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턴 모먼트-아인슈타인 모먼트-탈냉전 세계화-AI 모먼트 거치면서 ‘앎과 믿음’ 사이의 변곡점 형성
⊙ ‘AI 모먼트’, 앎에 대한 믿음 퇴조하면서 각국에서 전통주의·포퓰리즘 대두
⊙ ‘뉴턴 모먼트’로 理性의 시대 도래했지만, 종교전쟁·나폴레옹 전쟁 등 발발
⊙ ‘아인슈타인 모먼트’로 앎에 대한 확신 사라지면서 파시즘·공산주의 등 이데올로기의 시대 도래
⊙ 앎의 질과 믿음의 질이 동시에 나빠지면서 이성이 저물고 기괴한 신념이 득세
⊙ 민주주의의 타락·大전란 막으려면 개인도 국가도 관용과 절제 필요
박용민
1966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英케임브리지대 국제관계 석사 / 駐 르완다 대사, 국립외교원 경력교수 역임. 現 駐 태국 대사 / 저서 《맛으로 본 일본》 《영화, 뉴욕을 찍다》 《키신저의 회복된 세계》(역서), 《공기의 연구》(역서)
⊙ ‘AI 모먼트’, 앎에 대한 믿음 퇴조하면서 각국에서 전통주의·포퓰리즘 대두
⊙ ‘뉴턴 모먼트’로 理性의 시대 도래했지만, 종교전쟁·나폴레옹 전쟁 등 발발
⊙ ‘아인슈타인 모먼트’로 앎에 대한 확신 사라지면서 파시즘·공산주의 등 이데올로기의 시대 도래
⊙ 앎의 질과 믿음의 질이 동시에 나빠지면서 이성이 저물고 기괴한 신념이 득세
⊙ 민주주의의 타락·大전란 막으려면 개인도 국가도 관용과 절제 필요
박용민
1966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英케임브리지대 국제관계 석사 / 駐 르완다 대사, 국립외교원 경력교수 역임. 現 駐 태국 대사 / 저서 《맛으로 본 일본》 《영화, 뉴욕을 찍다》 《키신저의 회복된 세계》(역서), 《공기의 연구》(역서)

- 2021년 1월 6일 성난 군중이 미국 의사당을 공격했다. 사진=AP/뉴시스
역사는 반복되지는 않지만 각운(脚韻)은 맞춘다(History does not repeat itself, but it rhymes). 그 대표적인 예가 끝없이 되풀이되는 전쟁이다. 인류는 왜 전쟁을 반복할까? 수십 수백만 명이 죽는 비극을 한번 경험했으면 전쟁을 영영 그만둘 법도 한데 그러지를 못한다.
모든 정치제도는 그 기초 원리의 과잉으로 인해 쇠망하는 경향이 있다. 제도의 쇠락은 혼란을 낳으며, 그 결과로 세력들 간의 균형이 무너지면 기존 질서의 정당성을 파기하는 변혁적 상황이 도래한다.
기억은 유전되지 않으며, “한 세대에는 단지 한 번의 추상화(抽象化)만 허락될 뿐”이므로, 한 세대의 교훈은 좀처럼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피터 터친(Peter Turchin)은 ‘전쟁 주기설’을 주장했다. 그는 집단적 폭력 수준이 일정한 리듬을 따르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다. 한 세대가 전면적 전쟁을 벌이면, 이 폭력으로 상처 입은 다음 세대(‘아들들’)는 불안한 평화를 유지한다. 폭력에 직접 노출되지 않은 채 자라는 그다음 세대(‘손자들’)는 할아버지들의 실수를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략 50년(두 세대)을 두고 폭력이 되풀이되는 주기가 만들어진다고 그는 보았다.
어쩌면 전쟁과 평화는 경기(景氣) 순환을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공급량이 수요량을 초과하면 가격이 내려가고, 수요가 증가하여 공급량을 초과하면 가격이 올라가듯이, 전쟁이 닥치면 인간은 사치스러운 가정들을 내려놓고 회색빛 강철 같은 용기를 보여 준다. 평소라면 지도자로 뽑히기 어려웠을 진정한 영웅이 지도자로 떠오른다. 살아남는 것이 최대의 현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렵사리 이룩한 평화가 길게 이어지면(피터 터친의 말대로라면 두 세대째가 되면) 사람들은 평화가 얼마나 어렵게 이루어진 것인지 잊는다. 평화는 평화를 바라는 마음만으로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한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전란으로밖에 해결될 수 없는 분열과 갈등을 불러온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가 말했듯이 “불황(不況)의 효용 가운데 하나는 회계감사관이 못 보고 지나친 점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통렬한 폭력도 인간의 삶에서 불건전한 요소를 청산하는 자정(自淨) 과정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극언일까? 니체라면 아마 “천만에”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어쩌면 전쟁은 인간이라는 종(種)에 고유한, 내적(內的) 혼란의 표현형(phenotype)일지도 모른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큰 낙차(落差)로 변화할 때, 인간은 혼란을 경험한다.
1. 뉴턴 모먼트
무지(無知)와 공포가 신(神)들을 창조했으며, 공상, 광신, 또는 기만이 신들을 아름답게 하기도하고 추하게도 했다. –돌바크 남작(1723~1789년), 《자연의 체계》 중에서
아이작 뉴턴궁금한 것이 열이라 치자. 그중 아는 것이 하나뿐이라면 나머지 아홉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추측하거나 믿어야 한다. 인류의 역사는 대략 30만 년이다. 그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인간이 아는 것은 극히 적었고, 나머지는 믿어야 했다. 선사(先史)시대에는 제사장, 예언자, 신탁(神託), 무녀(巫女), 승려들이 알 수 없는 것들을 설명해 주었다.
인간이 아는 것의 총량은 이슬비에 강물 불어나듯 알아차리기 어려운 속도로 아주 조금씩만 늘었다. 신석기시대의 농업혁명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식을 획기적으로 늘려 주었지만 여전히 인간은 자연에 의존했고, 아는 것보다는 믿어야 하는 것들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앎의 곡선이 바닥에서 조금씩 올라오고, 믿음의 곡선이 천장(궁금한 것의 총량)에서 딱 그만큼씩 내려오는 그래프를 마음속에 그려 보시기 바란다.
2700년쯤 전인 기원전 6세기 아나톨리아의 이오니아 도시 밀레토스에서 자연의 구성과 세상의 원리를 설명하려는 철학자들이 나왔다. 밀레토스 학파는 세계를 물, 아페이론[무한정자(無限定者)], 불 등 자연적인 요소로 설명하려 했다. 철학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이후의 소피스트들이 관심의 초점을 ‘인간’으로 옮겨 왔다. 이들은 ‘궤변(詭辯)’이라는 이상한 방법으로나마 이성주의(理性主義)와 계몽주의의 첫걸음을 내딛은 셈이었다.
그러나 과학은 ‘위대한 관찰자’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도 천 년 넘도록 별다른 진보를 이루지 못했다. 고대와 중세는 여전히 신(神)들이(또는 유일신이)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였다. 먼발치에서 역사를 바라보면, 르네상스와 과학혁명과 대항해시대는 거의 동시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다빈치에게서 예술가와 해부학자와 발명가를 분리해 낼 도리는 없다.
앎이 믿음을 따라잡을 때
동양에서 발명된 종이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을 만나 지식의 폭발을 가져왔고, 역시 동양에서 발명된 나침반은 유럽의 항해자들을 만나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이런 각성은 로저 베이컨(?~1294년)에서 시작되어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년)와 함께 성장했고, 코페르니쿠스(1473~1543년), 갈릴레오(1564~1642년) 및 케플러(1571~1630년)의 천문학, 길버트(1540~1603년)의 자기(磁氣) 및 전기 연구, 베살리우스(1514~1564년)의 해부학 연구, 하비(1578~1657년)의 혈액 순환 연구에서 정점에 달했다.
이성과 합리의 폭발적 성장이 유럽에서 이루어졌다. 세계의 나머지 지역은 머지않아 자의든 타의든 그 세례를 받게 될 터였다. 역시 동양에서 발명된 화약은 유럽에서 공격용 무기로 변신해 질서를 무질서로 대체했다. 신대륙의 발견은 귀금속의 유입으로 가치관을 전복했을 뿐 아니라 세계관을 바꾸었다. 신성하게 여겨지던 것들이 모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공재(公共財)처럼 여겨졌고, 경험은 가치 없는 것이 되었다. 세속화(世俗化)된 인간들은 개인적 신념으로 신앙심을 대체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사망한 1642년에 아이작 뉴턴이 태어났다. 그는 우주의 모든 움직임을 유클리드 기하학의 수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물리학을 수립했다. 인간이 아는(또는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총량을 표시하는 곡선이 거의 수직으로 상승했다. 우리가 앞에서 정의한 바와 같이, 믿음의 곡선은 그만큼 추락했다. 윌 듀런트의 표현을 빌리면, “스피노자에서 디드로까지 이성이 걸어간 길 위에 신앙은 여지없이 짓밟혀 쓰러졌다.” 앎의 곡선이 믿음의 곡선을 추월해서 두 곡선이 교차하는 지점을 편의상 ‘뉴턴 모먼트’라고 불러 보자.
‘이성의 시대’의 大전쟁들
계몽주의 시대는 다른 한편으로 나폴레옹 전쟁을 비롯한 숱한 전쟁들을 낳았다. 프랑수아 제라드가 그린 아우스테를리츠 전투.18세기와 19세기는 이성에 대한 인간의 자부심이 바벨탑처럼 높아지던 계몽주의의 시대였다. 그러나 앎과 믿음의 이와 같은 자리바꿈이 인간에게 행복한 결과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버팀목이 되어 주던 신앙이 권위를 잃어버릴 때 인간들은 30년 동안 종교전쟁을 벌였고, 이성과 합리에 대한 확신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이어져 유럽 대륙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대전쟁의 배후에는 실상은 철학적 혼란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종교전쟁을 종식시킨 베스트팔렌 체제와 나폴레옹 전쟁 이후 질서를 회복한 빈 체제는 인류의 자살 충동이 무한정 악화(惡化)되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 희망적 계기들이었다.
그러나 뉴턴 모먼트를 전후하여 크나큰 전란(戰亂)을 치렀다는 사실은 하나의 가설(假說)을 제기한다. 앎의 곡선과 믿음의 곡선의 근접 현상은 한편으로는 합리적 추론(推論)과 종교적 영성(靈性)의 공존처럼 보이지만, 그 둘의 갑작스런 역전 현상은 어쩌면 인류가 소화하기 어려운 극심한 혼란을 기어코 초래하는 것이 아닐까?
2. 아인슈타인 모먼트
1920년대 초, 더는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믿음이 처음으로 대중에까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시간과 공간, 선(善)과 악(惡), 지식과 가치에 대한 절대적 기준이 사라졌다. 상대성이론을 상대주의와 혼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었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폴 존슨, 《모던 타임스》 중에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20세기 들어 인류는 정반대의 순간을 경험한다. 아인슈타인은 1905년 ‘특수상대성이론’을, 1915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1919년 천문학자들은 일식(日蝕)의 측정값이 뉴턴 물리법칙과 1.745초만큼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관측함으로써 상대성이론이 옳음을 입증했다.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인 척도가 아니라 상대적인 척도에 불과하다는 의미였다. 사람들은 상대성이론을 쉽게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세상이 다른 우주 속으로 내던져진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1927년 하이젠베르크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표했다. 빛의 입자(粒子)설과 파동(波動)설로 나뉘어 다투던 현대 물리학계는 이제 빛이 입자이기도 하면서 파동이기도 하다는 이중설(二重說)을 받아들였다. 이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 논고》를 통해 종래에 철학이라고 생각해 왔던 인간의 지적(知的) 활동에 대한 확신을 무너뜨렸다. 용기를 잃은 철학은 웅장한 윤리학과 정치학의 영역을 벗어나 인식론이라는 좁은 틈새로 비집고 들어갔다. 윌 듀런트의 표현에 따르면, 인식론은 근대 철학을 유괴해 거의 그 몸통을 파멸시켜 버렸다.
이데올로기의 시대
‘아인슈타인 모먼트’는 이데올로기의 시대와 홀로코스트의 참사로 이어졌다.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인류가 지닌 앎의 확실성은 급전직하했다. 그 빈자리를 다시 믿음이 채워야 했다. 이번에 상승한 믿음의 곡선을 떠받치는 것은 이미 위세를 잃어버린 종교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였다. 자본주의, 자유주의, 나치즘, 파시즘, 공산주의, 사회주의 등등 새로운 믿음이 예전에 종교가 차지했던 자리를 대신했다. 무슨 주의를 믿느냐가 인간을 정의했다. 앎의 곡선과 믿음의 곡선이 두 번째로 교차한 20세기의 이 순간을 편의상 ‘아인슈타인 모먼트’라고 불러 보자.
역사가 폴 존슨이 20세기 역사를 상대성 원리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그의 말처럼 파시즘, 나치즘, 공산주의, 인도주의적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시도, 우생학(優生學) 또는 보건 정치, 성적(性的) 해방의 이데올로기, 인종 정치, 환경 정치 등이 종교의 공백을 메웠으니, 이런 철학적 혼돈 없이 제1·2차 세계대전을 설명하는 것이 무망(無望)하기 때문이다.
찰스 다윈(1809~1882년)이 19세기 중엽에 출간한 《종의 기원》은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 20세기 초반부에 시행되었다가 실패로 귀결된 거대한 사회실험의 씨앗이 되었다. 스탈린의 홀로도모르(농업 집단화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등에서 발생한 대량 아사 사태-편집자 주)와 굴라크, 나치의 홀로코스트가 이데올로기적 사회실험의 비참한 결과물이었다. 대공황 이후 고전적 자본주의도 확신을 잃었다. 이런 실패를 경험한 후에야 이데올로기라는 믿음의 총량은 하향(下向)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 진실’
인간의 ‘앎의 질(質)’은 꾸준히 악화되어 갔다. 철학의 열화(劣化)가 이 길을 이끌었다. 철학자 화이트헤드(Alfred N. Whitehead)는 “유럽의 철학적 전통이라는 것은 플라톤에 관한 각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동굴 밖 저 너머에 절대적 진실이 있다는 믿음이 통용되는 한은 그가 옳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믿음의 심장에 칼을 꽂은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2004년 10월 프랑스의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사망했을 때,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부고(訃告) 기사에서 이 점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이 1992년 그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할 때 극심한 논쟁이 있었음을 소환하면서, “본디 학계에 다툼이 잦긴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데리다 씨의 견해나 논점이 논쟁적이라서가 아니었다. 실은 논점이나 견해가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데리다 자신이 다른 누구보다 이 점을 앞장서서 인정했을 터였다. 그는 자신이 했던 말과 모순되는 말을 누차 했을 뿐 아니라, 그의 생각을 명료하게 정의하려는 어떤 시도에도 격렬히 저항했다”고 썼다.(《이코노미스트》 2004년 10월 23일)
진실은 더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그 무엇이 아니었다.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은 ‘포스트 진실(post truth)’이라는 단어를 등재했다. 여론이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과 개인적 신념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세태를 뜻하는 신조어다.
스마트폰 시대가 가져온 집단 확증편향
혼란스러운 철학자의 머릿속에서나 가능했을 일을 스티브 잡스라는 고집스러운 혁신가가 현실로 옮겨 놓았다. 스마트폰은 개인을 세계적 연결망(網)에 접속시키는 기능을 갖는, 우리 신체의 일부가 되었다. 전 세계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는 망과 기계를 손에 들고 정작 인간이 탐닉한 것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열정적으로 찾고, 그럼으로써 스스로의 확신을 굳혀 간 것이었다. 전쟁과 살육이 주는 아드레날린을 포기한 대신, ‘스마트한’ 오락물이 주는 도파민에 탐닉했다.
소셜미디어는 사람들의 집단 확증편향(集團確證偏向)을 강화한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광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안의 중요도나 윤리적 적합성과는 무관하게 많은 관심을 받는 게시물을 우선적으로 소개하고,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내 연결하는 알고리즘을 채택했다. 이런 알고리즘은 참여자들의 의견을 점점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집단화하고, 퀴어넌(QAnon) 같은 음모론 집단, 백인 우월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단체에 동료의식과 확신을 불어넣었으며, 알카에다 같은 테러 집단에 조직원을 손쉽게 충원할 길을 열어 주었다.
공동체의 파편화
홍수가 나면 마실 물이 귀해진다. 너무 많은 정보는 없느니만도 못하다. 정보의 홍수는 전문가의 권위를 허물었다. 온갖 비전문가들이 누가 주었는지 모를 발언권을 가지고 전문가들을 논박한다.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진실을 어디선가 찾아야 했다.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이든, 페이스북에서는 “당신 생각이 옳다”고 외쳐 주는 ‘친구’들을 저절로 만나게 되었다. 세계인을 하나로 연결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출범한 소셜미디어가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괴물이 되었다. 속보(速報)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주류 언론이 소셜미디어를 인용하는 세상이 되었다.
21세기의 신기술은 우리에게 정신적 충일감(充溢感) 대신 허무감을 선사했다. 현대인은 의미에 굶주리고 있다. 머리의 더글러스의 말처럼 “몇몇 개인들이 허무주의에 탐닉하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일지 몰라도 그것이 사회적 신조가 되면 치명적이다.”
“대체로 인간은 자신이 믿고 싶어 하는 것을 기꺼이 믿는다(Fere libenter homines id quod volunt credunt).”
2000년 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남긴 명언이다. 그럼에도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믿을 만한 신념의 선택지들과 유통 경로가 상대적으로 단출했던 덕분일 것이다. 저마다 믿고자 하는 진실의 버전이, 결정장애를 유발하는 아이스크림 종류처럼 다양해졌을 때, 공동체는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설상가상으로 이런 인식론적 혼란상에 더하여, 세계화가 초래한 경제적 양극화(兩極化)도 정치적 분열과 공동체의 파편화를 재촉한다. 미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한국에서도 선거철이 되면 그 분열상의 파괴력이 손에 만져질 듯 또렷해진다.
첨단 기술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미래 기술의 전모를 알 도리는 없지만, 장차 기술은 ‘가상’과 ‘현실’, ‘거짓’과 ‘참’의 경계를 더욱 흐리게 만들 것이다.
3. 탈냉전과 세계화
현대화는 공적 종교가 퇴조하고 이성으로 대체되는 과정이다. 이에 발맞춰 상징적 세계는 약화되고 대신 문자적 세계가 강화된다. 쉽게 수치화되고 수량화될 수 없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 영역에서 밀려난다. 영적이고 감성적이며 초자연적인 것은 뒷전이 되고 그 대신 물질적인 것이 앞에 나선다. -벤저민 타이텔바움, 《영원의 전쟁》 중에서
앎과 믿음의 미약한 역전(逆轉) 현상이 냉전이 종식되던 1990년대 초에 일어났다. 성급한 학자는 ‘역사의 종말’을 외쳤다. 이성과 합리의 시대가 되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탈(脫)냉전, 또는 세계화의 30년은 앎의 곡선이 믿음의 곡선을 드디어 웃도는 시절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세계화 현상은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가져왔다. 동질화(同質化)의 거대한 힘이 모든 토속적인 것들을 파괴하려 덤벼든 것이다.
인간은 앎과 믿음의 두 다리로 선다. 암흑시대라고 불리던 중세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이성과 합리의 저장고 역할을 했다. 합리주의의 최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는 18~19세기에도 평민들은 자신들의 독특한 삶의 방식과 그것을 지탱해 주는 신앙을 지켜 나갔다. 제도화된 종교나 급진적인 이데올로기만 믿음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공동체적 삶을 지탱하기 위해 간직해 온 태도나 관습, 신앙과 가치 체계도 앎의 공백을 채워 준 ‘믿음’에 해당한다.
‘정치적 올바름’
트럼프 지지자들이 ‘트럼프는 비(非)정치적으로 올바르다’라는 구호를 들고 시위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이데올로기가 권위를 잃은 자리에서 세계화는 인류 공동체들이 저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유지하던 믿음을 거대한 불도저처럼 깔아뭉개려 했다. 이 대목에서는 ‘서로 다른’에 방점이 있다. 다른 것들을 서로 다르게 만드는 힘을 우리는 문화라고 부른다. 다른 곳에는 우리와 다르게 말하고 입고 먹으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서, 문화는 기본적으로 공간이 발휘하는 힘이다.
반면에 인류가 생겨난 이래 꾸준히 작용해 온 다른 힘도 있다. 그것은 온갖 곳의 사람들을 비슷하게 만드는 힘이다. 이런 힘을 우리는 문명이라고 부른다. 문명의 지향점은 미래이므로, 그것은 시간적인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와 문명의 끊임없는 길항(拮抗) 작용은 앎과 믿음의 상관관계처럼 상반되면서도 공존적이다. 과도한 일반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앎의 곡선이 치솟을 때는 문명의 힘이 강하다. 믿음의 곡선이 상향하면 문화의 힘이 강해진다. 합리주의의 승리처럼 보이던 세계화의 30년 동안 전통적인 관습과 가치 체계는 과도하게 모욕적인 대접을 받았다. 앎이 믿음에 간섭하려 들었던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주장하는 ‘PC’주의자들이 합리주의의 대변자를 넘어 ‘사상(思想)경찰’ 행세를 했다. 이들은 소박한 생활인들의 습관과 믿음까지 반(反)문명적인 것으로 매도하고 파괴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말이 금기시되는가 하면, 심지어 2021년 미국 하원 개원(開院) 기도에서 이매뉴얼 클리버 의원은 에이멘(Amen) 대신 ‘에이위민(Awomen)’으로 기도를 맺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MAGA를 합창하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의 등장은 이런 과도한 PC 현상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점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동질화를 강요하는 ‘문명’에 대한 ‘문화’의 반격인 셈이다. 이런 반작용은 다음에 설명할 전통주의 발흥의 토양이 되기도 했다. 세계화의 시기에 끓어오르기 시작한 이슬람 극단주의, 기독교 근본주의, 유대 민족주의는 다가올 더 기괴하고 낯선 ‘문화의 반격’의 전조(前兆)였다.
4. AI 모먼트
모든 정보가 여과 없이 흐르도록 내버려두면 진실이 지는 경향이 있다. -유발 하라리, 《넥서스》 중에서
그리고 인공지능(AI)의 시대가 왔다. 인공지능의 놀라운 발전으로 인류는 처음 경험해 보는 특이점(singularity)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인공신경 지능망으로 구성된 오늘날의 생성형 인공지능은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기 위해 고안된 튜링 테스트(Turing test)를 통과하기 시작했다. ‘미래에 기계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상상했던 흥미진진한 과학소설 작품들은 어느새 과거지사가 되었다.
‘우리가 뭘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시대
인공지능은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심층학습(deep learning)으로 빅데이터를 소화하여 결과물을 도출한다. 문제는 우리가 인공지능이어떻게 그런 결과물을 내놓는지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인공지능은 인류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한다. 도널드 럼스펠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unknown unknowns’의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뭘 모르는지조차 모른다. “너 자신을 알라”던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 무위(無爲)로 돌아갔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던 데카르트의 확신도 사고(思考)하는 기계 앞에서 힘을 잃었다. 이보다 더 큰 철학적 위기가 있을까?
인류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ad imaginem nostram)’ 우리의 피조물(被造物)을 만들었기 때문에, 인공지능은 인간의 편견(偏見)과 선입견(先入見)을 그대로 담고 있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고한다.
인공지능의 윤리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선택과 행동에는 윤리적 함의(含意)가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인공지능이 윤리적 판단을 하는 상황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날은 ‘눈이 밝아 창조주와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는 금단의 선악과를 우리의 피조물이 따먹는 날이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인공지능이 영속적인 시스템이 되지 못하도록 어느 순간이건 플러그를 뽑을 준비, 즉 ‘생명나무의 실과(實果)’는 따먹지 못하도록 인공지능을 퇴출시킬 장치도 함께 준비해야 하리라.
‘전통주의’의 발흥
프랑스의 극우 정당 국민연합 지지자들의 시위. 프랑스 애국주의의 상징인 ‘로렌의 십자가’가 보인다. 사진=AP/뉴시스이성과 합리가 다시금 하향 곡선을 그리는 시대를 맞아, 이번에는 또 다른 종류의 믿음이 기세 좋게 올라가고 있다. 대문자 T로 표기되는 이른바 ‘전통주의(Traditionalism)’의 발흥이다(일상적 맥락에서 소문자 t로 시작하는 전통주의자는 그저 ‘오래된 문화를 선호하는 사람’을 뜻한다).
전통주의는 미국에서는 태생주의(nativism)로, 러시아에서는 유라시아니즘으로, 유럽에서는 극우(極右)주의로 발현하고 있다. 전통주의는 이성과 합리가 패배를 선언한 빈자리를 (마치 진공을 싫어하는 자연처럼) 무언가가 채워야 하기 때문에 급조된 것 같은 조잡한 복고적(復古的) 태도다. 우리 사회에서 신흥종교와 무속이 갑작스레 기승을 부리는 것도 이런 시대현상의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할 것이다.
민족음악학자 벤저민 타이텔바움은 지난 100년간 지하에서 명맥을 이어 온 전통주의의 철학적·영적 뿌리를 집요하게 추적했다.
이런 전통주의의 창시자를 굳이 찾자면 개종(改宗) 무슬림이었던 프랑스인 르네 그농(1886~1951년)이나, 이탈리아 귀족 출신의 율리우스 에볼라(1898~1974년) 등을 들 수 있다. 그들은 파국을 향해서 적극적으로 돌진하는 것이 사회를 개선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현세(現世)를 암흑의 시대로 규정하고 저주했다. 이 시대가 지나야만 세상이 다시 위대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성직자와 전사(戰士)가 지배하는 ‘황금의 시대’를 추구하므로, 이들의 사상은 위계적(位階的)이다. 이것이 전통주의가 급진적 극우파와 만나는 접점이다.
체계 없고, 두서없고, 어처구니없다
전통주의는 반(反)이민주의적 내셔널리즘과 결합하면서 기괴한 이데올로기적 급진주의로 흘렀다. 이들은 현대성(modernity) 자체에 반대하고, 영원하고 초월적인 영성주의(靈性主義)에 헌신하려 한다. “그들은 급진적으로 다른 시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구조 속에서 혼란을 목격하고, 폐허에서 질서를 찾아낸다. 그들은 미래에서 과거를 본다.”
힌두교 서적을 들추던 뉴에이지 얼치기 사이비 명상가들이 대문자로 시작하는 ‘전통’을 기치로 내걸고 사상적 대오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전통주의 철학이 환각제에 대한 높은 호기심과 퇴행적 정치관을 결합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타이텔바움은 트럼프 대통령의 책사(策士)로 알려진 스티브 배넌과, 러시아 푸틴의 사상적 스승이라고 알려져 있는 알렉산드르 두긴이 공히 스스로를 전통주의자로 규정하고, 둘이 로마에서 서로 만난 뒤 사상적 교감을 나누며 친교를 쌓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놀랍지 않은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의 사상에는 세 가지가 없다. 체계가 없고, 두서가 없고, 어처구니가 없다. 오로지 영적(靈的) 직관만이 중요하다. 이들은 전근대 사회의 가치(라고 자신들이 믿는 것)를 부활시키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전통주의’는 사상이라기보다 극우적 반이민주의에 포퓰리즘, 파시즘, 나치즘, 내셔널리즘, 오컬트주의, 신비주의를 솥에 다 쏟아붓고 끓여 낸 잡탕 같은 하나의 태도다. 그러나 배넌은 대선(大選)을 포함한 미국의 각종 정치 이슈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두긴의 저서는 러시아 육군사관학교의 필독서가 되어 있다. 이런 사람들이 각자 자국(自國)에서 지정학(地政學) 전문가 대접을 받는 세상이 온 것이다. 그들의 주장처럼 ‘암흑의 시대’가 맞기는 한 모양이다. 어쩌면 세상을 칼리프가 지배하는 중세로 되돌리겠다고 테러를 일삼는 IS의 등장은 무슬림 세계에서 먼저 나타난 파괴의 서막이었는지도 모른다.
되돌아온 ‘정글의 세계’
세계 도처에서 드러나는 극우 포퓰리즘의 파도 밑에는 이렇게 도도한 사상적(또는 반사상적) 조류가 흐르고 있다. 두려운 점은, ‘인공지능 모먼트’ 이후의 철학적 빈곤과 혼란도 ‘뉴턴 모먼트’와 ‘아인슈타인 모먼트’처럼 엄청난 피를 대가(代價)로 요구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때마침 국제질서는 지난 80년을 굴려 오던 동력을 잃고, 해체되고 있거나 이미 해체되었다.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빈자리에는 로버트 케이건의 표현처럼 무질서의 ‘정글이 되돌아올(The jungle grows back)’ 것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과 또 한 번의 대전쟁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불행히도,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대량살상무기의 ‘억지력’뿐이다. 북한의 비핵화(非核化)를 포기하는 듯한 식자(識者)들의 언급이 늘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여태껏 모든 인류를 스스로의 어리석음으로부터 지켜 온 비확산 체제(매우 불공평하지만 가장 합리적이었던 체제)는 끝장이다. 핵 보유를 비장하게 소리 높여 주장하지 않아도, 어중이떠중이가 다 핵무기를 개발할 순간이 코앞에 바싹 다가와 있다는 이야기다.
맺는 말 - 앎과 믿음을 다시 만나게 해야
정보에 맥락에 더해질 때 지식이 된다. 그리고 지식에 소신이 더해지면 지혜가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소신이 생기려면 홀로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중략) 용기는 소신을 기르고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하며 특히 새로운 길, 그래서 대체로 외로운 길을 걸을 때 중요하다. -헨리 키신저·에릭 슈미트·대니얼 허튼로커, 《AI 이후의 세계》 중에서
제임스 서로위키가 말한 ‘지혜로운 대중’의 시대는 가고,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일찍이 내다본 ‘반란하는 군중’의 시대로 우리는 이미 걸어 들어왔다. 세계 도처에서 민주정치는 포퓰리스트가 이끄는 중우(衆愚)정치로 타락해 스스로의 성공의 희생자로 전락하고 있다. 개인들은 공동체적 삶에 허무감을 느끼는 도파민 중독자들이 되어 간다. 현대인들이 선인(先人)들보다 못나서가 아니다. 인간의 인지(認知)능력은 수십만 년에 걸쳐 서서히 진화해 왔으므로 오늘날처럼 빠른 변화에 즉시 적응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우리 뇌에는 생존을 위해 매우 타당한 생물학적 이유로 편견과 선입견과 과거에 대한 경로 의존적 사고방식이 탑재되어 있다.
관용과 절제가 필요한 시대
너무 많은 정보를 생산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우리는 우리 본성이 감당할 수 없는 세상을 불러왔다. 금단의 상자를 열어젖힌 판도라처럼.
인간이 인공지능 모먼트 이후의 세상에 편향적으로, 회의적으로, 허무주의적으로, 쾌락주의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인간에 내재된 생물학적 한계 때문이다. 조현병(調絃病) 환자가 발작적으로 자해행위나 가해행위를 하는 것처럼, 이성과 믿음 사이의 이격(離隔)이 갑자기 심해지면 인류는 분열증(schizoid)을 경험한다. 이것이 대전란(大戰亂)의 전조(前兆)이거나 원인이라는 사실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역사가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두려운 전쟁 전 시대(pre-war period)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모든 좋은 약이 그러하듯, 처방은 진부하다. 앎의 질과 믿음의 질이 동시에 나빠지면서 이성이 저물고 기괴한 신념이 세를 얻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형국이라면, 다시 한번 인류의 이성을 강건하게 재활시키고 믿음을 건전하게 가꾸는 수밖에 없다. 앎이 믿음을 또다시 짓누르도록 오만해지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우리가 누르고 줄여야 하는 것은 그 둘의 과도한 불균형이다.
누구나 자신의 신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만난다. 유일신이 신도에게 현현(顯現)하는 방식도 경우마다,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므로 광신(狂信)을 막는 유일한 길은 타인의 믿음을 인정하는 길뿐이다. 역설적으로, 이것을 해낼 수 있는 힘은 인간의 이성이다.
관용과 절제는 결국 한 몸이다. 타락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처방도 이것뿐이고, 새롭게 부상하는 강대국에 가장 필요한 덕목도 이것이다. 층간 소음으로 다투는 이웃 사이에 필요한 것도 이것이 아니면 뭐겠는가.
이런 시대에 해야 할 일들
홀로 있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인터넷을 경계할 것. 외로움 속에서 용기와 소신을 기를 것. 자기 삶의 의미와 공동체적 삶을 지켜 가야 할 의미를 찾아낼 것(‘인간은 폴리스적 존재’이므로 이 둘은 사실 하나다). 소금 기둥으로 변한 롯의 아내처럼 확실한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 볼 것. 이제는 판타지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절대선(絶對善)과 보편적 가치에 대한 소신을 가질 것. 타인의 다른 생각, 특히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인 관습과 믿음을 함부로 폄훼하고 짓밟지 말 것. 민속신앙과 유사(類似)종교, 사이비(似而非)종교를 주의할 것. 주류 종교가 종교의 영역을 벗어나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도 경계할 것(신앙과 앙가주망은 둘 다 심오한 의미를 가진 것이지만, 그 둘을 섞어서 별반 신통한 결과가 나온 적이 없다). 예수가 가르친 대로,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기도하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기도할 것.
서로 멀어져 가고 있는 이성과 합리의 곡선과 믿음과 신념의 곡선을 어떻게든 서로 다시 근접하게 만들어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마겟돈일 것이다.⊙
※이 글은 외교부의 입장과는 무관한 필자의 개인적 견해임을 밝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