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재명 후보와 성남에서 시민운동 함께 했던 주혜 스님

“사람들이 악마화하지만 그사람을 믿어”

  •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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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 두 번 낙선 후 명함 60만 장 돌리며 바닥 훑어
⊙ 주혜 스님이 성남환경운동연합 대표 시절 이재명 변호사 만나… “고향이 같아 가까워져”
⊙ 젊은 이재명, ‘李辯’ ‘재명이’라 불러
⊙ “몇 차례 청탁 모두 거절당해… 똑똑하고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들을 승진시키고, 사람을 적재적소에 갖다 쓰는 스타일”
2013년 무렵 주혜 스님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사찰을 찾은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과 함께 경내를 거닐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이변’이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이변(異變)이 아니라 성남시장–경기도지사–당대표와 두 번의 대통령 후보가 되기 전의 이변(李辯), ‘이재명 변호사’다.
 
  이재명 후보를 잘 아는 성남 사람들은 그냥 ‘재명이’라 부른다. ‘싸움닭’이란 별명도 있다.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고 해서 ‘불독’이란 별명도 있다.
 
  과거 이 후보가 김어준의 ‘파파이스’라는 인터넷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때 “만약 대통령이 되면 제일 먼저 뭘 하겠느냐”는 질문에 “작살부터 내야죠”라고 대답했더니 금세 ‘작살’이란 별명이 생겼다.
 
 
  이변, 재명이, 불독, 작살…
 
  경북 안동이 고향인 흙수저 소년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경기도 성남시로 이사를 왔다. 너무 가난해 남들 다 중학교에 진학할 때 이재명은 성남 상대원 공단에서 소년공(少年工)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에게 성남은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젊은 시절 그는 “미쳐야[狂] 미친다[致]”는 말을 즐겨 했다고 한다. 심지어 ‘미쳐라’ ‘즐겨라’ ‘신난다’는 말을 동의어라고 생각할 정도로 신명 나게 일했다. 결과론이지만 성남은 그에게 신명의 공간이기도 했으리라.
 
  기자는 지난 4월 말과 5월 초 경북 의성·안동·청송의 산불 피해 현장을 둘러보았다. 그곳에서, 한 스님을 만나면 젊은 시절 ‘이변’ 이야기, 성남에서 두 번이나 선거에 진 지난날의 이재명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귀띔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지난 5월 13일 오후 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용주사에서 주혜(嵀暳·65) 스님을 만났다. 용주사는 조선 정조(正祖)가 비운(悲運)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찰(願刹)로 재건한 사찰로 현재 조계종 제2교구 본사(本寺)다.
 
  ‘주혜 스님과 이변’ 이야기에 앞서, 성남이란 공간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과거 성남시에는 다른 도시와 구별되는 다섯 가지가 있었다. 도시가 단기간에 아주 급격한 변화를 거쳤기 때문이다.
 
  첫째, 십자가가 많다. 구시가(舊市街)에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든 탓에 곳곳에 개척교회가 들어섰다. 밤에 보면 십자가들이 별처럼 빛난다.
 
  둘째, 복덕방(부동산중개소)이 많다. 도시를 건설할 때 받은 분양권을 철거민들이 되파는 일이 많았다. 동네마다 부동산업자들이 너도나도 사무실을 차렸다.
 
  셋째, 포장마차가 많다. 주민 대부분이 가난한 사람들이었고, 특히 노동자들이 많다 보니 그들이 자주 이용하는 포장마차가 속속 생겨났다.
 
  넷째, 강력범죄가 많다. 각양각색의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몰려들다 보니 다툼도 사고도 많았다.
 
  다섯째, 철거민 지역 특성상 숨기가 쉽다 보니 전국에서 범죄자들이 몰려들었고 강력범 검거율도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 외에 성남은 경기 동부 지역 운동권이 집결하는 곳이기도 했다. 수원·용인·여주·이천 등 경기도 인근 대학의 학생들이 서울로 가는 교두보로 삼아 성남에 똬리를 틀었다.
 
  여러 겹의 복잡한 배경으로 급속도로 성장한 성남에서 이재명 후보는 선이 굵은 정치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성남의 도시문제와 마주하다
 
  다시 주혜 스님으로 돌아가 보자. 스님은 원래 충남 홍성이 고향이지만 인천에서 자랐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바로 위 누나마저 세상을 떠나자, 새벽 화장터에서 솟아오르는 흰 연기를 보고 출가(出家)를 결심했다. 스물세 살 무렵이었다.
 
  경북 봉화군 명호면 청량사에서 지현 스님(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조계사 주지 역임)을 은사로 1987년 수계(사미계)했다. 지현 스님의 맏상좌다. 처음 법명은 운광(雲光)이었으나 훗날 주혜로 바꿨다. 성남 분당구 원적정사 주지, 용인 원각사 주지, 조계종 총무원 사업부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화성 용주사에 머무르고 있다.
 

  주혜 스님은 원적정사 주지로 있을 때 성남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성남이 안고 있는 각종 도시문제와 마주했다. 성남의 탄천 오염, 도심 환경 문제, 용산 미군 기지의 성남 이전 여부가 현안으로 막 대두되고 있었고, 율동자연공원 내 미니랜드 건설 같은 악성(惡性) 현안에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였다. 또 한 명의 공동대표는 후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대표를 지내는 문병학 신부였다.
 
  진보 성향의 신부와 스님이 성남의 시민운동을 주도하고 있을 때 ‘이변’이 찾아왔다.
 
  ― 이재명 후보, 아니 이변과 어떻게 만났습니까?
 
  “성남환경운동연합 대표로 있을 때 이변이 ‘성남시민모임’이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그게 나중에 성남참여연대가 됐는데 이변이 인권변호사로 참여하게 됐죠.”
 
  성남은 서울의 철거민들이 대거 이주해 온 탓에 도시가 건설될 때부터 취약지역으로 분류되어, 성남시에 주소를 둔 청년들은 군대도 현역이 아닌 보충역(방위병)으로 근무했다고 한다. 계속된 주혜 스님의 말이다.
 
  “우리가 성남환경운동연합을 창립할 때 이변이 축하하러 왔죠. 2002년 5월이었나? 물론 그 이전부터 알고는 있었어요. 그때는 그냥 건성으로 봤는데 나중에 보니까 시민운동도 하고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더라고요. 고향이 어디냐 물으니 안동시 예안이라고 해요. 나는 근처 봉화군 명호 청량사에서 출가했다고 했더니 세상에, 청량사 바로 산 너머 동네에 살았다는 거야.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가까워졌어요.”
 
  그리고 이런 말을 보탰다.
 
  “안동 예안과 봉화 명호, 거의 고향 사람 같은 거죠. 청량사에서 조그마한 산 하나 넘으면 이변이 살던 마을이야. 어렸을 때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고향이 수몰돼서 청량산 맞은편으로 선산(先山)을 옮겼다고 하잖아요.”
 
  ― 계속 이변이라고 불렀습니까?
 
  “처음에는 ‘이변, 이변’ 하다가, 한잔 먹으면 ‘재명아 재명아’ 그러다가….”
 
 
  “대통령 되려 노력하는 게 아니고 열심히 살려 노력”
 
  ― 스님이 곡차(穀茶·술)를 드십니까.
 
  “아니 뭐… 한잔씩 하지, 다같이. 시민운동을 하다 보면 (승려인) 제가 있어서 분위기가 이상할 때 있잖아요. 그럼 일부러 그걸(술자리) 만들어 주죠. 모임 같은 거 있으면 뒤풀이도 해주고. (성남시장에) 당선돼서 우리 절에 왔을 때 비서실장이 시비를 걸더라고. ‘이제 시장님이라고 불러 주시면 안 됩니까?’라고. ‘내가 왜 그렇게 해야 되는데?’(웃음)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히 ‘시장님, 시장님’이 되더라고.”
 
  ― 과거하고는 좀 다르겠죠.
 
  “서로 바쁘니까 한 달에 한두 번 전화로 통화하고, 초파일(부처님오신날) 때나 얼굴 보고, 무슨 행사 있을 때 얼굴 보고…. 나중에 내가 조계종 총무원에 있으니까 왜, 정치인들이 총무원장한테 인사하러 오잖아요. 그때 스쳐 지나가면서 ‘별일 없죠?’ 하고 묻는… 왜 그런 친구 있잖아요, 몇 년씩 못 봐도 어제 본 친구 같은.”
 
  주혜 스님은 “‘우리는 동지가 아니고 동업자’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고 했다.
 
  “동지라고 하면 뭐 내가 정치 하는 사람도 아니고, 이념적인 느낌도 싫고…. 동업자 하면 좀 인간적인 느낌도 들어서 좋아요.”
 
  ― 대통령 후보가 될 줄 그때 아셨어요?
 
  “어려서부터 정치 생각을 좀 했던 것 같아요. 지금 자리에 올라가려면 일찌감치 어떤 이상(理想)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거거든요. 옆에서 이렇게 봐도 노력을 참 많이 했어요. 대통령이 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어요.”
 
  이재명 후보는 2006년 5·13 지방선거에 열린우리당 성남시장 후보(득표율 23.8%)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2년 뒤 2008년 18대 총선에도 민주당 후보(33.2%)로 출마했으나 고배를 들었다.
 
 
  “지하상가고 어디고 막 돌아다니며 인사”
 
경기도 성남 야탑동 원적정사에서 열린 산사음악회에 이재명 성남시장(가운데)이 참석해 주혜 스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열심히 노력을 했는지 보기를 들면?
 
  “낙선했을 때 지켜보니까, 한 달에 운동화 한두 켤레씩 닳을 정도로 성남시내를 다 돌아다니는 거야. 지하상가고 어디고 막 돌아다니며 인사해요. 굉장해. 저러니 될 수밖에요. 내게도 오다 가다 전화 걸어 ‘한번 들를게요’ ‘커피 한잔 하러 갈게요’ 농담도 잘하고, 정을 곧잘 표현하는 성격이에요.
 
  얼마전에도 사모님이 다녀갔어요.”
 
  ― 김혜경 여사가요?
 
  “초파일 전날 5월 4일에 왔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애들 아빠가 그 시절이 그립다고 한다’고요. 그사람도 옛날이 너무 좋았던 거예요.”
 
  ― 격의 없이 만나던 시절이 그리운가 봅니다.
 
  “그렇지. 시장바닥에서 사람들 만나 손 잡고 명함 건네고…. 이제는 점점 올라갔으니까.”
 
  이재명 후보는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아 성남시장 자리에 재도전해 51.2%의 득표율로집권 여당인 한나라당 황준기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당선되고 우리 절에 올라왔더라고요. 여러 분들 있는 자리에서 내가 막걸리 잔 들고서 ‘15년 후에 청와대로 가시죠’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기억이 또렷하게 나는데, 그런데 지금 막 나한테는 이상이 현실로 변해 가는 느낌이 드니까….”
 
  ― 될 것 같습니까?
 
  “나는 확신해요. 저기 반대쪽에서 하는 짓들이 저런데. 그렇잖아요?”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이재명 후보는 명함을 거의 60만 장을 돌렸고 성남시 전역을 세 바퀴 이상 돌았다고 한다. 골목골목을 다니며 그야말로 팔다리가 쑤시도록 유권자와 악수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민주당 간판으로 민선 5기 성남시장으로 당선되기까지 쉬운 길을 걷지 않았다. ‘천당 밑에 분당’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성남은 보수색 짙은 도시다.
 
  “나는 그사람 부정부패 하는 모습을 못 봤거든요. 청렴한 것만 봤어요. 사실 나도 부탁 같은 걸 해봤어요.”
 
  ― 개발사업 관련된 부탁 말인가요?
 
  “아뇨, 진급 같은 인사 청탁 말이에요. 그러데 얘기해도 안 되는 거예요. 주변을 봐도 능력 위주로 가요. 똑똑하고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들을 승진시키고, 사람을 적재적소에 갖다 쓰는 스타일이에요. 아무리 가까워도 안 맞으면 바꿔 버려요. 일 안 하는 사람은 업무에서 배제시켜 버려요.”
 
  이런 일화도 있다. 2010년 6·2 지방선거 당시 성남시 주최 어느 체육대회에 이재명 시장 후보가 참석했다. 내빈석에 줄줄이 이름표가 붙었는데 그의 이름이 없었다. 이럴 땐 잽싸게 먼저 앉는 게 임자 아닌가. 그런데 한 공무원이 무안할 정도로 그에게 차갑게 대했다.
 
  “죄송합니다. 규정상 정해진 자리에만 앉을 수 있습니다.”
 
  “나는 야당 후보입니다. 자리에 앉을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안 됩니다. 규정을 지켜 주십시오.”
 
  이 후보도 더는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못 이기는 척하고 자리를 떠나면서 슬쩍 그 직원의 명찰을 보고 이름을 수첩에 적어 두었다. 선거에서 승리하고 시장에 부임했다. 그에게 면박을 주었던 직원을 알아봤더니 근무 성적과 평판이 좋았단다. 인사 이동 때 좋은 보직을 주어 배려했다고 전한다.
 
 
  “‘스님, 저는 원칙대로 했다’는데, 진짜 서운했어요”
 
  주혜 스님은 이재명 후보가 경기도지사 시절 크게 섭섭한 일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2020년 12월 무렵이다. 스님이 조계종 총무원 사업부장으로 있을 때 불교계에 큰 현안이 있었다. 경기도가 ‘후원금 운용’ 문제로 대한불교조계종이 운영하던 사회복지법인인 ‘나눔의 집’(경기도 광주 소재) 이사진 5명에게 해임명령 처분을 내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 당시 이사장은 종단에서 명망 높은 송월주(宋月珠·1935~2021년) 스님이었다.
 
  “내가 이재명 도지사한테 ‘원래대로 돌려달라. 왜 그걸 건드리냐’고 했어요. 수도(修道)하는 스님들이 행정 잘 모르잖아요. 이 도지사가 ‘스님, 저는 원칙대로 했습니다’ 하는데, 진짜 서운했어요, 진짜.
 
  종단의 원장 스님과 다른 스님들은 내 얼굴만 쳐다보는 겁니다. 가까운 사이라는 걸 아니까, 자꾸 물어요. ‘도지사 연락했느냐’고. 나는 이미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연락 안 해봤다’고 얼버무렸어요. 내가 (이 지사를) 지켜 줘야 되잖아요.”
 

  그러다 2021년 7월 22일 월주 스님이 입적(入寂)했다. 이재명 지사가 빈소를 찾아왔다.
 
  “안으로 못 들어오는 거예요. 다른 스님들에게 ‘동요하지 말라’고 하고 내가 밖으로 나가서 이 지사한테 ‘(스님들에게) 미안하다고 한마디 하세요’ 그랬어요. 근데 ‘법에 따라 원칙을 지켰으니 미안할 게 없다’는 겁니다. 어쨌거나 이후 3년간의 재판을 통해 나눔의 집은 다시 우리에게로 왔어요.”
 
  ― 미안할 것도 없다니, 섭섭한 마음이 크셨겠네요.
 
  “한동안 연락을 끊었는데, (이 후보가) 전화를 걸어 와 ‘스님, 삐졌냐’는 겁니다. 내가 이 양반을 30대 때부터, 그러니까 내가 40대 초에 봤으니까 좋은 사람인 걸 압니다. 지금 사람들이 악마화하지만 나는 그사람을 믿습니다.”
 
 
  “민주당 폭주하면 나라가 奈落… 德 베푸는 대통령 되길”
 
  ― 역대 대통령 중에 이재명 후보가 모델로 삼았으면 하는 대통령이 있나요?
 
  “이념을 떠나 박정희(朴正熙·1917~ 1979년) 대통령의 추진력을 닮으면 좋겠어요. 그 양반 덕에 우리가 지금 먹고사는 거잖아요. 그러나 1960년대의 박정희 말고, 2025년도에 걸맞은 박정희 대통령이었으면 합니다.”
 
  ― 걱정스러운 면도 많지요?
 
  “우리 사회가 너무 분열됐잖아요. 민주당 국회의원들 만나서도 이런 얘기를 했어요. 대통령마저 그렇게(탄핵이) 됐는데 다수당으로 자중(自重)하지 않으면 나라가 나락(奈落)으로 떨어진다고요. 나라가 양극화로 분열되지 않도록 국민을 다독여야 합니다.”
 
  주혜 스님은 “지장(智將) 덕장(德將) 용장(勇將) 운장(運將)이 있지만, 덕을 베푸는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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