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근무 시절 외환위기를 현장에서 겪었던 그는 “6·25 전쟁 이후 국내에서 가장 참혹한 사건으로 꼽히는 IMF의 비극은 예고 없이 들이닥친다”고 했다. 경각심이 약해졌다는 생각에 지난해 11월 《제2의 IMF 외환위기, 다시 오는가?》라는 책도 냈다.
김 교수는 급격한 국가부채 증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낮은 외환보유액, 그리고 즉시 사용 가능한 현금 잔고의 부족을 외환위기 위험의 핵심 근거로 꼽았다. 그러면서 “외환보유고를 1조 달러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질 부채율은 100~130% 수준”
― 책에서 제2의 IMF가 올 확률을 30%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이 확률은 유효합니까.
“유효합니다. 50%를 넘지 않는 게 다행일 정도예요. 국가부채 비율이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올해가 약 52%고, 2029년에 59%, 2030년이면 60%가 넘을 겁니다. 국제통화기금(IMF) 기준으로 GDP 대비 60%를 넘기면 위험 국가로 분류됩니다. 2029년이면 그 경계선에 도달하는 거예요. IMF는 한국의 국가부채가 2050년 GDP 대비 130%를 넘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군인연금과 공무원연금 같은 잠재 부채를 포함하면 지금도 실질 부채율은 100~130% 수준이에요. 정부는 국채만 놓고 52%라며 안심하지만, 한국은 기축(基軸)통화국이 아니죠. 부채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시장 불안은 훨씬 빠르게 확산됩니다.”
그는 이어 “외환보유고가 GDP의 22~23%에 그친다는 점 자체가 구조적 약점”이라면서 “이번에 약속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對美) 투자와 지원이 단기적으로 달러 부족과 환율 불안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달러 비축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여기에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향후 10년간 매년 200억 달러씩, 총 2000억 달러의 대미 직접 투자와 이른바 ‘마스가(조선 협력)’ 관련 1500억 달러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합치면 3500억 달러로 외환보유액의 80%를 넘습니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즉시 활용할 수 있는 현금은 180억 달러에 불과합니다. 정부가 ‘매년 200억 달러’씩 나눠 투자하겠다고 설명하는 것도 그 정도가 현실적 한계이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에서 외환보유고에서 발생하는 연(年) 3% 안팎의 이자를 가지고 미국에 투자하겠다는 발상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외환보유고는 안보로 치면 핵무기”
사람들이 2024년 11월 21일 대만 신주에 있는 대만반도체제조(TSMC) 본사 내 ‘혁신 박물관(Museum of Innovation)’ 밖을 오가고 있다. 사진=연합― 대만은 IMF 미가입국에다 양안(兩岸) 관계 불안 때문에 달러를 쌓아둘 수밖에 없는 구조라 한국과 단순 비교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GDP 대비 70% 이상 보유한 국가는 드물기도 하고요.
“지정학적 불안이 컸던 건 맞지만, 중요한 건 그 불안이 실제 위기로 번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대만은 환율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고, 시장에 ‘어떤 위기에도 방어할 수 있다’는 신호를 줬습니다. 한국은 제조업 등 실물 경제는 강해도 금융 체력은 상대적으로 취약합니다. 이런 구조에서 외환보유고마저 얇으면 체감 충격은 훨씬 클 수밖에 없습니다.”
― GDP 대비 외환보유고 23%를 둘러싸고도 이견이 분분합니다. 우리는 늘 이 수준을 유지해 왔고, 중국·독일·프랑스와 비교해도 낮지 않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기축 통화국을 넘보는 중국이나 기축통화국인 유로존과 단순 비교는 어렵습니다. 핵심은 원화의 국제적 위상입니다. 국제 결제에서 원화 비중은 0.1% 수준으로 20위권에도 못 듭니다. 이런 통화로 20%대 초반의 외환보유고를 갖고 위기에 대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는 외환보유액의 ‘구성’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4300억 달러 중 현금은 4%뿐입니다. 나머지는 국채와 유가증권에 묶여 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즉각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환율은 국가부채, 재정 건전성, 수출입 구조, 금융 신뢰가 모두 반영된 지표입니다. 환율 상승은 국가 기초 체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신호입니다.”
― 외환보유고를 지금의 두 배 이상인 1조 달러까지 쌓아야 한다고 보는 근거는 뭡니까.
“외환보유고는 안보로 치면 핵무기입니다. 위기 때 우방(友邦)은 대신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한국은 신용평가 리스크가 큰 나라입니다. 무디스, S&P, 피치 같은 신용평가사가 한두 단계만 낮춰도 외환 시장은 즉각 반응합니다. 신용 등급이 흔들리면 외환위기로 번지기 쉬운 구조죠. 그래서 외환보유고는 ‘적당히’가 아니라 ‘충분한’ 수준이어야 합니다.”
“미·일과 통화스와프 필요”
김대종 교수는 미국, 일본과 통화스와프를 재개,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은행에 미국 달러화, 일본 엔화, 중국 위안화가 쌓여 있는 모습. 사진=조선DB김 교수는 “통화스와프도 같은 맥락의 전략”이라고 했다. 한국은 미국과의 상시 통화스와프가 종료된 상태이며, 일본과는 2023년 1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8년 만에 복원했지만 과거 최대 700억 달러와 비교하면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중국과는 이미 큰 규모의 통화스와프가 유지 중이다.
― 한국과 미국은 피마 레포[FIMA Repo·해외 중앙은행이 미국 국채를 담보로 맡기고 연준(Fed)으로부터 달러를 빌리는 제도]가 적용되고 있죠. 위기 시 달러를 조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통화스와프와 다르지 않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피마 레포는 통화스와프처럼 조건 없이 통화를 교환하는 구조가 아니라, 담보를 맡기고 달러를 빌리는 제도입니다. 안전판이라기보다는 보조 수단에 가깝고, 위기 국면에서는 이 차이가 큽니다. 과거를 보면 통화스와프가 있어도 환율이 급등한 나라들이 있어요. 위기 때 금리가 20~30%까지 치솟았고, 아르헨티나는 100%까지 폭등하기도 했죠. 한국도 외환위기 당시 금리가 30%에 달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원화처럼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의 통화는 쓸모가 없습니다. 그래서 스와프 대상이 제한적인 겁니다.”
― 만일 지금 위기가 온다면 1997년 때보다 타격이 더 클까요.
“더 클 거라고 봅니다. 한국은 이미 산업화가 고도화된 경제로, 제조업은 세계 상위권이지만 금융은 상대적으로 취약해요. 이런 구조에서는 위기가 오면 충격이 더 빠르게 전이됩니다. 그래서 단순히 외환보유고를 쌓는 것뿐만 아니라 원화 자체의 위상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지금은 빅테크 기업들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앞세워 국제 결제 질서를 바꾸고 있어요. 한국은 이런 변화에 제대로 올라타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원화 경쟁력을 높이는 길도 금융 산업을 육성하는 데 있습니다. 체질 개선이 필요한 거죠. 그러려면 인재들이 금융으로 가야 하는데, 지금 보세요. 가령 국민연금은 전주, 사학연금은 나주, 공무원연금은 제주, 거래소는 부산으로 다 흩어놨습니다. 우수한 인재들이 지방으로 가려고 합니까. 금융은 한곳에 있어야 시너지를 냅니다.”⊙









































