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대한민국 대표문학상 수상 작가를 찾아서 ⑨ 하성란

모래알 속에서 우주를 캐내는 섬세한 상상력

  • 글 : 이재은 시인·월간조선 객원기자  
  • 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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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
⊙ 46세.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졸업.
⊙ 1996년 <풀>로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 작품 《루빈의 술잔》 《옆집 여자》 《푸른수염의 첫 번째 아내》 《웨하스》 《삿뽀로 여인숙》
    《식사의 즐거움》 《내 영화의 주인공》 등 다수.
⊙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일보 문학상, 이수문학상 등 수상.
마법에서 풀려난 여신이 비를 타고 하강한 듯, 그 여신을 놓아주지 않는 심술꾼, 꽃밭은 흐트러지고 재밌다고 웃어 댄다. 비와 바람은 연인처럼 토닥거리지만 지상은 봄을 환영한다. 곰팡이를 꽃이라 칭한 작가, 섬세한 상상력이 아니라면 피어날 수 없는 꽃. 어쩌면 그녀는 자연의 정령 속에서 태어난 요정일지 모른다. 하성란 작가와의 만남은 서울 홍익대 부근 심리치유카페에서 이뤄졌다. 애니어그램(Enneagram)이라는 설문지로 성격분석을 받고 음료를 마시면 1만5000원 정도다. 테이블에는 연인 한 쌍과 상담사인 듯한 남자가 앉아 있다. 두 연인은 갈등하는 마음을 안고 찾아온 듯 진지한 표정이다.
 
  “당신은 장형(본능에 충실하고 행동이 앞서는 유형) 개혁가군요. 상대는 가슴형 상처받기 쉬운 성격입니다. 상대방을 고치려고만 하지 말고 관대하게 바라보세요.” 어쩌면 내 연인의 성격을 이렇게 잘 맞힐까. 치유는 상대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일어난다. 선반형식 책꽂이에는 성격에 관한 실용서와 장식용 소품들이 놓여 있고, 바닥에는 아기자기한 키 작은 화분이 꽃밭을 이루고 있다.
 
  <남자는 지난 겨울부터 지금까지 통틀어 백 개가 넘는 쓰레기봉투를 뒤졌다. 쓰레기를 뒤지는 동안 자연스럽게 이 아파트에 사는 90가구의 취향을 조금씩이나마 알게 되었다. 15평의 이 작은 아파트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산다. 남자처럼 독신이거나 아니면 신혼부부인 한 부류와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난 후 큰 집을 팔고 이사를 온 노부부가 그 한 부류이다. 텔레비전에서 선전하는 신제품의 상품들에 민감한 것은 언제나 젊은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아직까지 모험심이 남아 있다. 포장이 화려하고 열대지방의 과일이 섞인 펀치류의 음료수도 망설이지 않고 구입한다. 양이나 크기에 비해 값비싼 물건들을 사는 것도 그들이다. 그동안의 자료를 가지고 통계를 낸 적도 있다. 이 아파트에 사는 여자들은 손을 보호하는 성분이 들어간 고급 트리오를 쓰고 직장 여성이 많은 까닭인지 린스 겸용의 샴푸를 쓰며 양 날개가 달린 생리대를 쓴다.>-<곰팡이꽃> 본문에서
 
  동인문학상 수상작 <곰팡이꽃>은 관계와 소통이 단절된 채 살아가는 독신남의 이야기이다. 그는 직장에서 한 여자를 좋아했던 적이 있다. 소심한 성격에 고백할 시간은 미뤄지고 여자는 다른 동료와 결혼을 한다. 그로 인한 상실감은 관계로부터 점점 고립되어 간다. 그 무렵 쓰레기 종량제가 시작되고 그는 무심결에 종이류와 음식물도 함께 뒤섞어 버린다. 파파로치 이웃들은 그가 버린 봉투를 뒤져 집으로 찾아온다. 그 후 독신남은 1년간 묘한 버릇에 휩싸여 산다. 새벽이면 어김없이 고무장갑을 끼고 나가 아무도 몰래 이웃이 버린 쓰레기봉투를 들고 온다. 그런 다음 욕조에 쏟아 놓고 하나하나 조사를 한다. 1년 동안 다른 이웃들도 그와 별반 다름없다. 그곳에는 각종 잡동사니들과 구겨진 종이에 음식찌꺼기도 곰팡이로 변한 채 피어 있다.
 
 
  백과사전 뒤지다 <곰팡이꽃> 아이디어 얻어
 

  —이 소설은 남몰래 쓰레기봉투를 뒤져 사생활을 엿보는 독특한 단편소설입니다. 인물 착상은 어떻게 한 겁니까.
 
  “그무렵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아무 항목이나 펼쳐 놓고 읽는 습관이 있었어요. ㄱ 항목을 읽다가 ‘가볼로지(garbology·쓰레기장을 조사해서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실태를 알아보는 사회학의 한 수법)’라는 걸 알았지요. 한 지역의 쓰레기를 조사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실태를 파악하는 건데, 흥미로웠죠. 마침 쓰레기 종량제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는데, 저희집 쓰레기봉투를 한번 뒤져 보았지요. 풀어 놓으니 현관에 가득하더라고요. 정말 내가 버린 게 맞나 할 정도로, 제가 버린 쓰레기인데도 낯설었지요. 쓰레기를 통해 제가 객관적으로 보였어요. 아, 나는 이런 사람이겠구나, 라는 생각. 이런 정보를 가지고 다른 사람이 절 그려 볼 수도 있었겠지요. 쓰레기를 통해서 타인의 삶을 엿본다는 설정이 사실 평이한 소재는 아니었지요. 주제를 전달하려니, 밤마다 남이 버린 쓰레기봉투를 가져와 욕조에 풀어 놓고 항목을 적어 나가는 비정상적인 인물이 나오게 된 겁니다.”
 
  —기업에서도 마케팅을 위해서라면 쓰레기봉투를 뒤질 수가 있겠네요.
 
  “아 예,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방법은 아마 한참 전에 구식이 되었을 거예요. 지금은 애써 쓰레기장을 뒤지지 않아도 수많은 경로를 통해 그런 기호 조사쯤은 쉽게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당장 검색란에 한 사람의 이름을 쳐 보세요. 그 사람이 썼던 댓글, 상품평, 가족사진까지(물론 실명의 경우라면) 자르르 떠오르지요. 자신이 올린 것은 물론, 남이 올리고 이름을 달아 두었다면 모두요.”
 
  —작가님 이름을 쳐도 다 나오죠?
 
  “네, 그렇죠. 장점도 있겠지만 불편할 때도 있어요.”
 
  —독자의 상상력으로 남았지만 독신남은 왜 쓰레기봉투를 뒤지나요.
 
  “쓰레기를 뒤지는 과정을 통해 그가 왜 쓰레기봉투를 뒤지고 있는지 나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없는 현실과는 달리 그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원하고 있지요. 그게 잘 되지 않으니까, 쓰레기를 통해서라도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나가는 것이고요. 물론 그렇게까지 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알아야 하는가, 라는 문제는 남습니다만, 이 단편을 쓸 때는 제 자신이 소통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 주어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되는 것이 소통이라면, 김춘수 선생님의 <꽃>에서처럼요. 쓰레기를 뒤지는 작업을 통해 그는 혼자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거지요. 그래서 제목에도 ‘꽃’이 들어가고요.”
 
  —아파트 주민에 대한 반발심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 그렇게 읽힐 수도 있겠군요. 소설 속에서도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된 것을 모르고 쓰레기를 버린 남자와 그의 쓰레기를 뒤져 찾아오는 주민들의 모습이 잠깐 나오기는 하죠. 글을 쓸 때 반발심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죠. 그들에게 한발짝 다가가려는 시도인 거지요.”
 
  —이 소설을 읽고서 쓰레기를 함부로 버릴 수 없을 것 같아요. 작가님도 그러신가요.
 
  “(웃음)저는 미니 문서파쇄기를 가지고 있어요. 정보를 없앤다기보다는 종이를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국수 가락처럼 쏟아지는 그 과정이 재미있어 구입했어요. 장난감인 거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무서운 건 영수증이 아닐는지 모르지요. 나도 모르게 나의 사생활이 인터넷에 뜬다면, 내 사생활이 낱낱이 밝혀져 나온다면, 그건 문서파쇄기로 없앨 수도 없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하는 욕망들이 많았죠. 그래서 블로그도 활성화되었던 거고요. 하지만 그 폐해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하철 개똥녀 등등의 사건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알리고 싶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우리에겐 ‘알려지지 않을 권리’도 있지요. 이젠 정말 사생활이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어요. 곳곳에 CC(폐쇄회로) TV가 있지요. 범죄를 예방한다는 차원 그 이면을 생각해 봅니다.”
 
  —그와 관련된 소설을 쓸 수도 있겠네요.
 
  “이미 영화는 많지요. 읽지 못했지만 소설도 있을 겁니다.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그동안 자신의 정보를 지우고 새로운 정보를 입력하는 뜻이 될 수도 있지요. 얼마 전 인터넷 실명제에 위헌 결정이 내려졌어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인터넷 환경을 보면 정말 우리가 그것을 누릴 만한 자격이 있나, 그런 의문을 갖게 됩니다. 저는 기사를 읽고 나면 댓글도 훑어봅니다. 그래야 기사를 다 읽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댓글들의 수준이 상식 이하가 된 지는 정말 오래되었습니다. 인간에게 편함과 이로움을 가져다준 것들이 인간을 공격합니다.”
 
 
  性이야말로 양지에서 얘기해야 할 소재
 

  —현대문학상 수상작 <알파의 시간>을 통하여 인간에게 시간만큼 명약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작가님에게도 알파의 시간이 있었겠지요.
 
  “예, 물론 그런 시간들이 있었고, 뒤늦게 깨닫기도 합니다. 세잔의 그림을 좋아하는데, 허만하 선생님의 산문집에서 세잔에 관련된 글을 읽었습니다. 플러스 알파라는 시간에 대해 말씀하셨지요. 글을 읽고 알파의 시간에 대해 생각했어요. 세잔의 그림에 대한 알파의 시간이 아니라 저만의 알파의 시간이 떠올랐어요. 우리는 공평한 시간대 위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짧게 길게 느끼는 것은 정말 모두 다 다르지요. 한 개인에게 흘러간 물리적인 시간, 혹시 많은 사람은 저마다 다른 시간을 겪지 않았을까, 그런 시간을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그날 저녁에도 케이크와 포도주 한 병을 사 들고 그 언덕길을 올라갔다. 결혼 전 마지막으로 맞는 약혼자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였다. 30도 각도의 언덕을 오르내리는 동안 내 종아리에는 알이 뱄다. 젊은 남자들의 웃음소리는 골목 어귀까지 들려왔다. 대문은 열려 있었고 대문 맞은편의 약혼자 방에는 불이 들어와 있었다. 툇마루 아래에 세 켤레의 구두가 흩어진 채 놓여 있었다. 약혼자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그의 생일을 축하하러 온 듯한 그의 친구들이 세 면의 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 누워 있다가 낯선 방문객을 맞았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남자들이었다. 조도 낮은 형광등 아래 그들의 얼굴은 고단해 보였다. 구겨지고 때묻은 와이셔츠가 그들의 바빴던 하루를 말해 주고 있었다. 무심코 내 얼굴을 쳐다보던 한 남자의 얼굴이 두부가 엉기듯 경직되었다.>-<기쁘다 구주오셨네> 본문에서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은 <기쁘다 구주오셨네>는 약혼자 생일 파티가 벌어진 밤, 네 남자와 한 방에서 잠을 자고, 그래서 생긴 아기가 누구 아기인지 모르는 이야기인데, 다소 충격적인 소재였어요.
 
  “어느 날 그런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사실 저 같은 경우도 친구가 많은 남자친구 때문에 단체로 놀러간 경우가 많았죠. 생각보다 여러 이미지들이 금방 떠올랐고 단숨에 써 내려간 소설이었습니다.”
 
  —심사평에 남성적 폭력에 대한 정면 대응 대신 종교적 관용으로 그친 점이 아쉽다고 했어요. 글의 흐름상 정면 돌파를 피한 것도 같아요.
 
  “아무래도 단편이라는 제한된 양에서 사건을 크게 만들 수 없었던 점도 있어요. 지금이라면 그때와 같은 결말을 내지 않았을 겁니다. 개인적인 의지로 아기를 낳겠다고 다짐하면서 끝을 냈겠지요.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어요. 여름 성경학교에서 성경을 공부할 때 이런 의문이 들었어요. 마리아가 어느 날 예수를 가지게 됩니다. 이 사실을 성서의 해석으로 풀지 않는다면, 정말 하늘이 무너질 일이지요. 어린 마음에도 마리아가 얼마나 놀랐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었어요. 이 소설을 쓸 때 그 의문점도 아마 함께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목도 ‘기쁘다 구주 오셨네’로 정했고요. 그리고 그 정도면 그 여자가 상황을 의연하게 잘 넘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웃음)”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성은 끊임없는 논란거리입니다.
 
  “사실 저도 이 부분에 억눌려 있습니다. 어릴 적 호기심이 생겼지만 누구도 시원하게 대답해 주지 않았습니다. 정말 비밀스러운 뭔가였지요. 물어봤다 꿀밤이나 맞고요. 결혼하기 전까지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아마 ‘몸단속’이란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됩니다. 하도 들어서 진짜 대문을 잠그듯 제 몸이 대문처럼 생각된 적도 있었지요.
 
  —억압은 오래된 관습이 아닙니까.
 
  “이 문제야말로 음지가 아니라 양지에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독일에 갔을 때 대로변 일층 쇼윈도에 성 기구들을 전시하고 파는 가게를 보았습니다. 우리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요. 그런 이야기를 하면 얌전하지 못한 사람이 되고요. 그러니 얼마 전 사건처럼 은밀한 별장 같은 곳이 등장하는 겁니다. 호화로운 별장을 무대로 성과 권력, 수많은 욕망이 결집된 거지요.”
 
  —이 소설은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고 봐요. 최근 파문을 일으킨 박시후씨 사건도 그렇고요.
 
  “충분히 그럴 수 있죠 …. 개인적으로 이 배우의 팬이라서 관심이 많았어요.(웃음)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많습니다. 자꾸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흘리는 경찰이 제일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사실 여부도 중요하지만 저는 이 사건에 보인 사람들의 관심이 흥미로웠습니다. 진실이 뭘까, 기사들을 따라 읽었는데 너무 오래 시간을 끌다 보니 지금은 관심이 예전만 못해졌지요.”
 
 
  오직 소설을 쓰기 위한 일념으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신춘문예나 일정한 등단 제도를 거쳐 당선된 작가에게 문학상은 어떤 의미입니까.
 
  “문학상은 대부분 그해 발표했던 소설들을 대상으로 수상자를 결정하게 됩니다. 신인이라면 상이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렇지만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상을 받지 않고 수십 년 꾸준히 글을 써 온 선배들이 많으니까요.”
 
  —동료들끼리 경쟁의식도 있겠죠.
 
  “설마요, 달리기도 아니고 점수가 있는 것도 아닌데요. 상이 아니라 글을 쓸 때 자극을 받는 작가는 있습니다. 그런 작가가 제게는 정말 좋은 작가지요.”
 
  —소설가 하성란의 문체는 ‘모래알 속에서 우주를 캐내는 특별한 마법에 능통하다’고 흔히들 얘기하죠. 골고루 영양소를 섭취하며 음식을 먹는 기분도 들어요. 글쓰기의 노하우가 있다면.
 
  “가끔 노하우를 알려 달라고 해서 난처해질 때가 많습니다. 예전 이문구 선생님을 뵈었을 때 선생님도 그러셨어요. 이게 정말 숙달이 되는 일이 아니라고요. 말씀만 하시는 게 아니라 정말 고뇌에 찬 표정으로 그 말씀을 하시는데, 그 말씀에 정말 안심했습니다. 선생님도 그러시니 나도 조바심내지 않아도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했어요. 등단을 준비하고 등단해서 신인이었을 때는 신인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어요. 지금도 고민 중입니다. 등단 17년 차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뭘까.”
 
  —반면에 가독성은 다소 떨어집니다.
 
  “저는 잘 읽히는데요.(웃음) 첫 번째 두 번째 소설집의 단편들은 의도적으로 현재진행형의 문장, 묘사 위주의 단문으로 썼지요. 스토리를 따라가려고 하는 독자들에게 당연히 잘 읽히지 않았을 겁니다. 일부러 가독성을 떨어뜨려 결말에 더디게 다가가려 시도했다면, 그렇게 해서 소설의 주제를 전달하려고 했다면, 믿어 주시지 않겠지요? (웃음)”
 
  —시대를 예시하고 위로해 주는 소설가는 무당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작가의 말에서 보았습니다. 작가님에게 소설 쓰기는 무엇입니까.
 
  “어느 자리에서 김금화 선생님이 그 말씀을 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이경자 선생님이 신간을 내신 자리였을 거예요. 김 선생님이 이 선생님을 향해 ‘소설가 무당’이라고 하셨는데, 문득 어릴 적 재미있게 보았던 배뱅이굿이 떠올랐어요. 배뱅이 혼이 들어온 척해서 그 가족을 위로하지요. 결국은 사기극이지만요. 수많은 인물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습작을 시작했어요. 소설 외에는 다른 걸 생각하지 않았어요. 물론 학과 성적도 형편없었어요. 소설을 쓴다는 생각으로 고등학교를 다녔지요. 얼마 전 저보다 후배인 한 소설가가 예심평을 써서 보낸 걸 읽었어요. 투고작을 읽고 ‘왜 써야 하는지만 있고 왜 읽어야 하는지는 없다’고 했지요. 뜨끔했어요. 저의 경우 꼭 독자를 위한 소설 쓰기는 아니었거든요. 독자들을 어떻게 감동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솔직히 없었고 제 자신을 위한 소설 쓰기였지요. 제가 발견한 것, 제게 흥미로운 것들…. 소설을 쓰면서 가장 많이 변화된 건 바로 저거든요. 그런데 지금까지의 생각을 좀 바꿔 봐야 할 듯해요.(웃음)”
 
  —작가와 술은 뗄 수 없는 관계 같아요. 주량은 얼마나 되죠.
 
  “많이는 못 마시지만 좋아해요. 비가 오면 아, 소주 한 잔 마시고 싶다, 생각이 드니까요. 술을 먹고 실수도 많이 하지요. 필름이 끊기지 않도록 조심하는데 지금까지 두 번 정도 있었어요. 얼마 전에도 한 선배로부터 ‘고주망태’란 말을 들었어요.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에 없는데 깜짝 놀라 저를 보는 분의 얼굴만 선명하게 떠올라요. 제가 어떤 실언을 한 건지 물어볼 수도 없지요. 그래도 술을 마시고 기분이 나빠지지 않아요. 술을 마시고 기분이 나빠지는 사람은 절대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수할 걱정 없이 친한 친구들과 마시고 떠드는 자리가 좋아요. 하지만 둘째 낳고부터 그런 자리에 나가기가 어렵게 되었지요. 밤마실을 간 지가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네요.”
 
 
  “전통이 오래된 과자가게 그리워”
 
  —과자를 좋아한다고 밝혔는데, 지금도 좋아하세요.
 
  “예전엔 정말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충치 수가 무려 열한 개였을 정도였지요. 동생이 바로 생기면서 젖을 일찍 떼게 되어 카스텔라 같은 것을 먹었다고 해요. 단맛에 일찍 길든 거지요. 결혼하기 전에 정말 밥보다 과자를 더 좋아했어요. 제가 결혼하고 나니 집 안에 굴러다니는 과자 봉지가 사라졌다고 엄마가 말씀하셨을 정도니까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지금도 과자를 좋아해요. 아이들 때문에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과자를 사려 하지요. 얼마 전 비스코티를 먹었어요. 안토니오 마테이라는 과자인데. 맛도 맛이지만 헤르만 헤세가 즐겨 먹었다는 거예요. 헤세의 책을 꺼내 다시 펼쳐보았지요.
 
  … 그런데 왜 우리에겐 그런 과자가 없는 거지요? 전통이 오래된 과자 가게 같은 것 말예요.”
 
  —최근 대선에서 문인 멘토단에 이름을 올렸더라고요. 작가가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사상을 드러내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솔직히 소설 속에서는 전혀 드러내지 않으려 해요. 이번에는 좀 마음이 급했어요. 그걸 꼭 작가의 입장이었다 나눌 수는 없고요. 절실했어요. 앞뒤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실무를 담당했다는 이유로 손홍규씨가 두 번 소환되었어요.”
 
  —소설을 쓰면서 직장생활을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6년 전부터 남편이 조그만 사무실을 꾸리게 됐어요. 그래서 저도 한쪽에서 제 일도 하면서 도와주는 일을 하다 보니 벌써 6년이 되었네요. 출판기획부터 디자인까지 하고 있어요. 일단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 좋아요.”
 
  —첫째가 딸인데, 엄마를 닮았나요.
 
  “글쎄요. 어릴 적 책을 많이 읽어 준 영향인지 책을 읽는 일도 좋아하고 정확하게 문장도 쓰는 듯해요. 하지만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저도 그 나이 훨씬 전부터 그랬죠. 저희 엄마도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셨어요. 아마 아셨으면 정말 놀라셨을 테지요. 작은애는 일곱 살인데 아직도 한글을 떼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게임의 영향이 큰 듯해요. 결국 독서는 훈련이고 습관이라는 것을 두 아이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둘째가 어리고 가사도 만만치 않을 텐데 어떻게 1인 다역을 합니까.
 
  “1인 다역이라는 말이 무색합니다. 대충형 인간이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소설을 쓰지 않을 때는 무슨 취미로 시간을 보냅니까.
 
  “손으로 하는 것들을 좋아합니다. 뜨개질과 퀼트, 종이접기나 공작이요. 경험을 바탕으로 실용서를 기획했지만 통과되지 못했어요.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이에요. 열악한 우리의 출판 문화를 다시 절감했지요.”
 
  —다음 신간은 언제쯤 나옵니까.
 
  “작년에 책이 나오지 않은 만큼 올해는 열심히 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소설집과 장편 그리고 산문집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런데 벌써 4월이네요. 서둘러야겠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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