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황미선 항암 요리 전문가

“김치가 곧 항암제”

  •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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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방암·자궁경부암 겪은 후 암 환자도 잘 먹을 요리 연구
⊙ “병 때문이 아니라 굶어 죽는 것”… 직접 개발한 42종 김치 등 레시피 소개
⊙ “몸에 좋은 음식도 맛있을 수 있다”
사진=이종수
‘암(癌) 환자의 50%는 굶어 죽는다’는 말이 있다. 발병 후 식욕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그 독성(毒性)과 부작용이 음식 자체를 거부하게 만든다. 황미선(64)씨가 항암 요리책인 《치유식》을 최근 펴낸 배경이다. 그 또한 암 투병 생활을 했다. 황씨는 “항암치료를 받을 때,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굶어 죽겠더라”면서 “결국 병을 고치는 건 면역력을 높일 수 있는 ‘음식’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항암치료 중에는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생활하지만, 치료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오면 다들 당황하게 됩니다. 앞으로 뭘 어떻게 먹어야 할지 난감하거든요. 모든 사람이 그렇지만 특히 암에 걸린 사람은 영양이 고루 잡히고 면역력까지 높일 수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병원에서는 ‘잘 먹으라’고 말하지만, 잘 먹을 수가 없어요. 속이 느글느글해서 물만 먹어도 다 토하는데 어떻게 잘 먹나요.”
 
 
  두 번의 암 투병
 
  황미선씨에겐 암이 연달아 찾아왔다. 2002년 마흔한 살 나이에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생존율 5%라는 선고도 함께였다. 왼쪽 유방전(全)절제를 했다. “수술 전날 수술 부위를 표시해 놓은 마킹을 보고 ‘이렇게 많이 잘라 내고도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고 한다.
 
  수술 후 항암치료는 특히 견디기 힘들었다. 음식 냄새만 맡아도 울렁증이 생겼다. 황씨의 남편은 그런 그를 위해 밤마다 아파트 놀이터로 나가 현미미음과 묵은지 국물을 끓였다. 그게 목넘김이 가능한 유이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스킨, 로션 냄새를 못 맡는다. 항암주사에서 나던 박하향 때문에 박하 얘기만 들어도 속이 메슥거린다. 항암제 색깔이 자주색이었던 탓에 자주색 옷엔 손도 안 댄다.
 
  크고 작은 후유증은 있었지만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회복 단계를 밟던 중인 2005년, 이번에는 자궁경부암 초기 진단을 받았다. 하늘도 무심하다 싶었다.
 
  “그런데 이미 한번 살아났는데 두 번 못 할 것도 없겠더라고요.”
 
  그렇게 다시 한 번 당당히 극복해 냈다. 황씨는 “돌이켜보면 암이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암이 아니었더라면 살던 대로 살았을 거예요. 큰 병을 치르고 나서 예전에 먹던 음식과 생활 패턴을 다 끊어 보자 결심했어요. 도시 생활을 접고 경기도 양평 산골로 들어왔고, 자연에서 나온 먹거리로 약이 되는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사명(使命)도 생겼다. 암 환자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개발하는 것. 시골 마을에 손수 집을 짓고, 음식 재료들의 약효와 쓰임새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참나물, 엄나무순, 두릅, 홑잎나물… 양평군의 산골은 천혜의 약용식물 보고(寶庫)였다. 식물도감을 넣은 배낭을 메고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산에서 보냈다. 약용식물관리사, 건강식이요법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대학에서 발효 효소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박사과정에서는 전통 김치를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특히 저염(低鹽) 김치와 치료식 김치 연구에 몰두했다. 지난 2020년에는 ‘대한민국김치경연대회’에서 농림수산식품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음식 공부를 하면서 건강식으로는 한식(韓食)이 제격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암 환자들은 끓인 음식, 지지고 볶은 음식은 못 먹습니다. 냄새 때문이죠. 그런데 동치미, 백김치, 묵은지, 샐러드와 살짝 데친 산나물, 식혜 같은 건 잘 먹습니다. 한식은 열량이 적으면서도 사계절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죠. 특히 김치가 그렇습니다. 김치는 그 자체로 항암제예요. 지난 5년 동안은 하루 걸러 김치를 담갔을 만큼 열성적으로 조리법을 개발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책도 썼다. 앞서 2013년 발간한 《건강 항암 밥상》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지난 3월에는 《항암 요리 전문가 황미선의 치유식》을 펴냈다. 황씨는 “첫 책이 초가집이라면, 두 번째는 5성급 호텔에 비견할 만하다”면서 “무려 3년에 걸쳐 한 땀 한 땀 나만의 조리법을 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한 권의 책이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저염·치료식 김치에 맛까지 더해
 
《항암 요리 전문가 황미선의 치유식》
  황씨가 펴낸 《치유식》에는 김치만도 42가지를 소개한다. 래디시 감자물김치, 콜라비 면역백김치, 솔부추토마토가지 겉절이, 쌀누룩요거트 백김치, 카무트 열무반지 등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이름들이다. 모두 염도를 낮추고 재료 고유의 맛을 살렸다는 특징이 있다.
 
  “제철 재료를 이용해 만든 신선한 김치는 항암치료 후 메스꺼워진 속을 진정시켜 주고 영양을 채우는 데 더없이 좋은 반찬입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장(腸) 점막이 탈락돼 염증이 심해지는 경우가 많아요. 저 또한 항암치료 후 변비와 설사를 반복했고 심할 때는 혈변을 보기도 했습니다. 김치에 들어 있는 유산균인 락토바실러스균은 산(酸)에 강하고 열에 의해 죽어도 생균과 마찬가지로 설사 방지 효과가 있죠.”
 
  몸에 좋은 음식은 맛없다는 편견도 날렸다. 그는 “자연에서 나는 제철 재료를 활용해 재료 본연의 맛과 향, 영양은 그대로 살리되 손수 만든 양념과 드레싱으로 맛을 더했다”고 했다. 책에는 화학조미료 대신 천연 재료만 이용해 맛을 내는 법도 담겨 있다. ‘이 재료를 여기에 쓴다고?’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참고로 설탕 없이 맛있는 식혜 만드는 법을 최초로 개발한 것도 황씨다. 여기에는 할머니,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손맛도 한몫했다.
 
 
  스트레스 줄이고 슬로푸드·운동 챙겨야
 
  그는 요즘 크고 작은 쿠킹 클래스와 대학 출강을 통해 암 환자들에게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하느라 바쁘다. 두 번의 암을 이겨 낸 비결로 황씨는 세 가지를 꼽았다. 우선 스트레스는 절대 금물이다.
 
  “암 발병 즈음 스트레스가 심하던 시기였어요. 음식 강의를 다니며 여러 유방암 환자들을 만나 보니 대다수가 저처럼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꼽더군요. 해결되지 않을 일,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미리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두 번째는 ‘패스트푸드’ 섭취 금지다. 황씨는 여성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유방암이었다고 한다. 그는 “그 무렵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먹은 가공식품과 인스턴트 식품이 독이 된 것”이라고 했다.
 
  “면역력을 높이는 데 가장 좋은 음식은 오랫동안 발효되는 ‘슬로푸드’입니다. 그 반대는 먹으면 안 돼요. 요즘 많이 출시되는 밀키트를 비롯한 각종 반(半)조리 음식, 정크푸드, 튀긴 음식 등 모두 피해야 합니다. 서구화된 음식을 자주 먹는 젊은 층들이 가장 많이 걸리는 게 저와 같은 유방암과 자궁경부암입니다. 실제로 20~30대에서 두 암의 발병률이 꾸준히 증가 추세예요.”
 

  마지막으로 ‘운동’이다. 황씨는 “눈이 오거나 비가 오거나 매일 1시간씩 꼭 유산소 운동을 한다”면서 “내장지방은 암세포를 키운다. 살을 찌울 이유가 전혀 없다”고 했다.
 
  한편 건강보조식품이나 보약은 경계해야 한다고 황씨는 충고한다.
 
  “항암치료 중인 암환자가 건강보조식품, 보약 등을 함부로 먹으면 간(肝) 수치가 올라가 항암치료를 중단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항암치료 후에는 특히 먹는 것에 신경 써야 돼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암에 좋다는 것을 구해 무턱대고 먹거나 잘못된 건강 정보와 속설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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