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저출산·초고령화 시대, 대한민국의 나아갈 길

“향후 5~10년이 한국의 인구 운명을 가를 마지막 기회”

  •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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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전략기획부 신설해 부총리급이 인구 대책 맡게 해야”
⊙ 2030년대 초반 1990년대생(에코붐 세대)의 가임기 끝나… 출생아 수가 극도로 적은 2000년대생이 주 출산 연령대에 진입
⊙ “저출산 대응에 머물면 복지 사업 부처로 전락… 인구 구조 변화 전반 다루는 기획 기능이 없으면 부처 신설 의미 없어”(서울대 조영태 교수)
⊙ 싱가포르 국가인구재능부(NPTD) 설치… 저출산 대응, 이민, 해외 인재 유치, 고령 인력 활용 등 통합적으로 기획
⊙ 2025년 초고령 사회 된 한국, 2070년엔 인구 절반이 노인
사진=뉴시스
한국은 2025년 초고령(超高齡) 사회가 됐다. 유엔(UN)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 중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이면 고령 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로 분류한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1월 4일 발표한 최신 통계인 ‘2025년 주민등록 인구통계 분석’에 따르면, 2025년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1084만822명으로 전년(1025만6782명)보다 58만4040명(5.69%) 증가했다. 전체 주민등록 인구(5011만7378명) 가운데 21.21%를 차지한다. 국민 5명 중 한 명은 노인인 셈이다. 2070년이면 전체 인구 3765만 명(약 46.4%) 중 노인이 1747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한국의 초고령화 사회가 단순히 ‘늙은 사회’가 아닌 ‘가난하고 외로운 노년 사회’가 될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한국은 고령 사회에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데 7년(영국 50년, 미국 15년)이 걸렸다. 이 때문에 법과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할 시간이 부족했다. 초고령 사회는 인구 구조 변화를 불러 생산연령 인구(15~64세)의 부양 부담으로 이어진다.
 
  한국 사회의 초고령화를 유발하는 주축은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세대’라는 찬사와 함께 저출산으로 인해 미래 세대가 책임져야 할 부담스러운 존재라는 양극단적 시선을 받는다.
 
  1차 베이비붐 세대는 1955~1963년생, 2차 베이비붐 세대는 1964~ 1974년생을 통칭한다. 2023년을 기준으로 1차는 약 705만 명, 2차는 약 955만 명이다. 두 세대를 합하면 1660만 명인데 첫 1차 베이비붐 세대인 1955년생은 올해로 71세를 맞았다. 2차 베이비붐 세대 일부는 2024년부터 법정 은퇴 나이(60세)에 들어섰다.
 
 
  노후 보장 못 하는 국민연금
 
노인들의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하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노인들은 모여 앉아 장기나 바둑을 두며 시간을 보낸다. 사진=뉴시스

  베이비붐 세대의 급격한 은퇴를 막고 경제 활동을 통한 노후 생활 개선을 위해 정년 연장이 논의되고 있으나 구체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AI(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해 청년층 일자리도 줄어드는 상황에서 정년 연장은 젊은 층의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는 민감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인(65세 이상)은 다중 위기에 처해 있다. 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용어가 ▲노인 빈곤 ▲노인 자살 ▲만성질환 ▲사회적 고립 등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노인이 겪는 어려움을 두고 ▲‘압축적 근대화’의 부작용 ▲국가적(연금·복지 등)·개인적 차원(자산 등)의 준비 부족 ▲사회 문화의 변화 ▲부동산 중심의 자산 등 여러 원인이 얽혀 있다고 분석한다.
 

  1988년 도입돼 1999년 전 국민으로 확대된 국민연금 제도는 현재 노인 세대가 은퇴 소득을 축적할 시간을 주지 못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는 당시 중장년층이었던 지금의 노인 세대의 소득 기반과 민간 저축을 붕괴시키는 계기가 됐다. 또 대가족 중심이었던 가족 부양 체계가 핵가족화로 해체됐으나 이를 대체할 공적 안전망은 미성숙했다.
 
  부동산 편중은 ‘자산 보유 빈곤층’이라는 역설적인 상황을 낳았다. 60세 이상 가구주의 평균 순자산은 4억8630만원, 39세 이하의 순자산은 2억3678만원이었다(2024 통계청). 노인이 보유한 자산이 2.1배 많지만, 대부분 부동산이어서 처분하지 않고는 현금이 아닌 단지 숫자일 뿐이다.
 
  현재 국민연금의 명목 소득대체율 40%는 40년 가입을 전제로 한 수치다. 현재 노인 세대에게 40년 가입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2023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월평균 연금 수급액은 약 60만원으로 1인 가구 최저생계비(약 125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연금 수급자 중 절반 이상은 월 25만~50만원 사이의 금액을 받고 있다.
 
 
  ‘전기 노인’ ‘후기 노인’
 
  현재 한국의 법적 노인 기준인 65세는 1981년 노인복지법 제정 당시 기대 수명(66세)을 반영한 값이다. 2025년 현재 기대 수명(83세 이상), 건강 수명과는 차이가 있다. 최근 한국은행과 국책 연구 기관들은 연금 재정 안정화와 노동력 부족 해소를 위해 노인 연령 기준을 상향하거나 유연하게 적용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65세 이상은 노인 범주에 포함되지만, 이를 연령대로 나누면 ‘전기(前期, 65~74세) 노인’과 ‘후기(後期, 75세 이상) 노인’으로 나눌 수 있다. 전기 노인은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해 활발한 경제·사회 활동이 가능한 노인 계층을 말한다. 후기 노인은 신체 기능 저하로 인해 의료 및 돌봄 서비스의 필요도가 높아지는 노인 계층을 뜻한다.
 
  1차 베이비 붐 세대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전기 노인을 차지하고 있다. 전기 노인 중 노후 대비를 해온 이들은 여생을 즐기지만 그렇지 못한 노인은 재취업에 나선다. 주로 생계유지를 위한 비자발적 노동이다. 은퇴 전의 경력과 무관한 단순 노무직이나 저임금 서비스직으로 하향 이동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베이비붐 세대의 노년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1955년생인 정인용(남·71세)씨는 베이비붐 1세대에 해당한다. 15년 전 2억원을 대출받아 서울 강북에 아파트를 샀는데, 지금은 8억원이 됐다. 그는 서울에서 시내버스 기사로 20년간 일했다. 매달 국민연금을 10여만원씩 10년 가까이 냈다. 여기에 일시금으로 3년 치를 추가로 내 지금은 24만원가량 국민연금을 받는다고 했다. 첫 연금을 수급할 땐 19만원이었다고 한다. 연금 수급 기간은 10년을 상회하며, 현재 본인 납부액 이상의 수급액을 받고 있다. 여기에 노령연금 약 30만원을 받는다. 이 둘을 합하면 50만원쯤 되는데 용돈이라고 생각한다. 이 외 보습학원 통학 차량을 운전하며 약 150만원을 받는다.
 
  “연금만으로는 생계를 꾸리기 힘들죠. 소일거리라도 하니 먹고는 삽니다. 주변에선 ‘서울에 아파트가 있으니 노후 준비는 끝났다’고들 말합니다. 아파트 빼곤 가진 게 없습니다. 건강도 크게 나쁘지 않아 아직까진 걱정이 없는데 앞으로가 문제죠. 지금 받는 연금 수준으론 어림도 없으니까요.”
 

 
  노인 일자리 사업의 한계
 
노인일자리 박람회에 참석한 한 노인이 채용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는 노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노인이 활기차고 건강한 노후 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노인 고용률은 2019년 32.9%에서 2023년 37.3%로 늘었다. 하지만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노인은 전체의 6.7%며 아예 신청한 적 없는 노인은 83.8%였다. 문제는 이와 같은 공공 노인 일자리 사업이 ‘용돈벌이’ 수준에 그친다는 점이다.
 
  이인실 전 통계청장은 “베이비붐 세대의 교육 및 소득 수준이 과거에 비해 크게 향상됐기에 (공공이 제공하는 수준의 일자리는) 이들의 수준과 맞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베이비붐 세대는 주요 직장에서 평균 52.8세에 은퇴하지만, 희망 근로 나이는 73.3세로 20년 이상 격차가 나고 대부분은 평생 축적해 온 인적 자본을 활용하는 직무와는 거리가 먼, 저임금 단기 일자리에 종사한다”고 했다.
 
  노인 근로자의 34.6%는 단순노무직, 23.3%는 농림어업에 종사했다. 관리자·전문가는 5.8%에 불과하며 소득은 40대 근로자의 절반 수준이었다.
 
  지난해 9월 28일 KB금융그룹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이 생각하는 노후 적정 생활비는 월 350만원, 최소 생활비는 월 248만원이다.
 
  OECD는 2020년 기준(2023년 발표) 한국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을 40.4%로 보고했다. 이는 OECD 평균(14.2%)보다 약 3배 높고, OECD 가입국(38개국) 중 최고 수준이다. 2023년 통계청에 따르면 노인의 가처분소득(개인 의사에 따라 쓸 수 있는 소득)을 기준으로 상대적 빈곤율은 38.2%였다.
 
 
  OECD 평균보다 3배 높은 상대적 빈곤율
 
요양병원의 모습. 사진=조선DB

  상대적 빈곤율이란, 월평균 중위소득(1인 기준 약 200만원)의 절반에 이르는 소득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홀어르신은 2020년 기준 상대적 빈곤율이 72%였다. 홀로 사는 노인 10명 중 7명은 100만원 미만으로 생계를 이어간다는 의미다.
 
  상대적 빈곤은 불우한 노인을 만든다. 이러한 노인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2023년 한국 노인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40.6명이다. OECD 가입국 중 가장 많다. 하루 평균 1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80대 이상 노인 자살률은 10만 명당 60.6명이다. OECD 가입국의 노인 자살률은 20~28명 수준이다.
 
  문제는 노인의 불행이 노인에게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인 빈곤과 소외는 청년 세대의 혼인·출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청년들은 부모 세대의 고단한 삶을 목격하며 자신의 노후를 투영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느라 노후 준비를 못 해 빈곤에 빠진 부모의 모습은 청년에게 결혼과 출산이 ‘빈곤으로 가는 급행열차’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노인의 행복한 노년은 청년에게 국가가 노인의 존엄을 지켜준다는 신뢰를 줌으로써 ‘미래 투자’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노인 정책과 저출산 정책은 별개가 아닌 통합된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2025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8명이다. 합계출산율이 1.0명 미만으로 장기화할 경우, 한국 사회는 인구 감소에 이어 구조적 붕괴를 맞게 된다. 전문가들은 합계출산율 1.0 미만의 장기화가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생산가능인구(15~64세) 급감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되는 노동 공급이 줄어들면서 잠재성장률이 0%대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부양비 폭증
  일하는 사람은 줄고 부양받아야 할 노인은 급증하면서,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 시스템의 재정 고갈이 가속화된다. 이는 ‘세대 간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다.
 
  지방 소멸
  수도권 집중 현상과 맞물려, 비수도권 지역은 학교, 병원, 상점 등 필수 인프라가 붕괴하는 ‘소멸 단계’에 진입한다.
 
  전문가들은 향후 5~10년이 한국의 인구 운명을 가를 마지막 기회라고 말한다. 2030년대 초반이 되면 1990년대생(에코붐 세대)의 가임기가 끝나고, 출생아 수가 극도로 적은 2000년대생이 주 출산 연령대에 진입하기 때문에, 출산율을 반등시킬 인구학적 동력 자체가 사라진다.
 
  한국 정부는 2006년부터 ‘저출산·고령 사회 기본계획’을 5년 단위로 수립하고 예산 수백조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정책 체감도는 낮았다. 이러한 정책 실패의 핵심 원인은 개별 정책의 미흡함보다 정책을 총괄·집행할 컨트롤타워의 부재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한계
 
  대통령 직속 기구로 설치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는 이론적으로는 범정부 컨트롤타워라는 위상을 가졌지만, 실권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저고위에는 집행권과 예산권이 없다. 위원회는 자문·심의 기구에 불과해 각 부처(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등)에 정책 이행을 강제할 법적 권한 또한 없다. 예산 편성권은 기획재정부가 독점하고 있어, 위원회가 아무리 좋은 계획을 수립해도 예산 뒷받침이 없으면 정책으로 구현될 수 없다.
 
  또 부처 간 칸막이 현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인구 정책은 주거, 보육, 교육, 일자리, 이민 등 전 부처의 업무와 연관돼 있다. 그러나 강력한 조정자가 없다 보니, 각 부처는 자기 부처의 기존 사업에 ‘저출산’이라는 이름만 붙여 예산을 따내는 데 급급했다. 이에 따라 백화점식 보여주기 정책이 만연했고, 정작 정책 수요자인 국민으로서는 통합적인 서비스를 체감하기 어려웠다. 각 부처가 시행한 정책에 대한 검증도 사후 이뤄지지 않았다.
 
  전문성과 지속성도 부족하다. 위원회의 구성원이 자주 교체되고, 사무처의 규모와 전문 인력이 부족해 장기적인 인구 전략을 연구하고 기획하는 데 한계가 있다. 또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 기조가 흔들리는 문제점도 있다.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없어 정책 사각지대와 중복 투자 또한 낳고 있다. 청년 주거 지원은 국토교통부가, 신혼부부 보육 지원은 보건복지부가, 경력 단절 여성 재취업은 고용노동부가 각각 담당하며 정책 간 연계는 매끄럽지 못한 게 현실이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집이 없어 못 낳거나, 집은 구했으나 보육 시설이 없어 일을 그만두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으며, 저출산 예산에 ‘대학 지원금’ 등이 포함되는 등 예산 분류 체계의 혼란으로 인해 착시(錯視) 현상만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데모 그래픽’
 

  《한국이 소멸한다》를 쓴 전영수 한양대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교수는 “저출산 대책을 실행하려면 의지와 능력이 단일 체계 안에 있어야 하는데 저고위는 실행 권한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다룬 《인구에서 인간으로》를 쓴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출산 대응 정책은 일정한 긍정적 효과를 냈지만, 전반적 성과는 제한적이었다”면서 “핵심 이유로 정책의 실질적 대상에서 배제된 사람이 많다”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그간 정책은 주로 소득 중상위의 결혼 가구에 초점을 맞춰, 미혼·비정규직·청년 다수를 포괄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출산 대응의 핵심을 청년의 현실과 미래 전망을 바꾸는 인구 전략으로 보고, 출산율 제고를 넘어 선택의 자유 확대와 삶의 질 유지를 목표로 한 국가 차원의 인구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이상림 책임연구원은 ‘인구 기반 전략’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유럽은 현재 굉장히 범(汎)정부적이고 범사회적으로 인구 문제를 다룹니다. ‘데모 그래픽(demographic)’이라 하는데, 인구와 사회 간의 상호 관계를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사회가 바뀌면서 인구에 변화를 주고 인구 변화를 사회에 더 유리하게끔 만드는 전략입니다. 인구에 대한 이해와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사회적 합의가 더 쉬워집니다. 지금처럼 해선 안 됩니다.”
 
  《인구는 내 미래를 어떻게 바꾸는가》의 저자인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 조영태 교수는 윤석열 정부에서 저고위 위원으로 임명됐으나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중도 사퇴했다. 조 교수는 한국의 미흡한 인구 정책의 배경에 대해 관료·전문가·언론이 기존 프레임에 갇힌 점과 대통령 임기 내 성과를 중시하는 정치적 요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정책 답습으론 인구 해법 못 찾는다”며 출산 정책과 인구 정책을 조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가 강조한 기구가 ‘인구전략기획부’다.
 
  “저출산 대응에 머물면 해당 부처는 복지 사업 부처로 전락합니다. 2030~2040년 사회 구조를 전제로 현재 제도의 작동 가능성을 점검하는 ‘전략 부처’가 돼야 합니다. 우리 사회 전반적인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저출산은 풀리지 않습니다. 인구 구조 변화 전반을 다루는 기획 기능이 없다면 부처 신설 자체의 의미가 없습니다.”
 
 
  인구전략기획부
 
1960년대 베이비붐 세대가 당시 국민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모습. 사진=국가기록원

  정부는 앞선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2024년 7월 ‘인구전략기획부’ 신설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1년 반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인구 정책을 총괄할 조직에 대한 논의는 실행되지 않고 있다. 인구전략기획부는 과거 한국의 고도 경제 성장을 견인했던 ‘경제기획원(EPB)’ 모델을 인구 정책에 도입하겠다는 취지다.
 
  인구전략기획부는 기존 저고위와는 다른 위상을 갖는다. 우선 부처를 책임지는 장(長)은 기존 교육부 장관이 겸임하던 사회부총리 직위를 갖게 된다. 이는 인구 문제가 교육, 노동, 복 지 등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최상위 의제임을 뜻한다.
 
  예산 사전 심의권도 있다. 이는 각 부처의 저출산·인구 관련 예산을 사전에 심의하고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이다. 기획재정부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예산 편성에 반영해야 한다. 이는 과거 경제기획원이 가졌던 강력한 예산 조정 기능을 참고한 것이다. 부처 이기주의를 타파하고 정책의 실행력을 담보할 수 있는 수단이다.
 
  또한 보건복지부의 인구 정책 기능, 기획재정부의 중장기 국가 발전 전략 기능 등을 이관받아 인구 정책의 ‘기획-조정-평가-환류’ 기능 또한 일원화할 계획이다. 5년 단위의 단기 계획을 넘어, 20년, 30년을 내다보는 국가 인구 장기 발전 전략 수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민 정책, 정년 연장, 연금 개혁 등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에 대해 범정부 차원의 합의를 도출하는 정책 조정 기능도 있다.
 
 
  선진국의 인구 전략
 
  선진국은 인구 정책, 인구 전략을 어떻게 마련하고 있을까. 대표적으로 일본, 프랑스, 싱가포르가 있다.
 
  일본은 ‘어린이’를 중심에 둔 아동가정청이 있다. 2023년 4월, 총리 직속으로 출범한 조직이다. 기존 내각부, 문부과학성, 후생노동성으로 구분됐던 아동·육아 관련 행정을 하나로 통합했다. ‘어린이 최우선(Children First)’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아동 권리 보장과 육아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아동가정청은 수요자(아동, 부모) 입장에서 행정 창구를 일원화해 편의성을 높였다. 일본 정부도 2030년까지를 저출산 반전의 마지막 기회로 규정하고 예산을 대폭 증액(GDP 대비 가족 지출 확대)하고 있다.
 

  다만 인구 구조 변화 전반(고령화, 이민 등)을 다루기보다는 ‘저출산과 아동 복지’에 국한된 측면이 있어 한국의 인구전략기획부가 지향하는 포괄적 컨트롤타워보다는 범위가 좁다.
 
  프랑스는 가족수당 등 가족 지원금을 집행하는 공적 기구인 ‘가족수당기금(CNAF)’을 바탕으로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둔 인구 정책을 편다. 프랑스는 유럽 내에서 높은 출산율(약 1.7~1.8명)을 유지하고 있다. 특정 부처가 독점하기보다는 대통령 산하의 각종 위원회와 보건부, 실무 조직인 CNAF가 유기적으로 협력한다. 일관성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 기조가 흔들리지 않는다. 이는 인구 문제를 국가 존립과 직결한 문제로 인식하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GDP의 3~4%를 가족 지원 예산으로 쓴다. 한국이 약 1.5% 수준인 점에 비하면 두 배 이상 아이와 가족을 위해 투자하는 셈이다.
 
  프랑스의 특징은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점이다. 비혼 출산, 동거 연인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차별 없는 혜택을 제공해 출산 장벽을 낮췄다.
 
  싱가포르는 총리실 산하 국가인구재능부(NPTD)가 전략적 관점에서 인구 전략을 기획한다. 부처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인구의 양적 유지뿐만 아니라 질적 제고를 목표로 한다. 저출산 대응과 함께 적극적인 이민 정책, 해외 인재 유치, 고령 인력 활용 등을 통합적으로 기획한다.
 
  NPTD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미래 인구 구조를 예측하고, 이에 맞춰 주택 공급, 교통망 확충, 의료 시설 계획을 수립한다. 최근에는 금융당국과 협력해 고령화에 대비한 전 국민 재무 지침을 배포하는 등 경제 정책과 인구 정책을 통합했다. 인구와 이민, 노후 대비, 인재 양성을 연계하는 전략적 접근이 돋보인다. 한국 인구전략기획부가 참고해야 할 조직 중 가장 모범적인 사례다.
 
 
  인구전략기획부, 데이터 적극 활용해야
 
한 노인이 구직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한국은 앞서 소개한 모범 사례와 함께 강점인 ‘데이터(정보)’를 기반으로 한 과학적인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한국은 ▲건강보험공단의 의료 정보 ▲국세청 소득 정보 ▲통계청 인구 정보를 결합해 생애주기별 단절 없는 데이터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어떤 정책이 출산율 제고와 노인 빈곤 해소에 실질적인 효과가 있었는지 효과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인구영향평가제 법제화’도 필요하다. 환경영향평가처럼 모든 법령 제·개정, 대규모 국가사업 시 인구 구조에 미칠 영향을 의무적으로 평가하도록 법제화하는 방식이다. 이는 무분별한 예산 낭비를 막고 정책의 인구 친화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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