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이 중국 대체하기는 어렵지만 ‘독자적 발전’ 해나갈 것”
⊙ “베트남은 ‘당신이 무엇을 가지고 왔는가’에 따라 다르다”
⊙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 잊지 않지만 언급할 필요는 못 느껴”
부 호(Vu Ho)
1967년생. 존스홉킨스대학교 경제학과 국제관계학 석사 / 베트남상공회의소(VCCI) 사무관(1993~1994), 외교부 아세안(ASEAN)국 서기관(1994~1999), 외교부 아세안국 부국장(2008~2013), 주 휴스턴(미국) 베트남총영사관 부총영사(2013~2016), 외교부 아세안국 국장(2017) 등 역임. 現 주한 베트남 대사
⊙ “베트남은 ‘당신이 무엇을 가지고 왔는가’에 따라 다르다”
⊙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 잊지 않지만 언급할 필요는 못 느껴”
부 호(Vu Ho)
1967년생. 존스홉킨스대학교 경제학과 국제관계학 석사 / 베트남상공회의소(VCCI) 사무관(1993~1994), 외교부 아세안(ASEAN)국 서기관(1994~1999), 외교부 아세안국 부국장(2008~2013), 주 휴스턴(미국) 베트남총영사관 부총영사(2013~2016), 외교부 아세안국 국장(2017) 등 역임. 現 주한 베트남 대사

- 사진=조준우
양국 투자총액만 1000억 달러
― 한국에 온 지 1년이 넘었습니다. 가장 큰 성과를 꼽자면요.
“쉬운 질문 같지만 제겐 꽤 어려운 질문이네요. 알다시피 성과에는 ‘정치’ ‘경제’ ‘협력’ 그리고 양국 국민 간의 ‘교류’ 등 다양한 분야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까. 제가 한국에서 가장 보람을 느낀 것은 양국 관계가 더욱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 ‘시각적’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 그렇다면 눈에 보이는 그 모습을 말씀해 주십시오.
“먼저 양국 간 대표단 교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난 2024년 한 해 동안만 베트남에서 한국을 방문한 공식 대표단이 120개 이상이었습니다. 이들은 ‘무역’ ‘투자’ ‘정보 공유’ ‘문화 교류’ 등을 위해 한국을 찾았습니다. 자연스레 양국 간의 경제 협력도 ‘순항(巡航)’ 중이죠. 현재 올해 1분기 기준 한국은 베트남의 최대 투자국이며 베트남도 아세안 국가 중 한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또 작년 한 해 동안 한-베트남의 무역 및 투자 총액은 거의 1000억 달러에 달하고 있습니다. 또 평균적으로 50만~70만 명의 베트남 국민이 한국을 방문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베트남을 방문한 한국인도 100만 명이 넘습니다. 정말 뿌듯한 수치입니다. 대사로서 양국 간 현 기조를 잘 유지하고 또 이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최근 베트남 정부가 “2045년까지 고소득 국가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한국에는 ‘코리안 드림(dream)’이 있습니다. 중국도 ‘차이나 드림’을 꿈꿉니다. 우리도 당연히 ‘베트남 드림’을 꿈꿉니다. 모든 나라에 각자의 꿈이 있는 겁니다. 베트남 드림의 경우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최고 수준으로 강한 정치적 의지’와 ‘전국적(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 이후에는 ‘정책적 집합’이 필요하고요. 마지막은 ‘국제사회와의 협력’입니다.”
“한국이라는 좋은 모범답안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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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24년 4월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서 부 호 주한 베트남 대사(맨 왼쪽)가 윤석열 대통령, 조태용 외교부 장관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모든 국가 정책이 그렇듯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베트남은 항상 발전하고 있습니다. 장담할 수 있어요. 저는 방금 언급한 요소들이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 조건이라 봅니다.”
― 인프라 낙후가 베트남 경제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어떻게 봅니까.
“한국이라는 좋은 모범답안이 있지 않습니까. 베트남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과거의 한국이 어땠는지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은 한국 전쟁으로 인해 분단의 아픔에 경제 수단마저 모두 무너졌지만, 불과 반세기 만에 선진국으로 도약했습니다. 약 40~50년 전 한국의 인프라는 현재 베트남보다 더 열악했습니다. 그렇기에 베트남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 베트남을 ‘전쟁의 나라’로 보는 시각도 없습니다. 지금은 ‘매력적인 투자처’라는 인식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 도이머이(Doi Moi) 정책이 ‘신(神)의 한 수’ 아닐까요.
“한국도 알겠지만, 우선 1980~ 1990년대 당시 베트남의 상황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우리는 두 번의 전쟁을 막 끝낸 상태였습니다. 남부에서의 전쟁(캄보디아 전쟁·1978~1989)과 또 다른 대외 전쟁(중-베트남 전쟁·1979)이 있었습니다. 어떤 국가든 이런 고난을 오래 견디기는 어렵습니다. 이념적으로 양분된 세계질서가 변화하던 시점이었죠. 또 우리가 기존 상태를 유지했다면 폐쇄적인 경제가 이어지고 세계의 발전과도 동떨어진 채 살아갔을 겁니다. 우리는 반드시 개방되어야 했습니다. 당시 지도부의 결단이었죠.”
― 사실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도….
“그럼요. 미국은 베트남의 중요한 파트너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한국의 무역흑자, 우리에게도 이롭다”
― 한국이 최대 무역 파트너지만 정작 베트남은 무역수지 적자 아닙니까.
“현재 베트남은 300억 달러 적자를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이 점에 대해 크게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베트남에 대한 투자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즉 ‘기계’ ‘원자재’ ‘설비’ 등 한국에서 들어온 품목이 많다는 뜻입니다.”
― 베트남도 이익을 보고 있다는 겁니까.
“현재 한국의 무역흑자가 발생하는 구조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제품은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서 생산한 후 한국이나 미국 등으로 수출하는 구조입니다. 삼성의 수출 통계를 보거나 (한국의) 산업통상자원부 통계를 보면 분명 알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베트남에서 제조는 하지만 실제로 해당 제품 다수는 베트남 시장에 남지 않고 다시 한국이나 다른 나라로 수출됩니다. 결과적으로 우리에게도 이로운 겁니다.”
― 그래도 한국에 바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알다시피 현재 전 세계 무역 시스템 자체가 큰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베트남은 지난 2022년 12월 15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CSP·Comprehensive Strategic Partnership)’를 구축했습니다. 한-베트남 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협력의 범위 측면’에서 더 넓어지고 ‘협력의 구조 측면’에서는 더 깊어질 것이라는 점은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이제 단순히 ‘주고받는 관계’ 또는 ‘협력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해 주는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에게는 없는 게 한국에는 있고 한국이 가지지 못한 것을 베트남은 가지고 있습니다.”
― 베트남이 중국을 대체할 수 있다는 평가는 어떻게 봅니까.
“중국은 베트남 인구의 15배 가까운 인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구는 경제 정책의 핵심입니다. 베트남이 그대로 따라가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일부는 베트남이 ‘차이나 플러스 원(China + 1)’ 전략의 대체국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만 저는 적어도 중국의 경험에서 배울 점은 배우되 독자적인 발전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누군가는 싱가포르가 베트남의 좋은 ‘모델’이라 하지만 동의하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그 이유도 인구 차이 때문입니다. 싱가포르는 약 700만 명의 인구지만 베트남은 인구가 1억 명이 넘습니다. 단순 주변국과의 비교가 아닌 다각적이고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베트남전 참전, 굳이 꺼내야 하나”

베트남은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약 1000년 이상 중국의 침략을 받은 나라다. 또 13세기에는 몽골 제국(원나라)의 침략을 세 차례나 받았다. 1884년에는 프랑스의 침공으로 식민지가 되었고 20세기 초 일본군이 잠시 통치했던 시기도 있었다. 20세기 중반에는 미국과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외교 관계에 있어 ‘과거사’ 갈등이 수면으로 올라온 적은 드물다.
― 베트남도 과거사가 복잡한 편입니다만 항상 ‘쿨(cool)’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 같습니다.
“쿨하다니 재미있는 표현이네요. 사실 복잡한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베트남 철학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가지고 왔는가에 따라 그것을 가지고 떠난다’는 겁니다.”
― 무슨 의미입니까.
“단순하게 이해하면 됩니다. 누군가 무기를 들고 오면 우리도 무기로 대응합니다. 하지만 선의를 가지고 오면 우리도 선의로 대응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정체성(正體性)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또 우리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면 우리는 그 누구와 협력할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그는 “중국의 역사는 영토 확장의 역사였고 프랑스의 역사는 그들의 가치를 전 세계에 퍼뜨리려는 역사였지만 결국 ‘남을 수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남을 수는 없었다’는 표현은 곧 ‘외세의 군대’를 의미한다. 기자가 “베트남은 미국도 이긴 나라”라고 말하자 부 호 대사는 씨익 웃으며 “그들(외세)이 이해하지 못하는 베트남만의 가치, 문화, 철학이 있기 때문”이라며 그 비결을 꼽았다.
― 한국도 베트남전에 참전한 적이 있지요.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은 미국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국민을 위한 것도 아니었어요. 오로지 미국을 위한 것이었죠. 당시에는 우리가 서로 적대적인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끝난 지 오래입니다. 이제는 서로(한-베트남)의 차이를 녹일 때입니다. 지금 와서 왜 이런 이야기를 굳이 다시 꺼내야 할까요. 물론 우리는 (베트남전에 한국이 참전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지만, 언급할 필요는 느끼지 않습니다.”
“다민족 사회 베트남… 한국과 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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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겸 CJ그룹 회장이 지난 2024년 7월 26일 서울 종로구 주한 베트남 대사관에 마련된 고(故)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분향소를 조문한 뒤 부 호 주한 베트남 대사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영자총협회 |
― 한-베트남 커플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의 인구는 감소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시급한 문제 중 하나는 인구 유지입니다. 여의치 않은 상황 때문일 수 있지만, 자연스럽게 많은 한국 남성이 해외에서 배우자를 찾고 있습니다. 한국 남성들이 직업이나 학업 등으로 베트남에 오면서 베트남 여성과 만나 결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죠.
“한국은 단일민족국가지만 베트남은 60개 이상의 민족이 공존하는 다민족 사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트남은 외국 요소를 한국보다 훨씬 더 수용하기 쉬운 구조입니다. 한국 정부나 사회가 노력하고 있다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외국의 문화를 수용하는 데 여전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문화 교류 수준이 유지된다면 문화 차이에서 오는 소통 문제는 지속적으로 완화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베트남 여성뿐만 아니라 한국에 오는 모든 베트남인이 겪는 문제다”라고 했다. 또 “대사관은 이러한 문제를 잘 인지하고 있고 베트남 교민 보호를 위한 핫 라인(Hot-line)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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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2024년 9월 13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을 방문해 부 호(Vu Ho) 주한 베트남 대사(맨 왼쪽), 게오르크 빌프리드 슈미트(Georg Wilfried Schmidt) 주한 독일 대사(맨 오른쪽)와 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중소벤처기업부 |
― 아버지의 가치를 잇는 새로운 한-베트남 비전을 제시한다면요.
“항상 매일 실천할 수 있는 ‘신뢰’와 어떠한 관계에서든 올 수 있는 갈등을 ‘예방’하는 구조적 토대 확립이 중요하지요. 그리고 양국이 함께 설정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의 경우 ‘단순 선언이 아닌 양과 질에서의 확실한 변화’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