니 ‘중국 사람들은 오히려 금을 숨길 것’이라고 하더군요.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는 국가의 국민이 위기 때 어떻게 자신을 희생할 수 있겠습니까.”
 
  ― 우리 생각보다 중국은 우리를 더 두려워한다고 이해하면 될까요?
 
  “당연합니다. 저는 중국이 사드 사태로 인해 오히려 깨달음이 많았다고 봅니다. ‘한국을 적국(敵國)으로 돌리면 안 된다. 미국과 쿠바와의 관계와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물론 겉으로는 강하게 반발을 하겠지요. 일본 각료나 의원들이 신사 참배를 하면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비판하고 일본과의 단절 등을 언급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기기 어렵습니다. 그것이 외교입니다. 중국은 사드 때 한국에 경제 보복을 한 것에 대해 반성 중이고, 두 나라가 적국이 되지 않고 공생(共生) 구조로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중입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그것이 가장 국익에 좋은 방법입니다.”
 
 
  “미국은 한국이 절대적으로 필요”
 
  ― 결국 우리는 미국과의 탄탄한 동맹 외교 기반 위에 중국과는 장기적 공존 관계 속에서 서로 교류해야 하는군요.
 
  “미국의 패권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서서히 약해질 겁니다. 매우 조금씩 가라앉는 배처럼 말입니다. 자기네 배가 워낙 크기 때문에 영원히 튼튼하게 항해할 줄 알고 미국인들은 갑판 위에서 파티 합니다. 그러나 상당 기간이 흐르고 모두는 그 배가 (많이) 가라앉고 있음을 알게 될 겁니다. 모든 것은 국가사회의 생산성이 말해 줍니다. 그래도 앞으로 30년 정도는 미국이 잘 버틸 것이고 과학기술 리더십은 계속 유지될 겁니다.”
 
  ―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미국 사람들도 한미가 ‘같은 배를 탔다(sailing in the same boat)’고 말합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동맹관계라는 신뢰자산에, 최첨단 제조 기술을 가진 생산성 높은 국가입니다. 과거의 미국이 서비스산업 위주로 발전하면서 제조업 생태계가 망가진 상황에서 중국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협력 대상은 한국뿐입니다. 일본은 제조업의 대량생산 체제가 약화되었기 때문에 그 역할을 하기 어렵습니다. 일본은 핵심 부품의 원천기술로 먹고사는 국가입니다. 사실 자유무역의 최대 수혜자는 한국과 중국, 러시아였는데 미국과 중·러 사이가 틀어진 상황에서는 한국이 유일한 대안입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을 끝까지 추격하겠다는 마음은 있지만 계속 적대화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커다란 역할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인태(인도-태평양) 전략 차원에서도 한국은 미국의 가장 소중한 대(對)중국 교두보 역할을 할 겁니다.”
 

  ― 미국이 우리를 중국을 대신할 파트너로 생각할까요?
 
  “애당초 한미동맹은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 안보동맹 관계로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첨단 과학기술 분야의 공조(共助)가 시작됐고, 범위를 더욱 확대해야 합니다. 한국과 중국은 지난 40여 년간 상호 보완적인 경제관계였지만 그 비중이 작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수십 년간 25%를 유지하다가 최근 19.5%(2023년 말)로 하락했습니다. 물론 한중 관계가 여전히 경쟁과 상호 보완의 양면성이 있지만, 이제 경쟁 관계로 변했습니다. 이것은 한국과 중국이 상호 경제적 보완성을 상실했음을 말합니다. 반면에 미국과의 무역 비중은 늘고 있고, 무엇보다 미국이 제조업 부흥 파트너로서 우리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 반도체 때문일까요?
 
  “반도체, 통신, 첨단 제조업 등 핵심 분야에서 우리는 높은 생산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는 미국과 안보동맹을 넘어서 첨단 과학기술 동맹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한국은 미중 양국에 얽힌 약소국이 아니라 양국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국가로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한국의 과학기술 역량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親中 행보 보일 필요 없어”
 
  ― 우리가 처한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것인데, 이 상황에서 우리가 친미(親美)가 아닌 친중(親中)으로 방향을 튼다면요?
 
  “그런 일은 있어서도 안 되고,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핵으로 무장하기 위해선 미국의 도움이 절대적이며, 그 외에 안보와 경제를 생각하더라도 미국과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미국 역시 우리를 강력한 동맹국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친중 행보를 눈치채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반면 중국은 애초부터 우리와 미국이 동맹국이라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아닌 중국에 손을 내밀면 우리의 생존 방정식은 일그러집니다. 북중러 준(準)동맹 체제에 한국이 동조한다는 뜻인데 이게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올 겁니다.
 
  그동안 우리가 중국에 도움을 요청했던 것은 북한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중국이 북한을 좀 잘 달래서 사고 치지 않도록 해달라’는 일종의 외교적 압력이었는데, 이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북러 관계의 밀착 이후 과거만 못합니다. 중국의 대북 억지력은 더욱 줄어들고 있습니다. 중국과 척을 질 수는 없지만, 중국을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친중적 행보를 보일 필요는 더욱 없습니다. 오히려 중국에 한국이 필요하고, 우리와 적대 관계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진핑은 ‘중국제조(中國製造) 2025’가 80% 성공했다고 말하지만, 반도체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중국은 내심 한국의 군사력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반도체 등 경제적인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제가 중국을 오랫동안 연구한 끝에 이런 말을 합니다. ‘중국은 자신들에 굴종하는 국가는 종 부리듯이 부리지만, 자신들에게 덤비는 국가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나라’라고 말입니다. 중국이 한국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중국에 대해 굴종할 이유는 없습니다. 중국과의 외교에서 문재인 정부가 굴종했고,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대중 외교를 바로잡았던 것으로 평가합니다.”
 
 
  “한중일 FTA는 불가능”
 
  ― 중국이 좀 비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중국한테서 배울 것이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큰 땅덩어리와 13억 인구라는 ‘규모의 경제’ 덕에 이만큼 커진 것이고, 우리로서는 이에 더해서 북한이라는 변수가 있기 때문에 중국이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더는 중국을 두려워하지 않고, 중국도 북한에 대해 관심이 높지 않습니다. 러시아의 푸틴 체제도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모노컬처 경제(monoculture economy·한 국가의 경제가 몇 개의 1차 산품 생산에 특화된 경제)를 가진 국가는 강성대국이 되지 못합니다. 러시아는 제조업, 서비스업이 없고 가스 등 천연자원뿐이기 때문에 발전에 한계가 있습니다.”
 
  ― 일본과 미국은 어떻게 보십니까?
 
  “일본 정치인들 일부는 여전히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만, 대다수의 일본 사람들은 자기네 국력은 약해지고 있으며 한국과 잘 지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 문제가 아직 남아 있기는 하지만, 다음 세대쯤에는 한일 관계가 훨씬 진전돼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국은 자기네가 배척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냉정한데, 일단 동맹국이 되면 절대적으로 믿는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이 신뢰하면 너그러워진다’라고 표현합니다. 반면에 미국이 의심하기로 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과의 교류를 끊임없이 지속해야 하며, 우리가 미국의 가장 절대적인 신뢰의 파트너라는 것을 계속 알려야 합니다.”
 
  ― 일각에서는 이번 트럼프발(發) 관세에 한중일 FTA로 맞불을 놔야 한다는 얘기도 있는데요.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한-중은 FTA를 체결했지만 일-중은 체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3국 FTA가 성사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농산물에 대한 과잉보호가 심합니다. 중국은 농업 생산국인 동시에 농업 수입국인데 주곡(主穀)부터 모든 제품을 해외에서 수입하지 못하면 국민의 생활 보호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물 부족 국가이기도 하죠. 중국은 독자 생존력이 거의 없는 국가입니다. 덩샤오핑이 ‘국민을 굶겨 죽이는 것이 무슨 국가냐’면서 문을 연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중국은 대외 개방 정책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중-러는 경쟁자 관계”
 
  ― 중국이 경제 개방을 했듯이 체제까지 바꾼다면 미국을 누르고 초강대국이 될까요?
 
  “쉽지 않을 겁니다. 미국과 한국은 이미 민주주의로 가는 비용을 치렀지만 중국은 그렇지 못합니다. 중국이 앞으로 공산당 체제를 공고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민소득을 2만 달러 이하로 묶어 둬야 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우민(愚民)정책을 써야 합니다. 그러나 국민의 평균 교육 수준이 올라가고 외국에서 유학하면서 자존(自尊)의 욕구가 올라가면 생리적인 욕구 충족만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결국 공산당 체제는 변질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베트남형일지 러시아동유럽형일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의 철권(鐵拳)정치가 아닐 것은 분명합니다. 공산주의는 인간의 욕구를 수용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는 중국은 언젠가는 한번 휘청거리며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진핑의 중국은 천년 만년 가지 않습니다. 시진핑 이후의 중국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국이 시진핑 시대 이후의 중국을 주목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 중국이 개혁, 개방, 나아가 체제적으로 공산주의까지 포기하는 것을 러시아가 두고 볼 수 있을까요?
 
  “제 책의 표지에 보면 중-북-러는 실선이 아니라 점선입니다. 언제라도 깨질 수 있는 관계라는 얘깁니다. 공산주의 국가끼리는 이념적 동지 관계보다 국가이익의 균형이 더욱 중요합니다. 북-중-러 관계는 한미일과 같은 탄탄한 동맹 관계가 결코 아닙니다. 이해관계의 밸런스가 전혀 맞지 않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잠재적 적대국가의 요소를 갖고 있고, 강력한 경쟁자 관계입니다. 북한과 중국이 그나마 혈맹(血盟) 지위를 갖고 있었는데 많이 달라졌습니다.
 
  오늘날은 북한-중국 관계는 교집합보다 차집합이 크고, 오히려 미국-중국의 교집합이 훨씬 큽니다. 한편, 북한 때문에 미국과 척을 질 중국은 아닙니다. 교집합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이해관계가 치열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어찌 보면 중국을 대하는 미국의 딜레마입니다. 세계에는 미국 혼자서 이룰 수 있는 것도 없고, 미국이 빠지면 이룰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지금 미국의 동북아 전략 목표는 가장 안정적인 삼각형과 같은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미국, 中 견제 위해 주한미군 필요”
 
지난 3월 20일 경기 연천군 임진강 일대에서 열린 한미 연합 제병협동도하훈련에서 연합부교를 통해 K1E1 전차가 도하하고 있다.(사진=육군 제공, 뉴시스)
  정덕구 이사장은 “중국은 미국에 대한 피해망상증에 빠져 있다. 전쟁은 항상 우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본토가 아닌 대만 등에서 국지전은 가능하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서로 상대국에 대해 ‘레드라인’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우리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중국의 레드라인은 뭡니까?
 
  “신장(新疆) 위구르족 문제, 인권 문제는 가급적 건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중국이 가장 예민하게 생각하는 ‘원 차이나’ 정책, 그리고 특히 한국의 주권, 생존권, 그리고 정체성을 위협하지 않는 한 중국의 영토나 주권을 위협하는 말은 지양해야 합니다. 그들의 군항(軍港)이 대부분 상하이 북쪽에 있어 황해바다를 자기들 내해(內海)처럼 쓰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 아닌만큼, 주권, 생존권을 지키기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중국의 우리 서해바다에 대한 위협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해야 합니다.”
 
  ― 미국의 레드라인은 뭡니까?
 
  “주한미군 철수, ‘양키 고 홈’은 외쳐서는 안 됩니다.”
 
  ― 주한미군은 우리가 강력하게 원하는 것 아닙니까.
 
  “꼭 일방적인 것은 아닙니다. 미국도 반드시 주한미군이 있어야 합니다. 평택·오산·군산 기지는 중국에 대응하는 데 제일 가까운 도어스텝입니다.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고 주한미군 규모 축소를 얘기합니다만, 저는 이것이 꼭 우리나라의 방위비를 올리려는 것이 아니라 일본과 독일 내 주둔 미군의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기 위한 시금석과 같은 결이라고 봅니다. 한국의 방위비 증액은 일본·독일의 방위비 증액을 위한 일종의 벤치마킹과 같을 겁니다. 우리가 트럼프 정부와 협상을 할 때 계속 평택·오산 기지에 대해 언급해야 합니다. 미군의 주력부대가 평택에 있는데, ‘평택항의 경제적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보라’고 압박해야 합니다. 과연 100% 한국을 지키기 위해 평택항이 있는 것인지, 미국의 대중국 전략 필요에 의해 평택에 주둔하는 것인지 명확히 따져 봐야 합니다.”
 
  ― 복잡한 관계를 명쾌하게 한번 정리 부탁합니다.
 
  “한국은 국가안보에서 미국과 확고한 동맹관계(Iron Clad)를 추구해야 하며, 경제 분야에서는 이익의 균형을 추구해야 합니다. 미국과 중국은 경쟁이 전면적 갈등으로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명확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미국은 미중 경쟁 속에서 더 이상 동맹국과 파트너국의 국익을 침해하지 않는 외교정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든 미국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자산이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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