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럴 거면 단심제 하면 되겠네요”(최기식 변호사)
⊙ 사정기관 태도 변화에 유족들 “배신감 느껴
⊙ 사정기관 태도 변화에 유족들 “배신감 느껴

- 故 이대준씨의 친형 이대진씨가 2025년 12월 2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서해 피격 사건 은폐 시도 및 월북몰이 혐의’ 무죄 선고 후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조선DB
2025년 12월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5형사부(재판장 지귀연)는 지난 2020년 9월 22일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의해 피살, 소각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에 대해 이른바 ‘월북몰이’를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문재인 정부 인사 다섯 명(서훈·김홍희·서욱·박지원·노은채)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일주일이 흘러 1월 2일, 항소기간의 마지막 날이 도래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이날 기자들에게 짤막한 공지 메시지를 통해 명예훼손에 관한 부분만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항소 실익’ 고려했다는 검찰
서울중앙지검은 명예훼손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항소를 포기한 데 대해, 대검찰청과의 협의를 거쳤고 항소의 실익(實益) 등을 고려해서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항소의 실익’을 고려했다는 검찰의 설명에 대해 최기식 변호사는 1월 12일 통화에서 “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과 관련한 내용을 밝히는 사안인데 어째서 실익이 없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최 변호사는 “무죄가 나온 사건에 대해 검찰은 대부분 항소한다”며 “서해사건은 인명이 희생된 사건이고 진상 규명을 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인데, 항소심은 1심과 다르게 판단할 수 있고 그래서 3심제를 두고 있다. (주요 혐의에 대한 항소를 포기할 것이면) 단심제로 하면 되겠네”라고 꼬집었다. 명백하게 법률 적용을 잘못했거나 검사가 놓친 법리적 오해가 있을 때 검찰이 항소를 안 하기도 하지만, 항소의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항소를 포기하는 경우는 본 적이 거의 없고, 서해사건과 같은 증거에 의한 사실관계 규명은 검찰이 통상 항소를 포기하는 경우와 다르다는 게 최 변호사의 설명이다.
“검사 출신 주도로, 尹 지시에 따라”
2025년 12월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문재인 정부 당시 서해에서 발생한 공무원 피격 사건을 은폐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무죄를 선고받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조선DB2025년 12월 29일, 국정원은 서해사건 고발을 취하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앞서 국정원은 2022년 자체 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과 박지원 의원을 허위공문서작성 및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그런데 새 정권에서 2025년 12월 26일 이들 혐의에 무죄 판결이 나오고 사흘 뒤 국정원은 “2022년 당시 감찰권 남용 및 무리한 법리 적용으로 고발 자체가 부당했다고 판단”한다며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
국정원은 고발에 이르게 된 경위에 대해 “2022년 6월 20일 검사 출신 감찰심의관 주도로 동해·서해 사건 등에 대한 감찰 조사에 착수해 6월 29일 수사 의뢰를 결정했으며, 국정원이 직접 고발하라는 윤석열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7월 6일 검찰에 사건 관계자들을 고발했다”고 설명했다.
감사원이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한 유병호 사무총장을 콕 집어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국정원도 전 정부 얘길 꺼낸 것이다. 국정원은 또 “고발 내용이 사실적·법리적 측면에서 문제가 있음을 확인했다”며 “감찰 조사가 특정인을 형사 고발할 목적으로 실시된 것으로 보이는 등 감찰권 남용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건 관계자들의 직무행위에 범죄 혐의가 있다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사실에 반해 고발 내용을 구성하거나 법리를 무리하게 적용한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반윤리적인 고발을 취하하기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가 유족이었으면 피를 토했을 것”
이를 보며 혀를 차는 국정원 선배 직원들도 있었다. 전직 국정원 간부들은 1월 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호감을 드러내면서도 “이대준씨 유족의 억울함은 이제 어떻게 푸느냐”고 우려했다. 박지원 국정원장 시절 국정원에 재직했던 A씨의 얘기다.
“이건 도가 지나쳤어요. (국가기관이) 정부 입장을 따라가는 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 국민이 억울하게 총에 맞아 죽고 불태워진 이 사건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잖아요. (국가기관들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혐의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건 일반적인 시선에서 용인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닌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관련 기사들을 보면서 돌아가신 공무원(이대준씨) 유가족분들, 제가 그 입장이었으면 정말 피를 토할 것 같아요. 정말 국정원이 저런 짓을 하면 안 됩니다. 기본적인 조직 양심… 아니, 한 인간으로서 그런 행태를 해선 안 됩니다.”
또 다른 전직 국정원 고위 간부 B씨는 “고인도 억울하지만, 유족들의 입장도 생각해야 하는데 그들의 입장은 무시된 것 아닌가”라며 “국정원은 상명하복이 철저하고, 원장이 방향을 정하면 꼼짝없이 그리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사건 판결문이 공개되지 않은 데 대해선 “엄청난 간첩사건도 (판결문을) 공개했는데 (서해사건은 비공개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꼬집었다.
유족 “미쳐 버릴 지경”
이런 가운데 이래진씨는 홀로 풀리지 않는 의문을 파헤치고 있다. 그는 1월 13일 통화에서 이들 국가기관의 입장 변화에 “배신감을 느낀다”며 “국가기관과 사법부 모두가 범죄를 덮었다. 이게 민주 국가인가”라고 토로했다.
“동생이 죽기 이틀 전에 저랑 통화도 했어요. 바다는 위험하니까 항상 위치를 확인하고 안부를 묻거든요. 그날도 평상시와 똑같았어요. 그런데 동생이 죽고 나서, 안보관계장관회의(국가안보실 개최)가 있기 몇 시간 전에 수사 라인 세 곳에서 전화가 왔어요. 다짜고짜 ‘동생이 혹시 북한을 동경했느냐’ ‘월북에 관한 말을 한 적 있냐’ ‘불온 서적을 본 적 있느냐’라고요.”
그는 진상 규명이 막힌 현실엔 “너무 황당하고 미쳐 버릴 지경”이라고 했다. 국내에선 추가적인 진상 규명의 길이 막혔으니, 되든 안 되든 외국에라도 손을 뻗어 보겠다는 게 이씨의 심정이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니, 다음 달(2월) 유엔 인권특별보고관이 방한한다고 해서 면담 요청을 해 놨습니다. 유엔 총회에서 연설을 통해 이 만행을 전 세계에 읍소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