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尹 당선된 날 아크로비스타 찾아갔지만…
⊙ “이준석은 ‘보수의 최종 병기’… 이준석으로 단일화되면 선거 양상이 정권 심판 아닌 세대 대결 된다”
⊙ ‘天空’ 존재 처음으로 공개… “청와대 떠난 게 비극의 시작”
⊙ “이재명, ‘사람들이 왜 나를 무서워하는지 모르겠다’”
崔普植
1960년생.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 《조선일보》 사회부장, 선임기자 역임. 現 ‘최보식의 언론’ 대표 / 《최보식의 우리시대 사람산책》 《매혹》 등 출간
⊙ “이준석은 ‘보수의 최종 병기’… 이준석으로 단일화되면 선거 양상이 정권 심판 아닌 세대 대결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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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사람들이 왜 나를 무서워하는지 모르겠다’”
崔普植
1960년생.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 《조선일보》 사회부장, 선임기자 역임. 現 ‘최보식의 언론’ 대표 / 《최보식의 우리시대 사람산책》 《매혹》 등 출간

- 사진=조준우
‘최보식이 만난 사람’ 13년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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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월 11일 최보식 기자와 전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인 마이클 브린 인사이트커뮤니케이션즈 대표. 브린 씨는 “민심이 야수처럼 돌변하면 정부나 사법기관도 눈치 본다”고 말했다. 사진=조선DB |
‘인터뷰어 최보식’을 지난 4월 10일 서울 광화문에서 인터뷰했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우선 현재 정치 상황과 대선 얘기가 급했다. 이유가 있다. 그는 윤석열 정권의 탄생과 몰락을 근거리에서 관찰했다. 관찰이라는 말로는 부족할지 모른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윤석열 대통령 당선에 기여하기도 했다. 당선 이후엔 윤 정권과 거리를 유지했다. 정권 실수에 대한 비판을 이어 갔고, 작년 말 계엄 사태를 두고는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해 왔다. 대통령이 파면당하는 일이 도대체 왜 또 다시 일어났을까? 그와 함께 복기해 보고 싶었다.
尹 검찰총장 사퇴한 날 天空 인터뷰 기사
2021년 3월 4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사퇴를 발표했다. 그날 ‘최보식의 언론’에 ‘천공’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윤석열의 멘토를 자처하는 천공의 존재를 대한민국 언론인 중 가장 먼저 알렸다. 당시 천공은 ‘윤 총장 부인이 오랫동안 내 강연 유튜브를 보고 공부했고, 윤 총장에게 권했다’면서 자신이 ‘윤 총장을 공부시키고 있다’고 했다.
― 천공 인터뷰가 공개된 후 윤석열 전 총장 측에서 반발은 없었나요?
“윤석열 캠프에 저와 굉장히 가까운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기사가 나가니 윤 전 총장 부부와 굉장히 가까운 인사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왜 나서서 이런 기사를 쓰느냐’고 반발하더군요. 왜 추측 기사를 쓰느냐고요. 이렇게 말해 줬습니다. ‘대선 국면 들어가면 언젠간 터져 나올 사안이다. 예방주사 맞았다고 생각해라. 나중에 터질수록 여파가 크다.’”
― 예언한 그대로 됐군요.
“그 후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토론 때 유승민 전 의원이 그 기사를 인용하는 바람에 그 문제가 다시 불거졌지요. 윤석열 후보 측에서는 감정이 별로 안 좋았겠지요. 윤 후보가 국민의힘 후보로 확정되고 본격적으로 캠프를 꾸릴 때 제 지인들도 여럿 관여했어요.”
― 윤 후보 측에서 영입 제안은 없었나요?
“윤 캠프가 중간에 서너 번 뒤집어졌어요. 그의 리더십 문제일 수도 있고, 각자의 이익을 위해 모인 사람들인 탓도 있겠지요. 지지율도 떨어지고 아주 어려웠던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윤 부부와 사적으로 가깝고 후견인 비슷한 역할을 해온 분이 제게 그러더군요. ‘당신 같은 사람이 캠프를 좀 맡아 달라. 정권 교체를 해야 할 것 아닌가.’ 그게 윤 후보의 뜻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뒤에도 윤 캠프 쪽 다른 인사들이 ‘후보 특보’를 맡아 달라고 했는데 ‘명색이 신문을 만들고 있는데 그럴 수 없지 않냐’고 거절했어요.”
― 정치 쪽으로 진로를 바꿀 수도 있었을 텐데.
“저는 그때까지 쭉 언론인으로 살았고 앞으로도 대충 그렇게 살다가 일을 그만두겠다는 쪽이었습니다. 같이 일했던 후배들한테 그런 모습을 보여 주고 싶기도 했고요. 뭐 그렇다고 해서 언론에 몸담았다가 정치판으로 간 이들을 비판적으로 본다는 말은 아닙니다. 어쨌든 당시에는 문재인 정권의 실정(失政)이랄까 폭정이랄까, 그걸 현장에서 겪었기에 정권 교체는 제게도 가장 중요한 화두였어요. 보수 정권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캠프에는 안 갔지만 고비마다 개인적으로 조언은 해줬지요. 앞서 말한 ‘후견인’이라는 분을 거쳐 김건희씨에게 전해졌어요. 그분 말로는 김건희씨한테 말해 주면 다 윤석열 후보에게 전달된다, 김건희씨가 훨씬 잘 알아듣고 수완이 좋다고 하더군요.”
― 그때부터 이미 김건희 여사가 그런 역할을 했군요.
“김건희씨가 아직 거의 노출 안 됐을 때였어요. 한번은 그 ‘후견인’이 김건희씨와 함께 있다가 전화를 바꿔 줬는데, 목소리가 걸걸하더군요. 사진으로 본 외모와는 전혀 다른 음성이었어요. 남대문시장에서 장사하는 여인의 느낌이랄까. 내가 ‘본인은 여장부 스타일이냐, 여성스러운 쪽이냐’고 물었더니, 여장부 쪽이라고 답하더군요.”
“검사는 밑바닥 세상 몰라서 대통령에 안 맞아”
― 당시 후보들 중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에는 윤석열이라는 사람을 좋지 않게 봤어요. 일단 검사가 정치를 하는 것에 저는 별로 높은 점수를 주지 않습니다. 검사라는 직업 자체가 대통령 자리를 맡기에는 맞지 않는 직업이라는 거죠.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세상과 사회가 어떻게 돼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되는 자리입니다. 일반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야 해요. 윤 후보는 특수부 검사 출신이지요. 제가 사회부 기자를 해봤으니 그 세계를 봤잖아요. 대통령엔 맞지 않는다고 봤어요.”
―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은 오히려 자신이 검사를 해서 세상을 더 잘 안다고 생각했을 텐데요.
“그건 위에서 본 세상이에요. 갑(甲)의 입장에서 본 세상. 정상적인 언론인이라면 세상을 바닥에서도 보고 위에서도 보고 옆에서도 봅니다. 나름대로 책도 읽고 고민도 하는데, 제가 본 검사의 세계는 그렇지 않았어요. 굉장히 권력 지향적입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은 과거 어떤 기업인을 수사하면서 아주 저질적인 행동을 한 적이 있어요. 지금은 작고한 어떤 재벌 기업인이 회고록을 썼어요. 출간되기 전 원고를 제가 읽었습니다. 그 안에 윤 전 대통령의 검사 시절 악행(惡行)이 쓰여 있었어요. 그 재벌 회장을 룸살롱에 불러서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행동이었는데,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그렇고…. 윤 후보가 대선에 뛰어들자 결국 그 회장은 회고록 출간을 포기했습니다.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후보 때부터 아집·독선… 그래도 정권 교체가 더 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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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3월 15일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 업무를 총괄하는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과 대통령 경호처장으로 유력한 김용현 합참 작전본부장이 집무실 후보지들을 둘러보기 위해 국방부를 방문, 출입 절차를 위해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기업을 거의 빼앗기다시피 했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제 지인들이 윤 캠프에 너무 많이 들어가 있었어요. 검사 대통령에는 동의하진 않았지만, 정권 교체가 시급했어요. 그때 캠프에 들어간 지인들에게서 윤 후보의 문제점을 전해 들었어요.”
― 어떤 문제점이요?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보여 준 그 모습이지요. 참지 못하고, 자기 말만 하고, 독선적이고. 그러나 윤 후보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요. 정권 교체가 과제였으니까요.”
― 2022년 3월 9일 대선에서 결국 윤석열 후보가 0.7%p 박빙으로 승리했습니다.
“당선 확정된 날 밤 ‘후견인’과 축배를 했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나와 내가 하는 신문은 윤 정권의 반대쪽에 서있을 거다’라고 했어요. 기자로 살아오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늘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언론은 의식적으로라도 권력의 반대편에 자리 잡는 게 좋다고 봐요. 그분이 ‘무얼 도와주면 좋겠느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 신문 유료 구독 좀 하라고 해달라’고 했어요. 그리곤 보다 객관적 거리를 확보하려 부산에 내려가 몇 달간 신문을 거기서 만들었습니다.”
2022년 3월 20일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장 반대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 급하게 청와대를 떠난 것도 문제였지요.
“결국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옮겨 감으로써 윤석열의 비극이 시작된 겁니다. 중요한 인수위 시기에 본인이 살 집 타령이나 하면서 시간을 낭비해야 되나, 국민들이 어떻게 사나 그걸 고민해야 되는 것 아닌가…. 저도 굉장히 반대했어요.”
― 왜 그리 서둘렀는지, 정확한 이유는 아직 안 밝혀졌죠.
“대통령실 인사는 청와대의 보안 문제를 거론하더군요. 하지만 제가 보기엔 청와대 터가 안 좋다느니 하는 이유로 이전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용산으로 옮겨 가니 되레 대통령의 동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겁니다.”
도어스테핑 失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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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6월 23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의에 답하던 중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경찰의 치안감 인사 정정 사태와 관련해 “중대한 국기 문란 아니면 공무원으로서 할 수 없는 어이없는 과오”라며 강도 높게 질책했다. 사진=뉴스1 |
“술 마시고 11시 넘어서 출근했다는 둥 구설에 올랐어요. 소위 도어스테핑(doorstepping·출근길 문답)도 문제였어요. ‘소통하는 대통령’의 모습이라는데, 저는 반대했습니다. 하면 할수록 대통령 밑천이 다 드러나는 거예요. 거의 즉석으로 이야기를 했잖아요. 검사 시절 기자가 물으면 수사 단서 하나 던져 주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거든요. 대통령의 한마디는 파장이 엄청난 겁니다.”
― 날이 갈수록 실언(失言)들이 쌓였지요.
“나와서는 안 되는 발언까지 나왔어요. 가령 경찰 인사 문제를 두고 ‘국기 문란(國紀紊亂)’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경찰 인사 과정에서 소통에 약간 문제가 있었던 걸 대통령이 경찰의 집단 항명이라는 식으로 몰아가면 경찰 입장에선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경찰 조직의 신망을 다 잃은 겁니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6월 23일과 7월 26일 두 차례 경찰을 질타했다. 처음엔 치안감 인사가 번복된 것과 관련해 “대통령 재가도 나지 않고, 행안부에서 검토한 뒤 대통령에게 의견도 내지 않은 상태에서 인사가 번복된 것처럼 밖으로 유출된 것은 아주 중대한 국기 문란”이라고 했다. 그다음엔 행전안전부 경찰국 신설에 대한 경찰의 반대 움직임에 대해 “정부가 헌법과 법에 따라 추진하는 정책과 조직 개편안에 집단적으로 반발하는 것은 중대한 국가 기강 문란이 될 수 있다”며 “국방과 치안은 국가의 기본 사무이고 최종적인 지휘감독자는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 MBC 기자가 항의성 질문을 한 후 도어스테핑을 중단했죠.
“대통령이 당시 도어스테핑을 하면 할수록 점수를 까먹고 있었어요. 그 기자가 살려 준 겁니다. 그만둘 명분을 줬으니까요. 애초에 도어스테핑을 덜컥 시작할 때 그 결과가 어떨지 참모들이 고민도 안 하고 말리는 이도 없었던 겁니다.”
― 만약 청와대에 그대로 있었다면 출근 시각 체크도 안 당하고 도어스테핑도 안 했겠네요.
“적어도 구설수에는 덜 올랐을 겁니다. 청와대에서는 늦잠을 자든 뭘 하든 바깥으로 안 드러나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예 관저에서 살았다고 하잖아요. 윤석열은 청와대라는 보호막에서 스스로 나와 버린 겁니다. 실력을 갖췄다면 괜찮았겠지만, 실력 없이 나오니 두들겨 맞은 겁니다.”
“한동훈, 검찰에 남겨 뒀어야”
2022년 4월 13일 윤석열 당선인은 한동훈 당시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을 법무부 장관에 지명했다. 꼭 3년 지난 지금 한동훈은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배신자로 낙인 찍혀 있다.
“윤 전 대통령이 인사 하는 걸 보면서 ‘아, 큰일 났다’ 싶었습니다. 본인과 같이 일했던 검사들을 정부의 주요 자리에 앉혔어요. 나라 운영이 동네 골목대장 노릇은 아니잖아요. 그 정점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 지명이었다고 봅니다.”
― 한 전 장관은 문재인 정권 시절 ‘조선제일검’이라 불렸지요.
“그분이 검사 시절 ‘칼질’한 사람들을 생각해 봅시다. 수사 과정에서 그 칼에 당한 기업인, 관료들이 많아요. 재판 가서는 무죄 난 경우가 많았어요.”
― 당시 보수 일각에서는 한동훈 장관 임명을 두고 잘했다고 박수 쳤는데요.
“아마 그때 언론인 중에서 반대한 사람은 저밖에 없었을 겁니다. 한동훈 카드는 그렇게 쓰면 안 되는 거였어요. 자신이 거의 의형제처럼 데리고 있던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을 법무부 장관에 앉히는 건 친인척 쓰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공정하게 사람 잘 쓴다는 인상을 대외적으로 줘야 되는 것 아닌가요?”
― 이후에도 검사들을 주요 직책에 줄줄이 데려왔습니다.
“그중에서도 한동훈만은 검찰에 남겨 뒀어야 합니다. 서울중앙지검장 같은 자리에서 수사를 하는 게 맞았어요. 검사와 법무부 장관의 역할은 다릅니다. 한동훈은 법무부 장관이 된 후 국회에 출석해 야당 의원들과 말로 싸우곤 했어요. 굉장히 보기 안 좋았습니다. 인터넷 매체들의 취재에 법적 대응을 하는 걸 보면서도 실망스러웠어요. 법을 다루는 법무장관이 어떻게 그런 데 매번 소송으로 대응합니까.”
― 한동훈 전 장관은 결국 당으로 들어가 비대위원장, 당대표를 지냈습니다.
“지금도 한동훈을 대통령 후보로 지지하는 이들이 많지요. 저는 한동훈은 윤석열의 아류(亞流)라고 봅니다. 윤 전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키운 겁니다. 그러나 역량으로 보면 한 전 장관이 윤 전 대통령보다 못하다고 생각해요. 대선 후보가 된다 해도 국민들이 ‘제2 검사 정권’을 용납할까요?”
― 지난해 4·15 총선 당시 장일 국민의힘 전 서울 노원을 당협위원장이 당사 앞에서 분신을 시도했어요. 그것도 두 차례나요. 경선에서 컷오프를 당한 데 대한 억울함 때문이었지요. 이에 대해 기자가 묻자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은 ‘그게 시스템 공천의 결과’라고 일축하더군요. 분신한 사람이 얼마나 다쳤는지 걱정이나 애도, 이런 게 전혀 없어서 놀라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매사를 논리에 맞는지 따져서 그에 맞는 걸 추구할 수 있지만, 심정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당대표 경선 때는 자기가 법무부 장관일 때 나경원 후보가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공소 취하를 부탁했다고 폭로하기도 했어요. 이런 모습들을 보면 거의 어린애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韓, 계엄령 반대는 잘했지만…”
― 12·3 계엄 사태 때 한동훈 당대표가 국민의힘의 계엄 반대를 이끌었는데요.
“그날 여당의 계엄 반대를 이끌며 우리나라 정치에 기여한 건 맞아요. 그러나 그 뒤의 언행을 보면 여전하구나 싶습니다. ‘제가 계엄 했나요? 제가 투표했나요?’ 이런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요?”
윤 정권은 언론과 충돌이 잦았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실 인사들의 부적절한 처신이 자주 드러났다. 대표적인 게 MBC의 ‘바이든 날리면’ 보도 건이다. MBC의 보도에 분명 문제가 있었지만, 대통령실의 대응 행태가 문제를 더 키웠다.
― ‘바이든 날리면’ 보도 당시 대통령 비서실이 MBC에 보낸 공문을 보면 공공기관이 작성했다고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조악합니다. 대통령실이 왜 그랬을까요?
“MBC 보도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대통령실 대응 자체가 너무 아마추어적이었어요. 대통령이 일을 더 키웠어요. 결국 나중엔 MBC가 권력에 탄압받는 언론사로 비쳤어요.”
― 대통령 해외 순방 때 MBC 출입기자만 비행기에 못 타게 하기도 했지요.
“얼마나 졸렬한 모습입니까. 그 결과 윤 정권을 거치며 MBC와 JTBC가 대표적인 방송사처럼 자리매김했어요.”
― 2024년 6월엔 동해안 원유층을 탐사하는 ‘대왕고래 프로젝트’ 계획을 대통령이 직접 발표했습니다. 그만한 사안을 대통령이 직접 발표하는 건 상당히 이례적이었는데요. 프로젝트 성공 발표도 아니고.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자신과 가족 문제 때문에 코너에 몰려 있었어요. 그 타개책으로 직접 나섰을 겁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발표했으면 그 결과 역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합니다. 그런 건 석유공사나 산업자원부 차관 정도가 발표하면 되는 겁니다.”
― 다시 김건희 여사 문제입니다. 집권 초기부터 ‘윤건희 정부’냐는 지적이 있었어요.
“대통령실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그렇게 하시면 좀 문제가 있을 것 같고, 이렇게 하셔야 합니다’ 하고 보고하면 대통령이 버럭 화를 냈다고 하지요. 바깥에 다 들릴 정도로요. 언론에서는 왜 간언(諫言)하는 참모가 없냐고 했지만, 참모들이 한두 번 깨지고 나면 ‘내가 미쳤다고 간언을 하나’ 이런 기분이 드는 겁니다. 결국 참모들이 꾀를 낸 게, 김 여사에게 연락해 해결하는 방식을 택한 겁니다.”
― 효과가 있었답니까?
“일종의 우회로였던 건데, 실제로 ‘여사님, 이건 이렇게 해야 합니다. 대통령님 좀 말려 주십시오’ 하는 방법이 효과를 봤답니다. 그러니 김 여사에게 힘이 실린 겁니다.”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발표하자 처음부터 논란이 거셌다. 기자도 준비 없이 발표된 의대 증원을 우려하고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 대통령이 굽히지 않자 대통령 주변의 소위 원로들에게 ‘대통령을 좀 말려 보시라’ 부탁했다. 돌아온 답은 이거였다. “귓등으로도 안 듣더라. 한 번 더 이야기하면 의가 완전히 상할 것 같다.”
“계엄 성공했다면, 79년으로 회귀”
그리고 지난해 12월 3일 밤 윤 전 대통령은 뜬금없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 계엄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어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잖아요. 비현실적으로 보였어요. 윤 전 대통령이 잠깐 실수를 한 건가 생각했지요. 나중에 계엄군이 선관위까지 출동했고 ‘체포조’ 등이 있었다는 걸 알고 이게 계획된 거라는 걸 알았습니다. 나름대로 계획을 했는데 아주 무능한 계획이었구나…. 그런데, 만약 잘된 계획이었다면 그다음엔 어떻게 됐을까 싶었어요.”
― 계엄이 성공했다면요?
“그렇지요. 당장 언론 기사부터 검열을 거치게 되는 겁니다. 어떤 이들은 ‘계몽용’이니 ‘경고용’ 계엄이라고 하지만, 그게 그런 게 아닙니다. 만약 계엄군이 규정대로 했다면 과거 계엄 시대로 회귀하는 거예요. 어떻게 나와 같은 시대에 대학을 다닌 대통령이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나 싶었습니다. 만약 이런 식의 계엄이 용납된다면 앞으로 최고권력자의 행위에 대해 용납 안 될 게 없어요. 일부 우파 세력들은 이번 사태가 반국가 세력과 자유민주 세력과의 체제 대결, 진영 대결이라고 말하는데, 이건 말로는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전체주의적 행태를 지지하는 겁니다.”
― 자유 우파 진영 내에서도 찬탄·반탄 간에 갈등이 빚어졌지요.
“보수라는 대학 교수, 논객, 정치인 같은 지식인들이 계엄을 두둔하는 걸 보며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말로만 자유… 권력 인식부터 틀렸다”
― 일부 법조인들도 계엄 자체에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정당한 권한 행사라고.
“그건 진영논리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법적으로 왜 문제인지는 헌법재판소 결정문에 아주 명확하게 나와 있어요. 윤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개인의 자유’ ‘반(反)지성주의 타파’를 여러 번 언급했어요. 그런데 실제 국정 운영에서는 완전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 줬습니다.”
― 왜 그랬을까요?
“윤 전 대통령은 권력을 장악하려는 욕망이 굉장히 강했어요. 이미 최고 권력인 대통령에 당선됐는데도 불구하고, 그 대통령의 권력으로 여당과 야당까지 마저 다 장악해야 된다고 생각한 거예요. 여당을 장악하려다 이준석·나경원 의원과 갈등을 빚었지요. 대선 과정에서 이준석 지도부에 불만이 많았어요. 이런 말을 했지요. ‘내가 당선되면 그립(grip)을 확 잡을 겁니다.’ 당을 손아귀에 넣겠다는 뜻이지요.”
― 그렇게 장악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자신이 100% 장악해야 안심을 하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야당도 장악하려 했는데, 의석 수도 많고 뜻대로 안 됩니다. 여당 의원을 두고는 찍어 내는 걸로 폭발했는데, 야당 상대로는 그럴 수 없잖아요. 그게 계엄으로 폭발한 겁니다. 윤 전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권력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어요. 권력은 ‘쥐는 맛’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권력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도구일 뿐이에요.”
― 대통령 취임 후 한동안 야당 대표도 만나지 않았어요. 취임 2년 만인 지난해 4월에야 처음 만났지요.
“검사와 범죄자의 관계가 아니잖아요. 대통령의 임무는 국정을 잘 이끄는 것이지, 힘을 과시하는 게 아니에요. 윤 전 대통령은 검사 시절 후배들에게 술 사주고 챙겨 주며 꽉 쥐고 있던 걸 권력이라 생각하는 겁니다. 진짜 권력은 그걸 도구로 이용해 자신이 구현하고자 하는 걸 이루는 것 아닌가요?”
― 일각에서는 소위 ‘명태균 황금폰’ 사태가 터지며 의혹이 커지자 계엄을 발동한 거라 주장합니다.
“일리가 있어요. 결정적인 증거들이 계속 나오니 폭발한 겁니다. 자유와 반지성주의 타파를 주장했던 사람이 가장 비(非)자유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집단에 기대서, 기본권을 침해하는 계엄을 할 수 있는 겁니까? 말로만 자유를 외친 겁니다. 이런 걸 보면서도 탄핵 국면에서 보수 진영 내 자칭 지식인이나 논객들이 윤 전 대통령을 편드는 걸 보면서 ‘윤석열을 잘 모르는가 보다’ 생각이 들었어요.”
〈건국전쟁〉 김덕영 감독 부르더니…
―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계엄을 실제로 계획하고 실행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지요. 전모(全貌)는 재판에서 밝혀지겠지만요.
“김 전 장관은 대통령직을 1970년대 박정희 시대의 대통령 상(像)으로 본 겁니다. 김용현씨와 관련해 이런 일도 있었어요. 김 여사가 디올백을 받아 문제가 됐죠. 사실 사과해 버리면 끝나는 사안이었어요. 마침 그때 김덕영 감독의 〈건국전쟁〉이 개봉했어요. 대통령실에서 김덕영 감독에게 만나자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김 감독에게, 대통령 부부가 용산CGV에서 〈건국전쟁〉을 관람한 후 김 여사가 기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면 어떻겠느냐고 이야기해 주라고 했어요. 김 감독이 대통령실에 가보니 대통령이 아닌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과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겁니다. 김 감독이 이 말을 전하니 두 사람의 표정이 딱 굳어졌답니다. 그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것이었지요.”
― 헌재의 탄핵심판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대한민국은 양쪽으로 쪼개졌습니다. 심정적으로는 내란 지경이었어요.
“한국 사회가 자칫 퇴행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대통령 변호인단에 저의 지인도 여럿 있었어요. 그들은 제 입장 자체를 이해 못 했을 수 있습니다. 저에게 ‘탁상공론 하지 말고 집회 현장에 가보라’고 하더군요.”
탄핵 반대 집회 숫자가 더 많은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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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11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파면 선고 후 7일 만에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를 떠나며 배웅 나온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조선DB |
“그 얘길 듣고 그 주말에 가봤어요. 확실히 탄핵 찬성보다 반대 집회에 숫자가 더 많더군요. 이유가 뭐겠어요? 계엄 날 밤 상황을 온 국민이 다 봤잖아요. 당연히 파면감이라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반대 집회 숫자가 더 많은 거예요. 찬성하는 사람은 나올 필요도 없으니까요.”
― 절박한 사람들만 집회로 나온 거군요.
“그렇지요. 탄핵될 것 같으니까요. 그걸 보고 ‘이렇게 많은 이들이 반대하니 우리가 옳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찬성 집회와 반대 집회의 내용을 봐도 이건 비교가 안 되요. 탄핵 반대 집회를 가보니 단세포적인 선동을 합니다. ‘5 대 3으로 기각된다는 정보를 방금 우리가 입수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박수 쳐요. 참석자들은 거의 중·노년층이었고요. 탄핵 찬성 집회를 가보니 거의 30~50대예요. 탄핵 반대 집회에서는 다들 힘들어서 앉아 있는데, 찬성 집회에서는 음악 틀어 놓고 축제를 하고 있어요. 세대 전쟁을 하면 젊은 층이 이길 수 밖에 없어요.”
― 탄핵 반대 집회엔 20대도 많이 나왔습니다만.
“비중이 그렇게 크진 않아 보였어요.”
― 윤 전 대통령은 헌재 선고 직전까지도 탄핵소추가 기각될 거라 기대했다지요.
“본인이나 참모들이나 얼마나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지 못했는지 알 수 있는 겁니다. 박근혜 탄핵 때도 청와대에서는 기각될 줄 알고 복귀 입장문까지 써놨다고 하잖아요.”
― 집단적으로 판단을 잘못했다?
“보고 싶은 것만 본 겁니다. 모든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판단하면서요.”
― 언제부턴가 언론도 양측으로 나뉘어 싸움을 하는 모양새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가 양쪽 진영으로 극명히 갈려 있어요. 이게 신문 논조와 운영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신문은 영원한 야당 돼야”
― 보수 성향 언론은 으레 윤 정권을 지지해야 하는 것처럼 됐습니다. 정권이 그걸 부추긴 감도 있어요. 자신에게 하는 약간의 비판도 못 견뎠지요.
“물론 보수 이념에 맞는 특정 정책을 지지할 수는 있는데, 언론과 권력은 한편에 붙으면 안 됩니다. ‘대통령이 공격받으면 우리가 공격받는 것’처럼 여기면 안 되는 거예요. 우리 땐 ‘신문은 야당지(紙)가 돼야 한다’고 배웠어요. 여당지가 되면 ‘어용(御用) 신문’이라고 비판했지요. 어용이 되는 순간 언론은 죽는 겁니다. 대통령도 바깥에서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돼요. 들어 보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면 되는데, 그 자리 가면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 과거 DJ(김대중 전 대통령)나 MB(이명박 전 대통령)는 비판에 잘 대응하지 않았습니까.
“그분들은 사업도 해보고 온갖 풍상을 다 겪었잖아요. MB는 심지어 어느 행사에서 누가 ‘쥐박이 왔네’라고 했는데 그냥 넘어갔어요. 권력자들은 으레 국민들로부터 그런 말도 듣고 하는 거 아닙니까. 이미 다 가졌는데, 그런 말쯤 못 참으면 어떡합니까? 그러려면 언론사가 필요 없지요. 당 기관지나 용산 기관지를 만드는 편이 좋습니다.”
― 탄핵 반대 집회에 가보니 윤 전 대통령에 대한 두둔보다는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공포가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보수 내에 ‘이재명 포비아(phobia·공포증)’가 있어요. ‘윤석열을 탄핵하면 이재명에게 정권이 간다’는 논리지요. 그럼, 이재명에게 권력을 안 주기 위해 헌법을 위반한 지도자를 혁명사령관으로 추대하는 게 맞습니까? 정리할 건 정리하고, 이재명 후보에 어떻게 대응할 건지 고민하는 게 상식 아닌가요?”
“‘악마화’ 그늘에 가리면 이재명 똑바로 못 봐”

― 2017년 ‘최보식이 만난 사람’에서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을 만났지요. 정치인 이재명을 어떻게 봅니까?
“지금은 이재명 전 대표가 조기 대선에서 이길 확률이 가장 높지요. 그는 본인이 현실주의라고 말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2017년 인터뷰 당시 성남시장을 하면서 처음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인터뷰가 만족스러웠던지, 그 후로도 이런저런 의견을 교환했어요.”
― 그다음 대선에서 결국 처음으로 민주당 후보가 됐지요.
“그때 제가 《조선일보》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재명을 무조건 비토(거부)할 이유가 없다. 한번 만나 봐라. 기자라는 직업이 좋은 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어서 아닌가.’ 그런데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과 연루된 사건 등으로 몇몇 사람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잖아요. 이때부터 이재명이라는 이름에 음습한 그림자가 따라붙었어요.”
― 영화 〈아수라〉 얘기까지 나왔지요.
“그 후로 이재명은 ‘악마(惡魔)’로 규정된 겁니다. 그전까진 욕과 거짓말 이런 것만 있었는데 대선 과정을 거치면서 악마가 돼버린 거예요.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을 정확히 보기가 어려워진 겁니다. 지금 보수 쪽에서 갖고 있는 느낌이 딱 그거예요.”
“李, DJ도 못 해본 ‘황제적 당대표’”
― 윤 전 대통령은 재임 내내 이재명 대표를 만나지 않다가 딱 한 번 만났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당선이 확정된 날 밤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당선인의 아크로비스타 집으로 찾아갔어요. 패장(敗將)이 축하 인사를 하러 간 겁니다. 앞으로 잘 봐달라는 의도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윤 당선인이 안 만나 준 겁니다. 윤 대통령은 자기가 취임하고 얼마 뒤 이재명씨가 다시 민주당 대표가 됐는데 2년 가까이 만나지 않았어요. 이재명을 범죄자로 여겼으니까요. 만나면 지지 기반이 무너진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렇게 흘러오다 딱 한 번, 자기가 아주 안 좋을 때 만났지요. 대통령이 코너에 몰렸을 때였어요. 협상은 자신의 위치가 좋을 때 해야 합니다.”
― 대선에 패한 후 이재명은 강력한 당대표가 됐습니다.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을 보면 신기하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말입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정치인으로서는 벌써 죽었어야 해요. 형수 욕설 논란에 전과 4범입니다. 걸려 있는 범죄 혐의가 몇 개입니까. 11가지예요. 적대적인 윤석열 정권이 집권했어요. 그런데도 지금까지 살아남아 180석 거대 야당의 황제적 당대표를 지낸 겁니다. 이건 DJ도 못 한 일이에요.”
― 역대 가장 강력한 야당 대표지요.
“굉장히 신기한 현상입니다. 180명 국회의원들이 각자 헌법기관이거든요. 그런데 거의 큰소리 한번 안 나오게 만든다? 아무리 공천권을 쥐고 있다 해도 이건 거의 불가능해요. 보수 진영이 악마 프레임에만 갇혀 있지 말고 이런 관점에서 이재명을 볼 필요도 있어요.”
― 장악력의 비결은 뭘까요?
“말과 글 실력, 상황 판단 자체가 뛰어납니다. 계엄 날 밤 이재명이 즉석으로 국회 본관에서 연설을 했어요. 원고 없이 했는데 그 자체가 그대로 문장이에요. 제가 전에 물어본 적이 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말을 잘하나?’ 그랬더니 ‘젊은 날 세일즈맨과 관련된 책을 많이 봤다’는 겁니다. 실제로 외판원도 좀 했죠. 말하기, 설득하기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다더군요. 저한테 보내는 장문의 문자를 보면 논리적이면서 감성적이에요.”
― 그러나 보수 진영은 공포에 압도돼 있습니다. 이재명 전 대표의 그런 점이 오히려 위험하다고 보지요.
“이재명 자신도 그 점을 걱정합니다. 계엄 사태 후 저에게 그러더군요. ‘큰일이다. 나라가 반으로 쪼개졌다. 이렇게 되면 만약 민주당이 정권을 가져온다 하더라도 똑같이 되는 거다’라고 하면서 ‘사람들이 왜 나를 무서워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보수, 지금 후보론 재집권해도 나라 미래 밝지 않다”
― 일단 보수는 이재명 전 대표의 경제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의 경제관에 위험한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우만 옳은 게 아니고 좌만 옳은 것도 아닙니다. 좌우는 항상 함께 있지요. 시장경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참모가 옆에서 균형을 잡고 보완해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 이재명 정권이 탄생하면 이민 가겠다고 공언하는 보수 인사들도 있습니다.
“이런 얘기를 해볼 수 있어요. 어차피 우리나라는 지금 전체적으로 가라앉고 있어요. 여러 지표들을 보면 그렇지요. 지금 거론되는 우파 후보들이 다시 집권하면 계속 서서히 가라앉을 가능성이 높아요. 이재명 정권이 집권하면 나라가 많이 바뀔 겁니다. 빠른 시일 내에 곤두박질 치거나, 거꾸로 반등할 수도 있어요.”
― ‘모 아니면 도’인가요?
“국민의힘 후보들이 보여 주는 미래는 예상 가능한 미래지만, 이재명은 ‘베팅’을 해볼 만한 후보라는 말입니다.”
최보식 대표는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을 두고 ‘보수의 최종 병기’라 말했다.
“이준석으로 보수 후보가 단일화되면 선거의 양상이 달라질 겁니다. 정권 심판이 아닌 세대 대결이 되니까요.”
그는 김문수·홍준표·유승민 등 국민의힘 안팎에서 거론되는 후보들에 대해서도 논평했다. 그들의 장점도 한계도 말했다. 그에 대해선 ‘최보식의 언론’을 참조하면 될 것 같다.
세월이 후른 후 한국 언론은 윤석열 시대를 회고하며 ‘최보식의 언론’이라는 작디작은 언론에 고마워할지도 모른다. 권력의 구심력(求心力)에 대항하는 힘은 몸집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줬으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